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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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지식은 실천성, 현장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쉽게 말해 '공부해서 남주자', 사회와 이웃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연구, 고민을 하자는 것인데 반대로 말하면 실천성을 담보로 하지 않는 지식에 대한 반감 같은 게 있다는 말도 된다.

문제는 실천성이 담보되지 않은 지식들, 학문들도 세상에는 많다. 이른바 잉여, 유희를 위한 모든 지식행위들은 간접적으로는 사회를 즐겁게 해주고 기호를 고급화해주기는 하겠지만 직접적인 실천성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자연의 원리를 캐내는 것 자체에 침잠하지 않으면, 그러니까 앞뒤 안 보고 한우물을 파지않고 그 안에서 좋은 응용지식들을 얻고자 하는 사심으로 학문연구를 하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다분히 '정치적'인 접근일 수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우리가 공감하듯이 소설을 쓰거나 음악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예술 행위도 반드시 실천예술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든지 이 생각을 어떻게 써먹을까 어떻게 구현할까에 몰입하는 행위는 학문을 실용적이냐 아니냐의 범주로 판단하게 만드는 지식의 '실용주의', '도구주의'의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원론적으로 깊이 생각해보면, 실천적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문제되지 않으나 그 역은 다분히 위험하고 협소한 생각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천성을 담보로 하지 않는 학문, 지식 습득에 대한 날을 세우고 사는 편이다. 대안없는 비판이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비판을 시작했다면 대안을 고민하는 다음 단계를 밟아야만 하고 어떤 학문을 시작하든지 자신이 서 있는 그 물리적 자리에서부터 그 방향성과 실천의 부담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취미가 공부고 자기 지식을 널리 자랑하는 것을 즐거움, 나아가 사명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시작은 그리할 수 있겠지만 한 우물만 십년 넘게 파면서 여전히 공부를 위한 공부, 학문을 위한 학문, 유희와 잉여질에 머무르는 학문을 하는 이들에 대해 나는 실눈을 뜨고 그 의중을 의심한다. 이른바 '고급취미'를 가지면서 존경까지 받고 싶어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내게는 실천적 지식인이라는 화두뿐 아니라 실척적이지 않은 지식에 대한 비판 또한 여전히 유효하게 다가옴을 부정할 수 없다.

2012년 1월 18일



#2.
어제 새로 오신 목회자님의 설교를 들었다. 담임목사님의 설교가 내실있기 때문에 그간 부교역자 설교는 본인 입장에서나 성도들 입장에서도 부담 네지 긴장감이 있는 것이었기에 기대반, 마음비움반으로 예배당에 앉아 있었다.

설교가 시작되었고 새로오신 강도사님은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정통' 설교자의 면모를 보여주셨다. 사복음서 일화 중 하나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경험을 나누면서 풀어갔다. 때때로 본문과 좀 멀리 있어보이는 부분까지도 꼼꼼이 다루는 측면이 없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무관한 본문이 아니어서 연관있게 들었고 설교의 후미에는 최근에 죽은 청년부 성도와의 일담까지 곁들여져서 많은 성도들이 눈물까지 훔쳤다. 머리속으로 이건 설교의 정석이야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전혀 감동이 되지도 마음이 움직이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물론 내 마음 밭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제의 설교를 듣는 내내 나는 설교자의 욕망을 보았다, 아니 욕망이라기 보다는 설교에 대한 부담감을 보았다는 것이 좀더 유연한 평가이리라. 첫 설교에서 성도들의 감동과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소 과잉의 설교를 했다는 느낌 말이다. 특히 마지막 일화는 슬프기 짝이 없는 것이었지만 실상 본문과 연결고리가 조금은 느슨해 보였다.

마지막 주기도문에 이르기까지, 첫 설교치고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강도사님의 인도에서 나는 <나는 가수다>에서 가수가 펼치는 명경연의 느낌을 받았다. 이 설교로 강도사님은 자신의 기량을 백분 선보였고 다수의 성도는 만족스러워보였다. 근데 애석하게도 나는 마음이 식었다. 냉랭해졌다. 딱히 누굴 탓할 일은 아니지만 자꾸 어제 설교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2012년 1월 16일.

2012/01/18 21:36 2012/01/18 2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