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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팔아서라도 이 책을 사라, 지금 당장!"
[서평] 백소영 <엄마 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


"옷을 팔아서라도 이 책을 사라. 지금 당장."

 

이 문구는 제임스 패커가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읽고 했다는 유명한 말이다. 백소영 교수의 이 책을 읽은 직후, 나는 페이스북에 같은 문구를 남겼다. 아마 지인들 몇몇은 농담처럼 여겼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당신이 신앙을 가진 한국교회의 교인이라면 이 책을 반드시 읽기를 권한다. 물론 이 책은 신학 책은 아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산다는 것'에 대한 사적인 경험, 182명의 여성의 인터뷰를 다룬 책이다. 하지만 본서는 엄마라는 존재의 미시사에 국한하지 않고 한국 사회와 개신교 내 여성 문제의 큰 화두들을 아우르고 있다. (고로, 만일 누가 나에게 개신교, 여성주의, 육아, 자녀 교육에 관한 한 권의 책을 권하라면 나는 주저함 없이 이 책을 꼽을 것이다.)

 

저자는 먼저 이 사회에서 '엄마'라는 존재가 대체 불가능한 사회 계급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엄밀히 말해 전업주부는 현대 이후에 고안된 일이라는 말이다. 아침 8시에 차를 몰고 도시로 나가서 저녁이 늦도록 가정과 격리된 공간에서 노동을 해야 하는 현대 사회는, 점점 더 일을 남성만의 무엇으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봉건사회에서 노예나, 종들이 하던 일을 무보수로 대신해 줄 존재가 현대 사회에는 절실하게 필요해졌고, 따라서 남편이 경제력을 유지하도록 내조하고 무한 경쟁 속에서 자녀의 발전을 위해 최상의 교육 환경을 만들어 줄 존재로서의 '엄마'라는 계급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여성이 직장 내 경쟁 체제에 끼어들어 경쟁률을 높이는 것도 괴로운 일이며 저녁에 칼퇴근이 불가한 아빠의 부재를 메울 '전문 엄마'(전업주부)가 절실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아이를 낳은 여성은 점점 회사에 있어도 미안하고 집에 있어도 미안한, 양쪽에서 샌드위치가 되어 죄인 취급받고 있으며 점점 자녀 교육은 고학력의 전업주부만이 소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그 결과로 점차 자신의 꿈을 접는 여성들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때 여성들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잘 해 온 일', '하면 즐겁고 신나는 일'을 접고 이제는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삶을 살게 되며 그 옥죄는 일상 속에 엄마들은 몸도 마음도 병들기 시작한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전업주부가 되면) 아프거나 ('직장 맘'이 되면 바빠서) 미치게 된다고 표현했다. (이 책의 초판 제목이 <엄마 되기, 아프거나 미치거나>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개신교는 어떨까. 1990년대 이후 개신교에서 가정 회복 세미나를 통해 가정의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을까. 저자는 이런 한국교회의 많은 세미나들이 여성을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가부장적 여성성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강조되고 있다고 말한다.

 

서울 근교의 한 복음주의적 대형 교회에서 나누어 준 <가족 사랑 실천 노트>라는 소책자의 내용을 보자. (…) 남편의 아내 사랑 실천에는, 출근길에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기, 출근길에 사랑하는 아내를 따뜻하게 안아 주기, 퇴근길에 꽃 한 송이 사 들고 아내에게 전해 주기, 아내의 음식 솜씨 칭찬하기. 아내에게 "오늘 내가 집안일 도울 것 없어?"라고 물어본 뒤 아내의 요청 들어주기, 함께 장보러 가기, 아내가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을 함께 보면서 아내의 정서 공감해 주기 등등이 묘사되어 있다.

 

한편 아내가 남편에게 실천해야 하는 덕목으로는 남편이 오케이 할 때까지 안마해 주기, 출근길 칭찬과 격려의 말 전하기,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사랑이 담긴 격려와 칭찬 문자 보내기, 출근길 칭찬을 적어 놓은 쪽지를 남편 주머니에 살짝 넣어 주기, "여보,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밝은 미소와 함께 남편 퇴근 맞이하기, "여보, 당신 건강해야 해요. 당신 건강이 우리 집 행복이에요. 일찍 들어오세요" 격려의 말 전하기, 퇴근한 남편의 가방(겉옷)을 들어 주고 시원한 물 한 컵, 주스 한 잔 대접하기, 특별 요리 준비하기, 남편이 하는 모든 말에 "예" 혹은 "당신 생각이 참 멋있네요"하고 반응하며 모든 요구 들어주기 등이 제시되었다. (본문 중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의 확연한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게다가 여기서의 모든 요구는 성관계를 암시하기도 하는데, 주변에서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아내는 남편이 원하면 언제나 성행위에 응하는 것이 기독교 가정의 행복이라고 얘기하는 세미나가 여전히 성행한다고 전해 듣기도 했다. 저자는 마틴 루터도 아내의 또 다른 기능은 '유혹으로부터의 예방책 기능' 즉, 남편이 정욕을 그릇되게 다스리는 죄를 짓지 않도록 아내는 성적 헌신으로 그에게 예방책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으며 이러한 주장은 아내에게 남편이 요구할 때 언제나 응해야 한다는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가르침이었다고 지적한다. 이쯤 되면 아내는 육아, 가사 전담뿐 아니라 '감정 노동자' 수준으로 봐야 하는 건 아닌가 싶다. 그러니 농담처럼 직장 여성들 사이에서는 우리도 퇴근하면 차도 타주고 목욕물도 받아주고, 저녁상도 차려 주는 아내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사실, 책을 읽는 도중 너무 참조하고 싶은 내용이 많아 책의 사방에 검은 줄이 그어졌다. 책 속에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언급되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생각할 거리들이 넘쳐난다. 유대 한 랍비가 "만일 한 남자가 그의 딸에게 토라를 가르친다면 그건 그녀에게 음탕함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는 이야기, 성종은 "굶어 죽는 것은 작은 일이나 정절을 잃는 것은 큰 일"이라고 했다는 과거 이야기에서부터, 의대에서 전공의가 되기 전까지는 임신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 산부인과에서 딸을 낳으면 한국의 간호사들이 "예쁜 공주님이에요. 한 번 더 고생하셔야겠어요"라고 말한다는 최근 이야기까지 정말 여성들의 깊은 좌절과 아픔을 공감할 만한 사례들로 가득하다. 그중 유독 내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어서 마지막으로 소개할까 한다.

 

할머니 세대야 손가락에 꼽을 만한 신여성들이 있기는 했으나 다수의 여성들은 신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20세기 대표적 지성이라는 함석헌 선생님의 아내 황득순 여사도 겨우 글을 읽을 정도인 초등교육만을 받은 채 부모들에 의해 정해진 결혼을 했다고 하는데, 이런 사례는 당시의 '보편'이었다. 평생 "나야 뭐"하며 사셨다는 황득순 여사. 남편이 "생각하는 백성만이 산다"고 "모든 씨알(민초)이 다 깨어나고 비판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외치느라 외부 강연을 숱하게 다니는 동안, 그러느라 고정적인 생활비도 준 적 드문 그 오랜 세월 동안 그저 묵묵히 아이들과 가정을 책임지고 산 그런 '황득순스러운' 여자들의 삶은 우리 할머니 시대에는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수적인 면에서 볼 때 '보편'이었다. (본문 중에서)

 

최근 100년 사이 여성의 지위는 비약적으로 신장되었다. 반대로 말한다면 여성이 사회에서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보장받은 지가 불과 1세기가 채 되지 않는다는 말도 된다. 역사 속에서 노예제가 해방되고 여성의 지위도 나아지는 걸 보면 문명이 진보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겠지만, 사회의 거대 담론 안에서 천명한 여권이 미시적인 개별 여성들에게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도리어 현대 사회, 신자유주의 경쟁 구도 속에서 '먹고사니즘'에 매몰된 여성은 자주 전업주부의 삶을 종용당하는 추세다. 함석헌 선생의 민초에도 포함되지 않은 '아내'라면 더할 나위가 없지 않겠는가.

 

저자는 말미에 엄마들에게 이른바 공동육아로 대변되는 몇 가지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그 이상을 보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 여성 문제에 있어서 한국 사회, 한국 개신교의 현실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가정 내의 미시 담론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현대 거대 담론의 한 축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이 책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2013/09/05 00:55 2013/09/05 0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