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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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은 말합니다. 삶은 전부 이와 같으며, 지식처럼 보이는 것은 실제로 여러분 자신의 세계, 즉 여러분 자신의 전제나 내적 세계의 반영일 뿐이라고. 여러분은 아무 것도 신뢰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입니까? 세상에는 사랑, 지식, (의심이 아닌) 신뢰의 해석학과 같은 것이 있으며 이것들은 21세기에 우리에게 가장 확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믿습니다. 저는 독자들에게 자기 자신의 세계에서 이러한 믿음을 자신의 분야에서 실천하라고 도전합니다.

(N. T. Wright, "The challenge of Jesus" 마지막 장 중에서)

2007/03/16 19:04 2007/03/16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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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Love) 


흔히 사랑을 말할 때, 헌신이니 낮아짐이니..
영원이니 하는 말들을 쏟아낸다.
 
난 사랑이 무엇인지 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겠지만, 눈 수술을 앞두고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내 눈 상태에대해 말씀을 드렸다.
지금 더 이상 글자가 보이지 않으며 간단한 수술이지만 최악의 경우
수술 후에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그 때의 어머니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조금의 지체도 없이..
그렇게 신음소리를 내셨다

"니 눈만 멀쩡할 수 있다면, 내 눈이라도 지금 당장 뽑아줄 것을
왜 너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니..
죄는 내가 더 많이 지었는데.."
 
사실 난 겁내고 있었다.
실명을 할 경우에 머리를 빗을 일이며 식사는 어떻게 제대로 하며..
얼굴에 뭐가 묻었을 때 제대로 알지 못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지는 않을 지..
읽고 싶던 수많은 책들은 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머니는 그냥 본능적으로 자신을 눈을 파서라도 아들을 보게 하고 싶어 하셨다.
난,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난 내 눈을 파서
어머니의 눈을 고쳐드릴 자신이 없는데 말이다.
도저히 내 입에서는 두려워서, 입술이 떨려,
그런 말을 할 자신이 없는데 말이다.

구차함.. 헐벗음.. 자신을 내어줌..
영원히 변하지 않고 헌신적인 그 무엇..

30년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보살핌을 받았다고 하면서
눈알조차 내어드리지 못하는 나에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성경이 말하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난 가슴이 미어진다.

내가 그런 감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그래, 어머니 앞에 난 쓰레기에 가깝다.

2007/03/16 18:48 2007/03/1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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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항상 변화를 시도하라.
잘 정리된 기존의 방법을 너무 오래 고수하지 말자.

2. 자기만의 색깔을 내라.
남들이 결코 따라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한 능력, 기호, 말하기, 혹은 글쓰기 스타일을 겸비하자.

3. 작은 것에서도 항상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라.
타인의 단점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옛말을 기억하자.
또한 책을 많이 읽되, 읽고 깨달은 대로 꼭 실천하자.

4.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상을 흔들자.
세상은 보수적이며 악한 방향을 향할 때가 많음을 기억하여
기저는 유지시키되 기회를 얻을 때마다 방향을 틀어주자.

5. 일은 프로답게 하라.
하나의 일을 처리하더라도 일관성과 끈기, 마무리에 힘쓰라.
자신의 말을 쉽게 번복하거나 계획했던 일들을 쉽게 포기하고
책임 맡은 일을 마무리짓지 못하는 모습을 단 한 순간이라도 보이지 말자.

6. 목적에 맞게 행동하라.
input과 output, need와 seed를 분명히 파악하여
매사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말자.

7. 연합하여 일을 도모하라.
삶의 상당 부분은 일 중심, 과업 중심이 아닌 관계 중심임을 깨닫고
함께 같은 방향으로 삶을 도모하자.

8. 사회 참여적인 관점을 견지하고 실천에 노력하라.
아웃사이더 기질과 비판적 시각에 만족하지 말고,
바닥부터 뛰어든다는 마음으로 작은 일부터 시작하자.

9. 사치품과 명품을 피하라.
'썩어질 밀알' 운운하면서 누릴 것들을 다 누리다가 하나님 앞에 서지 말자.

10. 소중한 사람들에게 시간 쏟는 것을 미루지 말자.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익숙함으로 경홀히 대하기 쉽다.
마음만 먹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있을 때 잘하자.

11.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매순간이 마지막 순간이라 여기고
돌아보면 부끄럽거나 후회스러운 일들을 피하자.
훗날에 사람들이 기억할 모습의 자취를 하루하루 남기자. 

2006/01/24 19:01 2006/01/24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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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명>

삶에서 모자라는 것은,
무릎을 꿇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겸손을 위한 훈련으로 알겠다.

삶에서 넘쳐나는 것은,
잘 나누어주라고, 감사함을 배울 줄 알기위해
때때로 주어지는 선물로 알겠다.

삶에서 고통스러운 것은,
그것을 극복하거나 혹은 인정함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을 돌아보는 거울로 알겠다.

삶에서 행복한 것은,
그것이 비록 잠시 주어진 것일지라도
기쁘게 누리고
그로인해 살아야 할 의미를 되새기는 스승으로 알겠다.

삶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뒤따라올 사람들을 위해 곧은 길을 내겠다.


2004. 8. 10.

- 신입사원 교육 중에 적은 나의 사명
2004/08/10 18:52 2004/08/1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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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Short Notes)
2002. 12. 26. ~ 2003. 1. 6.


공포의 외인구단 1: 마동탁과 오혜성

"공포의 외인구단"은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만화다.

마동탁.
그는 천재적인 감각을 타고 났으며,
치밀한데다가 노력파이기도 하다.
엄지와의 결혼을 위해 100타석 연속 안타라는
'선물'을 내걸고 혼신의 힘을 다해 목표를 달성하고
결혼이라는 목표 또한 얻게 된다.
그러나 이내 얻은 것에 대한 가치를 잃고
또다시 다른 목표에 자신의 정신을 집중한다.

오혜성.
그는 관계 중심적이다.
물론 타고난 운동신경이 있지만,
계획하고 노력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엄지를 만난 순간 사랑하게 되고
그에겐 그녀가 신이며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이
그의 신앙이 된다.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면 뭐든지 한다.'...
그에게 있어 목표는 그녀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한
도구일 뿐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다.

야구.
마동탁에게 야구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에 다다르기 위한 끊임없는
도전의 대상이지만,
오혜성에게 야구는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일들 가운데 하나인 도구적 가치에 불과하다.

사랑.
마동탁에게 사랑은 소유의 대상이며
일단 달성하고 나면 그 소중함은 사라진다.
오혜성에게 사랑은 삶의 본질이며
그것을 제외하고 나면 다른 모든 것은 무가치하다.

엽서.
고등학교 때 즈음.
까맣게 이 만화를 잊고 지내다 팬시점에서
공포의 외인구단 엽서를 봤다.
오혜성이 입술에 장미를 물고 있는
눈은 초점이 흐려진 그림자 처리가 되어있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의
스케치 밑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오혜성, 사랑의 정신병자."

사람들은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면 정신병자 취급을 한다..

postscript) 마동탁의 기질을 가진 나는 이 엽서가 내 뼈 속 깊은 곳에 각인되어

MBTI의 저주로부터 나를 건져내었다.

 

 

 

who am i.

태어날 때부터 각인된 유전자의 조합?
나면서 겪은 경험들의 집합체?
혹은 그것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판단자?
행동하는 대로 규정지을 수 있는 의지적 자아?
왜곡된 하나님의 형상?
몸부림치는 죄인?
일관된 사고의 체계를 가진 비일관적 행동양식의 피조물?
본능을 억압하는 동물?
엄한 윤리적 잣대를 세상에 들이대는 심판관?

postscript) 나라고 생각하는 그대, 대답해보라!

 

 

 

크리스마스 묵상 2

분주한 도시의 일상을 뒤로한 채
이튿날 아침에 그 분을 찾고 싶다.

처음 이 세상에 오시던
그 저녁을 기억하시는지.

건조하고 추웠던 그 밤과
말구유 속의 냄새도.

처음으로 아버지 곁을 떠나
낯선 죄의 땅에 두 발을 내딛던
그 구속사의 시작점을.

무엇보다 난..
알고 싶다.
아니 알고 있지만, 내 입으로 묻고 싶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냐고.
나 같은 사람에게
당신의 임재가 과연 가치있는 일이었냐고.

postscript) 찬양받기에 합당하는 말.. 정확한 표현이다.

 

 

 

내 속엔...

습한 기운이 느껴지면
내 속에 나를 지탱하던 10마리의 구렁이들이
몸을 비틀며 나를 뒤흔들어 놓는다.

10마리의 구렁이들은 제각기
자신의 독특한 생각과 몸짓과 행동으로
내 안에서 자기들을 표현하고
나는 혼란 속에 심한 현기증을 느끼며
통제력과 자제력을 잃곤 한다.

이젠..
그 10마리 중에 적어도 일곱은..
목을 비틀어 숨을 끊어놓고 싶다.

나에게도 생존본능이 있다.
다중인격을 가지고 습한 환경이 찾아올 때마다
몸부림치며 넋이 나간 사람처럼 사는 것보다는
살인이란 죄명을 쓰고 평생을 사는 것이 유익하다.

postscript) 내가 누군가의 목을 비틀 위인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나의 비참이다.

 

 

 

한 해를 마감하며..

내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린 한 해였다.
노력했지만 힘든 일도 많았고,

그 만큼 올 한 해를 두고는
감사할 수 없을거라 생각했다.

한 해가 시작되면서
난 눈과 귀를 막은 채
한 곳만을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그렇게 정해진 길로만 가기를 고집했다.

결국 내 삶의 중요한 순간들이 그랬듯이
내가 고집하던 길은 뒤집혔고
나에겐 불안정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지금 난 한 해를 마감하며
그 불안정하고 힘든 시간들을
감사한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 멋대로 발길질을 하며
이리저리 발 닿는대로 맘 내키는대로
계획하며 달려갔던 내 삶에
날선 검이 내 심장 깊은 곳에 들어왔다.

난 그 검에 의해 고정되었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곧 안정이 찾아 올 것이다. 곧..

postscript) 곧 새 삶이 시작된다..

 

 

 

깊은 한 숨.

깊은 한 숨을 쉬고.
두 번째 깊은 한 숨을 쉬고.
세 번째 깊은 한 숨을 쉬고.
네 번째 깊은 한 숨을 쉬고.
다섯 번째 깊은 한 숨을 쉬고.
여섯 번째 깊은 한 숨을 쉬고.
일곱 번째 깊은 한 숨을 쉬고.
....
....
일천 번째 깊은 한 숨을 쉬고 나면.

구멍난 풍선처럼.
조용히 표면에 가라앉아.
작은 숨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리고 싶다.

 

 

 

christmas eve

 

밤새 술을 마셨다.

그러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All I need is..

<Love>
아이엠샘(I am Sam)이란 영화에서
가장 여운이 남는 장면.
그 중 하나가 딸이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하는 비틀즈의 가사..
"All I need is love."

<Pain>
다른 하나는,
여자 변호사가 발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방 사이에 접은 종이로 쳐놓은 벽.
그 안에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하는 샘..

<All I need is..>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상처받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
혹은 상처를 딛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Desire>
결국 누구에게나 삶의 마지막이 찾아오며
나에게도 동일한 시간이 올 것이다.
그 이후에 우리는 서로 명확하게 보고 듣고
말하고 살아갈 것을 믿지만.
이미 내 안에 심겨진 소중한 것들을
난 힘들더라도 보존하고 키워가야 한다.

<Real Life>
결국 종이로 접은 벽을 허무는 것은
순전한 사랑을 하고 있는 상처받은 "샘"이 아니라
상처를 삭이고 지친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에 익숙하지만 변화를 소망하는
"여변호사"다.

postscript) 세상을 바꿀 순 없다. 단지 내가 세상에 맞춰지기 늦은 것 뿐이다..

 

 

 

Love is...(3)

 

사랑은
삶은 달걀을 먹는 것과 같다.

삼키려고 애쓰면
가슴이 져미면서
목이 매여 눈물이 난다.

postscript) 나는 삶은 달걀이 싫다.

 

 

 

새해 아침

사람들은 반복적인 일출과 일몰을
'날'이라 말하고
그 반복들을 모아다가
적당히 가른 후에
모자라는 날들을
어떤 때는 더하고 어떤 때는 뺀 후에..

한 해를 만든 후.
집안의 정치를 위해 제사장같은 가부장에게
그 권력을 넘겨주어 친히 제사를 지내도록
권하여 한 해의 시작일에 찬란한 제사로 조직원의
단결을 도모한다.

어찌보면 마지막 날이나 새 해 첫 날이나
똑같은 하루인데, 역시 인간은 창조물 속에서
어거지 창조를 이루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좀더 까탈스런 반응을 보이려다
시대의 요구에 영합하는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정한 나는,
어거지 나눔으로 시작된 새해의 첫 날에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살아갈 날들을 짚어보는
묵상의 시간을 가지기로 결정했다.

삶은 살수록 지겹고,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 노동의 힘든 시간 이후에 찾아오는 쉼이
더 행복하게 느껴지듯.
그 노동의 댓가가 눈 앞에 펼쳐질 때 얻게 되는
삶의 가치가 크듯.

영화 속 대사처럼 "삶은 아름답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행복한 순간보다는 자주 찾아오는
고통들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postscript) 왜, 재수 없어요?

 

 

 

살면서 여러가지 공포가 있었지만
"늪"이란 녀석은 참 무서운 구석이 있다.

외부의 힘이 아니면
벗어날 수 없다는 공포에 더하여,
벗어나려고 노력하면
더 빨리 가라 앉는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두려움은 바로
노력과 빠져드는 속도의 반비례 관계에 있다.

그 아름다운 곡선에서 나는 섬뜩함은 느낀다.

 

postscript) 난 '이런 류'가 싫다.

 

 

 

죽음 2

죽음은 소멸이다.
소멸은 또 하나의 커다란 공포다.

소멸의 섬뜩함은
당사자와 상대방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

당사자에겐
더 이상 자신이라 여기는
부단히 사고하는 유일한 존재의 소멸에
대한 공포이며,

상대방에겐
더 이상 어떤 외적인 자극을 주어도
반응하지 않는 당사자의 소멸에
대한 공포이다.

비존재과 무반응.
이 두 가지는 인간의 비참함의 본질이다.


postscript) 죽음이 늪보다 덜 공포스런 이유는 죽음 자체가 비본질이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죽음 자체가 비존재다.

 

 

 

투명한 방에 갇히다!

잘 몰랐었다.
처음엔 그냥 쳐다보고 있었다.
주변은 아주 가까웠고 손에 잡힐 듯 했다.

난 투명한 벽 너머로 많은 것들을
여과없이 볼 수 있었고,
결국 상황 파악이 끝나면 뛰어들겠다 다짐했다.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주변은 아주 가까웠고 손에 잡힐 듯 했다.

벗어나려 몸을 움직인 나는
벽에 이마를 부딪혔다. 이 벽을 허물리라.
주변은 아주 가까웠고 손에 잡힐 듯 했다.

결국 난 알게 되었다.
내가 투명한 방에 갇혀 있었음을.
주변은 아주 가까웠고 손에 잡힐 듯 했다.


postscript) 갇힌 사람이 처음 해야 할 일은 마음의 평정을 찾고

계속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다.

2003/01/06 19:10 2003/01/0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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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Short Notes)
2002. 10. 26. ~ 11. 28.


달리기

어릴 적에 가끔 반복적인 꿈을 꾸곤 했다.

난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진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초등학교 내내 난 달리기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고 살았다.

가끔 그게 심해지면 달리기를 하는 꿈을 꾸곤 했다.
꿈 속에서는 모두 4명의 아이들이 서있는데, 선생님이 깃발을 올리면
일제히 달리기를 시작했다.

난...
깃발이 올라가면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힘껏 발돋움을 하고 달려나가는데
항상 난 다른 3명과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처음 그 꿈을 꾸었을 때는,
너무 당혹스러워서 믿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꿈을 꾸면서는,
'아냐... 내가 맞아, 내가 맞게 달리는 거야...'
하며 달리다가 중도에 포기해 버리곤 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그 꿈을 꾸었을 때는
난 발돋움을 다른 방향으로 했다가
다른 3명이 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나는 방향을 바꾸어 그들을 쫓아서 달렸다.

따라 잡을 순 없었지만,
난 어리석게 자신에게 '내가 맞아...내가 맞아'라며
달리는 대신, 방향을 바꾸어 그들에게 돌아서서
그 애들과 경쟁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그 꿈 이후로 이젠,
달리기 하는 꿈을 꾸지 않는다.


postscript) 두려움, 부끄러움이 스스로의 높은 울타리를 만들곤 한다.

그 안에서 관념적인 자기 확신을 아무리 반복해도 소용없다. 현실은 직시해야만 하는 대상이다.

 

 

 

소원..

빛은 어둠을 밝히지 못하고,
사랑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나니,
내 평생 사는 동안에도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임을 알았으나,


이후로 다시는..
내게 사랑이 없기를 원합니다.

이후로 다시는..
이러한 감정과, 이러한 생각과, 이러한 결단과,
이러한 절망 가운데에서 희망을 보려는 어리석음이
내 안에서 영원히 소멸되길 원합니다.
내 평생에,

영원히...
영원히...


postscript) 원래 사는 게 다 그렇지...

 

 

 

낙엽...혹은, 박제된 죽음의 찬양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무성하던 잎들에 공급하던 양분을 그치고,
그렇게 단절된 줄기 사이로 말라져 간 잎사귀들은,
끝내.. 붉게 혹은 노랗게 찬란한 색으로 빛을 바래며 생을 마감한다.

 

인간은,
생존의 몸부림 속에 사라져가는 생명의 절규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잎들을 가져가서
기나긴 겨울 내내 박제된 죽음을 찬양한다.

 

세상의 또다른 존재가
말라 비틀어진 우리 자신을 가져다가 박제하여
기나긴 시간동안 그 바랜 색과 모양을 감상하며 찬양한다 생각해 본다.
그것은 심한 악취미일 따름이다.


postscript) 요즘 단풍을 보며 드는 생각...

 

 

 

잘난 티, 잘난 척..

잘난 척 하는 것은,
자기가 습득하지 않은 능력을
마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욕구이다.

잘난 티를 내는 것은,
자기의 노력과 수고로 인해 습득된 능력을
필요 이상으로 타인에게 나타내려는 욕구이다.

전자는 기만적이고,
후자는 유아적이다.


postscript) 난 때때로 알면서도 마치 몰랐던 것처럼,

전자와 후자 사이에서 불안한 외줄타기를 할 때가 있다..

 

 

 

More than walk..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이란 책의 후반에
그 분의 그림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나는 걷고 싶다..."

사실 난 당혹스러웠다. 만일 내가 40년의 감옥 생활에 처해 있었다면
...난 걷는 것 이상의 것들을 소망했을 것이다.

난 뛰고 싶다. 난 날고 싶다.
난 자유롭고 싶다. 난... 난...

감옥을 상상하며 수많은 말들이 입가에 머무르지만
난 그 분의 한 마디에 내 모든 상상의 나래를 접는다.

"나는 걷고 싶다..."

자유의 박탈, 그리고 그 속에서 그의 간절한 바램은 마음껏 걷는 것.
그것은 그 분의 현실이자 진정한 그 분의 이상이었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으로 내가 내 마음을 추스리고
힘을 얻는 게 얼마나 속되고 어리석은 행동인지를 알지만
나는 그 분의 한 마디를 떠올리며 내 처지를 반성한다.

아직 나에겐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내가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을 뛰어갈 수 있지 않은가.
나에게 주어진 조건들이 더 노력할 수 있는 여건이지 않은가.

나에겐 걷는 것을 소망하는 것 이상의 축복이 있지 않은가.
그것에 대한 감사로 내 일그러진 삶을 다시 돌아봐야 하지 않은가.

철저한 절망이 내게 임하기 전까지 난 나다움과 나의 생명을
삶 속에서 표현해야 하지 않겠는가.


postscript) 존재 자체가 우주의 흩날리는 먼지가 되어 사라질 때까지..

난 삶 속에서 당신의 형상을 드러내겠습니다.

 

 

 

엿...

시험에 붙으라고
엿을 준다.

정말 엿 같은 세상이다.


postscript) 엿은 잘 녹지 않다가 높은 온도에서 녹아 다른 물질에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떼어 내려고 붙잡고 힘을 쓰면 깨져 버리기도 한다.

지나친 고착화 현상.. 그런 점에서 엿과 세상은 닮았다.

 

 

 

so what?

때론 신앙인들은
자신의 성숙을 목적으로
종교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신앙 생활을 영위하면서
자신의 인격이 다듬어지고
삶 속에서 평안을 회복하고
종국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난 묻는다.
'그래서 어쨌다고?'

인격의 성숙은,
구별되는 본질의 필수 조건이자
그 본질이 다듬어지는 과정이자
본질을 얻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따름이다.

그 본질은 사랑이며,
신앙은 우리가 수도사로 남길 원치 않는다.
고행은 하나의 과정일 따름이다.


postscript) 달라이라마가 열반보다 윤회가 낫다고 말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다시.. 병원으로.

오늘..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병실에서 유리병을 집어 던진 후
3개월 동안 병원을 떠나 있었다.

의사는 내가 전보다 더 나빠졌다고 했다.
피 검사와 주사를 처방해줬다.
처음부터 다시 진찰을 하려는 듯 했다.
답답함이 싫어서 자유로운 생활이 그리워서
병원을 떠나왔는데.. 막연한 회상.

난 굳은 몸으로 의사 앞에 앉아서
처방을 기다리고 있다.

환자복을 받았다.
획일화된 무늬, 하얀바탕에 같은 냄새가 나는 옷.
어떤 규범이 존재하진 않지만
간호사의 말과 그의 눈빛 그리고 제스츄어를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새
환자들은 같은 말투, 같은 걸음, 같은 생각으로 굳어져 버리고 만다.

오늘..
난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postscript) 졸립다.. 눈을 좀 붙여야겠다.

 

 

 

인간이라는 기계..

A: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B: 아니 지난 번에 산 H8088모델 있잖아, 그게 말썽이야..

A:그래? 광고에선 그게 신의 창조물이라고까지 하잖아.
B: 그래 나도 그 광고보고 샀지, "최악의 환경에서도 최고의 성능을 보여줍니다!"

A: 안 그런가 보군!
B: 처음엔 기계답지 않게 표정에 생기가 넘치고, 항상 일을 할 때마다 최적화된 방법들을 고안하는 내부 method들이 성능이 좋아 솔직히 나도 놀랐지. 근데 웬 걸..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기계가 멈춰버리더라고.

A: 예비 동력전달 장치가 있을 거 아냐?
B: 그렇지. 근데 이 녀석의 합리화 알고리즘이란 게 문제인 거 같아. best practice를 발휘하지 못할 때마다
내부적으로 호출하는 method인 거 같은데, 작업할 당시의 자기 주변 환경의 log file을 만들어서 저장하는데, 나중에 열어보면..

A: 흠.. 그러니까 최고 성능을 보이지 못했던 이유를 기록으로 남기는 거군.
B: 맞아. 근데 H모델이 아니라 M1000으로 같은 환경에서 작업을 시켰더니 아주 잘 하더라고. bug인 듯 한데 주 기억장치에서 log file을 생성할 때마다 자기의 best practice를 낮춰서 저장하더라고. 기계는 그 성능이 자기 것이라고 믿는 거지.

A: 하하. 이런... 마치 생명체처럼 외부에서 상처를 받을 때마다 두려움으로 자신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이겠군.
B: 말도 마. 이 기계는 웃기지도 않아.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주변의 환경과 기계 내부적인 정서가 더 중요하다고 내게 연설까지 해.

A: 하하하. 차라리 A/S 받거나 교환을 하지 그래?
B: 그러려고 작정했었지. 그랬더니 이 기계가 자기는 가치있는 존재니 인격적으로 대해 달라고 하더군.
그리고 자기는 나를 사랑으로 대했는데, 내가 자기를 성능과 효용으로 평가했다고 몰아 세우더군. 어찌나 당혹스럽던지..

A: 하긴 말이 되네. 그래선 안되는 일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B: 근데 이 기계가 내 뒷통수를 치더군. 오늘 아침에 history관련 자료들을 백업시키다보니 나 모르게 매매를 위한 웹 사이트에 자신의 가격과 위치, trade 조건들을 올려 놓았더군. 사랑이 어쩌니 해서 잔뜩 미안한 마음 갖게 해놓고는, 참 나원.
하도 기가 차서, 요즘 프로그래밍 공부한 실력으로 이 기계의 사랑이라는 method를 찾아 보았더니, 프로세스가 이렇더군. 필요한 존재가 자기를 거부하려 할 때, temp folder에서 생성되었다가 환경이 바뀌면 간단히 Recycle Bin(garbage can)으로 가게 짜여져 있더군. 하여간 누가 만들었는지 참 정교하게 만들어 놨지 뭐야.
망할 놈의 기계같으니.

A: 그러게 Human 제품보다는 Machine 제품이 낫다니까.

 

postscript) 저주받은 정교함.. 그게 인간이다.

 

 

 

난..

난,
말을 해야 할 때 침묵했고
침묵해야 할 때 말하였다.

난,
다가가야 할 때 머물러 있었고,
머물러 있어야 할 때 다가갔다.

난,
죽었을 때 살아있다고 생각했으며,
살아있을 때 죽었다고 생각했다.

난,
내 삶을 비난하고
내 어리석음을 욕하고
내 부주의함에 침 뱉으며
내 영혼에 깊은 상처를 선물했다.

이제 난,
내 삶을 다시 조율한다.
나로 인해 헝클어지지 않을..


postscript) 시간은 돌릴 수 없다.

받아들이려고 노력할 때마다 무한 루프를 돌다가 다운되는 컴퓨터 같은 나.

 

 

 

요리와 삶

<요리>
어릴 땐 요리하는 걸 좋아했다.

주말엔 어머니와 누나를 앞에 두고
내가 만들 요리의 메뉴를 작성해서
두 사람이 주문하기를 기다리곤 했다.

메뉴는 뭐 이런 식이었다.

1. 매운 떡볶이
2. 간장 떡볶이
3. 치즈 떡볶이

주로 내가 하는 음식은 볶음밥과 떡볶이, 돈까스, 샌드위치, 샐러드..
이런 종류였다.

요리는 간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간을 맞추기 위해 쓰이는 재료에 맞는 양념이 필요한 법이다.

아마추어인 나는 이것 저것 넣는다.
소금도 넣어보고 간장도 넣어보고.
때론 버터와 치즈.. 퓨전이란 이름 아래 적당히 간을 맞추려고
이것 넣었다가 그 맛이 강해지면 다시 다른 것들을 넣고.

결국 나온 음식은 간은 맞으나, 맛을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되고 만다.

<삶>
나름대로는 삶을 잘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간 내가 어떻게 달려왔는지
돌아보면 어지럽기만 한 나의 삶..
때론 이렇게 했다가, 때론 저렇게도 해 봤다가
힘들면 돌아서고 안맞으면 나와 구분짓고
상처받으면 무너지기도 하고, 무너진 삶들을 다시 주워 담고
남은 조각으로 더 강해 보이려고 색칠을 하기도 하고..

되고싶던 내 모습과 변해버린 내 모습.
그 간격을 느끼면 느낄수록 안타까워하며
더 나은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럴 수록 난 현재의 모습도, 되고 싶던 이상적 모습도 아닌
내가 원치 않던 또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정-반-합으로 더 나은 결론이 도출될 것 같던 나는
그렇게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결국엔 열성인자로 둘러싸인 뮤턴트가 되고 만다.


postscript) 함박 웃음 지으며 그들에게 보여줬던 메뉴판.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나온 이름모를 음식. 나의 삶과 닮았다.

 

 

 

울고 싶은 날..

때로 울고 싶은 날이 있다.
날씨가 화창한 것도 그렇다고 비가 오는 날도 아닌,
적당하게 흐린 그런 날에
마음이 우울하면 어디엔가 내 감정의 찌꺼기들을
쏟아내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생기곤 한다.

집에서는 큰 소리로 울지 못하기 때문에
방문을 꼭 닫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한없이 울곤 했다.

울고 싶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집에 들어와 방문을 닫고
베개 속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쏟으려는 순간..

"삼촌, 뭐해?"

(난.. 살면서 이런 때가 가장 당혹스럽다.)

"으응? 음.. 그냥.. 베개랑 놀아."

"이야, 베개랑 놀면 재밌겠다. 선아두!"

"..."


postscript) 나이가 들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가령, 애들 앞에서 냉수 마시기 같은 것..

 

 

 

시월에 눈내리는 마을..

하늘엔 예쁜 풍선들이 즐비하고..
세트장은 마법이 걸린 듯 눈을 흐려놓고
저마다의 사연들을 마음 속에 담은 채..

'10월에 눈이 오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저마다의 얼굴엔 동화 속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그렇게 간절한 기설제(祈雪祭)는 시작되었다.

사랑을 기다린다는 조규찬은 나와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번 기설제의 컨셉은 그랬다. 사랑을 기다리는 조규찬,
사랑을 잃어버린 이소라, 사랑을 하고있는 이문세..)

첫곡은 "권태기에 즈음하여"..
두 번째로 부른 노랜 "아담과 이브는 사과를 깨물었다"..
자기를 배신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노래 중간엔 그런 가사가 나왔다.
"지금부터 너를 개라고 불러주겠어.."

흥이 가시고 말았다. 매해마다 사람들은 동화같은 바램을
가지고 제사를 지냈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괴팍한 그의 곡들에 의아함을 느낀다.
사실, 현실은 냉정한데 말이다. 사람들은 현실보다 솜사탕을 좋아한다.
현실은 아프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자위책이 필요하다.


postscript) 시월에 눈내리는 마을과 한국 교회는 닮은 점이 있다.

2002/12/28 19:08 2002/12/28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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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단상(Short Notes)
2002. 12. 2. ~ 12. 17.


일몰과 황혼..그리고 묵상

일몰(日沒)의 시간이 찾아들고
어느 덧 황혼(黃昏)이 깃들다.

나른한 마음으로 눈부신 색감(色感)을,
차분하게 선 채로 그 온기를 느낀다.

이쯤에서 나의 생이 마감되길
그래서 기나긴 잠을 자고
그 깊은 잠을 통하여
지난 시간들을 망각하고
되찾은 평안으로 새로운 생이 시작되길.

오후의 황혼을 묵상하며
나는 오늘도 간절히 기도한다.

 

postscript) 아침이 되면 난 또다시 '다른' 모습으로 아무일 없었던 듯..

그렇게 전의(戰意)를 불태우다.

 

 

 

storehouse of my heart..

며칠 째 계속되는 정리.
후일에 다시 열었을 때 알아보기 쉽도록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난 이런 이런 사람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어딜 먼저 보겠지.
그럼 이건 여기에 두는게 낫겠지?'
'아니야 이건 이 자리에 있는 게 더 나아..'

한참을 여기저기 자리를 정리해둔다.
걸레질을 마치고 다 닦은 걸레를 들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잠시 그 안을 멍하니 살펴본다.
차창에 비치는 햇살을 맞으며.

'휴.. 이제 다 끝났다.'

자물쇠를 문고리에 채운다.
"철컥!"

이제 내 마음의 기나긴 수면이 시작된다.

 

 

 

heartache

여러 개의 가닥으로 이루어진 실다발을 만든다.
심장에는 블랙 홀과 같은 큰 구멍이 있고

그 주위의 신경에다 이 실다발을 연결한다.
그 중의 몇 다발은 뇌의 신경에도 연결한다.

그리고 나서,
심장 속으로 빨려들고 있는 홀 안쪽에서
그 실다발을 잡아당긴다.

그때 느껴지는 통증.
그 깊은 곳으로부터 전해지는 아픔.

...
그것이 "heartache"이다.


postscript) 가끔 알 수 없는 통증이 오면 설명이 필요하다.

 

 

 

거짓말..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왜 나는..
반복되는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왜 나는..
매 순간 그 분의 십자가를 애써 외면하는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왜 나는..
예수의 하향적인 삶 속에 나를 던지지 못하는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왜 나는..
마땅히 있어야 할 매일의 회개가 없는가.

나는 하나니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왜 나는..
복음을 멸시하는가.

왜 나는..
하나님을 거스르며
매 순간 세상의 법도에 순종하며
매 순간 나의 평안과 안락을 위하며
하늘의 부르심과 땅의 탄원을 외면하며
곧은 모가지를 꼿꼿이 세우면서도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칭함을 즐기는가.

오늘도 내 입에서 울려퍼지는 거짓이여,
매 순간 마음이 아닌 신경에서 반사적으로
아무런 고민없이도 부르짖을 수 있는 말이여.

'아멘..'


postscript) 갈수록 커져가는 경건의 껍데기들.. 역겨운 삶이다.

 

 

 

크리스마스 묵상 1

해가 지면 어두워지는 자연의 섭리를 깨고
자연에서 인공을 축출하여
네온사인으로 거리를 뒤덮고

Santa라는 인물의 빨간 이미지를 상품화하며
온정(溫情)의 탈을 쓰고
도시인들에게 맘몬적 능력을 과시한다.

크리스마스의 "크리스"라는 발음 뒤편으로
크라이스트(그리스도)는 주격을 상실하고
사람들은 그런 방법으로 외로움을 잊으려는 듯
거리는 온통 축제 분위기다.

광기..

죄인들의 광기가 춤추는 그 날에,
번제로 드리기 위해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는가.

그 의미를 알고도 모든 것을 잊고
12월의 맘몬신에게 춤추는 사람들 때문에
버릴 수 없는 것을 버려야 했던 고통을 묵상해 보았는가.


postscript) 이해할 수 없는.. 용납할 수 없는 사랑과 구원..

 

 

 

얼음땡 1

어릴 때 남자애들 끼리는 야구, 축구를 했다.
여자애들이랑 가끔 놀게 되면 했던 게임이 "얼음땡"이다.

술래가 있고 나머지 애들은 술래에게 잡히면 안된다.
잡히기 일보직전에 "얼음!"이라고 말하면 움직이면 안된다.
이때는 술래가 잡아도 죽지 않으나 다른 친구가 와서 "땡!"이라고
말하며 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다. 이것이 얼음땡..


요즘 갑자기 얼음땡 생각이 났다.

내 감정을 추스리기 힘들 때
혹은 굳게 닫아놓은 마음의 문에 틈이 생길 때
애써 높게 쳐올리던 울타리가
한 순간에 허물어짐을 느낄 때

술래가 기어이 내 앞에 왔을 때의 조바심.
당혹스러움, 견디기 힘든 느낌이 오버랩 되면서
내 머리 속에 절실히 떠오르는 단어는 "얼음!"이었다.

내가 원치 않는 것들이
일순간에 모조리
차갑고 단단하게 굳어버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차갑게 굳어버리기에는
여전히 내 심장 속에서 펌프질 하며 솟는
감정의 열기는 강하기만 하다.

얼음..
얼음..
제발 얼음..
이젠 제발 얼음..

 

postscript) 눈물을 흘려도 뺨의 느낌은 뜨겁다. 빌어먹을..

 

 

 

얼음땡 2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한 아이가 있었다.
그 날은 어쩌다 보니 함께 얼음땡을 하게 되었다.

술래는 뛰고 아이들은 도망을 다녔다.
술래가 그 아이를 쫓게 되자 그 아이는 도망치다가
이윽고 "얼음!"이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도 그 아이에게 다가가서
"땡!"을 해주지 않았다.

어처구니 없는 얼음땡의 룰에 의해
그 아이는 우스운 포즈로 굳어진 상태에 있어야 했다.

이후로 그 아이는 얼음땡을 하지 않았다.

 

postscript) 거부 당하기 전에 거부하는 것.

상처받기 전에 상처 주는 것. 그건 약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유일한 선택이다.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다. 자기 보호본능은 사람의 유전자 깊은 곳에 각인되어

있어서 쉽사리 변화하지 않는다. 나도, 그리고 당신도..

 

 

 

팀 버튼의 "가위손" 1

창백한 얼굴에
날카로운 가위가 손가락인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 주다가
그녀의 몸에 상처를 낸다.
긴장하면 원치 않게 손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야만
그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비극적인 운명을
그는 묵묵히 받아들인다.

눈이 내리지 않는 마을에서
얼음을 가위질하여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영화의 화면은 온통 차갑고 어둡고 날카롭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간절함을 불러 일으키는

슬픈 사랑 이야기...

 

postscript) 소중한 사람에게 다가서려 할 때마다, 날카롭게 갈린 손으로 찔러 상처를 줄 뿐이다.

 

 

 

계몽주의의 몰락

이성과 합리성. 계몽주의.
그 순진하기 짝이 없는 토대는 인간의 사악함이
교화시킨다고 해서 제거되지 않는다는 쓰디쓴 교훈을
가져다 주었다.

나의 선택은 나의 무지에 기인한 것이라고.
원래 나는 이기적인 게 아니라 어리석은 거라고.
벌거벗겨 놓으면 조소의 대상이 될
나의 내면을 나는 "멍청이 얼굴"의 가면과 옷으로
해결하려 했었다.

나의 삶의 여정. 나의 선택.
사실 몰랐던 게 아니다. 다 알고 있었다.
그건 나의 합리적 선택이자 내 본질적인 욕망의 이기(利己)였다.

무지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정교한 스토리. 프로세스. 히스토리...
받아 들여야 한다. 나의 내면의 더러움들을.


postscript) 누군가 그랬다. 10원에서 1원을 빼면 그게 구원이라고.

나도 구원이 필요하다. 이제 은행에서는 9원을 줄 수 없다.

 

 

 

팀 버튼의 "가위손" 2

신은...
완벽한 형태의 인간을 완성한 후에야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인간은...
이리저리 금속으로 끼워넣은
불완전한 형태의 생명체에
생기부터 불어넣고 작동이 되는지를
테스트하면서 자신의 형상을 완성시켜간다.

신의 창조물은 너무 완벽한
자신을 창조자와 동일시하며
세상을 자신의 이기심에 맞추려 애쓰지만

가위손은 중간단계의 창조물이라
창조자에게 부여받은 생명력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에 심한 제한을 받는다.

생명체는,
조금만 부족해도 비참해지고,
너무 완벽하면 변질된다.

 

postscript) 난, 팀 버튼이 좋다!

 

 

 

from E.

여기 숨어 있었군.
오래 버틴 것 같은데.
그래도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더군.

넌,
요즘 딴 사람 행세를 하고 있더군.
마치 수도사처럼..

근처에서 최근 몇 년간의
네 얘길 전해들었지.
너의 온유함과 고고함에 관하여.
힘들지 않았니.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오랫동안 다른 사람 행세를 하기가.
꽤 근질근질 했을텐데..

다시 뒤집어 주지.
예전의 너처럼
말하고 춤추고 행동하도록..

sincerely,
from Extrovert.

 

postscript) 난, MBTI가 싫다.

 

 

 

"죄송합니다.."

주일에는 보령에 다녀왔다. 교회개혁연대에서 담임직 목회세습
반대 침묵시위가 있다고 토요일 저녁에 연락이 왔다.

교회 문제로 시위에 나서게 되면 그 날은 하루종일 우울했다.
답은 간단치 않기 때문에. 답을 알아도 상처만 남는다.

광림교회에서 느꼈던 느낌은 없었다. 교역자의 세련된 액션도
없었고, 카메라를 피해 구타를 하고는 빠지는 깔끔한 전략도
없었다. 깍둑머리를 한 사내들이 뒤에서 부산히 눈동자를 굴리며
목사의 지시를 받던 그 현기증 나던 시위 때와는 달리, 이 곳은
300명 규모의 중소 교회로 14년간의 임기를 마친 목사가 은퇴와
함께 자신의 아들을 담임 목사로 임명하게 됐고, 반발한 몇몇
장로들과 성도들을 교회 밖으로 내친 것이었다.

목사를 교회의 머리로 생각하던 순진한 성도들의 신앙은 광신
으로 돌변했고, 세습반대를 주장하던 성도들은 교회에서 쫓겨나
은퇴예배를 드리지 못한 채 밖에 서서 세습반대 시위를 했다.
박득훈 목사님의 인도로 함께 교회를 위해 기도를 했고, 하나님이
바른 길을 인도하시도록 중보했다. 상처받은 성도들이 교회와
목사를 원망치 않도록 위로의 기도도 했다. 그리고 목사나 다른
교인 개개인을 미워하지 않도록 중보했다.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고, 홍보물을 나눠주다가 구석으로 끌려가
교회 사람들에게 멱살을 잡혔다. 그분들 하시는 말씀이,

"너 얼마받고 이 일을 하는 거야? 도대체 얼마를 받았어?"

"..."

교회에서 내침을 당한 교인들은 눈물로 기도했다. 난 그들만큼
절실하지 않다. 직장으로 진정서가 날아오는 것도 아니고, 집으로
협박전화가 걸려오지도 않는다. 길거리를 걸을 때 안전을 걱정할
일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 기도는 간절하지 않았다.


시위를 마치고 쫓겨난 교인들과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시위 내내
눈을 붉히시던 여자 집사님 한 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른 분
들은 모두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분은 달랐다. 울먹이시면서도 작지만 분명한 소리가 날
전율케 했다.

"죄송합니다.."


'이 분이 진짜다.' 순간 든 생각이었다. 이 분이 정말 이 교회의
몸된 성도라는 생각. 사랑없는 나머지는 울리는 꽹가리에 불과했다.
나 또한 교회 속의 꽹가리였다.

그렇다. 내 마음이 혼란스럽고 힘이 든 것은, 추운 날씨에 4시간
동안 피켓 시위를 했던 몸 때문도, 몸싸움으로 잡혔던 멱살 때문도
아니었다. 나를 증오의 눈으로 쳐다봤던 사람들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가족이기 때문이다. 보령의 한 구석에서 일어나는 이 고통도 결국은
교회라는 내 가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생각과 행동

생각없는 행동은
무능력하고

행동없는 생각은
무기력하다.

 

postscript) 많이 듣던 얘기, 압축해봤다..

2002/12/17 19:09 2002/12/1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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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단상(Short Notes)

2002. 9. 30. ~ 10. 23.


Minority Mania

초등학교 때 다수결에 대해 처음 듣고는 참 좋은 방법이란 생각을 했었다.
나이가 들어 사춘기가 지나고는 아웃사이더가 참 멋있어 보였다.
대학을 다니던 무렵에는 소수(minority)의 항변에 불편한 마음이 조금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Minority Report>를 보았다. 3명의 예지자 중에 1명이
다른 미래를 보면 자동적으로 그 이미지는 삭제된다.

<Minority Support>..소수자의 항변을 돕기 위한 장치라고...그것이 내가
메울 자리라고 생각했다.

<Minority Mania>..
Mania는 골수 팬이어야 한다. 무슨 운동이든 대중화, 민중의 참여가 중요하다
는 생각이 변치 않음에도 난 Minority Mania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결국, 골수 팬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에 빠져들고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들여야 한다. 그러한 물리적, 정신적 노력이 특정한 분야의 깊이를 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Minority Mania는 결코 Majority로 묽어질 수 없다.
이미 백그라운드에 깔린 깊게 축적된 공감대를 주춧돌로 삼아 계속 올라가는 첨탑과
같기 때문이다.

난...
Minority Mania로 Minority Support를 하며 Minority의 Major화를 위해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아웃사이더를 인사이드로 끌어들이며 다수결을 참고하련다....
 


postscript) 난...조규찬이 좋다.



죽음

추석 연휴 이후에 내 주변에서 3명의 사람이 죽었다.
다 아버지뻘 되는 분들이었다.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힘든 세상 이제 떠난다고 평안히 잠드소서...라고 해야 하는가.

아님 물리적으로 기독교라는 안경을 쓰고서,
먼저 그 사람이 불신자이냐 신자이냐를 물어보고...
불신자이면 안타까워하고
신자이면 하늘로 올라간 것을 기뻐해야 하는가.

죽음은,
일그러진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렇기에 죽음은 "단절"이다.
이제껏 주변에 맺어져 있던 모든 관계와의 단절.
남은 자는 그리움에 사무칠 뿐이다.

 


postscript) 아픔은 아픔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을 속일 필요 없다.

 


나다움...그 독특함에 관해.

가을...
어느 정도 서늘한 날씨에 청명한 하늘...
그리고 적절한 습도가 내 주위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는 요즘..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런 기분이 날 들뜨게 만든다.
한 여름의 더위 속에 흐릿흐릿하던,
세상 속에 파묻힐 것 같은 현기증에서 벗어나...

이제는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가
내 머리 결을 스쳐가는 서늘한 바람 만큼이나 뚜렷함을 경험한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다움...나의 독특함...
나만이 구사할 수 있는 표현들과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들,
나만이 생각할 수 있는 그 독특한 사유방식들이 나를 설레게 만든다.

그리고 그 독특함으로 세상에 발길을 옮겨본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손가락의 지문 모양을 그 분의 예술적 감각으로 스케치해 가셨던 것처럼,
이제 그 지문의 하나하나를 소유한
나를 포함한 그 독특한 인격적 창조물들은

적절한 때가 오면,
태고부터 계획된 그 고유한 향기를 발산한다..


postscript) 이젠 더 이상 몸값을 올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너무 오래 입고 다녔다.

 



비욘드 퍼디션(beyond perdition)

그렇지...
모두들 퍼디션에 모여 있었다.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모두 이곳 너머로 보내놓고...
이젠 모두들 음악에 몸을 기댄 채, 안식의 술잔을 들이키고 있다.
난 카페에 들어설 때부터 심장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번 한 번만...'

나는 피리부는 소년처럼...
함박 웃음 지으며 그들에게 춤을 권한다.

가끔은 내 심장의 박동과 발의 스탭이 엇갈려
정신이 어지럽기도 하지만 난 그들과 미친 듯이 춤을 춘다.

사람들은...
흥겨운 음악과 춤에 정신을 빼앗기며 즐거워한다.


나는 피리부는 소년처럼...
사람들과 함께...


나는 피리부는 소년처럼...
사람들과 함께...
 

제발...나는 피리부는 소년처럼...
춤추는 사람들과 함께, 비욘드 퍼디션!


postscript)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야 한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다. 괜히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 것.


 


깨진 유리병..


아무리 아름다운 유리병도.
아무리 방 한 가운데에 두고 닦고 또 닦고.
그 안에 하루하루 담아둔 물건들이 가치가 있다 해도.

깨진 유리병은
그냥 유리 조각일 뿐이다.

다시 주워 담아도.
조각들을 아무리 조심스레 가져다 붙여도.

붙여진 유리조각들을 두고 유리병이라고 하지 않는다.
깨진 유리병은 그냥 유리 조각들일 뿐이다...


postscript) 헤어지면서 그 사람에게 했던 말...


 


바다

처음 바다에 갔었다. 가족과 함께.

바다에 대한 내 첫 느낌은 두려움과 설레임이었다.

두려운 건,
바다 바람과
가끔 내 키를 한참 넘어 보이는 파도였고,

설레임은,
바다의 한없이 푸르른 색감,
모래의 까칠까칠함,
그리고, 물 속에서 뛰놀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 때문이었다.

처음 바다에 들어갔을 때의 차가움.
파란색이었는데 손으로 담으면 투명해지는..
소금맛이 나는 물..

지금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키의 내가
마음껏 흥분에 도취되어 있을 때,
아버지보다 더 큰 키의 파도가 내 앞을 덮는 것을 알았다.

어느 순간엔가 난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신세가 되었다.
파도가 날 덮었다가 고스란히 뱉어낸 것이었다.

난 물침대 위에 누운 사람처럼..
바다로 떠내려 가고 있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난 말할 수 없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게.. 한참을 지나서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보이지 않게 되었고,

난 그제서야 소리쳤다..

'엄마...'

'아빠...'

난 소리쳤지만 들리지 않았다. 난 간절했지만 소리가 나질 않았다.

다시 돌아가려면 난 바다 속으로 빠져야 하는데,
내 발이 땅에 닿을 수 있을지, 혹시 영원히 발이 닿지 않아
바다 깊숙히 빠져들어 죽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난 소리칠 수도 없지만
몸을 움직여 균형을 잃고서 바다 깊숙한 곳으로 빠져들어가
영원히 숨쉴 수 없게 되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난 두려웠다.
벗어날 수 없다....


그 때 누군가가 떠있던 날 물 속으로 빠뜨렸다.
순간 난 놀랐지만, 견고하고 강한 팔이 날 붙잡고는 천천히
끌어올려 주었다. 난 지금도 그 감각을 잊을 수 없다.

그건 아버지의 팔이었다..


postscript) 바다는 세상, 나는 당신, 아버지는 나...



death of modernist..

<이성과 합리성..>

이제껏 나의 삶은,
설명되어질 수 있고, 통계적인 수치가 말해주는 것에
기반을 두어왔다.


<느낌과 감정..>

난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쓴 사람처럼
나에겐 모든 게 항상 희미하게만 보였고,
내가 본 그 형상을 새로 정의하고 규격화 하면서
그렇게 정리된 합리적인 감정의 틀에
갇힌 나는 또다시 가뭄에 갈라진 땅처럼.
갈증과 현기증을 느끼고 있었다.


<Neo in the "Matrix"..>

neo는 매트릭스 안에서 뭔가 희미한 감정을 발견한다.
곧 그는 매트릭스를 벗어나고 그는 매트릭스를 이해하게 되며..
결국에 그는 그것을 "느끼게" 된다.


<"line of despare"..>

쉐퍼는 키에르케고르가 합리성에서 비약했다고 비판했다.
그것이 <이성에서의 도피>에서 말한 "절망의 선".
합리성의 한계라고 말하는 게 옳았다.


<이성과 감정..>

이제껏 나는 "느낀다"는 표현을 써 본 일이 없다.
그렇게 분명하게 내 영혼에 메시지를 던졌던 일이 내겐 없었기 때문에.
난 항상 exact solution을 가진 게 아니라,
repeated fitting과 통계적 근사치만을 가진 모더니스트였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분명하게 "느낀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에게 둘러싼 모든 것들이 너무도 분명하게 다가온다.


<death of modernist..>

이제 더 이상 내 삶은
내가 인지하고 생각하고, 이해하여 구축한 시뮬레이션이 아니다.
난 여기가 어디인지 알 것 같다.
이젠 real life..

 

postscript)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바다2: Allegory

낚시를 갔다가 바다에 빠졌다.
방파제 위에서 미끄러졌는데 생각보다 바다가 깊었다.
난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이젠 몸무게가 제법 나가는 나이였다.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적어도 바닥은 내 키의 5배는 되는 것 같았다.
물 속으로 비치는 수많은 방파제 블럭들이 날 질리게 만들었다.

눈 앞이 아득해졌다...

순간..
난 내가 어린 나이지만,
나에겐 살아야하는 이유들이 너무나 명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기도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잠시였지만, 하나님은 내 가진 것을 쓰시리라 생각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어 심호흡을 크게 하고,
한 번 물 밑으로 내려갔다가
온 힘을 다해 바다물을 박차고 솟구쳤다.

떠오르는 몸을 방파제 벽에 붙이고
손을 쉴 새없이 움직이며
위로...위로 기어 올랐다.


Home, Sweet Home...

사랑하는 가족에게로 난 달려갔다..
 


postscript) 그래, 이제 마지막 날개 짓인 걸..

 

 


Rainbow-the sign of the covenant

무지개..

그것은 하나님께서 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멸하시거나 벌하시지 않겠다는 언약의 표징이다!

 

자신이 없을 때마다 무지개를 보며

난..

동일한 상처로

고통 받지 않을 수 있음을 확증한다..


 

 


병아리

노란 병아리,

조그마한 발로,

조심 조심 뛰어가다,

담 벼락의 끝에 다다르자 소리치다.

飛躍(비약)..

飛躍(비약)..


postscript) 병아리는 다 자란 후에도 날 수 없다. 그게 병아리의 운명이다..

2002/10/30 19:06 2002/10/30 19:06
Posted
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한 주동안 너무 피곤하였습니다. 특히 이번 주는 하루에 4시간도 채 못자는 날들이 많았던 지라 주말이 다가오자 부족했던 잠을 잘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했습니다.

"용주야, 너 토요일에 뭐하냐?"
"글쎄, 뭐 특별한 일은 없는데...좀 피곤하긴 해. 근데 왜?"
"아니, 별 일 없으면 토요일에 애들이랑 농구나 하고 밥이나 같이 먹게."
"그러지 뭐. 요즘 같이 놀아본 지도 오래되었는데..."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워낙에 좋은 녀석들이라 쉬고 싶은 마음은 접어둔 채 그렇게 말해 버렸습니다. 사실 녀석들에게 매번 도움도 많이 받고 항상 서로를 걱정해 주는 이 친구들을 만난 것이 그 동안에도 너무 감사했거든요.(^^)
키에 걸맞지 않게 농구에 약한 나이지만, 그래도 잘 해야 좋아하는 건 아니란 생각에.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생각으로 조금은 피곤하게 또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토요일 아침을 맞았습니다.

일어나 보니, 시간은 30여분 늦어졌고, 도착 시간도 그 정도로 늦어질 것 같았습니다.
허둥지둥 옷을 챙겨입고 버스를 타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용주야, 어디냐?"
"이제 출발했는데 한 30분 정도 늦을 거 같아."
"그래? 그럼 오면 한마당 쪽으로 와~"
"알았어."

그럭저럭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도착할 즈음에 문자 메세지가 왔습니다.
'나  집에 간다"...허둥지둥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 이제 학교에 가는 길인데, 너 왜 집에 가니?"
"야이 자식아! 지금이 몇 신데 이제 오는 거야?"
"내가 한 30분 늦는다고 했잖아?"
"언제? 10분정도 늦을 거라더니...하여튼 나 집에 다 왔어. 학교에 애들 아직 있으니까 거기나 가봐."
"야, 그러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미안한 줄 알면 다음에나 잘해!"

갑자기 크게 잘못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은 학교를 올라가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지친 상태로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당에 가니 친구들 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호가 너 기다리다가 먼저 갔어."
"이제오면 어떻게 해!"
"미안해..."

그렇게 고개를 숙이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붙잡았습니다.

"하하하. 내가 집에 간 줄 알았지?"
"휴, 야 너 뭐야. 내가 얼마나 미안한 마음이었는지 알아? ...니들 짰구나?"
"너 오늘이 만우절인거 모르냐?"

우린 다 같이 웃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늦긴 늦은 관계로 운동은 못하고 바로 점심을 먹으러 음식점으로 들어갔습니다.
자리에 앉으려는데 갑자기 한 녀석이 케잌을 꺼내들었지요. 다들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습니다.

"생일 축하한다. 용주야!"

하하. 고마운 녀석들...가슴 한 구석이 뜨겁게 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친구들이 생일 선물까지 준비했다고 합니다. 눈을 감고 셋을 세면 눈을 떠도 좋다고 해서 셋에 눈을 떴습니다.

"하나, 둘, 셋!"
"윽, 이게 뭐냐?"
"하하하! 뭐 좋은 거 줄 줄로 알았냐?"

  순진한 나는 피할 생각도 못한 채로 케잌 세례를 받았습니다. 많이 준비한 친구들의 흔적이 역력한 자리였습니다.

"이래놓고 밥은 나더러 사라는 얘기지?"
"무슨 소리야? 생일 날 밥 한끼로 그냥 넘어가려는 거야?"
"그럼, 밥까지 니네들이 낼래?"

그렇게 농담을 섞어가며 축하도 받고 케잌도 먹고 서로의 사는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서 집에 가려는데 또 다시 이 녀석들이 나를 잡았습니다. 용산에 가자는 것입니다.
일전에 컴퓨터의 ram 용량이 적어서 투덜댄 적이 있었는데 글쎄 이 녀석들이 그걸 용케 기억하고 있다가 오늘 용산에 같이 가기로 한 모양입니다. 다짜고짜 나를 끌고 용산에 가서 지네들이 가게마다 들어가서 가격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냥 사자고 하는데도 마치 자기 일인 듯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더 싼 곳을 없나 알아보더니, 가장 적절한 가격에 64메가짜리 램을 제 손에 쥐어 주고야 말았습니다.

"자아식! 빨리 가서 보드에 꽂아보고 싶지? 빨리 가봐! 성공하면 우리 집에 전화해."

함박 웃음 지으며 집에 돌아와서 ram을 꽂고 컴퓨터를 돌려보니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야, 잘 된다."
"용주는 좋겠네! 아무튼 축하한다. 생일도 그렇고 컴도 그렇고."
"오늘 너무 고마웠어. 그럼 월요일에 보자."
"그래, 좋은 주말 보내~"

요즘은 마음이 좀 우울했었습니다. 일도 많았고 삶도 즐겁지 않아 보인 적도 많았습니다. 특히, 새로 시작된 나의 삶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집에서 컴퓨터를 보며,  얼굴에서 나는 크림 냄새를 맡으며, 감쪽같이 속이긴 했지만 리얼했던 친구의 화난 표정을 떠올리며...
친구들이 나를 향해 외쳐주었던 고마운 말 "생일 축하한다!"을 되내이며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광고 속의 대사 같지만 정말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2000/04/02 18:21 2000/04/0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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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나에 대해: 내가 사랑하는 것들


** 이 글은 조동식(한양95)의 카페에 올렸던 글을 가져온 것입니다.

나에 대해 적어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나에 대해 얘기하라면 멈칫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무엇을 얘기해야 하는 건지를 모르겠다고 하기보다는 적어도 자신에 대해 소개하려면, '나'라는 사람을 이제까지 가꿔준 많은 일들을 모두 소개하고 그런 일들로 인해 내가 느꼈던 감정들, 깨달았던 사색들, 그로 인해 지금껏 의지적으로 노력해온 부분들을 모조리 털어놓아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인해서인지...

마치 고향집에 놀러 온 손자들에게 감자를 굽는 화로 앞에서 주저리주저리 얘기 해대는 여염집 할머니의 모습처럼 보일 것 같은 느낌 때문에... 혹은 어쩌면 그런 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리라는 생각, 상대방에겐 흥미롭지 않은 그저 그런 남의 얘기 취급당할 거란 생각 때문에 글로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파편적인(?) 기호(嗜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련의 일들, 사람들, 가치들을 하나로 묶지 못하겠다. 그것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틀을 발견한다면 좀더 쉽게 내 얘길 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고, 그렇다고 일전에 썼던 깨달음으로 대치하기엔 동식이란 친구의 '부탁 무게'가 내겐 너무 크게 느껴진다. 무언가 새로운 글을 써야할 것 같다는 말이다. 해서, 간단하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나열하고 이유를 짧게 달면 나에 대해 보다 '공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아래와 같다.

하나님: 내 삶의 근원. 부르짖으면 응답하는 분. 나를 사랑하시는 분

음악: 난,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특히 "조규찬의 음악": 다양성, 목소리의 깔끔함, 음악의 세련됨 때문

그림: 어릴 때 잘 그려서 상도 많이 받았다.

사람들: 하나님이 만드신 걸작품. 가장 소중히 대해야 하는 삶의 대상

설거지: 기름기를 닦아낸 그릇을 물로 씻을 때의 느낌이 좋다

비: 마음이 차분해지고,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거든

비를 가르며 지나가는 자동차 타이어 소리: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공감했지

영화: 감독의 눈에 투영된 현실의 재구성. 현실과 한 사람의 가치관을 동시에 볼 수 있어서

어머니: 날 위해 자신의 평생을 버린 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나는, 나에게 있어 사랑의 최고 본이 되는 분

태권도: 초등학교 때 좋아하던 운동. 몸이 개발되는 것이 신기했음

춘천가는 기차: 끊임없이 펼쳐지는 자연의 정경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동이 있었음

사랑했던 자매: 사랑했는데 사랑 안한다고 했었거든. 하하

영어: 꾸준히 하지 않으면 늘지 않는 학문.

강준만 교수, 인물과 사상: 한국 사회의 몇 안되는 희망(?)

기독교 세계관: 살아온 자리를 돌아보며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살아갈 앞을 바르게 안내하는 내 가치관

짜장면 곱빼기: 어릴 때는 그 참맛을 알지 못했노라~

글쓰기: 머리에 있는 생각들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노래 부르기: 노래 부르면 행복하걸랑

노가다: 땀을 흠뻑 흘린 뒤의 맑은 정신. 그 뒤에 벌어지는 술자리의 시끌벅적함.

책과 CD: 책은 500여권, CD는 300장 정도.

조카: 올 7월에 세상에 나오면 무지 이뻐해 줄 것임

시골길: 길 양편에 펼쳐진 논밭들. 허수아비와 참새, 메뚜기. 싫지 않은 두엄 냄새.

그 시골길에서 맞는 가을 아침: 높은 하늘과 따스한 햇볕, 시원한 바람

일몰: "마지막"이란 저런 느낌일거라 생각하게 만드는 풍경

현란한 도시의 네온사인: 내 마음에 따라 아름답게도 보이고 슬프게도 보이는 문명의 이기? 이기!

나: 이제 조금 익숙해지는... 서로 안지 어언 25년 된 친구
2000/03/16 18:44 2000/03/16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