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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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내가 실내놀이터에서 모여있는 엄마들 대화 중에 남편에 대한 호칭 문제를 지적받았다는 얘길 했다. 흥미로운 건 그 얘길 처음부터 한 게 아니라 한참을 사귄 지금에서야 꺼냈다는 것. 우리나라 사람들은 친해지면 무례하게 개입해도 된다는 생각을 암묵적으로 하는 것 같다. 이런 오지라퍼들...

 

신혼초부터 아내는 나를 두고 자주 '용팔이'라고 불렀다. 뭐 '오빠'라고도 부르고 '여보야'라고도 부르지만 나도 '배뱅'이라고도 부르고 '여보야'라고도 부르니 쌤쌤인 셈.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내가 남편의 별명을 불러댈 때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대체로... 여자가 여전히 철없다 여긴다.

 

남편은 가장이니 집에서 둘이 어떻게 부르건 간에 대외적으로는 남편을 어른 대접, 집안의 대장 대접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대체로 실내놀이터에서 엄마들을 지켜본 바로는 다들 모여서 남편욕을 해대다가는 남편이 나타나면 예의를 갖추는 행동, 미친듯이 씹어대다가 저녁시간이 되면 따신 밥을 지어주려고 허둥지둥 귀가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내가 회사에서 상사를 대하는 태도와 아주 유사하다.

 

전형적인 가부장제 사회의 일원 역할을 여성이 자처하고 있는 셈이다. 마음이 그렇지 않아도 그 룰을 확실히 따르면서 주위에도 그 룰을 어기는 여성에게 지적질을 해대는 경지에 이른 셈이기도 하다. 불필요한 페르조나가 얼굴에 완전히 들러붙은 경우랄까. 실내놀이터에 죽돌이처럼 앉아 있다 보면 집에서도 거대한 가부장제 기업의 말단 사원 노릇을 하고 있는 착한 며느리 직원들이 많다.

 

살아보니 아내의 솔직함이 좋다.(때론 쪼꼼 과할 때도 있다.-_-;;;) 아내에게 내가 '용팔이'이기 때문에 용팔이라고 부르는 거지 오빠의 위치에, 좀더 먼 위치에 내가 서 있었다면 아내는 절대 나를 그렇게 친근하고 만만한 말투로 부르지 못했을 것을 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들의 친구라고 말했다. 스승이자 주인의 서열에서 오는 두려움을 해소한 자만이 친구의 관계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 진정한 관계에 자신이 없는 많은 이들은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채 그저 정치적 관계의 설정을 유지하고 타인에게도 강요한다. 그 결과 피상적인 관계만이 남는다. 팀원은 팀장의 뒷담화를 까고 앞에서만 그 룰을 지킨다. 아내들도 가부장 기업 안에서 그 행동을 답습한다.

 

진정한 관계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로 나아간다. 부부가 진정한 친구가 되고 나면 서열과 피상적인 대접의 눈치가 필요 없어진다. 진정한 존경은 상호 친밀함에서 나오는 것이지 어떤 행동을 피상적으로 강요하고 그것을 학습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로, 나는 아내의 '용팔이' 호칭을 지지한다! (주먹 꽉지고...-_-v)

2014/03/09 23:38 2014/03/09 2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