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 그야말로 퇴근 없는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처음 겪는 막중한 의무감과 쉼없는 일상으로 인해 여성은 심리적으로 불안함을 경험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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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현대 여성들은 누구나 육아 스트레스를 받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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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주변엔 항상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중요한 순간에 흥을 깨는 사람들,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지고는 전화조차 받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신이 난 나머지 맥주나 한잔 더 하자고 할 때 꼭 자기는 집에 가겠다고 해서 맹비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약속시간이 지났든데 연락이 두절되어 당황했는데 간신히 연락이 되자 그 시간에 특별한 일 없이 집에 있었다는, 그런 속을 알다가도 모를 사람들이 주변에 종종 있지 않던가.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문제아 내지는 사회부적응자라고 칭한다.
"우리는 네가 내성적인 줄 몰랐어. 그저 고약한 인간인 줄 알았지"
어디서 자주 듣던 얘기가 책에 나온다. 어느 내성적인 성향의 사람이 저녁식사 자리에서 식구들에게 내향성을 설명하려 하자 그녀의 친오빠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향성이라. 무심코 집어든 책을 읽다가 갑자기 과거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혹시 내가 답답해하고 자주 비난했던, 무책임하고 게으르고 악의적으로 약속을 깨던 그 사람들이? 혹시나 하던 마음이 역시나 그러했다. 이렇게 나는 이 책, <나는 내성적인 사람입니다>에 몰입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소피아 뎀블링은 <사이콜로지투데이>에서 쓴 내향성의 사람들에 관한 에세이로 최고 조회수를 기록한 심리학자다. 그는 결국 내향성에 관한 책까지 쓰게 되었고 국내에도 번역서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칼 융의 가장 큰 업적은 외향성과 내향성을 구분함과 동시에 내향성을 가치중립적인 성격으로 정의했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어떤 사회든 매사에 밝고 적극적이고 조직에 적응력이 뛰어난 기질을 긍정하고 그 반대의 기질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거나 개개인을 윤리적으로 옥죄지 않았던가.
최고의 에세이스트답게 저자는 내향성의 문제를 일상적인 묘사와 평이한 문장을 통해 과한 끄덕임을 유발한다. 나는 스스로가 내향성이 아니면서도 책을 읽으면서 과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가장 가까운 예는 전화 혐오증이다. 내향성의 사람들은 전화가 울리는 것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문제는 전화에 대한 회피는 쉽게 도덕적 결함으로 취급되더라는 사실이다. 친구와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들과 통화하는 것도 좋아하리라고 믿고 나아가 직장에서는 언제든 휴대폰이 울려도 받아야 할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향성의 사람들은 마음의 준비 없이 불쑥 불쑥 사람들이 자신과 대면하길 원하는 이 몹쓸 기계에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다.
전화기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내성적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 속에 있는 '에너지 관리'인데 그것이 잘 관리되지 않으면 사람들과의 만남이 전혀 즐겁지도 않고 잘못하면 정제되지 않은 거친 말실수나 극단적인 표현으로 상대를 위협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성적인 사람들을 외향적인 사람들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비극의 시작이다. 설상가상으로 내향성의 사람들은 마치 듣는 것을 좋아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수다쟁이들의 만만한 대상'이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들은 불필요한 대화 자체를 꺼려하는데 이런 수다쟁이들에게 걸리면 십중팔구 그들을 불쾌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언제나 비난의 대상은 싹싹하지 않고 대화의 의지조차 없어보이는 까칠한 내향성의 사람들이 된다.
저자는 내향성의 사람들이 잘못되었거나 무례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창의적이고 침착하고 계획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문제는 외향성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줄 수 없기 때문에 내성적인 사람들이 평가절하, 나아가 비난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내성적인 사람들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들에 대해 설명하고 그에 대한 간단하지만 강력한 팁들을 제시한다. 그 실수라는 것은 크게는 이런 것들이다.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전화에 응답하지 않는다, 곧바로 진지한 대화로 뛰어든다, 정신없이 이야기한다, 내향성과 두려움을 혼동한다, 지나치게 적은 사람에게 의지한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깊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소제목에 딱 맞는 내향성의 사람들이 꽤 많이 떠올랐다는 사실에 또한번 놀랐다.)
슬프게도 내향성의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에게 비난을 받는 경우가 너무 많다. 가족들이 내향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탓에 당사자보다 더 그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게다가 가족이 퍼붓는 비난은 여간해선 무시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런 비난은 곧장 자기비하의 늪으로 향하게 만든다. 남편, 아내 또한 그렇다. 내향성의 사람들은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만 상대가 원할 때조차 절실하게 부부동반 모임에 가고 싶지 않을 때가 있으며 배우자와 떨어져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 물론 외향성의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을 밀어내는 일이라고, 사랑없는 행동으로 치부하여 배우자에게 실망하고 그를 비난하고 급기야 이혼에 이르기도 한다.
책을 덮으면서 정말 많은 수의 사람들의 얼굴들과 행동들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들의 행동을 성격으로 이해했다면 아마 나는 더 풍성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을까. 때로 그들을 무례하게 생각하기도 했고 심지어 병리적으로 치부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사실 나에게도 내향성의 성격이 약간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나는 즉흥적이지 않고 판단을 잠시 유보한다. 가벼운 질문의 문자를 받고 다음날 회신을 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주변에서는 나에게 한소리씩 해댔다.
그래, 이런 게 한 사람의 전반적인 성격이자 기질이라면? 상상만으로도 정말 많은 반성을 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학을 하는 나에게 내향성의 사람들은 포스트프로세싱에 강한 존재처럼 다가왔다. 즉각적인 반응이나 솔루션을 줄 수는 없지만 자신이 준비가 되기만 하면 어떤 외향적인 사람들보다 더 치밀하고 적극적일 수 있는 사람들이란 사실. 당신이 외향적인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으라, 그리고 주변을 보라, 그러면 단지 성격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78734
1.
나는 몇몇 페친들의 글들은 주요 업데이트만 받아보도록 설정해두었다. 내 성격상 친구를 끊는다는 게 참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일이라 친구아닌 상태가 되기 보다는 페친분들의 잦은 포스팅에 잠시 눈을 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2.
이런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이런거다. 어릴 때 사촌형이 웅변학원엘 다녔다. 정신없이 히히덕거리면서 웃다가도 친척 어른들이 "OO야 웅변 한번 해봐"라고 말하면 그 형은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여 이미 외워둔 2분 정도 분량의 글을 힘주어 말했다. 그의 힘있는 목소리는 항상 똑같이 끝났다.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 어른들은 다들 대견한 듯 박수를 보냈다.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라고 들릴 만큼 확신에 찬 강한 어조의 글인데 나 스스로가 도저히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에 나는 그 글들을 보면서 한동안 괴로웠다. 처음엔 댓글을 달아보기도 했지만 워낙 그 주제에 대해 힘차게 외치는 분위기라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페북이라는 플랫폼은 like-centric이지 토론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갠적으로도 스트레스를 풀려고 들어와서 도리어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더.라...
3.
사실 오늘 내가 하고픈 이야기의 핵심은 두번째 이유인데, 무엇보다 타인의 사사로운 행위들을 너무 상습적으로 '까는' 글들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자 불편해졌다. 물론. 매체에서도 개똥녀니 OO녀, OO남 등 기괴한 행동을 하는 이들의 사진을 찍어서 공유하고 종국에는 신상을 털기까지 하는 분위기를 내 주변에서도 느끼는 스릴감이 있긴 한데...
솔직히 나도 뒷담화 많이 깐다. 하지만 페북에서 소소하게 마주하는 불특정 다수의 기이한 행위에 대해서는, 글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입장 바꿔 보자면 이는 내 헛짓거리에 대한 스스로의 변명, 혹은 배려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내가 매순간을 긴장하며 실수 없이 살 수는 없으므로. 누군가에게는 상처주는 말도 하고 길거리에서 타인과 큰 소리로 떠들기도 했을 것이고 타팀의 누군가는 내 전화 한통, 회의 때 말투 하나에도 불편함을 느꼈을 수 있다.
누군가는 그 날(진상짓을 한 날)이 우울증에 허덕여서 걷기조차 힘들었던 날이었을 수 있다. 나를 세게 밀치고 지나간 아저씨는 부모가 급하게 수술실로 들어갔다고 전화를 받고 달려가던 중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극단적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때로 우리는 나 답지 않게 짜증에 뚜껑이 열리거나 심하게 피곤하여 어떤 부탁도 거절하는 날이 있다.
4.
한국은 서비스업종의 천국이다. 아니 인구밀도에 있어서 천국이지만 그 때문에 그 업종 종사자에겐 사실상 지옥이다. 요즘 진보언론에서 자주 회자되는 정신노동자, 백화점이나 식당, 텔레마케팅 업무를 보는 많은 이들. 그들이 한달에 대면해야 할 사람들의 수는 몇 명일까.
'나'는 내 딴에는 참 소중하게 다뤄주면 좋을 존재이지만 그런 수많은 '고갱님'을 상대하는 이들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인 이들의 진상 행동을 우리는 굳이 지적질하고 SNS에서 사례집처럼 전파해야만 할까. 고객을 호구로 보는 많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개별 사례들을 모아보면 그들의 노동강도와 급여, 사회적 지위를 돌아볼 수 있다.
택배, 음식 배달, 전화응대, 인터넷 장애 수리 등등 하루에 할당량과 건수로 쪼임을 당하는 이들의 일상에서 그 숫자를 '개별 인격'으로 대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참지 못한다. '그래, 그래도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착하게 살아야지, 기본은 지켜야지, 괴물은 되지 말아야지... 내 상식에 맞춰서 그를 판단한다.
5.
서로가 서로에게 기본은 하라고 요구하지만 그 기본이 서로가 정해놓은 최소한의 자존심을 건드릴 경우 우리는 SNS에서 상대를 까고, 인터넷을 신고를 하고 신상을 털고, 당사자를 '괴물'로 만든다. 때로 나도 누군가에 의해 괴물이 되고 당신도 누군가에 의해 '개새끼'가 된다.
살면서 내가 깨달은 건, 내가 정한 정말 관대한 최소한의 룰을 깨는 다수의 사람들에 대해 매사에 지적질을 하고 그것을 이슈로 삼는 것이 참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한 대로 나도 일년에 수십번 넘게 내가 정한 기준대로 못 살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떤 사람의 - 최소 한 몇 년 간의 발자취가 - 어떤 '악한 방향'으로 계속 달려가는 이들에 대해 우리가 더 자주 이야기하고 문제삼아야 하는 게 아닐지. 쉽게 말해 '검증된 놈'을 까야지 길거리나 가게에서 만난 잘 모르는 사회적 약자들의 사소한 진상짓에다가 감정 해소를 해대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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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 언니들은 마음에 준비도 되지 않은 나에게 엄청난 속도와 논리로 보험상품을 설명한다. 어쨌든 그게 그들의 생업이다. 그 사람들의 무례함을 이끄는 힘, 그 냉혹한 사회 구조가 있다... "저기요... 죄송한데요..." 오늘도 나는 웃으며 전화를 끊고자 용쓴다... 페친들은 이런 나를 도와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