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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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 (6): 연애문화 보고서 (2003. 10.)

/ 김용주


소개팅 이야기

첫 주가 지나고 어느 날, 소개팅을 다녀온 동기의 얘기를 들었다. 처음에 이 친구녀석은 소개팅에 나온 여학생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내 이어진 그녀의 네 가지 질문에 그만 기가 질려 버렸다고 했다. 난 혼자 생각에 ‘고만고만한’ 호구조사 정도거니 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아버지는 무슨 일하세요?
2. 졸업하고 뭐 할 거에요?
3. 무슨 차 몰고 다니세요?

처 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소개팅 자리에서는 주로 좋아하는 음악이 뭐냐, 영화 많이 보냐, 전공이 뭐냐, 재미는 있냐 같은 것들을 물어보던 과거를 떠올리며 약간 놀라긴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들기 전에 미리 안정된 남자임을 확인하려는 그 여학생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부분이긴 했다. 헌데, 정작 뒤끝이 씁쓸했던 건 마지막 질문이었다.

“교회 다니세요?”

물 론 기독 학생들 간에도 남학생은 여학생의 외모를, 여학생은 남학생의 능력을 암암리에 따진다는 것이 보편적이긴 하지만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렇게 화끈하게(?) 물어보는 변화에 꽤 당혹스러웠다. 차라리 그 여학생이 마지막 질문을 처음에 물어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자의 눈: 여자의 눈

이성교제에도 약간의 변화가 느껴진다. 사실 내가 처음 학교를 들어온 시기는 캠퍼스에서 ‘페미니즘 번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항상 여성은 남성과의 평등에 대한 시각으로 다가왔고, 이상적인 여성상은 프리랜서 내지는 직장에서 남성과 나란히 경쟁하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하지만 IMF 이후에 변화된 것인지, 아니면 페미니즘을 화두로 했던 캠퍼스 문화가 시들해진 것인지 모르겠으나, 집안 좋고 능력 있는 남성에게 어느 정도 의존적인 여학생들이 늘고 있다.

아니, 과거를 돌아보면 그건 90년대 중반의 일시적인 흐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여학생은 연애를 3번 하는데, 저학년 때는 동기와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가 고학년이 되면 학업에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같은 과의 실력있는 복학생 선배가 되고, 졸업을 하면 취업한 회사에서 능력 있는 직장 선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물론, 저학년 동기는 곧 군대를 가게되고, 졸업을 하면 주변 환경이 바뀌는 부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들은 농 섞인 이야기다. 예전에는 자수성가한 사업가형 남성들이 상당히 호감을 샀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자수성가한 사람은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해서 노년에 단명하거나 지병을 앓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최근의 캠퍼스에서 선호하는 남성상은 아버지가 사업가라 집안도 여유가 있고 똑똑하며, 성격이 어둡지 않고 생각이 비뚤거나 모나지 않은 재미있는 사람이다.

남학생의 경우에는 여전히 외모에 의존적인 이들이 많다. 처음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에는 술자리에서나 그런 이야기들을 하던 학생들을 보곤 했는데, 복학한 후에는 연애 이야기가 나오면 대놓고 여학생들의 몸매와 얼굴에 대한 점수를 매기는 이들도 심심찮게 만난다. 그런 눈살이 찌푸려지는 경우가 아니라도 보통 남성들의 경우, 이상적인 여성상이 실리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실제로 자기 혼자서만 벌어서는 가정 생활 유지가 안 된다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의식이다. 그래서 집에서 살림을 하는 여성보다는 같이 가사를 돌보더라도 직장을 가지는 여성을 선호하고 있다. 직업은 보수가 적더라도 안정적이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공무원이나 교사가 좋다는 말들을 많이 듣는다.


사랑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

얼마 전 2%라는 음료 선전용으로 5분짜리 광고가 인터넷 상에 뜬 적이 있었다. 사랑에 대한 짧은 드라마형식이었는데 처음 보았을 때 그 영상이 너무 충격적이라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했던 기억이 난다. '충격적'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내 또래의 직장 초년생 내지는 취업을 앞둔 대학생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이유 때문이라 하겠다. 내용을 대충 이야기하자면, 동갑내기 커플 중 남자는 군대를 갔다와서 복학을 한 학생신분이고, 여자는 갓 취업하여 직장을 다니는 회사원이다. 이 여자는 직장에 가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고 직장에서 능력있고 매너도 좋은 직장 선배 남자에게 마음이 끌리게 된다. 그 사실을 남자친구가 알게 되고 다투는 대목에서 여자는 울면서 자신에게 언제 고급 레스토랑에 데려가 본 적 있느냐며, 사랑만 있다고 사랑이 되냐는 말로 남자에게 상처를 준다. 나에게 이 영상이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나온 배우들의 리얼한 연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여자 주인공의 나레이션에서 보이는 합리성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감정은 2년이 넘지 못한다"는.

주위 사람들을 만나보면 사랑에 대한 나름의 여러 생각들을 가지고 있음을 본다. 또한, 그러한 사랑에 대한 고유한 정의는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준의 것이고 그런 연유로 사랑에 대해서는 각자의 생각과 정의, 그리고 경험에 맞추어 보아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함부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곤 한다. 위에서 예로 든 광고회사에서 자신의 광고에서도 누구의 '사랑관'을 선호하는지 투표를 했고, 두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다는 점을 보면 그러한 서로의 입장에 대해 굳이 시시비비를 가리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물론, 실제 투표에서는 여자 주인공의 입장이 좀더 높은 동의를 얻었다)

나도 개인적으로 광고에 나온 여자 주인공의 나레이션과 반응에 큰 공감을 표하게 된다. 물론 대부분의 순수파 혹은 순정파 연인들에게 여주인공의 행동은 비난을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고 있는 또래 학생들과 직장 초년생의 연애관은 그들이 여전히 자신을 규정짓지 못하고 있는 만큼 불안정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결단대로 행동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허다하다. '영원한 사랑', '변치 않는 마음'과 같은 류의 고백들이 진정 서로가 지켜나갈 수 있는 류의 고백인지 아직 스스로조차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연인들 상호간에 '사랑'이라는 정의도 개인의 경험에 따라서 그 의미와 규모는 사뭇 차이가 난다. 그간 무수한 사랑에 관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듯이 처음 만나서도 부드러운 대화가 이어지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어 만난 당일에 깔끔한 세트로 꾸며진 집 안에서 잠자리를 같이 하는 식의 작위적 설정으로 인해 젊은 남녀도 그런 상상 속에 많이 휘둘리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이들은 운명적 만남에 대한 환상이 너무 큰 경우도 많다. 이들은 자신의 결정에 항상 회의감을 가진 관계로 의지적인 측면에서의 사랑을 믿지 않는다. 따라서, 광고 속 여주인공의 대사처럼 그러한 감정적인 설레임은 2년 이상을 넘지 못하고 그 이후에는 자신이 선택한 이성이 운명이 아니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정이라 믿게 된다. 갈수록 많은 연인들 간에는 감정이 식으면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불편한 무엇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듯 하다.

이런 순수파, 감정파에 비해 광고 속 여주인공이 더 많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연인들에게 있어 사랑이라는 것은 감정적인 무엇, 첫 눈에 반하는 무엇, 혹은 운명적인 만남과 같은 이상적인 형태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첫눈에 반하는 요소들은 대부분인 외모, 말하거나 행동할 때의 깔끔한 매너, 목소리 정도이며 간단한 대화를 통한 상대방의 기호 정도가 된다. 그것을 운명의 일부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결국 일상에서의 지루한 관계가 지속될수록 무료함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그런 연유로 부모들 입장에서, 혹은 광고 속 여주인공 입장에서 상대방의 배경이나 재산,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을 돌아보게 하는 것도 동의까지는 아니라도 때로는 납득이 된다. 사람이 만나서 부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는지에 대해 순정파의 입장에서는 너무 성글게 생각하는 듯 하고, 속물파의 입장에서는 너무 치밀하게 계산하는 듯 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연애를 막는 선교단체의 폭력성

결 국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는,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연애관을 수정하고 또한 돌아보게 되는 데에는 이성간의 만남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너무 진지한 시작은 좋지 않겠지만 주위의 관심아래에서 연애는 권장되어 마땅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교단체는 이에 역행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지난 번에 연재되었던 “약간은 도발적인 캠퍼스 보기”에서도 언급했듯이 선교단체의 학생들은 전적으로 시간에 쫓기게 되어 있고, 결국 공동체의 운영에 있어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영역들은 공동체 자체적으로 금지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성교제와 아르바이트이다. 내가 아는 한 선교 단체에서는 이성교제와 아르바이트를 하면 공동체에서 제명되는 일도 있었다. 이는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잘못 구분한 탓이다. 이성교제를 금지하는 공동체는 많다. 많은 동아리들도 동아리 내에서 이성교제를 금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동아리 활동을 등한시하고 때때로 두 사람이 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많은 기독 공동체에서도 이성교제를 음성적으로 혹은 공개적으로 금하는데 이는 많은 시간을 교제에 쏟게 되고, 지체를 섬겨야 할 리더들의 감정기복이 심해지며 두 사람이 함께 공동체를 떠나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성훈련이 제대로 선행되지 않은 학생들의 이성교제가 문제가 될 위험성이 있으며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경우에 공동체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등의 이유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위험성을 뿌리뽑자는 심산인 듯하다. 많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황당한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 학생시절에 이성교제를 놓고 힘들어하며 이런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했더니, 어머니는 내가 통일교 내지는 이단 단체에 들어간 줄 알고 동아리 활동을 중단하도록 권면을 받은 적도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지금 세대 공동체보다도 개화된 여성인 모양이다.

이러한 제재 속에서 대부분의 기독학생들은 이성교제에 있어서는 '순수파'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선교단체에서 남녀간에 거리낌 없는 관계가 오랜 시간 이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이들에 비해 이성을 대하는 것이 더 낫다는 평가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동체에서의 남녀 관계와 이성교제에서의 남녀 관계는 사뭇 다르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내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도 군중 속에 있을 때, 아니 심지어 친한 친구와 있을 때에 비해 애인과 있을 때는 큰 차이를 보였다. 그리고 그게 정상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4년간 제재를 당해온 많은 기독학생들은 자신에게 맞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성교제를 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교제를 시작하게 되고, 이후에 생겨나는 여러 복잡하고 힘든 감정의 기복들로 어려움을 겪다가 이내 기도원에 들어가거나 새벽기도를 꾸준히 가면서 '이 사람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를 되뇌게 된다. (여기에서 하나님에게 묻는 행위 자체를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이성교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이루어져야 할 고백이다. 문제는 이런 학생들은 단순히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불편함과 두려움을 신이라는 절대자에게 대신 뒤집어 씌우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캠퍼스 보고서' 때와 마찬가지의 역회심 문제로 돌변하기도 한다. 일례로 이런 학생들은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유치하고 미성숙한 잣대였다고 받아들이고, 상대방의 능력, 연봉, 집안 배경 같은 것들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기도 한다.


건강한 연애 보고서를 쓰기바라며
 
첫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꼭 그렇게 된다기 보다는 '처음' 하게 되는 그 무엇이기 때문에 생기는 시행착오에 기인하는 듯하다. 무엇이든 처음 시작한 일은 낯설기 마련이고, 또한 자기 몸에 꼭 들어맞기까지는 적응을 위한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사물이나 기구, 자동차를 다루는 일도 그러한데 사람을 다루는 일, 사람과 사귀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창조주가 허락한 두 사람이 일체가 되는 과정으로서의 사랑의 시작인 만큼 이성교제에 많은 주의와 노력이 필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리 없다. 그리고 그러한 처음에서 오는 시행착오로 서로간의 감정과 관계성을 잘 조율하지 못해 헤어지게 되는 경우에는 미련과 아픔이 남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그 기간이 길기도 하고 쉽게 회복하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인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러하기 때문에 나는 많은 후배들과 동기들에게 이성교제를 권장한다. 한 사람과 완전하게 투명한 교제를 해 본 적이 없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혹은 자신이 말하는 섬김과 헌신이 얼마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던 신기루에 불과한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은 서로가 투명하게 자신의 내면을 터놓는 과정을 통해 얼마나 스스로가 자신이 의도했던 대로 사랑을 베풀기를 싫어하는 존재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고, 자기가 말했던 그런 사랑 어린 행동에도 노력과 연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된다.

대부분의 동아리나 기독 선교단체, 심지어 대학원 내에서도 이성교제는 암암리에 혹은 공개적으로 금기시 하는 분위기가 많다. 그것은 공동체의 견고함을 위한 제재이기도 하고, 또한 개인이 서투르게 교제를 하다가 헤어진 이후에 오는 상처와 심적 어려움에 대해 과잉보호를 하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런 식의 제재는 오히려 이성교제를 음성화시키고 음성적으로 만남을 갖는 커플의 경우는 관계에서 더 잘못되기 쉽다.

물론 이성교제 시의 발생할 법한 문제는 항시 존재한다. 헤어질 때 생기는 마음의 상처뿐만 아니라 함께 있는 시간이 지속될수록 육체적인 친밀함이 더해지는 것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애가 시작되면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게 되는 문제로 인해 때로는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말들이나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알게 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데, 일상적인 일들에 대한 편안함을 느끼기도 전에 관계가 급진전되는 것도 경계할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기독인의 경우에는 '신실한 형제', 혹은 '신실한 자매'에 대한 왜곡된 태도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일부로 글 전체에서 신실한 사람에 대한 강조를 제외했다. 나는 그 신앙적 신실성 여부로 그 사람이 이성교제에서도 동일하게 그러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신뢰하지 않는다. 신앙적 신실함은 정작 이성교제를 할 때에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 분명하지만 나는 그 신실함 때문에 시작된 교제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신실함 자체가 체화된 것이 아닌 경건의 외형인 이유도 있었지만, 실제로 신앙이 깊어도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나를 포함한 젊은 세대들의 신앙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있다. 아직 우리의 신앙 자체가 삶의 여러 문제들을 접하고 그 안에서 난관을 통해 얻어진 신앙이 아니라 비닐 하우스에서 재배되고 있는 식물들처럼 머리로만 혹은,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는 신앙적 행동양식들이 실제 삶에서는 그 텍스트대로 드러나질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신실해 봐야 얼마나 신실하겠는가. '신실한 사람'이라 칭하는 것은 중년기는 넘긴, 그리고 신앙의 열매를 이제는 조금씩 내고 있는 이들에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며 그런 의미에서 내가 중시하는 것은 허울뿐인 신실함보다는, 오랜 시간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그 일상적 친밀함, 그 가운데에서 쌓여가는 신뢰를 통해 감정적으로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긴 여정이라고 믿는다. 부디 많은 기독 청년들의 멋진 연애 보고서를 기대한다! **
2003/10/01 23:26 2003/10/0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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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 (5): 직장생활 보고서 (3) (2003. 9.)

 

/ 김용주

 


<직장 문화, 대중 문화, 그리고 소비 문화>

 

많은 직장인의 경우, 아침에 출근을 하면 일단 컴퓨터를 부팅함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컴퓨터가 켜지면 메신저에 접속을 하고 스포츠 신문을 검색하면서 무슨 재미난 기사거리가 없나 헤드라인들을 훑어 본다. 다음은 주식에 관련된 컨텐츠들을 검색한다. 이미 주식을 가진 직장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주가의 오르고 내림에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틈틈이 자신들이 주로 이용하는 쇼핑몰에서 많은 시간들을 보낸다. 대개 쇼핑몰을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은 잠시라도 사람들의 눈을 잡아두기 위해 여러 가지의 볼거리들을 제공한다. 곳곳에서 "2시간 동안 50% 대박 세일"이라거나 마일리지 적립과 같은 방식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대개 많은 직장인들은 당일에 생기는 이런 류의 기회들에 항상 눈을 떼지 못하게 된다. 남성들의 경우에는 중고차 사이트라거나 컴퓨터 주변기기, 디지털 카메라와 같은 전자제품에 관한 사이트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제품들을 고르면서 쉬는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이런 직장인들의 성향에 발맞추어 가장 낮은 가격을 찾아주는 사이트들도 꽤 많아졌다.

 

또한 인터넷 상에서 결제할 수 있는 사이버 머니들도 마일리지나 충전 방식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결제 체계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를 넘나들며 할인 혜택까지 주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대개 회사에서 소위 인기 있는 동료는 그러한 정보들에 민감한 사람이다. 바쁜 일정 속에서 직장인들은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점점 소비문화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느낌이며 그런 이유에서인지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물건을 구매하거나, 유명한 음식점이나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일에 혈안이 되는 듯 하다. 대개 커피를 마시며 보내는 짧은 시간의 대화는 아침에 검색한 스포츠 신문에 나온 연애인의 스캔들과 같은 내용이 아니면, 맛있는 음식점의 위치나 좋은 제품을 싸게 살 수 있는 사이트, 마일리지로 결제할 수 있는 페밀리 레스토랑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그러한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직장에서 인기도 높다. 물론 정치 이야기가 가끔 나오지만 항상 "더러운 판"이라거나, "정치하는 이들은 모두다 썩었다"는 식으로 흘러서 금새 화제는 바뀌고 만다.

 

결국 회사에서 생활하는 많은 시간에서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의 대부분을 거의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이러한 소비 문화를 잘 할 수 있는 데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으며, 그러한 기호에 아주 민감하게 기업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방향의 소비 패키지 상품들을 개발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그러한 정보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직장 문화의 중심에 서게 되는 듯 하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대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했던 고민 두 가지는 직장과 이성교제였다. 둘 중에 하나가 해결된 사람은 자연히 다른 쪽으로 관심이 집중되기 마련이었다. 대학원 생활이 시작되면서 주변에서는 보다 진지한 연애 소식들이 들려왔고, 조금씩 주말이면 정장을 입고 국수를 먹으러 다녀야 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러다가 집들이를 한다고 여기저기 찾아가는 일도 생기더니, 급기야 이제는 돌잔치에 가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어린 시절, 가끔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 같은 일일 연속극을 어른들은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한 회도 빠지지 않고 보는 것일까 하고 궁금해 했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비슷한 이야기들이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니까 설령 드라마에서 엇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어도 동질감이 느껴지고 자신과 동일시 할 수 있는 상황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드라마 속 집안 이야기의 전개가 궁금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씩 주변에서 가정을 이루어 가는 선배들이 많아지고 있다. 사실 그 중에는 학부시절에 존경하던 선배들도 많이 있다. 캠퍼스에서 그들은 금방이라도 자신의 몸을 불태워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것 같았고, 세상의 구조적인 악행들에 크게 분노하고 마음 아파하며 자신들이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부르짖곤 했었다. 정치인들에게 내밀던 날카로운 잣대들과 하루하루 자신을 연단하고 모임 때마다 고백하던 그 도전적인 이야기들이 나에겐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나 보던 영웅담처럼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그 나이가 되어 그런 리더가 되어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곤 했다.

 

그들이 졸업을 하고 직장을 갔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다. 난 조만간 그들이 속한 곳에서부터 무언가 대단한 움직임이 생길 거라 기대했다. Home Coming Day처럼 올드 멤버들이 캠퍼스 후배들을 찾아오는 행사가 있는 날이면, 나는 그들의 '승전보'를 들을 마음에 가슴이 설레곤 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그들의 대부분은 나타나지 않았다. 간혹 들리는 이야기들만 무성했다. 취업이 될 때까지 나타나지 않겠다는 선배도 있었고, 때론 선배 중에 그렇게 자신이 비난하고 정죄의 화살을 던지던 불신자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릴 때의 철없던 열정이었다고 이야기하는 선배도 만났다.

 

솔직히 말해서 난 선배들에 대한 배신감 비슷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들의 신앙이 '영적 허구'였다며 그들이 캠퍼스 시절에 세웠던 칼날 그대로, 그 텍스트를 가져다가 그들의 컨텍스트를 해체해 버리고 싶었다. 그 모순된 삶의 방향에 딴죽을 걸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부끄럽지만 당시의 내 마음이 그러했다. 나에게 그들은 신화나 전설에나 나오던 영웅이었으니까.

 


<연애, 결혼, 그리고 육아>

 

내가 칼자루를 놓게 된 건 친 누나가 결혼을 하고 그 집에서 자취를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때 난 30대 전후의 가정의 문제에 대해 알게 되었고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다. 그 이후로 난 '생존'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경기가 나빠진 이후로 대부분 내 주변의 직장인들은 정상적인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지만 그에 비해 장래에 대한 보장은 더 희미해져 가고 있다. 항상 제2의 직장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가며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이 사회에서 심하게 휘둘리면서 말이다. 때론 자신이 그렇게 신봉하던 가치관의 혼란을 겪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변하기도 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이성 교제가 시작되고 대개 서로 직장을 가지고 있는 남녀 직장인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문화가 이끄는 대로 연애를 하기에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바쁜 가운데에서도 서로 시간을 맞추는 일부터 시작하여 백일, 이백일, 오백일, 천일 기념, 그리고 Valentine Day, White Day부터 시작하여 Yellow Day에서 '빼빼로' Day까지! 나름대로 의미를 담아서 챙겨야 한다. 사실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이런 기념일들은 기업들의 횡포로 인해 그 가치가 퇴색하고 있으며 각종 기념일마다 거리에 쏟아지는 소모적인 상품들은 마치 그러한 상품을 주고받지 않으면 친밀함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하나의 소비의 '장'을 형성한다.

 

결혼을 하고 나면, 이제는 집을 장만하기 위해 정신 없이 돈이 되는 일에 매달리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수도권에 살고 있는 맞벌이 직장인 커플의 경우에는 그것이 생존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 이유로 주식에 손을 대거나 아니면 자신의 직업 외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도 많다. 게다가 결혼을 하고 나면 두 집안 사이에 있는 경조사를 챙기는 일도 두 사람이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일들 중에 하나가 된다.

 

조금 안정이 될 때 즈음에는 아이가 생기고, 아이가 자라면서 육아에 대한 부담으로 여성의 경우는 직장을 그만 두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생후 몇 년 간은 아이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육아에 대부분의 관심을 집중하게 되고 아이가 크면서부터는 또다시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한 스타일의 교육 열풍에 휘둘리게 된다. (많은 부모들은 남들이 다 하는데 우리 아이만 바보가 되고 있다는 이상한 분위기에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는 듯 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 서로 관계를 맺고 그 가운데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하루하루 성실하고 자족하며 사는 것이 아름답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상을 시간을 배분하여 삶에서 필요한 일들을 하기 위해 나누어 쓰는 개념으로 따져본다면, 정작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미시적인 부분에서만 최선을 다하고 살아도 항상 부족함이 느껴지고 한계가 느껴지기 마련이다.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일수록 가까운 자신의 주변 관계 속에서도 부족함을 끊임없이 돌아보게 되고 그렇게 대부분의 기독 직장인들은 나름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분투하며 살고 있다. 내가 쉽게 생각한 것처럼, 그들은 사회에서 사라진 게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놀면서 삶을 향유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지금도 그들은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있을 따름이다.

 


<운동가의 편견>

 

직장인들의 반대편에는 운동가들이 있다. 내 주변에는 이러한 운동가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삶은 대부분 청빈하고, 검소하고 또한 소박하다. 대의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줄 알며 소비문화가 이야기하는 요구들에 둔감하다. 그러한 것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이며 그러한 것들에 휘둘리는 삶의 무가치함을 일찌감치 깨우친 탓이다.

 

그 분들과 함께 있을 때면 나는 항상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내 안에 그들과 같은 삶이 정답이라는 생각으로 인해, 그리고 나는 아직은 정답에 이르지 못한 삶 가운데 있다는 자괴감으로 인해서 오는 불편함 때문이다.

 

물론 그 분들이 금욕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버려야 할 것에 대해 미련을 갖지 않으며 이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 구조적인 악행들에 대해 자신의 아픔으로 여길 수 있는 거룩함이 그 분들에게는 있다.

 

사실 난 그 분들에게 어떠한 문제제기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음을 안다. 하지만, 나는 불편한 마음을 한 편에 두고서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겠지만 운동가들의 대부분은 일반적인 사람들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돌리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이 바뀌기 위해서는 많은 일반인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조금씩 변화가 이루어져야지만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별 문제의식 없이 소비 문화에 젖어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각성을 요구하는 운동가들의 의식은 그들의 정중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결국 '너, 똑바로 살아'의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 깊게 발을 들여 놓았고 그 안에서 허우적대며 살고 있다. 운동가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세상을 편하게 산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름의 삶은 누구보다 고단하고 스트레스로 가득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기독 직장인들은 미시적인 차원에서는 악행을 저지르는 일은 드물며 오히려 누구보다 더 자상하고 배려를 잘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운동가들은 어쩔 수 없다. '비도덕적인 사회'를 위해 대부분 자신의 미시적인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도덕적인 개인'에게, 힘들더라도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너, 똑바로 살아.'

 


<중간 지점을 모색하다>

독자들에 따라서는 약간 편향되게, 때론 과장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이제까지의 이야기가 내가 경험하고 있는 직장 생활의 이모저모이다. 꽤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직장인들이 사회에서 묻힐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변명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그리고 한편에서 내심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운동에 대해 이야기였다.

 

나는 복학 후에 저학년 때 나와 친했던 친구들 가운데 상당수를 잃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친구 관계는 그럭저럭 유지되었지만 많은 비전을 나누던 선교단체의 동료들을 잃었다고 표현하는 게 옳겠다. 그들은 폐쇄적인 공동체 생활을 하며 그 안에서 어떠한 경건의 훈련들을 모색했던 데에 비해, 당시의 난 기독인의 사회 참여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문서운동이나 학내 문제, 기독 시민운동에 대한 고민들, 대안들을 모색하고 움직이려고 주변을 '충동질'했기 때문이었다. 내 주변에는 시위를 나가는 이도, 총학생회에 진출하겠다는 생각에 뜻을 같이 하겠다는 이도, 사회에 대하여 바르게 인식하고 기독인의 사회참여에 대해 그 대안들을 모색해 가자는 제안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이도 없었다. 내가 내 것들을 포기해 감에 따라 주변의 기독인들은 그런 나를 부담스러워 했다.

 

다수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에 가까운 나를 '좌편향'으로 위치매김시켜 균형 잡히지 않은 부류라며 거리를 두었고, 가까운 리더들은 내가 가진 잣대로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려 한다고 생각하며 그런 식의 정죄는 시대착오적인 운동권의 잔재라고 충고했다.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기독학생이 정치적인 색깔을 드러내면 '급진적'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급진적' 복음주의라고..)

 

나는 이러한 일련의 문제의식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 90년대 선배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도리어 그들을 비난하려던 나의 시도는 비슷한 판에 속하게 되고 함께 공유하는 문화를 통해 조금씩 무뎌지게 되었다.

 

직장생활에 대한 글을 마치면서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까 한다. 사실 졸업 후에, 내가 복음주의 기독운동에 뛰어들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한국에서 기독운동을 하려면 한국 기독교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게 될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적어도 내 판단으로는 한국의 복음주의권 보다는 한국의 진보 진영이 도덕적으로 더 깨끗해 보였고, 난 개혁을 외치면서 한국 복음주의권에서 주는 녹을 먹으면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 보다 큰 이유는 기독 운동가들보다 기독 직장인들이 많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리고 최소한 한국의 복음주의를 변화시키는 것은 소수의 운동가들이 아니라 다수의 직장인들의 더디지만 전반적인 변화에 의해서일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캠퍼스에서 문서 운동을 하던 것처럼 직장인과 운동가 사이의 중간 지점을 설정하고 거기에서 서로의 벽을 허물고 어떤 적정선의 행동방식을 찾아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나름의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행동방식'이 직장인들 나름의 상황을 이해하고 거기에 걸맞는 선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다.

 

언젠가 직장에 갓 들어간 동기와 논쟁이 붙은 적이 있었다. 학생들의 사회참여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친구는 회사에 들어가면 QT조차 제대로 못하는 기독인들이 많음을 지적하면서 학생 시절에는 경건훈련이나 열심히 하고 사회인이 되어서 사회참여를 하라는 충고를 했다. 하지만, 결국 그런 나름의 공감할 만한 논리를 구사하던 그 친구도 4-5년이 지난 지금 사회참여를 하는 사회인이 아니라 단순한 직장인으로 수면에서 사라졌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과거 가진 것 하나 없던 시절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운동을 해 본 일이 없는 대부분의 기독 학생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사회에 들어가고 난 후에 미시적인 차원에서 너무 많은 책임과 관계에 얽매이기 때문에 적신일 때도 하지 못했던 운동성이 있는 행동은 엄두도 못 내는 채로 결국 주저앉기 마련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내 주변의 그런 친구들과 과거 영웅처럼 대하던 선배들의 적절한 운동성을 살리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내가 회색지대에 머무는 이유일 게다.**

2003/09/01 23:25 2003/09/0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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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보다 못한 복음주의
/김용주

 

영화 <매트릭스>의 열풍

“영화 <매트릭스2-리로디드>가 3주 연속 흥행성적 1위를 기록하며 전국관객 300만명을 돌파했다. 수입ㆍ배급사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에 따르면 <매트릭스2>는 7-8일 서울 관객 9만7천100 명을 동원해 주말 극장 흥행순위에서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서울 66개, 전국 231개의 많은 스크린 수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관객수는 전주말(21만5천 명)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등 감소 폭은 큰 편. 8일까지 이 영화가 동원한 전국 관객 숫자는 312만 명으로 개봉 17일만에 300만명을 돌파했다. 이는 올 최고의 흥행작 <동갑내기..>와 비슷한 추세다.”

(씨네 21 기사 중 부분인용)

영화<매트릭스2-리로디드>가 개봉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봤다. 전작인 <매트릭스>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많은 네티즌들과 매트릭스 매니아들이 열광했고 지금까지도 영화 관련 웹 게시판에는 매트릭스에 관련된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딴지일보>에서는 이런 웹 상의 글들을 모아서 “매트릭스 짝퉁 감상법”과 “매트릭스 짝퉁 문학상”이라는 기사를 내보냈고 메이저 급 영화 잡지들은 아직까지도 매트릭스 영화 상의 풀리지 않는 문제들에 대한 나름의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매트릭스2-리로디드>가 개봉하기 전에는 미국의 대학교수들이 전작에 대한 분석과 논평을 모은 <taking the red pill>이라는 책까지 발매되었고 이 책은 아마존에서 높은 점수를 얻으며 많은 매트릭스 매니아와 지식층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 책은 굿모닝미디어에서 “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현각 스님도 스스로가 매트릭스의 광이라고 자처하면서 영화를 10번을 보고 한겨레에 관람기를 싣기도 했다. 기학연에서는 이달 초부터 매트릭스에 관한 내용으로 세미나를 연다고도 한다. 이쯤 되면 대충 내용을 알고나면 누구나 매트릭스라는 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갈 듯도 하다.

1999년에 개봉한 <매트릭스>는 컬트 영화 감독이었던 워쇼스키 형제가 사고하는 액션영화를 만들겠다는 선언과 함께 만들어진 그들의 야심작이다. 실제로 그들은 영화 촬영 전부터 주연배우였던 키아누 리브스에게 장 보드리야르의 저서인 시뮬라시옹을 읽도록 부탁했다고 한다. 그리고 촬영 시마다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가지고 무슨 의미인지를 서로 토론하도록 권했다고도 전해진다. 그런 연유로 배우들도 매 장면마다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후문이다. 화면이 정지된 채로 360도 회전하는 장면이라던가, ‘불렛 타임’이라는 획기적인 촬영 기술(총을 쏘는 장면에서 총알이 날아가는 순간과 액션장면을 합성하는 기술)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매트릭스의 하부구조는, 다수의 관객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탄탄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무엇보다 <매트릭스>는 많은 메타포가 숨겨진 영화이다. 이 영화의 전체 하부구조에는 기독교적인 요소들이 산재해 있으며(이는 이 글의 본론에 해당하므로 여기에서는 언급을 생략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를 쫓아가는 장면이라거나 플라톤이 언급한 동굴의 우상, 그 밖에 장 보드리야르로 대변되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상과 최근 SF영화의 교과서가 되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 기동대>에서 보이는 첨단 기술의 사회지배력이 골고루 퍼져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물론 전작에 비해 <매트릭스2-리로디드>는 많은 비판 또한 듣고 있는 편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2편이 전편에 비해 더욱 구체화되고 세련되어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매트릭스>의 뛰어난 하부구조들

많은 부분들이 매체를 통해 언급되었기 때문에 몇 가지만 지적함으로 이 부분을 설명하기로 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현대인들이 살고 있는 매트릭스는 장 보드리야르가 자신의 저서 <시뮬라시옹>에서 설명했던 “더 이상 모방이나 복제, 심지어 패러디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현실이 현실의 기호들로 대체된다는 것이다”라는 시뮬라시옹 사회의 단면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영화에서 네오가 불법 프로그램을 숨겨둔 책은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다.)

<시뮬라시옹>의 저자이자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현대 사회를 해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전도사로 불린다. 그는 처음에 현대 소비사회를 분석하기 위해 시뮬라시옹(simulation)과 시뮬라크르(simulacre)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시뮬라크르는 신의 소상(塑像)이나 화상(畵像), 혹은 표상, 이미지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를 자신의 책에서 시뮬라크르를 기호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보드리야르의 사물에 대한 기호론적인 사고는 마르크스(Marx)의 가치론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된다. 마르크스(Marx)는 사물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두 가지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반면 보드리야르는 사물에게는 마르크스(Marx)가 가정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이 두 가지 개념만으로는 환원이 불가능한 어떤 ‘상징가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특정한 상품에는 단순히 그 상품 자체의 효용성과 교환 시의 가치뿐 아니라 결혼 반지처럼 반지라는 상품에 특정한 의미가 부여될 수도 있고, 나아가서 그 사물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신분의 상징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비사회에서 인간들은 이렇게 기호화된 사물을 소비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기호들은 현실로 대체되고 현실은 시뮬라크르가 되는 셈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현대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들을 매개로 거래와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가진 서로 다른 기호가치들의 존재, 즉 시뮬라크르로 대체된 기호를 소비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뮬라크르 소비 사회를 가리켜 시뮬라시옹 사회라고 정의했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시뮬라시옹 사회는 사물에 대응하는 현실이 존재하지 않고 시뮬라크르가 현실이 된 세계이며 따라서 사물은 원초적으로 그것이 존재했던 것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시뮬라크르를 생산하는 코드화된 기호와 숫자에 그 기원을 두게 된다.

<매트릭스>의 첫 편에서 매트릭스 안의 세계는 시뮬라시옹 사회를 대변한다. 영화를 보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쉽게 매트릭스 안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 세계의 물질들이 일대일로 대응되는 완벽한 사회로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매트릭스 안에 갇혀있는 사람들 입장을 생각해보면 과연 어디까지가 실재로 존재하던 물체를 기호화한 것인지, 내가 먹는 스테이크는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조차도 구분할 수 없다. 실재 물질과 대응되는 스테이크라는 음식은 존재하지 않는데 단순히 상징적인 기호를 통해 만들어낸 허구일 수도 있는 셈이다. 보드리야르가 인식한 현대 소비사회의 코드는 그런 의미에서 고스란히 <매트릭스>라는 영화에 녹아있다. 한 예로 <매트릭스>의 전편에서 네뷰커네자르(Nebuchadnezzar) 호 안에서 해커들이 하는 잡담은 그냥 넘기기에는 중요한 개념들이 들어있다. 도저가 그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마우스라는 해커에게 주는 스프처럼 생긴 음식을 먹으면서 “테이스티 휘트”의 맛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자신은 테이스티 휘트라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과연 그게 실제로 존재하는지, 혹은 존재한다면 그 맛이 실제로 존재하는 그 사물의 맛일지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테이스티 휘트라는 음식이 사실은 기계들이 대충 짐작으로 만들어낸 기호체계일 뿐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다소 황당한 잡담을 늘어 놓는다. 따라서 이 장면은 감독이 매트릭스의 토대가 되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에 대해 그런 가벼운 스케치를 통해서 본질적인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매트릭스2-리로디드>에서도 이와 같은 기본 하부구조 위에서 영화는 진행되며 키메이커를만나기 위해 메로빈지언(Merovingian)이라는 프로그램을 찾는 장면에도 이 개념들은 시각적으로 재현된다. 메로빈지언(Merovingian)이 네오(Neo)에게 자신의 건너편 자리에 앉아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라고 할 때 네오(Neo) 앞에 펼쳐진 것은 여인이 아니라 여인의 형상을 표현하고 있는 디지털 기호들의 조합이다. 메로빈지언(Merovingian)은 웃으면서 당신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매트릭스는 실재하지 않는 신기루와 같다는 식의 말을 내뱉는다. 시뮬라크르로 대체된 시뮬라시옹 사회의 모습. 그것이 매트릭스의 사회학이자 영화 전편에 흐르는 하부구조인 셈이다.

또한, 이 영화의 묘미는 단순히 보드리야르를 대변하는 사회학적인 기반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영화의 보다 탁월한 점은 IT기반의 기술들이 영화의 각 장면 장면마다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정보통신 네트워크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는 ‘보안과 암호화’이다. 영화를 보는 중에 감탄사를 내며 보고 나서 씨네21에 실었던 글의 일부를 소개한다. 중심 내용만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처음에 오라클(Oracle)이라는 프로그램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그 앞에 작동하고 있는 보안프로그램인 세리프(sheriff)의 인증이 필요하다. 세리프(sheriff)는 누구나 상대할 수 있기 때문에 공개키를 상징한다. (제미있는 것은 보안에서 공개키를 표시할 때 노란색 열쇠로 표현된다. 따라서, 그의 노란색 광채는 공개키의 암시라고 볼 수 있다.) 단, 싸워보아야만 그가 누구인지를 인증할 수 있기 때문에 쿵후대결을 암호해독이라고 볼 수 있다. 쿵후실력으로 인증을 받은 네오(Neo)는 백도어를 통해 오라클(Oracle)이라는 프로그램에 접속하게 된다.

그에 반해 키 메이커는 비밀키를 상징한다. 그는 짝이 맞는 키를 만들어서 무수히 많은 비밀키를 들고 다닌다. 아키텍트를 만나러 가는 장면에서 네오(Neo)가 키메이커가 만든 키를 문에 꽂을 때 키가 문에 꼭 맞는다는 것을 클로우즈업된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은 비밀키를 이용하여 인증을 받았고 접근이 허용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씨네 21, 406호, 독자 비평 중에서)

 



<매트릭스>에 나타난 기독교적 메타포

하지만, <매트릭스>에 가장 큰 호감을 느끼는 것은 무엇보다 이 영화가 기독교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하부구조는 기독교적인 은유와 상징에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99년에 첫 편이 나오고나서 <딴지일보>의 총수로 있는 김어준이 쓴 기사에 많은 내용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최근에 <taking the red pill>에 실린 글 중에서 하버드 대학 신학대학원 출신의 Paul Fontana의 글에 보다 잘 드러나 있어서 이들의 글들을 참고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한다.

영화 <매트릭스>는 어떤 건물의 ‘303호실’에서 통신을 주고받는 트리니티로부터 시작된다. 트리니티(Trinity)는 성삼위일체를 가리키는 신학적 용어이며 실제로 이 트리니티라는 여주인공은 네오가 자신이 그(the One)임을 발견하는 데에 큰 영향력을 주는 인물이다. 주인공 네오가 살고 있던 방은 101호실로 나중에 네오가 스미스 요원의 총에 맞고 숨지는 방의 번호는 303이다. 결국 그가 스미스 요원의 총에 맞고 죽었다가 살아나는 방의 번호가 303호임은 트리니티의 삼위일체와 연관이 있는 셈이다.

네오는 토마스 앤더슨이라는 인물로 매트릭스 안에서 살아가며 밤에는 네오라는 이름의 해커로 이중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의 이름 앤더슨은 “앤드류의 아들”이라는 의미라고 하며 앤드류는 “사람”을 뜻하는 그리스어 안드레아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의 이름을 풀이하자면 “사람의 아들”, 즉 “인자”라는 기독교적인 메시아로 해석될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토마스는 예수의 제자 중 “의심 많은 도마”를 의미하며 영화 속에서 주인공 네오는 자신이 모피어스가 생각하는 “the One”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름에서 유래하는 많은 글들이 나와 있으나, 검증된 것은 아니며 때로 황당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여기에 언급하는 명칭들은 그 중에서 개연성이 높은 것들을 주로 사용한다)

네오의 의미는 “새로움”이라는 의미이며 그는 자신이 세상을 매트릭스 세계 안에서 구원할 구세주이며 메시아라고 믿는 모피어스 무리들에 의해 훈련되고 결국은 자신이 그임을 확증하게 된다. 네오가 메시아, 즉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세주라는 암시는 영화의 초반에도 나오는데 그에게 불법 프로그램을 사려는 초이라는 인물이 프로그램을 받으면서, “Hallelujah. You're my savior, man. My own personal Jesus Christ.”라고 말한다. 김어준은 이런 류의 대화에서 굳이 기독교적인 표현을 쓴 점에 착안하여, 대화 시 쓰는 흔한 욕설대신 이러한 종교적인 표현을 쓴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네오가 초이에게 주의를 주자 초이가 대답하길, “알아. 이 일은 없었던 일인거야, 그리고 난 너를 모르는 거지”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대목은 자신이 병을 고쳐주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는 예수의 말과 일치한다.

네오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스미스 요원에게 살해되었다가 트리니티의 키스 이후에 다시 살아나며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수퍼맨처럼 하늘을 날아 오르면서 끝이 나게 되는데, 김어준이 지적한 대로 이는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상징이 아니면 너무나 유치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모피어스나 다른 멤버들도 예수의 제자들처럼 죽었다가 다시 부활할 것을 예상치 못했다는 점이 복음서와 일치한다.

네오를 매트릭스 세계에서 구하는 모피어스라는 인물은 “꿈의 신”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존재다. 모피어스는 영화 전반에 걸쳐 “세례 요한”을 상징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김어준의 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세례 요한은 예수 이전에, 인간을 구원할 예수의 등장을 광야에서 기다리며 예수의 길을 예비한다. 예수는 세례 요한에게서 '물'로 세례를 받고 나서야 하여 비로소 예수로서의 '공적' 활동을 시작한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마가복음 1:3-4)
모피어스는 평생을 매트릭스(광야)에서 '그'(the One - 구세주, 네오)의 등장을 기다리며, 인간을 구원할 '그'가 갈 길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I've spent my entire life looking for you.’(모피어스가 네오를 만나서 하는 말-필자 주)
또한 매트릭스의 인간배양 인큐베이터에서 빠져 나와 '물'에 빠진 후에야 네오는 '그'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딴지일보, “매트릭스 짝퉁 감상법”, 김어준)
 


<매트릭스2-리로디드>에서도 모피어스는 예언을 신봉하는 선지자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며 자이온(Zion)에서 백성들에게 기도하는 장면에서는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요한의 모습에 가까운 이미지를 보여주게 된다.

이러한 주인공들 외에도 주변 인물들 중에서도 기독교적인 냄새들이 강하게 배어있는 이들이 있다.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도저와 탱크는 형제로 설정이 되어 있으며 반란군 전체의 수가 겨우 일곱인데 그 중 둘이 굳이 형제일 필요는 없다는 점을 들어볼 때 예수의 제자 중 야고보와 요한이 서로 형제임을 상기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모피어스가 깨어난 네오에게 멤버들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Tank and his big brother, Dozer”라고 소개하는 점이 그러한 심증을 굳히게 한다. 또한 사이퍼(Cypher)는 은 30냥에 예수를 판 '유다'처럼 겨우 스테이크 식사 한 끼에 조직을 배신하는 존재로 나오는데 요원들을 보면 무조건 도망을 쳐야하는 네오쪽 전력을 감안할 때 내부 배신자가 필수적인 설정이 아니었다는 것이 김어준의 설명이다.

Paul Fontana는 사이퍼와 네오가 함께 술 마시는 장면과 최후의 만찬에서 가롯유다가 배신을 하는 장면을 대조하여본다.

“사이퍼와 네오 식의 최후의 만찬은 둘이 밀주를 마시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장면에 이어 바로 배신자가 누구인지를 암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곧 사이퍼가 스미스 요원을 만나는 장면이 이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네오는 가솔린 맛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사어퍼가 건네준 술을 마신다. 이 장면은 예수의 예언적인 말을 상기시킨다. “이버지께서 내게 주신 이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요18:11)”

(폴 폰타나, “매트릭스에 신은 있는가”, 235쪽)

마지막으로 반란군이 타고 있는 우주선의 이름은 네뷰카네자르이며 이는 구약 다니엘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과 일치한다. 느부갓네살 왕은 신상에 대한 꿈은 꾼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꿈은 메시아가 열국을 다스리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그 꿈을 담고 있는 네뷰카네자르 호는 매트릭스의 스토리라인과 일치한다. 또한 그 우주선을 지휘하는 모피어스라는 이름 또한 “꿈의 신”이라는 의미가 아니던가. 그리고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네뷰카네자르 호의 모델 번호가 Mark 3-11이다. 이는 마가복음 3장 11절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 구절은 “더러는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이다. 결국 이 영화에 쓰이는 상징과 은유의 본질은 메시아 사상인 셈이다. 그리고 남겨진 인간의 도시이자, 매트릭스와의 전쟁이 끝나면 축제가 벌어질 곳이 '자이온'(Zion)이라고 불리며 이는 기독교적이자 유대교의 하부구조인 시오니즘과 일치한다. (“The last human city. If the war was over tomorrow, Zion is where the party would be”)

무엇보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믿음”이라는 키워드가 따라다닌다는 사실이다. 네오는 처음에 진리를 지식적으로 이해만 하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그것을 믿기 시작하고 결국에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궁극적인 예언의 성취를 이루었다는 것이 <매트릭스> 전편의 내용이었다. 또한 개인적인 추측이기는 하지만, <매트릭스2-리로디드>에서 네오는 6번째로 아키텍트를 찾아온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가 아키텍트를 만났을 때, 아키텍트는 이전에 자신을 찾아온 이들과는 다른 요소가 네오에게서 감지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사랑”이라는 또 다른 불규칙성이라고 설명한다. 이전까지 아키텍트를 찾아온 the One들에게는 자신이 그, 즉 메시아라는 사실에 대한 믿음과, 시온을 회복하리라는 소망도 있었지만 그것에 더하여 네오에게서 보여지는 또 다른 불규칙성인 “사랑”이 메시아로서 가진 속성 중 가장 큰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물론 이러한 가정은 3편에서 네오가 시온을 구하게 되는 식으로 결말을 짓게 되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이러한 네오의 구별된 불규칙성은 자연스럽게 고린도전서를 떠올리게 만듦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그리고 그것은 요한 서신서를 비롯한 성경 전반에 드러난 기독교의 본질이기도 하다.


 


<매트릭스>보다 못한 복음주의

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매트릭스>는 단순히 흥행을 달리는 헐리우드 액션영화라기 보다는 다양한 은유와 상징이 녹아있는 이른바 ‘철학하는 영화’이며 그 메타포의 중심에는 기독교적인 요소들이 숨어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워쇼스키 형제가 기독교에서 중요시하는 문제들에 대한 왜곡되었다거나 가볍게 접근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기독교적인 기반을 가진 이들도 깊이 있게 돌아보아야 할 성질의 깊이를 그들의 영화를 통해서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연유로 기학연에서도 이런 한낱 헐리우드 액션영화를 가지고서도 세미나를 여는 것이리라.)

위쇼스키 형제는 복음의 전파를 위해 이런 영화를 제작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들을 영화라는 매개물을 통해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고 자신들이 밝혔듯이 고민하는 액션영화의 제작이라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을 뿐일 것이다. 하지만 아마추어 영화 관람가이자 복음주의자로서 기독교 세계관에 깊이 매료되어 있는 나의 시각으로 판단하기에, 이 영화는 기독교의 본질적인 내용을 잘 파악하고 있으며 영화의 곳곳에 그러한 요소들을 배치함으로써 ‘기독교적이라는 것’ 자체가 멸시와 환멸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대의 사상 및 문화적인 분위기를 변화시키기까지 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렇다면 내가 몸담고 있는 복음주의권은 어떠한가. 세속에 물든 컬트 영화 감독이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야 만큼이라도 복음주의권에서는 세상을 제대로 분석하고 파악하고 있는가.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오히려 ‘아 프리오리’(a priori)적이라는, 혹은 메타적이라는 미명하에 모든 세속적 사상과 문화 뒤에 숨어서, 유치하기 그지없는 잣대와 세상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는 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세상 문화를 가위질하고 있는 모습을 더 자주 접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방향’이 잘못된 것일 뿐 세상의 모든 ‘구조’가 선하다는 생각을 토대로 삼아 복음으로 문화를 변혁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졌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이제는 세상을 파악할 수조차 없는 낡은 틀(framework)로 변하여 결국 자신이 그렇게 비난하던 이원론적인 사고에 눌러앉게 만드는 악행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되는 요즘이다.

문제는 돈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실상 헐리우드의 막대한 자본이 그러한 뛰어난 수준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게 하였다고, 그렇게 현대 자본주의의 ‘맘몬신’에게 절한 이들만이 세련된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변명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다면 헐리우드의 자본조차 워쇼스키 같은 변방의 컬트 영화 감독이 쓴 시나리오를 보고서 그들의 자본을 거리낌없이 투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반성 거리가 있을 법하다. 게다가 그 시나리오의 메타포는 성경적 원리에 충실하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문제삼고 싶은 것은 내가 애정을 갖고 있는 복음주의권이 기독교적 깊이와 세상 문화에서의 창조성, 이 두 마리의 토끼 모두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건가.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이제는 이런 영화를 보면서 ‘뉴에이지 사상’에 젖어있다는 유치찬란한 기사가 복음주의 매체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에 안주하며 도리어 기뻐해야 하는 문제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히려 복음주의권에서 이제까지 세상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하고 사상과 문화에서 창조성을 회복하고 변혁하자고 말하지 않았던가. 난 그런 뜨거움 속에서 자라난 마지막 세대가 아니던가. <매트릭스>를 보면서 우리도 이제는 고고한 성에서 이제 그만 내려와야 할 때가 된 건 아닌가 하는 자성을 해보게 된다. 복음주의의 수혜자를 자처하는 우리는 이제 우리가 그렇게 비난하던 헐리우드 액션영화보다 못하다.**
2003/07/01 00:48 2003/07/01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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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 (4): 직장생활 보고서 (2) (2003. 6.)

/ 김용주


<성(性)적인 문제>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한 선배를 오랜 만에 만났다. 반갑다는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가 무르익을 때쯤 회사생활에 대해 물었다.

“며칠 동안 프로젝트에 시달리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만 너무 피곤하더라고. 그래서 마사지를 받으러 갔지. 근데 글쎄 거기서 하는 말이 2차를 가든 안 가든 2차 가는 돈까지 내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그냥 왔어?”
“아니. 2차 갔어.”
“…”

나 이가 들수록 뉴스에서만 보던 이상한 일들이 가까운 주변에서 일어난다. 폭탄주도 그렇고 이런 ‘출장 마사지’도 그렇다. 휴학 후 잠시 있었던 회사에서는 직장 선배들이 내게 ‘총각딱지’를 떼 주겠다고 안달이었다. 회식자리가 끝나고 2차를 간다고 할 때마다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직장인 남성들에게 이러한 성(性)적인 문제는, 회사를 갓 들어가서 겪는 꽤 피하기 힘든 유혹처럼 보인다. 난 기독인이지만 불신자인 친구들도 많았고, 캠퍼스를 떠나 있는 동안 여러 부류의 사람들도 만났다. 기독인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불신자들은 30대를 전후하여 이러한 환경에서 성적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회사에서 남자 직원들 사이에 포르노물이 담긴 CD가 도는 것은 정말 흔한 일이고. 스포츠신문에서 연일 비밀처럼 보도되는 그런 내용의 비디오나 사진 파일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신기할 정도로 많이 퍼져있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그런 류의 음란물을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문제는 지위고하나 교육수준을 막론하고 모든 남성들이 피하지 못하는 유혹이 되고 있다. 병원에 의료기를 납품하고 있는 친구 중 하나의 말이, 자기가 거래하고 있는 병원의 의사가 물건 납품 시에 그런 음란물을 요구했다고 한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음란물에 나오는 사람이 한국사람이어야 한다는 둥, 꽤나 구체적으로 자신의 기호를 밝히더라는 것이다!

갓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직장 남성들은 과도한 일에 쫓겨 자신의 시간을 제대로 쓸 수 없을 때가 많다. 능력 있고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일수록 업무량과 출장이 많으니 그만큼 대인관계를 맺을 시간을 부족해지고, 그러한 연유로 많은 남성들이 이성과의 친밀한 관계에 대한 갈급함을 다른 방향으로 충족시키려는 듯 하다. 스포츠와 같은 활동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고 열린 공간에서 주변 사람들을 사귀는 이들도 있지만, 만성적 피로와 스트레스에 지친 상당수의 직장 남성들은 마사지나 술자리에서 성적 유혹을 받기 쉽고, 혼자 있는 시간에 음란물들을 탐닉하기 쉽다. 더욱 문제인 것은 직장 생활에서 남성들의 생활 구조가 그러한 유혹을 현실화시키는 데에 구조적으로 아주 적합하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구조 속에서 직장 남성들이 쉽게 자신의 욕구해소의 방편으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인격적 관계없이 물질로 성적인 욕망을 해결하는 습관이 들게 되면 결혼 후에도 그것을 멈추기가 힘들게 되는 것 같다. 회사에서 나와 친했던 선배는 결혼 후에도 술자리에만 가면 2차에서 그런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다음날 출근해서는 아내와 자녀에 대한 죄책감이 들어 자신을 정죄했지만 내가 근무하는 동안 그의 습관이 완전히 근절되지 않았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문제의 소지가 있겠지만 나는 한편으로는 이러한 비인격적인 행동이 오히려 낫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정당하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고 그런 남성들의 문제에 면죄부를 줄 생각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일부의 정이 많은 불신자나 기독인에게 주로 나타나는 또 다른 유혹이다. 이는 서로 잘 아는 이들 사이에서 많이 생기는데 그것은 기혼자 ‘사내 커플’의 문제다! 이른 바 결혼한 직장인의 ‘이성친구’에 대한 문제인데 이것은 두 사람 사이의 인격적인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 지속적이고 그 영향도 앞서 이야기했던 것들보다 크다. 내가 아는 회사의 이성 커플 중 자신의 가정에 두 사람 사이가 알려진 경우에는 모두 이혼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기독인의 경우, 회사에서도 일 중심적이기보다는 관계 중심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하는데 직장의 이성동료에 대한 그러한 애정 어린 관심과 도움이 지속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기도 한다. 간혹 교회의 목사님들이 여성도와 문제가 생기는 시발점은 오히려 좋은 동기에서 발생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기혼자의 경우에 발생하는 이런 문제는 가정에 치명적이며 그리스도의 섬김이라는 긍정적인 시도가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감시와 처벌>

이번에는 개인의 윤리적인 문제를 넘어서 직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 보자. 신입 사원이 대기업에 처음 입사를 하면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감시가 시작된다. 사원의 행동이나 버릇과 같은 반복적 패턴, 그리고 일을 대하는 방식, 말투와 같은 세세한 부분이 정리가 되어 인사를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사원들에게는 출입증이 발부되며 그 출입증은 회사 내에서는 직위를 상징하는 표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장된 칩을 통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가볍게는 화장실에서 잠을 잔다거나 혹은, 외근을 나갔다가 사우나를 간 경우 그 내역이 상부에 보고된다. 회사에서 나가는 일련의 메일들은 모두 그대로 복제되어 사내에 보관된다. 이러한 메일은 회사내의 기밀이 외부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통제수단이지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면 개인의 사생활까지 감시할 수 있는 도구적인 기능도 할 수 있다. 사무 자동화가 이루어진 이후로 회사는 직원들로 하여금 높아진 담을 두고 각기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한편, MSN 메신저나 출입증으로 각 개인을 매 시간 체크한다. 또한 근무시간에 자리를 이탈한다거나 업무 외의 일로 시간을 보내는지 감시하기 위해 자신이 속한 부서가 아닌 다른 부서의 직원들이 수시로 돌아다니면서 각 사원들을 체크하고 그 내역을 작성, 보고한다. 이러한 보고는 다시 인사팀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며 이후의 인사고과에 참고자료로 쓰이기도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는 무슨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나 “메트릭스”와 같은 영화 속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아니면 어느 정도 공감을 할 수도 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는 나도 잘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접한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조합하면 위와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나는 이 이야기가 충분히 사실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지 금도 후불제 교통카드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경우 특정한 날짜와 정확한 시간에 다녀간 장소를 알아낼 수 있다. 휴대폰을 켜 놓은 상태에서는 실시간으로 그 사람의 위치 추적도 가능하다. 예전에 특정 번호의 휴대폰 서비스업체에 가입한 사람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웹사이트가 잠시 개설되었다가 개인의 정보문제로 사라진 사례가 있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에도 행방불명 된 사람들 중 일부는 켜져 있는 휴대폰의 신호로 알아냈다는 기사 또한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간단한 프로그램으로 다른 컴퓨터의 정보를 가져올 수 있으며, 회사 내에서 외부로 나가는 메일은 검색어를 통해서도 걸러내거나 내용을 복사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란 얘기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서 손쉽게 사원들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당장에 쓰지 않겠는가.


<섬길 것인가 섬김을 당할 것인가?>

여전히 복음주의권에서 직장 윤리를 이야기할 때는 직장을 다니는 기독인 개개인의 섬김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복음을 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되어 회사에서도 동일한 섬김의 삶을 살 때 그 직장도 변화될 것이라는 청교도적인 믿음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듯 하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항상 그러한가? 개개인의 도덕성이 회복되고 조직에 충성되게 일하면 그 조직의 도덕성이 높아지는가? 이 즈음에서는 라인홀트 니버의 유명한 책이 떠오른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 경험을 곁들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당시는 의욕적으로 회사 생활을 잠시 하던 시기였다. 그때 나는 복음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나는 그 동안 내가 헛된 믿음 속에서 공허한 섬김의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깊게 깨닫고 있었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성화되고 있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성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욕구가 더 컸고, 은연중에 스스로가 더 선해지기 보다는 더 선하게 보이면서도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방법을 익히며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해 가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그 동안 그렇게 자신했던 기독인의 삶이었음을 발견하면서 나는 깊이 뉘우쳤고 새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럴 때 즈음에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나는 뭐든 일이 있으면 “제가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연발했다. 나는 성실함과 능력, 그리고 섬김의 모습으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일 때 진정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커피를 뽑는다거나 문서의 복사, 팩스 보내는 일이나 전화응대 같은 다소 귀찮고 무료하게 시간이 소모되는 일들이 하나씩 내 일이 되어 갔다. 다른 직원들은 처음에 나의 선행에 좋은 말들을 해 주곤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 모두가 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점점 하루 종일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만 갔고, 결국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을 마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어 자주 초과근무를 하는 일도 생겼다. 나중에는 복사지나 커피가 떨어졌거나 복사기가 고장이 난 경우에 사람들은 나에게 불평을 하기 일쑤였고 그런 상황에서 나는 작은 일 하나 제대로 못한다는 타박마저 들어야 했다. ‘그래, 이런 게 섬김의 길이야. 처음부터 칭찬을 기대해서 한 일이 아니었잖아.’ 나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조금씩 발생했다. 내가 일과의 대부분을 허드렛일과 씨름하며 보내는 동안 나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다른 이들은 나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동일한 시간의 대부분을 나는 발전적이지 않은,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들을 했던 반면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내적인 가치를 높이는 일에 전념했다. 그들은 나와 달리 때로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고 때로는 기대하지 않은 성과를 내며 상사의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결과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한 가운데 그 사람은 그 조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커 갔고, 나는 언제든 다른 어떤 사람과도 맞교환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이는 그 조직의 사람들이 특별히 악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돌아보면 어떤 조직에 들어가던지 내가 그 때와 똑같이 행동한다면 그 조직도 똑같이 나를 대접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기업이라는 조직의 특수성에 기인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비영리 단체가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기업은 이윤추구가 그들의 궁극적 목표다. 그것이 기업의 진리인 셈이다. 기업에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일이 있다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주저하지 않고 선택하며 그 일에 투자한다. 물론 투자의 과정까지 여러 부분을 재어보고 결정하겠지만 그 결정의 궁극적 잣대는 기업의 이익이다. 대부분의 사원들은 자신의 충정을 기업의 조직원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조직원들의 총합(summation)으로 이루어진 조직은 그러한 자신의 충정을 헤아리고 적절한 대접을 해 주리라고 믿는다. 적어도 과거 우리 아버지 세대의 분들은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회사는 각각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기계와 같다. 각 부품의 수명이 다했거나 그 부품보다 더 좋은 모델이 나왔을 경우에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새 부품으로 교체한다. IMF 체제 속에서 많은 이들이 이러한 부품 대접을 받고 망연자실했다. 이럴 경우 때로는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릴 정도로 그 충격은 클 수 밖에 없다. 매일을 내 집처럼, 아니 내 집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던 회사에서 자신의 자리가 사라져 벼렸을 때의 심정이란, 당해보지 않으면 그 느낌을 헤아리기가 힘든 것 같다. 기업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섬김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이런 면에서 어찌 보면 어폐(語弊)가 있는 듯하다.


<기업의 모듈화, 책임감 없는 기독 직장인>

기업의 풍토도 변화하고 있다. 한 기업의 사활이 이제는 가치사슬을 중심으로 서로 얽혀 있는 것이 최근 기업의 모습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현대 사회에서 기업은 가치 사슬(value chain)을 중심으로 고객업체와 공급업체, 소비자, 그리고 하청업체가 서로 ‘다대다’ 관계로 얽혀있는 extended-enterprise(확장 기업군)으로 존재한다. 이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기업 이윤추구에 도움이 되는 일에 투자하며 그 투자는 다시 전략적인 제휴로 이어진다. 장기적 안목에서 모든 거래가 행해진다.

이러한 거대 기업군 사이에서 개인의 생존전략도 치열해진다. 내 주변만 보더라도 선배들의 직장이 3년~5년을 주기로 변화한다. 고객업체의 기업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공급업체로 회사를 옮기는 경우도 있다. 대개는 급여를 기준으로 전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교육을 시킨 직원들이 다른 회사로 옮기는 일이 잦아지면서 채용 시부터 업무를 바로 수행할 수 있는 직원을 선호한다. 기업 환경은 갈수록 전문 분야에서 능력 있고 탁월한 사람이 살아남는 자유경쟁 구도로 변화하고 있다. 기업에서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각 개인은 자신이 다른 직원으로 대체될 수 없는 중요한 업무 수행에서 탁월함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런 사람의 경우에는 다른 기업에서도 선호하는 직원으로 꼽힌다. 순수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개인의 능력에 따라 기업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조직의 구조 자체에 그러한 자동화된 프로세스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는 동적 하부구조를 가진 거대 기업군에서 실력자로 생존하기 위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몸부림치고 있다. 이미 어느 정도의 판을 꿰뚫고 있는 이들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가며 생존 전략을 몸에 익히며 빠르게 ‘직장’ 사이를, 혹은 ‘직종’ 사이를 가로지르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살아간다. 역시 문제는,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는 기독학생들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선교단체 출신의 기독학생들은 회사에 들어가서 하는 말이 있다.

“저, 잘 모르는데요.”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다음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가 아는 거의 모든 기독학생들은 겸손하다.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결과물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는 대부분이 기독 공동체에 있을 때부터 항상 고백하기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므로 나는 한 일이 없다’는 소스 코드를 기업에 가서도 동일한 연장선 상에서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듯 하다. (물론 나는 그런 고백을 하는 사람의 선의를 믿으며 또한 분명 그 고백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회개와 용서의 신학을 그릇되게 적용하려는 행동의 위험성이다. 기업은 인격적이지 않다. 또한 기업은 실수와 잘못에 대해 냉정하다. 기업에서 용서란 없다. 단지 투자의 가치를 판별할 따름이다. 기독 공동체에서 훈련 받은 많은 학생들은 잘못에 대해 너그럽다. 일 처리에 있어서 잘 마무리하지 못하고 그 순간을 도망쳐 나온다 하더라도 다시 공동체로 돌아와서 잘못을 인정하는 회개의 고백을 하면 공동체는 너그럽게 용서하고 다시 그 지체를 일원으로 반겨왔다. 따라서 상당수의 기독학생들은 일의 마무리를 잘못하며 때로는 지나치게 무책임하다.

기업은 다르다. 한 개인의 오판이나 일 처리의 불완전함은 그 기업의 생존을 좌지우지한다. 단돈 몇 푼이라도 투자를 적게 해야만 다른 경쟁업체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이는 단순히 이윤을 더 남기냐 덜 남기냐의 문제가 아니라 동일 직종의 여러 기업간 경쟁에서 살아남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된다. 따라서 한 개인의 실수가 그 기업에 치명적일 수 있으며 그러한 풍토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곧, 자신을 그 기업에서 다른 직원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고백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에 언급했던 기독 학생들이 흔히 쓰는 ‘회개’의 표현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겸손함의 표현이라거나 혹은 잘못한 일에 대한 용납을 기대하는 의미로 사용했을지는 모르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은 타인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원이며 이러한 일이 반복될 수 있음을 암암리에 반증하는 것이 된다. 자신의 복음주의적 고백이 결과적으로 기업의 입장에서는 ‘도태’를 의미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듯 이런 일련의 변화 속에 기독학생들은 무방비로 사회 속에 내몰리는 경향이 있다. 선교단체에서 교육받은 대로 직장을 섬기기에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동료집단 속에서 성적 문제와 도덕적 문제에 봉착하면서 그것을 고민하고 날마다 자신을 악한 세속 사회에서 지켜가는 것만으로도 다분히 지치고 좌절하기 쉽다. 섬김의 삶과 실력을 쌓는 삶 가운데에서 오는 불협화음과 혼란들은 시시때때로 기독인의 정체성을 뒤흔든다. 기업은 그러한 개인을 쉴새 없이 감시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한 개인은 때론 흔하게 쓰던 복음적인 고백들이 ‘무능’이라는 딱지를 달고 나아가 그러한 오점들이 인사고과에 반영되기까지 한다. 갈수록 삶은 복잡다단해 지고 있으며 복음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야심찬 기대들은 최소한 그 판을 읽을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 될 것 같다. 우리의 직장이 그렇다. (계속)**
2003/06/01 23:24 2003/06/0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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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 (3): 직장 생활 보고서(1) (2003. 5.)

/김용주


<“커피”의 추억>

휴 학을 하고 잠시 회사를 다닐 때의 일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5-6년 전인 그 때에는 여직원이 커피 심부름을 하기가 일쑤였다. 물론 지금도 신문지상에서 간간이 커피 심부름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여전한 관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때는 여직원의 커피배달(?)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였다는 것이다. 아무튼 내가 있던 부서의 과장은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그리고 손님이 찾아오거나 회의가 있을 때 수시로 여직원에게 커피를 뽑아오도록 시키곤 했다.

“OO야, 커피 좀 뽑아와라!”
“네, 과장님.”

처 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상황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일단 남자직원은 커피 배달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이나 역할 분담에 대한 고민을 해보지 않는 게 신기했다. 게다가 가까이에서 지켜본 커피 심부름은 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과장은 커피를 가져온 여직원을 마치 다방 아가씨 대하듯 할 때가 많았다. 커피를 뽑아 와서 책상 앞에 놓을 때 과장은 야한 농담을 건네기 일쑤였다. 옷차림이나 화장에 대해 타박을 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손을 잡거나 허리 같은 몸의 부위를 두드리기도 했다. 간혹 보이는 커피 접대의 장면에서 나는 상당히 마음이 안 좋았고, 당사자의 입장에서 매일 아침을 불쾌한 마음으로 시작해야 하는 고충이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과장은 사전에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도록 여직원이 일도 잘하고 싹싹해서 칭찬해 주려는 거라고 웃음 섞인 말을 직원들 앞에서 크게 떠들어댔고 사람들은 그저 평상적인 웃음을 보이고 자기 일에 집중하며 상황은 무마되곤 했다.

어느 날 나는 젊은 혈기로 뭉친 의협심이 발동하여 여직원에게 가서 말했다.

“과장님 커피 제가 뽑아다 드릴게요.”

사실,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그 여직원은 커피 뽑는 문제로 상당히 예민해져 있었다. 나는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녀는 상처가 쌓여서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했던 듯 했다.

“그럼, 앞으로 커피 심부름은 용주 씨가 다 하세요!”

그 렇게 말하고는 획 하고 돌아서는 여직원에게 내가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사실 당시의 나는 솔직히 말해서 약간의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뿐이었지 매일 커피 심부름이나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약간의 도움으로 회사에서 여직원을 위하는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도 받고 싶은 동기가 내 안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여직원이 그렇게 나오자 나는 불쾌해졌다. 괜히 나섰다가 덤태기를 쓴 것 같아 솔직히 약간 분한 마음이 들어서 그 여직원이 나간 곳으로 따라 나갔다. 너무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려고 나갔는데 그녀는 화장실 뒤뜰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게 아닌가! 난 내가 임시직이긴 해도 직장에서 특권층인 남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 여직원은 열심히 공부하고 커다란 포부로 회사에 들어와서는 커피 심부름으로 매일같이 과장에게 불쾌하게 희롱 당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의 선의는 같은 부류인 한 남자의 비아냥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결국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사무실로 돌아왔다.

대신 다음 날부터 과장이 여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면 내가 재빨리 커피를 뽑아다가 과장을 갖다 주었다. 그러자 이번엔 여직원의 입장이 좀 난처해지는 것 같았고, 다행히 여직원은 나의 선의를 ‘인정’해 주어 이후로는 역할을 분담하게 되었다. 커피 심부름은 내가 하되 과장에게는 여직원이 직접 가져다 주는 팀웍을 구사했던 것이다. 그게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변화시키진 못했지만 적어도 여직원의 마음은 누그러뜨려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커피를 가져가는 타이밍에 생기는 문제 때문에 나는 되도록이면 결제 서류 같은 것을 여직원이 커피를 가져가는 시간에 과장에게 보여주곤 했다. 타이밍이 항상 잘 맞은 건 아니었지만 내가 결제 서류를 보여주는 사이에 여직원은 그냥 나오면 되니까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었던 듯 하다.

 
<여직원은 접대부?>

직 장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지나치게 미시적인, 그것도 ‘커피 배달’의 추억으로 시작하는 것에 김이 빠지는 독자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의 직장 경험 이후 시간도 많이 흘렀고 이제는 성희롱이나 커피 접대 같은 일에는 여직원이 보호 받는 풍토도 많이 조성되어 철 지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신문에서 교장이 여교사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면서 출세하려면 그런 것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냐는 식의 말을 당당하게 했다는 기사를 보면 불편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직장을 이야기할 때 여직원의 복지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것부터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나에게 이 보고서는 기만적이란 생각을 한다. 사실 이 글의 처음에 들었던 개인적 경험은 그나마 잘 풀린 사례다. 내가 경험했던 직장생활에서 항상 그렇게 좋게만 풀리진 않았다. 참다 못한 여직원이 회사생활의 꿈을 접고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도 허다했다. 나 스스로도 가부장적인 직장 생활에서 다른 남자 직원처럼 몸을 사린 기억도 많다.

저 유명했던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박노자 교수는 한국의 남자들이 군대라는 조직을 통해 어떻게 형질이 바뀌는지를 잘 설명해주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국의 남자들은 군대라는 조직을 통해서 이후의 직장생활에서 마주치게 되는 대인관계, 그리고 사회 속의 조직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교육받게 된다. 회사라는 조직에 가서도 직장 상사는 단순히 자신보다 연배가 높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나 업무의 최종 책임을 지고 나에게 필요한 업무들을 지시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군대에서 겪은 고참처럼 여기게 된다. 그래서, 이른바 “까라면 까라”는 관계가 형성되고, 상사가 하는 말은 곧 법이 되며 절대 복종의 대상이 된다. 상사의 직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군대에서 경험한 계급과 동일한 관계 계산법이 머리 속에서 작동하게 되고, 그런 전근대적인 회사 조직은 직원들에게 야근을 시켜가며 밤새도록 ‘굴리기도’ 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 회사라는 조직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대상은, 군대경험이 없고 신체 조건에서 불리한 연약한 여직원이 된다. 남자 직원은 3년간 그런 상명하복의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서 직장 생활을 무난하게 하는데 여직원은 다르다. “까라면 까”야 되는데 까라면 눈물을 흘리기 일쑤고, 야근을 꺼려하고 임신, 출산 및 육아 휴직에 아이들을 놀이방에 보내고 늦게 출근하는 일도 다반사이다. 이윤추구가 목표인 회사에서 여직원의 그러한 요구들은 눈에 가시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전근대적인 회사일수록 여직원을 채용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들이 존재하게 되고, 그런 연유로 면접 시에 여직원의 외모나 키, 나이 같은 것을 은근히 조건으로 내세우는 황당한 일을 저지르곤 한다. “여직원이 회사 생활을 하려면 부엌일도 잘 하고, 커피도 잘 타고 나긋나긋해야지”라고 말하는 데에는 그러한 가부장적인 직장 분위기의 폭력성이 드러나 있다. 이건 한 마디로 기업에서 ‘접대부’를 고용하겠다는 뜻이다.

최 근에는 나도 이러한 관행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대학원에 들어온 지금은 그런 환경에서 멀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에 주변에서 취업을 하는 여학생들이나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의 아내 얘기를 들어보면 내가 경험하던 불합리한 상황들은 많이 사라졌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복지 문제에서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직장에서 남성과 동등한 위치로 여성들이 경쟁을 하고 있다면, 아니, 보다 원색적으로 말해서 회사가 여사원을 단순히 ‘접대부’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조직 구석 구석에는 능력 있는 여성들이 많은 남성들과 더불어 이름을 날리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최소한 비슷한 수의 여성들이 회사에서 남성들과 함께 사회 생활을 영위하고 있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의 이른바 고위직에 남성과 비슷한 수의 여성들이 배치되어 있어야 한다. 교수 사회를 예로 든다면, 여 교수가 형편없이 부족한 대학에는 교수직 선출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지속적인 상징적 폐기가 그 조직에 암암리에 고착화되어 있었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대개 이런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전반적인 회사에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여성을 폄하하곤 했는데, 내가 직장 생활을 통하여 체험한 여성에 대한 상징적 폐기의 방식에는 몇 가지의 유형이 있다. 대충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여성들은 업무 시간에 잡담을 하거나 커피 자판기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
2. 여성들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여 사적인 문제가 생기면 업무의 능률이 떨어진다.
3. 여성들은 업무 시간에 개인적인 전화를 너무 오래 한다.
4. 여성들은 결혼 후에는 사직할 확률이 높고 대체로 3-5년 정도 이상 장기 근무할 생각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 론 위와 같은 나열을 어떤 일반적인 유형으로 상정하자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까지 전문적인 통계수치를 가지고 이 문제를 연구하지도 않은 입장에서 나는 단지 내가 경험한 직장 생활의 특수한 경우를 이야기하려는 것뿐이다. 하지만, 주변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회사에서 여성을 평가절하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그런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지나치게 여성들에 대한 부정적 선입관이 포함되어 어서 그러한 정서는 다소 고쳐져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나는 위와 같이 이야기하는 바로 그런 회사에서 도리어 여성에게 허드렛일만을 강요한 결과는 아닌가 하는 되물음을 던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인 여성의 분투를 바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나는 내가 여성이었으면 글을 쓰기에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겪게 될 문제가 아님으로 인해서 “힘들더라도 우리 이렇게 해쳐나가 보자!”는 식의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다. 따라서 결국 이런 식의 문제제기는 “그런 거 다 알고 있는 일이야. 신문지 상에서도 매일 접할 수 있고 나도 매일 겪는 일이지. 하지만 단순히 흥미거리로 만들기 위해서 이런 글을 쓴 게 아니라면 무슨 나름의 해결책이라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비판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 생활 보고서의 시작을 내가 어떤 대안을 이야기할 수 없는 직장 여성 문제로 시작하게 된 것은 처음에도 말했듯이 직장에서 여성의 복지 문제를 도외시하고는 직장을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비중이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성들의 입장에서는 이를 가볍게 여기고 이전과 동일한 사내의 가부장적 정서로 직장 여성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글을 쓰는 동기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무런 인식 없이 직장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기독인 여학생들에게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보자는 의도이다. 그리고 나름의 대안들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최소한 적진의 지도조차 없이 들어갔다가 낭패를 보는 일은 겪지 말고 지형의 가장 나쁜 경우가 이렇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마음의 준비와 나름의 행동지침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램이다. 특히 기독 선교단체 출신의 여학생들의 경우에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공동체 형제들의 보살핌 속에서 생활하다가 갑자기 바뀐 환경에 당혹스러워하며 상처를 받고 적응하지 못하여 결국에는 안타깝게 회사 생활을 접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대학 지성사회로의 부르심을 입은 기독인 여학생들도 직장 생활의 부르심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여성들의 직장 문화와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을 도피하지 않고 분투하는 일에 함께 대응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03/05/01 23:10 2003/05/0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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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결정이 한국 교회의 희망입니다
: 대형교회 목사님의 아드님들에게 보내는 서신

 
/김용주

  

새벽에 잠에서 깨면 온몸에 한기가 느껴지던 때가 불과 며칠 전인 것 같은데, 이제는 어느덧 따스한 햇살이 그간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 온기를 가져다 주는 봄기운을 느낍니다. 이 서신을 님께서 받아보실 즈음에는 이미 녹음(綠陰)이 푸르게 새 생명을 얻을 시기일 것 같습니다. 평안하신지요.

저는 조그만 교회를 다니고 있는 기독 청년입니다. 몇 년 전에 저는 우연히 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제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저를 포함한 많은 청년들과 성도들의 가슴에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줄 만한 이야기였기에 저는 지금까지도 많은 관련된 이야기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모든 것이 기정사실로 들어날 때마다 저는 님과 님의 아버지의 선의를 받아들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님의 아버지께서 한국의 교회를 세우는데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흔히 복음주의 1세대라고 지칭하는 데에는 지금의 대형교회로 성장한 몇몇 교회의 목회자 분들의 헌신과 노력이 깃들어 있으며 그러한 토대 위에 세워진 터 위에서 우리가 커왔다는 생각을 하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그 분들의 노고에 항상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처음 담임 목회직 세습에 대한 논의가 나왔을 때에도 저는 그 부당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님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좀더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어하는 부성애는 정상적인 아버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본성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님께서도 그러한 아버지에 대한 깊은 감사와 존경, 그리고 효심(孝心)으로 그런 어려운 결정을 하셨을 거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자, 저는 세습이 부적절한 판단과 행동이었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서도, 부족한 저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 내심 불편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렇게 님에게 서신을 띄우게 되었습니다. 저의 부족한 생각으로는 님이 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저와 성도들, 그리고 한국 교회를 위하여 큰 변화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저는 진정으로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 사역을 하다 보면 자신의 아들을 학대하고 내버리고,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임의로 자녀들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볼 때, 저도 나이가 들어 아버지가 되어서 그런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진정 누군가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끝까지 사랑하는 일은 지속적인 자기 것의 포기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하지만, 님의 아버지는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 분들입니다. 당신 입으로 자주 말하는 '주의 종'입니다.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로 작정하신 분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분들의 자식 사랑은 공감은 하지만 용납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분의 헌신으로 세워진 교회인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그 분들의 가르침 아래에서 시장바닥에서 힘겹게 일을 하면서도 예배당을 짓고 하나님께 당신의 나라가 확장되는 일에 헌금을 해왔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식의 등록금이 없어 대학에 못 보내는 일이 있어도 교회에 헌금이 부족한 경우에는 기꺼이 자식의 대학 진학을 포기시키고, 집의 전세비를 빼서라도 헌금에 열심을 내었던 일이 다반사였다고 들었습니다.

님의 아버지가 독재 시절에 사회에서 바른 소리를 하지 못했던 것은 그러한 선량한 성도들이 고통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그렇게 함으로써 얻은 정부의 도움으로 한국의 기독교가 성장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성장하게 된 기독교가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이 희망을 잃어가던 시기에 큰 버팀목과 안정을 줄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 억지스레 고개를 끄덕여 보던 적도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제가 듣게 된 이야기들은 오히려 저를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분들의 그러한 과거지사는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봉사로 꽃피울 때에 진정 그 당위성이 받아들여지게 됨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재정적인 비리 의혹과 '제왕적 리더쉽'이라고 표현되는, 그리고 인맥을 중심으로 담임 목사직을 세습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그간 그분들의 논리에 대한 당위성을 인정하려던 일말(一抹)의 명분마저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님의 아버지의 부정부패의 변화를 촉구하는 시위와 포럼장에 가 보기도 하고 기사로 듣기도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하늘 아래 살아가는 우리들이 이러한 모습으로 만나야 하는 건지, 처음 시위에 동참하러 가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저는 이내 님의 아버지를 왜곡되게 사랑하는 사역자들의 이상한 행동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비난과 욕설, 그리고 폭력을 행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단으로 치부하고 조롱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 사역자 분이 전문적으로 힘을 쓰는 머리짧은 분들을 데려와서 포럼 위원들을 힘으로 진압했을 때에 저의 가슴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분노할 수 없는 채로 절망했습니다. 우리는 한 가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들의 대응에 저는 같은 식으로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 아래에서 그 분들도 우리가 끝까지 사랑해야 할, 서로의 심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는 한 형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님의 아버지께서 권력과 명예나 재산을 탐하고 있다고 믿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리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기사들이 나온다 해도 저는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럴리가 없습니다. 아니, 그래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저 사랑하는 아들의 길을 조금만 닦아주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라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아버지의 마음은 한국의 천만 성도들의 아버지에게도 동일한 마음입니다.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뒤로한채 예배당을 짓는 곳에, 선교를 하겠다는 곳에,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쓰여진다는 곳에 님의 아버지가 섬기던 교회의 성도들은 자식의 편안을 위해 모아 두었던 재산들을 거리낌 없이 바쳤습니다.

저는 님이 커다란 기업의 사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수백억원이 드는 개척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아버지의 교회에서 이제는 목회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장인어른과 40년 사이의 리더쉽을 뒤로한 채, 대표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기까지 또한 아버지를 잘못 섬기는 많은 분들의 희생과 노력이 필요했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좋건 싫건 그러한 희생을 치렀기 때문에 주변의 이야기들을 무시하고 빨리 안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한편으로는 이해하게 됩니다. 아픔이 지속되면 누구나 힘들어하고 공동체에 덕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2세대인 님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정말 뵐 수 있다면 무릎을 꿇고라도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님의 청년기의 꿈은 이런 게 아니었지 않습니까. 우리가 처음 복음을 전해듣고 마음에 생겼던 뜨거움은 이런 것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낮아짐과 그 피흘림. 죄를 위해 자신을 버려야 했던 창조주의 사랑 앞에 우리의 초라함과 죄성을 깊게 뉘우치며 가슴 아파하며 눈물로 회개한 그 날의 우리는 이런 것을 꿈꾼 게 아니었지 않습니까.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임으로 인해 얻게 될 안정된 그 자리에서 님은 젊은 시절의 영적 충만함과 기쁨을 느낄 수 없지 않습니까. 님께서 처음 복음을 접했을 때 가졌던 그 기쁨은 지금의 자리와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의 시간이었지 않았습니까. 편안한 그 일체를 버리고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곳이 천국이라고 찬송하고 기뻐하고 눈물흘리던 님들이 아니었습니까.

저의 아버지도 나이가 드셨습니다. 젊었을 때의 패기와 어릴 때 제가 느꼈던 아버지로서의 강한 인상이 많이 사라지셨고, 마음도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인간적인 부분으로 이해해 드려야 할 일들도 많아졌습니다. 때론 자식을 위해 판단력도 많이 흐려지시는 것 같습니다. 제 아버지도 점점 제가 편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아버지께 저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리게 됩니다.
사실 저도 자신이 없습니다. 험한 삶을 마쳐갈 즈음에 자식이 고생하지 않을 수 있는 힘과 권력이 내게 있다면 저도 그러한 일에 분명 유혹을 받게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육체의 부모는 님을 맡은 것 뿐이며 우리의 영적 아버지는 때때로 육체의 아버지가 행하는 잘못된 방법들을 원치 않는다는 저의 신앙 때문입니다.

님의 결정은 아주 중요합니다. 님의 교회에서 이야기하듯 님의 교회는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돈으로 세워진 예배당 같은 건물이나 재산과 명예가 아닌 성도들 그 자체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님의 아버지를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님의 결정에 희망을 걸고 싶습니다. 님은 아직 젊지 않습니까. 지금 님의 학력과 재산과 명예만 가지고도, 아버지의 그러한 방법 없이도 님의 능력은 드러날 수 있지 않습니까. 많은 성도들의 희생과 사랑으로 커온 님들이 아닙니까. 님의 꿈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한국 교회에서 ‘주의 종’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님의 결정을 통해 그것을 확증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저와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그러한 결정으로 인해 님을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희망으로 님을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님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간절히 원합니다. 정말로 간절히 원합니다. 종국에 역사는 굽어진 허리는 바르게 펴기 마련이며 그러한 올바른 역사의 결정을 내리게 될 때에, 님의 아버지께서도 마음이 누그러질 것이며 결국에는 님을 자랑스러워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같은 피를 심장에 이식 받은 형제된 저의 바람입니다.

영육 간에 평안과 건강을 기원하며.
 


김용주 드림.

2003/05/01 00:46 2003/05/0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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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 (2): 캠퍼스 보고서 (2003. 3.)

/김용주


<변화된 캠퍼스 전경>

아 직도 가끔 생각나는 건 복학을 한 첫 주의 캠퍼스에서 받은 충격이다. 수강신청 시에 신청서를 써서 과사무실에 제출하던 과거와는 달리, 전산실에서 학번과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각 수업을 조회하여 그 과목의 학수번호를 입력하여 신청하게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전에 학수번호 검색을 이미 마친 상태로 왔고, 나는 한참동안 과목들을 검색한 후에 신청 버튼을 눌러야만 했고 그 사이 대부분의 인기있는 과목은 이미 정원이 다 차버리기 일쑤였다.

수업 첫 날, 나는 정말 별천지에 온 것 같았다. 수업 당일에 교제까지 알아서 챙겨온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수업 자료는 웹 페이지에 링크를 시켜놓았는데 PDF 파일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둥, 숙제는 교제의 뒤에 첨부된 소프트웨어를 컴퓨터에 설치하여 프로그램을 돌린 후에 생성된 파일을 언제까지 칠판에 공지된 ftp주소에 올려 놓으라는 둥, 텀프로젝트(Term-Project)는 언제까지인데 코딩은 C++이나 자바로 하고, 발표자료는 파워포인트로 하라는 둥, 이런 저런 수업소개를 하는 교수의 말을 들으며, 나는 마치 외계인을 만난 것 같은 낯선 느낌이 들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식의 수업진행이 보편화되었지만, 90년대 중반에 학교를 다니다가 공백기간을 거쳐 다시 돌아온 캠퍼스에서의 학업과정이 당시에 내게는 그렇게 낯설기만 했다.

공강시간마다 지나다니는 복도에는 직접 손으로 쓴 대자보와 동문회 소식지들 대신에 깔끔한 디자인과 색상으로 포장된 학기 중 인턴사원을 모집한다는 대기업의 홍보물과 토플, 토익 같은 어학 특강 공지로 매워져 있었고, 도서관에는 고시 준비에 필요한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자리들로 가득했다.

예전과는 달리 수업을 들어가자 각 학과마다 전과생과 편입생들의 수가 늘어나 있었다. 학과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평균 연령도 높아진 편이며 이런 학생들의 경우, 캠퍼스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노련함이 돋보일 때가 많았다. 학과는 대부분 학부로 변화되었고, 한 학부 당 평균 인원 수가 100명 이상이 되면서 선후배간의 친밀함도 줄어들었다.


<캠퍼스 시험 문화 보고서>

캠 퍼스 생활을 하면서 나는 전과는 다른 몇 가지의 점들을 발견했는데, 그것 중의 하나는 시험이었다. 나는 처음 학교에 들어가서는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 과에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수강신청을 한 후에 전공 중에 자신있는 한 과목씩을 맡아서 그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그것을 20-30분 정도 다른 학생들에게 설명해주고 중요한 부분을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그런 모임의 장점은 아무리 모임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자기가 공부한 과목은 높은 학점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대부분 학생들은 도서관이나 집에서 시험 준비를 하거나 때로는 동아리 방이나 과방에서 그룹별로 모여서 함께 공부를 하는 일이 많았다.

복학 후부터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시험문화도 변화했다. 요즘 학생들은 지속적인 그룹별 활동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지속적인 스터디보다는 단회적인 시험에 잘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한 면에서, 시험을 칠 때 실력 검증보다는 정보의 ‘선점(先占)’에 더 큰 에너지를 쏟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학생들은 시험 전에 해당 교수의 연구실에서 주로 중요한 정보들을 얻는 것으로 시험준비를 시작한다.

소개팅 이나 술자리를 통해 연구실의 조교들과 친분을 쌓는 일도 많고, 시험기간에는 조교들이 그런 식으로 친해진 학생들에게 평소 교수가 자주 출제하는 문제나 출제 방식에 대한 것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물론 이런 정보들을 가진 노련한 학생들이 무식하게 책 한 권을 다 읽은 학생들보다 시험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시험 기간에는 어쩔 수 없이 학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에 앞서 누가 시험문제를 출제하는가 하는 문제와 그에 대한 정보를 누가 먼저, 그리고 주변에 알리지 않고 얻는가가 시험의 변별력을 높이기까지 한다. 과장되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나도 고민 끝에 그런 흐름에 합류했다. 더 이상 스터디 모임은 유지되기 힘들다고 판단했고, 일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어렵게 얻은 시험관련 소스들을 주변 친구들에게 오픈하는 방법을 택했다! 나의 목적은 그런 식의 자료들을 가진 소수가 그 과목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숙지한 학생들보다 높은 점수가 나오지 않도록 정보전에서의 변별력을 줄이는 데에 있었다. 초반에는 좋은 변화들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소스를 공개하는 나에게서 정작 중요한 정보들이 멀어지는 일이 생겼다. 전문용어로 ‘왕따’가 되었다고나 할까.


<캠퍼스 ‘보고서 문화’ 보고서>

나 는 학부에 있을 때, 스탠리 그랜츠와 같은 복음주의권 저자의 영향을 받고있던 터라 되도록이면 신앙과 학문을 연결시킬 수 있는 과목을 주로 선택했고, 보고서는 그런 관점에서 썼다. 보통 중간이나 기말 보고서의 경우 20일에서 한달 정도가 소요되었고, 분량은 A4용지 20장 내외 정도를 썼다. 물론 내가 제출한 보고서는 한 번도 최고점수를 받아본 일이 없었다. 보고서 자체가 부족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종교적 시각을 드러내는 글은 논리 이전에 평가절하되기 일쑤였고 레퍼런스에 기독서적이 포함되는 것도 학문적 신뢰도를 낮추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나는 항상 그런 평가에 오기가 생겨서 강사가 요구하는 수준의 참고서적과 더불어 소위 복음주의권에서 관련 연구가 어느 정도나 진척되었는지 함께 공부를 병행했었다. 물론, 결과는 항상 내게 실망감을 가져다 줄 때가 많았다. 돌아보면 한 과목당 함께 읽은 책은 6-8권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보고서도 내가 선호했던 ‘텍스트 기반’의 작성 스타일에서 ‘하이퍼텍스트 기반’으로 달라졌다. 더 이상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다. 보고서도 이제는 정보전(情報戰)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에서 구글(google)과 같은 전문 검색 사이트를 참조하는 물론이고, 해당 과목에 대한 보고서를 공유하는 전문 사이트들도 즐비하다. 회원가입절차를 거치면 전공과 교양 과목에 따라 분류된 대로 해당 보고서에 대한 검색이 가능하다. 정확히 일치하는 주제는 물론, 운이 좋은 경우에는 해당 교수가 높게 평가했던 바로 ‘그’ 보고서까지 조회가 가능한 경우도 있다.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소스 파일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잘 찾아낸 후에 Copy & Paste 작업을 거쳐 조금만 편집하면 훌륭한 보고서가 된다. 문제는, 그 분야에 대해 꾸준히 텍스트를 읽고 나름대로 한계를 느껴가면서 작성한 보고서보다 전자가 훨씬 양이나 질적으로 우수한 경우가 많다. 때때로 교수들도 공공연하게 잘 편집한 ‘짜집기 보고서’에도 좋은 점수를 부여하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물론 개중에는 이런 식의 보고서를 받기 싫어하는 교수들이 직접 손으로 쓰는 것을 고집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전통적인 학업방식을 고수하는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뒤쳐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러한 하이퍼텍스트 기반의 보고서 작성에 어느 정도 익숙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보고서를 학점에서 일정한 퍼센티지를 차지하고 있는 숙제 정도로 생각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오히려 수많은 복제된 보고서를 양산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은 수강신청 때부터 공부해보고 싶던 분야를 찾기 보다는 취업 준비와 고시 준비로 바쁜 자신의 시간을 감안하여 취득하기 수월한 과목을 정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과목의 보고서들은 그 내용에 맞는 컨텐츠를 찾아서 적시에 제출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인 듯 하다.

수 업을 듣는 학생에서 수업을 가르치는 교육조교가 된 내 위치에서, 나는 되도록이면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결국 얻게 될 지식은 무엇인지, 그것이 장기적으로 이 과목을 이해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를 되돌아보도록 권면하려고 노력한다. 결국 이 모든 문제의 해결은 기본적 동기의 점검일 수 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캠퍼스에서 깊이있게 학문을 대하는 자세가 절실하다는 나름의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선교단체 기독대학생의 또다른 학업 문화 보고서>

선 교단체의 학생들은 정확하게 일반 학생들의 세계관에 역행한다. 물론 기독학생들도 이중적인 잣대가 생기게 되긴 하지만 일단 원론적으로는 정반대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의 학생회의 배경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생들은 기독공동체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친밀한 유대관계를 쌓아가며 수련회를 통해 기독교의 기본적인 영성훈련과 공동체성을 습득함으로써 상당한 부분을 공급받게 된다. 예전처럼 동문회가 캠퍼스 문화의 큰 영역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기독 공동체는 어떤 면에서는 캠퍼스에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데 큰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이들이 캠퍼스를, 그리고 학업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들은 캠퍼스를 전도의 대상이자 영적 전쟁터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학업보다는 공동체를 견고히 하기 위한 일들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어 앞서 설명했던 캠퍼스 문화권에서는 멀어지게 되며, 점차 폐쇄적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리잡아 간다.

나는 공대에서 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3학년 때에는 정말 바빴다. 바쁜 일정들 때문에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매주 전공과목은 과제들이 쏟아졌고, 학업과 공동체 자체 모임, 기연과 복상 독자모임으로 정신이 없었다. 결국 때로는 팀 프로젝트를 하는 경우에는 팀에 속한 친구들의 도움을 받게 될 일들이 생기기도 했다. 사실, 선교단체의 리더들에겐 이런 일이 다반사이다. 내가 아는 소위 공동체에서 인정받고 탁월하다는 리더들은 학과에서는 아웃사이더거나 학업을 등한시하는 학생으로 각인된 경우가 더러 있었다.

물론, 그런 학생들은 고민과 갈등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신자의 ‘고난’이라 여기고, 학업을 하나님 앞에 포기해야 할 자신의 ‘이기적인 무엇’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다른 리더들은 지금 함께 기도회를 하고 하나님을 애타게 부르짖고 있는데, 내가 시험기간이라고 더 중요한 기도모임을 뒤로한 채 공부를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내가 시험공부를 포기하더라도 저들의 기도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의무이자 기쁨이 아니겠는가? 매 순간마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기독학생들은 캠퍼스에서 무능력한 존재로, 그리고 이원론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시험(test)기간에 학생들을 시험(temptation)하는 선교단체들의 무리한 모임 일정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 주변에는 그런 친구들이 상당히 있었다. 모임에서 나눔을 하면, 시험 전날 공부를 할까 하는 유혹이 있었지만 결국은 리더모임과 아침 기도회에 참석해서 기도를 했더니 마음이 편안해지더라는 식의 간증을 하는 학생들이 실제로 많이 있다. 물론 그런 대부분의 선교단체 리더급 학생들이 자신의 학과에서 주변인일 확률이 크고 그런 경우에 일반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캠퍼스 문화의 주체로 설 역량은 그만큼 부족하게 된다. 나에게도 갈등의 시간들이 있었다.

새내기 때 장학생이었던 나는 왜곡된 신앙과 ‘헌신의 대가’로 1년 만에는 권총을 차보기도 했다. 신앙이 어릴 때는 내가 목회적 소명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대부분의 기독학생이 고민할 법한 고민을 했었으며 삶의 우선순위가 내가 속한 선교단체모임, 연합모임, 학업, 가정의 순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각인되기 일쑤였다. 세계관 공부를 하고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에 대한 논의를 접하고, 제임스 사이어나 폴 스티븐스와 같은 저자들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난 ‘다른 방식’으로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캠퍼스에 내가 존재하게 된 일차적인 목적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 대한 탐구를 보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수행하기 위한, 가시적이고 명백한 형태의 부르심이라고 결론지었다. 신앙이란 이름으로 내 학문적 가벼움을 합리화하고, 학문의 도피처로 기독 공동체 생활에 더 열성적으로 헌신하는 것이 내 신앙을 더 깊고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더 구분된 존재로, 더 나를 세상에 편입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가면서 생기는 내적 불편함을 일소하기 위한 방어기재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힘들었지만 내가 속한 기독모임들을 끝까지 함께 참여하면서 수업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학점포기제라는 것이 있어서 힘이 들 때는 취약한 과목을 자르고 싶은 충동이 한 주에도 몇 번이나 들었다. 평소에 공부만 하여 그야말로 ‘일취월장’하는 친구들의 실력 앞에 매번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마침내 둘 사이의 벽이 깨어지다!>

개 인적인 경험이 곁들여진 긴 이야기의 마지막이다. 캠퍼스라는 학문의 장에는 두 부류의 학생들이 공존하고 있다. 한 쪽에는 학문의 깊이보다는 일시적인 평가결과에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극단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그런 전략적인 대응을 비난하고 더불어 학문의 길마저 적정선에서 포기하기로 결단한 기독 학생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기독 선교단체의 ‘독특한’ 문화가 적어도 4년 동안은 유효한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효율적으로 잘 운영이 되는 것 같아 보인다. 문제는 4년 후반에 시작된다.

여 기에서 선교단체 학생들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그간 잘 성장해온 기독학생들은 이미 사회에 진출할 적응력이 키워지지 않은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4년간 학업 전선에서 1차적 부르심을 잘 피해 다닌 열매를 거둘 때가 된 셈이다. 그간 내가 지켜본 공동체에 헌신했던 리더들은 두 갈래로 나뉘곤 했다. 전임사역과 역회심(易回心)이 그것이다.

항상 선교단체의 행사만을 신앙적인 것으로 여기는 데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몇 일의 기도 끝에 전임사역이 자신의 부르심이란 확신을 가진다. 이들에게 결핍된 것은 생활영성이며, 현대 사회와 문화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 능력의 부재다. 내 생각으로는 두 번째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이들은 역회심을 하는 부류이다. 선교단체 학생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 중의 하나는 학부시절 뒤돌아보지 않고 공동체에 헌신한 대가로 하나님이 자신의 진로를 보장해 줄 것이라는 헛된 믿음이다. 헌신은 대가가 없을 때 헌신이다. 그렇지 않고 서로 다른 층위의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면 그건 일종의 거래라고 볼 수 있다.

몇몇 기독학생들은 예루살렘 입성을 앞둔 야고보와 요한처럼 무의식 중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채권자로 만들어간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세상적인 것들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단지, 현실 세계의 요구들을 모르고도 살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런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은 졸업 직후이다. 당장에 취직이 안되면 조금씩 마음 속에 하나님을 향한 원망들이 생긴다. 캠퍼스에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모든 것을 바쳤는데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든 탓이다.

대학을 학문과 지성의 장으로 보지 않던 두 극단에서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보내지는 쪽은 헌신된 기독학생들이다. 주변의 친구들은 이미 자신이 알던, “금방이라도 지옥불에 빠져들 것 같던” 불신자가 아니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외국인 기업에 취업하기도 하고 자동차를 몰고 나타나기도 한다.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카드를 꺼내서 결제를 하는 불신자 친구 앞에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물론 상당수의 학생들은 이 어려움 앞에서 신앙이 견고해지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고, 새로운 영성을 획득하는 수확을 얻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학생들은 회의와 좌절의 시간을 거쳐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그것을 어리석다 여기는 안타까운 일들도 생기기 마련이다(이 문제는 다음 연재에서 주로 다루도록 하겠다).

나는 정말 기독학생들에게 권면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이런 4년간의 흐름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야 힘들어하고 고민하며 정작 세상에 뿌리 내릴 수 있는 영역을 스스로 구속시키지 말자는 것이다. 난 이들의 구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깊은 묵상과 공동체성으로 단련된 이들의 신앙을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세상에서 전혀 발붙일 자리가 없도록 방치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한계가 있다. 나를 돌아보더라도 정말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지만 우등생으로 졸업하지는 못했다. 대신에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학점과. 학업에 관련된 작은 상을 받았다. 난 그것에 만족한다. 기독학생운동이란 이름 아래 제한되었던 많은 일들로 인해 학업에도 적잖은 부정적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나는 나보다 더 공부에 헌신되고 전략적으로 학점을 받으려 했던 학생들을 이길 수 없었다. 그건 기도와 공동체성으로 보상받을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난 그들과 같은 학업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해야 했다. 나의 신앙적 양심으로 판단하기에 기독대학생들이 캠퍼스에 들어온 특혜를 부여 받았다면 그 특혜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2003/03/01 23:09 2003/03/01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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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1): 술 문화 보고서 (2003. 2.)

/김용주


<조금 긴 도입부>

대 학 졸업을 앞두고 나는 내가 가진 것이 수도권 대학의 공대출신이라는 “간판” 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복학을 하면서 나는 선교단체의 리더 생활을 시작했고, 한양대 기독학생연합회의 문서팀과 “복음과 상황” 독자모임에 비중을 두게 되면서 다소 분주한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3학년 말 즈음에 학교의 기연 쪽 일을 하던 후배들이 총학생회 진출을 결심하고 도움을 요청하면서 나는 다시 대학의 말년까지 도서관에 앉아 선거를 위한 정책을 짜는데 시간을 보냈다. 사실 처음부터 나는 우리가 총학생회 진출에 실패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지만, 복음주의의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자칭하는 선교단체 학생들이 무기력한 애완동물처럼 양육되고 그렇게 타성에 젖어가는 모습에 심한 좌절감을 느끼던 터라, 역량이 부족해 보이긴 했지만 캠퍼스에 대한 소망함을 가지고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후배들에게 큰 감동을 받아 결국엔 그들에게 ‘코’가 끼고 말았다. (전에 연재된 “약간은 도발적인 캠퍼스 보기”는 그런 몸부림으로 경험한, 거시적인 관점으로 본 캠퍼스 생활의 결과물이었다.)

나는 어떤 행동을 하기 이전에는 어느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스스로가 사회에 나가기에 준비가 덜 되었다고 느꼈다. 물론 분주한 생활로 인해 학업에서 부족한 부분이 생긴 면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주변 신앙의 선배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90년대 중반 학번이다. 80년대 대학 문화가 운동권 문화였다고 한다면 90년대 초반은 변질된 운동권에 대한 회의감을 가진 학생들이 생겨나는 시기였고, 90년대 중반은 그 틈을 타서 신세대니 X세대니 하는 말로 대학생들에게 운동권 문화를 단절시키게 만들고 소비문화를 조장하는 시기였다. 그렇게 캠퍼스는 문화창조의 주체에서 소비문화의 주체로 돌변했다. 이제껏 대학생활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마치 나를 따르라는 식의 거시적인 이야기들을 해온 나는 졸업과 함께 잠시 멈춰서야만 했다. 아직 내 주변에서 도전이 되고 본이 되는 선교단체 출신의 선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선교단체의 선후배들이 운동 중심의 대학문화에 회의감을 보이고 있으며, 로잔 언약이 천명한 사회참여라는 이슈가 더 이상 우리의 상황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게다가 몸바쳐 공동체에 헌신했거나 뭔가 변화를 위해 캠퍼스에서 열정을 불태웠던 선배들은 냉엄한 사회의 현실에 직면하면서 생존을 위한 노력에 몸부림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이제 사회인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직장인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막상 그들에게 정죄의 화살을 돌릴 일도 아니다. 생존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어졌다. 전문성의 개발과 바른 사회인의 모델 제시를 위한 준비를 위해 대학원에 들어온 지 1년이 지났다. 전에 나는 어설프게나마 직장생활도 했고 공장에서 막일도 했다. 지금은 대학원에 있으면서 학회 사무직 일도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학업을 계속하고 있으면서 학부생들을 가까이에서 피부로 접하고 있다. 나는 캠퍼스와 사회의 중간, 즉 ‘회색지대’에 있는 셈이다. 문득 양쪽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지금 내 위치가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정부분의 한계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들과 거의 동일한 경험을 하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각인된 경험들을 보고서로 작성하고 그것을 가지고 같이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기대를 갖기 전에 절망부터 하라는 복상의 논객 Gramsci님의 말처럼, 나는 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닌 이 어정쩡한 위치에서 절망으로부터 시작했다. 언젠가는 희망을 가질 날이 올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기쁜 맘으로 중간 다리 역할을 해 볼 마음을 먹었다. 이번 달에는 내가 경험하는 회색지대의 술 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연재를 시작하려고 한다.


<술 문화 보고서>

새 학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있는 것이 신입생 환영회다. 나는 흔히 ‘사발식’이라고 불리는 신입생 환영회의 신고식을 한 마지막 학번이 아닌가 싶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게도 난 당시에 건강이 좋지 않아 신고식을 치르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 기독학생들이 많았던 터라 그 이후로도 최소 1년 동안은 술 문제로 신앙적인 고민을 했다. 개중에는 신고식을 하는 것을 일제시대의 신사참배 하는 것처럼 여겨 정색을 하고 선배들에게 기독인임을 ‘선포’하는 친구도 있었고, 애교로 유연하게 넘기는 친구들도 있었다. 술과 신앙은 별개라며 사발을 마시고 술에 취해 정신을 잃는 친구도 있었다. 신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딱히 말해주는 선배도 없었다. 신입생들에게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기 때문에 지금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편이지만, 당시에 나는 술에 대한 정리된 ‘행동지침’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실했다. 오죽하면 선교단체에 가입하면서 처음 배운 귀납적 성경연구 방법으로 혼자서 하루 종일 공부했던 주제가 “술”에 관한 것이었겠는가!

‘노아는 처음 포도주를 마시고 실수를 범했으니 술은 악한 거야.’
‘근데 예수님은 처음 이적을 행하실 때, 왜 굳이 물로 포도주를 변하게 하신 걸까.’
‘시편에는 술에 대해 좋게 쓰여 있군.’
‘사도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고 했는걸.’

지 금도 대략 기억이 나는 이와 같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나름대로의 행동지침을 마련했다. 사실 고민은 많이 했었지만 학교에 있을 때에는 술자리로 인한 큰 문제는 없었다. 주량이 센 면도 없지 않았고 자기 관리에 어느 정도 철저한 편이었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날은 술을 먹지 않았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술에 의지하려는 유혹을 사전에 배제하자는 의도였다. 게다가 외향적인 성격으로 인해 분위기를 중시하는 술자리에서 내가 술을 마시고 안 마시고에 주변 선배들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문제는 휴학 이후부터 생겼다. 휴학을 하고 공장생활이 시작되면서 막일을 하는 공장 노동자들과 술자리가 잦았다. 그 자리는 고된 노동을 마치고 술로 삶의 위안을 삼는 자리인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아저씨들이었고 또한 인정(人情)이 많은 분들이었다. 그 분들 사이에서는 술자리에서 모든 회포를 풀고 자신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 개입하려면 술자리에 끼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때로 나는 그런 술자리가 좋기도 했다.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때론 마누라 얘기, 때론 자식 얘기를 늘어놓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찌든 삶을 씻어내는 정화의 기운마저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문제가 있다면 이 분들의 음주가 과하다는데 있었다.

술 취하는 게 죄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데, 이 분들은 항상 필름이 끊어질 때까지 마시려고 하기 때문에 난 그 점이 항상 불편했다. 이들에게서 구별된 자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것인가. 결국 술 취한 자들을 정죄하는 자로 남는 것이 복음인가. 며칠을 고민하다가 예수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후에 난 그 분들과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그 분들이 주량을 넘기려고 하면 난 자주 부드러운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저씨, 오늘 애들 선물 사가지고 일찍 들어간다면서요. 이제 그만 마시고 일어납쉬다!”


<접대 문화 그리고 여성에게 불리한 술자리>

술 자리의 또 다른 문제는 접대이다. 지금은 기업들이 선진화(?) 되어가고 사람들도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보다 강해지고 있어서 덜 한 편이지만, 회식이 있거나 접대를 위한 술자리는 좀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지금도 여전히 공대출신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선후배 간에 군기를 잡거나 술자리에서 술을 강권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회사에 있는 분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면 업무시간에는 바쁜 일정 때문에 별 다른 얘기를 못하고 그저 딱딱한 분위기에서 일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직장선배가 딱딱하게 느껴지고 선후배 간에도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가 저녁 술자리에서는 그 냉랭했던 분위기가 사라진다. 사내의 구조는 선진화가 되었어도 그 안의 사람들은 80년대 공대출신인지라 술 몇 잔을 기울이다 보면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나오기 마련이며, 그 때 하는 얘기는 공과 사를 넘나들며 오히려 정작 중요한 업무 얘기가 술자리에서 오고 간다. 나아가서 중요한 결정을 그 자리에서 내리기까지도 한다! 공대출신이 술을 마시는 분위기는 좀 묘한 구석이 있는데, 그건 돌아오는 술잔들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초반에 취해 버리거나 술을 안 마시는 직원은 중요한 정보를 얻는 데에서 제외되는 일도 생긴다.

또 이런 직장도 있었는데, 접대를 하는 경우에 술뿐 아니라 단란주점은 물론, 마지막 코스로 사창가에 까지 함께 가야 하는 일도 있다. (여기에서는 나도 갈라서야만 했다) 물론 이런 짜증나는 술 문화는 강준만 교수의 지적대로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절부터 내려온 한국 사회의 ‘유산’이며 많은 부분이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회사에서 생활을 하게 되면 심각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대학교 때와 달리 여전히 사회에서는 술 자리에서 여성이 버티는 것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남성들은 술이 취하면 여성에게 실수를 하는 일이 많았다. 가끔씩 대학 교수가 자신의 지도 아래 있는 여자 대학원생을 술자리에서 희롱하는 경우가 있다는 기사를 간간이 보게 된다. 여성들의 직장 내의 성희롱에 대한 의식과 목소리가 높아진 부분도 있겠지만, 일단 기사로 사건을 접하게 되는 경우 상당히 흥분하게 되는 일도 실제로 술자리에 있어보면 다반사이다. 주로 나이가 많은 상사들은 부하 직원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가 많고 술자리에서는 더더욱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술이 조금씩 취할수록 이야기는 여성들이 듣기 거북한 음담패설로 이어지며 그러다가 옆에 앉은 여직원의 무릎에 손을 얹는다거나 손을 잡고 심지어 포옹을 하는 경우도 있다. 여직원이 당혹스러워할수록 사람들은 즐거워하며 흥청거리는 가운데 분위기는 묘하게 돌아간다. 분명 술자리가 미쳐서 돌아가는데, 대다수의 남자 직원들은 묵인하며 애써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기 일쑤다. 사실, 이런 경우가 가장 힘들다. 이런 꼴 보지 않으려면 회식을 피해야 하는 건가 또 고민이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또 다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내가 결정한 선택은 누군가에게 상사에게 술을 권하게 하고, 여직원이 험한 일을 당하기 전에 빨리 귀가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누군가는 미쳐 돌아가는 술자리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부산하게 움직여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소금이다.


<폭탄주는 고약하다!>

여러 경험을 하고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는 다시 대학원에 들어왔다. 다시 맞이하는 신입생 환영회. 또 다시, 신고식이 있었다. 교수님과 삼촌 뻘 되는 선배들 사이에서 폭탄주가 돌았다. 옆의 형에게 물어봤다.

“형, 신입생 환영회는 언제 끝나요?”
“네가 쓰러져야 끝나.”
“…”

여 러 가지 방법으로 신입생들에게 술을 권했으나 한 가지만 소개한다. 흔히 뉴스에서 보는 술이 이것인데 조그만 잔에 양주를 채운 후에 맥주가 담긴 잔에다 그 양주 잔을 담근 후에 위를 막고 잘 섞이도록 흔든 후에 후배 앞에 올려 놓는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데, 그 폭탄주는 정말 독했다! 스스로의 주량을 아는 나로서는 이걸 두 잔만 더 마시면 취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신문지 상에 간혹 폭탄주를 마시고 지하철에서 사고로 숨지는 신입사원들 기사가 나오는데 폭탄주는 정말 취하라고 마시는 고약한 술 문화임에 틀림 없었다. 이번엔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신입생이 쓰러져야 끝난다고 했으니 취하기 전에 쓰러져서 자는 척했다. 주변 신입생들에게도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쓰러져야 끝난대.”


<마치면서>

이 글을 읽으면서 당혹스러워하는 이들도 있을 줄로 안다. 직장에 있으면서 경험해 보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미 술 문화의 부정적인 부분이 많이 변화하고 있음을 체험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혹 지금도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본인의 술자리에서의 대응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순결한 길로 가지 않았다. 술 문화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게 나의 선택이었고 지금 나는 그 기억들을 쓴다. 나는 대부분의 불신자들에게 술 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서 하나의 무시할 수 없는 문화라면 그것도 변화하고 개혁되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당혹스러운 일도 많았고 처음엔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난감하기 그지 없는 일들도 많았다. 이렇게 이야기들을 나열한 것은 이런 분위기들에 대해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좀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행동지침들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어쩌면 나의 개인적인 선택일 수 있다. 나는 술을 어느 정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아는 몇몇 친구들은 맥주 한 두 잔만 마셔도 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는 술을 권하지 않는 게 옳다. 그리고 되도록 술 권하는 자리는 피하는 게 옳다. 그리고 술 자리가 편하지 않은 이들은 일부러 술 자리에서 고통 받으며 분투할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술 자리가 아니어도 세상을 파고들 수 있는 길은 많이 있다. 술 문화는 무시될 수 없다 해도, 다른 많은 문화 중 하나일 따름이다.

추가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술을 처음에 어디에서 누구에게 배웠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되도록이면 기분이 좋을 때에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어른과 마시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술은 아버지에게 배우라는 말이 있는 듯 하다. 주변 사람들을 보더라도 처음 술 버릇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 술버릇이 들면 끊는 것이 오히려 낫다. 처음에 가까운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이성을 잃고 잘못된 폭력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술을 마실수록 난폭해진다. 그런 경우에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자제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경우에 결혼 후에 폭력을 행사할 확률도 다분히 높다. 한편, 실연의 아픔을 달래려고 술을 마시는 이들도 있다. 술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술 기운에 위안을 얻고 그것을 의지하려는 생각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오히려 묵상과 기도가 유익하다. 술을 도피처로 생각하지 말고 문제에 올바르게 직면하는 것이 그런 경우에는 현명하며 더 남자답고 멋진 행동이다.

부디 독자들에게 잡글이나마 도움이 되는 “술 문화 보고서”였기를 소망한다.**
2003/02/01 23:07 2003/02/0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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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기고글 모음/복음과상황

용주 : 일단 청부론, 청빈론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깨끗한 부자는 가능한가, 크리스찬은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시작해 볼까요.


동언 : 질문이 영 맘에 들지 않는데요. (웃음)


상국 : 부자와 깨끗함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깨끗한 부자’와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는 서로 정의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만.
 

용 주 : CBS에서 있었던 청부론 관련 토론을 보면서 느낀건데, 가난과 부에 대해 다른 용례로 쓰이는 말들을 주고 받으면서 방향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논리적으로 강한 김목사님이 토론의 주도권을 쥐게 된 거죠. 토론회 이야기는 차후에 더 하기로 하구요. 서로가 생각하는 부와 가난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봐요. 물론, 그러면 청부론, 청빈론 사이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들은 해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구요.
 

상국 : 단순히 돈이 많이 있을 수는 있을 거 같아요.
 

용주 : 원론적으로는 돈이 많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상국 : 축재과정을 무시한다면.. 돈이 많은 것을 문제삼고 싶진 않은데요.
 

용주 : 그러면 책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해보도록 하지요. 김동호 목사님이 “부와 가난은 은사다”라고 하시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상국 : 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난이 은사같진 않아요. 자발적 가난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은사라고 표현할 수 있을 지 모르겠는데 그냥 가난은 은사로 취급될 수 없는 문제로 보여지는데요.
 

동언 : 부와 가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말인가요?
 

용 주 : 김동호 목사님은 가난과 부가 은사라는 논리를 방언을 예로 드시더군요. 방언은 은사인데 나는 방언을 받고 싶었는데 하나님이 안 주시더라. 방언은 받는 사람도 있고 못받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은사인 거다. 크리스찬으로 부를 얻는 사람도 있고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중요한 건 부가 축복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순복음교회의 이른바 “삼박자 구원론”을 의식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구요. CBS에서 그 문제를 놓고 토론도 하셨잖아요. 그리고 가난에 대해서는 가난하게 사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것도 은사이기 때문에 기독인 모두가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동언 : 저는 가난하게 살게된 게 목적의식적으로 청빈하고 검소하고 수도사적인 삶을 살겠다고 해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열심히 살아도 마이너스인 사람이 많은 게 현실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상 국 : 깨끗한 부자라는 걸 쓰시게 된 것은 상황적 맥락이 아닐까요? 부자를 옹호하기 위해보다는 한국교회 상황에서 성도들이 부자되기를 좋아하고, 돈을 번다는 것이 인기가 있는 것이기에,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돈을 벌 수 있고 쓸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으로 쓰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언 :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길 수 있는 욕망에 대해서는 일단 긍정하고 보는 게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이상적이라 하더라도 성경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상국 : 그러면 다 못 입고 못 사는 걸 원하시는가, 하나님이 우리가 잘 되길 원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고생해서 가난하게 살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기초인 것 같아요.
 

용 주 : 동의하는 부분도 있는데요. <깨끗한 부자>에는 김목사님의 개인적인 예화들이 꽤 있거든요. 김목사님 개인적으로는 금전 사용의 바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책에서 가난이 은사다라고 말한 부분에는 문제의 소지가 많다고 생각해요. 물론 여기에서는 가난이란 말을 구분지을 필요가 있구요. 저는 자신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데 근검절약하는 삶을 사는, 이른 바 “청빈”은 개인의 인격적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가난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잖아요. 실제로 김목사님이 가난을 은사라고 표현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하면, 치료비가 없어서 병원을 못 가서 불치의 병이 아님에도 죽게 된 부모 혹은 자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심한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분들이 주변에 많은 게 현실이구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은사라고 김목사님이 표현하신 것이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현실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의 신앙적인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존재하는 상황을 인정하겠다는 것이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봐요. 자본주의 사회,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것이 우리가 노력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해져 있는 체제로 인정해야 하니까 자연히 가진 자의 윤리적 행동 지침으로 책이 흘러가는 것이지요.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최소한 어느 정도 도우라는 식의.
 

동언 : 한국교회에 있어서는 교회성도 중에 돈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있더라도 담임목사님이 모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런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할 것 같은데..
 

용 주 : 그럴 수도 있죠. 아무튼 그래서 전 가난을 좀 구분 지었으면 좋겠어요. 청빈과 구별되는 가난은 구조적이고 현실적인 사회적 재난이라고 생각해요.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오는 상황적 재난이라는 거죠. 은사가 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김목사님의 자기 고백에서 드러나는데요. 저는 그것이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김목사님은 당신의 입으로 자신은 무난하게 목회했고, 새 교회를 개척하면서도 재정적 문제가 별로 없었지만 떳떳하고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사일 뿐이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저는 그것은 김 목사님이 선택하신 일이라고 봐요. 김목사님이 만약에 수도권에 교회가 넘쳐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골로 가서 목회를 하셨다면 그런 부가 주어지지 않았겠죠. 자신의 여건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부는 은사가 될 수 없다는 거죠. 은사는 주권적인 것이어야 하니까요.
 

상 국 : 전 두 책의 오해의 소지를 좀 줄였으면 하는 생각이거든요. 두 분의 공통점은 극단적 금욕에 대해서는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잖아요. 김교수님의 책도 그렇고 극단적 금욕주의는 기독교적이지 않다고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제 생각에 두 분의 차이는 김목사님은 부자들과 함께 목회를 하시는 분이고, 김교수님은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분이라는 것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두 분 모두 부가 쌓여서 필요 이상으로 향락하고 사치하는 부는 틀렸다라고 말하고 있구요. 오히려 필요한 만큼만 갖고 나머지는 나누어줘야 한다는 관점이라는 거죠.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통하는 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초반 동기 문제는 명확하게 차이가 있는데 실제 방법론상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 보이고. 김목사님은 내 부는 정당하다라고 안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예화나 세부항목들을 보면 사치, 향락하는 부자를 길러낼 것 같진 않잖아요. 동기에 대해서는 이만큼 떼었으면 만족한다, 라는 것이 문제가 될 순 있다고 봐요. 하지만, 부자가 돼서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두 분이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동언 : 제가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그런데, 김영봉 교수님은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인이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가요?
 

용 주 : 저는 기독인이 부자가 되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앞서서 부자에 대한 개념도 구분을 지어야 오해의 소지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부자를 소득이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 소유가 많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로 나눌 수 있다고 봐요. 그런 경우에 고지론적인 의미에서의 부자는 가능해요. 기 독인으로서 기업의 사장이나 회장이 될 수 있겠지요. 억대 연봉을 받는다는 것 자체로 정죄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몰론, 과정을 봐야하겠지요. 그리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부의 축적과정이 깨끗하다는 게 문제의 소지가 많긴 해도 원론적으로 소득은 많을 수 있다고 가정하자는 거지요. 반면 소유가 많은 기독인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에요. 김목사님 책에서 소유지향적 인간과 존재지향적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부자가 존재지향적일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소득이 높은 사람이 존재지향적일 순 있겠지만 소유가 많은 사람은 이미 소유지향적인 사람이라고 봐야한다는 거죠. 저는 원론적으로는 기독인이 소유가 많다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김영봉 교수님의 책과 김동호 목사님의 책을 서로 비교를 좀 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데요. 두 분의 텍스트 자체는 분명 다른 부분이 존재하지만 컨텍스트에서는 만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텍스트 자체로 본다면 김목사님은 지침서 정도의 가벼운 책인 반면, 김교수님은 좀 구체적인 학술서의 분위기가 나요. 저는 김목사님이 저축의 문제나, 원로목사제도에 반대하는 부분, 노후에 대해 목회자들의 예와 그에 대한 주장에는 대체로 동의해요. 책에도 나오지만 한경직 목사님이 깨끗한 빈손이 되실 수 있었던 건 교회가 그만한 대우를 해 주었기 때문이잖아요. 목회자들에게 노후에 교회에서 생활을 책임져 주는, 그런 것들을 바라지 말라는 이야기나 한국 교회의 전반적 행태인 기복신앙을 의식하여 부가 복이 아니라고 말한 부분은 좋게 생각한다는 거죠. 반면에 동의할 수 없는 내용도 있어요. 이를테면, 78쪽에 쓰여있는 ‘성경은 헌금과 구제가 기독인으로서의 최소요구’라는 부분이 그렇구요. 80쪽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수입의 1/10은 십일조로, 1/10은 구제로 내고 나면 나머지 돈에 대해서는 깨끗한 자기 소유이니까 자유하라는 부분 말이지요. 책에서 김목사님은 사모님과 자신이 가난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절제가 몸에 베여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이러한 말은 아주 위험한 생각이에요.
 

동 언 : 한 80만원이 소득인 사람에게 8만원은 헌금하고 8만원은 구제하고 나머지 64만원으로 살아라, 이렇게 적용해도 되는건가요? 1억 가진 사람에게 1천만원 헌금하고, 1천만원 구제하고 나머진 내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요.
 

상 국 : 실례를 김목사님에게 갖다 대면 그렇게 말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깨끗한 부자가 오해의 소지를 많이 가지고 있어요. 부자 아닌 사람이 오히려 감동적인 예화로 많이 나오는데, 부자 얘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 부분도 그렇고. 관심은 부자들에게 있다는 생각인데. 부자들은 정말 돈 쓰지 않잖아요, 사치하는데에만 쓰지 말고 적어도 이만큼은 이웃을 위해 써라, 고 말씀하신 것 같아요.
 

동언 : 저는 오히려 그 부분이 아쉽거든요. 김 목사님은 부자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인지..인식의 한계 아닌가 싶은데요.
 

상 국 : 계산법으로 보면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가 더 좋은 제안을 하는 것 같아요. 필요한 만큼을 쓰고 나머지는 나누는 데 써야 한다고 말하거든요. 가난한 사람에게는 어차피 생계비가 정해져 있으니 그 나머지는 이웃과 나눠야 한다는 계산법이 부자나 가난한 사람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동언 : 두 책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계산을 하는지 궁금한데요. 그런 차이가 나는 건..
 

용 주 : <깨끗한 부자>에서 김목사님은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자기 소득의 1/7은 하나님의 것이고 나머지는 내 것으로 자유한 마음으로 써도 된다는 부분은 다분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구요. 그에 대해 김교수님은 자신의 책에서 청부론자들이 말한 1/7의 나머지 부분도 소유가 하나님임을 기억하고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되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에서 김교수님은 자신이 부양하고 있는 식구들의 한 달 생활비를 계산해서 결과적으로 자기 소득보다 마이너스인 사람은 오히려 채워줘야 한다고 제안하는데 이것이 더 성경적이라고 생각해요. 가령 동언형제 말처럼 수입이 50만원인데 할머니와 자녀들을 데리고 있는 사람이 십일조로 5만원, 구제헌금으로 5만원을 내고 나머지 40만원으로 식구를 부양해야 하는가, 혹은 두 부부가 사는데 월급이 1000만원인 사람이 200만원을 헌금하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자유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기잖아요. 김교수님은 청부론의 이런 문제들을 걸러내신 것 같아요. 김목사님의 예화들을 볼 때 김목사님이 부자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쓰신 것 같진 않지만 규장 책들에서 보이는 명료한 지침들은 오히려 더 많은 의혹과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 그리고 좀 벗어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깨끗한 부자>를 보면서 느낀 점은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중상층 이상이라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이었어요. 한국 기독교의 주류는 최소 중산층 이상이고 그런 이유로 부자의 윤리 지침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김교수님은 청부론에 대한 비판적이고 보완적인 입지에서 책을 쓰셨기 때문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시간적인 차이도 감안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구요.

동언 : 김동호 목사님을 보면서는 현실적으로 가진 자의 종교가 된 마당에 어떤 최선의 방법이 있겠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한데, 그렇다 하더라도 성경이 지향하는 바를 이상적으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원색적으로 선지자처럼 선포해야 되지 않은가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저는.
 

태 종 : 김목사님의 문제의식은, 대부분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재물관리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고려하여 본다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거 아닌가요? 사실 교회 입장에서는 십일조 헌금조차 내기 힘들어하는 게 현실이니까..
 

상국 : 그렇죠. 부자가 오히려 십일조 안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동 언 : 그런데 그렇게 사는 사람이 과연 ‘깨끗한 부자’를 보고 회심을 할까요? 기본적인 내용을 가지고 책으로 쓰고도 꽤 팔린 것 같은데요. 저는 이 책이 김목사님에 대한 감탄사로 귀결되는 한국 교회의 상황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상 국 : 저도 좀 그런 부분이 있었는데요. <깨끗한 부자>에서 불편했던 점은, 불공평한 사회를 인정하고 오히려 그것을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었어요. 사회구조의 문제를 개인적 자선 등으로 덮어 놓겠다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 말이죠.
 

용주 : 김동호 목사님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교회상은 이상적인 미국사회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상 국 : 그런 느낌이 강하죠. 가난의 문제를 자선으로 해결 할 수는 없잖아요. 이런 식의 해결책은 점점 더 부의 불균형이 심해져서 사회적인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획일적인 공산주의를 싫어한다면 미리미리 부의 재분배에 힘쓰고 가난한 사람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반면에,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를 보면서는 초반부에 우린 다 가난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균형을 잡아가시는 것 같더라구요. 돈 벌기 위해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서, 회사를 운영한다 라는… 기본적인 사람들의 부에 대한 관심, 부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부를 가지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이웃에게 쓰고 어떻게 환원할 것인가라는 관심을 가지고 부를 운용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거든요. 김영봉 교수님의 접근이 사회를 좀 더 아름답게 만들고, 기독교인으로서 실천해야 하는 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해요.
 

용 주 : 청부론 관련해서 CBS 토론회가 있었는데 어떻게 보셨나요? 관련된 이야기도 같이 해보지요. 제가 본 느낌을 말하자면, “깨끗한 부자”라는 말도 구분을 좀 지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깨끗함’을 이야기할 때 저는 개인 윤리와 기업 윤리로 나누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토론회에서 김목사님과 김남호 사장님이 이야기하는 부자는 기업윤리에 관한 이야기로 보였거든요. 저는 인격적 완성과 이웃사랑을 목표로 삼고 있는 개인과 이윤을 내는 것이 목표인 기업은 분명 구분 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얼마는 사회에 환원하고, 얼마는 신앙공동체에 환언한다는 식의 논리는 기업윤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제는 이것을 개인윤리로 생각하면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생기더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깨끗함, 공정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리가 있다고 봐요. 김교수님이 자신의 책에서 언급했듯이 현대 사회에서 내가 공정한 경쟁에서 노력하여 얻은 소유에 대해 전적으로 공정하고 깨끗한 과정을 거쳤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거죠.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은 사람은 하루 8시간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도 하루 20시간을 공부해도 대학에 떨어지는 머리 나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머리 좋은 사람에게 그 경쟁은 공정했고 그가 번 돈에 얼마를 환원하면 깨끗한 삶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는 거죠. 나아가서 백인사회에서 성장한 사람과 흑인사회에서 성장한 사람, 선진국에서 자란 사람과 아프리카 오지에서 자란 사람, 부유한 가정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과 가난해서 교육은 고사하고 병원도 못 가서 지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공정한 경쟁으로 부를 획득할 수는 없는 것이고, 단순히 그가 번 돈의 과정이 공정하다는 것으로 그 돈이 순수하게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동 언 : 저는 성서의 기본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과연 이웃실천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서 당연히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8/10이 내 것이야 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고 주어진 것이라는 고백이 되어지는 신앙이 되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교회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럼 사회주의 하자는 거냐는 공격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용 주 : 저는 그런 식의 대응에 아주 짜증나요. 부의 재분배를 얘기하면 무조건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로 몰아세우는 논리 말이죠. 부의 재분배나 기회 균등을 얘기하면 “빨갱이”로 몰아 세우는 그런 방식에는 환멸감이 들어요. 토론하지 말자는 얘기잖아요.
 

동언 : 근데 사실 기독교가 좀 사회주의적이지 않나..
 

상국 : 그렇죠, 그런 색채가 있다고 봐요.
 

동언 : 적어도 자본주의에서 가질 수 있는 소유욕에 대해서는 부자청년의 비유에서처럼 근심하며 돌아서는 청년에 대해 김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가 궁금하군요.
 

용 주 : 그 내용이 두 책 모두에 나오는데요. 김교수님은 김동호 목사님이 언급한 욥의 경우는 성경을 통틀어 부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몇 안 되는 사례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오히려 대부분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부자가 바늘귀를 통과할 수 없고 제자가 되려면 자신의 것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라는 요구가 성경 전반적인 메시지라고 말하고 있어요. 반면 김동호 목사님의 경우에는 청빈론자들이 인용하는 부자 청년의 비유가 돈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논지를 펴시더군요. 그 청년의 중심이 물질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라고 한 것일 뿐 다른 이에게는 재산 말고 명예나 자녀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동 언 : 저는 자본주의 사회인 현대가 오히려 그런 맥락에서 소위 중산층, 기독 중산층이 욕망에 가장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금전적 소유욕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 부자 청년은 단순히 2000년 전의 특정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 전반적으로 적용할 만한 문제라는 생각이구요. 많은 기독인들이 말로는 절제하면서 산다지만 결국은 부자청년의 근심을 늘 안고 사는 것이 아닐까요?

용 주 : 토론회에서는 김동호 목사님이 논리적으로 잘 말씀하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준비를 충실히 하셨다는 느낌이 든 반면, 고세훈 교수님은, 토론 자체로만 본다면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토론 과정에서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말씀도 많이 하였고 그로 인해 뜬구름 잡는 식의 거시적인 이야기로 흘러가다가 김동호 목사님에게 인신공격적인 표현을 하실 때는 마음이 정말 안 좋았습니다. 김목사님 입장에서 보더라도 <깨끗한 부자>에서 쓰였던 바르지 못한 표현들이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들은 절충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그런 작업이 토론회에서 잘 되지 않은 것 같아요.
 

동언 : 김동호 목사님 책의 원래 제목은 <신앙과 부>였다는 말도 있던데요.
 

상국 : 규장에서 제목을 바꾸는 경우가 있어요. 아주 선정적으로. (모두 웃음)
 

용 주 : 저는 고 교수님이 부가 동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개인의 영적 생활에 영향을 준다는 논지에는 동의해요. 하지만, 김목사님이 세부적인 원칙들이나, 기준을 정해서 그것을 지켜가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을 가리켜서 율법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에요. 저는 실제로 김목사님이 동안 교회에서 그런 정관을 지속적인 토론과 연구를 거쳐서 만들어 가는 것에 큰 호응을 하고 있거든요. 그거 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고 교수님 생각처럼 절대적인 잣대로 낮아짐을 이야기한다면, 동적인 영성에 대한 주의환기가 된다 할지라도 기준 자체가 없다면 개선 여부를 판단할 잣대가 없고 그것은 오히려 상황을 고착화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고 봐요.
 

상 국 : 대부분의 교회는 일단 기복신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고세훈 교수님 쪽이 김동호 목사님 쪽의 좀 깨끗해 보자는 주장을, 너희도 똑같다라는 주장으로 몰아 붙인 상황이 됐어요. 지금 상황에서라면 같이 가는 게 현명하다고 보이는데. 기복신앙을 꺾은 다음에 우리가 이것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 보자고 나오는 편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구요. 그렇자 않더라도 넌 틀리고 나는 옳다는 측면이 아니라 당신이 말하는 부분은 이런 단점이 있다는 등의 개선점을 찾아가며 같이 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았나,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교회현실을 반영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자인 김영봉 교수나 비판적 서평을 썼던 김종희 대표가 나왔다면 좀더 좋은 토론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용 주 : 동의해요. 저는 사실 토론을 보면서는 김동호 목사님이 <깨끗한 부자>보다는 <깨끗한 교회>란 책을 전병욱 목사님이 교회 성공신화적인 얘기를 하듯 쓰셨으면 아주 훌륭한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모두 웃음) 물론 그랬으면 규장에서 책이 나오진 않았겠지만.
 

동언 : 자기 교회얘기는 좀 그렇지 않을까요? 단순하진 않을 것 같은데.
 

용 주 :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요. 토론회에서 김남호 사장님과 김동호 목사님은 우리가 가난해진 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시던데 그거 잘못 짚었다고 생각해요. 특히, 김남호 사장님은 대뜸 “그러면 얼마를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라거나 “부자가 가난해진다고 가난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그 분은 가난해짐, 청빈한 것을 마치 기업의 회장이 사직을 하고 청소부를 해야 하는가, 뭐 그렇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여기에서 부의 개념에 오해가 생긴 거 같아요. 사장이 소득이 많을 수는 있지만, 소유가 많은 게 문제인 거죠. 이 분은 기업 윤리와 개인 윤리를 동일시 하는데 개인은 적법한 경쟁을 통한 이윤추구가 목적이 아니라는 걸 잊은 거죠.
 

상 국 : 사실 저는 토론회를 보면서 내심 “바늘귀”가 의심스러웠어요. 부자들 거 다 뺏어서 혁명하자는 얘긴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책을 보니까 아니더라구요. 책 내용은 단순히 가난하자는 얘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해요.
동언 : 덕분에 규장 책만 더 많이 팔렸을 것 같은데요. 뭐라고 썼길래 하는 마음으로..
 

용주 : 저는 규장 책은 그렇지 않아도 잘 팔린다고 볼 때 일반 성도들이 <깨끗한 부자>에 뭐라고 써있길래 하며 책을 비판적으로 보게 되는 현상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동언 : 토론하면서 드는 생각은 김목사님이 한국 교회에 대해 그렇게 느끼고 쓰신 거라면 교회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 교회의 윤리가..
 

상국 : 김목사님의 윤리보다 떨어진다고 봐야 해요. 전반적인 한국 교회의 현실이..
 

용 주 : 이제 대충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은데요. 종합적으로 얘길 하자면, 김목사님의 책에는 오해의 소지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CBS 토론회에 기대를 많이 했던 거거든요. 토론회 초반에 김동호 목사님이 용어의 정의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건 맞는 말이에요. 용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쓰면서 논리적인 비약이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서 토론 자체가 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고세훈 교수님이 인신공격적인 발언을 한 것 같고. 저는 여기에서는 좀 걱정이 되거든요. 실제로 김동호 목사님이 계신 숭의 교회는 한국교회로 봐서는 정말 파격적인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요. 그러한 과정에서 김동호 목사님은 내외로 힘들어 하신다고 들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토론회에서는 서로 절충하고 협력하는 계기가 되어도 모자랄 판국에 어느 정도 실질적인 개혁의 모양새를 만들어 가는 김목사님을 마치 기복신앙이나 삼박자 구원론과 도매급으로 넘기면서 적으로 만드는 태도는 정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일로 상처를 받으신 것 같구요. 특별히 고 교수님의 경우 개혁연대 계신 분인데, 그렇잖아도 개혁연대가 강경한 느낌을 준다는 교계 보수적 기독인들의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좀더 사려 깊게 행동하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동 언 : ‘깨끗한 부자’에 대한 비판적 글이나 토론이 나오는 것은 긍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용주 형제 말처럼 김 목사님의 책에 대한 비판적 읽기를 통해 얻는 것이 더 많을 수 있을 것 같구요. 오히려 안타까운 것은, 김목사님이 하시는 개혁의 작업들이 있는데 그것을 충실히 감당하기도 벅찬 상황에 비판에 일일이 대응하려고 토론에 나와서 오히려 손해 본 것은 아닌지 하는 안쓰러움도 생기네요.**


 

** 복상 서울 독자모임은 앞으로 잡지의 모니터링과 병행하여 관심 분야와 이슈가 되는 분야에 관련된 토론을 모임에 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복상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복음과상황> 서울 독자토론모임: 청부론 vs 청빈론 토론

정리: 임정은 자매/ 사진: 권경우 형제

 
2003/01/01 08:17 2003/01/01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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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도발적인 캠퍼스보기 (6): 캠퍼스 부흥은 영적 허구(SF)인가?

/김용주 


<캠퍼스 부흥에 대한 단상> 

대학교 2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교단체 간사님의 권유로 마틴 로이드존스(M. Lloyd-Jones)의 부흥 (생명의말씀사)을 처음 읽고, 몇 주 동안 부흥이라는 주제를 놓고 오랜 시간 들뜬 상태로 기도했던 기억이 있다. 그 책과 성령의 주권적 사역 (CLC)에서 로이드존스는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초월적인 사역인 부흥은, “진정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시기에 소망 없는 장소에서 하나님이 일으키신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다. 이후로도 오랜 동안 ‘부흥’이라는 주제는 내 머리 속을 맴돌았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한국의 교회와 선교단체는 부흥이라는 모토로 수많은 집회와 CCM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 시기부터 지금까지 캠퍼스 리더들과 사역자들 사이에 가장 흔한 복음주의적인 고백들은 이런 류이다.

“나는 실패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실패하지 않는다.”
“내가 쓰러진 그 시점이 하나님이 진정 주권적으로 일하시는 때이다.”
“내가 하는 모든 노력들은 무의미하다. 하나님이 채우실 때에만이 진정한 그 분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처음 부흥에 관한 신학적인 서적들을 읽으며 2차 대각성운동 시기 동안의 찰스 피니(Charles Finney)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를 접했을 때, 나 또한 위와 같은 고백들이 충분히 되돌아볼 만한 가치가 있음을 깊게 묵상한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국의 캠퍼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부흥이라는 주제와 그 방향성을 좀더 냉정하게 살펴본다면 캠퍼스에서 받아들여지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과 부흥의 원대한 열망은 그 의미가 어느 정도는 퇴색되는 경향이 있다.
 

<날개잃은 천사(?)>

실제로 많은 선교단체의 학생들은 처음 대학에 들어가서 선교단체를 통해서 수련회와 집회들을 가지면서 캠퍼스에 대한 원대한 꿈들을 품게 된다. 이들은 아직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열정이 가득하며 많은 가능성들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이다. 처음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캠퍼스에 존재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돌아보기도 하고, 기독학생의 연합문제와 학내의 문제들에 대해, 약간의 거리감을 두고는 있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생각들을 가지고 때로는 구체적인 문제들에 궁금해 하기도 하며 캠퍼스 안에서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변화시켜 가기를 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시기는 잠시이며, 곧 이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의 견고함에 놀라며, 점차 그 거대한 구조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함과 동시에 선교단체 활동과 전공공부 간의 시간활용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선교단체의 기존 사역자들은 대다수가 학내와 사회에 대한 참여적인 문제나 기독학생 연합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자신이 속해 있는 선교단체의 사역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모임에 헌신된 리더를 양육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선교단체 안에서 학생들이 복음주의적 마인드를 가진 전문인의 비전을 품는다거나, 혹은 연합과 사회참여적인 생각, 그리고 기독교적 지성을 개발하려는 시도들은 종종 부정적으로 치부되며, 결국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암묵적으로 ‘큐티와 기도생활 같은 개인경건훈련에 철저한가’,‘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모하고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가 뭔가 해내려는 불순한 동기가 있진 않은가’ 혹은 ‘한 사람을 전인격적으로 품을 수 없는데 무슨 사회참여냐’는 식의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기존의 캠퍼스에 편입된 이질적이며 가능성 있는 학생들은, 실제적 한계와 공동체 안의 부정적 분위기로 인해 총체적 복음의 한쪽 날개인 ‘사회참여’라는 이슈를 포기하게 되며, 심하게 말하면 복음주의 유산의 절반으로부터 ‘회심’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종종 그런 간증을 한다.

“이제까지 내가 뭔가를 하려고 노력했는데 하나님은 나를 꺾으셨습니다. 한 사람도 품지 못하고 멤버들을 전적으로 사랑하지도 못하는 내가 이제껏 뜬구름을 잡듯이 사회니 통일이니 하는 류의 이야기들만 하고 다녔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능력들을 부어주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분의 일하심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나는 캠퍼스 4년간 이런 간증을 하는 학생들을 무수하게 보아왔다. 물론 개인적인 상황과 그에 대한 차이로 인해 때로는 나에게 크게 감동적인 간증이 될 때도 있었지만, 그런 간증 이후에 이러한 ‘회심자들’의 삶을 돌아보면 난 많은 부분에 있어 큰 아쉬움이 생긴다.


<더 중요한 것>

한국의 복음주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독교적 유산은 말씀 선포이다. 자신 있게 말하진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이제까지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부흥을 기다리는 많은 ‘회심자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일하심, 그리고 성령으로 부어주심을 가장 강하게 ‘느끼는’ 때는, 각종 집회 때나 설교시간에 성경강해를 들을 때이다.

이들은 더 탁월한 강해, 더 탁월한 세미나에 목말라하며, 그런 집회에서 듣는 설교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느낌’으로 마음속에 달궈진 에너지를 이후에 있는 찬양 시간에 쏟아낸다. 결코 어느 락 가수의 콘서트 못지 않게 뜨거운 찬양시간을 통하여 이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며, 그렇게 한 한두 시간을 찬양을 하고 나서는 소그룹을 통해 예배시간에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했으며, 얼마나 뜨겁게 느꼈는지에 대한 나눔(sharing)을 하고 기도제목을 나누는 일련의 ‘끈끈한’ 교제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통성으로 기도한다.

이런 스타일의 모임이 일주일에 한두 번, 그리고 방학에 몇 번의 수련회를 통해 이뤄진다. 그리고 이런 예배 형태의 모임들을 유지하기 위한 또 다른 모임이 필요하다. 일단 모임날짜가 정해지면 그 모임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또 다시 예배의 형태로 준비모임을 가지며, 또한 강의를 듣고 도전 받은 내용으로 찬양하고, 또 모임을 이끄는 사람들 사이에 소그룹이 편성되며 또다시 그들 사이에 나눔을 갖는다. 그러한 가운데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들의 모든 에너지를 이 사역에 다 쏟아낸다.

이런 일련의 반복적인 예배 형태의 모임들을 부정적으로만 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각심을 가지고 직면해야 할 문제가 있지 않은가, 더 중요한 것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많은 부분들이 있지는 않은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박제(剝製)가 된 부흥>

99년에 언급했던 소위 ‘헨리 나우웬식 영성’은 캠퍼스에서도 그 여파가 여전하다. 나도 헨리 나우웬의 책을 좋아한다.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영성은 항상 나에게 잔잔한 감동과 경외감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 또한 버릴 수 없는데, 그것은 법정 스님의 책을 접할 때에도 비슷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내가 법정 스님이나 신영복 교수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얻는 효용 때문이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나란 존재는 감옥에서 힘겹게 몇십 년간을 복역한 적도 없고, 모든 소유를 버리고 산에서 기름 한 방울 없이 살아본 적도 없다. 더욱이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도 않았으며, 그 삶을 통해서 내가 대신 경험한 지식으로 내면을 좀더 풍성하게(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풍성해 보이게) 만들고, 저자들과 동일한 깨달음을 공유하고 싶은 욕구만 있었을 뿐이다. 내가 꿈꾸던 부흥이 영적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당시 우연한 기회로 하게 된, 몇 개월간의 공장 막노동 생활을 통해서였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철저하게 불의했고, 내가 철저하게 겸손하지도 거룩하지도 선하지도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단순히 종교 문화 속에 있을 때에만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 단 몇 개월 만에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 전까지 내가 헌신된 그리스도의 사역이라고 칭하며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았다고 굳게 확신했던 일들은, 소그룹 멤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찬양인도를 ‘극적’으로 하며 기도회를 인도하는, 소위 아주 ‘영적인’ 일들이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그때까지 나는 모임 장소에서 걸레질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내 삶을 되돌아보관대, 내 삶은 ‘실제로는’ 전혀 영적이지 않았다. 나의 영성은 전혀 내 생활과 관련이 없음을 깨달은 셈이다. 선교단체에서 ‘보여지는’ 일들을 제외하면 나는 세속적 인간의 전형이었다. 게다가 나는 그때까지 전혀 내 신앙과 삶 사이의 괴리감을 깨닫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선교단체의 제자도 가운데 내가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함에 있어 철저하게 싸워야 할 상황이 전혀 강조되지 않아 왔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세상을 부정하고 엑소더스를 꿈꾸지만, 그 안에서 현실에 깊게 뿌리를 내린 채로, 치열하게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며 끊임없는 영성의 훈련들을 해나가는 것은 강조되지 않은 채 일확천금을 노리고 복권을 구입하듯이, 하나님이 어느 순간에 꾸준한 하루하루 생활의 성실함 없이도 자신을 완전하게 바꿔주실 것을 기대한다.

헨리 나우웬의 <제네시의 일기>나 <아담>과 같은 책을 통해, 그리고 내가 그간 겪은 일들을 통해, 나는 ‘영성’이라는 것이, 말씀을 읽고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는 것이 아무리 지속적이라고 해도, 그것이 현실과 우리의 기저가 되는 일상에 뿌리를 박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한 영성의 관념을 정리시켜주는 책들을 통해 느끼는 심정적 자위책(自慰策)으로서가 아닌,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푸대자루를 나르고 본드칠을 하며, 접시를 닦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 - 불신자이건 학교를 다니지 않았건 장애인이건 상관없이 - 과 지속적인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에 그들의 삶 속에 깊게 관여하고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을 온전하게 섬기는 삶을 살아보지 않는 한, 우리가 이야기하는 부흥과 영성은 영적 허구에 불과하며, 그것은 지적인 허영이자, 관념 속에 맴도는 섬김의 신기루에 불과하다.

가정의 변화를 원하지만, 가족들에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캠퍼스 복음화를 외치지만 과에서는 섬김보다는 아웃사이더의 삶에, 혹은 다른 학우들과 똑같이 경쟁하고 부정행위를 하며, 수업에도 충실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낮아짐의 설교는 몇 번씩 듣고 섬김을 주제로 한 수련회는 줄곳 다녀오지만, 정작 사회에서 가난과 고통으로 외면 당한 사람들의 사정과 현실은 모른 채로, 하향적 삶은 우리의 관념 속에서 맴돌다가는 이내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이러한 가운데 캠퍼스의 문제, 우리 나라의 문제, 세계적인 문제들은 더더욱 우리의 관심에서 사라져간다. 우리에게 부흥은 철저히 ‘박제’된 개념인 셈이다.

<실천의 장은 없는가>

“1970-80 년대 남미국가들은 좌파혁명에 시달리고 있었다. 각 국가들은 부정과 부패로 파산하기 시작했고,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혁명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캠퍼스 젊은이들마저도 무력혁명에 가담하거나 대부분 운동권 세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다. 무력혁명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도 총기를 소유하고 때로는 강의실까지 들어와 자신들의 혁명에 동참할 것을 강요하는 상황이니 교수들도 그들이 두려워 방관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다.

당시 대학 안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하고 있던 복음주의 학생들은 이러한 상황에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먼저 교수님을 찾아가 정식으로 학생들에게 진정한 해방을 가져다주는 복음을 전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그들은 강의실로 들어가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됐다. 학생들은 말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그룹을 만들어 빈민가로 찾아갔다. 당시 남미에서 혁명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정부의 부패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외면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이야기가 학교 안에 알려지기 시작하자, 당시 삶으로 나타나지 않는 과격 무력운동권에 질려있던 학생들이 이 모임에 관심을 보였고, 곧 성경공부 모임은 크게 부흥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이 무력혁명권 학생들을 자극했다. 성경공부 모임 리더들은 테러의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복음을 전했다. 결국 한 리더의 약혼자인 자매가 테러로 죽임을 당하게 됐다.

이런 희생을 치른 결과 남미의 기독학생모임은 대학 안에서 점차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복음이 그들이 처한 가난과 부패라는 상황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남미의 학생운동은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고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대륙으로 바뀌었다.”
(한철호,“국경 없는 캠퍼스의 증인들”, IVF 격월간지 대학가 1999년 7월호에서)


이것은 당시 남미 기독학생운동의 간사였던 사무엘 에스코바(Samuel Escobar)의 이야기이다.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 의 저자인 로날드 사이더(Ronald Sider)는 <물 한모금, 생명의 떡> (이상 IVP)이란 그의 또다른 책에서 복음전도와 사회사역을 결합한 총체적인 선교현장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다. 나의 느낌이었을까. 사이더는 복음주의권에서도 그러한 사역이 ‘절실’하며, 또한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회심이후에 Prison Fellowship을 이끌고 있는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은 <이것이 교회다> (홍성사)에서 부흥을 통해 임한 하나님의 교회가 사회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는지에 대한 2년여간의 귀한 자료들에 감동을 더하는 대각성 운동의 신학적 살을 붙였다.

기독교 세계관이 한국에 보급된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우리의 현장에서는 왜 부르짖는 부흥만큼의 열매가 없는 것인가. 물론 부끄럽게도 나 스스로가 문서사역을 통해서 변화가 된 많은 학생들이 집단적 행동을 해나갈 때에야 현장으로 뛰어들고 싶어하는 유사(pseudo) 복음주의자며 나와 같은 부류의 기독인이 많기 때문인 면도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 각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이 각성하고 실천의 장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일과 더불어, 진정 함께 해나가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이유도 규명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학복협에서 세미나가 있었고, 그곳에서 같은 분과 포럼이었던 이은창 간사(새벽이슬)가 이 문제에 대해 지적했던 부분은, 우리가 지적 허영에만 빠져있지 실제로 현장에 뛰어들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동의한다. 나 또한 그런 문제에 봉착해 있음을 안다. 하지만, 대부분 캠퍼스 선교단체의 경우, 그러한 현장 실천에 장애가 되는 것은 개인적인 죄성에 기인한 문제보다는 제자도에서 그것을 강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회심의 열매를 허구적인 영성에 기반을 두는 것이 문제이며, 그것은 현장에서 몸부림치는 것이 진정한 회심의 열매라는 사실을 뼈속 깊숙이 각인시켜 주는 교육이 선교단체의 제자도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애초부터 회심이 ‘헌신의 기쁨’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헌신의 대가’를 가늠해 보고, 자신의 삶의 작은 부분에서 몸부림쳐 본 이후에야 그것이 성화의 과정으로서의 기쁨임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기름부음 받은 이후에 작은 무리의 양떼들을 이스라엘 백성들만큼 소중하게 섬기면서 그 현장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다윗과,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든지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 가운데에서 성실함과 온유함으로 영성의 깊이를 더해갔던 요셉의 삶을 돌아보라. 갑자기 하나님께서 들어서 영웅처럼 세우시는 것에 감동 받는, 우리들이 보기에 형편없고 무료해 보이기만 했던 그분들의 길고도 낮은 위치의 ‘현장’은 반드시 강조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러한 실천의 장이 필요하다. (끝)


2002년 1월.
2002/01/01 23:05 2002/01/01 2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