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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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떤 분에게 약속 확인 문자 보내는데 말미에 "확인사살...^^"이라고 썼다. 쓰고보니 무시무시한 말. 사실 우리가 쓰는 말 중 군사용어들이 참 많다. 하다못해 평화주의자를 자청하는 기독인들도 성경에 나와있다며 전쟁, 전투, 싸움 등등 쉽게 군사적인 용어들을 남발한다.

 

그러고 보면 엔터테이닝 같은 축구도 전쟁이고 나가수도 가수왕들의 전쟁이고 수퍼스타K 같은 서바이벌 프로도 전쟁이다. 그것 뿐이랴, 회사 생활도, 자녀교육도 죄다 전쟁이다. 뭐 다 갖다붙이면 일상의 소소한 일들부터 큰 결정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존 자체가 전쟁이고 타자와의 피터지는 싸움이다.

 

나는 말과 삶의 일치를 꿈꾸는 편이지만 삶의 형편들이 말로 터져나옴과 동시에 말의 오염이 삶을 오염시키기도 한다고 믿는 편이다. 내가 삶 일체를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내 모든 감정과 감각기관, 세포 하나하나가 긴장하기 마련이다. 약속 확인 하나조차 사살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2013/01/18 22:04 2013/01/18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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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펑크락'이 유형했던 시기가 있었다. 국내에서도 삐삐밴드나 이후 일부 아이돌 그룹들이 펑크락을 구사했는데. 펑크락은 맥락이 중요하다.

1.

한동안 록음악은 스튜디오 녹음기술, 전자기기 등의 발전과 더불어 그 사운드 스케일이 풍성해지다 못해 점점 난해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개인 테크닉의 절정인 기타 속주나 곡의 복잡함으로 달려간 프로그레시브록, 사운드의 웅장함을 보여주는 오케스트라 수준의 편곡들은 점점 대중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어느 순간 록밴드 자신들도 장르적 식상함을 느끼게 되었다.

모던, 얼터너티브에 이어 펑크록이 90년대에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는 앞서말한대로 이전세대의 난해한 음악, 기교적인 연주의 식상함에서 비롯되었다. 연주의 대가들이 제대로 칠 수 있는 독주... 부분도 과감히 '연주하지 않고' 단순 코드만 심플하게 퉁퉁 퉁겨내고 보컬도 기교를 버리고 무성의하게 노래를 불러댔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 코드 진행, 단순 연주, 무성의한 보컬로 록음악을 펑크, 펑키 스타일로 변질시켰지만 그 이면에는 록의 이전 역사에 대한 '저항',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갈급함이 숨겨져 있었다.

재밌게도 이런 장르적 변화로 인해 록음악계는 이제 '개나 소나' 밴드를 하게 되었다. 이전 장르에서 록음악은, 고수들 실력의 향연이었다면 펑크는 기타만 칠 줄 알면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단순함'이 록음악의 외연을 키웠다. 문제는 저항의 의미로 실력을 보여주지 않던 이들과 원래 실력이 없어서 단순 연주밖에 못하는 이들의 혼재된 상황. 하지만 후자는 펑크의 유행이 다하자 자연스레 록계에서 사라져갔다.

2.
나는 개인적으로 경구류의 단문이나 알맹이 없이 글쓰기 자체를 논하는 글들이 불편하다. 경구의 경우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하거나 반대로 동의되지 않는 수많은 반론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은 이것들이 대체로 '펑크록'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펑크록이 감동을 주는 건, 그 대상이 록음악이라는 무림의 고수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어떤 의도된 단순 코드는 그들(고수)이기 때문에 감동을 주는 것이지 '그들'이 아닌 이들이 연주하는 단순코드들은 그냥 '하수'들의 그렇고 그런 연주들에 불과하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습작을 하는 많은 이들이 경구 쓰기에 치중하거나 글쓰기론을 설파하는 것에 자주 아쉬움 내지는 유감스러운 마음이 든다.

베스트셀러 작가나 학계가 인정하는 고수, 아니면 '아브라함 링컨'(오늘은 초류향이라고 하려다 참음) 같은 위인이 아닌데 너무나도 당연하거나 혹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단문들을 쓰는 사람들에게 나는 좀더 열심히 자기 생각을 풀어쓰는데 시간과 정성을 들이기를 권하고 싶다. 차라리 문법이나 논리가 잘 안 맞더라도 성실하게 자신의 정서나 논리를 서술해간 글들이 나는 '사랑스럽다'. 그런 글들에는 그 '질'적 완성도와 무관하게 정말 애정이 간다.

20년을 감옥에서 복역한 신영복 교수의 '나는 걷고싶다'라는 단 한마디의 말이 영혼 깊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박범신 같은 작가가 기고한 짧은 칼럼으로도 그 이상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듯. 경구 한두줄의 힘은, 오랜 기간동안 성실함으로 갈고 닦아진 글과 삶의 궤적이 보장되어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내가 펑크록을 바라보는 씁쓸함의 이유이기도 하다.
2013/01/14 22:03 2013/01/14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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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교회 사역자들이 한국교회의 세속화에 대해 비판한다. 대체로 나는 그 목소리에 공감하지만 때때로 목회자들이 세속/비세속을 정말 제대로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고 주식도 안 하고 룸싸롱도 안 가는 다수의 목회자들에게 있어 성/속 개념은 명확할 것이다. 물론 기업의 CEO급 목사들은 술도 먹고 주식도 하고 부동산도 사고 룸싸롱도 가고 바람도 피우시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그런 분들은 다수가 정죄하니 오늘은 대상에서 제외하고. (물론 드러나지 않은 몇몇 분들의 루머들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검증도 오늘은 제외) 대신, 자신이 처음부터 근처에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보다 명확하게 세속의 금을 그을 줄 아는 이들의 자기의에 대한 이야기다.

 

예수는 길을 가다가 우물가에서 이방 여인에게 수작을 건다. 알고 보니 여인은 남편이 다섯인 부정한 사람이었다. 예수는 긴 대화를 주고 받다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온다"는 복음과 그 메시야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요한복음 4장)

 

대체로 목회자들은 후반에 드러난 교훈에 꽂힐테지만 나같은 세속인은 초반에 예수님이 수작을 걸면서 주고받는 언어유희와, 그 대화를 지켜보는 제자들의 초조함(기이히 여김)에 꽂힌다. 땡볕에 물을 길으러 온 여인은 누가봐도 '문제의 여자'임을 알텐데 예수는 겁도 없이 그녀에게 무장해제의 자세로 대화를 시도한다.

 

예를 들면 한 목사가 길을 가다가 너무 목이 말라서 들어간 곳이 알고보니 영등포 집창촌 골목이었다고 치자. 아마 그는 깜짝 놀라 그곳을 뛰쳐나왔을 것이다. 혹은 물을 달라고 했다가 물을 가져온 여인의 옷차림, 행색이나 말투를 경험하고는 대화를 시도하지 않거나 반대로 그 길에서 벗어나라고 무섭게 훈계했을 수도 있다. 솔직히 나라면 훈계까지는 아니라도 그곳을 피했거나 어쩔 수 없이 물만 얻어먹으면서도 불결하다는 느낌을 은연중에 표했을 것 같다.

 

예수의 뛰어남, 고결함은 자신이 구원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에 대한 존재적인 사랑이다. 우리가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이슈를 접했을 때 자동적으로 하게되는 성속에 대한 판단 '이전'부터 자리잡은 그 영혼 자체에 대한 애정과 관심 같은 것 말이다. 그는 우리나라로 치면 친일파 앞잡이 같은 존재인 삭개오의 집에가서도 밥을 먹으며 희희낙낙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가.

 

물론 모범시민, 모범목회자들에게 알아서 악의 길로 달려들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모범적 성장 배경에서 배제시킨, 이른바 자기의에 기준한 판단으로 세속을 규정짓고 세속적인 삶에 불결함을 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세속주의를 비판하는 상당수의 종교인들, 특히 개신교 배경의 목회자들에게서 예수의 얼굴보다는 항상 아버지와 함께 살던 탕자의 형의 얼굴이 자주 오버랩된다.

 

보수진영의 목회자들이 동성애자, 불신자, 미혼모, 혼전 동거관계에 대해 강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보진영의 목회자들도 쉽게 보수파 정치인과 논객들, 기업, 언론인들의 삶을 불결하게 여긴다.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또 가진자의 악행의 규모면에서 분명 동의되는 지점이 있지만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 그 개별적인 인간 자체에 성속의 선을 너무 짙게 그어버리는 건 아닌가 우려감도 든다.

 

목회자 뿐 아니다. 만인이 제사장이라 믿는 개신교인 모두가 예수의 삶을 따른다면. 적어도 자신이 가지 않은 길을 가지고 '자기의'로 삼는 일을 그치고 자신이 걸은 길에 대해 겸손히 동참을 호소해야 하지 않을까. 세속주의에 대해 묵혀뒀던 나의 생각은 그렇다.

 

2013년 1월 7일

2013/01/07 22:02 2013/01/0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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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진보진영 사람들이 오해하는 (혹은 직면하고 싶어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마치 진보와 보수의 싸움을 20:80, 혹은 1:99로 분리해서 1%의 기득권층과의 대결이라고 인식한다는 점이다. 그 말도 딱히 틀린 건 아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조사결과 1위가 박정희이고 2위가 노무현이였다. (혹 반대일수도 있다) 지금도 박근혜는 나라 국민의 절반이 그녀를 지지한다. 1%의 기득권층, 그녀의 집권으로 인해 실질적 혜택을 보는 이들 외에도 50배에 준하는 지지자가 내 주변에 절반이 있다는 말이다.

 

내가 이해하는 그분들의 논리는 이렇다. "정치나 경제와 같은 나라의 큰 일은 해본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국가가 말리는 일을 굳이 왜 하고 사냐. 나는 평생을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착실하게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내가 스스로에 떳떳하고 나라가 부강해지면 그게 애국이요 바른 정치 아니겠냐."

 

"맨날 공부도 안하고 일도 안 하고 거리에 나가서 기물이나 부수고 경찰에 대항하고 국가나 기업을 위태롭게 만드는 게 더 위험하다. 동남아시아와 남미의 못사는 나라들을 봐라. 우리는 항상 미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끊임없는 수출과 교류를 통해 유지되는 나라다. 자원은 없고 인구가 많으니 한사람 한사람이 경쟁력을 쌓으려고 노력이나 할 것이지 왜 되지도 않는 국가 권력에 맞서려고 하느냐..."

 

사실 상 50%에 육박하는 보수편향적 국민들의 논리는 머리 속에서 명제나 수학, 말재주로 설득되는 류의 것이 아니다. 그 논리는 그들의 삶이자 일상이며 신념이며 철학이다. 그들에게 보수를 냉소하고 "개새끼, 씹새끼" 비난할 때 국민의 절반은 정서적으로 마치 자신의 삶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물론 이들은 주로 젊은 세대보다는 나이든 세대들일 것이다.)

 

이 50%의 국민들은 기득권층이 뭔가를 베풀지 않아도 국가의 존재, 대기업의 존재, 판검사, 의사, 국회의원등 그들이 우러러보는 대상이 그저 그 자리에 존재만 해도 자부심을 느끼는 부류다. 기득권층은 매체와 스포츠, 오락 사업에 적절한 정치적 암시만 줘도 그들은 자식들에게까지 보수적 가치관을 대물림한다. 자식이 국가에 의해 희생되거나 가족이 기업에서 해고 또는 질병을 얻거나,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극도의 빈곤과 소외를 경험하지 않는 한.

 

한때 나는 논리에 미쳐 있었다. 텍스트는 걸리면 무조건 해체시키는 게 논객의 자질? 실력이라 여기던 청년기를 보냈다. 말빨, 글빨 좋은 사람들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물론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매순간 주어진 텍스트는 검증하고 해체하고 재구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텍스트를 생산하는 것은 고된 일상을 몸뚱이로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다른 논리를 내세울 때 '분노의 대가리굴리기(논리)'로만 반응하는 것에 회의감을 갖곤 한다.

 

내 부모세대와 내 직장 선후배, 내 교회의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 50%의 보수주의자들이다. 그래. 나는 결코 1%와의 논리 싸움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게 내 요즘의 고민이다.

 

 

2012년 12월 17일

2012/12/17 21:57 2012/12/17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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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대첩으로 시끄러웠던 오늘.


나는 부산 부모님 집에 내려가서 그간 어머니가 사용하지 못하던 컴퓨터와 TV, 휴대폰 등을 설치했다. 신혼 때 인터넷용으로 조립해드린 컴퓨터가 드디어 맛이 갔다. 집에와서 미리 배송한 컴퓨터를 설치하고 TV 설정도 고치고 휴대폰도 업데이트에 어머니가 원하시는 앱들을 깔아드렸더니 얼추 하루가 간다. 페북과 인터넷 뉴스에서는 마지막 선거 유세로 뜨거운 오늘. 어머니의 IT기기 설치기사로 하루를 보낸 게 나는 나름 흡족하다. 저녁 아내와 통화했더니 '설치기사님, 설치 다 했으면 내일 빨리 본사로 복귀하라'고 농담을 막 던졌다.ㅋㅋ 왠지 훈훈한 밤이다.


p.s) 나도 그랬지만 오늘은 아내도 광화문에 많이 가고 싶었을텐데 주말을 육아로 소진한 아내에게 감사를. (어제오늘 상당히 멘붕일텐데.ㅋㅋㅋㅋ)

 

 

2012년 12월 15일

2012/12/15 23:02 2012/12/1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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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초기에는 일상적으로 paperless의 삶이 다소 불편했는데 (태블릿으로 보기, 찾기, 관리) 한 1년 정도 지나고 보니 충분히 그 가능성 타진에 검증이 된 터.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책들을 다 전자문서화 하고 있다. 박스단위로 나간 책들은 전자책으로 척척척 변환되고 만난 사람들의 명함도 스캔본으로 에버노트에 강의나 회의는 녹음파일로 정리되고 있다. 다소 의외인 것은 초기에 기대했던 ePub 형식의 전자책은 1년간 써보니 참 불편한 부분이 많다. 특히 라이센스 문제로 인한 보안정책이 개인의 편리성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나 할까. 결국 종이책 값+스캔 비용을 더 주더라도 스캔북의 형태로 책을 받는 것이 더 유익해보인다. 그나저나 누가(환경론자 오어 썸원) 계산 좀 해주면 좋겠다. 아이패드를 생산하여 문서를 전자화해서 볼 때와 종이책을 생산할 때 얼마나 생태계 측면에서 환경 오염의 차이가 나는지 말이다. 혹은 아이패드 몇년을 써야 생태계를 더 망치는 선택이 되지 않는지 같은 것... 그런 게 나오면 개념소비자들은 자기 디지털기기의 교체 주기에 대한 경각심을 더 갖지 않을지.

2012년 12월 12일

2012/12/12 23:25 2012/12/12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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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년 전까지 나는 절대적으로 독서량이 나보다 많은 사람들에 대한 자격지심 내지는 열등감 같은 게 있었다. 게다가 교수나 신학자 등등 좀더 학구적인 어떤 직함을 달고 있으면 더더욱 그런 열등감이 가중되곤 했다. 내 기억으로 2008년 정도까지 나는 내 열등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른바 '비전문가'의 설움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은 마치 검의 양날 같아서 내 지식이 비교우위에 속하면 뭔가 상대를 대할 때 여유(이를테면 하수를 대할 때의 어떤 느슨함 같은)가 생기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대체로 내가 부러움을 느꼈던 사람들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학파의 사람들이었다. 어찌나 독서량이 넓고 깊은지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면 귀를 쫑끗 세우고 그들의 독서편력을, 그 저자와 그 유명한 책 리스트를 어서 섭렵해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던 시절도 있었다. 허나 2004년에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런 욕망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도저히 회사생활을 하면서 공부가 업인 사람들을 쫓아갈 수 없었고 나는 어느 순간 그들과 보조를 맞추려던 노력을 접고 먼발치에서 그들의 지식 달음질을 쳐다봐야만 했다.

7-8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 돌아보면 나는 가끔 내가 왜 그렇게 지식 습득에 연연했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쩌면 그것은 방대한 독서가 세상을 바꾸기는 커녕 한사람 조차 바꾸지 못하더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례로 10년 전에도 특정 저자와 책들을 신봉하던 부류의 사람들은 지금도 비슷한 이야기를 인용하곤 한다. 더 나은 번역과 더 명확한 저자의 이해, 더 넓고 깊어진 지식으로 무장했지만 그 페이스를 벗어난 내 입장에서 그들의 진보는 때론 '고상한 기호', 좀더 나쁘게 말해서 '머리쓰는 취미생활'같아 보이기도 한다.

여전히 나는 일정 수준의 독서를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다. 사실상 책을 통해 얻는 것들이 많다. 책을 대하는 내 태도는 그간 자주 양가감정을 수반하곤 했다. 최근에야 책을 대하는 내 태도가 조금은 편안하고도 확고해졌다. 독서는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삶의 가치에 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독서에 바친다. 자신의 입이 특정 저자의 입이 되고 그 저자의 논리를 십분 이해하는 것에 전율한다. 아쉽게도 나는 그것이 아무리 대단한 이해라 해도 일종의 삶의 낭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로고스의 육화가 아니라 육체의 로고스화. 의외로 육체의 로고스화를 실천하는 이들이 많다.

20대에 나는 스폰지가 잉크를 빨아들이듯 (파형으로서의 교육에 앞서) 주형, 주입 그 자체도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비평에 앞서 그 담론 자체에 깊이 침잠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 말이다. 섣부른 반항심으로 정작 그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헛발질을 하는 것을 경계하고 싶었다. 허나 30대를 지나 40대를 향해 달려가는 시기에도 10, 20대의 뇌처럼 저자의 로고스화를 꿈꾼다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로고스가 자신을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할 거라 생각했던 게 아니던가. 삶에서 더 진일보한 걸음을 걷기 위해 잠시 머뭇거리며 정리된 생각을 얻고 싶었던 게 아니던가. 시간이 흘러도 변하는 게 없어서일까... 그 진정성이 훼손되고 있다.

결국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이 그 사람의 어떤 진정성을 대변한다고 볼 때 '독서'라는 행위로 대변되는 지식의 분량은 이제 내겐 그다지 '이슈'가 되지 못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저명한 저자의 컬렉션을 모으고 그것을 독해하는 기호와 애로영화들을 수집하고 여배우들의 특징을 기똥차게 표현하는 두 부류 사람들의 차이를 나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텍스트 안에서만 놀 거라면 둘 다 내가 보기엔 '덕후'일 뿐이다.

2012년 12월 3일
2012/12/03 21:56 2012/12/03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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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십대의 나는 "사람이 희망이다"라거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같은 말이 불편했다. 대학생 시절 사회구조적인 모순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사람 개개인의 관계성보다는 '구조적인 개선'이 시급하고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이러한 생각은 진중권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진중권에 따르면, 한국사회의 가장 문제가 혁명이나 근대화 과정의 갈등을 경험하지 않고 근현대 사상을 동시대에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에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모던을 건너뛰고 포스트모던 담론화에 치중한 나머지 도리어 사회 전 영역에서 논리적인 설득과 합리적인 사고, 이를 통한 합의점에 도달하는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근대 이전으로 회귀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그래서 그 글 제목이 '백 투더 퓨처'였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혈연, 지연을 극복하고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실명으로 상대의 논리적인 맹점을 치열하게 비판하는 것이 정당하며 나아가 그것이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그가 가혹할 정도의 표현을 썼건 안 썼건 자신의 견해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라면 상호가 흔쾌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

미국에서 비롯된 자본주의 스타 시스템의 맹점으로도 보이는 인간 - 물론 이것은 소수의 선택받은 인간에 국한되지만 - 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인간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연줄들을 끊고 어떤 개인이건 이상적 시스템 안에서 평등하고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 최장집 교수가 주장하는 보스 정치에서 정당 정치로의 이행,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논지의 말미에 붙이는 "구조적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선행되야" 한다는 이야기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2.
그런 생각에 꽂혀서인지. 나는 지인들에게조차 '개새끼'라고 욕을 먹더라도 정당한 비판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크고 작은 논쟁에 비교적 적극적이었다. (어머니와 누나는 언제부턴가 나를 "쌈닭"이라고 놀리기 시작했다.ㅠㅠ) 인간관계는 당연히 이슈 중심, 모임 중심으로 흘러갔고 나의 모든 시간은 어떤 막연한 목적성을 가진 조직(?)들에 사용되었다. 당연히 그런 공간에서조차 토론은 살벌했고 온오프를 오가는 상호 비판은 자주 작은 모임에서조차 분리에 분리를 거듭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나는 심정적으로 누군가와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성격이었다. 연애를 할 때도 헤어질 것 같은 혹은 헤어져야 할 것 같은 상황이 올까봐 미리 선을 긋곤 했다. 나의 논리와 나의 성품은 점점 충돌하기에 이르렀고 어느 순간 나는 멘붕이 되어 '일' 혹은 '이슈'와 관련된 인간관계를 버렸다.

그 시기 내가 뒤늦게 깨달은 충격적인 사실은 내게 친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동료? 동역자? 뭐 이런 건 있는데 그냥 만나 술한잔 하거나 어깨동무하고 들어가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거나 당구를 치거나. 뭐가 됐든 '그냥' 연락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 알았던 친구들에게 당시의 난 항상 '바쁜 사람' 뭔가 모임이 많은 사람, 놀자고 하면 몇 개의 모임 이름을 대며 머리를 긁적이며 뒷걸음치는 사람일 뿐. 그러나 이제는 일이 없으면 마땅히 전화를 걸만한 사람조차 없었다.

친구도 없고(사실, 없었다기 보다 내가 그들을 밀어내버린) 제대로 놀아본 적도 없는. 여행을 다녀본 적도 없고 시간이 나면 모임으로 약속을 빼곡히 채우던 나의 캠퍼스 생활. 그 끝물에 나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내 모습을 발견했다.

#3.
나이 서른을 넘기고서야 나는 새삼 친구의 중요성을 느꼈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직장 생활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나는 조금더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책으로만 만났던 사회 이슈들은 그 안에서 환원되지 않는 각기 다른 배경의 사람들의 이슈로 가득했다. 내가 생각했던 논리게임은 어떤 이에게는 정당했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부당하게 다가옴을 알았다.

구조적인 개혁, 변화에 꽂혀 있던 나는 사회문제나 조직의 문제를 보면서 결국 이것이 사람의 문제라는 생각을 좀더 하게 되었다. 특히 몇몇 사람들이 조직 전반에 좋은 방향성을 제시하는가 하면 반대로 몇몇 사람들에 의해 어떤 조직은 아주 심각한 악영향을 받았다. 그들이 다른 조직으로 옮겨가면서 이전 조직은 와해되기도 하고 회복하기도 한다. 빌 게이츠처럼 한명이 몇 천명을 먹여살리는 엘리트를 예찬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세운 구조는 아무리 견고해도 사람이 금새 변화(개선)시키거나 망쳐 놓을 수 있다는 게 현실이라는 생각. 최근들어 더 많이 하게 된다.

요즘도 가끔 지인들에게 전화가 온다. 무슨 일 있냐면 '아니 그냥 해봤다, 잘 지내냐'는 말에 자주 나는 가슴이 뭉클하다. 그냥 연락하고 싶은 사람. 그 관계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요즘은 한다. 예전에도 자주 얘기한 적이 있는데 나는 '쓰다듬'의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이십대에는 의지적으로 그것을 극복하고 '모던보이'가 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한때는 '조직의 개새끼'가 되는 게 무슨 훈장이나 되는 줄 착각한 적도 있다.

기독교에는 회심이라는 개념이 있다. 선한 영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 우리는 전적으로 그 영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르게 내 속에서 선한 일들을 행할 동력이 생겨난다는 거다. 기독교를 믿는다는 건 타인이 아무리 악한이라도 그가 회심의 과정을 언젠가 겪게 되면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악인과 대치상황이 벌어지는 상황에서조차 사람 그 자체를 미워하는 것이 죄가 된다. (설령 그가 MB라 하더라도.)

지금은 흔쾌히 받아들인다.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우며 "꽃으로라도 사람을 때리"면 안된다는 말들. 솔직히 이제는 구조의 변화보다 사람의 변화를 더 기대한다. 그리고 그것이 기독교적이고 현실적이고 인간 냄새 나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2012/10/28 21:53 2012/10/28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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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lieve that a great sense of humor save the world."
(탁월한 유머 감각이 세상을 구원할거야.)

오늘 페북에 올린 글이다. 다소 설명이 필요한 글이 될 것 같다. 최근에 나는 영화 한 편과 책 한 권을 봤다. 먼저는 책을 소개할까 싶다. <언제나 새로웠어요>라는 제목의 책인데, 이 책은 케이 재미슨이라는 정신과 교수가 죽은 그의 남편을 기억하며 쓴 것으로, 사실 저자의 이전 책인 <조울병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 An Unquiet Mind>을 인상적으로 읽었기에 이 책은 그로 인해 집어들게 된 케이 재미슨의 두번째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두 책의 저자인 그녀는 정신과 교수이기 이전에 중증 조울증 환자이기도 했으며 이 정신병으로 인해 오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저자가 '되었다'. 사실 그 길고도 고통스러웠던 분투의 과정에는 친오빠나 전 남자친구, 그녀의 정신과 의사 등 숨겨진 조력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의 병을 이겨내는 데 남편의 도움이 컸다고 말한다. 그녀가 회상하는 남편은 섬세한 의사이며 뛰어난 '유머감각'의 소유자였다.

"리차드는 사랑뿐만 아니라 사랑과 함께 찾아온 나의 조울증이라는 병을 날마다 조금씩 더 겪는 것도 낯설어했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대단한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정말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나를 웃게 할 수 있었다. 그는 극진히도 나를 사랑해주었다. 한번은 심한 말다툼 끝에 숙모에게서 선물로 받은 도자기 토끼인형을 침실 벽에다 집어던진 적이 있었다. 사실 지금은 왜 그랬는지 조차도 기억이 안 난다. 귀여운 토끼 '눈 뭉치'는 산산조각이 났다. 핑크빛 귀 한쪽과 조그마한 발을 제외하고는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깜짝 놀란 리처드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웃음을 보였다. 나를 더 자극하지 않으려고 등을 돌리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리튬(조울증 약)을 너무 많이 복용했어" 한참 후에 말을 이었다. "표적이 빗나갔잖아." 결국 우리는 웃음보가 터져서 바닥에 쓰러졌다. 나의 분노는 리처드의 유머를 당할 수 없었다." (케이 재미슨, <언제나 새로웠어요>)

다음으로 언급하고 싶은 건 영화. 이미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Il y a longtemps que je t’aime>란 영화다. 주인공인 줄리엣 역을 맡은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최근엔 '사라의 열쇠'로 많이 알려진)의 신들린 연기가 영화의 몰입도를 더욱 높여주기도 했다. 영화에서 줄리엣은 15년만에 감옥에서 출소하여 동생 레아의 집에 머문다. 그녀는 15년 전 자신의 6살난 아들을 죽인 살인혐의로 구속되었고 남편의 불리한 증언에 의해 징역이 확정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그녀는 단 한 마디의 변호도 하지 않았다고 영화는 설명한다. 레아는 그녀를 증오하게 된 부모님의 반대로 언니와 연락조차 못하고 지내다가 출소 후에야 만나게 되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온다. 다소 충격적인 이 사건에 있어, 영화의 말미에 드러난 진실은 이렇다. 사실 줄리엣의 아들은 고통스러운 병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 증상을 의사인 그녀가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된다. 아들이 고통 가운데 죽어갈 것을 염려한 그녀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 아들과 행복한 하루를 보낸 후 아들에게 약물을 투여해 죽게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죽음이 예정된 아들'이라는 그녀의 현실이, 그녀에게는 감옥이나 다름 없었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에게서 고통을 제거하고 자신은 물리적인 감옥으로 걸어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 오랜 시간동안 줄리엣은 침묵했고 경직되어 있었고 퇴소 후에도 여전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레아의 집에 머물면서 마주치는 레아의 어린 딸들을 속으로는 애뜻해 하면서도 실제로는 일부러 거리를 두었고 카페에서 우연히 만났던 남자와의 섹스 후에도 그 표정은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한 것처럼 건조해 보인다.

그런 줄리엣을 레아의 학교 동료 교수인 미셸이 지켜본다. 미셸은 '위트'가 넘치는 중년 남자다. 그 또한 아내와 이혼한 지 10년이 되었고 영화는 그 이혼이 순탄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친구들과 함께 별장으로 놀러가서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술취한 한 친구가 줄리엣의 과거를 집요하게 물어보고 참다못한 줄리엣은 자신이 아들을 죽여서 감옥에 갔노라고 덤덤히 말한다. 친구들은 집요한 물음에서 벗어나려는 농담으로 치부하여 다함께 크게 웃어넘기지만, 미셸은 그녀의 말이 진실임을 직감한다. 그 후로 자주 미셸은 줄리엣 주변에서 그녀에게 바보같은 농담을 던진다. 미셸은 조금씩 그 위트에 반응한다. 감정이 없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그는 시도때도 없이 농담을 날리는 느낌이다. 그 농담들은 줄리엣을 웃게 만든다. 그와 시간을 보내던 줄리엣은 어느 순간 레아의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고(영화에서는 피아노를 함께 치는 장면으로 상징된다) 결국 영화의 말미에 레아에게 자신의 아들을 어떻게 죽이게 되었는지를 15년 만에 처음으로 고백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 '미셸의 유머'가 자리잡고 있었다고 믿는다.

그런 얘기다. 내가 하고픈 말, "탁월한 유머가 세상을 구할 것이란 믿음"은 그런 얘기였다. 여기에서 '세상'은 '세상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말한다. 지금도 세상은 신음한다. 구조적인 악에 의해 고난을 당하거나, 타인에 의해 깊은 상처를 입었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심감에 빠졌거나, 어릴 적 트라우마로 인해 평생 분노에 휩싸여 살거나 간에... 그 깊은 고통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추상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막연히 나무나 숲을 관망하는 것과는 별개로 사물을 아주 가까이에서 직시할 때. 그런 가까운 거리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나는 자주 뒤틀려진 관계의 실타래를 발견하곤 한다. 굳어진 관계, 굳어진 사람, 굳어진 대화, 굳어진 삶의 터전들. 결국 그 사이사이를 '사람'이 지나 다닌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굳어진 얼굴에 던져진 탁월한 유머 몇 개가 그들에게 실소를 자아낸다. 틈이 생기고 그 틈을 통해 굳어진 무언가가 갈라진다. 그게 세상을 바꾸는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본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요즘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2012/09/05 18:42 2012/09/05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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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주변 눈치 보지말고 정말 네가 원하는 걸 하라는 얘길 듣는다. 물론 주변 눈치를 보면서 욕망을 누르는 것도 문제지만 정작 내가 무엇을 강하게 원하는지 지금 원하는 것이 일시적 무료함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정말 내 본질을 뒤흔드는 일인지에 대한 불확실함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따라서 네가 원하는 일을 하라는 말을 하기에 앞서 '너 자신을 알라'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대체로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타자(세상)와 나를 구별짓거나 때론 동일시한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개인은 타인과 같은 욕망, 타인과 구별된 욕망을 찾아낼 수 있고 그 때에야 비로소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는 선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나는 자아, 혹은 자신의 내적 에너지가 없는 이들에게 무성의하게 '네가 원하는 걸 하라'는 선언적인 말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를 단련하라'고 격려하는 게 어떨까 싶다.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으로 때론 자아를 낮추고 조직에 몸을 맞추는 겸손함도 배우고, 때론 공동체와 구별된 독특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발견할 때는 그것을 발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세상은 점점 조직화되고 속도에 민감하게 흘러가서, 개인이 스스로를 인지하면서 성장하기를 기다려주기보다는 일단 그 나이와 역할에 맞는 톱니바퀴에 물려놓고 그 추동에 의해 개개인이 '잘 돌아가기만을' 기대하는 듯 하다. 한번 물린 이빨 안에서 적응하다보면 아무리 외부에서 다른 시스템으로 빠져나와 돌아가라고 소리쳐도 그 보수적 추동을 끊기가 쉽지 않다.

대중과 섞여 있으면서 대중과 동화되는 지점과 차별되는 지점을 정확히 인식하는 개인은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향해 빠르게 행동할 확률이 높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단련된 사람들은 동질감을 느끼거나 이질감을 느끼는 순간에도 극단적인 분리 경험 없이 소통의 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2012/08/18 18:41 2012/08/18 1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