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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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정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목사라는 집단에게 창조진화나 동성애, 나아가 사회구조나 우리나라의 역사, 기술의 폐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물어보거나 답을 들으려 애쓰지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가끔 교수가 신문에 칼럼을 쓸 때도 느끼는데 특정 분야의 좁은 전문지식을 가진 교수가 역사나 정치 이슈, 사회 전반적인 이야기를 할 때도 느끼는 당혹감, 주관적인 논지, 감정적 스타일이 존재하는데 목사들에게는 이 모든 것에 더해서 '하나님의 뜻'까지 버무려서 말할 특권을 주는 건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

사실 나는 초중고 시절에 배운 세계사와 국사 외에 몇백권에 달하는 역사책과 특정 학자들의 역사관과 그들의 입장에 대해 검토하고 나서야 지금의 내 스탠스를 정했고 ...그 안에서 내 신앙과의 연관성을 찾고 있다. 사실 그 스탠스 마저도 나는 확정적이지는 않은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과거와 달리 권력이 다양화, 음성화, 고도화된 사회에서 특정 사안과 특정 분야에서 어떤 입장을 견지하고 나아가 대안을 내세울 때 물리적으로 많은 분석과 정교한 논리, 인간에 대한 애정과 고민이 요구된다. 부끄럽게도 학문적으로 충실하지 않은 비전문적 종교인들이 '베지밀반, 분유반'을 적당히 섞어서 대충 그럴 듯하게 설교를 먹이려는 경향을 자주 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여전히 목사들에게서 어떤 해답을 들으려고 턱을 괴고 앉아 있는 형국이다.

한때 한국사회는 목사로 대변되는 교계 지도자들이 사회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정교 분리를 투철하게 지키며 개인의 영혼 구원에만 집중해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안이 명확한 상황에서도 침묵하거나 중립을 지키려는 입장이 만연했고 그 안에서 우리는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양립가능성을 타진해야 했다.

물론 지금도 그 연장선상에서 공적신앙에 대한 담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허나 여기서도 잠재된 문제는 작금의 목사들로 대변되는 비전문 종교인들이 너도나도 나라를 걱정하며 해대는 아마추어 사회비평에 피로감이 몰려와 몸살이 날 지경이다.

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 어줍잖게 성경구절 몇개로 정치, 사회, 역사, 퀴어담론 등을 끼고 싶다면, 되도록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신앙적인 표현에 버무려서 자기 영향력 아래 있는 성도들을 구워삶을 생각을 버리고 신학공부 하듯 제대로 성실하게 논지를 전개할 필요(책임)이 있다.

최소한 두 세 마디를 말하더라도 그 전후 논리가 좀 매칭이 되는 수준은 되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정말 신앙과 논리의 비약, 그 널뛰기에 현기증이 날때가 많다. 약사와 의사가 다르듯 목사라는 존재에게도 너무 많은 '짐'을 지워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목사의 구원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그 짐을 걸거나 나눠질 필요가 있는 듯 하다...



첨언하며)
전문가 집단에게만 전문분야에 권위를 주어 담론을 말할 수 있게하는, 이른바 엘리트주의적 접근에는 당연히 반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전문가집단을 옹호하는 토마스쿤보다는 아나키스트적인 파이어아벤트에 가까운 입장이다.

내가 목사의 비전문성을 비판하는 근저에는 비전문가의 입을 막고 싶다기보다는 비전문가에게 너무 많은 언로를 주고 그 입장에 과한 의미부여를 하는 행태에 방점을 찍고 싶은 마음이다. 비전문가가 더 냉철하고도 깊이있는 통찰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목사 특유의 아우라는 벗었으면 좋겠다는거다.
2014/07/02 23:05 2014/07/02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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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좀더 명확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수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의 위너들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듯 하다. 이는 마치 민주주의적인 방식을 통해 일반인 중 가장 재능이 뛰어난 이를 발굴하는 값진 프로그램처럼 보이지만 정작 재능을 단기간에 고갈시키는 일종의 포이즌이라고도 볼 수 있다.

1등은 재능도 확인받고 상금도 받고 게다가 엔터테인먼트사와 계약까지 체결하는 일타삼피를 누리는 게 아니다. 몇개월동안 이뤄지는 살떨리는 경합 속에서 개별 참가자는 자기의 능력의 최고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 그 집중력 때문에 대중은 주목하고 프로그램은 매주 뜨겁게 달아오른다. 마치 불꽃놀이를 한번에 터뜨리듯 그 순간은 다들 눈을 떼지 못하지만 그 이후에는 느슨한 속도나 작은 섬광에는 반응하기가 쉽지 않다.

단적으로 말해 오디션 프로그램은 숨은 재능인을 찾아내서 그의 전부를 몇개월 안에 전소하게 만드는 무서운 힘을 가졌다. 그 엄청난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소비한 대중은 대부분 그 이후에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본 참가자들에게 관심을 갖기가 어려워진다. 특히나 1위나 상위 참가자들은 마치 중견 연예인을 보듯 그의 모든 쇼맨십을 이미 다 겪은 듯한 착각마저 갖는다. 대중문화 속 연예인들은 재능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어필하는 신선함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극한의 경쟁이 사라진 공간, 그리고 자신의 모든 재능을 전소해버린 무대에서 오디션 위너들이 경험해야하는 이른 피로감, 무력감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관성적으로 느끼는 즐거움 가운데에는 사실상 상당히 악의적인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설령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그것은 기어 이빨들이 척척 물려돌아가듯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망가뜨린다. 이렇듯 우린, 재능이 있는 이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타 없어질 수 있는 시대에 살고있다. 문득 그런 비관적인 생각이 들었다...
2014/06/30 23:05 2014/06/30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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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 하나의 떠다니는 생각 중 하나는 최근 김보성과 비락식혜로 불거진 '의리'에 대한 것이다.

대체로 나와 정치적 성향을 공유하는 많은 이들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이른바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인맥 사회구조에 질색했다. 지식인, 지성인이라면 혈연, 학연과 같은 조직논리와는 구별되게 언제든 정화를 위한 내부 고발도 결단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으로 치부됐다. (실상 삶은 그렇게 단순하진 않았지만)

내 기억으로 '의리'가 전면에 부상하고 그것이 어색하지 않게 된 시점은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김어준의 의리(그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것으로 비롯된 나꼼수의 진영정체성이었다.(난 사실상 나꼼수가 박원순시장을 만들었다고 본다) 그 시점부터 곽노현 교육감 이슈 등에서 논리 이면에 숨겨진 더 큰 음모론을 까발리고 진영 사이에서 의리를 지켜내는 것이 어색하지도 않고 나아가 진보진영에서도 권장되는 조직, 공동체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상황.

곽노현 교육감의 사건 때만 해도 그의 편을 드는 지점에 찬반이 분분했다. 하지만 이제는 김보성의 의리 광고를 정서적으로 불편함 없이 즐긴다.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 지점에서도 풀어야 할 매듭이 나는 조금 있다고 본다. 이것도 언제가 썰을... (이렇게 대충 막 써대는 건, 하루 지나면 막 다 까먹어서. 나중에 기억 안 날까봐서다.ㅠㅠ)


#2.
주변에 몸도 마음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내가 자제해야 하는 일들에 대한 갈등도 사실 많이 커졌다. 특히 페북에서는 웃는 일, 노는 일, 먹는 일 등 그 순간순간 일어난 일들이 타임라인으로 정리된 내 페이지와 댓글을 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사회참여나 운동, 정치적 입장, 이슈에 대해서는 양립가능하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지만...

지인이 힘든 상황에 있을 때 그들이 속한 공간에서 나는 흔쾌히 농담을 하고 즐거워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야 하는 게 아니라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곁에 있다면 난 가만히 웃거나 시덥잖은 농담을 위로삼아 말할 수 있겠지만... 기쁜 일보다는 슬프고 우울한 일이 많은 요즘. 이대로 지속된다면 아마도 조만간 난 페북을 접을 지도 모르겠다.

삶의 모든 영억이 잿빛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떤 일로 그런 가운데 있거나 계속 어둠 속을 헤매는 분들이 참 많다. 구원은 언제일까. 그 날이 속히 오면 나는 더 행복하게 sns를 할 수 있을텐데..하는 생각이 간절한 오후.


#3.
우리에게 어른세대는 '힘'을 가진 세대였다. 그래서 우리세대는 힘을 통한 군대식 상명하복에 피로감을 느낀다. 반면 우리세대는 합리적 논쟁, 즉 '말'을 가진 세대였다. 아마도 우리 아래세대는 불행히도 우리의 말에 피로감을 느끼게 될 것같다.

2014/06/25 21:13 2014/06/2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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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말과 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말이나 글과 그 담화자의 인격과의 연관성에 대한 생각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예전보다는 말로 사람을 평가하려는 습관을 버리려고 애쓴다. 말과 사람 사이의 연관성이 그리 견고하지 않은 까닭이다.

극단적인 예로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저자 은수연씨는 아버지에게 유년시절부터 성폭행을 당했는데 그 아버지란 사람은 교회 목사였다. 은수연씨가 집에서 도망쳤다가 아버지에게 잡히면 길거리에서건 경찰서에서건 그 목사 아버지는 말로 주변 사람들을 구워삶았고 세상사람들은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은수연씨를 아버지에게 돌려보내곤 했다고 한다.

2.
그 반대로 말로 자주 오해를 사게 만들고 말만 하면 그 의도나 진정성을 의심받는 사람들이 있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도 그런 사람이었다. 김어준 총수는 유시민 전장관이 말 때문에 피해를 입는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종종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공인이나 연예인들(이 두 그룹은 구분되어야한다는 생각이다)의 한 두 마디에 그 사람의 사활을 거는 감정적 평가들, 그 극단적 비난에 회의적이다.

그런 단회적인 말 몇마디로 그 사람의 인격 전체의 퍼즐을 맞추려는 시도들은 대체로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사람이 어떤 말을 했든지 그 사람을 10년, 20년 주시하고 그 사람이 어디를 가는지 어디에 돈을 쓰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며 지내는지를 지켜보다보면 그 사람이 정작 마음에 두고 있는 바를 자연히 알게 된다. 말은 자주 사람을 속인다.

3.
안타깝게도 우리는 한 사람을 10년씩 지켜볼 아량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다. 사실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내 관심에 엮여있는 사람들이 내 가치관에 부합하는 말을 하는지, 반대하는지, 혹은 배신의 언사를 했는지에 더 관심이 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단기간에 한 인간의 숨은 속내를 찾기 위해 드러난 말로 퍼즐을 맞추려고 애를 쓴다.

그렇다고 말과 글이 그 사람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건 너무 멀리 나아가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푹빠져서 허우적대다가 지향점마저 잃어버리는 모습이랄까. 대체로 우리는 누군가 말을 하고 글을 쓰면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고 가정하는 편이 옳다. 물론 말과 인격은 자주 어긋나고 결을 맞추려다 실패할 확률이 항상 존재하겠지만...

4.
나는 말과 글을 한 인격을 단기간에 평가하는 도구나 잣대로 활용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말과 글을 통해 그 사람의 균열점, 숨은 속내를 훔쳐볼 수 있는 하나의 보조구로 사용하는 것에는 적극 찬성한다. 말과 말 사이에 끼어드는 실수들, 헛나온 말, 행간에 독립적인 어색한 문장들. 그 속에서 정작 담화자의 민낯을 추정해볼 수 있다.

멀쩡하던 설교자가 어떤 사건을 접하고는 이전과는 공유할 수 없는 어떤 주장을 뜬금없이 할 때,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질타에 오해라고 손사레를 지을 때. 우리는 그의 안정된 일상 속 잘 정돈된 담화에서는 절대 알 수 없었던 어떤 속내를 경험하게 된다. 그 말(실수)가 말하는 사람의 전부를 규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그 균열지점을 통해 적어도 그 인격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생긴다. 전에 했던 말과 글, 그의 정치, 종교적 스탠스를 새롭게 해석해 볼 필요성 말이다.

...그런 생각, 잠시 끄적여본다. (졸려서, 쓰다가 급마무리.)


2014. 5. 30. 페북 담벼락.

2014/05/31 09:27 2014/05/3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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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다분히 개인적인 이야기다.
고로 썼다가 지울 수도 있다.
최근 나는 성하 사진을 전혀 올리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환청을 듣는다.
'니 아이는 살아 있잖아.'

내 아이 사진에 웃다가 그 아이 사진을 페북에
공유하려는 순간 환청을 듣는다.
게다가 내 아이도 잃을 것 같은 두려움도 엄습한다.
그래 우리 성하는 살아있지...
이 복잡한 감정에 대해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담아두고 있기도 쉽지가 않았다.
내 감정을 타인에게 어떤 의도나 어떤 행동의 제약을
주고자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페북에서 아이 사진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미혼이지만 아이를 갖고 싶은 싱글.
결혼을 했지만 노력해도 아이를 갖지 못하고 있는
부부들, 나아가 아이를 잃은 부모들.
아이가 건강하지 않은 부모들.
글을 올릴 때마다 불특정 다수의 부모들이 내 앞에
서있는 듯한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그냥.
그럼에도 나는 이 시간을,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이기적으로라도 누리고 싶었고 공유하고 싶었다.
그냥... 이제까지는 그게 됐다.
최근들어 나는 일상적으로 대화하듯 페북의 글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아이의 사진에서는 어떤 증상이라고 할만한
수준의 환청과 현기증이 난다. 말하고 싶진 않지만.
그럴 때는 그냥 아이 얼굴을 보며 웃어주기만 했다.

그냥.
요즘은 내가 믿는 기독교가 진리라면
그냥 이쯤에서 세상의 종말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
많이 한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 상식이 최선인 세상.
평등하게 건강하고 평등하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세상.
그게 그렇게 간절한 것이었나. 그런 생각.
이런 글. 안 쓰고 싶었는데 비가 오길래. 미안합니다. 다들.
(2014년 5월 12일 페북 글)
2014/05/13 00:19 2014/05/1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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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부로 저는 이단개신교에서 노랑리본교로 개종합니다. 노랑나비교라고도 합니다. 노랑리본교는 절대 세월호 참사관련해서 전도지를 배포하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신의 어떤 의도가 있다고 섣불리 설교하지 않으며 또한 무턱대고 침묵을 권하거나 성도들의 회개를 촉구하지도 않습니다. 좌빨 종북 친노 전교조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노랑리본교는 공중파 언론을 증오하며 뉴스타파 국민티비, 그리고 이상호 기자를 후원합니다.

2.
'노랑리본교' 개종 시에는 십일조를 내야 정교인이 되지는 않지만, 반드시 시민언론 후원을 권합니다. 노랑리본교는 농담반, 진담반이지만 이건 진심입니다. 차일피일 미루던 일, 대단한 금액을 후원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교계 후원을 줄이고 시민언론 후원을 늘립니다. (물론, 이 변화는 어느 한쪽이 미워서가 아니라 어느 한쪽에 더 힘을 실어줘야 할 절실한 당위를 이번에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상호 기자의 고발뉴스 http://www.goba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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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타파 http://newstap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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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클럽 http://www.ohmynews.com/NWS_Web/tenman/index.aspx?CMPT_CD=PT005

2014/04/28 22:56 2014/04/28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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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냥 독백일 뿐이다.

1.
그저 뭔가에 몰두했다. 그게 독서일수도 있겠고 보고서일 수도 있겠다. 하다못해 영화 몇 편을 잠들 때까지 보기도 했다. 마음이 조금 가라 앉으면 잠시 세월호 관련 기사들과 페북의 글들을 한꺼번에 읽고 금방 나와버렸다.

2.
페북에서 실종된 아이들을 자기 자녀들에게 투사하여 글을 쓰는 이들을 보면서도 만감이 교차했다. 그래도 당신들 자녀들은 살아 있잖아. 그건 상상일 뿐이잖아. 내가 실종된 아이들의 부모라면 나는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 같아서 불편했다. 그러면서도 내 아이가 "아빠 갔다올게"하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을 거란 상상을 하며 슬퍼했다.

3.
말하는 걸 좋아하고 글쓰는 걸 좋아하지만 일주일째 페북을 들어가면 '얼음'이 되어버린다. 솔직히 감정의 과잉이 불편한 내 소심한 성향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슬픔의 기운, 고통의 기운 속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그 곳에서 너무도 유려하게 표현력을 발휘하는 많은 이들이 공감되지 않는 상태. 내 사적 감정의 투사로 인해 서로 다른 슬픔의 표현에 대해 어떤 판단이나 비판을 해댈 수 있겠다 싶었다. 그저 발을 뺄 뿐.

4.
며칠이 지나고 일상적인 글을 담벼락에 올리는 페친들은 비난의 대상이 됐다. 너무나 행복해보이는 사진, 맛있는 음식, 자기 아이가 예쁘다며 올리는 사진들을 상당수의 페친들이 불편해했고 뒷담화가 한창이었다. 나는 공감했다. 하지만 나도 일상을 살고 있다. 지인들을 만나서 농담을 하기도 하고 출근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업무에 몰두했다. 퇴근해서는 아이와 놀아주고 음식을 만들어서 가족과 함께 먹었다.

5.
이 모든 일상들이 실시간으로 공개된다면 아마 내 주변에서도 나에 대한 뒷담화를 했을 것이다. 보이는 곳에서 하냐, 숨어서 하냐, 혹은 내가 그것을 공개하냐의 정도에 따라 이 슬픈 현실에서 나의 인간됨은 다르게 평가된다. 나는 이게 유교적인 사고라고 생각한다. 조문객들이 구슬프게 울며 절을 하다가 일어나서는 금새 표정이 바뀌는. SNS에서만 과잉 슬픔의 표현이 난무하고 내 주변은 그렇지 않은 불균형.

6.
내 감정을 직면할 수 없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누구라도 툭 건드리거나 앉아서 세월호 뉴스를 계속 보고 있다간 금새 허물어질 것만 같은 감정을 억눌렀다. 게다가 나는 그것이 값싼 눈물임을 알고 있다. 내 고통이 아닌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면서도 타자 속에 머물지 못하는 내 이기심을 돌아보며 나는 오히려 건조하게 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7.
실종자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다. 내 감정 내 입장, 내 안에 일어나고 있는 슬픔이나 무기력감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건 그저 투사일 뿐, 내 슬픔, 내 고통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이고 타인의 현실인데 그것을 내가 느낀다는 사실에 멈춰서게 될 수 있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뿐이었다.

8.
따지고 보면 독립 언론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많은 것들을 알게 됐고, 현실을 직시하게 됐고 더 많은 고민들을 하게 됐다. 매체를 후원하고 지지하는 것, 참 중요하단 생각 다시금 하게됐다. 여전히 나는 희생자들의 부모와 지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의 슬픔을 마치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게 아니라 그들 주변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정서적으로 지지해주고 주변에 있으면 그 곁에서 편이 되어 주는 것이란 생각.

9.
머리 속에서는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가지만 사실 나는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하기 싫은. 그래서 일에 매달리거나 일상에 몰입하려했다. 그것이 바람직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따져볼 여유는 없다.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잊지는 않아야 한다. 특히, 사건의 디테일들은 묻어두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살아서는 안 된다. 하나하나 따져보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곱씹어볼 것이다. 그저 지금은 내가 그 상태가 아닐 뿐이다.


 

2014/04/24 23:49 2014/04/24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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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진영에 서거나 누군가의 편을 드는 것만큼
낡아보이는 것도 없을 거다.
시대는 변했고 트렌드도 변했고 과거는 잊혀졌고
그것을 기억하고 되내이는 것만큼 소심해보이는 일도 없어졌다.
당신들 참 쿨해.

관능미의 여왕으로 불리는 모니카 벨루치가 나와서
비참하게 강간을 당했던 영화 <돌이킬 수 없는>.
끝까지 영화관에서 자리를 뜨지 않기가 참 힘들었지만
영화속 남자 조연의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남친인 주인공은 길길이 뛰며
강간범을 잡으려고 안달이 나서 돌아다니는데
그녀를 마음 속으로 사랑하던 그의 친구는
상당히 소심하게 주변의 눈치를 보며 그의 뒤를 따른다.
정작 강간범 앞에서 남친은 팔이 부러진 채로 제압당하고 만다.
하지만 그의 친구는 적정한 거리에서 적당한 둔기를 찾아내고는
단번에 주저함이나 떨림 없이 강간범의 머리를 박살낸다.

표현하지 않는다고 생각없이 잊고 사는 게 아냐.
쿨한 세상에 쿨하지 않은 단 한 사람으로 남는다해도.
언젠가, 영화처럼...
적정한 거리에서 적정한 도구들이 구비된다면,
언젠가 나도 우아하게 부숴주겠어.
마치 평범한 퇴근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편안한 자세로...
2014/04/13 12:59 2014/04/13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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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를  인터넷 논쟁 문화 1세대라고 생각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진중권 교수와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와의 기나긴 게시판 논쟁이었다.

그 뜨겁던 논쟁이 용두사미처럼 끝맺었고
 진중권은 그 논쟁 자체를 허무하게 여겼지만
 그때의 강렬한 기억 이후 나는 논쟁의 묘미, 냉소의 효용성(?)을 충분히 공감하게 되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인터넷 안에서의 논쟁을 즐겼고 그것 자체를 가치있게 여겼다.
언어유희나 지식자랑의 향연이 아닌 계급장을 땐 민주적인 방식의 진정한 배움,
논쟁을 통해 더욱 도드라지는 이슈, 진리...실제로도 자주 그런 것들을 경험했다.

물론 종종 뚜껑을 열리게 만드는 이들이 있었지만, 내 바닥에서 그런 이들은 소수였고
 정말 대화가 되지 않는 경우는 주변에서 알아서 자정능력을 발휘해주었다.

최근 몇년 사이 나는 그런 내 믿음에 회의감을 갖게 만든 여러 사건들을 겪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경험, 인간이 인간을 대하고 있지 않다는 절망감,
못 가진자가 더 못가진자를 까대는 황당함... 그것을 넘어서는 실망감.

정말 정성들여 쓴 글에 단 몇 글자로 굴욕감을 선사하는 쿨한 이들.
그 쿨한 무수한 댓글들 속에서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경험들, 경험들.

세상은 아름답고 모두가 희희낙낙인데 내가 무슨 스파이더맨도 아니고
 이렇게 인간의 악함을 고민해야 하는 건가,
오지랖을 떨다가 내가 미치고 말겠구나 하는 반성, 자성, 비이성.

한때 나에게 있어 논쟁은 '인터넷'을 떼어내고는 말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그 공간은 무지했던 나에겐 인정사정 없는  거친 선생이었고 평등한 대화의 장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습게도 지금도 내겐  정든 고향 같은 느낌, 나름의 향수 같은 게 남아 있다.

하지만 그 향수에 젖어 있다가는  질식할 것 같은 위협, 혹은 똑같이 괴물이 될 것 같은
 분노, 미움, 그에 따르는 죄의식, 그렇게 이어지는 인간 자체에 대한 회의감...
그런, 그런 멜랑꼴리.

어떤 연속적, 혹은 단속적 과정이 있었겠지만 어느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그렇게 결국,
나는 인터넷 댓글 문화를 혐오하게 됐다...

2014/04/10 23:31 2014/04/1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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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사람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보면 알게 모르게 참 배우는 것이 많다.
과거엔 배움의 대상이 '상대방의 더 뛰어난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대화의 묘미 그 자체라고 하겠다.

의미없는 대화는 없겠지만 나란 사람은
참 남의 말을 들을 줄 몰랐다는 생각, 많이 한다.
스스로가 나름 자상하고 소통이 잘 된다는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지만
되돌아보면 많은 대화에서 나는 대화 아닌 계몽적 독백을 할 때가 많았다.

점점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자신있던 어떤 분야가 가장 힘든 분야로 느껴지는 낯설음.
잘 하고 있다고 느꼈던 그 지점에서  신기루가 사라지고
사막의 한 가운데에 선 듯한 황량함. 뭐, 그런 것...
뭐, 그런 것... 그런 것인 것이다.
2014/04/10 23:28 2014/04/10 2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