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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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복되는 겸손의 표현과
타인에게서 보이는 겸손의 인지...
그런 걸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소한 편견이 있다.

물론 대놓고 자화자찬, 입만 열면 자기 자랑이
취미생활인 사람들 곁에 있는 것도 피곤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자주 내 관찰심리를 부추긴다.

편견이겠지만, 
그리고 솔직히 말해 나는 겸손이 미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어느 정도의 가면을 
쓰고는 살지만 굵직한 일들에 정직하게 
말하며 살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자주,
스스로 겸손을 표하고 타인의 겸손을 발견해내는
사람들은 겸손 자체에 무딘 사람보다 
어두운 이면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생각.
그것이 여전히 자기 내면에 '이슈'라는 반증.
뭐, 그런 생각... 간간이 한다.
2015/02/24 07:51 2015/02/24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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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제시장을 봤다.
극장에서 볼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버지가 권해서 봤다. 참고로 아버지는 평생에 내게 뭘 하라고 압력을 준 적이 별로 없었기에. 가족과 함께 보러가라고 했지만 가족 대표로 나만 봤다. 영화는 나쁘지 않았다. 특히나 몇몇 장면에서는 눈물을 쏟았다.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자신으로 인해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은 소년의 죄책감. 그리고 네가 이제 가장이니 가족을 보살피라는 아버지의 음성이 평생 한 소년의 어깨를 짓눌렀으리라는 부분이 그러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많은 아버지세대의 평범한 가장들이 부모나 가족을 잃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전쟁 후의 비정상적인 삶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국제시장은 그런 평범한 한국의 아버지세대의 미시사를 관통하고 있다.논객 허지웅으로 인해 이슈가 됐던 대목 "이 어려운 시대를 내 자식들이 겪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부분도 맥락에서 충분히 공감이 갔다. 주인공은 가족에 헌신적이어야 하는 자신의 삶을 팔자처럼 받아들이고 아내에게 편지를 쓰면서 내 아들이 겪는 것보다 낫지 않냐라고 위로하는 맥락의 말이었다.

정작 아버지는 자식들에게는 준엄하게 가오잡고 훈계하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처럼. 그저 뜬금없이 욕을 하거나 대화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뒷걸음질친다. 그런 디테일들이 잘 살아있다고 생각했다.


#2.
하지만 정작 이 영화를 대작의 반열에 놓을 수 없는 부분은 논란이 된 세대 갈등이나 보수-진보갈등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겐. 이 영화의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은 영화가 IT기기로 치자면 '샤오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플 짝퉁.

영화가 끝날 때 나는 이 영화가 <포레스트 검프>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한국판이란 비평만 남았다. 백인이 입어서 사랑받은 옷을 아시아인에게도 입혀본 느낌. 뭐 옷이 좋으면 아시아인도 멋져보이는 그런 느낌. 깃털이 나비가 되고 존 레논이 남진이 되고, 애플이 현대건설로, 이만기로 대체되고 마지막에 아버지를 떠올리며 우는 장면은 라이언 일병이 죽은 상사의 무덤 앞에서 우는 장면과 정확하게 교차했다.

흥행을 위해 영화도 흥행을 담보하는 규칙을 세워서 공용가능한 플랫폼을 짜고 모듈을 만들어서 한국인의 컨텐츠에도 옷처럼 영화를 입히는구나. 게다가 그게 대중에게 먹히기까지 하는구나. 뭐 이런 생각 때문에 진영논쟁, 세대논쟁에는 관심을 기울일 마음의 여유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건 예술인가 상품인가. 어쨌든 짝퉁도 많이 팔리면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씁쓸함이 흘린 눈물을 무색하게 만든다.
2015/02/21 19:56 2015/02/2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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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리스트.(2007~2009년)

분교음악회, 숲이 된 122개의 추억/ 예민 지음 / 샘터사
: 가수 예민의 책. 따뜻함이란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일 것.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지음/ 부키
: 경제학에 있어 내게 새로운 관점을 부여한 장하준 교수의 책. 이후 그의 책을 대부분 공굼하며 읽었다. 그에게 빚진 부분이 많다.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하워드 진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하워드 진과 노암 촘스키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 했으므로 생략하고. 그의 미국사 저서들이 부담스럽다면 이 책이 개론서가 될 것.

에드워드 호퍼/ 롤프 귄터 레너 지음/ 마로니에북스
: 내가 좋아하는 거의 유일한 현대미술가.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스탠리 하우어워스 지음/ 복있는사람
: 현대 기독교 복음주의권의 이슈에 있어 그에게 많은 통찰을 얻었다. 얇지만 깊이 묵상할 책. 

회심/ 짐 월리스 지음 / IVP
: 미국 복음주의에 희망이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짐 월리스'라고 대답할 것.

과학의 지형도/ 고인석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 과학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계기는 고인석 교수의 강의를 통해서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가 나의 과학철학 스승인 셈.

다윈의 식탁/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진화론'사'에 대해 알고 싶다면 단연 장대익 교수의 이 책을 권한다.  

아이의 사생활/ EBS 아이의 사생활 제작팀 지음 / 지식채널
: 언젠가 말한 것처럼. 어줍잖게 철학책 수십권을 읽는 것보다 이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이 인간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 말이 불편하다면 '어줍잖게'에 방점을 찍기를.

뉴욕의사의 백신 영어/ 고수민 지음 / 은행나무
: 사실상 내 영어공부는 이 책과 함께 마무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어를 여전히 공부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길.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는다. 한 개인에게 부여된 무거운 짐에 대해 어느정도의 고마움과 감사, 경의를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관계중심 시간경영/ 황병구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시간관리의 3대 서적으로 나는 7habit과 GTD, 그리고 황병구의 '관계중심 시간경영'을 꼽고 싶다. 

20세기 우리 역사/ 강만길 지음 / 창비
: 한국 현대사를 다시 정리하게 만든 분은 단연 강만길 선생이다. 그의 책은 마치 <매트릭스>에서 빨간약을 먹은 것 같은 충격을 가져다줬다. 그 분의 책 중 입문서로는 이 책이 적절하다.

미국사 산책/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왠 미국사? 게다가 17권이 웬말이냐 라고 말한다면 한국은 미국의 짝퉁이기 때문이다 라고 답해야 할 것 같다. 특히 당신이 개신교인이라면 더더욱. 
2015/02/21 18:54 2015/02/2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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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영화 <아메리칸 셰프>와 미드 <뉴스룸 시즌3>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 소셜네트워크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꽃피운 SNS(Social Network Service) 기반의 하위 문화는 이제는 공기만큼이나 익숙해졌다. 하지만 우리가 SNS를 널리 사용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최근 4~5년 동안 우리는 스마트폰을 들고 경쟁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접속'을 시도했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사생활을 온라인 공간에 올려댔다. SNS 어플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경쟁적으로 고객을 끌어들이려고 애썼다. 놀라운 앱들의 출현과 더불어 수많은 얼리어답터들은 자신의 기호와 생각의 교류를 넘어서, 자신의 일상 사진과 실시간 위치를 공유하고 나아가 사는 곳과 직장, 폰에 저장된 친구들의 연락처도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놀라운 일이지만, 나 또한 SNS를 통한 '긍정적 연결'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첨단 IT기술의 놀라운 발전을 체감하며 SNS라는 '사생활 무한공유 도구'에 적극적으로 나 자신을 내어줬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끊임없이 불거지는 정치적 이슈와 더불어 기존 언론의 폐쇄성이 대중들로 하여금 SNS를 광범위하게 활용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나의 일상 깊이 들어온 SNS라는 도구의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연락이 두절됐던 친구들이 '알 수도 있는 친구' 목록에 나타났고 몇 년간 소식조차 모르던 친구들을 만나도 그들은 내 일상을 두루 꿰고 있었다.

물론 이전에도 인터넷 카페나 클럽, 동호회, 싸이월드, 아이러브스쿨 같은 온라인 네트워크를 위한 인터넷 서비스들이 있었다. 하지만 휴대폰을 통해 전 세계의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콘텐츠와 위치를 공유하는 '이런 류'의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 우리는 1990년대부터 사용하던 '지구촌'이라는 단어를 시공간의 제약 없이 경험한 첫 세대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기술이 문화보다 앞서 제공됐을 때 생기는 '카오스'를 우리는 점점 자주 겪게 될 것 같다. 마치 사진기가 처음 발명됐을 때 현대미술이 혼돈에 빠지고 수십 장의 원본이 가능한 '사진'이라는 존재에 아우라가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듯이 말이다. 또 컨베이어를 이용한 생산으로 대변되는 포드 시스템이 '장인'이라는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생산자의 개념을 허물었듯 이제 기술은 담론과 일상 영역 모두에 깊이 관여하게 됐다.

'셀렙'과 대중의 경계를 허무는 소셜네트워크

그렇다면 소셜네트워크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영화나 미드로 예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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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아메리칸 셰프>에서 주인공의 아들이 올린 트위터로 푸드트럭이 가는 곳마다 트럭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성황을 이룬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서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인 칼 캐스퍼는 자신의 음식을 혹평한 유명 음식 평론가와 트위터로 설전을 벌인다. 하루 만에 그 트위터 내용이 수십만 명에게 알려지게 되자 칼은 레스토랑을 나와서 푸드트럭을 타고 미국을 돌며 쿠바 샌드위치를 만들며 여행을 한다. 그런데 그의 아들은 아버지 이름의 트위터를 개설하고 푸드트럭의 위치를 공유해 트럭이 도착하는 곳마다 샌드위치를 사려는 수십 명의 고객을 끌어들인다. 

칼 캐스퍼의 악명이 도리어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다. 또, 그의 샌드위치를 SNS를 이용하는 무수히 많은 익명의 사용자들이 직접 경험하고 자신들의 주변에 전파한 것이다. 푸드트럭의 명성에 힘입어 칼은 결국 다시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로 복귀한다. 이것은 SNS의 긍정적 효과다. 매스미디어는 정치인이나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들만을 좇아다니고 이슈화 시켰다. 반면 SNS는 '셀렙(유명인을 뜻하는 '셀레브러티'의 줄임말)'과 대중의 경계를 허문다. 누구나 이슈를 실어나를 수 있고 그에 대한 의견을 표할 수도 있다. 

이것은 비단 몇몇 사람들의 기호나 유희적 목적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는 매체가 언급조차 하지 않는 '사건'들이 전파되며 그 사건들이 회자되고 이슈화되고 재조명된다. 실제로 성추행 당한 여성, 가정폭력, 부당한 해고, '묻지마' 폭행 등의 사례들이 매일처럼 SNS에 공유된다. 그로써 억울함을 호소한 이들의 목소리가 언론을 통해 다시 조명돼 경찰의 재수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익명의 SNS 사용자들이 대중의 눈과 귀와 말이 되어 준다. 정말 되어야 할 일, 되었어야 했던 일들을 '되게 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에 대한 판단주체의 부재

기사 관련 사진
▲  <뉴스룸>의 한 장면. 디지털 부서의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앵커는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SNS기반 뉴스앱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물론 SNS가 이런 아름다운 스토리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미드 <뉴스룸> 시즌3에서도 이러한 소셜네트워크 문제를 다룬다. 시즌3의 하이라이트는 방송국 안에 새로 만들어진 디지털 부서와의 마찰에서 비롯된다. 

디지털 부서의 신임 편집자는 뉴스앱을 통해 누구나 기사거리를 실시간으로 올릴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개시했고 그는 그것을 '시민기자단의 정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존 방송국의 보조앵커인 슬로언은 디지털 부서의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확인이 이뤄지지 않은 기사 공유의 위험성에 대해 지적한다. 

셀렙들이 술취해 있는 장소 따위를 공개해 대중이 그곳으로 몰리게 만드는 일이 누군가에겐 폭력적이란 사실도 언급한다. 나아가 공인과 대중의 경계, 뉴스의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에 대한 판단 주체, 즉 전문성을 가진 '데스크'가 기사의 가치를 판단하고 그로 인해 누군가가 다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함을 강조한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생각할 거리들이 있다. 일례로 '훈련되지 않은 다수의 시민들이 기자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상에 배설하듯 뱉어내는 기사거리들'이라고 비판할 때(어떤 의미에서 이는 마치 기성 언론이 <오마이뉴스>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 이는 오래된 논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즉, '전문성', '전문가 그룹'이 가지는 부정적인 이미지, 이를테면 결국은 그들만의 리그였다거나 비전문가들이 침범할 수 없는 내부 언어나 습속같은 진입장벽의 문제들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모든 콘텐츠들은 서로 다른 '수준'을 가지고 있고 일반 대중보다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 콘텐츠를 더 잘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포스트모던 사회, 통섭의 사회로 진입한 우리에게 어떤 권위의식은, 설령 그것이 진짜 권위를 담보로 하더라도 '비호감'으로 치부될 확률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미드 속 스키너(<뉴스룸>의 보도국장)가 가방에 넣어 다니던 책이 <돈키호테>라는 사실은, 이미 넘어온 새 시대를 거스를 수 없다는 측면에서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술의 부정적인 부분을 그저 감수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뉴스룸>의 경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불과 10~20년 전에는 어떤 기자도 갖지 못한 첨단 장비를 탑재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음성을 녹음하고 먼 거리에서도 누군가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원한다면 동영상까지 촬영해 실시간으로 수천만이 접속하는 인터넷에 공유할 수 있다. 

비단 뉴스나 매스미디어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SNS는 이미 매체의 역할을 넘어서고 있고 많은 양의 정보와 사람들의 사생활이 공유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악플에 시달리다 우울증을 앓거나 목숨을 끊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 번 공유된 글과 사진, 영상은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영생'의 힘을 얻는다. 만일 미드의 경고처럼 우리가 '진실'에 관심없이 누군가의 온전한 인격이 아닌 한 단면만을 보고 그것을 이슈화한다면 어떨까. '된장남', '김여사', '개똥녀' 등등 지금도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매체나 소셜네트워크의 속성상 대중은 자극에 민감하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가 더 자극적이지 않을 때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매체는 편파적이면서도 자기 성찰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한 사람에게 주어진 단회적인 사건에 그 사람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곤 그 이미지로 그(녀)를 묶어 버린다. 

유명인이라도 씻어내기 쉽지 않은 편견의 꼬리표가 불특정한 시민에게 붙을 때, 설령 그 사람이 실수가 아닌 잘못을 했더라도 자신의 이미지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기술이 문화를, 사회를, 인간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기술의 부정적인 부분을 감수하기를 바라는 듯하다. '악플에 강해져라, 이슈가 되면 오히려 기회로 삼아라, 긍정의 힘을 믿어라' 이제는 SNS를 하면서도 자기계발서를 읽어야 할 판이다.

*기사 원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83501
2015/02/21 18:26 2015/02/2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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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책 열권을 추천하는 릴레이도 간간이 봤는데 지명이 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책 추천에는 더이상 관심이 없던 터라 흘려 읽었는데, 오늘 누군가의 담벼락에 올라온 제목이 '내 삶에 영향을 준 책 10권'이었고 그 맥락에서 갑자기 혼자 2-30대를 회상하다가 삘 받아서 셀프 릴레이를 해본다. (여기엔 약간의 알코홀과 루시드폴 옵바의 조분조분한 방송의 자극 때문인 듯도 하다.)
솔직히 나는 뽀대나는 책들을 추천하고 싶지만, 20대, 30대의 한 시점에 나를 지배했던 혹은 방향을 흔들었던 책은 따로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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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리스트(1): 2002~2006년

사람의 아들 - 이문열
:스무살 같은 시기에 읽은 책. 비교종교학이나 고등비평에 대한 지적인 의심을 갖게 만든 책.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 고든 맥도날드(IVP)
: 스무살에 읽은 책. 한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세례요한의 정체성, 즉 메시야를 지명하고는 군중의 환호를 뒤로 한 채 사라져가야 했던 한 인간의 내면을 통해 내 신앙을 돌아본 계기가 된 책.

현대의 과학철학 - 앨런 차머스(서광사)
: 2000년 이후 내 이성의 한 축이 되어준 과학철학의 개론서. 흐름을 이해하는데 손색이 없는 책.

단행본 인물과사상 - 강준만(개마고원)
: 내 지적 여정의 시작점에는 강준만 선생이 있었다. 여전히 강준만주의자라 불려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그에게 받은 영향은 여전히 크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1~3 - 강준만(인물과사상)
: 강만길 선생으로부터 시작된 현대사에 대한 고민을 정점으로 이끈 책. 특히 80년대사는 고통스러운 독서의 과정이었다. 

나무야 나무야 - 신영복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더불어 이십대 내 삶의 지향점을 바꾼 책. 

소유의 종말 - 제레미 리프킨(민음사)
: IT기술들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직관적인 감각을 키운 책. 지금 생각해봐도 탁월한 관점을 제시한 책.

평신도 신학1~3 - 송인규(홍성사)
: 내 신앙의 기본기는 송인규 목사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내 신앙의 색깔을 규정짓고 확장을 가능케한 책.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 K.T.판(서광사)
: 과학철학의 제네시스는 비트겐슈타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얇지만 어느 입문서보다 알차다.

세계 사진사 32장면(1826-1955) - 최봉림(디자인하우스)
: 현대미술에서 사진의 역사로 넘어가는 시기에 회자되던 사진학 입문서로 최적. 특히 이론보다는 32장면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최봉림 선생의 내공을 가늠할 수 있는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미치 엘봄(세종서적)
: 너무나 널리 알려져서 한때 냉소의 대상이 되기도 한 책.(심슨가족에서도 에피소드로 다뤄지기도 했다) 신영복 교수의 삶의 전환기에 어떤 교과서였다면 미치 엘봄의 책은 내러티브 속에서 다시한번 경각심을 얻게 되었다고.

춤추는 죽음1,2 - 진중권(세종서적)
: 텍스트 해체와 독설로 유명했던 진중권 교수를 입체적으로 보게만든 책. 더불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과 더불어 '죽음'을 돌아보게된 책.

사진에 관하여 - 수잔 손택(이후)
: 사진예술에 대한 관점을 얻기 위해 잡았다가 수잔 손택이라는 여성작가에 깊게 빠져들게 만든 책. 가장 좋아하는 구절도 이 책에 실려있다. "고통을 받는다는 것과 고통의 이미지가 찍힌 사진을 보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고통의 이미지가 찍힌 사진을 본다고 해서 양심이나 인정을 베풀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더 망가져 버릴 수도 있다." 지금도 애장서 중 하나.

모험으로 사는 인생 - 폴 투르니에(IVP)
: 내 삶의 방향성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저자. 그의 책 모두는 내겐 바이블이기도 했다.

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 - 실벵 다르니(마고북스)
유쾌한 이노베이션 - 톰 켈리 외(세종서적)
: 직장생활 초기에 끝없는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도록 도와준 책. 

재즈처럼 하나님은 - 도널드 밀러(복있는사람)
: 필립 얀시와 더불어 내겐 이름만 보고 책을 사는 저자 중 하나. 제목과 더불어 이 책과 조우한 당시의 행복감이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 스티븐 코비
: 갓 서른 나이에 내 손에 들려진 프랭클린 플래너. 이후 나는 프랭클린 플래너를 사랑한 만큼 스티븐 코비의 책을 즐겼던 것 같다. 당시에 익숙치 않은 회사생활, 일정관리, 업무에 따라 우왕좌왕했던 어설픔을 어서 빨리 해소하고 싶었던 만큼 어떤 원리, 방식에 갈급했다. 자기계발서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요즘이지만 난 지금도 스티븐 코비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하나더. 내가 다이어리 덕후가 된 계기의 책.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드니 로베르, 노암 촘스키(시대의창)
: 노암 촘스키와 하워드 진의 책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점의 전복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 책이 내겐 그 입문서였다. 

아직도 가야할 길 - M. 스콧펙(열음사)
: 스콧펙 박사의 책은 이미 교과서가 되어버려서 설명이 필요없을 듯.

순전한 기독교 - C. S. 루이스(홍성사)
: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출간한 <내가 믿는 기독교>라는 책으로 처음 접한 이 책은 모태신앙에 가까운 내게 있어 기독교에 관한 편견들을 모두 허무는 역할을 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 필립 얀시(IVP)
: 한때 너무 유명해서 더 좋아하지 않았던 책. 복음주의권 최고의 글쟁이라고 생각하는 필립 얀시의 책.

예수 - 톰 라이트(살림)
: 한때 '핫'했던 톰 라이트의 '내공 맛보기'로 적격인 책. BBC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된 본서는 비교적 가볍게 사복음서의 예수의 흔적을 따라갈 수 있다.

스티브잡스의 프리젠테이션 - 김경태(멘토르)
: 아이폰이 나오기도 전, 그의 프리젠테이션에 먼저 매혹되었다. 키노트의 정석.

평화의 얼굴 - 김두식(교양인)
: 김두식 교수님이 비교적 덜 유명하던 시기에 스펀지가 잉크를 빨아들이듯 읽은 책. 서평으로도 인연이 있는 책.

스노우캣 다이어리 - 권윤주
: 내 30대의 귀차니즘은... 스노우캣으로부터 기인했다고 본다.

남자 vs. 남자 - 정혜신(개마고원)
: 김어준, 강준만, 유시민, 정동영, 이외수 등 당시 진보진영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읽었다가 본격적으로 정혜신빠가 되었다. 이를테면 내겐 <정혜신빠 비긴즈> 도서.


2015. 2. 19. 업데이트.
2015/02/19 20:25 2015/02/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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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저가형 태블릿으로 갈아타게 되었다.
헌데, 이녀석 은근 매력있다. H/W 사양도 뛰어나고.
특히 가격대비 성능면에서 그리고 디자인 요소도 은근 나쁘지 않다.
게다가 400g의 중량에서 배터리 용량은 대만족 수준.

*왜 요가2가 나왔는데 1을 샀냐고 물으신다면. 싸.니.까...라고 답하겠다.

*구입처: 옥션
*태블릿 적정 금액: 80만원 내외(아이패드 기준이므로.-_-;;)
*구매가격: 19.8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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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시간 지속 배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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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치형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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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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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북을 보기에도 적당한 레티나급.



2015/02/02 21:19 2015/02/02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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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탁월한 내 블루투스 헤드폰, 나의 리베로 아니고 노베로.
엔트리급이라고 했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대만족 수준.
물론, 지금은 판매중단 상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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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2 21:04 2015/02/0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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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1.
살면서 상당기간을 비판글을 썼다.
자음과 모음들을 모아 춤을 추게 만들었다.
실명으로, 텍스트를 쪼개가며 글쓰는 것,
쓰여진 글을 풀어서 되돌려 주는 것.
굴욕적인 느낌을 갖게 만드는 것.
더 강한 답글을 만나면 살짝 흥분되기도 했다.
.
2.
글에 레벨을 따지지면 누군가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관'을 세우는 것보다) 쉬운 경우가 잦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이 
바둑이나 장기를 옆에서 훈수 두듯이 당사자에게
안 보이는 것들이 옆에선 매직아이처럼 도드라진다.
.
3.
여러가지 이유로.
나는 더이상 누군가에게 비판글을 쓰지 않게 됐다.
전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한주에 한두명은 거론했던 과거에 비해
나는 참 글에 있어서는 평화주의자가 된 거 같다.
솔직히 요즘은,
싫어하는 누군가를 비판하기 보다는
좋아하는 누군가를 옹호하는 컨텐츠를 만들고 있다.
.
4. 
사실 그 작업은 비판글을 쓰는 것처럼 쉽지 않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오해의 소지도 있고, 일정부분 정치적인 타협도 필요하다.
나아가 정작 당사자가 원치 않을 때도 있다.
내가 누군가를 부정하는 일은 비교적 쉽게 
주변에서 받아들여지지만(적어도 '다름'을 인정받지만)
내가 누군가를 긍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의심의 눈초리와 부정적인 반응,
박쥐, 회색인간, 양다리 등등
냉정하게 말해 나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곤 한다.
.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군가를 긍정하는 일,
좋아하는 누군가를 옹호하는 것을 내 지향점으로 삼는다.
그것은, 내게 어떤 거룩한 소명이라거나 
큰 그림에서의 의무 같은 것이라기 보다는...
여러가지 이유로 비판글을 쓰지 않게 되었기에
불구자의, 대안적인 몸부림에 가깝다. 
마치 조폭이나 강력계 형사가 칼이나 피를 보면
몸이 굳어버려 더이상 '영업'을 못하게 된 것과 유사하다.
.
6.
물론, 
여전히 비판적인 문구들이 유희처럼 머리속을 맴돌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유희를 넘어선 현기증이 나를 누른다.
글쓰기가 내 삶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면 나는 살기 위해
평화주의자'연' 해야 한다. 그렇게 걸어가야 한다.
.
7.
김성근 감독.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내게도 그는 참 높아 보였다.
각설하고 내가 꽂힌 그의 고매한 리더십은 바로,
'내 선수 중에 버릴 사람은 한명도 없다. 모두 쓸모가 있다.'
는 인식에서 오는 것이었다. 인간은 모두 쓸모가 있다.
사실 '쓸모'라는 것은 인격체에 부여된 최소한의 효용성이다.
내가 그에게서 취한 화두는,
나에게만 보이는(그런 류가 존재한다면)
그 효용성이라는 것을 힘.써. 드러내자는 거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내 글쓰기의 즐거움을 되찾기 위해.
...
요즘 그런 생각하고 산다. 
뭐... 그런 생각하느라 글은 별로 안 쓰고 산다.
2015/01/28 20:43 2015/01/28 20:43
Posted
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이것은, 사회에서 중년 남성이 젊은 여성과 마주하면서 생기는 '설렘'에 관한 단상이다. 물론 요즘 불거진 사건이 화두를 던져줬지만 딱히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나아가 그 사건에 대한 윤리적, 법적 판단에 관한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일반적인, 그리고 일상적인 중년 아저씨의 관찰기다.

사실 젊은 여성과의 관계의 발전을 통해 설렘을 경험하는 중년 남성의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롤리타 같은 소설에서부터 데미지나 연인 같은 영화. 그리고 매일 보게되는 포탈 뉴스에서, 직장에서, 동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 하나둘은 일상적으로 듣게 된다. 흥미롭게도 나는 사건의 주인공이 되는 중년 남성의 대부분이, 참 평범한 사람들이란 느낌을 자주 받는다. 여자를 특별히 밝힌다거나 평소에 업소에 드나든다거나 질퍽한 농담을 일삼았던 이들이 아닌. 

대체로 포탈에서 기사화되는 사건에서 많은 여성들은 문제의 남성을 변태로 치부하거나 가정있는 남자의 파렴치한 일탈, 욕망으로 치부하는데, 나는 많은 경우 그런 단순한 도식으로는 그려지지 않는 중년 남자의 복잡한 욕구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주변 다수의 여성들은 아빠 오빠 빼고 모든 남성은 여성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여긴다고 생각하지만. (물론 일정부분 그건 사실이다) 아무튼 앞서 말한 것을 '평범한 남자의 복잡한 욕구'라고 정의하자.

신정아가 쓴 <4001>을 보면서도 느꼈고 이번에 공개된 문제의 카톡 문자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사회에서 만난 젊은 여성에게 설렘을 느끼는 중년 남성의 욕구는 크게 3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물론 '몸'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남성들이 젊은 여성의 몸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다. 남성은 마치 노년까지 사춘기시절의 성적 욕구를 가진다고 치부하는데 난 잘 모르겠다. 많은 경우 주변 남성들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고.

두번째는 '젊음'에 관한 것이다. 많은 중년, 나아가 노년의 남성들도 마음만은 젊은 줄 안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이십대 여성이 '아저씨'라고 부를 때, 사회에서 친구처럼 대하고픈 여성이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 많은 중년의 피터팬들은 심정적 지옥을 경험한다. 주고받은 대화나 문자에서 젊은 여성이 허울없이 대할 때, 서로 반말을 주고받거나 친구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 중년 남성은 '설렌다' (사실 나는 이 '젊음'에 대한 욕망이 몸에 대한 욕망보다 크다에 내 오른팔을 건다.^^)

마지막은 '도와주고 싶은' 욕구에 관한 것이다. 대체로 여성에 비해 남성은 존경받고 싶은 욕구, 도와주고 나서 고맙다는 칭찬을 듣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나는 이것이, 사회적 욕망이 높은 젊은 여성과 도와주고 싶은 중년 남성의 니즈가 통하는 지점이라고 본다. 소림사에 갓들어온 동자승, 키다리 아저씨, 사조수 관계 등 남성은 자신이 미숙한 어떤 존재를 다듬어가는 과정에 희열을 느끼는 부분이 분명 있다. 가르치면서 통제하려는 욕구, 그것으로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 같은 것 말이다.

여기에는 한국에서 모범생으로 커온 평범한 남성들의 일상적인 욕구의 자제, 직장생활에서의 수직적 관계 속에서의 스트레스, 표현의 억압 등의 이슈들이 있다. 뭐, 그런 이야기는 김두식 교수님의 책 <욕망해도 괜찮아>에서 충분히 이야기된 바이니...

나는 이 '설렘'의 존재에 대해 양자가 인지하는 것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인지하는 '설렘'은 자연스럽게 욕망의 본질에서 빗나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지하게된 복잡한 욕망은 그 감정, 행동의 방향성을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게 만들므로 그 설렘의 최종 책임을 지는 것에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정서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매일 삿대질하는 포탈 뉴스에서 경험하듯. 

뭐, 이런 구질구질한 생각을 잠간 해봤다...-_-;;;

페북. 2015. 1. 21.
2015/01/21 23:00 2015/01/2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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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육아일기
설날 세배 후에 세뱃돈을 챙긴 성하.
며느리는 수고했다고 큰아버지에게 용돈을 받고,
결국 아빠만 빈손으로 돌아옴. 
---
아빠: 성하야, 아빠 만원만 줘라. 
성하: 싫어. (..라고 하며 아빠 눈치를 살핌)
아빠: 아빠는 오늘 받은 돈도 없잖아.ㅠㅠ
성하: ...
(10초의 망설임 끝에 만원짜리를 던져줌.-_-++)
아빠: (던진 돈을 공중에서 붙잡으며) 고마워.
성하: 아빠는 오늘 한푼도 못 받았으니까.
아빠: 흙... 성하 쵝오!
(엄마 등장...ㅋㅋㅋ)
엄마: 성하야 엄마도 줘라. 
성하: (뭐지 이건...이라는 표정)
엄마: 성하는 맨날 아빠만 좋아하구! 엄만 안주구!
성하: 안돼. (햄릿의 고뇌가 느껴지는 순간...)
엄마: 줘라~~잉.
성하: ...
(다시 10초의 망설임 끝에...)
성하: (아빠에게) 아빠 만원 다시줘. 엄마땜에 안되겠어.
아빠: 야... -_-+++++
2015/01/02 11:33 2015/01/02 1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