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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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 (3)
- 손으로 쓴 편지


요즘은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더 이상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설가 김훈처럼 연필을 깎아서 원고지에 글을 쓰지 않으며, 굳이 연필로 글을 써야만 고상해 보인다는 생각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음악도 그렇다. LP판으로 듣기를 고집했던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도 CD나 SACD와 같은 진보된 기술에 마음을 열고 있다. 그 뿐인가. 휴대폰은 버스 안에서도 내 위치를 알려 줄 수도 있게 되었고, 이제 영상을 보면서 통화를 하는 시대가 왔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고속철도로 2-3시간이면 이동이 가능하다. 처음 인터넷에 접속했을 때, MIT나 칼텍 같은 유명한 대학교의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원서로만 보았던 교수의 이름과 수업 커리큘럼, 그리고 참고 도서나 강의안과 같은 자료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물론 그 당시의 인터넷 속도는 너무 느려서 문서 파일을 받는 데에만 몇 분이 걸렸지만, 지구의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또한 전자메일이 보편화 되어 지방에 있는 친구들이나 미국에 사는 이모에게도 실시간으로 편지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나는 급속도로 빨라지는 기술의 발전에 비교적 호의적이다. 공학 전공자로서 이전에는 기술이 없어서 구현하지 못했던 많은 현실적인 제한들이 이제는 무의미해졌음을 절감한다. 상상력만 있다면 그것을 실현하기는 오히려 쉬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빠르고 저렴한 방법으로 주변 사람들과 연락할 수 있는 많은 도구들이 생겨나는 것에 감사하기까지 하다. 내 할머니 세대의 어른들은 자식이 이민 가던 날,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마중을 나선 길에서 통곡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주 어릴 적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이모나 사촌 동생들을 블로그나 인터넷 공간에서 매일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사진이나 글들을 읽으며 마치 옆에서 그들을 대하듯이 느끼고 경험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초등학교 시절만 하더라도 친척이 지방에 내려가서 살면 집으로 전화를 걸어 용건만 간단히 전하고 끊었고, 더 길게 이야기할 사연이 있으면 편지를 썼다. 편지는 답장을 받는 데에만 열흘이 남짓 걸렸다. 지금은 길을 걷다가도 생각만 나면 부산에 살고 있는 부모님과 대화할 수 있다. 편지를 쓰고 싶다면 인터넷의 우체국 사이트에서 쓴 글을 봉투에 넣어 하루나 이틀 사이로 배달까지 해준다.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지인들의 생일이나 경조일, 그리고 기념일들도 저장해두면 매년 잊어버리지 않고 나에게 그 날짜를 정확하게 알려주기도 한다.

 

허나 이런 기술의 최첨단 시대에도 문제는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연락도구들은 점점 발달하고 있는데 나는 이전보다 더 인간관계가 삭막하게 느껴지고 외로움과 고독감을 심하게 느끼며 살고 있다. 익숙한 것들에 더 무심해지기 때문일까. 처음에 환호했던 이메일이나 인터넷 블로그에는 상업적인 글들만 즐비하고 이젠 안부를 이메일로 묻는 이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당신’에게 닿을 수 있다는 기술적 우월성은 사람을 더욱 나태하고 가볍게 만드는 듯 하다. 신영복 교수는 통혁당 사건으로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제한된 종이에 가족에게 편지를 쓰는 것을 허락 받고는, 엽서에 글을 쓰기 전까지 쓸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지극히 절제된 글을 가족들에게 썼다. 그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제한된 여건에서 썼던 글들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엽서>를 통해 다시 읽어 보아도 한 줄 한 줄 가슴을 울린다. 내가 매일같이 소리의 속도보다 빠르게 지구의 반대편을 향해 날려보내는 많은 이메일과 정보들 중에도 이런 절제와 진중(鎭重)함이 있었던가. 마치 우리가 제사장 직분을 허락 받은 이후로 더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싫어하고 죄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어진 것처럼, 더 편해지고 가치 있어 보이는 ‘연락 도구들’은 우리를 서로에 대해 더 무관심한 존재로 만드는 듯 하다.

 

손으로 쓴 편지를 보내본 지가 10년이 넘은 것 같다. 아니 특정한 용건 때문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사람을 기뻐하여 사람을 위해 편지를 써 본 지가 참 오래되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우정을 나눈 벗들에게. 매일 수많은 말들을 내뱉지만 그것들은 이내 허공으로 사라지고 그런 수많은 말들을 아끼고 아껴서 어떤 공간 안에 빼곡히 담았다가 전해주는 일이 그립다. 우리는 그리운 지인들이 생각나면 단축번호를 눌러서 안부 몇 마디에 수화기를 끊고는 오히려 더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 자주 들어가는 인터넷 공간 상의 짧은 댓글들 속에서 그 사람의 인격과 온기를 경험하기도 쉽지 않다. 때때로 지나친 편안함은 도리어 무심함을 가져온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술과 속도의 진보는 내 순진한 기대와는 달리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영혼과 사람됨에 해를 끼치는 듯 하다.

 

언제든 손을 뻗으면 어디나 누구에게나 닿을 법한 첨단 환경 속에서도 절제와 진중함을 훈련해야 할 필요를 절감한다. 한 편의 글을 쓸 때에도 탈고하기 전까지 읽고 고치고 또 읽는 일을 반복하듯,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거는 일도 좀더 준비된 마음으로 그 사람을 묵상하고 그리워하는 시간적 여유 속으로 충분히 빠져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성 싶다. 매번 연락 가운데 그런 기다림과 성실함이 마음 속 깊숙이까지 전달된다면, 조금은 드문 지인들의 연락에도 세상살이가 덜 외롭다고 느껴지지 않겠는가. (끝)


*월간 <복음과상황> 2008년 6월호 기고글.

*김용주 님은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선행차량의 부품설계 및 해석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블로그(http://myjay.net)를 통해 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꾼다. 그동안 <복음과상황>에 '회색지대 보고서', '도발적인 캠퍼스보기', '세상보기' 등을 연재한 바 있다.
2008/06/01 00:04 2008/06/0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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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2)
- 겸손과 관대함 사이에서


신입사원 시절, 나에게는 '작업복'에 관한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현장 실습을 할 때마다 우리는 작업복을 지급 받았는데, 사내에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출근 후에는 그 작업복을 입어야 했다.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침에 따라 간부부터 사원까지 동일한 작업복 차림을 한 모습들이 나는 참 좋아 보였다. 물론 작업복 차림이라고 해서 노사간의 위화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게다. 오히려 작업복이 그런 것을 덮기 위한 얄팍한 미봉책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당시에는 ‘현장경영’이라는 모토 아래 직원 모두가 같은 작업복을 입는다는 상징적 의미에 크게 매료되었던 것 같다.


실습 교육이 끝나고 드디어 나는 연구소로 '입성'했다. 팀 배치를 받자 서무 직원이 신입사원들의 상의 사이즈를 다시 쟀고, 당일 저녁 새 작업복이 지급되었다. 거기에는 '기술 연구소'라고 쓰여 있었다. 이는 그 작업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연구소 직원임을 의미했다. 그 날 공교롭게도 내 차례에서 작업복이 바닥났고, 새 작업복을 지급받으려면 최소 1주일은 걸린다는 서무 직원의 설명에 나도 모르게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인식하지 못한 순간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다른 신입사원들은 모두 연구소용 작업복을 입고 돌아가는데 나만 구별된 작업복을 못 입는다는 사실에 순간 속이 뒤틀렸던 것 같다.


머리 속으로는 '현장경영'이란 모토와 작업복 차림에 큰 의미를 부여했지만, 공장 라인을 탈 때도 영등포시장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판촉 활동을 할 때도 서비스 센터에서 오일을 갈며 기름 때를 묻히고 있을 때에도, 나는 이 일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짧은 기간 동안 단순 반복적인 바닥 일의 맛만 보고 나면 종국에는 보다 중요하고 고차원적인 일을 하는 연구소로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말하기 부끄럽게도 나는 혹여 연구소를 돌아다닐 때 석, 박사 출신의 연구원들이 나를 현장직이나 영업직, 혹은 정비직 사원으로 볼까봐, 그게 그렇게 싫었던 것이다. 대학에 대학원 공부에, 그런 것들이 뭐 대수냐고 말하면서도 내 혈관 깊숙한 곳에서부터 이미 대접받고 싶었던 것이다. 내 사탕 발림 같은 겸손, '낮아짐'과 같은 단어의 형이상학적 지향성이 실제 삶 속에서는 내 신앙을, 내가 믿는 예수의 도를 무색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날 오후, 붉어진 얼굴을 가라앉히고 내 속의 이런 저런 나쁜 생각을 곰곰이 들여다보니 참으로 부끄러웠다.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싶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세상에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중엔 내가 최고지/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은 힘들어”

조 영남 노래 중에 ‘겸손은 힘들어’라는 노랫말이다. 맞는 말이다. 유독 배운 게 많은 사람일수록, 아는 게 많은 사람일수록,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겸손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 많다. 특히, 요즘과 같이 자기를 숨기고 자기를 낮추면 더욱 무시당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는, 과장하거나 속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자기가 가진 것들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도록 요구 받는다. 어느 날 팀장님이 지나가다가 갑자기 “XX씨, 영어 좀 하나?”라는 질문에, 과장해서 잘난 티를 내야만 외국 업체와 회의 때 주도적인 역할이 주어지는 직장인들에게는, 매사에 겸손하라는 목사님의 설교와 실재 일상의 처세술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타협점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조금만 만만하게 보이면 자기 업무조차 마구 떠넘기는 회사의 고참 동료들 사이에서, 자동차 접촉 사고에서 먼저 미안하단 말을 꺼내면 이를 악용하는 상대 운전자들 사이에서, 인터넷을 설치하거나 물건을 환불 받는 등의 서비스 업무를 볼 때 내가 먼저 웃으며 친절하게 대하면 혜택들을 전혀 설명해주지 않는 직원들 사이에서 과연 눈물을 머금고 ‘겸손’해야 하는지 슬슬 갈등이 된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일상에서도 ‘내가 좀 어리버리해’, ‘내가 많이 부족하지’하며 자신의 단점들을 내세워 몸을 낮추면 가까운 사람들조차 말을 쉽게 옮기고 비웃기 일쑤다. 이런 일들을 계속 겪으며 맘 고생을 하는 이들이 결국 못 참고 불쾌해하면 농담이었다고 애써 무마하려 하거나 ‘쿨’하지 못하다고 도리어 비난 하기 일쑤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은 그의 책 <마음 미술관>에서 ‘겸손한 사람이 아니라 관대한 사람을 꿈꾸고 있’다고 말한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자기를 낮추는 마음을 갖는 ‘겸손함’보다는, 나를 긍정하고 나를 높이면서 타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심정으로 ‘관대함’을 갖는 것이 오히려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의미일 게다. 내가 남보다 못났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우리에게, 조금만 억울한 일이 생기거나 무시를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그대로 내면에 축적되어 속병을 앓거나 반대로 어떤 식으로든 타인에게 갚아주게 되는 우리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의사의 처방인 셈이다. 그녀의 글에 동의가 된다. 잘 되지도 않는 겸손을 체화하려고 속을 썩느니 관대하게 타인을 용서하는 ‘가진 자’의 마음을 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타인에게는 동일한 행동처럼 보일 것이고 내적으로는 죄책감에서도 해방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불편하다. 마음 한 켠이 껄끄럽다. 그건 지금도 여전히 겸손의 미덕을 발휘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앙을 떠나서조차 겸손히 행하는 이들에게 결국 감동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총각네 야채가게'로 유명한 이영석씨가 매사에 겸손과 성실로 하루하루 일하는 모습에 많은 CEO들조차 감동받으며, 가수 김장훈의 자랑하지 않는 묵묵한 선행에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또한 나의 불편함은 여전히 예수의 도를 좇아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무엇보다 성경은 겸손을 ‘마음의 변화’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인도의 성자’라 칭송 받는 선다싱이나 ‘하나님 손에 있는 연필’이라 자신을 소개했던 테레사 수녀, ‘작은 예수’라 불린 장기려 선생 같은 신앙의 선배들의 발자취 속에는 타인에 대한 ‘가진 자’의 관대함과 같은 내면의 타협점이나 처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내 기대와는 달리 매 순간 겸손과 관대함 사이에서 줄타는 듯한 나의 일상들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들에 비하면 여전히 작은 일에서조차 대접받고자 얼굴을 붉히는 내 속 사람이 부끄럽다. 서른의 중반으로 치닫고 있는 나에게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음이, 그리고 신앙의 연륜이 쌓일수록 말만 늘고 미래에 대한 약속과 비전만을 궁색하게 둘러대는 내 모습이 부끄럽다. 이런 연유로 나는 내 삶과 글 사이에 있는 거품들을 줄여가야 함을 절감한다. 그리고, 마치 신용카드를 사용하듯 말부터 뱉어내고 나중에 행하면 된다는 식으로 신앙에 있어서도 더 이상 채무자의 자세로 살지 않고, 더 늦기 전에 현금 내지는 직불카드를 사용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교정해가야 할 성 싶다. 천국의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끝)


*본 글은 <복음과상황> '08년 5월호 기고글입니다.

2008/05/01 00:03 2008/05/0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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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1)
- ‘소비되는 것들’에 대한 단상

 

 

결혼하고, 그러니까 아저씨가 된 이후로 체중이 많이 불었다.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운동량은 부족하고 피로는 쌓인데다 잦은 회식자리 등의 이유로 한 번 불어난 내 체중은 줄어들 줄을 모른다. 해서 최근에는 식사를 하다가 음식을 남기는 경우가 잦았다. 아내의 조언대로 되도록 육식은 줄이되 채식을 많이 하고, 한 번에 많은 양의 식사를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런 연유로 회사에서 자율 배식으로 먹는 식사는 가져온 만큼을 다 먹지 않고 버리기 일쑤다. 그것도 내심 욕심대로 다 먹지는 않았다는 뿌듯한 마음을 가지면서. 하루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잔반을 국그릇에 담고 있던 중 어릴 적 아버지가 ‘쌀 한 톨도 버리지 말라’고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간혹 내가 남긴 밥그릇 위쪽에 남아 있던 밥풀을 보면서 일장 연설을 늘어 놓으시곤 했다. 아버지는 내가 남긴 한 톨의 쌀을 만들기 위해 농민들의 한 해 수고가 있었음을 상기시켰고 그럴 때면 나는 죄책감에 숟가락 소리가 심하게 날 정도로 밥그릇을 비우곤 했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음식을 배에 버리지 말라’는 말을 농담처럼 하는 요즘 세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어느덧 내 건강을 위한다는 핑계로 아무런 의식 없이 음식을 먹다가도 쉽게 버리게 된 셈이다. 사실 마트에서 얼마의 돈을 주고 쌀 몇 킬로그램을 사면 농민의 노고가 밥을 먹는 내게는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지적대로 쌀과 농민의 소외, 쌀과 나와의 소외, 나아가 쌀을 경작한 농민과 쌀밥을 먹고 있는 나와의 소외가 발생하는 것이다. 누군가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그 면전에서 버리기는 어렵다. 그 사람의 수고와 애정이 나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한 끼의 식사조차 물질로, 얼마의 돈을 지불하면 살 수 있는 무엇으로 여기기 때문에 금전적 여유만 있다면 그 물질을 살 수도 있고 필요하면 쉽게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이제는 모든 것들이 자동화, 인스턴트화 되어서 쉽게 똑같은 음식들을 공장에서 찍어낼 수도 있다. 그러한 음식들은 포드자동차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누가 만들었는지조차도 불분명하게 흐르는 과정 속에서 기계적인 반복작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음식들은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대량으로 소비되고 대량으로 버려지고 있다. 이러한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의 사이클 안에서 보릿고개를 겪은 아버지 세대의 구태의연한 ‘쌀 한 톨의 미학’이 자리잡을 틈이 없음은 자명하다.

비단 음식뿐 아니다. 주어진 모든 사물들의 가치를 금전적 잣대로 바라보는 나는, 물건 귀한 줄을 모르고 산다. 어릴 때는 양말에 구멍이 나면 꿰매 신기 일쑤였고 우산이 고장 나면 수리를 해서 썼다. 솔직히 나이 스물이 넘어서는 옷을 헤질 때까지 입거나 낡아져서 버린 일이 거의 없다. 촌스러워져서 혹은, 스스로 지겹다고 생각되면 쉽게 옷을 버렸다. 중고책방에서 꼼꼼히 살피다가 책을 건지기도 했던 나는 어느새 돈을 벌면서부터는 헌 책이 있더라도 깨끗하고 반질반질한 책을 손에 넣는 것에 쾌감을 느껴 개정판이 나오면 같은 책을 다시 사기도 한다. 그런 책 몇 권 정도 살 형편은 되니까, 옷 몇 벌은 백화점 옷은 아니더라도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 입을 형편은 되니까 옷이 멀쩡해도 내가 질리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쓰레기통에 버리고 또 비슷한 류의 물건을 '상쾌한 마음으로' 사대곤 한다. 이런저런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니 그 동안 나의 소비행태가 분명하게 보인다. 과한 욕심으로 사고 나서는 마음에도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 쓰지도 않고 버릴 날만을 손꼽고 있는 많은 물품들이 즐비하다.

복상 편집위원인 박총 형이 자주 언급하는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란 책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용품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전달되는지를 소상히 알려준다. 커피, 햄버거, 신발, 신문, 자동차와 컴퓨터까지 그것의 재료가 생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의 부담과 가공과정에 관련된 많은 노동착취, 그리고 그 물건을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들이 소상히 적혀있다. 그런 일련의 전지구적 환경, 노동문제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물건을 사고, 쓰고 버리는 일련의 나의 일상은 전혀 정상적이지 않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런 일상에서의 윤리관이 없는 채로 사회 참여나 운동, 그리고 복지나 윤리에 관한 말들을 참 많이 내뱉고 산다. 누군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살펴본다면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참으로 두렵다. 나의 거창한 생각, 나의 인생, 나의 기도 속에서도 무신경하게 받아들이는 악한 일상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녹 색평론을 정기구독하고 교계에서 실무자로 활동하는 후배가 있다. 비교적 검소하게 사는 그녀는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웃으며 '적게 벌고 적게 쓰는 게 체질에 맞다'는 얘기를 했더란다. 사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사실 난 많이 벌어 적게 쓸 궁리를 했었는데, 그건 결국 따지고 보면 많이 벌어서 적게 쓰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내 속내를 감춘 것이었다. 수입에 여유를 두고 싶은 것은 어느 정도의 물질욕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내심 감추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이런 내 속내를 쉽게 이기지 못할 성 싶다. 하지만 이제는 노력하고 싶다. 내 미시적인 삶이 정화되지 못한다면 내가 자주 말하는 거시적인 삶의 윤리적 토대는 무너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도 가면을 쓰지 않는, 일관된 삶을 살고 싶다. (끝)

**월간 <복음과상황> '08년 4월호 기고글.

2008/04/01 00:02 2008/04/0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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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이 많이 늦었습니다. 이미 정리가 끝나는 마당이라 사실 글 쓰기가 좀 주저스럽습니다. 예전에 대학원 다닐 때는 한참 온라인에서 북적거리다가 갑자기 뒷북치는 논객들을 좀 답답해 했습니다만, 지금 제 처지가 그렇네요.ㅜㅜ


미리 말씀드리자면 제 글은 시기가 한참 늦었기 때문에 논쟁이라기 보다는 후기에 가깝겠습니다.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미리 말씀 드리고 시작하려 합니다. 따라서 글은 구어체 형식으로 편하게 쓰려고 합니다.^^

 

신광은 목사님과 양희송 전도사님(직업을 맞추다보니 그렇습니다.ㅡㅡ;;)의 글들이 기세 논쟁을 정리하는 데에 제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양희송 전도사님이 김기현 목사님의 기세를 리차드 니버의 구분을 가지고 "대립 모델"에 매핑시킨 부분이 제게는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물론 김기현 목사님이 별 말씀 안 하시는 걸로 봐서는 "대립주의자" 혹은 "대립 모델의 기세"라고 인정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김 목사님의 기세를 신광은 목사님이 "무늬만 기세"라고 이야기한 듯 합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예전에 김기현 목사님이 번역하시면서 자주 언급하셨던 레슬리 뉴비긴의 <요한복음 강해>가 떠오르더군요. 헬라 철학의 옷을 입었지만 기독교의 정수를 드러냈던 사도 요한의 서신을 김목사님이 기세라는 종목에 적용시켜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김기현 목사님은 인용의 대가이시니 충분히 가능하다는 음모론적 생각..) 기세의 옷을 입고 있지만 속을 까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한 것이지요.^^

 

그건 그렇고, 신목사님 글에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광은 목사님은 답글을 쓰시면서 "용주님의 솔직 담백한 지적에 많은 부분 공감하면서도 지나칠 정도의 방어적 태도에 의아"했다고 이야기했는데 사실 글들을 죽~ 읽어보면 제 글에 대해 신목사님이 공감한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ㅡㅡ;;;


글 쓸 때 자주 하는 실수인데 사실 이런 글을 접하면 부부싸움 할 때 상대편이 "내가 참 많이 미안하긴 한데, 당신 그러면 안돼!"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자꾸 떠오릅니다. 신 목사님은 중간 중간에도 이런 류의 자극적인 표현들을 좀 쓰시는데 읽으면서도 진의가 의심스러울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기세 옹호론을 펼침으로써 지나치게 방어적인 자세로 변론하기 급급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지적도 그렇습니다. 저는 김기현 목사님의 연재를 읽다가 좀 과하다 싶은 부분들 몇 가지-신목사님에 따르면 3가지로 요약됩니다-를 지적했습니다. 논쟁의 과열이나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나머지 부분은 다 동의한다는 꼬리글까지 붙였는데 그렇게 읽으셨다면 그게 더 지나친 왜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려다 보니 오히려 신목사님이 제 글을 읽으시면서 "지나치게 방어적인 자세로 변론하기 급급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던 건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하게 만듭니다.

 

이원론-혼합주의 문제에 있어 신 목사님은 제가 "김목사님의 의견을 별로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 같으며 이원론의 문제를 모더니즘 탓으로 돌리는 단순한 논리를 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에서 신 목사님은 저의 "현대 사회에 대한 이렇게 놀라울 정도의 단순한 분석에 그저 할 말을 잃"었다고 말합니다. 신 목사님 반응에 사실 저도 좀 그렇습니다.ㅡㅡ;; 신 목사님이 안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게 말씀하실 수는 있겠으나 좀 오버하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물론 모더니즘 때문에만 신앙이 사유화, 내면화, 탈사회화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김기현 목사님이 이원론을 혼합주의로 대체할 때 논리적 비약이 좀 있었다는 것이었고 의도적으로 개혁주의 기세에서 상당한 부분의 변증을 일삼고 있는 모더니즘을 통째로 날려버린 듯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모더니즘적인 요소를 부각시킨 것이지 신목사님 지적대로 모더니즘이 모든 문제의 원흉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제 글을 다시 읽어보아도 매도당할만큼 그렇게 강하게 읽히지는 않는 것 같은데요.ㅜㅜ) 신앙의 사유화, 탈사회화와 같은 문제는 사실 모더니즘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사실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과 다원주의적인 요소가 더욱 신앙의 사유화와 탈사회화를 가속시키는 요인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군부 독재라는 상황적 특수성으로 인해 신앙의 사회적인 역할의 고리들을 많이 잃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김기현 목사님이 모더니즘을 빼놓고 이원론을 비판하면서 혼합주의로 넘어가고 있었고-저는 그것이 좀 지나치다 싶었고-그렇기 때문에 저는 기독교가 개인적이고 내면적, 탈사회적인 종교로 축소될 것을 강요 받았던 근대사회에서 개혁주의 기세가 그에 대한 좋은 모델이 되지 않았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첨언하자면 저는 김목사님이 이원론이 아니라 혼합주의가 문제라고 이야기하면서 이 두가지의 문제를 쉽게 대체시키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양립하거나 통합 혹은 병렬적인 구조가 아니라 배제 혹은 대체로 읽혔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한 것입니다. 김목사님의 주장과는 달리 여전히 이원론이 문제라고 말이지요. 이원론 문제를 포함시킬 수 있는 기세로 논의를 통합하거나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덧붙여 기존의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저의 관점을 정리하자면 수정(modified) 개혁기세 혹은 확장(extended) 개혁기세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신목사님이 지적하신 것은 "현장성 문제"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동의되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는 말로 운을 떼시는데 앞에서 동의되는 부분을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좀 서운합니다.(아예 말을 마시지.. 저 엄청 기대했었습니다.ㅜㅜ) 이 대목에서 신 목사님은 제가 적반하장을 했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김 목사님의 연재가 기존 기세의 문제 지적과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인데 연재를 마칠 때까지, 그리고 그 대안적 기세 모델을 적용할 때까지의 유예기간을 줄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덧붙여서 글이 현학적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따질 것 없이 실천 가능성을 가지고 판단하자는 말씀도 하였습니다만 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제 반론에서 충분히 말씀을 드린 것 같습니다. 실천 가능성 여부는 사실 또 다른 문제입니다.)


다시 유예기간 문제로 돌아가자면, 저는 좀~ 그렇습니다. 물론 일리가 없는 말씀은 아니나 이번에 번역하신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은 1995년에 나온 책입니다. 김목사님이 인용하시는 많은 책들도 사실 옛날 책들이 많습니다. 제가 그 책을 원서로 본 것도 2003년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이제와서 다시 기세를 이야기한다면 그 유예기간은 좀 과하며, 좀더 짜게 말씀드리자면 이미 적용 사례를 이야기할 정도가 되어야만 이제 와서 이 지루한 기세 논쟁을 다시 끄집어 내는 것에 대한 '용서(?)'가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제가 지나친가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만 제 주변의 많은 분들이 이미 기세 논쟁을 좀 지겨워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습니다만(사실 이야기를 많이 하니 흥미롭습니다.^^), 지금도 기세 논쟁은 상당 부분 울궈먹기 내지는 '짜고 치는 고스톱' 같기도 합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오버라는 생각도 듭니다. 양희송 전도사님 지적대로 제가 기독교 세계관 전문가도 아닌데 제 영역을 넘어서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르게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그렇습니다. 공학 분야에서는, 아니 이미 여러 학문 분야에서는 이론에 대한 검증을 가짜로 해보는 일이 잦습니다. 자신의 이론을 가적용해보는 것이지요. 제안서도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될 것이다, 기대되는 효과는 이러이러하다는 등. 일종의 시뮬레이션이지요. 제가 김목사님 글에서 답답한 대목은 마치 통합적인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듯하다가 '무늬만 기세'인 다른 기세(another Christian worldview)를 이야기하는데, 거기에 적용 사례가 없다는 것입니다. 검증 사례가 아니라 적용사례 조차 없다는 말입니다. 지나치게 이야기하자면 김목사님은 자신의 기세를 현장에 적용해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미 저는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대한 기독교적인 모델을 구축하면서 그것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려는 노력을 덜하더라는 것이지요. 물론 김목사님은 연재를 통해 "성경"이 어떻게 이야기 하는가가 중요하며 무엇보다 거기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논리로 새 모델, 혹은 대립 모델을 전개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아우를 수 있는 모델을 기대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물론 적용 사례들이 풍성하다면 그것이 더 좋겠지요.

 

글이 길어졌네요. 토른 글들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들도 있었고 배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아무쪼록 더 많은 논의가 풍성하게 전개되기를 바라고 또한 무엇보다 김목사님의 연재와 다른 분들의 글들에 도움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신목사님 글에 좀 과하게 이야기한 부분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한 부분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자꾸 신목사님 글의 스타일을 자꾸 이야기하게 되었네요. 부디 신목사님의 글에 대한 애정이라고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글 중간에 김목사님이 저에게 '이쁘'다고 하셨더군요. 감사합니다. 김목사님도 연재 잘 마치시고 좋은 글들과 좋은 책 소개 많이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양희송 전도사님의 글은 언제나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군요. 역시 글쟁이 답습니다.^^
그럼, 샬롬.

2007/07/01 22:49 2007/07/0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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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소견
: 직장인이 바라본 기독교 세계관

/김용주


들어가면서
최 근 복상에 김기현의 세계관 관련 연재가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 김기현만큼 제대로 기독교 세계관(이하 기세)을 논한 글을 읽어보지 못했다. '공격적 책읽기'로 널리 알려진 그는 이 연재를 쓰면서도 엄청난 양의 참고 문헌들과 신학과 철학 분야의 사상가들을 언급하고 있다. 혀를 내두를 정도다. 도예베르트, 아브라함 카이퍼, 리차드 니버로부터 시작해서 로버트 웨버, 제임스 사이어, 알버트 월터스, 브라이언 월쉬, 레슬리 뉴비긴. 이에 더하여 낸시 피어시, 스탠리 하우워와스, 알빈 플란팅가, 존 요더, 하워드 스나이더, 로날드 사이더, 자크 엘룰에 이르는 기독교 저자들의 최근 저작들까지도 자유롭게 넘나든다. 또한 데리다나 하이데거, 후설 같은 사상가들을 인용하며 그 사상의 깊은 의미를 반추하는가 하면 국내 저자들(송인규, 이승구, 신국원, 양승훈 등)의 저작들도 꼼꼼히 읽은 흔적이 역력하다. 뿐만 아니다. 양희송, 박총, 이원석, 정정훈 등 세계관에 대해 한 번이라도 글을 쓴 청년 필진들의 글들조차도 빠짐없이 읽고 적절한 대목에서 언급하는 성실함이 엿보인다. 이 정도라면 김기현의 기세 비판은 빈틈을 찾을 수 없이 촘촘하고 또한 성실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우리는 아직도 난처하다'는 김기현의 지적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깔끔하지 않은 부분들이 자꾸 머리 속을 맴돈다. 사실 그의 연재가 끝난 후에 글을 쓰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글을 쓰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이미 그의 초반 연재 글에서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연재 중반에 내가 지적하는 문제들이 후반에 가서 해결될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기세에 대한 논의의 풍성함을 위해 기꺼이 글을 쓰려 마음 먹었다. 이 글의 주목적이기도 하지만, 부족한 내 글이 종국에는 김기현의 연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를 바란다. 


본론 으로 들어가자. 김기현은 개혁주의 기세의 현실 진단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며 몇 가지로 기세를 비판한다. 사실 기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으며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것에 나도 동의한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 상에 김기현의 글이 위치하고 있고 그의 글은 이제까지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던 비판적 논의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기현이 연재 글에서 비판한 기세의 몇몇 문제에 대한 반론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적하려는 내용들 외에도 김기현은 자신의 연재 글에서 개혁주의 기세의 여러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논의의 축소를 위해 내가 언급하지 않는 내용은 거의 동의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사실 나는 김기현의 글에 비판적인 입장이라기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감탄하고 있으며 멀리서 뵌 기억 밖에는 없지만 동지 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이제부터 차근차근 그것들을 풀어보려고 한다.

개혁주의 기세는 명제적이며 내러티브가 없다는 비판에 대해
첫 째는 기세에는 ‘내러티브(narrative)’가 없다, 즉 명제만 있고 이야기는 없다는 비판이다. 기세의 명제적 성격이 현실 세계와의 괴리감을 크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라는 이야기다. 이는 일반적으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에서도 동일하게 지적되는 부분이다. 사실 내러티브의 강조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있어 하나의 트렌드라 할 수 있다. 기세의 명제/내러티브 문제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이는 성경이 어떤 지침이나 규율, 혹은 신조와 같은 명제로 추출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가진 긴 서사(敍事)라는 말이다. 야곱이 경험한 하나님과 요셉이 경험한 하나님으로부터 공통 분모를 뽑아서 우리가 취해야 할 지침으로 삼는 것이 진정한 혹은 온전한 기독교인가? 거칠게 표현하자면 대충 이런 류의 고민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 의식이 신학과 세계관에 녹아나는 일은 고무적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제적 성격의 기세를 평가절하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이는 마치 예수님의 행적이 중요한가, 그가 가르친 주기도문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와 같다. 물론, 둘 다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 둘은 상호 보완이 필요하다. 관계를 따지자면 주기도문은 명제적 성격이 강하고 예수의 가르침이 압축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서사적인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내러티브의 살이 붙어야 그 명제가 온전히 드러나고 또한 강화된다. 이러한 문제는 성경에 기록된 십계명이나 사도신경에서도 잘 드러난다. 또한 신학분야에서도 특정한 주제들을 뽑아낸 조직신학이나, 성경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풀어내는 성경신학과 같은 도구의 효용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일례로 도로교통법에 의한 교통표지판을 상기해보라. 그 각각의 기표들은 특정한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일반인들은 적절한 시간 동안의 교육만으로도 교통표지판을 읽고 그 기표를 보고서 자동차를 몰 수 있다. 신호등의 파란불이 깜박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파란불의 깜박임은 너무 많은 생략이 있는 것은 아닌가. 차라리 구구절절 자세한 문장으로 길을 건너는 데에 필요한 설명을 보기 좋은 곳에 서술해 두어야 하지는 않을까. 내게 내러티브의 문제는 이와 비슷하다. 기독교 세계관도 마찬가지다. 김기현은 상대적으로 내러티브를 강조하기 위해 이러한 압축적이고 일관성 있는 명제의 효용을 지나치게 축소시키고 있다. 반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세의 일관성과 명제성을 배제하고 내러티브를 살린다면 기독교를 효과적으로 관통할 수 있겠는가? 


나는 기세를 모르던 시절에도 경건의 시간을 5-6년 동안 가지면서 성경을 읽었다. 하지만 도통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성경은 신화적으로 다가왔고 예수님의 구속은 내 죄를 대속한 것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도예베르트의 창조, 타락, 구속으로 대변되는 기세와 ‘하나님의 나라’라는 틀로 역사를 관통하는 성경신학적 배경이 성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김기현의 문제 제기는 포스트모던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익숙한 지적이나 자칫 잘못하면 성경의 일관성을 파악하는 효과적인 틀 자체를 허물어뜨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실상 내러티브의 강조는 개혁주의 기세의 명제성을 허물어뜨린다기 보다는 내러티브의 도움으로 오히려 강화되고 내러티브를 통해 무미건조한 신학적 도그마로 전락하지 않는 상호보완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지적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원론이 아니라 혼합주의가 문제라는 비판에 대해
두 번째 비판 대상은 이원론이다. 김기현은 기세를 현실에 맞게 적용하려면 기존의 개혁주의 기세가 말하는 것처럼 이원론을 극복하는 것보다는 교회 내의 콘스탄틴주의, 즉 혼합주의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개혁주의 기세는 현실 진단에서부터 이미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이미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가 세상과 격리될 걱정을 하는 것은 기우(杞憂)에 불과하며 오히려 하나님 나라, 그 왕국의 가시적 형태인 교회가 도리어 세상 속에서 세상 정신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김기현은 송인규의 “평신도 신학”에서 언급한 ‘세상’이라는 개념의 구분을 언급한다.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 전체를 가리키는 ‘세상1’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상징되는 세상의 정신을 의미하는 ‘세상2’를 구분하자는 송인규의 지적에 대해 “한국교회의 문제는 ‘세상1’과 ‘세상2’를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2’가 교회 안에 침투해서 사실상 장악 당한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김기현은 세상과 교회의 구분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 없이 오히려 우리가 교회의 세속화에 주목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 근거로 그는 신구약 성경의 내러티브와 콘스탄틴 이후 기독교의 혼합주의적 성격을 지적한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도 교회가 어떻게 권력과 결탁했으며 그로 인해 얼마나 기독교가 변질되어 왔는지를 설명한다. 그렇다. 적은 외부에 있지 않고 우리 내부에 있었으며, 결국 친절한 금자씨가 말하듯 “너나 잘하세요”가 우리 귀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으나 김기현이 이성주의 시대로 대변되는 ‘모더니즘’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듯이 근대주의는 이성의 절대성을 강조하여 경험적, 합리적, 과학적인 것들을 신격화하였다. 근대 기독교인들은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가 무엇인지에 대한 수많은 탈기독교적인 답변들 속에서 혼란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모더니즘이 한 세대를 휩쓴 후, 기독교 신앙을 포함한 종교는 사유화되었고 내면화되었고 탈사회화 되었다. 종교는 이제 학문, 정치, 문화, 사회에 개입할 수 없으며 신존재에 대한 문제는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그 무엇이 되었다. 이로 인해 학문 영역 자체에서의 도피가 이루어졌으며-이를 두고 쉐퍼는 “이성에서의 도피”라고 말하기까지 했다-무신론으로 회심한 유물론자들로 인해 대다수의 기독인들은 과학, 심리학, 예술, 매체, 정치와 같은 영역의 것들은 세상적인 것이며 그 자체로 이단적이고 사탄적인 것으로 치부했다. 시대가 달라져도 인간 조건과 세상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로이드존스조차도 그의 대표적 저서인 “부흥(Revival)”의 초반부에서, 이런 근대적 사고로 인해 교회가 그 이전 세대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에 봉착해 있음을 직시했다. 유대민족과 중세 유럽의 문제가 혼합주의였다면, 근대 이후에 생겨난 이성우월주의적 사고 때문에 대다수의 복음주의자들은 세상의 각 영역, 특히 학문과 문화 영역을 부정하고 이단시했다. 이 시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미시적인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도 하나의 포괄적인 틀로 제시될 수 있었던 기세의 긍정적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한국 교회도 개혁주의 기세에서 말하는 이원론의 극복이 ‘여전히’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김기현은 나와 생각을 달리할 것 같다. 지금은 모더니즘을 넘어선 포스트모던 사회로 들어섰으며 모더니즘의 문제에 집중했던 개혁주의 기세는 고스란히 모더니즘의 해악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으나 이는 한국 사회를 탈근대 사회로 볼 것이냐, 근대 사회로 볼 것이냐, 아니면 진중권의 지적처럼 오히려 전근대적인 방향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볼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나의 생각은 제3세계, 특히 북미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한국적 상황은 이 모든 것이 중첩된 형태를 띄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교회는 이원론적 사고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나는 개혁주의 기세로 대변되는 “구조와 방향 모델”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기독인들이 세상의 구조-문화, 정치, 사회, 학문, 예술 등-그 자체를 부정하고 불경스러워하며 담을 쌓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김기현의 문제 제기와는 반대로-송인규의 원래의 지적처럼-진정한 문제는 우리가 세상에 관심이 없는 것이며 또한 ‘세상1’(구조)을 ‘세상2’(방향)처럼 여겨서 ‘세상1’과 접촉하며 살아가는 그 자체를 혼합주의로 치부하고 정죄하고 멀리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리차드 미들톤의 교회와 세상에 관한 이원론적 사고의 문제성을 접했을 때 들떠 있었고, 월터스의 구조와 방향 모델을 접했을 때 내가 누리던 음악, 예술, 영화, 대중매체들이 악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제서야 졸이던 가슴을 펼 수 있었다. 송인규가 천국에는 예술 작품들이 있고, 문화가 보존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을 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는 것, 나아가서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 기다려졌다. 김기현의 잣대로 본다면 나는 교회 안의 혼합주의에 전염된건가. 교회 안에서 사회와 문화를 누리고 더 나아가 변혁을 꿈꾸는 나는 콘스탄틴주의를 너무 가볍게 보고 있는 것인가. 이원론을 지적하는 기세는 여전히 현실을 잘못 파악한 건가. 나는 기세를 접한 그 때부터 후배들에게 기세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나와 같은 심리적 부자유함에 눌려 지내는 수많은 기독학생들을 만난다. 그 때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금도 나는 음악을 하면 CCM을 고집하는 청년들은 본다. 아침 기도회를 빼먹고 시험공부를 했다고 죄의식을 느껴 학점을 포기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화해하려는 학생들도 본다. 주변에서는 적성에 맞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주기적으로 신학교에 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는 회사원들도 자주 만난다. 게다가 그들 열에 하나 둘은 이미 회사를 떠났다. 나에겐 이원론이 여전히 극복의 대상이며 개혁주의 기세는 여전히 현실에서 유효하고 가치 있는 모델임을 느낀다. 김기현은 때때로 주변의 보수 교회들을 탐방해보라. 그 교회의 평신도들과 이야기해보라. 자신의 주변에 있는,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성도들이 아닌 보수 교단의 기독 직장인들, 기독청년들과 이야기해보라. 난 그렇게 생각한다. 여전히 이원론이 문제다!


한국이라는 컨텍스트와 이야기에 무감하다는 비판에 대해
세 번째로 김기현은 개혁주의 기세 운동이 한국적 상황과 이야기에 무감각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기세 운동은 처음부터 단순한 지식체계의 성립보다는 삶 한가운데서의 실천을 목적으로 해왔다”는 최태연의 말을 인용하면서 “도예베르트나 쉐퍼가 매력적이었던 건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고뇌하고 대답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널리 읽히는 세계관 서적들은 ‘한국’이라는 컨텍스트가 아예 부재하거나 언급하더라도 지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그 관점 역시 비판 받을 소지가 많다”고 결론 지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사실 나는 이렇게 시작된 김기현의 연재에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이라는 컨텍스트를 관통하는 세계관의 비전을 제시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저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김기현의 세계관 연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렵고 오히려 “지식체계의 성립”에 치중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한국적 상황이 아주 언급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네 번째 연재인 “이원론과 혼합주의”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이라크 파병, 국가보안법, 사학법을 대하는 한기총의 정치 참여를 혼합주의의 틀로 보는 대목이 그 부분이다. 하지만 이 대목은 혼합주의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예시 정도로만 읽힌다. 그렇다. 김기현에게도 현장은 아직 멀기만 하다. 사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가 세계관에 관한 연재를 시작했을 때 나는 이런 류의 글을 기대하지 않았다. 친절하게 소개된 참고 문헌과 논문 버금가는 수준의 잘 짜여진 이론들의 종합과 비판을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생생한 현장성이 담보된 실체로서의 세계관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김기현은 한국 교회의 고질적 문제인 담임목사직 세습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미 FTA 문제는 어떤가? 교회의 세금 문제는 어떠한가? 지역 사회, 한국 사회에 대한 교회의 봉사와 사회 참여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혹은 수정로교회에서는 그런 현장성 있는 사역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내러티브와 현장성이 반영된 김기현의 사역은 부산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어떤 열매들을 맺고 있는가? 그가 일구어 가고 있는 하나님 나라 운동은 어디쯤 와 있는가? 사실 나는 이런 것들이 궁금하다. 모든 사역을 가시적인 열매로 환산하려는 것에는 나도 부정적이지만 세계관 운동을 이야기하면서 그리고 더군다나 현장성, 현실 세계의 참여를 이야기하면서 사역에 대한, 열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온 후로 세계관 관련해서는 별 다른 책들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물론 세계관 딱지를 달고 나오는 책들을 되도록 모두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실상 내게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책들은 현장성이 담보된 책들이다. 제3세계의 사회복음의 사례들이 잘 드러난 로날드 사이더의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다”나 사무엘 에스코바의 “벽을 넘어 열방으로” 같은 책들과 도시 빈민촌 선교행전이라고 볼 수 있는 “홍등가의 그리스도”, 그리고 일반 서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NGO 운동의 한계를 느낀 학생들이 비영리 기업을 조직하고 운영하여 성공한 이들을 인터뷰한 사례들이 담긴 “세상을 바꾸는 대안 기업가 80인”같은 책들이 그것이다. 이런 책들은 수사법이 화려하지 않으며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10배에 달하는 참고 문헌을 돌아볼 필요도 없다. 이미 그들은 또 하나의 사도행전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의 짧은 고백 속에는 언제나 ‘현장’이 묻어나며 그 소박함 속에서 울리는 공명은 내 깊은 양심을 오랫동안 뒤흔든다. 


사실 나는 이 대목에서 김기현이 지적하는, 이른바 개혁주의 기세라는 모델 자체가 현장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개혁주의 기세에 대한 모델의 검증이 안 된 것 아니냐는 얘기다. 김기현의 지적대로 개혁주의 기세가 영향력이 있었던 것은 그 세계관 배후에는 화란 개혁주의 기독교 선배들의 현장성이 담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기세는 그들의 삶의 토대 위에서 구축된 실천적 틀인 셈이다. 이미 어느 정도의 성공 사례가 있는 모델을 우리가 적용해보지도 않은 채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지 않냐는 거다. 내가 불편한 것은 김기현이 기세가 현실에 뿌리박지 못하는 이유를 자꾸 개혁주의 기세 내부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나는 사실 기세의 다양성 문제와 모더니즘적인 토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혁주의 기세 자체는 여전히 그 틀을 유지하면서 현실에 부단히 적용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백 번 양보해서 개혁주의 기세 운동이 우리나라 형편에는 일대일로 대응시켜서 적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니 수정, 보완하여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틀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나는 아직까지는 회의적이다.


기세 비판, 텍스트의 평이성을 지향해야
알 버트 월터스는 기독교 세계관을 철학, 신학과 구별 짓는 키워드로 ‘일상’과 ‘상식’을 든다. 세계관이 그만큼 일반적이고 비전문적인 문제라는 얘기다. 기독교 세계관은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지혜와 상식의 문제이며 일상적인 문제다. 하지만 개혁주의 기세 자체가 철학, 신학을 잘 알지 않으면 논의하기조차 어렵다는 점을 많은 청년들이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고 나 또한 그에 동의한다. 김기현의 글에서 내가 답답한 대목은 김기현이 그런 기세의 문제를 지적하는 동안에도 다시 너무나 많은 철학과 신학의 토대를 넘나들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세계관이 신학, 철학적 토대 없이 정립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세계관은 철학과 신학에 대해 메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철학적, 신학적 연구가 세계관의 형성에 영향을 준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관의 표현이 학문적인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세는 노동자나 어린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되어야 한다. 비록 그렇게 하기엔 다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되도록 텍스트의 평이성을 지향해야 한다. 


나는 기세의 수혜자다. 내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신학을 공부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러한 유혹이 만만치는 않다. 모두가 이야기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신학을 공부하는 방법만은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항상 그런 도전을 받아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솔직히 나는 기독교 세계관 논쟁에 끼어 들어야 하는지를 놓고도 몇 달을 고민해왔다. 사실 기세를 놓고 내가 할 얘기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사실 그렇다. 기세 논쟁은 그 텍스트의 난해함과 그를 해결하기 위한 방대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세계관 운동의 논의 자체에 세계관의 수혜를 입은 사회인들과 운동가들을 철저하게 배제시키고 있다. 기세 논쟁의 중심에는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결국 운동가들은 말 한마디 하려고 해도 좀처럼 논의에 끼지 못한다. 내가 아는 이들 중 참여연대나 기윤실, 공의정치포럼, 뉴스앤조이 혹은 사회 운동가들과 직장인들이 기세에 대해 이렇다 할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사실 그들이 세계관 운동을 하는 데에는 깊이 있는 철학과 신학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사실 기세를 이야기하려면 그런 현장에서, 미답지(未踏地)에서 분투하고 있는 운동가들을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그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담론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기세를 갇힌 학문의 영역에서 척박한 사회의 중심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나는 김기현이 그의 연재를 통해 원론적으로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의 기세 논의가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도 믿는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의 논의가 진정으로 의미 있는 작업이 되려면 학문의 옷을 벗고 보다 알기 쉬운 일반인들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학문적인 글이라도 리차드 파인만이나 송인규, 강준만 수준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나는 김기현의 글을 읽으면서 또다시 병이 재발하는 경험을 했다. 텍스트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김기현의 탁월함을 보면서 나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다시 신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사실 회사 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그의 해박한 지식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독서량에 한계를 느낀다. 내 문제의식이 지식의 한계 때문인가 하는 생각에 한 몇 달 동안을 1-20분만 시간이 나도 관련된 글들을 최대한 많이 그리고 자세히 읽어 보았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서서 11시 가까이 되어야 퇴근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저녁식사 시간을 포기하더라도 최소한 그가 인용한 참고 문헌은 다 읽어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지금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그의 연재를 다 읽을 때 즈음에는 나는 엄청난 참고 문헌의 늪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끝내 빠져 나오지 못할 것 같다. 내심 꽤나 성실하게 기세 관련 책을 읽었다고 자부하는 나는 내가 넘어설 수 없는 물리적 처지에 있는 김기현이 한편으로는 부럽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내 모습은 뱁새가 황새를 쫓아 가려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꼴이다. 하지만 나는 이변이 없는 한은 회사 생활을 지속할 것 같다. 또한 이 토대 위에서 지속적으로 기세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고 또한 나를 포함한 많은 운동가들을 위해서 꼭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면서: 기세가 현실에 뿌리박지 못한 진짜 이유는?
정 리하자면 이렇다. 기세가 현실세계에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를 김기현은 개혁주의 기세의 변혁 모델 ‘안’에서 찾고 있다. 나는 그의 비판 중 내러티브의 부재나 이원론에 대한 비판과 같은 일부는 좀 과하다는 지적을 했다. 김기현이 컨텍스트 문제를 거론하는 데에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기세라는 전략으로 경기를 뛰어본 선수가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군사 독재 시절 사회참여 문제를 놓고 기독연합 운동은 이른바 ‘6개대 사태’와 같은 사건들로 인해 보수-진보 세력 간의 아픔이 있었고 그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듯하다. 이후에 우리는 기세를 실천적으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내세울만한 현실의 운동 경험 없이, 북미의 영향을 듬뿍 받은 포스트모던-다원주의 시대를 맞이 했다. 권력은 다양화되었고 기세운동은 문화 운동으로 변화했으며 진보 세력은 분화되었다. 그 와중에 기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대두 되었고, 이제 기세는 김기현과 같은 신앙인들에 의해 한국 교회에서 아직 써보지도 못한 낡은 칼자루 취급을 받고 있다. 문제는 김기현이 ‘낡은’에 주목하고 있다면 나는 ‘아직 써보지 못한’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을 마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렇다. 나는 여전히 개혁주의 기세의 변혁모델을 유효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다는 점과 참여는 하고 싶으나 기세 논쟁 자체의 난해함으로 인해 토론의 시작점을 찾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내 글로 인해 보다 많은 이들이 기세 논쟁에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나의 부족한 잡문(雜文)이 김기현의 이후 기세 연재에 부족하나마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끝)

2007/06/01 22:48 2007/06/01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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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秘笈) ‘다시보기’의 교훈>

어렴풋하지만 무협 영화 중에 그런 류의 내용이 가끔 기억난다. 주인공이 어떤 이유로 위기에 처했다가 무림의 고수에게 구조를 받게 되었다. 이 고수가 죽기 전에 주인공에게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비급(秘笈)을 전해주게 되고 주인공은 날마다 비급에 감추어진 무술을 연마하지만 웬일인지 비급을 완벽하게 체득하지 못한다. 어느 날 비급에 음식을 흘렸는데 비급에 묻은 음식을 지우다가 새로운 글자나 그림이 겹쳐져서 나타나게 되고 주인공은 그 숨겨진 부분을 익히게 되어 무림의 달인이 된다는 식의 줄거리다. 명확하진 않지만 음식이 묻은 경우가 아니라도 촛불에 비추어 본다던가 하는 식의 내용 전개가 있었던 듯 하다. 똑 같은 비급을 매일 수련하던 주인공에게 보이게 된 겹쳐진, 그러나 이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보게 되었을 때의 심경이랄까. 그 어떤 설렘과 신비감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던 지라 피아노 줄이 다 보이는 시시껄렁한 옛날 무협영화를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릴 때부터 꽤나 착실히 교회를 다녔다. 때로는 당시의 나로서도 ‘성경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일들이 교회 내에서 종종 있었으나 신앙은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나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을 뿐 별다른 고민을 해보지 못했다. 사실 학생시절에는 신앙 생활을 하는데 그러한 것들이 별로 중요할 성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고 난 때때로 내가 주변적이라고 느끼던 일들로 신앙적으로 자주 마음이 불편해지곤 했다. 무엇보다 내가 교회 안으로 데리고 온 비기독인들은 내가 주변적이라고 느끼던 바로 그러한 일들을 꽤나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곤 했다.

물론, 난 그들이 편파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편파적인 시각으로, 바꾸어 말하자면 내가 교회에서 주변적이라고 느끼는 그러한 관점으로 교회를 바라볼 때마다 자주 나는 철없던 시절에 보던 무협영화의 비급이 떠오른다. 세상이 바라보는-기독인의 시각에서는 비급에 흘린 음식물처럼 약간은 더럽혀진 관점으로-교회라는 조직을 바라보고 분석하고 이해하려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 말이다. 이후의 내용은 그러한 편파적인 교회보기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계급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 교회>

“하나님의 대리자인 목사님의 말씀에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성도는 기도생활을 제대로 못해서 마귀가 들어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세속화의 전형입니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신성한 곳이며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위와 같은 이야기는 아마 모르긴 해도, 매 주일마다 어느 교회에선가 예배시간에 선포될 말씀이다. 때로는 큰 교회일수록 이러한 말씀 선포에 “아멘!” 하며 화답할 성도들도 많으리라. 이러한 말씀선포가 유효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목사직에 대한 성직화가 가장 큰 원인일 것 같다. 카톨릭적 배경 아래에서 종교개혁을 단행한 이래로 개신교에서 수없이 반복하여 학습하는 루터의 가르침, 즉 ‘만인제사장주의’, ‘만인사제주의’는 한국 사회에서 유교와 만나 또다른 형태의 계급화를 부추긴다.

이러한 배경에는 또한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몇몇 교회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평신도의 신학 교육이 그리 활발하지 않다는 데에 그 첫째 이유가 있겠다. 아니 좀더 원색적으로 말하자면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라 하겠다. 예배에도 그 계급적, 그 상하 위계질서가 충실히 반영되어 있어서 ‘소’ 예배나 ‘중’ 예배는 없는데 항상 ‘대’ 예배는 존재하며 ‘대’ 예배에 참석하지 않은 성도들의 경우에는 아예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 않은 것으로 치부한다. 게다가 이 ‘대’ 예배는 기존의 교육 전도사나 부목사가 설교를 할 수 없고, 꼭 담임 목사가 설교를 해야만 유효하다. 담임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데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에 그런 듯 하다. 단, 예외가 가끔 존재하는데 그것은 담임 목사의 아들이 목사 안수를 받으면 그 ‘육신적’ 아들이 담임목사 다음으로 효과적이라고 판단하여 그에게 ‘대’ 예배의 설교를 위임하는 일이 그 예외에 해당한다. 이러한 교회들의 대부분은 교회 내의 구조를 이해하고 적용하고자 하는 부분에서는 구약을 주로 인용한다. 따라서, 왕과 제사장, 그리고 각 지파들의 장로들과 백성들로 구성되는 구약적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여 목사와 장로, 집사, 평신도를 구약적 모델에 일대일 대응하여 말씀을 적용한다.

왜곡된 신학뿐만 아니라 기존의 습속 때문에 교회 안에서의 위계질서가 유지된다. 유교적인 배경을 가진 한국 사회의 전통에 더하여 군부 독재정권의 오랜 압제 아래 있었던 국민의 대부분이 그렇겠으나, 교회 내의 성도들 간에도 자신들이 스스로 기도하고 말씀을 깊게 묵상하며 판단하여 교회의 일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나타나서 강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 오히려 편하고 만족스럽다고 여기는 부류가 많다. 이러한 대다수의 성도들은 자체로 어떤 참여적인 행동을 부담스러워하며 민주적인 절차로 어떤 일을 진행시켜 나가는 데에 익숙지가 않다.

따라서, 이러한 need와 seed가 일치하는 지점에 교회의 왜곡이 발생한다. 만인이 제사장이자 사제이기 때문에 기도를 통해 제사장이나 성직자의 중개 없이 누구나 하나님과 직접적인 교제할 수 있음에도 대다수의 성도들은 목회자의 안수기도가 자신의 믿음이 담긴 기도보다 효력이 크다고 생각하며, 중보기도를 부탁하는 경우에도 가까운 관계의 성도보다는 교회에서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판단되는 교역자의 기도를 높게 치부하곤 한다. 장로직 선거 시에도 목회자가 후보자에게 크게는 몇 천 만원의 기부를 강요하는 경우도 주변에서 적잖게 듣곤한다. 이런 연유로 선거에 후보자로 올라서 장로직분을 받게 되는 성도는 사회에서 인지도가 있고 부와 명예를 이미 누리고 있는 사람인 경우도 많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를 처음 등록한 상당수의 비기독인들은 한국의 중, 대형 교회의 구조는 세상의 조직 구조와 너무도 많이 닮았다고 느낀다.



<재벌 기업과 교회 조직체>

교회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칭한다. 사실 이때의 교회는 ‘성도’들 자체를 지칭하지만 흔히 교회에서 ‘우리 교회’라고 말할 때는 특정한 이름의 교회 공동체를 운영하는 조직을 지칭하는 일이 일반적이다. ‘성도’라는 의미의 교회와는 구별되는 이러한 ‘교회 조직체’는 다른 세상 기업들과는 달린 세금을 내지 않으며 조직원들의 급여를 지급하는 부분에서도 상당히 불합리한 부분이 많다. 담임 목사에 비해 부목사의 급여는 절반에 못 미치는 경우도 많으며 교육 전도사의 경우에는 최저 생활비에도 못미치는 급여를 받는 일도 허다하다.

대체로 대기업의 회장들이 부를 독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 조직체가 크면 클수록 이러한 대기업의 생리를 닮은 구석이 적잖이 보인다. 재벌 기업 사이에서 보이는 특수한 부의 세습은 국제 사회에서 한국 기업들의 위신을 깎아내리는 데에 크게 일조하고 있으나, 교회 조직체는 이러한 ‘재벌’의 습성을 책망하지는 못할 망정 그대로 흡수하는 ‘관대함’마저 가지고 있다. 또한, 담임 목사의 직분을 그간 최소 생계비로 헌신해온 주변 동역자에게 넘겨주기보다는 연륜과 경험이 부족한, 한 세대 아래의 아들에게 주려고 한다. 대개는 그 아들이 담임 목사의 성품에 합당한 교육을 통해 길러진 훌륭한 믿음의 자녀이자 검증된 리더임을 강조하지만 그러한 가정(假定)은 왕정시대, 혹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재벌 그룹에서도 동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게되는 원인을 사람의 문제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한 사람의 결단이 그 교회 조직체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교회 조직체에서 부의 세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먼저 짚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교회 조직체의 재정 운영 스타일이 재벌 기업의 그것과 비슷하며, 그런 연유로 재벌 기업가들이 하는 방식과 똑같은 스타일의 세습문제가 교회 조직체 안에서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교회 조직체는 교회의 건물이나 부지(敷地), 혹은 교회의 재산이 담임직을 맡고 목회자의 명의로 등록이 되어 있는 경우가 더러 존재하며 재정을 운용하는 그룹도 목회자의 뜻에 전적으로 순응하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담임직의 위임은 단순히 설교자로서의 위치를 위임한다기 보다는 자신의 재산을 넘기는 일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교회 조직체 내에서 그러한 부의 편중형태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단순히 한 사람이 결단을 한다고 해서 그 조직체의 견강성이 담보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조를 견고히 하는데에는 성도들의 그릇된 습속도 한 몫을 거드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목사님은 그 정도의 부는 누려야 한다”거나 “목사님의 위신과 체면을 고려하여 그 정도의 치장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성도들도 의외로 많다. 허나, 이는 그릇된 체면과 허례의식이 조장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성도는 ‘교회 조직체’를 위해 종노릇하라?>

교회 조직체에서 성도의 위치는 상당히 불안정하다. 설교를 통하여 새로운 삶에 대해 도전을 받으며 헌신에 대한 경각심은 높아지지만 실제로 어떠한 상황적인 문제에 대한 미시적인 행동 지침같은 것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성도들은 회심 이후에 무거운 마음으로 전도 이외의 일에 대해 시야를 넓히는 일이 쉽지 않다. 게다가 교회 조직체는 교회 내의 견고한 공동체 형성을 위해 끊임없이 여러 가지 형태의 봉사 프로그램을 만들며 그러한 행사의 대부분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야말로 ‘교회를 위한’ 행사인 경우가 많다.

결국 교회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자각하고 스스로의 죄성을 심각하게 뉘우친 대다수의 성도들은 빚진 마음으로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찾게 되는데 이 때 교회 조직체는 교회의 일에 성도들의 노동력을 대가없이 사용하는 일이 생긴다. 분명 말씀은 세상의 ‘빛과 소금’에 대해 선포하지만 교회 조직체는 그에 대한 선행 과제로 ‘교회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종용하며 이러한 소명은 직분을 얻은 성도들이 소진될 때까지 지속된다. 이들이 교회 조직체를 위해 사용하는 많은 금전적, 시간적, 물리적인 헌신은 그야말로 대가 없이 행해지는 것이며 그것이 충당되지 못하는 경우에는 신앙이 흔들린다거나 믿음이 후퇴했다고 치부하기도하고 심지어는 마귀가 들었다는 말도 서슴없이 일삼는다.

교회 조직체가 운영하는 사업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고용된 직원들은 교계의 연줄을 통해 서로가 아는 경우가 많으며 교회 조직체는 이들 대부분을, 정당한 댓가를 받는 정직원이라고 여기기 보다는 사회 봉사활동을 하는 자원봉사자 정도로 생각하는 듯 하다. 교회 조직체가 운영하는 사업체의 경우, 급여가 몇 달이고 밀리는 경우도 많고 그러한 경우에는 천국에 보화가 쌓이고 있다는 식의 논리를 펴기도 하며 금전적인 문제로 불만을 토로한다는 것 자체를 책망하기도 한다. 교회 내의 분위기에서 금전적인 문제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세속화된 증거라고 여기기 때문일까. 이러한 배경을 가진 교회 조직체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하나의 교회 조직체 안에서도 재정적으로 풍요함은 누리고 있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상’을 담보로 헌신을 강요당하며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하는 그야말로 ‘종노릇’하고 있는 계급이 교회 조직체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한 상상인가.



<교회가 무림의 고수로 거듭나기까지>

이렇게 생각해보자. 교회 내에 하나님에 관한 부분이 없다고. 교회는 단순한 또 하나의 조직이라고. 성령의 사역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도 없는 단순한 하나의 조직 사회라고. 대다수의 불신자들은 그런 시각으로 우리를 교회를 생각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과연 이러한 것들을 모두 제외한 후에도 교회 공동체는 이상적인 공동체인가. 정당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조직원들을 위하며, 재정사용에 있어서 전혀 거리낌 없이 어느 조직 사회보다 현명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운영되는가. 어느 특정 부류가 부를 선점하고 있거나 특정 부류의 희생을 담보로 유지되고 있지는 않은가. 무엇보다 교회가 만인이 제사장이며 만인이 사제라는 원리에 충실한, 그야말로 평등한 조직인가. 재정 사용이 투명하며 정당한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주고 있는 조직인가.

그러한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다면 우리는 비기독인들에게 거리낌없이 복음을 전하며 이 사회에서 ‘기독교 윤리’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교회는 이율배반적인 말씀의 선포보다는 침묵하는 편이 낫다. 혹은 어렴풋한 무협영화처럼 교회도 더러운 세상의 시야를 통해 새롭게 스스로를 연마하여 진정한 고수가 되거나. **

 
2004/02/01 08:09 2004/02/01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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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Sartre)로부터 시작된 나의 고민


내가 처음으로 교회가 혹은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보다 결코 낫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장 폴 사르트르(J. P. Sartre)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다. 물론 처음 사르트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도와준 책은 제임스 사이어(James Sire)의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이었다. 그 책에서는 사르트르를 실존주의자로 분류하여 그의 사상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을 서술해 놓았다. 이후에 나는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사르트르의 약력이라거나 두껍지 않은 그의 책들 몇 권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잠시 관련된 내용 중 사르트르에 대해 설명한 발라스 듀스의 글을 인용해보자.

사르트르는 인간이 누구보다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의해 조건 지워지고 구속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사르트르 이전의 앙가주망(engagement)에 대한 낡은 내용이다. 그러나 실존의 분석에서 명확하게 밝혀진 것처럼, 인간은 사전에 본질이 결정되지 않은 자유로운 존재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 처해서도 인간은 그 한계 내에서 자유롭게 행동을 선택할 수 있고, 숙고한 행동은 물론 상황을 무시한, 혹은 자유를 방기한 선택까지도 책임을 져야 한다. 또, 어떤 행동의 선택은 당연히 이후의 행동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에 자유 속에 던져진 인간은 항상 선택을 하고 자기를 새롭게 구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그런 책임에 부합하는 올바른 선택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이 사는 사계 전체의 움직임과 상황으로 인해 좁혀진 선택의 가능성을 확장해서 자기를 차츰차츰 해방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전의 전체주의 하에서 사람들의 선택의 폭은 몹시 좁아졌고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 그렇다면 새롭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냉전, 혹은 고도의 자본주의라는 상황 하에서 다시 선택의 가능성이 좁아져서는 안 된다. '상황을 변화시킴으로써 자기를 해방시켜라.' 바로 이것이 사회 참여라는 새로운 의미로서의 앙가주망이다.
(발리스 듀스, "현대사상-앙가주망" 중에서)

듀스의 표현대로 실존주의자들의 미덕은 ‘상황을 변화시킴으로써 자기를 해방’시키려는 책임과 참여(앙가주망, engagement)에 있다. 사르트르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그의 약력을 살펴본다면 그러한 삶의 자세가 그의 생애 전반에 잘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수복(사회운동연구소 소장)은 사르트르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요소들과 융합하며 자신의 사상을 지속적으로 수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그는 인간이 기독교적 교리와 사회적 제도의 구속을 넘어서,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만들어나갈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또한 사르트르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이후 고전적 좌파 지식인의 전형이었으며 무엇보다 그의 선택과 참여는 역사적 결정론을 거부하고 억압 받는 자의 편에 서서 행위자의 실존적 선택과 자유를 옹호하였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많은 지식인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그런 이유에서 마르쿠제는 사르트르를 가리켜 '세계의 양심'이라고 불렀다.

사르트르는 항상 기득권을 옹호하는 지식인이 되기 보다는 기존의 불합리한 체제를 변화시키려는 사회참여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는 역사적 결정론과 환원론을 거부하고 인간 스스로가 실존주의자로서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그의 사상의 근본에 충실한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1964년 10월 노벨 문학상이 주어졌지만 그는 이를 거부했고 생애 말년까지도 알제리 사태에 대한 계속적인 반대 운동, 1966년 베트남에서 자행된 전범을 재판하기 위해 구성된 '러셀 재판소'에서의 열렬한 활동, 쿠바 사태에 대한 항의, 1968년 5월의 프랑스의 학생운동에 대한 지지, 체코 사태에 관한 소련의 무력적인 개입 비난 등 행동하는 지성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독인들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한 채, 사르트르를 단순히 기독교 세계관에서 벗어난 실존주의자로만 평가한다. 이는 그가 어떤 일을 했건, 평생에 걸쳐 사회에 어떠한 이바지를 했건 간에 그가 명시했던 실존주의자로서의 명제, 이를테면 ‘인간이 자유롭게 태어났다”거나 “존재가 본질에 선행한다”와 같은 고백들을 대다수의 기독인들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이해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의 사상을 비난하거나 가볍게 대하는 많은 수의 기독인들의 삶에 비해,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역사와 사회에 끼친 비중 있는 책임과 참여의 폭은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또한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의 ‘양심’은 대다수의 기독인들이 한 구성원으로써 사회에 자리매김하고 있는 평균적인 도덕성보다 더 순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보다 좀더 나아가 그러한 질문도 던져보고 싶다. 그러면 과연 누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인가. 실존주의자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인가. 하나님은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누구를 사용하는가. 실존주의자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인가. 세상이 더럽다고 구별된 건물 안에서 세금조차 내지 않으며 고고한 성을 쌓던 교회는 또한 얼마나 세상과 닮았던가. 일말의 대화와 타협도 없이, 그대로 선포되어야 한다던 로고스(Logos)는 그 막힌 건물 안에서 얼마나 위조되고 또한 더럽혀졌던가.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실존주의자보다 못한 우리의 자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딴지일보>의 교훈
 
“우리는 편파적이다. 그러나, 편파성에 이르는 과정은 공정하다.”
(김어준, "딴지일보")

딴지일보가 처음 인터넷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일반인들은 차치하고서라도 많은 기독인들은 딴지일보의 스타일에 마음이 많이 불편했던 듯하다. 물론 이러한 ‘글쓰기 스타일’에 관한 문제는 강준만으로부터 비롯되어 진중권과 같은 류의 논객에 대해서도 여전히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초반에는 선정적인 표현이라거나 특정 인물에 직격탄을 날리는 듯한 비판조의 글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술수라는 말도 많았다.

물론 일정부분에서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가지가 넘쳐날 정도로 사회에 뿌려대는 극우 신문과 극우 잡지들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무엇이 있겠는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러한 스타일의 ‘오버’는 어떤 면에서 오히려 공정한 게임을 위한 좋은 시도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나는 딴지일보를 좋아한다. 그리고 딴지일보의 총수인 김어준의 생각을 존중한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호감을 갖는 부분은 딴지일보적이라 할 수 있는 그 ‘편파성’에 있다. 나는 딴지일보의 ‘편파성’이 좋다. 물론 많은 기독인들이 편파적인 글, 편파적인 행동, 편파적인 처우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강조의 의미로 초반에 김어준의 말을 넣었다.

나는 대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선교단체와 교회 안에서 ‘균형’에 대한 많은 조언들을 들어왔다. 아니, 균형을 말하는 정도의 교회라면 교회 전반적으로 볼 때 소수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거다. 최소한 ‘복음주의’ 내지는 ‘사회참여’라는 용어를 쓰는 그룹에서만 균형이라는 단어가 소위 ‘성경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복음전도와 사회참여 사이의 균형, 교회와 사회 사이의 균형, 신앙서적과 일반서적 사이의 균형, 개혁 세력과 보수 세력 사이의 균형 등.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균형 잡힌 신앙은 중요하다. 하지만 나의 경험을 비추어볼 때, 균형을 말하는 기독 공동체의 상당수는 기만적이었다. 내가 속했던 선교단체가 그러했고 내가 아는 복음주의 교회들이 그러했다. 항상 어떠한 실천적인 움직임을 동반한 행동을 하려고 할 때마다 이러한 공동체는 ‘그래, 그것은 우리 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야. 하지만 그것만이 신앙의 전부는 아니거든. 마치 그것을 신앙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너의 편파적인 사고는 자칫 복음의 핵심을 잃어버리게 되는 잘못을 범할 수도 있어. 그래서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야 하지. 그래서 말씀 묵상과 기도가 중요한 거야.’라며 문제를 회피했다. 결국 이러한 고백의 속내는 균형을 잡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세상에 대한 치밀한 이해와 그에 따른 변화 자체에 대한 무관심과 불편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기만적인 ‘그럴듯함’에 그 목적이 있는 듯 하다.

딴지일보는 편파적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 편파성에 이르는 과정은 공정하다. 스타일이 다소 껄끄럽게 느껴진다 해도 편파성에 이르게 된 과정을 누구나가 검색할 수 있고 필요하면 따질 수도 있다. (이것은 양방향 전송이 가능한 인터넷 매체의 유익이라 할 수 있다.) 과정 자체가 오픈 되어 있으며 내용을 담는 데에도 학구적인 냄새로 그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지 않은, 그야말로 누구나가 이해할 수 있는 네티즌의 말투 그대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딴지일보의 이러한 편파성이 복음주의 권의 균형성보다 낫다고 느낀다.
 


편파적인 세상보기를 시작하면서
 
솔직히 말하자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이 연재의 흐름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입가를 맴도는데 막상 풀어내려 하니 그 첫 단추가 잘 떠오르지 않는 기분이랄까.

흔히들 기독인의 눈으로 보기에 세상은 기독인과 비기독인, 이렇게 두 가지의 부류로 나누어져 있는 듯하게 보일 때가 많다. 문제는 현실 세계에서는 기독인 부류도 비기독인 못지않게 동일한 불합리성을 가지거나 혹은 그보다 더한 악행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럴 경우 기성 교회는 그에 대한 대답을 칼빈에게서 찾는다. 기독인 중에도 두 부류가 있으며 이 둘은 가시적인(명목상의) 기독인과 비가시적인(진정한) 기독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전통적 구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인 악행들과 집단적인 행동도 많이 있다. 그리고 실제 세상은 기독인의 생각처럼 사회가 기독인과 비기독인 두 부류로 정확하게 나누어져 정신적, 물리적 활동을 하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분은 어떤가. 세상의 잣대 하나로만 두 부류를 평가해 보는 건 어떤가. 교회를 세상의 구조에 맞게 해석하여 그 불합리성을 분석해보는 건 어떻겠는가. 혹은 기존의 세상을 권력을 가진 소수의 조작으로 해석하는 것을 그만두고, 공정한 과정을 통해 편파적으로 해석하는 건 어떤가. 이 모든 부분에 있어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기독교적인 표현들을 걷어내고 비기독인의 언어로 대화하였을 때 과연 우리가 행동하는 지성으로서, 혹은 윤리의 기준으로서 편파적인 우세를 얻어낼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런 것들이 내가 써 내려갈 연재의 시도들이 될 것 같다.**

2004/01/01 08:03 2004/01/0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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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 (8): 운동성을 가진 사회인이 되기까지 (2003. 12.)  

/김용주


도덕적 인간, 비도덕적 사회

세 번에 걸친 ‘직장 생활 보고서’에서 나는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여러 가지의 문제들에 얽혀있고 그러한 문제들로 인해 결국 자신의 삶 속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지만 정작 운동성을 가진 사회인으로서의 역량은 사라지고 있음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다시 부연하지 않더라도 짧게 말한다면 많은 기독인들이 라인홀트 니버의 책 제목처럼 ‘도덕적 인간’이 되고자 애쓰지만 ‘비도덕적 사회’에 대한 불편함, 부조리함에 대한 변화의 갈망과 같은 거시적 관점은 상대적으로 많이 잃어가고 있다.

많은 대중들이 흥미롭게 대하는 기사는 스포츠 신문에서나 접하게 되는 선정적이거나 충격적인 내용이며, 정치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와 비판들이 쏟아지지만 정작 관심사는 정치의 발전과 시민의 참여라기보다는 암실 정치의 ‘폭로’ 그 자체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직장에 묶여있는 시간과 노력이 늘어나면서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여가에 대해서 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점점 자신의 주변과 관계없는 일에는 귀와 입을 막고, 일하는 시간 외에는 되도록이면 머리가 복잡해지는 일을 하거나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는 일은 피하게 되는 것 같다. 주변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채로 출근길에 마주치는 이웃을 장애물 피해가듯 지나치게 되고, 주변에 어려운 환경에 있는 이들에 대한 관심도 줄어간다.

무엇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다양하게 이해하고 접근해야 하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더더욱 냉담해지기 마련이다. ‘넥타이 부대’ 운운했던 시기는 이제 과거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는 듯 하며, 과거 군사 독재시절과는 달리 권력관계와 구조적인 악의 문제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바라보아야 할 관점도 많고 운동성 있는 사회인으로 살아가기에는 그만큼 알아야 할 것도 많아졌다. 특히 교인의 경우, 대다수의 기독인들에게는 교회 개혁에 대한 문제도 매주마다 피부로 느낄 만큼 민감한 문제이지만 직장인의 입장에서는 주일을 빼먹지 않고 교회 가는 것만으로도 할 도리는 다한 것이라고 자위하는 모습도 흔히 보게 된다. 이러한 다수의 기독 직장인들을 이해하는 것과 그들을 운동성 있는 사회인으로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문제다.


무늬만 진보, ‘껍데기는 가라’

이렇듯 문제의식이 없는 이들이 대다수인 반면 또 다른 부류도 있다. 진보임을 자처하지만 실제로 아무런 행동도 희생도 없는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이상과 현실을 극단적으로 구분하여 스스로의 언행불일치에 대한 심적 자위책을 찾는다. 캠퍼스에 있을 때는 기독교 세계관 운운하던 학생들이 그러했다. 어떤 공동체이든지 구성원 중 다수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중 일부는 특정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또다시 그 중 다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비평하는 일에 멈춰서게 되며 그 중의 하나 내지는 둘 정도가 그 문제의식을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더 나은 방향을 향한 행동을 시작하게 된다.

기독교 세계관을 배우던 우리 세대를 예로 들어보자. 쉐퍼나 송인규로부터 시작하여 제임스 사이어나 브라이언 월쉬의 책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당시 우리는 기독교 세계관에 매료되었고 그 하부구조를 이루고 있는 리차드 니이버나 도예빌트와 같은 이들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어느덧 이제는 무언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시기에 다시 기독교 세계관이 모더니즘적인 토대 위에 서 있음을 조금씩 깨닫게 되면서 포스트 모더니즘 담론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하여 생각의 균형을 잡아갔다. 그 와중에 대다수의 학생들은 어떤 해결책을 모색하기 보다는 기존의 담론에 대한 비판에 많은 시간을 썼던 듯 하다. 물론, 여전히 내 또래의 기독인들 사이에는 기독교 세계관이 행동으로 드러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분분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실제 삶 속에서 아는 선 만큼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의 일부는, 자신의 신앙고백에 합당한 몸부림이 없었기 때문이며 이에 대한 정직한 자성이 필요하다. 나는 여전히 모든 문제에 있어 현실에 뿌리박은 해결책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특별히 세계관의 문제, 그리고 신앙과 결부된 문제들은 현실을 반추하는 것 이상의 어떠한 움직임을 동반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한 움직임이 결여되어 있을 때 그 상부구조는, 적어도 그것을 붙잡고 있는 개인에게는 허구일 따름이다. 그러한 안일함은 마치 자신이 살아본 적이 없는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만큼이나 기만적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기지촌 지식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무늬만 진보 흉내를 내면서 속으로는 보수적인 흐름에 편승하는 이들이 꽤나 많은 모양이다. 하긴, 사회주의 혁명가에 대한 이야기를 극우 신문에 개재하는 일이나 진보잡지를 표방하면서 극우 잡지에 홍보를 일삼는 일, 진보를 자처하는 교수가 극우적인 단체의 후원을 받으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도 이제까지 한국사회에서 일상적인 일로 받아들여져 왔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진보의 상품화’라고까지 이야기해왔다. 손가락질 할만한 일이란 생각이 들다가도 정작 그 손가락을 나 자신에게 가져다 놓아보면 사뭇 그 느낌은 달라질 것 같다. 그만큼 우리의 사고는 타자화 되어 있으며, 동일하게 행동의 결여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나 또한 그 손가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운동가의 편견-‘건곤일척’의 문제

여기에 반해 극소수의 운동가들이 있다. 이들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길로 들어섰다. 운동가들은 시작부터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고, 언제 어디서나 그렇듯이 운동 자체가 춥고 배고픈 일이다. 그리고 애써 노력한 데에 반해 변화의 폭도 그리 확연히 드러나지 않아서 그만큼 운동의 길은 길고 지루하다. 또한 항상 타협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어디까지가 타협의 올바른 한계선인지에 대한 구분이 불명확하며 그로 인해 생기는 유혹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깨끗함을 목숨처럼 여겨야 하는 운동가들의 입장에서는 한 번의 실수로 이제까지 지켜온 명예가 더럽혀지는 일도 있다.

무엇보다 운동가들의 목적은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현실 사회의 문제를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야 하는 과정이 선행되기 때문에 운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때로는 극단적인 행동을 일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은 이미 삶의 많은 부분에서 희생을 치루었고, 공의를 위해 사욕을 버렸기 때문에 스스로가 드러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도덕적 우월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나는 추호도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자존감은 세워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내가 가까이에서 접한 운동가들이 겪는 어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아는 이상, 그분들을 범접할 수 없는 나의 처지를 질책할 수는 있어도 그분들의 헌신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수 없으리라. 따라서 전에도 언급했듯이 내가 짚고 싶은 부분은 원론적인 부분에서의 운동가들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분들의 방법론적인 문제이다. 결국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대다수의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 현실의 모순들을 드러내주고 그들이 그러한 불합리한 상황을 인식하여 정작 운동성있는 개인으로 거듭나게 만들기 위함이라면, 현재 운동가들의 운동 스타일에는 어느 정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이른바 ‘건곤일척’의 정신에서 오는 문제다.

운동가들은, 흔히 하는 말로 99% 헌신된 일백 사람보다 100% 헌신된 한 사람을 원한다. 전적으로 어떤 일에 집요하고 끈기있게 매달릴 때에야 어떤 일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집요함이나 끈기가 운동가들에게는 권장되는 자질 중 하나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판단으로 볼 때, 매사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매달리는 운동가의 자질은, 운동을 이끄는 그룹 내부에서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자 권장되어야 하는 태도이겠지만 하루하루를 일에 찌들어 사는 대다수의 직장인들에게 그러한 자질의 ‘강요’가 적지않은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운동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무엇보다 그러한 접근방법은 대다수의 직장인들에게 처음부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해버리고 싶어지게 만드는 게 문제인 셈이다. ‘사회가 바뀌기 위해서는 당신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죽음까지 각오해야 한다’고 결연하게 말하는 운동가에게 대다수는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아마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발을 빼기에 급급한 겁쟁이가 되어 수면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나는 운동가들이 다수의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부분의 관심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실제적인 문제 – 돈, 연합, 그리고 헌신의 대가에 대한

사실 이러한 운동가들의 문제를 그분들이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설득을 효과적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돈 문제와 인맥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소리를 내려고 할 수록 때로는 그 수위가 날카로울 수밖에 없으며 쉽게 주변의 강요에 쉽게 타협하거나 무너져서는 안 되는 문제가 존재한다. 후원을 받을 때에도 특정한 단체에서 그 단체의 이익을 대변할 정도로 큰 금액을 받으면, 이후에 그 단체가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에도 바른 소리를 내야 할 비판의 ‘칼날’이 무뎌지는 문제가 생긴다. 하여간 ‘돈’이 문제다! 그 흔한 행사 한 번 할 때에도 사용되는 금전적인 지출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인건비는 어떠한가. 마음 같아서야 부서마다 사람들을 원하는 만큼 두고 싶고, 그러한 인력을 바탕으로 깔끔하고 풍성한 움직임으로 세련된 운동 스타일을 구사하고 싶은 욕심이 많은 것을 안다.

하 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는 곳에는 사람도 버텨낼 재간이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 특히 기독인들은 그것을 너무 쉽게 치부해버리는 듯 하다. 흔히 돈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기독인들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타부(taboo)시 한다. 은혜롭지 못하다고, 혹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들어온 이방인의 불필요한 걱정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일정부분은 공감한다. 하지만 금전적인 문제에 있어서 ‘규모없음’이 ‘신실함’의 표증이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오히려 금전적인 규모를 잘 관리하지 못함으로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동일하게 청지기적 사명이 강조되어야 마땅한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최소한 사회인으로서 그러한 운동단체에 지속적인 후원이 꼭 필요하며 다소 입장의 차이가 있더라도 그것이 치명적인 부분이 아닐 경우에는 일단 후원을 하면서 운동단체에 자신의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옳다.

두 번째는 연합에서 오는 불협화음의 문제이다. 내가 대학시절부터 줄곧 고민해 오던 두 가지의 키워드는 “운동성”과 “연합”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단어들은 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으며 지금도 아직 그 현현(顯現)을 접할 기회가 적은 편이다. 어떤 행사를 하게 될 경우 대중들은 깔끔한 구성과 잘 짜여진 프로그램의 행사들을 선호한다. 장소도 깔끔하고 자리도 편안하며 음향시설도 어느 정도 받쳐주는 그런 곳에서 정서를 자극하는 음악과 부드럽게 넘어가는 진행이 대중들에게 큰 호소력을 갖는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연합 행사는 위와 같은 대중의 기호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경우가 많다. 일단 금전적인 어려움 때문에도 그렇지만, 워낙 다양한 단체들이 함께 모이기 때문에 회합 회수부터 시작해서 준비과정, 그에 따른 의견 조율까지 하나같이 어려움을 겪는다.

끝내 단체들간의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중도에 참여를 그만두는 단체들이 생기는 경우에는 더더욱 분위기가 냉랭해지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진행된 연합 행사는 적은 자본과 미흡한 준비, 그리고 연륜의 부족으로 인해 다소 부자연스럽고 껄끄럽게 진행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연합행사의 진행은 한 단체에서 완전히 전담하여 진행하는 것보다도 더 질이 떨어지는 행사가 될 확률이 높으며 그런 연유로 많은 사람들은 연합 행사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이내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연합 ‘그 자체’의 가치에 대해 주의환기를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결 국 단체간의 연합은 불완전하며 과정도 험난하고 결과도 그다지 좋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연합은 그 자체로 완벽함을 얻는다. 이 말이 다소 모순되게 들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가족이 가족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 어떤 효율적인 성취에 있지 않는 이유에서 그렇다. 또한 모난 자식이 있어도 모두가 함께 모여 식사하는 자리가 잘난 자식 몇몇과 앉아 식사하는 자리보다 더 행복한 이유에서 그렇다. 특별히 기독인은 스스로를 몸된 교회의 한 지체라고 일컫지 않는가. 지체들이 다 같이 모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 우리가 기뻐해야 할 본질적인 이유이고 그렇기 때문에 연합은 우리의 ‘목적 자체’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되도록이면 격려하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연합운동에는 동참하는 것이 옳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잃을 것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흔히 기독인은 스스로를 헐리우드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생각한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으며, 약간의 고통을 겪고 나면 이내 행복한 결말이 보장되어 있는 그런 삶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리라. 하지만, 많은 신앙인들은 그 기한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실패하고 지속적으로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기독인들이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자에게 왜 고통을 허락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놓고 주기적으로 고민한다. 왕이 된 다윗이나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에 대해서는 ‘아멘’으로 ‘화답’하지만 많은 은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순교한 ‘스데반’은 왠지 들을 때마다 껄끄럽기만 하다. 이 세상에서의 지속적인 고난은 여전히 기독인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성경이 가감 없이 말하듯 현실 사회에서 실제로 운동을 하는 이들은 많은 위협을 받는다. 타협을 거절하였을 때 오는 인맥 상의 따돌림이라거나 신변의 위협을 당할 때도 있다. 게다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더 큰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집으로 걸려오는 협박전화를 운동가들의 가족이 받고 고통 받는 일도 다반사이다. 그런 극단적인 형태의 위협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비판하거나 문제를 지적하다가 쫓겨나는 일도 있으며, 그 이후에도 그 공동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인맥의 방해로 결국 그 바닥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는 일도 잦다. 결국 바른 소리를 내며 행동하는 사회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일정부분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는 자주 그러한 헌신의 대가를 뼈 속 깊숙이까지 새겨보아야만 한다.


연재를 마치면서

‘회색지대’라는 말은 그리 좋은 의미는 아니다. 어느 한 쪽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어느 쪽에서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특히 문제제기를 하는 입장이 그렇다. 게다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면서는 원고를 쓸 때마다 몇 번이고 망설이기도 했다. 이런 잡글이 복상의 소중한 지면을 차지해야 하는가 하는 그런 류의 고민 때문이다. 항상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그것은 나의 몫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시행착오를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족함들을 가감없이 써 내려가는 일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이전에 글을 쓰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내가 몸을 사리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글의 수위, 행동의 한계선. 이런 것들을 계산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불편하고 부끄러웠다. 연재의 시작은 캠퍼스 학생들을 위함이라 얘기했지만 정작 이 글들은 오히려 무뎌져 가는 나에 대한 질책이 되었던 것 같다. 늦은 원고에도 항상 느긋했던 서부장님과 재홍이 형에게 감사한다. **
2003/12/01 23:28 2003/12/0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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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 (7): 개인생활 보고서 (2003. 11.)

/김용주


하루

알 람을 3개나 맞추어도 요즘은 쉽사리 일어나 지질 않는다. 새벽에서야 잠이 드는 생활이 익숙한 지라 역시 아침은 그리 달갑지 않다. 얼마 전에는 시계를 snooze 기능이 있는 것으로 바꾸었다. 5분 간격으로 다시 벨이 울리기 때문에 최소한 이 친구가 있으면 늦게라도 일어나지는 장점이 있다! 대학교 때는 손수 아침식사를 만들어 먹고 나가는 일도 많았건만, 대학원 생활이 시작된 이후로는 직장인들의 아침 생활과 비슷해져 버렸다. 전에는 눈에도 띄지 않던 길거리 포장마차의 김밥과 토스트가 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침을 거르지 않아야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항시 하기 때문인 듯 하다.

학교 가는 길은 1시간 정도 걸리는데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서 30분 정도가 더 걸리는 편이다. 보통 전반 30분은 영어회화 테이프를 들으면서 가고, 후반 30분은 근처에서 산 <한겨레> 신문을 읽으면서 간다. 물론 전날 연구실 일이 늦어져서 막차를 타고 들어가서 새벽까지 잠을 못 잔 경우에는 음악을 들으며 버스를 타고 지하철에서는 앞사람에게 인사하듯 졸기도 한다.

도착해서는 200원이 채 되지 않는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자리에 앉아 간단하게 성경을 읽는다. 귀납적 성경공부에 한창 정신을 잃던 시절에는 아침 Q.T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우기면서 주변을 충동질하던 적도 있었고 Q.T 교제가 없으면 책 없이 등교한 학생처럼 어딘가 불안한 마음에 집중이 안되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냥 관주성경을 가지고 짧은 본문을 반복해서 읽는 것도 묘미가 있는 것 같다. 항상 많은 것들을 종합해서 어떤 결론을 내려야 직성이 풀리던 나에게 작다면 작은 변화인 셈이다. 연구실에서는 대체로 오전에는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수업과 연구실 일들을 하다 보면, 점심 식사와 저녁 식사를 하게 되고 저녁을 먹은 후에야 깊이 있는 주제의 연구가 가능하다. 물론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이르는 경우에는 그 조차도 쉽지 않다. 그런 연유로 식사 후의 시간에는 대다수의 동료들이 사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웹 사이트에서 스포츠 신문이나 물건을 구매하는 일이 많다. 나는 주로 그 시간에 <뉴스앤조이>나 <복음과상황>의 게시판, 혹은 다른 기독 매체의 토론방이나 진보 잡지의 게시판들을 둘러보고 관심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때로 글들을 남기는 일도 있다. 인터넷 상거래는 주로 책을 구입할 때 많이 쓰는데, 읽고 싶은 책들의 명단을 틈틈이 만들다가 마일리지가 쌓였거나 행사기간에 구매를 하는 편이다.

대체로 10시와 11시 사이에 연구실을 나오게 되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정기 구독하는 잡지나 읽고 싶던 책을 읽는다. 전에는 구독하는 잡지가 많았으나 지금은 금전적, 시간적 여력이 없어서 <복음과상황>, <인물과 사상>, <객석> 정도를 읽고 있다. 그나마 <객석>의 경우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만만찮은 가격 때문에 격월 간격으로 사서 본다고 하는 게 맞다.

예전엔 신앙서적을 많이 보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고종석, 진중권 같은 논객들의 글이나, 제레미 리프킨, 노암 촘스키 같은 운동가적 기질의 학자들이 쓴 책들, 그밖에는 사상서적, 심리학 책들에 더 관심이 가는 편이다.

집 에 오면 음악을 들으면서 방 정리를 한다. 밤 시간에는 과제나 프로젝트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주로 논문을 읽거나 노트 정리를 요하는 책들을 읽는다. 대충 하루가 끝나가는 시간에는 묵상집을 읽으면서 영육간의 쉼을 갖는다. 자기 전에는 하루를 정리하면서 기도 시간을 갖는데 기도 시간이 뜨겁거나 열정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하루를 돌아보며 내 생각으로 가득했던 머리를 비우는 작업들이 내가 계획하지 않은 좋은 것들로 채워질 수 있게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름대 로 충실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나의 하루에는 몇 가지의 좋은 기반이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미혼(?)이기 때문에 아직은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아직 완전하게 경제적으로 자립한 상태는 아니지만 공대 대학원생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서 일정한 수입이 있다는 점이다.


한 달

시간 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내게 처음 일깨워준 분은 고든 맥도날드 목사다. 스무 살의 나이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대학 초년생의 티를 벗지 못하고 여기저기 배회하던 내 손에 잡힌 첫 신앙서적은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었고, 그 책의 저자로부터 지금껏 큰 빚을 진 사람처럼 그 분에게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다. 나는 매달 하루 정도는 안식과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 집이 비는 날이면 집에서 쉬는 편이지만,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근교의 조용한 공간이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간다. 그런 날은 책을 주로 가지고 다녔었는데 요즘은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편이다. 어떤 일에 몰입하거나 시간에 쫓겨 바쁘게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무엇이 중요한 일이고 무엇이 주변적인 일인지, 내가 무엇을 하는지, 결국 그 목적과 가치가 어떠한지에 대한 생각을 잊게 되거나 혹은 그런 생각들이 희미해져 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나와 나의 주변을 관조적(觀照的)인 태도로 혹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둘러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특히 요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지내려고 해도 시시각각으로 시간 절약(time-saving)과 기술(technology)에 대한 무조건적인 가치부여에 휘둘리게 되는 게 사실이다. 직장에서도 특정한 기한 내에 일을 처리하는 것이 기업의 진정한 가치이자 목적이며, 연구실에서도 연구분야는 프로그램이나 알고리듬의 실행(run time) 시간이 절약되거나 여러 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시스템(multi-tasking system)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런 분위기에서 시간 죽이기를 시도하는 이들은 손가락질을 받게 되고 무능하다는 딱지를 달고 다니는 게 지배적인 분위기인지라 나도 모르게 그런 분위기 안에서는 호흡이 빨라지고 그런 가치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모습도 심심찮게 직면하게 된다.

그런 연유로 매 주기마다 한 번 정도, 일주일 중의 반나절, 한 달 중의 하루, 일년 중의 한 주간, 그런 식으로 잠깐씩 달리던 길에서 멈춰 서서 이제껏 걸어온 궤적을 돌아보고 그 흐름을 객관적으로 차근차근 짚어보면서 수정할 부분은 수정하고 바른 방향은 키워주는 일이 필요하다.

단순히 내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는 것과는 별개로 사회 봉사와 사회 참여라는 대목에서도 이 한 달의 주기는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 물론 일 주일의 주기가 더 적당하겠지만. 나는 "복음주의 바이러스"라는 작은 모임을 하고 있다. 귀납적 성경공부를 하기도 하고 스터디 모임도 갖지만 주로 우리가 하는 일은 수다를 떠는 거다! 내가 홍세화님의 책에서 접한 프랑스 문화 중 가장 부러워했던 대목은 식사 시간이 충분히 길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충분히'는, 대화가 어느 정도 깊어질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시간을 감안한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 식사 중에 "그 영화 어땠니?"라는 질문에 "난 별로였어."라거나 "정말 죽여주던걸?"이라는 대답 몇이 오고 가다가 자리에서 일어서야 하는 인스턴트 문화에 젖어있는 내 주변 분위기에서 "나는 그 영화가 좋았어. 왜냐하면, 그 감독이 찍은 이전의 작품을 보면.."이라며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충분히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시간이 우리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치, 신학, 문화, 영화, 심지어 연애에 대한 이야기까지 좀더 자세히 조목조목 이야기할 수 있는 모임이 기독 청년들에게는 절실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들이 정립되는 것이 그 사람의 행동의 일관성에도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연유로 바쁜 와중에도, 그리고 그리 많이 모이지 않는 독자 모임도 지속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 지적 유희 아니냐,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가끔씩 듣는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문제의식을 갖게 만드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행동 없는 믿음은 그 자체로 죽은 것이지만 믿음 또한 들음에서 난다고 하지 않던가. 결국 문제의식을 나누던 이들이 인적 인프라로 어떤 참여적인 형태의 일들을 해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개혁실천연대에서 하고 있는 많은 행보들에는 되도록이면 참여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대해서는 언젠가 더 깊게 이야기할 때가 오리라고 생각한다.)

사회 봉사의 문제는 최근 내게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학부 시절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도서 워드 입력이나, 음성 녹음과 같은 일들을 곧잘 했었다. 학교 주변에 그런 연결점들도 상당히 많이 있었고, 바쁘다는 핑계를 자주 대긴 했지만 실제로 대학 생활에서 시간을 내는 것이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는 게 훨씬 정직한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굳이 감추지 않는 것이다. 유일한 변명거리라고 한다면 그런 것이다. 곧 나의 대학원 생활이 마무리될 것이고 또 어딘가에 정착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봉사할 단체를 찾아서 주기적으로 찾아가겠다고. 하지만 지금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구두 속에 들어간 작은 돌맹이처럼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되고 있다. 사실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 불편함이 어느 정도 익숙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또한 느끼고 있다. 내 대학원 이후의 생활에서 아무런 봉사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내 주변에서 누군가는 나의 안일함을 질책해주기를 바란다. 이 글을 들이대면서 말이다(웃음).


일 년, 그리고..

일년을 주기로 고려해야 하는 일은 주로 경조사이다. 가족의 생일이나 결혼식, 스승의 날에 스승을 찾아 뵙는다거나 하는 일이 여기에 속한다. 특히 가까운 사람의 생일은 미리 메모를 해 두었다가 의미 있게 챙기는 것이 좋은 듯 하다. 나는 이런 일을 잘 못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결혼식에 잘 가지 못하는 일도 많고, 생일은 가벼운 선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 무의식 깊은 곳에는 인맥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는 이유도 큰 듯 하다. 자주 겪는 일이지만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인맥의 병폐들에 큰 환멸감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인맥의 관리 차원에서 일어나는 주변 분위기를 잘 참아내지 못하는 것이 내 성격의 모난 점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들 중에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공적인 일들에 그런 주변 사람들의 일들이 파묻히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진중권씨가 자기 동문 선배에게 표를 주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개새끼'라는 욕을 먹었다는 글을 읽고 한참을 웃은 적이 있었는데, 나도 그런 전철을 밟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요즘은 자주 든다.

다음 얘기를 하기 전에 잠깐 얼마 전에 들은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한국 학생들과 미국 학생들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개의 예문이 있다. 먼저 미국 학생들의 대화다.

A: 나 어제 시험을 망쳤어. 정말 기분 꽝이다.
B: 과목이 뭐니? 수학이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고 다른 과목은 잘하는 조교를 소개시켜줄 수도 있거든.


다음은 한국 학생들의 대화다.

A: 나 어제 시험을 망쳤어. 정말 기분 꽝이다.
B: 그럴 수도 있지 뭐. 인생이 다 새옹지마 아니겠어? 술이나 마시러 가자.

시험을 망친 후에 생각하는 학생들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다. 한쪽은 이미 지난 문제에 대해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다른 한쪽은 지난 문제를 잊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사 실 일년을 주기로 이야기하면 빠지지 않는 것이 망년회다. 앞에서 언급한 이야기의 연장선 상에서 나는 망년회라는 말 자체부터 싫어하는 사람이다. 이름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좋지는 않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한다면 그 내용을 충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망년회는 정말 짜증나는 이름이다.

나는 역사에 관한 책들을 재미있게 보는 편이다. 사상에 관한 책도 흐름과 시대상이 반영된 시각을 주는 저자의 책이 좋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때론 너무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항상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버팀목이나 발판이 된다는 점에서 좋은 행위임에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 해를 잊어버리겠다는 느낌이 강한 망년회라는 말보다는 한 해를 깊이있게 돌아보겠다는 회년(懷年)회가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한 해를 한 달 정도 남긴 시간에 한 해를 돌아보고 나머지 한 달 동안 새해에 대한 계획들을 세워보는 것이 일년의 마지막에서는 참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이 나올 때 즈음이면 어느 정도 시의 적절할 것 같다는 생각에 11월 말에 내가 속한 모임에서 만들었던 회년회 모임 자료의 토론 문항들을 소개해 본다.


<회년모임 나눔 자료> 2002. 11. 30.

1. 올 해의 가장 즐거웠던 일은?
2. 올 해의 가장 힘들었던 일은?
3. 올 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는 어디어디인가?
4. 공동체로부터 공급 받은 것들은 무엇이며, 공급한 것들은 무엇인가?
5. 올해 자신의 목표는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어떤 노력들과 어떤 어려움들이 있었나?
6. 올해 자신이 중점적으로 노력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예. 제자 양육, 학업, 직장 사역, 사회봉사, 안식 등)
7. 올해 자신이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부분, 혹은 균형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이었는가?
8. 내년의 계획을 간단하게 세워보자.
9. 내년의 계획들을 통해서 자신이 5년, 혹은 10년간 이루어갈 일들을 생각해보자.

개 인의 삶이 드러나는 일은 나에게도 참 불편한 무엇이다. 놓치는 일도 많고 연륜이 없어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 달려드는 일도 아직은 상당수임을 감안하면 이런 류의 글들이 과연 좋은 글인가 하는 자성도 해본다. 하지만, 간혹 만나는 선배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 끝에 다급한 마음으로 "형은 어떻게 살고 있어요? 직장인으로서 기독인으로서 사회를 살아가는 게 어떤 건지 궁금하거든요."라는 물음에 "뭐, 사는 게 다 그렇지."라거나 "내 삶을 나누면 은혜가 안 되서."라고 한 발 물러서는 이들도 많다. 혹은 괜히 튀려고 하지말고 큐티나 열심히 하라는 권면도 듣는다. 아직은 자신이 바르게 살고 있지 못하니 자신을 추스리고 신앙의 연륜이 좀 쌓이면 그 때 이야기를 하거나 글을 쓰겠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간단하게 대답하자면 그런 류의 반응은 몸부림치면서 하루하루를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고민하는 기독청년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과정 중에 일어나는 다이나믹한 고민들, 그 복잡다단한 선택과 일상의 문제들이 드러나지 않는 한, 청년들의 고민은 한 번 펼쳐지지도 못한 채로 머리 속에서만 꿈틀대다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으로 개인 생활 보고서를 써 내려가 보았다. 자신의 로맨스가 타인의 불륜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는 직장인의 농 섞인 얘기가 있다. 내 삶도 나의 연약함으로 인해 실제 삶보다는 조금 포장이 되었을 수 있다. 감안하고 읽으면서 자신의 생활 보고서도 한 번 스케치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003/11/01 23:27 2003/11/0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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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본 사랑의교회 '새벽기도' 열풍
"이제는 행동에 나설 때"…"교회 변화 기다려 달라"
/ 뉴스앤조이, 2003년 10월 16일 제 71호

 

젊은이들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사랑의교회 새벽기도 열풍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런 큰 물음을 가슴에 안고 두 청년을 만나러 강남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모두 서른 내외의 청년이라는 점, 올빼미 생활로 유명한 공대 대학원생이라는 점,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다는 점 등이 그렇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한 가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김용하 씨는 사랑의교회의 오래 된 성도. 중간에 잠시 다른 교회를 다녔던 기간을 합치면 20년 가까이 사랑의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김용주 씨는 이에 비해 대학교에서 IVF 활동을 했으며, 현재 예수가족교회에 출석하면서 월간 <복음과상황> 서울 독자 모임을 이끌고 있는 '외부인'이다.

사랑의교회 특별새벽기도회가 한창 막바지를 향해 가던 10월 10일, 교회 근처의 찻집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이들은 물을 만난 고기처럼 진지하고 뜨거운 대화를 두 시간 넘게 이어나갔다. 다음은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다.

 


먼저 자신의 기도 생활을 소개해 달라.

김용주 : 주로 저녁에 기도하고 아침에 말씀을 보는 스타일이다. 아침에 말씀을 보고 하루를 준비하고 저녁에는 회개하는 식인 셈이다(웃음). 개인적으로 소리를 내거나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같이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대화인데,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사적인 기도가 어렵다. 새벽기도는 고3 때 참여한 일이 있다. 요즘에는 생활 패턴과 맞지 않아 새벽기도는 피하고 저녁기도를 즐기는 편이다.

김용하 : 매일 묵상하고 기도하지는 못하지만 최근 들어 기도의 필요성을 많이 느낀다. 새벽기도는 가끔 나가는데, 사실 사랑의교회 새벽기도는 이번에 처음 왔다. 집에서 교회까지 버스로 다섯 정거장 거리인데 새벽에 오는 것이 쉽지 않아 집 앞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나도 아침잠이 많은 편이다. 새벽기도 시간까지 깨어 있는 것은 자신 있지만, 그 시간에 일어나는 것은 어려울 때가 많다. 주로 금요일에 있는 심야기도회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새벽기도는 일종의 결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적으로 흐트러져 있을 때 생활의 규모가 사라진다. 새벽기도의 부수적인 이익으로 생활을 다잡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늦게 자는 것이 몸에도 안 좋고 하나님의 창조질서와도 어긋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늦게 잠이 드는 편이다.

김용주 : 전병욱 목사님이 쓴 「새벽무릎」을 무협지 읽듯 앉은자리에서 아주 재미있게 읽은 경험이 있다. 전 목사님은 9시가 넘어서 거리에서 교인을 보면 새벽기도를 위해 일찍 귀가하라고 말한다고 한다. 새벽기도는 새벽기도에 나오는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과 분리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녁에 활동한다. 늦게 자면서 새벽기도에 꾸준히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새벽기도가 가능한 시간대에 활동하는 사람들만 모이게 되는 것이다. 이는 교회와 세상을 이원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일반 사람들과의 약속이나 만남을 제한하는 효과가 있다. 새벽기도에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소외시키는 경우도 있다.

김용하 : 그 부분을 비중 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하는 기도회니 격려를 하는 차원에서 강조하는 것이다. 새벽기도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특수성이 반영되는 현상이다. 새벽기도가 한국 기독교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지만, 그 자체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는 것은 옳지 않다. 새벽기도에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

우리 집 같은 경우 집이 작아서 마음 놓고 기도할 공간이 없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어렵던 시기에는 이런 현상이 더 심했을 것이다. 방해받지 않는 기도 시간과 장소 확보가 어려웠을 것이다. 왜 하필 새벽일까. 기도 끝나고 바로 일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김용주 : 과거 농경사회는 동트면 하루가 시작했다. 그래서 그 시간대에 새벽기도가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주부 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벽기도가 어렵다. 우리 교회의 경우 새벽기도가 끝나고 직장에 바로 갈 수 있도록 시간을 조절했다. 새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위해 예배를 만들어야 한다면 시간대를 현실적인 것으로 조절해야 한다.

김용하 : 사랑의교회 새벽기도의 경우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진행한 일이 없다. 지금의 새벽기도는 부흥회 성격이 강하다. 사랑의교회는 말씀에 비중을 둔 교회였다. 성도들 안에 기도의 필요성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고 머리만 큰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었다. 점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교회 내부적으로는 지도자가 바뀌는 상황이다. 지금의 새벽기도는 겨우 내 움튼 땅을 갈아엎듯이 성도들 마음 밭을 일구는 작업이다. 만일 지금과 같은 새벽기도가 40일이 아니고 계속 지속되면 문제가 있다. 생활이 안 되고 사회 생활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다른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도 자주 말한다. 사랑의교회 상황을 너무 절대화하지 말아달라고. 사랑의교회만의 특수성이 있다.

김용주 : 실제 새벽기도의 주된 기도 제목이 무엇인가. 사회에 대한 이슈도 들어 있고, 매우 다양하게 보인다. 인터넷에서 '부모의 새벽기도 자녀의 평생축복'이라는 문구를 보았다. 이 문구가 상당히 기복적으로 들린다.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면서 새벽기도를 통해 자녀의 축복을 빌라는 내용으로 들린다.

김용하 :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다 적다의 명확한 기준을 긋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랑의교회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와 인터넷을 보면 사회에 대한 관심과 기도 제목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물론 개인적인 아쉬움은 있다. 처음에는 나도 기도회가 끝나고 거리청소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색내기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어쨌건 작은 실천 중에 하나다.

김용주 : 사랑의교회 새벽기도를 보면서 열린음악회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이해만 되어진 신앙의 한계가 보인다. 뭔가 하고 싶어하는 데, 실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아무 것도 안 하는 한계를 보는 것 같다. 새벽기도회가 동기부여 효과는 있겠지만, 이제는 어떤 열매를 맺을지 고민할 시점이다.

 
 

 

특별새벽기도회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용하 : 교회 안에서도 이 부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수련회 후 생활이 금세 도루묵이 되는 경우 많은데, 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이를 위해 리더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에너지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옮겨져야 한다. 만일 여기서 잘못 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교회 사람들의 색깔이 너무 다양하다. 신앙의 깊이와 색이 다 다르다.

<뉴스앤조이>에 올라온 사랑의교회 새벽기도회 논쟁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25년 된 젖먹이'였다. 물론 그 말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특수한 상황이 있다. 교회가 25년이 되었다고 하지만 25년 동안 꾸준히 교회에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일까.

내가 소속된 청년부만 해도 사랑의교회에 다닌지 5년 이상 된 사람이 드물 정도다. 다양한 이유로 교회를 옮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왜 아직 젖먹이냐'고 다그치는 것은 조금 아쉽다.

김용주 : 사랑의교회는 '우선 내가 잘 되어서 나중에 남을 돕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회개에서 나오는 역동성이 없다. 교회가 세워지고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흘렀다면 이제 열매를 거두는 기도 제목이 나와야 오히려 교회가 하나 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인 결단과 열매보다는 감정적인 고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성도들의 다양한 은사를 묶는 행동이 나와야 할 시점이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평양의 부흥운동과 사랑의교회 새벽기도회를 연결하는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용하 : 이번 특별새벽기도회의 평가는 후세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양 사건이 모델이 될 수는 있지만 자화자찬이 되어서는 안 된다.

김용주 : 그렇게 연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사랑의교회 새벽기도가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와 각성이 일고 있다는 조짐은 잘 보이지 않는다. 더 지켜봐야 한다.

김용하 : 시간이 필요하다. 작년에 몇몇 교회 친구들에게 촛불집회 이야기를 꺼낸 일이 있다.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친구가 "갑자기 선동하는 것이 먹히겠냐. 평소에 이런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라"며 방법론상의 문제 제기를 했다. 그 이야기에 공감을 했다. 우리교회가 강남에 있고 교인 대부분이 중산층이다. 소득 수준이 일정 이상인 사람이 많다.

이 사람들의 평균적인 의식을 고려해야 한다. 오정현 목사가 부임하자마자 이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했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천천히 이야기하면서 접근해야 한다. 강남에서 투표하면 무조건 한나라당이 일등이다. 이런 점이 강남의 보수성을 반증한다. 이런 기회를 시작으로 변화의 첫발을 내딛어야 한다. 결국 속도의 문제다. 열매가 늦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굳어져 있다는 것이다.

성도들은 담임 목사님 이야기를 대부분 신뢰하는 편이다. 오 목사님이 부임 때 하신 말 "무너져 가는 한국 사회를 바로 세우는 영적 발원지가 되게 하소서"를 기억하고 있다. 이 말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내가 오 목사님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가 천명한 사실이 있으니 우선은 믿고 함께 가야할 목표라고 생각한다. 교역자와 성도의 역할이 각각 중요하다. <뉴스앤조이> 독자로 바란다면 많이 마음을 열고 이런 부분에 관심이 없는 성도들에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지 않지만 노력할 것이다.

나를 포함한 사랑의교회 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선 우리의 슬로건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이기적일 수 있는 부분이 가족이다. 가족을 하나님의 원리로 가르치는 것이 먼저다. 과연 축복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좋은 대학 가고, 승진하고, 많은 소득을 얻는 것은 수단이지 성공과 승리 자체가 아니다. 기독인이 자기 이익만 챙기는 집단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특정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인 모두가 고민할 문제라고 본다.

부시 같은 경우 신실한 기독인으로 소문이 났다. 나는 그 사람의 신앙은 평가하지 못하겠지만, 이라크전을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절대 아니라는 확신이 있다. 부시의 행동에 전략이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원리는 없다.

이는 부시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시어머니 중에 가장 피해야할 사람이 강남에 사는 권사라는 말이 있다(웃음). 신문에 나오는 다양한 사건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어떻게 기도할 것인지 교역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말해야 한다.

이라크 파병 문제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경제 효과를 말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하나님 원리로 볼 때, 하나님의 생명 사랑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주변의 사람들을 고민에 동참시킬 수 있을까.

김용주 : 사랑의교회의 강점은 모든 부분에 균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 경제 등등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면서도 기복적 성향이 있는 사람을 내치지 않는다. 그러나 균형을 중시하다보니 행동을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특정 사안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오 목사님이 파병 반대를 설교하지 못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문제를 일으켜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교인들에게 헌신이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교회가 명확한 입장을 나타내면 공동체에 분열이 생긴다는 생각이 있다.

김용주 : 목회자 말씀 선포에 너무 큰 무게가 실리는 것이 문제다. 그런 부분을 토론하고 포용하는 공동체가 건강하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교회가 이것을 두려워한다. 하나님의 방법을 말하지만 그 실체는 없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어떤 행동도 안 하게 된다. IVF도 사회 참여와 로잔 언약을 늘 말하지만 아무 행동도 안 한다. 추상성에 원인이 있다.

김용하 : 교회 안에 전도를 강조하는 사람이 있고, 구제를 중시하는 사람도 있다. 후배 양성에 힘쓰는 사람, 문화 사역을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 모두가 중요하다. 다양한 공동체를 아우르는 것은 영원한 숙제다. 어떤 사안에 대해 완전한 입장을 말하기보다는 이 사안을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를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역자들이 신문을 보며 그냥 지나치지 말고 어떻게 사회를 볼 것인지 고민하도록 만드는 메시지를 제시해 주었으면 한다. 이런 부분이 개발이 되어야 성도 스스로 자생할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파병은 그 자체가 정치 색깔이 드러나는 부분이니 교회가 조심하는 것이라고 본다.

정치 색깔은 없어도 사회적인 관심을 모을 수 있는 부분부터 시작하면 성도들도 충분히 바뀔 것이다. 사랑의교회는 내 고향이다. 나는 내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이 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주변에 이런 주제로 같이 이야기할 친구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교회의 무게 중심이 한 곳으로 쏠리지 않는 것이다.

 

 

바른 기도는 무엇일까. 어떻게 나와 가족, 공동체라는 울타리를 넘는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

김용주 : 혼자 드리는 기도는 친밀해야 한다. 다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친밀하게 하나님과 만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에 민감해야 한다. 자신의 공동체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설득하고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구성원을 쫓아내는 공동체는 문제가 있다.

그들에게 적절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의교회 새벽기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열매 맺길 바란다. 하나님을 만난 공동체는 어떤 특정한 행동을 할 것이다. 믿음에는 세부적인 행동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건강한 보수를 자처하는 사랑의교회가 균형에 너무 치중하다가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는 욕구에 매몰돼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모순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치열함이 균형보다 높게 평가되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 한국사회에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기 바란다.

김용하 : 자신의 위치에서 기독인으로서 하나님의 원리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시험의 연속이다.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내 부분을 내어 드리고 깨어 있는 것이 중요하다.

기독인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소극적 봉사관이다. 열매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 교회는 이런 일을 한다"는 논리 뒤에 숨어서 이것이 있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그 열매는 내가 맺은 것도 아니다. 봉사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

또한 회개의 문제를 다른 사람의 것으로 타자화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교회의 문제를 세습을 하는 목사들이나 김홍도 목사 같은 사람에게 넘기고 자신은 의롭다고 여긴다. 기독인이 조소를 당하는 것은 죄의 문제를 남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양정지건 nunmul25@newsnjoy.co.kr

2003/10/16 00:49 2003/10/16 0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