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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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무생각없이 버스를 탔는데
타고 보니 충전 카드 잔액 부족...
그것도 몇 백원 정도 모자라는 상황.
지갑을 보니 만원짜리뿐.
기사님에게 양해를 구하니 
다시 기사님이 동전으로 받아도 되겠냐고
내게 양해를 구함.
네.. 라고 말하자마자 쏟아지는
칠십여개의 백원짜리를 받느라
지대로 민폐캐릭 등극...ㅠㅠㅠㅠㅠㅠ
2017/09/30 23:00 2017/09/3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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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도 2년 이상 해본 적 없는 나는 결혼을 했고
그 결혼이 5년이 지나고 7년, 10년, 12년이 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긴 시간동안 함께 지내야 하는지 몰랐다.
알았지만 그 시간의 길이를 가늠하진 않았던 것 같다.

7년 즈음, 우리는 
더이상 2005년의 두 사람이 아니란 깨달음에 
놀라기도 했고 자주 다투기도 했다.
뒤늦게 시작된 각자 자기만의 이슈에 침잠해 있기도 했고
가사, 육아, 그리고 서로에 대한 호불호를 토로하기도 했다.

7년 즈음, 나는
우리가 정말 이혼이라도 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아내는 이혼이 두려운 게 아니라 
우리 중에 내가 뒤로 물러서는 게, 조금씩 멀어지는 게
'우리'로 살아가지만 '우리'가 아닌 상황을 더 걱정했다.

12년이 된 지금. 나는,
이혼이 두렵지 않게 됐다. 부모가 내게 남겨준 두려움..
아내와 더이상 '우리'가 아닐 때까지 행복하게 살다가
더이상 우리일 수 없을 때 '나'와 '너'로 존재할 수 있기를.
두려움을 은폐하고 일상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서 주어진 시간을 더 잘 누리자, 생각하게 됐다.

12년이 된 지금. 나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 더이상은 '내가 더 노력할게'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임을 인정하게 됐다.
그간 살면서 나는, 
아끼는 타자들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사람이었다.
한번도 도저히 안 되겠어, 라고 말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물론 나란 존재로서는 더이상 좋아질 수 없는 영역들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여전히 힘들다. 12년은 여전히 짧다.

농담처럼 극적으로 결혼 1년 연장 타결이 됐다고 말했지만,
다음 1년 동안, 아내와 보낼 행복한 삶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40년을 살고도 다시 40년을 더 살 가능성이 높아졌고
12년의 세 배 이상의 시간이 남았지만..
결혼상태의 '유지'가 아니라, '지금' 행복에 더 많은 가치를 둔다면
적어도 두렵거나 후회는 없는 세월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2017. 9. 24
2017/09/24 22:58 2017/09/24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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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환영 회식.
끝나고 굳이 관리과장이 2차를 가자고 해서
모처럼 자리를 옮겨 또 술을 처먹었다. 

신입사원과 나의 나이차이는 15년.
그들은 좋은 인상을 보이려고 애쓰고
부서배치가 잘 된 건지 선임은 잘 만난건지
자기가 과연 직장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불안함과 가능성을 함께 타진하는 듯 보였다. 

나와 관리과장은 입사시기가 비슷하여
줄거워보이지 않는 신입사원들을 앞에 두고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늙었나, 한탄했다.
뭐든 할 수 있겠다 싶었던 청년은 
나이가 들어 이제 정말 안 될 것 같은, 
혹은 못할 것 같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안타까움, 때론 자신감을 잃었다는 느낌을 넘어
이제 그 상태로라도 꿋꿋이 버텨내자, 
할 수 있는 건 하고 할 수 없는 건 받아들이자,
처음부터 내것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받아들이자.
그리고 다음 걸음으로 나아가자고 그렇게 다짐한다.

말로 천냥빚을 갚는다지만 인간 양심상 그건 
가능성이 넘칠 때나 발행하는 일종의 어음과 같다.
남은 시간은, 갚을 수 있을만큼의 깜냥대로
천냥빚을 묵묵히 갚다가, 그렇게 곱게 죽으면 그만이다.

취기가 남았나. 
아무튼 이런 늙은티 코스프레 글은 마지막인걸로.

2017. 9. 15
2017/09/15 22:55 2017/09/15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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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직장 성희롱 관련 팟캐스트를 하다가 왜 최근에 아재개그가 유행하게 됐는지에 대해 깨달은 사실이 있다. 그동안 모든 직장, 사업장 등등 남성들 중심의 공간에서 모든 농담은 성희롱에 해당하는 음담패설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페미니즘의 약진이 있었고 성희롱 교육이 퍼지면서 직장에서 언어적 성희롱은 처벌이 가능하게 되었고 그렇게 휴게실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회식자리에서 왁자지껄하게 음담패설로 웃길 수가 없게 됐다.
갑자기 웃음의 소재가 고갈되자 우리 아재들은 당장 매우 저급한 유머만 급한대로 주절되게 되었다. 아.재.개.그. 한번도 고차원 개그를 위해 머리를 쓰지 않고 음담패설에 의존해온 종족의 일시적 퇴행현상이랄까.

2017. 9. 10
2017/09/10 22:54 2017/09/10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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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선생의 그림을 좋아하던 차에 기회가 닿아 <이중섭 편지>를 읽었다. 소 그림으로 유명한 그의 편지와 소소한 가족 그림들을 보면서 그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커졌고 말년의 비극적 삶에 약간의 의아함이 남았다.
가족과 함께하길 그렇게 원했는데 왜 혼자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죽었나...
그러고는 또 바쁘게 일상이 돌아가면서, 그 의아함은 잠시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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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무심결에(취미가 중고책 검색이다) 이중섭 선생의 책을 더 찾아보다가 전인권 선생이 쓴 책 <아름다운 사람 이중섭>을 발견했다.
전인권은 가수가 아니라(ㅋㅋ) 정치학자로, 몇 년 전 아내의 추천으로 읽은 그의 <남자의 탄생>은 내 심정적 변화의 한 획을 그은 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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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아주 사적인 고해성사가 담긴 이 책은 본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인권 선생 자신의 '건강한 자아상'에도 놀랐지만 사적 담론을 시대정신으로 확장시키는 흐름 또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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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이중섭>은 아직 읽고 있는 중이지만 그가 화가 이중섭에게 꽂힌 대목이 '소그림'이 아닌 '군동화'(아이들그림)라는 대목에서부터 나는 이미 그의 시선에 몰입이 되어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
전인권 선생은 정치학자로 박정희 연구로 학위를 받았으면서도 미술평론으로 신촌문예에 당선이 되었고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도서전에서는 본서 <아름다운 화가 이중섭>이 한국을 대표하는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흥미롭게도 박정희와 김대중에 관한 책을 썼고 두 인물을 조명하는 과정에서 각각 인물의 명암을 객관적으로 드러냈다는 평을 들었다고도 한다. 극과 극의 인물에 대한 명암이라니. 더더욱 흥미를 유발하는 느낌.
.
그렇게하여 문득 정신을 차리고보니 전인권 선생의 책이 집에 쌓여있다.
뭐,,, 나는 중고책 사냥꾼이 아니던가...-_-
언젠가부터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글쟁이에게 강한 호감과 공감을 갖게된 나를 발견한다. 그 변화가 내심 나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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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 선생

2016/12/31 20:07 2016/12/3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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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 메갈리아, 정의당, 레진코믹스.
연이어 이슈들이 진행되고 있는 듯.
이 시점에서 논리를 말로 잘 풀어내지 못하면
누군가에겐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여자에게 왕자가 필요없다는 문구에 동의한다. 
또한, "만약 80년대에 어떤 정당이 '전대협을 지지한다'거나, 
90년대 야당이 '한총련을 지지한다'고 했다면 
"대학교를 불태우고 경찰을 때린 게 잘했다는 거냐", 
"집회 쓰레기는 너희가 치워라" 등등의 온갖 비난에 시달렸을 것이다."
라는 기사의 논조에 동의한다. 
.
역사적으로 모든 불평등에 대한 저항들은 항상 기득권자들의 
엄중한 룰에 의해 가차없이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하곤 했다. 
메갈리아를 향한 엄중한 잣대는 어떤 면에서는
그 잣대를 들이대는 세력이 '진보적'이었던 게 아니라 그저
현재의 '비'기득권일 뿐임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
하지만 나는 말을 아껴야 한다.
왜냐하면 정작 말 몇 마디 때문에 혐오를 일삼는 사람들을
싫어하고 미워하게 될 것 같아서다.
솔직히 나는 생각의 다름이 나아가 입장의 다름을 만들고
나와 너의 구획을 긋는 것으로 귀결되는 모든 방향, 지향에서 멀어지고 싶다.
.
우리 중 상당수는 설령 생각이 다르더라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고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동무를 하고 비싸지 않은 골목 맛집에서라도
얼굴을 맞대고 숟가락을 들고 싶어 한다.
우리 중 상당수는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헌신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과 손을 잡고 깔깔거리며 동네의 구석구석을 걷고 싶어 한다.
.
또한, 
우리 중 몇몇은 생각을 넘어 다수와 취향과 삶의 방식이 다르더라도
그들과 공존하고 사랑을 받으며 함께 어울려서 각자의 고유한 색깔대로
지지를 받으며 그 방식이 다수의, 기득권의, 익숙한 무엇이 아니더라도
주변과 함께 일상을 나누고 싶어한다. 
나또한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
허나 이 모든 것들이 매순간의 이슈마다 각자의 생각으로 구획을 나누고 
그 생각의 '진영'에 서서 상대에게 혐오의 '말들'을 쏟아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일 민족이라 굳게 믿는 우리는 비슷한 겉모습으로는 알아볼 수 없는
사상 검증을 점점더 타인의 '말'을 통해 확인하려는 것 같다.
.
말로써 어떤 사람의 됨됨이를 규정짓는 것에 점점 회의적이 되어가는 나는.
말을 아껴야한다. 앞으로는...
2016/07/28 23:18 2016/07/28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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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여성 저자들의 책과 글들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여러차례 말했듯 나는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된 후에도 한참동안을 여성 저자들의 글에 별로 호감을 갖질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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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가장 큰 변화는 남성들 특유의 '가오잡는' 문어체가 인터넷에서 사라지고 나아가 출판계에서도 구어체, 말글이 점차 대세를 이루면서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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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논문에서나 볼 법한 문어체 글쓰기 스타일이 불과 10-20년 전까지 출판시장 전반을 차지했었다. 글 꽤나 쓰던 사람들은 누구나 입에 익숙하지 않은 문장을 한자까지 병행하여 쓰면서 자신의 가오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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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해서 가오를 살렸다기 보다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렇게 글쓰기를 배웠고 그 흐름대로 룰을 따랐을 뿐이다. 지금은 흔한 강준만식 글쓰기도 당시에는 쉽게 읽히는 잡글이라며 기성 논객들은 그를 폄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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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게시판이 글로 범람하고 인터넷 소설이 등장하고 온라인 속 컨텐츠 포화 상태를 경험하면서, 어쩌다보니 오프라인에서조차 부지불식간에 구어체 문장들이 익숙하게 나타나기 시작했고 글쟁이의 판세는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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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내가 여성 저자들에게 관심을 갖지 못했던 건, 그 시절 문어체 문장의 룰이 가부장제의 수컷냄새를 내지않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종종 어설프게 사용되거나 혹은 그들이 원하는 담론의 형태로 쓰여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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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내에서도 훈계하는 식자층 교회 오빠들의 현란한 글쓰기와 그것을 소비하며 감탄하는 자매층이 있었고, 자매들의 글쓰기는 '가오의 룰'을 갖추지 못한 관계로 폄하되거나 담론과 논쟁의 영역에서 배제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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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갑자기 2016년의 내 독서편력을 돌아보니 이전에 그렇게 좋아해서 '엄지척'하던 교회 오빠들의 글은 어느새 허세와 자화자찬, 고답적인 스탠스에서 오는 형식적인 측면의 불편함 같은 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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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갑자기 우후죽순처럼 솟아난 '언니들'의 글은 자신의 경험이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시작되어서는 어느덧 무협지스러운 과장없이도 전지구적 거대담론에 이르는, 그러면서도 독해의 불편함 없는 구어체 문장의 매력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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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최근 남성 저자들의 글에서는 이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정형화된 형식'이 자주 나를 불편하게 만들곤 하는데 몇 가지를 예를 들자면,
- 대가들의 이름과 책을 나열하거나 다른 저자의 글을 인용하면서 자기의 급을 과시하려는 시도
- 본론을 말하기 전에 무협지의 한 장면처럼 서론을 과하게 부풀리는 허세  (일례로 삼국지에서 관우가 나타나기 전에 키는 몇 자에, 그가 쓰는 창이 일반인 키의 세 배인데 수염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식의...)
- 자신이 사용하는 용어가 일반적인 그 용어와는 다르다는 기나긴 설명.
- 이 얘기가 중요하다는 점을 각인시키기 위해 이 사람도 이 얘기를 하고 저 사람도 하더라는 설명으로 책의 절반을 소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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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즘은 책 한권을 털어내면, '이 얘기를 하나 전달하려고 이렇게 많은 말을 했나'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요즘은 점점 TED 15분짜리 아이디어를 400쪽에 담으려는 분들이 눈에 많이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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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한 이야기인 거 같나. 서점에 가서 여성이 쓴 책과 남성이 쓴 책을 대충 읽어보시라. 예전엔 난해하게 써서 잘 드러나지 않았다면 지금은 구어체로 여전히 수컷의 가오를 잡는 이들이 많아서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을거다. 아마 몇몇 책들은 읽다보면 축지법이 필요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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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룰이 바뀌었다. 고로, 여성 저자들의 약진을 앞으로도 기대하는 바다.
2016/06/12 15:19 2016/06/1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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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MMPI, 에니어그램을 공부하고 
최근에 강헌 선생 덕분에 명리학을 '독학'(?)하면서 느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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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마치 서양의학과 한의학처럼 겉마음과 속마음으로 나눈다면 
MBTI와 MMPI는 겉마음을 다루는 외과적인 접근을 취하고
에니어그램과 명리학은 속마음을 다루는 내과적 접근을 취하는 것 같다.
일례로,
MBTI나 MMPI가 자신이 외적으로 반응하는 마음을 정리, 분류하여 
개별 인간의 성향을 규정한다면,
에니어그램과 명리학은 좀더 근본적인 영역의 마음의 동기를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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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루는 이 도구들은 모두 특정 이론을 근거하여
임상적인 과정을 거쳐서 통용되어 왔는데
MBTI는 융의 심리적 유형론(1921)에서 정리된 개념에 토대를 두었고,
에니어그램은 고대 중동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지혜'에 근거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상 20세기에 들어서부터 점차 활성화되었다.
에니어그램은 머리, 가슴, 장형으로부터 9가지의 유형을 분류한다.
개인적으로는 에니어그램을 인간의 원초적 죄성(욕망)에 의한 분류체계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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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주팔자로 알려진 '명리'는 중국의 당나라 이후에 체계화된
동양의 음양오행을 가지고 인간을 분류하고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오행은 세상의 질료인 나무, 불, 물, 쇠, 흙의 기운으로 분류되며
열개의 천간과 열두개의 지지를 조합하여 사람의 마음과 길흉화복을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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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의 흥미로운 지점은 오랜 임상에 의해 정립된 통계적 구조이다.
사실상 동서양을 막론하고 심리를 다루는 도구는 어떤 가설과 이론에 근거한다.
프로이트는 자아, 초자아, 이드라는 개념의 토대위에서,
칼 융은 융 나름의 심리 유형을 가지고, 
에니어그램은 머리, 가슴, 내장을 형상화하여 
오랜 임상의 축적을 통해 이론을 체계화한 것처럼,
명리 또한 그 오랜 시간의 임상의 무게를 통해 음양오행이라는 동양적 전제로
인간의 내적인 영역을 풀어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 모든 각각의 개념들은 
보이지 않는 것(마음)을 형상화한 나름의 접근 방법인 셈이다. 

그런 연유로 입문자 입장에서 보기에도
명리는 내 기대보다 훨씬 정교했다.
(사주에 대한 안 좋은 경험이 많고 한자울렁증이 있어서 
사실 처음에는 명리 자체에 부정적이었지만.-_-)
널리 알려진 MBTI, MMPI 등은 20세기 이후에 나온 것들로 
사실 임상적으로는 상당히 더딘 축에 속한다고 평가한다면,
명리학은 이런 서양의 도구들보다 임상적으로도 훨씬 강건하며
아직 그다지 깊이 들어가지 않은 상황에서조차 
나를 이해하는데 더 강력하게 도움을 주는 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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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건 우리가 익히 아는 '신살'에 혹하거나 
혹은 결혼 시기를 짐작하거나 복권을 사거나 
부적이나 작명을 통해 오행의 부족함을 채운다거나 
흉한 기운을 내보낸다는 접근과는 별개의 이야기이다. 
그저 인간의 심리, 마음을 이해하는 여러 도구 중에 하나로
곰곰이 살펴보면 나에 대한 생각보다 많은 통찰들을 얻게되는 것 같다.
.
한 3-40일 가량 겉핥기를 해본 소감은 여기서 접고,
'만인의 위한 명리학'을 시도한, 강헌 선생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2016/06/11 00:29 2016/06/11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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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올린 글에 대한 댓글을 읽고
그 글을 타임라인에서 내렸다.
.
내 글과 말이 나에게 호의를 보여준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그걸 직접 설명할 정도로, 우려를 표한다면..
.
그런 마음을 뒤로하고도 내가 고집할만큼
글이나 말이 그리 중요한가, 관계성보다
그게 더 큰 의미가 있나 하는 회의감이랄까.
.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있다.
꽤 오래 잡글을 쓰다보니 특정대상이
원하는 글이 무엇인지 어느정도 알게된다.
.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입장의 동일함' 때문에 그 입장의 재확인을
위해 내 글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
하지만 때때로 달라진 내 입장에 대해서는,
그 다름으로 인해 조만간 '나'라는
인터넷 공간 안의 하나의 '계정'에 대해
쉽게 규정짓거나 폐기 삭제할 준비가 된 
많은 사람들이 있다.
.
기고글을 향한 불특정 다수의 댓글 경험에서,
혹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어떤 온라인 지인들과
어느날 더이상 친구관계가 아님을 알게 된 순간.
마음 속 씁쓸함을 털어내기 쉽지 않다.
.
반대로 내가 별 생각없이 누군가에게 
쉽게 내뱉은 말들이 (나쁜 면에서) 큰 의미로
전달될 때 자책을 넘어선 깊은 좌절감 같은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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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쏟아낸 글과 말에 대한 심한 회의감.
내가 생각하는 이상과는 동떨어진 어딘가로 나를
계속 이끌어가는 듯한 어두운 어떤 본질.
.
안식일 오후.
회사 사무실에서 밀린 업무를 털어내는 동안.
내 머리 속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고 있다.

2016. 2. 14.  페북글.
2016/02/16 21:23 2016/02/1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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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들은 주말내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다가 출근을 하고 일상이 시작되니 하루 업무에 적응하면서 마음이 가라앉았다. 선생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수없이 많지만. 그냥 미뤄뒀던 <담론>을 읽으면서 뼈속 깊이 자리잡은 그분의 자리를 돌아보려고 한다. 너무 무겁거나 너무 슬퍼하지 않으면서, 천천히 선생의 글들을 돌아보고 싶다.

2016. 1. 19.
2016/01/24 10:25 2016/01/24 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