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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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초반까지를 애늙은이처럼 지낸 이유로.
'토토가'에 나온 가수 대부분을 방송에서 본 적이 없다.
가수 뿐이겠나. 스포츠와 드라마, 음악프로그램 등.
TV 자체를 제대로 보지 않았으니 토토가 자체가 생경하긴 했다.

하지만 나왔던 가수들의 나이가 비슷하다 보니,
그 시절에 내가 지나쳤던 또래문화가 저랬구나, 저 문화가
내 20대를 지나쳤구나, 뭐 그런 생각에... 잠시 뭉클했다.

내게 90년대는 한없이 많은 책을 읽고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많은 지식들에 목말라하며
인터넷에서 내 지식을 무기삼아 논쟁을 벌이며 나름의 논리를
정교하게 다듬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ㅎㅎ 그게 뭐라고.

내 취향이 그 시절 대중의 기호와 다르다는 걸 입증하려는 듯,
영화와 음악도 독특한 스타일을 찾아가려고 애썼던 것 같다.
그와 더불어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나라는 존재 자체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런 게 정말 활활 타오르던 시기였고.^^

오랜만에 무도를 보면서.
당대를 살았으나 솔직히 공감할 수 없는 컨텐츠를 보면서도
내심 감정이 흔들리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게...
아마도 그런 이유이겠지. 

지금도 충분히 많다고 생각하는 나이가, 몇년째 계속 늘어가는 
느낌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_-;;;
2015/01/02 11:32 2015/01/0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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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을 활용한 빅데이터 처리와 IT 의 팡범위한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문 기술은 거의 없다. (방사선 전문의, 회계사, 중간 판리자, 그래픽 디자이너, 마케팅 담당자 풍을 포함하는) 각양각색의 지식 노동자들은 패턴 인식 소프트웨어가 모든 전문 영역을 관통하기 시작한 불편한 상황을 이미 감지하고 있다. 

마이크 맥크레디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이용해 히트할 가능성이 있는 음악을 식별해 내는 스타트업 뮤직엑스레이 (Music Xray) 대표이다. 삼년도 지나지 않아 5000 명이 넘는 아티스트와 음원 계약을 맺은 이 회사는 곡의 구조를 이전에 녹음된 곡들과 비교하는 정교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신곡이 음악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잠재력이 있는지 추정한다. 그들은 이미 무명 아티스트의 곡을 찾아내 그 성공을 정확하게 예상한 인상적인 실적올 자랑하고 있다. 

에파고긱스가 개발한 이와 유사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은 영화 대본을 분석해 홍행작을 예상한다. 이 프로그램이 홍행작을 식별히는 데 성공을 거둔 덕분에 업계에서는 알고리즘 평가 표준 요금 체계까지 구축되었다. 미래에는 이런 종류의 예측도구 덕에 값비싼 포커스 그룹조사를 수행하거나 시장조사 계획을 실행할 마케팅 에이전트를 비싸게 고용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어차피 정확도 변에서도 알고리즘이 걸러 낸 빅데이터에 대한크라우드소싱의 성과에 비하면 무색할테니까 말이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은 갖가지 정보로 관심을 끄는 친근한 어조의 스포츠 뉴스 광고 문안을 창작해 내는 데에도 사용되고 있다. 빅텐네트워크 (Big Ten Network) 는 경기가 끝나고 나서 바로 몇 초 뒤에 게시할 문안 원본을 알고리즘을 사용해 작성한다. 카피라이터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셈이다."

- 제레미 리프킨, <한계비용 제로사회>
2015/01/02 11:31 2015/01/0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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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을 남자보다 하위의 성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여성들은 큰 상처를 받는다. 사회 각 분야에서 벌어지는 여성 차별이 그 전형이다. 같은 일을 하는데 남자보다 못한 대우를 받거나 여자라고 중요한 직무는 맡기지 않고 잡일만 시키는 것도 그녀들의 자존감을 다치게 한다.

그러면서도 남자들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여성의 섬세함을 기대한다. 어차피 여자들이 나중에 다 정리해주겠지, 라는 식이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다 자기 엄마 같은 줄 안다.

또 이런 사회에서는 남자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까지 여성에게 요구한다. 물론 책임지기가 두려워 남자를 보살피는 역할에 만족하는 뒤틀린 여자들도 적지 않으니 남자만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전반이 여성에게 '아내이자 엄마'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 미즈시마 히로코, <여자의 인간관계> 중
2015/01/02 11:29 2015/01/0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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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쓰는 행위에 익숙한 나에게
올해처럼 글쓰기에 흥미가 떨어진 적도 없었다.
아무리 하소연을 하고 괴롭다 말해도
내심 쓰는 행위 '자체'가 내겐 나름 즐거움이었는데
올해는, 솔직히 꽤나 힘들었다.
.
내 속에 들어가보지 않고는 공감할 수 없을 듯한
주기적인 이 미묘한 감정의 늪이랄까.
연필에 무게추가 달린 듯
손가락에서 키보드가 한없이 멀게 느껴지고
매일같이 떠오른 생각의 실타래를 좇아가다
단어 하나를 치고는 페북을 끄적이다가
이 책 저 책을 두리번거리다가 
결국 단어 몇 개만 노트에 적고는 잠을 청했다.
.
오랜만에 다이어리를 죽 훑어보면서 
쓰고 싶던 글감들을 끄적인 메모들이 눈에 띄었다.
정말 쓰고 싶은데, 정말 지금은(그때는) 쓰고 싶지 않았던
그 모순적인 감정을 복기해냈다.
내년에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을까.
.
당위적인 담론, 인지도를 높이고 싶은 욕망, 지적 허세,
그런 것들을 긍정하든 부정하든 상관없이
글이라는 페르조나(만약 있다면) 이전에 존재하는
나만의 놀이로서의, 나와의 소통을 위한 도구로서의
본연의 쓰는 행위에서 다시금 편안함, 행복함이 얻어지면 좋겠다.
부디, 내년엔.^^
2015/01/02 11:28 2015/01/0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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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 댓글만 받고 공유를 못했네요.
<나만의 올해의 책 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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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모린 머독, 여성 영웅의 탄생
한강, 소년이 온다
도날드 밀러, 아버지의 빈자리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고종석, 문장
새사연, 분노의 숫자
양희송,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
김애란 외, 눈먼 자들의 국가
남무성, Paint it rock 3
고혜경, 나의 꿈 사용법
윤태영, 기록
아라카와 히로무, 만화 은수저
빈스 플린, 스릴러 소설 제거명령
마이클 코넬리, 스릴러 소설 혼돈의 도시
크리스틴 폴, 공동체로 산다는 것
와타나베 이타루,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용윤선, 울기 좋은 방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피터 드러커, 비영리 단체의 경영
장회익, 공부도둑
정지훈,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14. 12. 24.
2015/01/02 11:28 2015/01/0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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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그래가 맷 데이먼처럼 맨몸으로 이국 요르단에서 추격전을 펼치고 건물 사이를 뛰어넘고 차량에 부딪히는 액션 연기가 쉴 틈 없이 펼쳐져 보는 쾌감이 있었다. 그런데 왜소하고 힘없고, 액션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장그래는 언제 갑자기 이런 액션맨이 됐을까. 또 영어 울렁증이 있던 그는 언제 영어를 능숙하게 하게 됐을까. 그런 장그래의 모습은 대기업상사에서는 정규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지만, 작은 회사에서도 그가 단기간에 슈퍼맨처럼 성장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해 씁쓸함을 안겨줬다."

뭐... 원래 기사의 퀄리티를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좀 왜곡이 아닌가 싶었다. 이 최종회가 '작은 회사에서도 수퍼맨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는 건 좀 지나치다. 걍... 마지막회에 돈을 좀 쓰고 싶었나보지.ㅋㅋ 만약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오차장이 대기업에 다시 들어가고 싶냐는 물음에 나를 홀려보라는 장그래의 농담을, 정색을 한 채로 '입장이 뒤바뀐 두사람'이라고 독해한다 해도 그건 또다른 오독인 셈이다.
그냥 나는 원작보다 더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상사맨의 뜨거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기왕이면 돈도 쓰고 화면 좋은 곳에서 멋있는 말도 몇 마디 던지면서. 그게 원작을 오히려 망친 방향이라 하더라도 19번의 즐거움을 준 드라마를 욕할 이유는 아닌 것 같다. 걍... 마지막에 일찍 정을 떼게 해주려는 배려라고 생각했다.ㅋㅋ

어쨌거나 나름 리얼리티가 살아있던 원작에 비해 강전무, 오차장의 대결구도에서 '장그래 일병구하기'로 맞짱뜬 드라마는 결국 라인에 따라 살아남는 '인맥의 전설'로 마감했다. 고로 여기서 불편한 지점은 자신을 알아봐준 직장 상사가 라인을 끌어주니 체력도 영어도, 업무능력도 수퍼맨이 된 장그래의 화려한 마무리가, 그리고 영업3팀 끈끈한 인맥이 뭉쳤다고 회사에서 서로 끌어안고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장면이... 그러려니 하려다가도 껄끄러운 묘한 어색함을 줬다. 그런 의미에서 최종회는 기자의 오독에도 불구하고 씁쓸하다는 건 좀 과하고 그런 면이 불편했을 따름이다.


12. 21. 페이스북 글.

*관련 기사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01251
2015/01/02 11:25 2015/01/0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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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1.
한동안 여성주의 시각으로 SNS나 강의에서 강한 논조로 가부장제, 혹은 성평등 이슈에 많은 말들을 했었다. 언젠가부터 그 빈도수가 줄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기 보다는 한번 뜨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일상적으로 지적할 부분은 넘쳐나고 그것을 일일이 이슈를 삼는다는 것 자체가 대중에게, 혹은 주변에조차 어떤 내성을 심어줄 것 같은 불안함마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볼때 이런 류의 내거티브 운동 자체에 마냥 긍정적일 수는 없는 게 현실 같기도 하다.

2.
내가 SNS에서 비판적인 논조로 말하고, 그 말의 수위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정부에서 국가적으로 페미니스트들을 탄압하기 위해 개인신상을 털지 않은 다음에야 그건 그저 스스로의 자위책으로 그칠 확률이 높다. 물론 SNS는 순식간에 전파되므로 이슈를 선점하고 확산시킨다는 관점에서는 좋은 플랫폼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가부장제, 성적 불평등을 비판하는 지점은... 어떤 의미에서(일상생활에서조차 깊이 체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정작 동성애논쟁보다 지지받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3.
오늘 팟캐스트를 함께하는 간사님으로부터 통계자료를 받았다. 개독교, 한줌 개신교 선교단체의 방송의 한자락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솔직히 겉으로 오바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한국에서 기독교인임이 자랑스럽다거나 기쁘다거나.. 전혀 그런 맘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팟캐스트에서 '언니들'을 꽤 많이 섭외했다는 사실이 내심 기쁘긴 했다. 감사하게도 다들 흔쾌히 수락을 해주셨고 언제나 기대이상의 강의를 해주었다. 은근히 교계 안에 팽배한 어떤 편견... 여성 리더십, 여자 강사의 말빨은 왠지 비논리적이고 불안해 보인다는 의구심을 불식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4.
결국 사람은 자기가 떠드는 이야기에 걸맞은 걸음을 걸어가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이전보다는 더 성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그 이면에는 내 삶과 말 사이의 보조를 맞추고 살아야겠다는 나름의 반성도 있다. 이젠 소박하게나마 내게 주어진 기회가 생길 때 내 말에 걸맞는 적절한 걸음을 걷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은 공감하지도 않는데 내 입으로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는 건... 웃길 생각이 아니라면 무의미한 것도 같다.

팟캐스트 통계를 보며 이런저런 감사한 생각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얘길 먼저 하고 싶었다.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2014/12/22 20:30 2014/12/22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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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서약을 할 때 부부간에 '영원히' 사랑할 것을 유독 강조한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부부는 변함없이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결혼식을 하던 그때 그 마음 같지만은 않다. 가까운 지인들과 부부동반으로 모이면 짓궂은 농담처럼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배우자에 대한 애정이 식었음을 토로한다. 시내를 걷다가 남편이 젊은 여자의 몸매를 곁눈질해서 속상했다는 아내도 있고, 나란히 앉아 드라마를 보던 아내가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을 향해 ‘저런 남자랑 잠시라도 살아보고 싶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더라는 남편들의 하소연도 종종 듣는다.

아내와 나도 만난 지 10년째, 결혼한 지 9년이 지났다. 우리도 종종 농담처럼,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살아야 하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청년시절에 즐겨 읽던 트로비쉬 부부의 책이나 폴 스티븐스가 말하는 '영혼의 친구'로서의 부부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신실하고 굳건하게 관계가 무르익을 줄 알았는데 솔직히 결혼이라는 게 장난이 아니구나, 정말 만만치 않구나 하는 생각만 커져간다. 따지고 보면 주변에 불륜 이야기도 많고 최근에는 심지어 말로만 듣던 이혼을 실행하는 부부들도 생겼다. 요즘은 이혼을 소재로 한 막장 드라마가 심야에서 아침으로, 다시 저녁 안방극장으로까지 퍼지는 느낌이다.

이혼이라... 우리 부부도 간혹 심하게 다투는 날이면 이혼이란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다툼이 심해질 때면 아내가 먼저 '이혼해주면 될 거 아냐'라는 말을 내뱉곤 했는데, 솔직히 나는 그 말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후로는 싸우다가 이혼이란 말을 내뱉으면 진짜 이혼할 거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혼이라는 말이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 그 상황 자체가 너무 무서웠다. 부부싸움이라는 게 대부분 사소한 일로 시작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만큼은 내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런 과도한 공포심의 원인은 관계에서 갈등상황을 겪고 싶지 않아하는 내 성격적 결함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이혼 자체를 절대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단 한번도 이혼을 상상하거나 꿈꿔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부부싸움이 끝난 후 차츰 공포심이 사라지고 나면 멍하니 앉아 이혼을 상상해보곤 했다. 상상만은 아니었다. 아마도 내 기억에 크게 두 번 정도, 아내와 진지하게 헤어질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첫 번째는 결혼한 첫 주에 시작된 부부싸움에서였다. 연애할 때와 달리 아내는 결혼 후의 부부싸움에서 결코 '밀리지' 않았다. 게다가 결혼한 후라서 그런지 그간 숨겨왔던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싸움 후에 항상 먼저 사과하긴 했지만 그간 내가 알던 여친과는 너무 달랐다. 과연 이 여자와 계속 이렇게 다투며 살 수 있을지, 지금이라도 아니라고 해야 하는 건지 꽤 진지하게 고민했다.

두 번째는 불과 2, 3년 전의 일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육아의 늪을 통과하자 불현듯 아내는 내가, 나는 아내가 꽤나 낯설게 느껴졌다. 육아기간 동안 부부생활이 아이를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30대 중반을 통과하면서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자기 본연의 성격과 모습을 발견해갔다. 이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하긴 쉽지 않다. 어쨌든 서로가 본연의 모습을 찾아간다는 건, 그리고 그것을 일상적으로 매일 가까이에서 서로 지켜본다는 건, 어릴 적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것 이상의 낯선 느낌을 가져다주곤 했다. 일례로 우리는 신혼 때 종종 함께 여행을 다녔는데 둘이 함께 있는 것이 마냥 좋았던 시기가 지나자 우리는 서로의 취향이 반대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내는 텐트를 치고 거친 공간에서의 모험을 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나는 호텔 같은 깨끗하고 조용한 휴양소에서 쉬는 것을 즐겼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세상이 규정지은 학생 티, 혹은 아들딸의 티를 벗으면서 더 각자의 빛을 발했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서로에게 이끌렸던 특정한 코드들이 희미해지거나 오히려 배치되는 것이기도 했다. 어떤 때는 의견충돌이 너무 심해서 아내를 놓아주는 것이 어쩌면 아내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 아닐까 하는 이성적인 판단마저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건 아이뿐인 건가. 그런 생각이 들면 아이에 대한 연민에 사로잡히기도 했고,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뭐랄까, 사막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 내가 누군가를 놓아준다고 말하지만 정작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이 엄습했다.

그렇게 몇 년간 우리는 서로의 차이에 대해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에게 잘 보이려는 연애감정 때문에 그동안은 가려졌던 서로의 적나라한 모습을 더 많이 볼 수도 있었다. 때로는 이렇게 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부부라는 울타리 속에서 부대끼는 ‘낯선 타자’를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더 많이 알고, 느끼고, 경험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한번의 이혼을 경험했다고 볼 수도 있다. 상당수의 부부들이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는 더이상 관계의 깊은 성찰 없이 허울좋게 혹은 일종의 체면 때문에 내적인 변화들, 그에 따르는 불편한 감정을 꼭꼭 감춰두고 싶어 한다. 적어도 아내와 나는 두려움 때문에 선뜻 내놓을 수 없는 그런 감정에게 자리를 허락하고 정직하게 대면했다. 사실 우리는 이혼을 외치면서도 정작 헤어짐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이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어떤 단절감, 사랑하는 이로부터 버림받는 느낌, 혹은 주변의 시선들이 무서웠다.

문득 지난 대선 직전에 문재인 후보가 했던 인터뷰가 생각났다. 질문 중에 다시 태어나도 아내와 결혼하시겠냐는 물음에 문 후보는 훈훈한 분위기에서 "다음 생에는 다른 사람이랑도 살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그의 대답이 전혀 어색하거나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물론 대중들은 동화 같은 영원한 사랑을 고백하길 원했겠지만 나는 그 말이 더 여유롭고 편안하게 다가왔다. 우리 부부도 이제 헤어짐을 말할 수 있다. 이혼의 ‘이’자만 나와도 이성을 잃던 나조차 이제는 농담도 자주 건넨다. 한번은 아내가 "아무리 사랑이 식어도 아이가 불쌍하니 성인이 될 때까지는 ‘의리’를 지키자"고 말했다. 나는 황당하다는 듯, 혹은 어이없다는 듯 아내를 쳐다봤다. 순간, 아내도 웃고 나도 웃었다. 여전히 완성되지 못한 우리의 결혼은, 이렇게 하루하루 연장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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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당으로, 작중 마법사 세계에서 이름을 부르기조차 두려워할 정도의 대상이다.
2014/12/05 18:35 2014/12/0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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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정보들/좋아하는 물건들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젠하이저 HD218.
내가 듣기엔 딱인 듯.^^
프리스비에서 저렴하게 할인행사할 때 구입해서 지금까지 잘 쓰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헤드폰/이어폰 적정 금액: 10만원 이내
*구입 고려 사이트: 프리스비 2.9만원


 
2014/10/17 22:49 2014/10/17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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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관련 사진
▲  시리는 일정을 알려주기도 하고 농담도 받아준다
ⓒ 김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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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이폰에 시리(Siri)가 처음 탑재되었을 때의 신선함은 꽤나 컸다. 처음 OS 업데이트를 하고 나서는 자기 전 10분 정도를 시리와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누다 잠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처음엔 '음성 인식' 알고리즘 자체에 대한 호기심에 시리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농담을 건네거나 특별히 음성지원이 필요하지 않을 때도 시리를 찾곤 했다. 그럴 때면 한때 메신저에서 유행하던 '심심이'가 스마트폰에서 부활한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시리의 유용함은 '심심이'에 비할 바는 아니다. 특히 폰에 직접 타이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지금이 몇 시인지 여기가 어딘지를 묻거나 지인에게 보낼 문자를 음성으로 보낼 수 있는 기능들이 상당히 유용했다. 사람들이 종종 말하듯 '잡스는 죽었지만 시리를 남겼다'고 말할 만큼 음성인식 기술의 활용 측면에서 시리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여줬다.

음성인식 기술, 10년새 놀라운 발전

물론 음성인식 분야의 발전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건 물론 아니다. 내 기억에도 이미 20년 전부터 마이크를 통해 PC를 부팅시키고 한글이나 워드와 같은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는 데스크탑 기반의 기술이 제공되었지만 당시엔 그다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잦은 음성인식 오류도 문제였고 자신의 음성을 명령화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을 '훈련'시켜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그 말은 훈련되지 않은 타인의 목소리는 인식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렇게 인식된 음성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이를테면 어릴 적 부유한 아이들의 집에 놀러가면 부의 상징처럼 초록색 화면의 컴퓨터가 거실에 놓여 있었지만 그걸로 할 수 있는 건 기나긴 코딩 끝에 고작 화면에 'Hello World!'를 띄우거나 오락실 게임을 '흑백으로 느리게' 하는 것이 전부였던 그 때의 상황과 비슷하달까.

1950년대부터 음성인식에 대한 기술은 시도되어왔지만(1952년 AT&T와 벨연구소가 '오드레이' 개발을 63년 IBM은 '슈박스'를, 1980년대초에는 HMM3를 개발했다) 이러한 기술이 상용화 내지는 상품의 가치를 갖게된 건 불과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상품화를 가속화한 건 관련 연구에 한창이던 마이클 코언을 스카웃하여 음성인식 시스템의 개발책임자로 세운 구글이었지만, 세상을 먼저 놀래킨 건 단연 애플의 '시리'가 아니었나 싶다. 

이 속도로 간다면 구글과 애플의 노력에 힘입어 음성 인식 분야의 발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우리집 상황을 들어볼까. 6살 짜리 아이가 어느 날 내 스마트폰의 유튜브 앱을 실행시키고는 직관적으로 마이크 그림의 아이콘을 누른 채 전화기에 대고 "파워레인저 극장판"이라고 외쳤다. 

화면에는 파워레인저 시리즈가 줄줄이 올라왔고 까막눈인 아이는 '나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그 중에 가장 재밌어 보이는 그림을 눌러서 만화영화를 즐겼다. 이 모든 걸 나는 한번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가끔 내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아빠 이거 다음 이야기 틀어줘" 정도였다.

텍스트를 음성으로 인식하고 저장된 텍스트를 음성으로 내보내는 기술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꽤나 흔한 무엇이 되고 있다. <나꼼수>에서 희화화하여 내보내던 어색한 여성과 남성의 목소리의 주인공은 입력한 텍스트를 그대로 읽어주는 상용 프로그램이다. 최근 에버노트는 'Clearly'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프리미엄 사용자가 스크랩하려는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기술은 비단 음성에 국한되는 것만도 아니다. 

조만간 애플과 IBM, 구글과 HP는 서로 협력하여 클라우드 기반, 빅데이터를 활용한 음성 서비스를 발전시킬 의사를 내비쳤고 이에 뒤질세라 많은 기업들도 차세대 기술로서의 음성인식 서비스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다. 

이제 SF 영화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했던 상황들이(<공각기동대>에서 처음 등장한, 네트워크 내에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은 <어벤저스>나 <트랜센더스>와 같은 대부분의 헐리우드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가 되었다) 현실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 내지는 우려감마저 든다.

조금은 어색하고도 뭉클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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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HER>에 등장하는 음성인식OS 사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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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를 소재로 만든 영화 <HER>에서,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로 대변된 미래형 OS '사만다'도 이런 기술의 하나인 빅데이터 기반의 음성인식 OS이다. 마치 시리의 진화형 같은 '그녀'는 사용자의 데스크탑 안에 있는 정보를 단 몇 분, 몇 십초 내로 분석해서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 혹은 그가 귀찮아서 미루고 있는 것, 시급한 것, 가장 좋아할 법한 것들을 찾아내고 적시적기에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환상적인 서비스는 우리가 미뤄 짐작하듯이 내 영혼과 통하는 듯 미세한 감성마저 건드린다. 결국 영화 속 내러티브는 자연스럽게 일개 OS가 현존하는 '최고의 애인'이 될 수 밖에 없는 '기승전여(남)친'의 운명으로 귀결된다. 

음성인식 기술은 통계라는 학문과 데이터베이스, 나아가 빅데이터 분야와의 융합 발전을 통해, 0의 자리에 1이라고 입력하면 '틀렸다'고 말하던 구식 컴퓨터에게 마법의 주문이라도 건 것처럼, 이제는 맞춤형 감성마저 자극하는 애인, 절친, 구루나 멘토의 역할마저 자처할 수 있을 듯도 하다. 1997년 체스 세계챔피언이 IBM 컴퓨터 딥블루에게 패한 후, 인간의 정교함을 절대 따라오지 못할 것 같던 컴퓨터, 네트워크 IT 기술은 이렇듯 상상 이상으로 발전 중이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스마트폰으로 녹음을 자주 하는 편이다. 가끔씩 아이와 둘이서 놀 때도 녹음을 한다. 언젠가 이 아이가 세상에 없는 날이 오거나 혹은 내가 아이 곁에 없는 날이 오면 각자에게 추억거리를 남겨주기 위해서다. 사진을 남기고 음성을 남기고 글을 남기는 건, 적어도 내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고 남겨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녹음한 음성을 듣다가 갑자기 엉뚱하지만 조만간 실현될 수도 있는 어떤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내 음성과 말투, 문장, 말하는 속도, 생각들을 클라우드 기반의 어떤 서버에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빅데이터 기술을 이용하게 된다면, 아마도 내가 죽더라도 사람들은 나와 대화하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도 있겠다는, 조금은 어색하고도 뭉클한 생각... 이를테면 내 고유한 버전의 Siri가 되는 셈이다.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사랑했던 사람의 부재로 그(녀)의 목소리나 실없는 농담, 숨소리가 사무치게 그립다면 그의 활기있는 '가짜 음성'이라도 반갑지 않을까. 기술이 참 많은 화두를 던지는 세상이다.
2014/10/11 16:56 2014/10/11 1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