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하와 놀이터에서 있다가 맞은 일몰. 아이들은 하나둘 제 부모들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서운함을 못내 얼굴에 드러낸다. 나도 그랬지... 초등학교 시절 하교길에 책가방을 집에다가 던져놓고는 해가 질 무렵까지 정신없이 뛰어놀곤 했다. 그 땐 뭐 대단한 장난감도 없었는데, 친구들 서너명만 모여도 놀이터는 천국이 따로 없었다. 무언가에 몰두하다가 맞는 어둠...
아이들의 엄마들이 밥먹으러 들어오라고 부르는 소리, 아쉬움에 손을 흔들며 방금전까지 정신없이 만들던 모래성, 접던 딱지들이 순간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들이 되는 경험. 왠지 모를 울컥함으로 어깨를 늘어뜨리고 집으로 들어가지만 이내 모든 걸 잊고 식사가 끝나면 누나와 아이스크림 쟁탈전에 빠지던 기억들.
2.
중고...등학교 시절 원종수 권사님이라는 분의 간증테입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입소문이 교회마다 퍼져서 어머니도 어딘가에서 복제 테입을 구해오셨다.. 간증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머리카락이 쭈삣하게 설 정도로. 예수를 믿으면 내가 마치 육백만 달러의 사나이나, 앤드류같은 남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소유하게 될 것 같은 느낌. 한번 본 교과서는 마치 사진을 찍은 것처럼, 어떤 페이지는 그림 속 인물들 숫자까지도 기억이 나더라던 원권사님의 고백은, 지금으로 따지면 마치 아이언맨의 수트를 손에 넣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의 간증 마지막 부분에 천국에 대한 소망을 언급하면서 해질녘 아이들의 딱지치기를 예로 들었다. 딱지를 많이 딴 아이나 적게 딴 아이나 해가 질 무렵에는 모두 부모에 손에 이끌려 집에 가기 마련이고, 그러고 나면 그렇게 열심히 모은 딱지도 그냥 종이조각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그의 진지한 음성. 우리의 인생이 그런 것 아니겠냐며, 이 세상의 부귀영화가 다 그런 아이들의 딱지치기에 다름아니라는.
3.
시간이 흐를수록 원 권사님의 간증은 내게 있어 판도라의 상자처럼 한번 생각의 꼬리가 똬리를 틀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순의 사유들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인생이 딱지치기라면 왜 우리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훌륭한 사람은 서울대에 들어가고 권력자들이 사위삼으려고 노력하게 만들 정도로 뛰어나야 하나. 그걸 마다하는 즐거움을 위해 우리는 앤드류나 수퍼맨을 꿈꾸어야 하는가.
무엇보다 나는 내 유년기의 가장 즐거웠던 순간인 해질녘까지의 놀이를 한순간 무의미, 무가치한 행위로 만들어버린 그의 비유가 싫었다. 신앙이 일원론이냐 이원론이냐를 논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시절의 모든 기억들, 친구들, 하다못해 해질녘에 느꼈던 울컥하고 멜랑꼴리했던 내 정서마저도 내게 있어 유의미한 어떤 본질의 뭉태기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을 무가치로 여기고 천국으로 떠나야 한다.
4.
아마도 그때 막연하게나마 신앙은 내게 어떤 류의 즐거움이나 소중한 정서들을 빼앗아가는 어떤 '타부'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생각이 자리잡았던 것 같다. 내가 어떤 기쁨을 느낄 때마다 비슷한 수준의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었던 부정적 종교성의 시작이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오늘 성하와 마주한 놀이터에서의 일몰을 보며 문득 그 죄책감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분투했던 신앙적인 갈등들을 되내어 보았다.
'아빠, 우리 이제 집에 가야돼?'
'더 놀고 싶어?'
'응, 5분만...'
'그래, 오늘은 10분 더 놀다 들어가자.'
'이히히...'
성하를 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에게는 놀이터의 즐거움에 어떤 어두움을 안겨주지 않으리라. 그런 생각 하면서 앉아 있었다. 오늘은, 굿이브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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