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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대한 소고(4): 변화와 반론(3)


이원론과 혼합주의(2)

지난 연재에서는 분량상 이원론과 혼합주의의 양립 가능성만을 언급하고 재세례파에 관한 소개로 인해 논의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이원론과 혼합주의의 양립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전에도 설명한 것처럼 개혁주의의 변혁모델과 제새례파의 대립모델이 각각 이원론과 혼합주의의 문제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이번 연재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논지를 전개함에 있어 에큐메니컬 진영에 속해있는 레슬리 뉴비긴을 주로 인용하려고 한다. 먼저 이원론의 극복이 여전이 중요함을 언급했던 나의 이전 글을 잠시 인용할까 한다.

하지만 내가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으나 김기현이 이성주의 시대로 대변되는모더니즘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듯이 근대주의는 이성의 절대성을 강조하여 경험적합리적과학적인 것들을 신격화했다. 근대 기독교인들은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가 무엇인지에 대한 수많은 탈기독교적인 답변들 속에서 혼란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모더니즘이 한 세대를 휩쓴 후, 기독교 신앙을 포함한 종교는 사유화, 내면화, 탈사회화 되었다. 종교는 이제 학문정치문화사회에 개입할 수 없으며 신 존재에 대한 문제는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그 무엇이 되었다.” (김용주, “’다시 쓰는 기독교세계관'에 대한 소견”)

 

이 글을 쓰고 난 후 나는 신광은 목사로부터 신앙의 사유화와 내면화가 모더니즘 때문이라는 진단이 너무 단순한 해석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내가 쓴모더니즘이라는 용어 자체가 학문적으로 다양한 의미로 쓰이므로 그 정의 자체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되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 표현상 문제가 있었다고 치고, 레슬리 뉴비긴의 표현을 빌어 내 생각을 전달하고자 한다. 뉴비긴은 자신의 책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에서 계몽주의가 끼친 신앙의 사유화와 이분법적 사고를 지적했다.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인간의 삶을 사실 중심의 공적 세계와 가치 중심의 사적 세계로 나누는 계몽주의 이후의 이분법과 맥을 같이 한다이 주장의 부정적 측면 즉 교회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긍정적 측면 곧 교회 본연의 과제는 개인 영혼의 영원한 구원과 관계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여기서 이제까지 인간의 종교 사상을 다분히 특징지어 온 이분법을 접하게 되는데 주목할 점은 성경에서는 그런 이분법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이런 식으로 이해하게 되면 내적이며 영적인 것과 외적, 가시적, 사회적인 것을 따로 분리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레슬리 뉴비긴,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뉴비긴은 자신의 짧은 이 책-부제는복음과 서구문화이다-에서 계몽주의의 업적에 대해서 일면 긍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계몽주의 이후 근대사회에서의 공적 세계(정치)와 사적 세계(종교)의 이분법, 이원론적 사고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다. (이러한 이분법에 대한 문제제기는 사실상 송인규의 진단과 유사하다.) 그는 세상과 기독교의 관계를 설정함에 있어 콘스탄티누스 이전 시대의 회복, 즉 혼합주의를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토대에서 긴장점을 유지하려면서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애쓴다.

또 하나의 분명한 사실은-그리스도인 사이에 일종의 무정부주의적 낭만주의가 유행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 점을 아주 강조할 필요가 있다-우리가 콘스탄티누스 이전의 순수성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초대교회의 본보기를 사용해서 마니교도가 했던 식으로 모든 권력을 악하게 여겨 정치 권력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손을 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사를 거꾸로 거슬러 갈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은 가능다. 어쩌면 콘스탄티누스 식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삶 전체-정치적 경제적 도덕을 포함한-에 걸친 그리스도의 왕권을 증언하는 것을 교회의 삶에 구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 세대에 주어진 그야말로 새롭고 유래 없는 굉장한 도전거리다. 이 도전을 단호하게 수용하는 것이 복음과 서구 문화의 선교적 대면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인 요건이다.” (레슬리 뉴비긴, 같은 책)

 

 

아우구스티누스, 교회와 정치 권력간의 관계에 대한...

결국 뉴비긴이 관심을 가지고 풀어가는 핵심 의제는복음과 서구 문화의 선교적 대면이다. 뉴비긴은 복음과 문화의 관계 설정에 있어 흥미롭게도 아우구스티누스에게로 돌아가고자 하는데 이는 당시 기독교와 국가 간의 구도가 이후 천년 간 서구 기독교의 사상과 관습을 좌우하게 되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 시기는...교회가 핍박을 받던 상황도 아니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에 도달한 시점도 아니었다. 하나는 지상의 국가로서 자신에 대한 사랑에 의해, 다른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따라서 지상의 도시에서 재류 외국인으로-동시에 하나님의 시민으로-사는 자들은 그 곳의 선한 질서를 위해 애써야 하고, 통치자로 부름을 받았을 때에는 공동선을 도모할 종의 심령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그래서 천상도시의 시민들이 지상도시의 평화와 선한 질서를 열심히 도모하되, 최후의 심판 곧 그 둘이 가시적으로 분리되고 천상의 도시가 그 아름다운 자태를 모두 드러낼 때를 앞서서 재촉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자세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뉴비긴 , 같은 책)

 

뉴비긴은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의 기독교가 현대의 상황과 흡사한 면이 있음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먼저사랑이 사회의 기초이며 그러한 사랑은 질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피지배자들을 섬기는 정부에 의해서 질서가 유지되어야 함을 전제한 후, 교회가 지상 도시의 정의 실현에 있어 평화와 선한 질서를 열심히 도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함을 입증한다. 그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교회와 정치 권력간의 관계에 있어 교회가 정치권력과 동일시되거나 반대로 사적 종교로 전락하지 않으면서 지상 세계에서의 책임을 다해야 함을 역설한다. 다소 긴 내용이지만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교회는 그 나라와 결코 동일시될 수 없고 다만 그 나라의 종이자 증인이요 표지의 역할을 하고자 애써야 마땅하지만 그런 역할을 사적인 부문에 한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내가 믿듯이, 교회와 정치 질서 사이에 전적인 동일화나 전적인 분리가 있을 수 없다면 양자간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많은 토론의 여지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선한 목적을 위해 제정하셨으나 악의 도구로 전락하기 쉬운 이런 권세들이 올바르게 작동하는 일에 무관심할 수 없다...오늘날에도 교회가 기독교 신앙에 비추어 국가의 공적 삶과 산업 및 상업 분야에서 세계적 질서를 세우는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도 그 책임을 저버린다면 결코 죄책을 모면할 수 없을 것이다...그들(정치 권력)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권세는 자기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에 달려있다. 그들은 자기에게 위탁된 권력을 오용할 수도 있는, 그리고 때로는 실제로 오용하는 죄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바른 일을 행하고 진리를 인정할 책임이 있으며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그들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킬, 즉 피해서는 안 될 책임을 언제나 지고 있다... 공적 이데올로기에 도전하지 않는 개인 구원의 사적 종교는 과거 로마의 법 아래서 완벽한 안전이 보장되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그런 식으로 오늘날 복음주의가 우리 사회의 보호 아래 아주 번창하게 되었는데 초대 교회도 이와 동일한 입장이었다면 처음 3세기에 거쳐 윤리우스의 통치하에 굉장히 부흥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복음은 이런 식의 전략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는 국가가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반영할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도록 요구한다.” (뉴비긴, 같은 책)

 

내가 판단하기에 뉴비긴의 이러한 주장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그가 계몽주의 이후의 이원론(이분법)적 사고와 혼합주의라는 현대 기독교 문제의 진단 모두를 긍정하면서도 기독교와 서구문화, 기독교와 정치 권력 간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훌륭한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그는 교회와 서구 문화와의 관계에 있어, 교 회가 그 어떤 정치 질서도 하나님의 통치와 동일시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혼합주의를 비판했고 공적 이데올로기에 도전하지 못한 채 개인구원의 사적 종교로 전락한 이원론적인 기독교 또한 책임을 방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음을 논증하였다.

 

 

교파 안의 기독교 세계관, 교파 밖의 기독교 세계관

지 난 연재에서 설명한 바 있듯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기독교 세계관은 개혁주의라는 교파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으로 그 외에도 다양한 기독교적 관점의 세계관들이 가능하다는 비판이 있었고 그러한 잣대로 지적되어온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의 비판적인 몇몇 이슈에 대해 살펴보았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기독교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신학적인 선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결국 그러한 선이해는 교파적인 배경을 넘어설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기독교 세계관의 주된 이슈는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과 기타의 기독교 세계관이 양립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이제까지 이원론과 혼합주의를 예로 들어 개혁파와 재침례파의 세계관이 양립 가능하다는 것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용어 자체를 개혁주의 밖에서는 명시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렇다고 타 교파들, 혹은 신학자들이 기독교 세계관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독교 세계관이 유일하다거나 자신들의 입장 자체가 정리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주 인용되는 리차드 니버의 책 <그리스도와 문화>는 결국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에 관한 4가지 유형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것은 동일하게 4개의 세계관으로 환원 가능하다. 지난 연재에서 자주 인용했던 하우어워스와 요더의 대안 모델, 혹은 고백 교회 모델은 재세례파의 신학에 기초를 둔 또 하나의 기독교 세계관이라 불릴만하다. 이러한 초교파적 관점에서 기독교와 세상, 기독교와 정치권력, 기독교와 문화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실로 다양하며, 갈수록 많은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이 그러한 이들의 관점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물론 교리와 명제를 중시하는 정통 개혁주의자들에게는 이들의 입장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기는 힘든 부분들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글을 마치면서는 기독교 세계관의 변화와 반론 가운데 연재 중에 자주 언급했던 개혁주의 외부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존 하워드 요더와, 스탠리 하우어와스, 그리고 N. T 라이트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고 개혁주의 입장에서 지적되는 비판적 요소가 무엇인지를 짚어보는 것으로 마무리 하려고 한다.

 

 

1.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

존 하워드 요더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 내 기억으로는 신원하 교수의 <전쟁과 정치, 대한기독교서회>를 통해서였는데 이 책에서 그는 존 요더의 평화주의와 정치윤리에 대해 개략적으로 설명하였다. 이후로 최근에야 비로소 요더의 대표작격인 <예수의 정치학>이 번역되어 그의 사상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김두식의 <평화의 얼굴>에서도 기독교 평화주의의 근간이 되는 재세례파의 역사와 그 중심에 서있는 신학자 존 요더를 다룬 바 있다. 이렇게 최근 복음주의권에서 회자되고 있는 요더는 20세기의 걸출한 신학자이자 기독교 평화주의자, 현대 메노나이트파의 가장 대표적인 신학자로 국내에서는 소수 교파인 재세례파의 신학과 윤리를 재탐구하고 보수하여 현대 신학계와 윤리학계에 그 입장을 재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원하 교수는 요더의 업적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그는 기독 교회의 문화와 사회에 대응하는 유형과 방식을 다섯 가지로 유형화한 리처드 니버의 고전적 유형론(typology)에 지배되어 온 신학계와 윤리학계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문화와 사회에 대한 역사적 교회들의 대응 방식에 대해 새로운 틀에 의한 이해를 촉구하였다. 그리고 철저한 평화주의(pacifism) 윤리사상을 주창하면서 기독 교회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의 지성인들에게도 평화주의를 알리는 전도자 역할을 하였다. 요더에게 기독교 윤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예수께서 직접 보여 주신 그 삶을 모범으로 하여 어떻게 그를 닮아가고 실천할 수 있는가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은 당시의 제자들과 교회들뿐만 아니라 오늘의 개인들과 교회 공동체의 사회 윤리에서도 실제적인 모델과 규범이 된다고 주장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행동과 가르침,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삶뿐만 아니라 사회적 행동을 위한 규범적인 유형도 제공한다는 것이다.” (신원하, ‘존 하워드 요더의 생애와 그의 윤리학의 중요성중에서)

 

물론, 요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신원하 교수는 <예수의 정치학> 후기에서 요더가 기존 사회의 질서와 정치가들의 정치와 그 산물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으로 이해한다고 전제한 후, 그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사회에 무관심하기를 권하지는 않지만 행동의 구체적인 제시가 없음을 지적했다. 또 한 그가 국가 또한 그 자체를 악한 것으로 보지는 않지만 국가가 국민들의 삶과 복지를 위해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거의 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타락한 창조 세계에서의 국가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신원하 교수는 요더가 국가의 역할에 있어서도 명확하게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2.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

2001년 타임지로부터미국 최고의 신학자로 호평을 받았으며, 미국 인문학 분야 최고의 영예로 여겨지는 기포드 강좌 강연자(2000-2001)로 선정되기도 한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존 요더의 기독교 평화주의를 널리 알린 장본인으로도 유명하다. <복있는사람>에서 그의 대표작인 <하나님 나그네 된 백성>을 비롯하여 <십계명>, <십자가 위의 예수> 등을 꾸준히 번역하여 하우어워스의 저서들을 널리 보급하고 있다. 문시영 교수는 하우어워스의 신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타임'지가 2001년 미국 최고의 신학자로 이름 붙인 스탠리 하우어와스는 독특한 제안을 한다. '예수 이야기'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덕성의 함양을 통해 평화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다르게' 사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의 윤리는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흠뻑 젖어 있다. 교회를 통해 예수 이야기대로 살아갈 모티브를 얻으며 교회 안에서 신앙인의 성품과 덕성이 훈련되고 성숙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굳이 '내러티브'라는 용어로 표현한 예수 이야기는 여기에 충실하게 살아가면 사회가 교회를 본받게 될 것이며, 윤리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스며 있다. 하우어와스는 교회가 사회 문제들에 어설프게 개입하기보다 예수 이야기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교회와 세상을 동일시하는 기독교 내부의 성향이 기독교를 세속적 권력과 결탁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우어와스가 평화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존 하워드 요더의 영향이 클 듯 싶다...요더가 예수 이야기대로 살아가려는 노력과 평화의 가치를 강조했다면 하우어와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 공동체의 가치와 신앙인의 성품에 초점을 맞춘다... 포스트모던 문화를 비판하고 덕의 윤리를 회복하자고 제안한 매킨타이어와의 교감은 하우어와스에게 큰 통찰을 주었다. 신앙인의 윤리는 자연법 윤리와 다르며 신앙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복음 속에서 정체성과 역할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는 평화를 위한 기독교적 덕성의 훈련장이요, 탁월한 성품의 공동체라 할 수 있다. 교회 공동체에 속한 자로서 세상과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문시영, 국민일보 “21세기 신학자들―⑭ 스탠리 하우어와스 듀크대교수중에서)

 

그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다. 문시영 교수는 같은 글에서 하우어워스가 소종파주의적이고 세상으로부터의 퇴거주의라는 비판을 받는다고 지적한다. 기독교의 독특한 '다름'에 대한 주장이 지나쳐 윤리적 게토에 갇힐 수 있다는 것이다. 실 제로 현대 기독교 윤리학의 흐름에서 공공신학과 라이벌이기도 한데 공공신학이 말하는 것처럼 신앙을 사적인 일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공공의 영역으로 나아가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변증하며 윤리적 통찰을 제시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그는 하우어워스의 신학적 과제로 제시했다.

 

3. N. T. 라이트 (Nicholas Thomas Wright)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N. T. 라이트는 청어람아카데미의 양희송 실장이 복음주의권에 처음 그의 저서들을 소개한 이후 지속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대표적인 신학자 중 하나이다. 톰 라이트는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교수하다가 지금은 영국 성공회 주교로 있으며 현재 영미 신학계에서 부활한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그는 성경의 역사비평을 받아들여 스스로 이름 붙인 ‘제3의 연구’를 통해 새롭게 부활된 역사적 예수의 연구에 집중해왔다. 과거의 역사비평적 방법이 예수 부활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회의주의에 빠지게 만들었다면 톰 라이트는 자신의 제3의 연구 방법을 통해 부활의 역사성을 강력하게 논증하고 있다. 그의 역사비평 방법에 대해서 와싱톤한인교회의 김영봉 목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는 보수주의와 복음주의 진영에서 아직도 불편해하고 있는 역사비평 방법을 철저히 연마하고 그 방법론으로 신약성서를 연구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역사비평 방법의 전제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그는 ‘비판적 실재론’이라는 철학적 입장에서 역사비평을 사용한다. 비판적 실재론은 연구를 통해 알려 하는 대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알기 원하는 사람이 알려는 대상과 지속적인 대화를 함으로써 점차 그 실재에 접근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과거 사건을 ‘있었던 그대로’ 말할 수 있다고 믿는 계몽주의적 실증주의와 차이가 있으며, 실재를 부정할 정도로 주관적 의미에 치중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도 큰 차이가 있다. 역사비평은 실증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은 이 방법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라이트는 비판적 실재론에 근거해 역사비평 방법을 창조적으로 사용해 왔다... ‘예수 세미나’로 유명한 존 도미닉 크로산 교수는 라이트의 이러한 태도를 가리켜 ‘고상한 근본주의’라고 비꼬았는데, 라이트는 오히려 “아무 입장도 없는 해석이란 불가능하다”고 반박해 왔다. 많은 역사가들이 철저히 중립적인 입장에 서 있음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그런 입장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까닭에 많은 사람이 그를 가리켜 ‘정통 기독교의 수호자’라고 평가한다.” (김영봉, 국민일보 톰 라이트 주교, 복음-자유주의 아우르는 사상가중에서)

 물론 이러한 라이트의 신학적 입장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역사 비평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으며, 최근에는 바울 연구와 관련하여 칭의론에 대한 존 파이퍼와의 논쟁이 이슈가 되고 있다. IVP 대표간사인 노종문은 톰 라이트를 소개하는 글의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이 논쟁을 소개하였다.

최근에 신약학자이며 설교자인 존 파이퍼는 The Future of Justification (Crossway, 2007)이라는 책을 통해 라이트의 칭의론이 루터의 성경 해석과 개신교 구원론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새로운’ 이론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라이트는 올해 2월에 나온 Justification: Gods Plan and Pauls Vision(SPCK)이라는 책으로 응답했다. 라이트는 파이퍼가 성경 자체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친숙하고 안전한 느낌을 주는 과거의 전통에 집착한다고 비판했다. 라이트가 볼 때, 루터와 그 이후의 개신교 이신칭의론의 전통은 지나치게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성경을 읽으며 복음이 원래 주후 1세기 유대인들과 그레코로만 사회에서 어떤 사회-정치적 의미로 전파되었는가 하는 질문은 회피하는 것이다.” (노종문, IVP 북뉴스, “톰 라이트는 누구인가중에서) ()



**이 글은 월간<복음과상황> 8월호 기고글입니다.

2009/08/01 23:45 2009/08/0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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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소고(3): 변화와 반론(2)


이원론 vs. 혼합주의
지난 글에서는 기독교 세계관의 모더니즘적인 요소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반론들을 살펴 보았다. 이번 연재에서는 기독교 세계관이 기독교적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유일한 세계관이 아니며, 그간에 통용되어온 기독교 세계관이 개혁주의적인 입장에서 쓰여진 하나의 견해에 불과하므로 구체적으로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이라 불러야 한다는 비판에 대해 다루려고 한다. 이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우선은 ‘이원론’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송인규는 자신의 책 <죄많은 이세상으로 충분한가>에서 ‘이원론적 행습의 탈피’를 세계관의 핵심 문제로 내세웠고 이후 <복음과상황>에 연재한 글들을 모은 저서 <평신도 신학>에서 보다 심도 있게 다루었다. 이원론 문제는 첫 연재에서 다룬 바 있으나 주의 환기를 위해 다시 조금만 인용한다. (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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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인규는 <평신도 신학>에서 ‘세상1’(구조)을 ‘세상2’(방향, 즉 세속화)처럼 여겨서 ‘세상1’과 접촉하며 살아가는 그 자체를 혼합주의로 치부하고 정죄하고 멀리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러한 잘못된 이원론적 구도는 영혼과 육체, 교회와 세상, 예배와 활동, 성경과 학문, 복음전도와 사회참여 등 세상 속의 많은 영역에서 본질적으로 동등한 층위의 개념들을 성속 개념으로 대체하게 만들었고 이른바 이런 ‘이원론적 행습’의 탈피는 80-90년대 로잔언약과 더불어 기독교 세계관의 지배적인 주제가 되어 왔다.” (김용주,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소고”)

이에 대해 김기현은 자신의 연재 글을 통해 이원론 자체를 현실과 동떨어진 개념으로 치부하여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송인규의 세상과 세속화 구분에 대해 “한국교회의 문제는 ‘세상1’과 ‘세상2’를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2’가 교회 안에 침투해서 사실상 장악 당한 것이 문제”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세상과 교회의 이원론적 구분보다는 교회의 세속화에 더 주목하기를 바라고 있다. 아니, 사실상 그는 교회와 세상 사이의 이원론 존재 자체를 부인한다.

“그는 <평신도 신학>에서 수미일관되게 성속 이원론이 세상과의 격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한다.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분리도 세상과의 관계 맺는 하나의 존립 양식이고, 초대교회가 보여주었듯이 분리도 변혁적 형식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세상과 절대 고립된 공동체는 추상으로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절연되는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기현, “다시 쓰는 기독교 세계관”)

따라서 그는 이원론이 아니라 실제 교회의 문제인 세속화 즉, ‘혼합주의’를 기독교 세계관의 전면에 세울 것을 제안한다. 나중에 살펴 보겠지만 이원론에서 혼합주의로의 전환은 결국 개혁 모델에서 대립 모델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최근에 있었던 <아볼로 포럼>에서 송인규의 발제에 대해 김기현은 아래와 같이 논평했다.

"저는 기독교 세계관의 패착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성서와 우리 현실은 이원론을 별반 문제로 여기지 않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란 것 자체가 허구입니다.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기는 것이 늘 문제였지요. 언제 한국교회와 신자들이 세상과 동떨어진 채 살았나요. 지나치게 세상적으로 살았지요. 예배와 생활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예배도 황금송아지를 숭배했지요. 성경적으로 예배했는데, 삶에서 그대로 못 살아낸 것이 아니라 예배 자체가, 신앙 자체가 세속적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점을 ‘혼합주의’라 명명했습니다. 교회사에서 ‘콘스탄틴주의’라는 말을, 현대신학에서 ‘세속주의’라는 말을 문화 인류학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바꾼 것이지요.” (김기현, “다시 써야 할 기독교, 세계, 관”)


하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송인규가 자신의 책 <평신도 신학>에서 이미 이원론과 세속화 문제를 통합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는 세상-세속-교회 모델(이렇게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을 아래와 같이 세분한 후에 각각의 경우를 아래와 같이 나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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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교회의 영역에 속한 사항이나 활동. 비세속적, 영적인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
② 교회의 영역에 속한 사항이나 활동. 세속적인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
③ 세상의 영역에 속한 사항이나 활동. 세속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
④ 세상의 영역에 속한 사항이나 활동. 비세속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그는 ②영역, ‘교회영역의 세속화’를 소주제로 다루면서 “특히 신앙에 열심 있는 이들과 지도자들 편에서 깊이 생각하고 또 일종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고 “보통 교회나 영적인 것에 연관된 활동이나 항목은 그 자체로서 바람직하다고 그릇되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우려했으며 나아가 “영적인 일도 얼마든지 정욕과 자랑 같은 세속적인 가치관에 찌들 수 있다는 경각심이 둔화”될 수 있음을 경계하였다. 결국 송인규의 세상-세속-교회 모델은 김기현의 비판에 대한 자체 방어가 가능한 셈이다. 실제로 그는 <아볼로 포럼>에서 김기현이 지적한 논평에 대해서 “한국 교회에 있어 이원론은 없고 혼합주의만 존재한다라는 식의 진단은 사실을 부인하는 일”이며 “이원론과 혼합주의의 문제는 양자택일이 아니고 양자병존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부연설명 한 바 있다.


개혁모델이냐 대립모델이냐
그렇다면 왜 김기현은 교회와 세상 사이의 이원론적 사고를 부정하는 것일까. 그는 이원론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판단하기에는 그 진단이 이원론이냐 혼합주의냐에 따라 세계관의 방향성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만일 교회의 주된 문제가 잘못된 이원론적 행습의 탈피라면 세상에 침투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이른바 개혁주의적인 ‘변혁 모델’이 그 대안이 될 것이지만, 혼합주의가 교회의 고질적이며 현실적인 문제라면 결국 그 해결책은 변혁 모델이 아니라 교회의 세속화에 강하게 저항하는 ‘대립 모델’(리차드 니버의 구분을 따른다면)이 그 대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니버가 비교적 우월하게 평가한 변혁(개혁) 모델에 대한 비판은 김기현의 지적대로 존 하워드 요더나 스탠리 하우어워스와 같은 신학자에 의해 제기되어 왔다. 하우어워스는 변혁 모델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요더의 유형론을 토대로 고백 교회의 우월성을 주장해왔다.

“니버가 특정 유형의 교회론을 선호하며 그것은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눈치채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 행위의 통일성을 내세워 그리스도인들에게 ‘문화’와 정치를 인정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콘스탄틴주의의 사회전략을 승인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니버가 제시한 유형론보다 더 도움이 되는 것이 존 하워드 요더의 유형론이다. 요더는 행동주의 교회, 회심주의 교회, 고백 교회로 구분한다. 고백교회는 위에서 언급한 두 견해를 종합한 것이 아니며 그 중간쯤에 있는 유용한 이론도 아니다. 차라리 별개의 급진적인 대안이다. 고백교회는 회심주의자들의 개인주의와 행동주의자들의 세속주의를 거부하며 또 양쪽이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동일시했던 태도도 거부한다. 고백교회는 자신의 주된 정치적 사명이 개인의 정신을 바꾸거나 사회를 변혁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회중으로 하여금 만물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예배하도록 결단케 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스탠리 하우어워스, <세상에 나그네 된 백성>)

니버의 대립 모델을 ‘고백 교회’라고 부르건 ‘대조 모델’이라고 부르건 간에 이러한 세계관 모델의 차이를 가져다 주는 근본 원인은, 내가 판단하기에는 무엇보다 신학적인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며 이러한 차이가 결국 김기현이 이원론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로도 환원되는 것 같다. <아볼로 포럼>을 다녀온 정정훈은 이와 관련하여 비교적 설득력 있는 글을 복음주의 싸이클럽에서 쓴 바 있다.

“기독교 세계관의 다양성은 결국 모든 기독교 세계관의 상대성(상대주의가 아니다)을 인지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다양성이 어떤 층위의 다양성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가설적이지만 나는 그 다양성의 층위는 결국은 신학적 층위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차이는 신학적 입장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들의 세계관을 규정하는 것은 사실상 신학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전이론적 차원이 절대 아니다. 신학이라는 이론적 층위가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전이론적' 차원을 오히려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관이 신학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이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으며, 결국 문제는 세계관이 아니라 신학이다. 이는 조금더 과감하게 말한다면, 사실상 세계관이란 신학의 외피에 불과한 것이며, 세계관을 배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신학을 배우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복음주의 싸이클럽 “아볼로 포럼을 다녀와서”, 정정훈)

과거 한국의 복음주의는 대체로 칼빈주의(개혁주의) 계열에 속해왔으나 최근에는 이러한 전통적 개혁주의자가 아닌 다른 교파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는데, 그 중 최근 복음주의권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존 하워드 요더는-변혁 모델에 비판적인 김기현과 하우어워스가 자주 인용하는- 메노나이트 계열(재세례파 중 최대 교파)의 대표적인 신학자이다. 따라서 존 요더가 가진 ‘고백 교회’라는 유형에 대해 이해하려면 메노나이트와 칼빈주의에 대한 약간의 추가적인 비교가 필요할 듯 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교파간의 차이를 비교적 간략하게 설명한 남병두의 저서 <기독교의 교파>를 주로 인용할까 한다. 먼저 칼빈주의에 대한 남병두의 설명을 인용해보자. 

 “칼빈은 제네바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면서 개혁 작업을 성공적으로 실현시켰으며 제네바는 개혁의 한 모델을 보여주었다. 제네바의 종교개혁은 신정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처음부터 교회와 시의회가 밀접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루어져갔다.
교 인의 삶에 정부의 적극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본 칼빈은… 정부가 교회의 외형적 치리에 있어서는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제네바 모델은 각 나라의 개혁자들에 의하여 모방되었고 곧 유럽의 곳곳에서 개혁교회들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 프랑스의 위그노파, 네덜란드의 개혁교회, 영국의 청교도, 그리고 이후 신대륙에 세워진 회중교회 등이다.” (남병두, <기독교의 교파>)

따라서 칼빈의 영향 아래에 있는 개혁주의는 처음부터 세상을 협력 내지는 적극적 참여와 개혁의 대상으로 여겨왔고 그에 대한 일련의 성과를 이루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권력과 조화 자체가 문제임을 인식했던 또 다른 종교개혁자들도 존재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남병두는 이러한 또 다른 종교개혁자들의 연장선 상에서 재침례파(재세례파, 아나뱁티스트)가 생겨났음을 설명한다.

“또 하나의 종교개혁은 주류 종교개혁자들의 교리적-신학적 문제제기에 동의하면서도 교회 타락의 근본적인 원인이 교회와 국가의 합일, 즉 교회와 사회의 구별이 없는 국가교회에 있다고 주장한 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들은 기존 교회는 기초부터 잘못 세워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각 개개인의 신앙고백을 근거로 교회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했으며 의도적 분리를 시도하였다. 복음적 재침례교가 여기에 속한다… 당시 기독교 유럽에서 세속 군주들과 함께 그들의 영역 안에서 정치적 진행상황과 직간접으로 연관을 가지며 진행되었던 종교개혁의 상황에서 세속군주들의 도움을 거부하고 제도 교회의 틀을 깨고 나온 '재침례운동'이 주류에 들어가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들은 당대에는 적들에 의하여 조롱의 의미로 '아나뱁티스트'라고 불리곤 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신자의 침례를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회가 신약성서에 나타난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개혁'이라는 말보다는 '회복' 혹은 '복귀'라는 말을 더 선호하였다… 그들은 교회 타락의 근본적인 원인을 윤리적 타락이나 신학적 타락에서 찾기보다는 교회의 정체성 상실에서 찾았다. 교회의 정체성 상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집권하였던 4세기 초부터 시작된 국가와 교회의 합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남병두, 같은 책)

따라서 평신도들의 입장에서는 재침례파와 개혁파의 역사적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로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논쟁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다. 변혁이냐 대립이냐를 두고 경쟁하는 기독교 세계관은 사실상 신학의 문제이자 종교개혁 이후 교회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큰 ‘습속’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변혁 모델을 부정하고 대립 모델을 내세우는 김기현이나 요더의 기독교 세계관은 재침례파의 전제 즉, 기독교의 문제가 교회와 국가의 ‘혼합주의’라고 여기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한 요더의 사상 근간에 흐르는 기독교 평화주의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재세례파의 신학적 입장이다.

“재침례교 운동의 신학적 특징은 무엇보다도 교회론에 있다. 국가교회를 배격하고 신자의 교회를 추구하면서 신약성서의 원시기독교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염원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그들은 정교분리와 완전한 종교자유를 주장하였다. 국가는 오직 시민들의 질서와 공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며 교회의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되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그들의 사상은 평화주의였다. 그들은 산상수훈에 근거하여 기독교인은 어떤 경우에도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재침례교의 평화주의 사상은 현재 정당전쟁 이론의 뚜렷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남병두, 같은 책)


아나뱁티스트(재세례파), 문제 있나?
리차드 니버는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분명 변혁 모델을 우위에 두었음이 분명하지만 그는 변혁 모델만을 지지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게 읽었다면 양희송의 지적대로 니버의 책을 오독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반대로 (김기현의 지적처럼) 마치 세계관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전제하고는 개혁 모델 자체를 현실성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도 나는 문제라고 본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으나 이 둘은 충분히 양립 가능한 모델들이다. (그러한 이유로 두 교파도 양립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개혁파 입장에서 보는 재세례파는 어떠한가. 대학 시절 나는 재세례파(아나뱁티스트)하면 왠지 모르게 이단 같은 느낌을 자주 받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알게 모르게 재세례파에 대한 개혁주의 내의 비판이 간간이 있었던 것 같다. 이후에는 이러한 편견이 많이 해소되었지만 몇 년 전 신국원의 책을 읽다가 비슷한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잘못된 천국관의 대표적인 예는 제세례파에게서 찾을 수 있다. 제세례파의 천국관은 처음에는 혁명적이었다. 이미 임한 나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매우 극단적인 사거은 1534년 독일 서북부에서 일어났다. 일단의 재세례파가 뮌스터를 함락한 후 그 곳을 새 예루살렘으로 명명하고 신정을 펼쳤다. 그러나 천국을 이루려는 과격한 개혁으로 도시는 곧 혼란에 빠져들었다. 예를 들면, 미혼여성을 모두 결혼시키다보니 남성이 모자라 일부다처제를 도입한 것이다. 이런 소식에 분노한 신구교 연합군의 공격에 1년여 만에 도시가 함락되고 지도자들은 생포되었다… 어쨌든 이런 사건 이후 제새례파는 급진주의를 버리고 정반대로 은둔과 내세적 신앙으로 돌아섰다… 어느 쪽이든 극단적인 것은 통하는 데가 있게 마련이다.” (신국원, <니고데모의 안경>)

물론 신국원은 세계관 논의를 하면서 그릇된 천국관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를 설명하려는 의도였겠지만 그는 은연 중에 재세례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져다 주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재세례파는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교파이며 특히 천국관에 있어서 문제를 일으키고 이제는 반대 극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복음과상황>에 아나뱁티스트 관련 글을 기고했던 김창규는 이러한 아나뱁티스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오해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재세례파에 대한 이런 평가는 몇 가지 이유에서 부당하다… 뮌스터사건이 재세례파를 대표하거나 정의하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뮌스터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단지 여러 분파의 재세례파들 중에 일부였고, 실제적으로 재세례파의 큰 줄기인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스위스 형제단(Swiss Brethren), 모라비아의 재산공동체인 후터파(Hutterite), 북부 독일과 화란의 메노나이트(Mennonite) 등의 그룹과는 극히 대조되는 신학과 삶을 보여준다. 뮌스터 사건을 재세례파의 전형적인 또는 대표적인 사례로 보게 되면 하나의 잘못된 부분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김창규, 복음과상황 170호<종교개혁의 잊혀진 전통, 아나뱁티스트>)

실천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마지막 연재를 통해 좀더 이야기할 생각이지만, 아나뱁티스트에 대해서는 한국 교회에서 있었던 굵직한 사건 하나를 다시 언급하고 싶다. 내 기억으로는 2003년 이라크 전쟁 중에 우리 나라에서도 ‘인간 방패’로 반전평화팀을 파송했을 때 복음주의권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아나뱁티스트’라는 이름이 거론되었다. 아나뱁티스트가 복음주의권에 회자된 이유는 복음주의권에서 파송하지 않은 반전평화팀을 아나뱁티스트는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상황을 주재일 기자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유은하 씨는 편지 한 장만 들고 알지도 못했던 아나뱁티스트 센터를 찾아갔다. 그리고 이라크로 보내달라고 애원했다. "여기 아니면 아무도 나를 이라크로 보내주지 않을 거예요. 나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없나요."... 이재영 간사는 아나뱁티스트 관계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평화운동가로서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 찾아왔다. 그러나 평화운동에 대한 신념은 분명하다. 우리가 파송하지 않아도 그는 이라크에 갈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모든 이들이 '파송하자'고 회신을 보냈다. 캐나다 아나뱁티스트 교회들도 유은하 씨를 위해 기도하며 모금활동을 펼쳤다. 유은하 씨는 든든한 기도의 동역자들을 만나 이라크로 향했다... 전쟁이 끝나 생사의 문제가 부담이 안 되는 지금에야 비로소 다들 유은하 씨와의 관계를 들춰내고 있다. 유은하 씨는 분명 몸은 '복음주의 진영'에 있었지만 파송은 평화주의 교회로부터 받았다.” (주재일, 뉴스앤조이 “유은하가 전쟁터로 떠난 이유는?”)

당시 나는 처음 이 기사를 접했을 때 마음이 착잡했었다. 사회 참여를 그렇게도 부르짖었던 친정과도 같은 복음주의 교회들에게 내쳐진 반전평화팀을, 아나뱁티스트는 흔쾌히 받아주고 그들을 파송하고 진심으로 기도해주었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나는 김두식 교수의 <평화의 얼굴>이나 존 요더의 책들을 읽으면서 양심적 병역 거부, 반전 평화운동과 같은 이들의 실천에 크게 감동했었다. 나는 신학이나 세계관에 있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은 못되지만 이원론이나 변혁 모델을 끌어안지 못하는 김기현보다는, 개혁주의적 복음주의자들이 자신들도 하지 못하는 일들을 몸소 실천한 아나뱁티스트를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교파 정도로 평가절하하고 고고하게 자신의 신학적 입장만을 고수하는 것이 더 큰 문제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단지 나만의 생각인가. (계속)


**이 글은 월간<복음과상황> 09년 7월호 기고글입니다.

2009/07/01 23:38 2009/07/0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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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소고②: 변화와 반론(1)

 

 

기독교 세계관‘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독교 세계관 논의에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기독교 세계관의 저자들과 담론 생산자들 중 다수가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수정·반성·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2003년에 있었던 ‘기독교 세계관 포럼’을 통해 교계에 퍼지기 시작했고 이후 복음주의권의 젊은 필진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기고 글과 논쟁 글들, 그리고 주요 기독교 세계관 저자들의 저서를 통해 더욱 일반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기독교 세계관의 비판적 논의에는 크게 두 가지 전제가 깔려 있는데 하나는 기독교 세계관이 모더니즘적인 토대에서 생성, 발전된 담론이기 때문에 포스트모던 시대로 접어든 현대에 와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요소를 고스란히 가진다는 점이며, 또 다른 전제는 그간 알려진 기독교 세계관이 기독교적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유일한 잣대가 아니라 여러 잣대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관점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그간에 통용되어온 기독교 세계관이 개혁주의적인 입장에서 쓰인 하나의 견해에 불과하므로 구체적으로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이라 불러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전자의 문제, 포스트모던적 상황화(context)를 중심으로 다루려고 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이성과 합리성의 한계

기독교 세계관은 모더니즘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 세계관이 모더니즘의 공격에 방어 내지는 대항하기 위한 신학적 결과물이라는 소극적인 면뿐 아니라 모더니즘적인 전제와 방법들을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는 비판적 시각도 포함된다. 이른바 포스트모던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 모더니즘적인 전제들은 허물어졌고 모더니즘적인 요소들은 모두가 수정 내지 극복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이후 논의를 위해 간략하게나마 언급이 필요할 듯하다. 모더니즘의 세 축은 과학과 경험, 그리고 합리성으로 대변되는데 이러한 계몽주의적인 전제들은 학문에 있어 객관적인 잣대, 절대 진리의 추구, 역사 진보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주었으며 이들의 근저에는 서구인들의 서구중심주의적인 자신감이 그 사상적 배경으로 깔려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양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진보, 계몽, 이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를 잃게 되었고, 학문적 영역에서 사이비(pseudo) 학문처럼 보이는 형이상학, 신학과 같은 것들을 학문의 구획(demarcation)에서 제거하려는 노력들이 오히려 수포로 돌아감에 따라 과학과 같이 객관적 진리 영역으로 치부되던 학문과 사상들도 더 이상 절대적 기준이 없다는 생각이 만연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진리는 상대적인 것으로 치부되었고 ‘주체’는 죽음을 맞이했으며 모든 것은 사실, 진리의 영역이 아닌 ‘해석’의 영역으로 변화했다. 또한 서구중심적이었던 서양인들은 자문화 우월주의적인 생각으로 제3세계에 제국주의적인 침략과 교화를 일삼았음을 반성하고 다원주의적인 관점에서 동양의 사상과 문화를 흡수하게 된다.

교계에서 때때로 사단의 사상으로 치부되기도 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은 사실상 이러한 모더니즘적 한계에 대한 비판과 성찰, 완성 혹은 극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반기독교적 요소는 기독교가 제국주의적인 ‘서구 종교’라는 관점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 또한 절대 진리를 부정하는 풍토 역시 단순히 초월적인 기독교의 신 존재를 반대한다는 관점을 넘어 그간에 이루어진 이성중심주의의 타파, 거대담론의 해체, 자율적이며 절대적 판단자로서의 이성의 한계 인식, '주체'의 죽음과 같은 모더니즘적 배경 속에서 접근해야 한다. 물론 기독교 자체에 대한 비판적 시각, 진리에 대한 극단적인 상대주의, 다원주의적 관점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요소임이 분명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모더니즘과 계몽주의의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타당한 면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섭렵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연유로 모더니즘적인-이성적, 합리적인 방식으로―변증을 시도하는 기독교 세계관이 지나치게 '모더니즘의 옷'을 걸치고 있다는 비판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도래와 함께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잣대로 바라보는 기독교 세계관은 어떨까. 간단히 말해, 포스트모던적 상황(context)은 비판적으로 수용할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므로 포스트모던적 전제로 기독교 세계관을 면밀히 따져보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러한 틀로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 자체를 폐기 처분하려는 시도에는 동의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기독교 세계관의 명제성과 메타내러티브, 구조-방향 모델에 대한 비판들이 있어왔으므로 세 가지 비판을 좀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명제 vs. 내러티브
첫째는, 명제적(propositional)으로 제시된 ‘창조―타락―구속’의 구도이다.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의 많은 내용을 창조―타락―구속이라는 명제를 통해 핵심 교리를 함축적으로 제시했다. (창조―타락―구속의 명제적 구도에 대해서는 지난 연재에서 소개한 바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설명은 생략한다.) 성경의 긴 흐름을 보편적이며 불변하는 명제들로 함축하여 제시하려는 노력은 모더니즘의 특징적 요소로, 그간 기독교 세계관을 비판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창조-타락-구속이 가지는 명제성이 성경의 내러티브(narrative, 즉 이야기)를 손상시킨다는 지적을 해왔다. 알버트 월터스도 <창조 타락 구속>의 개정판에서 이러한 비판을 수용하면서 “그것은 세계관을 명료하게 정립하기 위해 그 이야기에 깔린 기본 가정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일 뿐”임을 인정했다. 또한 세계관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그 효용성에 대해 선을 그었다.

 

“세계관은 복음이 아니다. 복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데 비해, 세계관은 교회가 선교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도우려고 복음의 구조적 특징을 설명하는 인간적 시도일 뿐이다. 이것은 인간의 손으로 하는 작업인 만큼 잘못될 수도 있고 역사적 제약성도 갖고 있다. 사실 복음을 명료하게 설명하려는 시도가 모두 그러하다.” (알버트 월터스, <창조 타락 구속>)

 

왈쉬와 미들톤도 자신들의 책에서 “내러티브는 세계관의 본질, 특별히 성서와 성서적 세계관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익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는 N. T. 라이트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라이트는 많은 기독인들이 성서를 데일리 라이트 신문(Daily Light edition)처럼 정돈해서 본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성서는 뒤죽박죽이다… 우리는 어떤 시간을 초월한 진리나 모델 또는 도전을 푹 삶아 우려내서 천상의 영역으로 옮기려고 한다. 시간을 초월한 이 진리들을 성서라는 그릇에서 우리 국그릇으로 옮겨 담고 현대적 정황의 구미에 맞게 그것들을 다시 용해시키기 위해서다.” (왈쉬, 미들톤,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

 

결국 기독교 세계관이 가진 명제성은 포스트모던적인 틀로 보면 시간과 공간 속에 갇힌 여러 가지 이야기들 속에서 어떤 초월적 진리와 개념의 명제를 추출해내려는 시도로 읽히며 그렇게 추출된 명제들은 성경 속 각각의 내러티브 즉, 아담과 아브라함, 야곱, 여호수아와 베드로 등의 개별 이야기를 배제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김기현에 대한 반론 글에서 개인적인 생각을 표명한 바 있다.

 

“내러티브는 성경이 어떤 지침이나 규율, 혹은 신조와 같은 명제로 추출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가진 긴 서사(敍事)라는 말이다. 야곱이 경험한 하나님과 요셉이 경험한 하나님으로부터 공통분모를 뽑아서 우리가 취해야 할 지침으로 삼는 것이 진정한 혹은 온전한 기독교인가? 거칠게 표현하자면 대충 이런 류의 고민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식이 신학과 세계관에 녹아나는 일은 고무적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제적 성격의 기세를 평가 절하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이는 마치 예수님의 행적이 중요한가, 그가 가르친 주기도문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와 같다. 물론, 둘 다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 둘은 상호 보완이 필요하다. 관계를 따지자면 주기도문은 명제적 성격이 강하고 예수의 가르침이 압축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서사적인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내러티브의 살이 붙어야 그 명제가 온전히 드러나고 또한 강화된다. 이러한 문제는 성경에 기록된 십계명이나 사도신경에서도 잘 드러난다. 반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세의 일관성과 명제성을 배제하고 내러티브를 살린다면 기독교를 효과적으로 관통할 수 있겠는가?” (<복음과상황> 200호 김용주, “‘다시 쓰는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소견”)

 

왈쉬와 미들톤은 이러한 내러티브의 긍정적 영향을 간파하여, 기존에 도예베르트가 제안한 창조―타락―구속의 구도는 유지하되 그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개별적 내러티브들을 살려내는 방식의 새로운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을 제안했다.

 

“그럼에도 이 모든 내용들은 세상과 인간을 위해 이스라엘, 예수,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의 서사적 드라마 안에 있다.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포괄적인 내러티브의 정황 안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성서는 그 안에서 해석된다.”(왈쉬, 같은 책)

 

물론, 신국원의 <니고데모의 안경>이나 송인규의 <새로 쓴 기독교, 세계, 관>에서는 기존에 제시된 명제적 성격을 유지하면서 그 원리들에 대한 성경적 근거와 예화들을 제시하는 데 그치기도 했다. (나는 신국원의 책이 세계관 입문서로 탁월하다고 생각하며, 최근 비판적인 논의에도 불구하고 송인규의 책 역시 의의가 크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는 단지 내러티브를 살렸냐 아니냐에 국한된 지적일 뿐이다.) 정리하자면, 창조-타락-구속의 명제성 자체에 대한 지나친 부정보다는, 왈쉬의 책에서와 같이 이후에도 명제와 내러티브가 조화를 이룬 상태에서 유효적절하게 기독교 세계관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내러티브 vs. 메타 내러티브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에 따르면 기독교 세계관의 주된 비판은 메타내러티브, 즉 ‘거대담론’의 문제로도 환원된다. 메타내러티브(meta-narrative)란 단순히 어떤 특정 종족의 이야기, 어떤 지역에서 있었던 한시적인 이야기가 아닌 태초에서 종말로 진행하는 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의미이다. 이는 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겠고 역사관 내지는 세계관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기독교 세계관도 메타내러티브다.) 어찌 됐건, 포스트모던 사회의 도래 이후에 우리가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은 바로 이 ‘거대담론의 죽음’이다. J. F.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한다면 메타내러티브에 대한 불신”이라고 말했다. 왈쉬는 메타내러티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자율적 진보에 대한 근대적 신화와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기독교 이야기가 무엇이든지 간에 근거와 정당성을 제공하는 이야기를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 이러한 메타내러티브는 보편성이라는 허황된 주장 아래 자신의 구성적 특성에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통일성, 동질성 등에 특권을 주면서 차이, 이질성, 타자성, 개방성 등을 은폐한다. … 메타내러티브는 지배 내러티브다. 도덕적 보편성에 대한 주장이 체계에 근거하든 메타내러티브에 근거하든 간에 결국 도덕적 보편성은 권력과 권위가 있는 기득권층의 이익을 정당화해준다. … 특권적인 이야기는 존재할 수 없다. 그 대신 지역적이고 다원적이며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고무되어야 한다.” (왈쉬, 같은 책)

 

포스트모던적 잣대에 따른다면 창조―타락―구속의 내러티브는 명제성을 넘어선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지배 내러티브이자 거대담론으로 현대에는 폐기되어야 마땅하며, 최소한 이스라엘 민족의 개별 내러티브로 축소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왈쉬는 포스트모던적 전제에도 비판의 여지가 있음을 논증했다.

 

“이러한 부족 전쟁은 최근에 자행된 르완다에서의 대학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PLO와 하마스로 알려진 팔레스타인 테러 기구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이러한 끔찍한 유혈사태는 모두 국지적 내러티브에 의해 촉발되었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에 보편성에 대한 명백한 주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역적 내러티브는 적으로 규정한 공동체나 집단에 대한 전면전을 정당화하고 있다. …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메타내러티브가 필요하지 않다는 논증을 하기 위해 메타내러티브에 은밀히 호소하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일관성 있는 메타내러티브가 없는 인간은 도덕적으로 표류할 수밖에 없다. 최근 30년 동안 북미, 유럽, 기타 제3세계 국가의 도시에서는 폭력범죄가 증가했다. 폭력범죄의 증가 추세는 그 동안 인간의 삶에 의미와 일관성을 부여해주었던 근대적 메타내러티브와 정체성을 제공하는 대안적 전통이 효력이 있었음을 반증한다.” (왈쉬, 같은 책)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와는 다르게 세상이 메타내러티브에 의해서만 폭력과 억압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국지적 내러티브에 의해서도 더 끔찍한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결국 폭력과 억압은 메타내러티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메타내러티브가 불필요함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또 다른 메타내러티브에 호소하게 되는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으며 메타내러티브가 사라지고 있는 현대에 오히려 혼란과 도덕적 표류가 발생하고 있음을 흥미롭게 지적하고 있다. 결국 왈쉬의 지적대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상정한, 문제의 근원이 메타내러티브이며 그 해결이 메타내러티브의 죽음이란 논지는 바로 그 자신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구조―방향 모델

포스트모던적 사고에 따르면 ‘구조―방향 모델’도 현실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명제일 따름이다. (물론 구조―방향 모델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잣대로만 비판 받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도 전반적인 비판을 언급하였다.) 구조―방향 모델은 첫 연재 글에 소개된 바 있으므로 지면상 여기에서는 생략하겠다. 이원석 편집위원은 본지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순수한 구조에 대한 개혁주의 세계관 진영의 믿음이 개혁주의 세계관의 현실 감각 부재를 보여주는 징후라고 생각한다. 개혁주의 세계관에서 해법은 간단하다. 구조가 선하므로(어떠한 악도 개입될 수 없으니까) 방향만 바꾸면 된다. 이 해법 속에는 구조와 방향이 현실 속에서 명확하게 구별될 수 있냐는 논의가 배제되어 있다. 어디까지가 구조이고, 어디부터 방향인지가 그렇게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간 개혁주의 세계관 논의가 현실과 분리된, 이론적 고성에서만 이루어졌다는 것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복음과상황> 204호 이원석, “‘순수한 구조’는 현실 속에 없다”)

 

또한 김기현은 구조―방향 모델이 불이나 성(性)처럼 유용과 오용을 동시에 설명해 주고 세상을 변혁하는 데에 유익한 방법론적 틀을 제공하는 긍정적 역할을 수행해왔음을 인정하면서도, 구조가 악하거나 이중적일 수 있음을 비판했다. 또한 그는 구조가 선하다고 못 박는 것은 결국 구조결정론에 다름 아니며, 따라서 ‘구조와 방향’보다는 오히려 ‘정사와 권세’ 모델(?)로 설명하는 것이 더 성경적이라고 말한다.

 

“성서에서 제도 혹은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용어는 ‘정사와 권세’이다. … 그러기에 톰 라이트는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라는 세계관적 질문에 대해 예수의 진정한 원수는 이스라엘 내부도, 이스라엘 밖의 로마도 아닌 사탄이라고 대답한다. … 라이트의 질문, “지금은 어느 때인가?”에 대한 대답을 정사와 권세와의 투쟁으로 규정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간다면, 구조와 방향의 구도보다는 ‘정사와 권세’가 훨씬 더 성경적이면서도 실제적인 틀이 된다.” (김기현, 같은 글)

 

재미있는 사실은 월터스도 <창조 타락 구속> 개정판 후기에 N.T. 라이트의 질문, ‘지금이 어느 때인가’에 대한 논의를 비교적 길게 기술하였다는 사실이다.

 

“라이트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지금이 어느 때인가’이다. … 지금이 어느 때인가? 바로 증언과 선교의 시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두 시대가 중첩된’ 시기, 곧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속한 시기의 의미는 그것이 사도적 교회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도록 주어진 기간이라는 데 있다. … 이 구속의 시대는 많은 사상자를 속출하는 치열한 전투의 시기다.” (월터스, 같은 책)

 

월터스는 이러한 질문에 답함에 있어 다른 모델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흥미롭게도 다시 구조―방향 모델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실한 교회라면 우리 문화와 적대적 관계밖에 유지할 수 없다는 말인가? 선교사들은 이 딜레마를 붙들고 오랫동안 씨름해왔다. 이런 감당할 수 없는 긴장감은 두 가지 요인에서 나온다. 첫째, 교회는 문화적 이야기를 구현하고 있는 사회의 일부다. 둘째, 기독교 공동체는 그와 다른 이야기에 정체성을 두고 있는데 이 이야기도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범위가 포괄적이고 사회적으로 구체화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 이 두 개의 공동체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그런 감당할 수 없는 긴장감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긴장을 해소하려면 우선 구조와 방향의 구별을 상기해야 한다. 하나님 백성의 사명은 선한 창조를 반영하는 통찰과 구조를 분별하여 포용하는 동시에, 우상 숭배로 인해 왜곡된 모습을 배격하고 뒤엎는 것이다.” (월터스, 같은 책)

 

같은 책에서 월터스는 구조 자체를 ‘선하다’라고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창조를 계승하는 요소’를 구조로 상정하고 있다. 또한 ‘타락의 영향 아래 있는 요소’를 방향으로 규정함으로써 모든 피조물에 대해 구조와 방향을 구별 짓고 나아가 악한 방향으로부터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 즉 세상의 변혁을 그리스도인의 소명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설명이 (김기현의 지적대로) 구조가 본질적으로 선하지 않을 수 있다는 비판과 (이원석의 지적대로) 현실적으로 구조―방향의 구별이 어려우며 상대적일 수 있다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가’라는 라이트의 핵심 질문에 대해서는 월터스의 주장대로 구조―방향 모델이 굳이 못 빠져나갈 이유도 없다. 또한, 월터스는 구조와 방향의 구분 자체가 어렵다는 문제 제기에 답변이라도 하듯, 지면의 상당 부분을 영적 은사, 성(性), 춤, 오이코스(oikos, 로마제국의 기초 사회단위)에 이르기까지 예로 설명하고 있다(같은 책 5장과 후기를 보라). 또한 김기현이 제시한 권세―정사 모델은 주로 국가나 정치 분야에는 적용하면서도 (기독교 세계관이 주로 적용하고 있는)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특유의 대립구조를 잘 적용시키지 않고 있다. 만일 문화와 예술 분야에 권세―정사 모델을 적용시킨다면 ‘사탄이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다’는 이른바 신상언 류의 극단과도 만나지 않겠는가. 전에도 밝혔듯 나는 구조―방향 모델의 효용성을 받아들이는 편이다. 물론 단순한 도식과 모호한 ‘구조’ 개념은 비판의 여지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모델이든 현실을 완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전제에서 본다면, 이것은 그 어떤 명제보다도 단순하게 표현되었지만 90년대를 기독대학생으로 보낸 내게 영혼구원에 국한된 ‘사영리 모델’―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을 넘어서 방향성, 즉 선악의 구분이 세상과 교회, 예배와 일상, 성경공부와 학문연구,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영역에서도 가능함을 일깨워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이 구조―방향 모델은 십여 년간 교계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계속)

2009/06/01 23:36 2009/06/01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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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대한 소고(1)
: 기독교 세계관 논의를 정리하며


들어가면서
작 년 말 즈음 아는 지인으로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웹진에 세계관 연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예전부터 웹진에 대한 생각을 자주 말했던 그는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고 싶다고 했고 본인 자신도 지금 공부 중이라고 했다. 알게 모르게 주변에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 관심 있어하는 기독인들이 더러 있다. 하긴 90년대에만 하더라도 진보적인 기독학생들에게 '기독교 세계관'과 기독교는 거의 동일한 단어처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그 때는 무슨 말만 하면 기독교 세계관 운운했고, 대화 중에도 프란시스 쉐퍼가 후렴구처럼 등장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기독교 세계관은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과 함께 80-90년대의 진보적인 한국 복음주의권 내에서 신앙의 지침역할을 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정치와 사회문제에 괴리된 성경공부와 개인영혼구원의 시급성을 앞세운 사영리류의 전도 및 대형집회 위주의 한국 기독교 분위기 속에서 청년들은 스위스 로잔에서 행해진 세계 복음화 국제 대회에서 천명한 로잔언약을 통해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동등성을 깨우쳤다면,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을 통해 교회 활동만이 영적이며 세상은 악하다는 이원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사회, 문화 변혁을 추구하는 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설령 그 열매가 미미할지언정 그러한 기독교 신앙의 사고 전환은 신앙과 학문의 조화를 통한 지성의 제자도 추구, CCM이나 기독영화제와 같은기독교 문화 사역의 질적 성장 및 낙천, 낙선 운동으로 대변되는 적극적인 사회 참여 운동의 흔적들을 남겼다. 90년대를 캠퍼스에서 보낸 나를 포함한 청년들에게 있어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기성 보수적인 교회에서 품고 있던 답답했던 마음을 해소시켜주었고 기독교적 지성의 추구를 통해 이후 포스트모던 사회로의 변화에 있어 교량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개혁주 의 기독교 세계관의 의의나 비판적 성찰은 추후에 더 언급하겠지만 내가 서론에서 장황하게 기독교 세계관의 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알게 모르게 그것이 한국 교회에 끼친 유익이 크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독교 세계관 논의가 이제는 점점 청년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데, 그 주요 원인 중의 하나로 나는 기독교 세계관 운동 혹은 담론 자체가 이제 갓 공부를 시작하려는 입문자가 접하기에는 힘들 정도로 내용이 복잡해졌고 다양화되었으며 어려워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쉐퍼나 아더 홈즈, 알버트 월터스 등으로 시작된 기독교 세계관은 그동안 많은 반론과 그에 대한 해답, 그리고 대안적인 세계관이 제시되어왔다. 이제는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쓰더라도 서로 떠올리는 '관'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이유로 지금 세계관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어렵고도 혼돈스러운 일이며 항상 논쟁의 여지가 존재함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연재글을 쓰려는 것은 세계관 입문자들에게 비교적 쉽게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의 중요한 이슈들을 소개하고 앞으로 기독교 세계관 담론에 대하여 더 고민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세계관에 관한 글을 쓰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다. 연초부터 쓰기로 한 글은 제대로 쓰지도 못한 채로 여전히 나는 독서 중이다. 기독교 세계관을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오죽할까. 초반부터 엄살이 심했다. 이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기독교 세계관의 문제들을 내가 아는 선에서 되도록 쉽게 써내려가볼까 한다.


세계관은 어렵다
사 실 내게 글을 청탁한 지인이 좀 특별한 경우이지 주변에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 묻거나 이야기하는 신앙인들이 거의 없다. 복클(복음주의 싸이클럽)이나 기학연, 복음주의연구소 등 몇몇 교계의 학구적인 그룹들을 제외하고는 내가 느끼기에 지역 교회 내에서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죽었다. 기독교 세계관이란 용어를 쓰는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신앙 지침'이나 '교리'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기독교 세계관 논의는 신앙에 대해 지성적 측면에서 깊이 알고자 하는 소수만이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그들이 결국 앞서 언급한 학구적인 그룹들의 논의들을 접할 기회를 갖게 된다. 최근에 ‘복음주의연구소’에서 아볼로 포럼을 통해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논의가 추가로 진행되었다. 송인규 목사의 <다시 쓰는 기독교, 세계, 관>이라는 책에 대한 김기현 목사와 양희송 실장의 논평,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이 있었는데 결국 이들은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어떤 일치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보수 교단에서 자란 많은 기독인들은 이러한 신앙적 불일치를 불편해 한다. 내 주변에는 진보적인 성향의 기독인들이 많이 줄어들어서 그런지, 이런 논쟁들에 무관심하거나 조금 발을 담그다가 내부적인 불일치로 인해 불편한 마음으로 관심을 접은 채 그저 열심히 말씀 보며 기도하는 신앙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많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적군과 아군이 분명한 것을 선호하는데 기독교 세계관 논쟁에 있어서는 누가 '우리편'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다. 나는 이런 지역 교회의 평범하고 보수적인 성도들이 잠시 발을 담갔다가 빼는 것이 기독교의 지성적 후퇴를 가져다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분명 문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독교 세계관 논의 자체가 이미 너무 복잡해졌고 입문하기에는 대단히 어려워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잠시 예전에 썼던 글을 인용해볼까 한다.

“ 알버트 월터스는 기독교 세계관을 철학, 신학과 구별 짓는 키워드로 ‘일상’과 ‘상식’을 든다. 세계관이 그만큼 일반적이고 비전문적인 문제라는 얘기다. 기독교 세계관은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지혜와 상식의 문제이며 일상적인 문제다. 하지만 개혁주의 기세 자체가 철학, 신학을 잘 알지 않으면 논의하기조차 어렵다는 점을 많은 청년들이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고 나 또한 그에 동의한다.(중략) 물론 세계관이 신학, 철학적 토대 없이 정립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세계관은 철학과 신학에 대해 메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철학적, 신학적 연구가 세계관의 형성에 영향을 준다는 말이 된다.”
(복음과상황, 다시 쓰는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소론)

원 컨대 기독교 세계관이 일상과 상식 선에서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신학과 철학, 나아가 서양 사상 전반에 걸쳐 메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 세계관은 어찌 보면 기독교 내의 지성 그룹 안에서 ‘뜨거운 감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흔히 말하는 기독교 세계관의 '창조-타락-구속'의 구도는 도예베르트가 정립한 것으로 주로 화란 개혁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개혁주의를 말할 때는 칼뱅이나 아브라함 카이퍼를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는 기독교 세계관 명제들이 모두 개혁주의적인 교단의 영향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혁주의란 무엇인가? 개혁주의 신학에 대해 정리를 하려고 쳐도 관련 논문과 책들이 엄청나다. 그뿐인가. 프란시스 쉐퍼의 삼부작 중 최초의 저작이자 가장 얇은 책인 <이성에서의 도피>에서는 헤겔, 키에르케고르, 슐라이엘 마허, 칼 바르트에 미미하나마 미쉘 푸코까지 다소 어려운 사상가들의 명제들을 비평한다. 관련된 사상가들의 원전은 고사하고 입문서들이라도 읽으려면 그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브라이언 월쉬와 리차드 미들톤의 유명한 <그리스도인의 비전>이란 책에서는 현대(근대) 세계관들을 넘나들다가 마지막에는 친절하게도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도서 목록>이라는 15페이지 분량의 책목록을 소개한다. 그것도 모자라서 95년에는 처음 저작이 현대성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새로운 모습의 세계관 저서를 추가로 선보였다. 이 책은 2007년에 김기현 목사와 신광은 목사를 통해 다소 늦게 번역되었는데 이 책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가들과 이전 저작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존 하워드 요더나 니콜라스 톰 라이트, 스탠리 하우어워스 같은 신학자들의 저작들도 언급하였다. 이런 주요 저작들 몇 권만 언급해도 우리가 알아야 할 분야는 개신교 역사와 신학, 그리고 철학, 사회학 등등 실로 그 영역이 방대하다. 그 뿐인가. 실천성을 담보한 기독교 세계관은 종종 북미의 정치적 상황과 우리 나라에서의 복음주의 역사들을 자주 언급한다.

일 이 이쯤 되고 보면 기독교 세계관 논의에 수많은 신학자들과 복음주의적 성향을 가진 학자들이 한 번쯤은 뛰어들려고 하는지 알 만 하다.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세상 학문과 기독교 사상을 연계해주고 있으며 그 안에서 알게 모르게 수많은 담론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또한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만 일방적으로 제시하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복음주의 안팎의 여러 신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기존의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을 비판하거나 나름의 대안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의 학문적 향연이 되고 있는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분야는 당사자들이 인식하고 있건 그렇지 않건 간에 지속적인 담론 생산이 가능한 화두이며 앞으로도 그러한 흐름은 지속될 것이다. 문제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러한 담론들이 점점 평신도들의 관심 내지는 일상 생활과는 괴리감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기독교 세계관 자체의 난해함과 그것이 학문활동에 기인한 결과라는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따라서 캠퍼스 학생들과 직장 신우회에서 시간을 쪼개서 성경 공부하듯이 기독교 세계관과 좀더 심도 있게 연구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고 그런 방향으로 권면을 할 수도 있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입문이 힘들기는 하겠지만 기독교 세계관 논의 자체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된다. 하지만 그러려면 어느 정도 소통의 통로를 열어야 할 것이다. 이미 10년 넘게 흘러온 기독교 세계관 논쟁은 이미 새로운 입문자들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논의가 넓어졌고 깊어졌다. 아는 사람만 찾을 수 있는 골목길 맛집 같다고나 할까. 그런 이유로 나는 비교적 거칠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없지 않겠지만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볼까 한다.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그 렇다면 세계관은 무엇인가. 알버트 월터스에 따르면 세계관은 ‘한 사람이 사물들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적 신념들의 포괄적인 틀’이다. 좀 어려운가. 브라이언 왈쉬의 좀더 평이한 정의를 따른다면 세계관은 ‘인식의 틀이자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다. 세계관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 중요한 이유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삶이 특정한 세계관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삶이 그 세계관에 부응하도록 방향 지워진다는 사실 때문이다.(브라이언 월쉬, 그리스도인의 비전)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삶이 특정 세계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수긍하더라도, 그 삶이 세계관에 의해 방향지워진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이들도 있다. 이러한 정의 자체가 자율적 인간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이 그 행동을 규제할 수 있다는 모더니즘적 낙관론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일관되게 행동하지도 않을뿐더러 합리적이지도 완전히 자율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자주 깨닫게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자.

제임스 사이어는 그의 책 <기독교세계관과 현대 사상>에서 세계관의 유형들을 '참된 최고의 실재', '세계의 본질', '인간', '죽음', '지식', '도덕의 기초', '역사의 의미'라는 7가지의 질문을 통해 몇 개의 범주로 나누었다. 브라이언 월쉬는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무엇이 잘못되었나',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좀더 간단한 4가지의 물음과 그에 대한 대답으로 세계관의 유형을 구분 짓는다. 이러한 구분작업의 유익은 첫째, 몇 가지의 본질적인 질문을 통해 회심을 한 이후에도 자신이 세상의 가치관에 얼마나 영향을 받고 살고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며 둘째로는 역사 속에서 변화되어온 현대 사상-제임스 사이어는 세계관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상은 허무주의,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 현대 사상으로 치부해도 무방한-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다른 세계관들과는 구별되는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짧은 지면에 기독교 세계관을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몇 가지의 특징만을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창조-타락-구속의 명제적 구조
첫 째,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의 이야기를 창조-타락-구속이라는 명제적 구조로 요약한다. 이는 헤르만 도예베르트에 의해 제안된 것으로 이후 기독교 세계관을 설명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틀이 되었다. 창조-타락-구속이라는 구도에서 중요한 것을 몇 가지 정리하자면 첫째로 '문화 명령'이라는 개념이다. 창1:28에서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흔히 청지기적 사명으로 표현한다. 월터스에 따르면 하나님은 창조 사역에서 물러나셨지만 자신의 형상(인간)을 땅 위에 세우고 그에게 그 일을 계속할 것을 명령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땅의 발전은 인간 종족의 방식에 의하며 본질상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것을 포함하게 되며 따라서 인간이 발전시키는 사회와 문화의 창작물 혹은 조직들도 모두 이 청지기적 사명에 포함된다. 거칠게 설명하긴 했지만, 이를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문화 명령'이라고 정의하는데 성경은 '문화 명령'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에게 그들의 문화를 발전시킬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개념은 '선한 창조'라는 개념이다. 창세기 1장에서 반복적으로 선포되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하나님의 선포는 창조의 완전성을 드러낸다. 따라서 이어 등장하는 타락 사건에서의 타락은 '전도된 악'이며 결코 존재 자체의 악한 면이 아니라고 한다. 부연하자면 기독교 세계관에서의 선악구도는 기타 종교의 신이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처럼 선과 악의 존재적인 대립이 아니라는 의미다. 악은 선의 타락이고 존재의 왜곡이며 결코 지속적이지 않다. 따라서 하나님은 선의 이런 일시적인 타락 구조를 회복시키기 위해 ‘구속’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셨고, 구속은 아브라함의 언약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실현된다.

마지막으로 강조되는 사실은 창조와 마찬가지로 ‘타락과 구속의 범위’ 혹은 영역이다. 악의 전도가 피조계의 전영역에 미쳤던 것처럼 구속 또한 인간의 영혼뿐만 아니라 피조계의 모든 영역, 이를테면 자연으로부터 문화와 사회제도와 예술까지도 포함한다. 이러한 피조계 전 영역에서의 구속은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자인 아브라함 카이퍼의 "만물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에게 속한 인간 존재의 전영역에서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주장하지 않은 땅은 한 치도 없다"는 이른바 영역주권론에 근거하고 있다. 리차드 니버는 자신의 고전적 저서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대립, 일치, 종합, 역설, 변혁의 5가지 모델 중에서 변혁 모델을 다른 모델보다 우월하게 제시했는데, 그는 이 변혁 모델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지 않는 인간의 문화 영역(사회적 관습, 정치 기구, 언어, 경제 조직 등)이란 있을 수 없으며 역사 속에서 부패한 인간의 사회 질서를 변혁시키는 하나님의 사역을 인정하고 ‘이미’ 도래한 하나님의 임재를 믿음으로써 종말론적 미래를 종말론적 현재로 수용한다고 주장한다.(김영한, 개혁신학이란 무엇인가) 따라서 이러한 개혁주의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피조계의 전 영역에 대해 세상 가운데에서 지속적으로 문화 명령을 수행할 책임을 가지며 사회와 문화를 포함한 전 영역에서의 변혁을 추구하도록 부름 받는다.


구조-방향 모델, 이원론 문제
두 번째로 중요한 개념은 ‘구조-방향 모델’이다. 이는 <창조, 타락, 구속>과 <그리스도인의 비전>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먼저 '구조(structure)'란 창조의 질서, 즉 어떤 사물의 불변적 창조 구조 자체나 그것으로 하여금 그 사물, 그 실체가 되게 하는 것을 지시하며 ‘본체’, ‘본성’, ‘본질’로도 표현할 수 있다. 이것도 말이 어렵고 모호하긴 하다. (실제로 월터스가 사용한 ‘구조’란 용어는 설명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쿤의 패러다임만큼 용어의 모호함으로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렇다면 ‘방향’은 무엇인가. '방향(direction)'은 ‘죄와 구속의 질서’이다. 여기서의 한쪽 방향은 타락으로 인한 창조의 왜곡과 변질이며 다른 방향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과 창조의 회복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타락을 설명할 때 구조-방향 모델은 처음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한 창조계가 원래의 일방성(순종)을 잃고 이방성(순종-불순종)의 존재로 변한 것으로 묘사하는 셈이다. 이 때 구조는 가치중립적이며 방향에 의해서만 선악이 규정된다. 이러한 구조-방향 모델은 기독교 세계관을 흡수한 많은 청년들에게 적용점을 시사했는데, 일례로 80-90년대에 교회 안에서 전자기타를 사용하는 문제로 논쟁이 일었을 때 가치중립적인 전자 기타(구조)는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사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방향)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은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당시 특정 교단에서 전자기타나 드럼의 사용, CCM의 수용 문제는 나름 진지하고 심각했다.) 진보-보수의 이데올로기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구조-방향 모델은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했는데, 이는 ‘구조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혁명에 동조할 수 없고, 방향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무사안일의 보수주의를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월터스, 창조-타락-구속)

셋째는 이원론 문제이다. 월터스에 따르면 이원론이 교회에 침투한 역사를 어거스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는 어거스틴이 인간을 통일된 존재로 보지 못하여 이성적인 영혼이 육체 속에 거하는 것으로 여기는 이른바 ‘구조’를 ‘방향’으로 환원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선과 악 자체가 창조 자체에 내재한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며, 이는 선한 창조 내에 어떤 것이 악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송인규는 <평신도 신학>에서 ‘세상1’(구조)을 ‘세상2’(방향, 즉 세속화)처럼 여겨서 ‘세상1’과 접촉하며 살아가는 그 자체를 혼합주의로 치부하고 정죄하고 멀리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러한 잘못된 이원론적 구도는 영혼과 육체, 교회와 세상, 예배와 활동, 성경과 학문, 복음전도와 사회참여 등 세상 속의 많은 영역에서 본질적으로 동등한 층위의 개념들을 성속 개념으로 대체하게 만들었고 이른바 이런 ‘이원론적 행습’의 탈피는 80-90년대 로잔언약과 더불어 기독교 세계관의 지배적인 주제가 되어 왔다.


지성의 강조: 신앙과 이성의 통합
마 지막 특징은 합리적, 논리적 지성의 강조이다. 이는 프란시스 쉐퍼의 3부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절망의 선(the line of despair)’과 ‘신앙의 비약(the leap of faith)’라는 개념에 잘 나타나 있다. 쉐퍼에 따르면, 고전적 철학과 사상은 헤겔에 이르러 상대주의를 받아들이게 된다. 헤겔은 진리의 문제를 정립-반정립의 과정을 거쳐 종합에 이르는 이른바 정반합의 변증법적 방법론을 사용하였는데, 쉐퍼는 헤겔이 변증법적 방법론을 통해 현대성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놓았으며 진리로서의 진리는 사라지고 상대주의적 사고와 종합(synthesis), 즉 양립가능한 다양한 ‘진리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쉐퍼는 실존주의 사상의 아버지라 일컫는 키에르케고르가 헤겔로부터 시작된 현대성을 본격적으로 이끌었다고 보았는데,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는 종합에 이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고 대신에 우리는 ‘신앙의 비약’을 통해서 참으로 중요한 모든 것을 성취한다고 주장했다. 쉐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키에르케고르)가 신앙의 비약이라는 개념을 선포했을 때,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세속적, 신학적 모두의 현대 실존주의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결과, 만일 합리주의적 인간이 삶에 관한 중요한 사실들(목적, 의미, 사랑의 정당성과 같은)을 다루기를 원한다면 그는 합리적인 사고를 물리치고 크고도 비합리적인 신앙의 비약을 이루어야 한다. 합리주의 구조는 이성의 기초 위에서 답변을 제공하지 못했고 그럼으로써 통일된 지식에 대한 모든 소망을 포기해야 했다. (프란시스 세퍼, 거기 계시는 하나님)

쉐 퍼는 키에르케고르 이후의 종교적 실존주의는 기독교를 합리적으로는 논증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밀어냈으며 신앙은 결국 비약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비이성적인 영역으로 전락했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쉐퍼가 자신의 저작들 속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문제는 바로 이 ‘절망의 선’의 와해, 즉 신앙과 이성, 신앙과 합리성의 통합을 추구하는 것이었고 상대주의적 진리들의 양립불가능성을 회복하는 것, 다시 말해 진리는 하나이며 그것은 성경적 진리임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물론 지성의 강조, 신앙에 있어서 이성의 사용에 대한 강조는 비단 기독교 세계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1898년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행한 <칼빈주의 강의>에서 그는 칼빈주의의 5대 교리를 설명하는 대신에 칼빈주의와 정치, 과학, 예술, 미래의 주제를 다룬 바 있다. 카이퍼는 이 강연에서 종교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해당하는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했으며 이러한 신앙과 이성의 통합, 신앙과 학문의 통합을 추구하는 일은 개혁주의 신학과 그 수혜를 입은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의 주요 특징이자 우선적인 과제임에 분명하다. (계속)

*이 글은 웹진<크리스찬 프레스>와 월간<복음과상황> 5월호 기고 글입니다.

2009/05/01 23:35 2009/05/01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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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8)
- 신앙과 삶, 그 갈증에 대하여

 

 

신앙과 삶
내게 기독교는 말과 글의 종교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닌 나는 목사님의 설교와 주기적으로 읽는 성경에 매우 익숙하다. 내가 회심을 하게 된 계기 중 하나도 로이드존스의 로마서 강해를 읽으면서였다. 나는 그가 말하는 하나님에 압도되어 무릎을 꿇고 남은 부분들을 읽기도 했었다. 사실 교회를 나가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목사님의 좋은 설교를 듣기 위해서임을 부인할 수 없다. 목사님의 설교가 좋으면 주일 하루가 뿌듯하고 가슴이 뭉클하지만, 설교가 성경을 벗어나거나 빈틈이 보인다 싶으면 마음이 무겁고 하루가 심란하다. 내가 생각해도 나의 기독교는 내 머리 속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영적인 종교다. 물론 이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하지만 내가 껄끄럽게 느끼는 나의 종교성은 한국 기독교의 그것과 흡사하다.

한동안 나는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일까 고민했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신앙대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일까를 고민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었고 설교도 많이 들었다. 사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는데 지식, 지각의 영역이 신앙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반드시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신앙과 삶, 즉 신앙대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에게 대충 설명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갈증이 난다. 왜일까.


논쟁 속 사람들, 공동체 속 사람들
글을 쓰다 보면, 특히 반론이나 논쟁 글을 쓰다 보면 반대 의견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지나치게 흥분하여 망발을 하거나,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자신의 말을 반복하곤 한다. 난 그런 사람들의 글을 읽을 때면 비판의 대상이 그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잘못된 논리임을 각인시키려고 노력했다. 때로는 그런 노력들이 받아들여지기도 했지만 때론 평행선을 달리기도 했다. 몇몇의 심한 경우에는 권위를 내세워 협박을 하기도 했고, 때론 비열한 방법으로 대응을 해대기도 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교양이 없는 건지, 사람들이 보수적이라서 그런 건지. 어쨌거나 나는 감정이 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글쓰기에 충실 하려고 노력했고 그 이상은 내 영역이 아니겠거니 했다.

글뿐이겠는가. 여러 종류의 공동체에 속해있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교회에서는 어떤가. 처음에는 상냥하게 웃음으로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르면서 왕래를 하며 친절을 베풀다가도 진보, 보수와 같은 신앙의 색깔이나 성격, 정서적인 이유로 패가 갈리기도 한다. 한 번 벌어진 서먹함은 이내 깊게 골을 만들고 어느덧 ‘우리들’에서 ‘그들과 우리’로 지칭하는 단어들이 바뀐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주중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야 하는 직장인들 입장에서 그들의 ‘인간 관계’는 회사의 입사, 퇴사의 주된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학생 때는 몰랐는데 회사에 들어오니 별별 정말 희한한 사람들이 많다는 말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흔히 하는 말이다. 회의를 하면 엄한 말을 내뱉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을 참아내지 못해 비위를 건드리는 사람들도 있다. 아랫사람을 교묘한 방식으로 괴롭히는 상사도 있고 윗사람에게 잔머리를 굴려가며 뒤통수를 치는 조수들도 있다. 가족은 또 어떤가. 가장 소중하게 다뤄져야 할 구성원들 서로가 진저리를 치며 속속들이 알고 있는 서로의 약한 부분을 비난하거나 원망하기가 더 쉽다. 그래서 가족은 ‘웬수’라고 했던가.


스탠다드, 예절, 에티켓
나는 사람들의 행동에 어떤 표준(Standard) 같은 것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자주 했다. 예절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에티켓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흔히들 말하듯 전화 예절, 화장실 예절, 지하철 예절처럼 인간 예절 혹은 대인관계의 예절 같은 것이 표준처럼 작동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겐 너무 명확해 보이는 선악의 문제가 세세한 일상과 인간 관계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았고, 그런 사람들에게 어떤 표준을 제시하고 숙지시킬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다소 오만한 생각 말이다.

한때 과학철학을 공부하다가 흥미롭게 읽은 글 중에 빈학파(Vienna Circle)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그들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라는 책을 읽고 학문의 영역에서 형이상학적 요소들을 제거하려는 원대한 포부를 세운다. 그래서 학문의 구획을 정함에 있어서 논리적, 과학적이지 않은 명제들을 제외시키고 검증된 진리들로만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우리가 주지하듯이 결국 그들은 이러한 구획의 문제(Demarcation Problem)을 명쾌히 해결하지 못했다. 또한 비트겐슈타인도 자신의 가설을 수정하였는데, 그는 말년에 언어도 구체적인 맥락에서 쓰여질 때 의미가 있고, 마치 게임처럼 상황과 규칙에 지배를 받는다는 이른바 ‘언어게임 이론’을 전개하였다. 나는 비트겐슈타인을 통해 인간 행동에 대한 어떤 표준이 있다는, 혹은 있어야 한다는 나의 이상적인 생각-사람들의 행동에서 바른 것과 그른 것을 쉽게 골라내려 했던 생각-을 버렸다.


기독교의 본질은…
서두에도 언급했듯이 내게 있어서 기독교는 말과 글의 종교다. 나는 말과 글에 의해 종교성을 학습했고 그러한 말과 글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재단하곤 했다. 때때로 나는 주변 사람들의 과한 말과 행동을 불쾌하게 여겼고 그들을 성경의 틀, 혹은 내가 가진 가치관의 틀에 맞춰서 변화시키고 싶어했다. 그렇다고 내가 나의 소신과 종교적 잣대에 걸맞게 산 것도 아니었다. 난 몸을 사리고 조심스럽게 사람들을 대하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나의 기준대로 잘 살아온 것 같진 않다. 그런데도 나는 이러한 이상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나는 ‘사람’ 자체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사람은 모두 죄를 짓고 살아가고 화를 잘 내고, 상처를 받으면 왜곡된다. 부모와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기 또한 쉽지 않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특수성을 외면하고 어떤 잣대에 의해 사람들을 규정하려 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조금씩 발견해간다. 그렇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약한 부분이 있고 회복하기 힘든 상처들이 있다. 내가 쉽게 재단하고 싶은 타인의 모습 속엔 그런 나약함과 상처, 그리고 왜곡되었지만 자신에겐 익숙한 습관들이 숨겨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의 기대에 합당한 모범적 인간들을 양성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모나고 부족한 사람들이 타인의 죄를 용서하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일이 매일 일어나는 천국의 현현(顯現)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러한 고백이 토론과 논쟁 등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려 진리로 다가가려는 열망의 의미 없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진리와 지성의 추구는 합당하지만 기독교는 그것만을 말하고 있지 않음을 특별히 나는 나이가 들면서 깨닫고 있음을 고백하고 싶은 것이다.

살다 보면, 마음 속으로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생긴다. 또한 반대로 절대 용서받을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되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다. 이것은 머리 속에서만 굴러다니는 망상이 아니라 살면서 겪게 되는 관계의 발자취이자 쓰디쓴 결과들이다. 내게 있어 기독교의 본질은 사람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고 그들의 상처와 한계, 그리고 환경들을 깊이 공감하며 그들과 동행하는 일이리란 생각이 든다. 또한 나와 다른 부분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나에게 행한 악행들을 용서하며 나또한 나의 부족한 행동들을 매순간 고백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리라. (끝)


**월간 복음과상황 12월호 기고글.

2008/12/01 00:09 2008/12/0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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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7)
- 언행 일치와 언행 해체 사이에서

/김용주


두 사람에 관한 기억
시간이 지나 교제는 끊어졌지만 가끔씩 기억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한 분은 <복음과상황>에서 일하시다가 지금은 청년목회자연합(Young2080)의 문서출판본부의 이은섭 팀장이다. 한창 복상 독자모임이 활발하던 시절, 그 분 집에서 모임을 했던 적이 있었다. 잡지와 교계에 대해 한참을 열심히 토론을 하다가 밤이 늦었다. 간단한 다과를 한 후라 정리를 급하게 하고 가려고 주섬주섬 음식을 정리하고 있었다. 비닐에 쓰레기를 버리고 있는데, 그는 내 비닐을 낚아채서는 다시 일일이 분리 수거에 들어갔다. 나는 시간이 너무 늦어 마음이 바쁘기도 했고, 사실 분리수거를 그렇게 철저하게 하며 살 지도 않았던 터라 그의 행동이 조금 낯설고 불편했다. 그는 과일 껍질과 나무 젓가락, 그리고 각종 일회용 접시에 하다못해 프린트물에 박힌 철심까지 다 분류하여 정리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날 그가 내게 해준 환경오염에 대한 다소 투박했던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에게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분리수거가 내게는 낯설게 다가온 사실이 많이 부끄러웠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 날 처음으로 나는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 생각과 실제 습관 사이의 괴리감이 얼마나 큰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더 있다. 독자 모임 때 만났던 ‘그람시’라는 아이디를 쓰는 형이었다. 그에 대한 몇몇 기억이 있지만, 무엇보다 그가 간식을 사 온 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좌파였고 신자유주의를 반대했던 그는 간식도 동네 노점상에서 파는 것들을 사왔다. 그 때 그 음식이 뻥튀기였는지 붕어빵이었는지, 혹은 튀김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가 겸연쩍게 웃으며 ‘동네 장사하는 분들의 주머니를 채워드려야 한다’는 말은 아직까지 기억이 난다. 퇴근 할 때 나는 당산역에서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데, 역의 오른쪽에는 맥도날드와 롯데리아가 있고 오른쪽에는 포장마차 노점상들이 즐비하다. 지금도 나는 가끔씩 허기진 날에는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돌아보다가 그를 떠올리며 노점상 쪽을 향하곤 한다.


언행일치? 언행해체!
모 방송 개그 프로그램 중에 ‘언행일치’라는 코너가 있었다. 아내와 즐겨보곤 했었는데 그 코너의 개그 코드는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넘어 몸과 말의 ‘해체’에 가까웠다. 가족으로 분장한 그들은 서로가 대화를 하는 중에도 대화와는 전혀 상관 없는 몸개그를 선보였고 그런 그들의 스타일이 참 기발하단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포스트모던’한 개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요즘의 우리가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우리는 우리가 어떤 독립적인 결정자가 아님을 인정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스스로를 여러 가지 단편적인 경험과 정보, 그리고 습속의 조합 내지는 혼합유기체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특별히 고민하고 살지 않은 많은 개인들은, 어찌 보면 ‘몸개그’에 가까운 이른바 ‘언행해체 현상’을 자주 경험하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일례로 이제는 그 논의가 시들해졌지만 ‘보보스’ 논쟁이 그랬다. 강준만에 따르면, 데이빗 브룩스가 그의 책에서 처음 언급한 보보스(Bobos)는 미국의 부르주아이자 좌파-엘리트 그룹으로 권력과 금력을 누리며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녀 ‘리무진 진보주의자’라고도 불린다. 좌파-엘리트인 그들 대부분인 명문대학을 나오고 유복한 생활을 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나 소수 세력의 대변자로 행세하여 ‘좌파처럼 생각하고 우파처럼 생활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자본주의 축복을 한껏 즐기면서 혁명 투사 체 게바라를 좋아하는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그들은, 그 존재 자체가 일종의 퓨전 현상이다. 나는 그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영향으로 인해 이들에 대한 평가가 유보되거나 혹은 매체가 나서서 구매의 주체인 그들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현상이 신기했다. 대외적인, 그리고 거시적인 자신의 주장이 소외된 사회 계층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소신과 상반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런 삶 자체가 어떤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 나라의 젊은 부자들은 그들의 ‘관(觀)’보다는 ‘스타일’을 흉내낸다는 것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들의 삶이 어떤 의미에선 퓨전이라기 보다는 ‘해체’에 가깝지 않은가.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마음이 씁쓸해진다. ‘언행일치’의 몸개그에 한껏 웃으며, ‘보보스’같은 좌파 엘리트들을 위선자라며 정죄까지는 안 해도 어느 정도 불편하게 여기는 나도 사실은 여전히 환경 문제에 둔감하고, 가격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동네 슈퍼마켓과 납품업체들의 목을 조여대는 대형할인매장에서 별 고민 없이 물건을 구입한다. 그 뿐이랴. 버거킹 햄버거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외국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을 즐기며, 할리우드 영화와 미국 드라마에 열광하며 살아간다. 좌파 지식인들처럼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를 부정하며 살 자신은 없어도 김진석의 책 제목처럼 이른바 ‘기우뚱한 균형’ 상태로 세상을 바라보며 나름의 비판적인 잣대를 들이대보려 하지만, 내 미시적인 삶 가운데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파편적인 기호들과 습속들은 지속적으로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일상 속의 일정 부분은 통일된 자아를 소유하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일정 부분은 내 의도와 기대와는 달리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잔존한다.

꿈은 해결되지 않은 현실의 문제가 무의식 중에 나타나는 것이라고들 한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은 교제조차 없어진 과거의 사람들을 회상하고 자꾸 돌이키는 건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한 불편함과 부끄러움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내면 때문일 것이다. 때로 내뱉는 주변 사람들의 한 마디가 그 사람의 일관된 오랜 습관처럼 느껴질 때 나는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된다. 설령 그가 바른 삶을 살지 않을 때조차도 자신의 말과 원칙에 자신의 삶을 길들이는 사람들을 통해 나는 자주 나를 반추한다.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개중에는 부러울 만큼 많은 지식을 소유한 사람도 있고 멘토로 삼을 만큼 존경할만한 선생도 있다. 하지만, 가끔씩 회사에서 프린트물에 박힌 철심을 떼어낼 때마다, 퇴근길에 맥도날드와 호떡집 골목에서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그래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힐 때마다 그 두 사람이 떠오르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끝)

*월간 <복음과상황> 08년 11월호 기고글.
2008/11/01 00:07 2008/11/0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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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카피레프트, 그리고 네티즌 (인물과사상/독자투고)

/ 김용주

 


온라인 컨텐츠와 저작권
컴퓨터, 특히 인터넷을 사용할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 대다수의 네티즌들이 그렇겠지만 주로 MP3 파일이나 영상 파일, 소프트웨어 등의 불법 다운로드 문제와 온라인 컨텐츠의 포스팅(게시)이다. 전자는 파일의 공유 문제로, 이는 물론 컴퓨터와 인터넷 안에서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파일의 공유나 다운로드에 집중되므로 인터넷 환경이 그 근본적인 원인이 될 법 하다. 후자는 흔히 글의 제목에 '펌'이라고 명시하고 무단으로 전재하는 각종 글들을 지칭하며, 이러한 행위들은 실상 저작권(copyright) 내지는 지적재산권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저작권 문제를 접한 건 90년대 중반 대학생 시절, 한 교수님을 통해서였다. 수업 도중에 그 분은 유학시절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악보를 복사하려 했는데, 그것을 지켜 보던 노부인이 그것은 범죄 행위라며 크게 비난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 시절 선교단체에 있던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엄청난 양의 악보들을 복사하여 사용하곤 했었는데, 그 얘길 듣고 보니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무개념’이었던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이렇듯 온라인 컨텐츠 문제의 시발점은 앞서 말했듯이 인터넷 환경 자체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 기반의 컨텐츠들은 언제든지 ‘COPY & PASTE’가 가능하고 변형 내지는 왜곡을 일삼기도 쉽다. (물론 그 반대로 개선이나 확장도 가능하다.) 온라인 컨텐츠의 사용을 기술적으로 제재할 수도 있겠지만, 항시 해킹을 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기술적으로 이를 막아내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나 영화, 음악 파일, 온라인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이를 위반 시에는 제재를 받게 되어 있다.

 

누군가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결과물에 대한 부당한 사용은 온라인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지적재산권이나 그 한 예인 특허권, 저작권 등이 이에 속한다. 흔히 1952년 유네스코에 의해 주창된 이유로 '유네스코 조약'이라고 불리는 세계저작권협약은, 예술 및 지적인 작품을 포함한 저작물에 관하여 저자와 저작권을 가진 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시도로 성립되었고 우리 나라에서도 1987년 개정과 함께 적용되어 지속되어 오고 있다. 흔히 ⓒ 마크는 모두 이러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상징한다.

 


카피레프트, 오픈 소스 운동
이러한 저작권, 지적재산권의 반대편에는 컨텐츠의 공개(open) 혹은 무료(free)를 주장하는 카피레프트, 혹은 오픈소스 운동이 있다. 카피레프트(copyleft)는 지적재산권(copyright)에 반대해 지적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게 하려는 이들에 의해 시작된 운동이다. 1984년에 리처드 스톨먼(Richard Stallman)에 의해 시작된 이 운동은 소프트웨어의 상업화에 반대하고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사용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고, 그런 이유로 이 운동은 ‘오픈 소스(open source)’ 운동으로도 불린다.

 

'오픈 소스' 운동은 프로그램의 근본이 되는 소스 코드(source code)와 그 소프트웨어의 무상 공개를 목적으로 한다. 이 운동은 흔히 GNU-"GNU는 유닉스가 아니다"란 의미를 갖는 영어 문장 "GNU's Not UNIX"의 약자로, 원래의 문장 안에 자신이 이미 들어 있는 재귀 약자이다-라 불리는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고, 이후에 리누스 토발즈(Linus Torvalds)에 의해 UNIX 환경을 PC에서도 가능하게 만든 리눅스(Linux)라는 OS가 오픈 소스로 개발됨에 따라 본격화된다. (라이센스에 대한 보수적 위치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있다면 그 반대 극단에 리눅스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오픈 소스에서 ‘소스’의 정의는 '자유로운 재배포의 허가', '파생소프트웨어 배포의 허가', '개인이나 집단의 차별금지', '적용분야 제한의 금지' 등 10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오픈 소스, 혹은 카피레프트라 불리는 이 운동은 소프트웨어의 소스 코드 공개로부터 비롯되었지만 점차 모든 저작권의 공유 운동으로 확대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중반부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운동으로 인해 많은 네티즌들은 ‘모든 정보는 공유되어야 한다’는 모토와 함께 온라인 컨텐츠를 공유 가능한 방식으로 배포하였고, 그로 인해 이제 웹페이지는 게시판, 방명록의 수준을 넘어서 지식 검색이나 위키피디아와 같은 오픈 사전, 그리고 RSS기반의 블로깅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컨텐츠들을 생산, 공유, 배포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비영리 목적의 라이센스 운동도 시작되어 대다수의 블로그에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센스(CCL, Creative Commons License)를 사용하는 곳이 많아졌다. CCL은 CCI(Creative Commons International)의 일환으로 2005년 CC Korea가 제공하기 시작한 것으로 자신의 창작물에 대하여 일정한 조건하에 모든 이의 자유이용을 허락하는 내용을 명시한 라이센스(License)이다. 특히, 오픈 소스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설치형 블로그인 테터툴즈/텍스트큐브는 이러한 CCL을 기본 사양으로 탑재하여 배포하고 있다. CCL은 대개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인 경우 어디서나 전재 및 배포가 가능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이러한 커먼 라이센스를 선호하고 있다.

 


오픈 소스와 카피레프트의 암(暗)
하지만 이러한 오픈 소스 운동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대부분의 경우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프로그래머 내지는 컨텐츠 생산자의 비용 문제이다. 오픈 소스 운동의 중심에는 비영리 목적이라는 대의가 존재하며, 이를 위해서는 개발자에 대한 보상 문제가 무시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때로는 광고 수익이나 기타의 방법을 쓰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오픈 소스 운동 참여자들은 때때로 본업과는 별개로 이 운동에 동참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문제로 한때 오픈소스운동은 난항을 겪기도 했다. (개발자나 컨텐츠 제공자들이 무료로 제공되는 컨텐츠에 대한 일방적이고 불명확한 전달, 에러 발생 시의 A/S나 수정에 대한 책임 회피 등) 따라서, 여전히 카피레프트 운동이 목표로 하는 소프트웨어나 온라인컨텐츠의 자유로운 공유에 있어서는 이렇듯 방대한 지적 작업에 대한 보상 문제가 잘 정리되어야 함을 전제한다.

 

이러한 연유로 오픈 소스 운동과 저작권, 지적재산권 옹호론은 인터넷 공간 안에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데,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이를 방관하거나 대충 무시하려는 경향이 짙다. 특히 많은 언론매체들이 온라인 컨텐츠를 자신의 웹페이지나 포탈사이트에는 무상으로 제공하지만, 개인 블로그의 스크랩과 같은 포스팅 행위에 대해서는 저작권 위반으로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네티즌들은 무시하려 하면서도 내심 찜찜한 마음으로 글이나 자료 등을 퍼오게 된다. 문제는 언론매체들이 네티즌 개인을 대상으로 저작권 소송을 제기할 경우 저작권법에 의해 최고 천만원에 5년형이 가능하며 이러한 소송 사례들이 실제로도 존재한다 사실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저작권법을 이용하여 온라인상에 유포된 공유 컨텐츠를 업로드 하는 개인에 대한 합의금을 노린 협박 사례도 늘고 있다.

 

내가 경험한 바로, 대다수의 기독매체와 진보매체가 온라인 컨텐츠를 전재하는 행위에 대해 저작권법 위반으로 경고를 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 매체의 기사와 자료들은 저작권법의 보호 아래 있기 때문에, 온라인 상에서 컨텐츠의 무료 접근성은 대부분 보장되지만 개인 웹페이지에 기사 전체를 포스팅할 경우에는 해당 컨텐츠에 대한 허가가 있어야 한다. 대체로 볼 때, 기독 매체나 진보 매체는 컨텐츠의 전재 문제에 있어 주로 '허용'을 선택하나 학회나 보수 매체에서는 간간이 '소송'을 선택함으로써 개개인의 포스팅 행위를 제재하는 듯 하다. 문제는 카피레프트를 지지하는 대다수의 네티즌들이 때론 저작권법을 어기는 문제에 있어서 무심하게 대응하다가 보수 매체들이 소송을 재기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온라인 콘텐츠 공유를 합법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안에서 합리적인 중간 지점을 모색해야
흔히 얘기하는 인터넷/네트워크/유비쿼터스 환경에서의 소프트웨어 및 MP3를 포함한 온라인컨텐츠들의 사용 문제는 내겐 아직 판단이 쉽지 않은 화두다. 판단하기 전에 먼저 인터넷 상에서는 그야말로 '대충' 흘러가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이 흐름에 대해, 특정 제공자는 허용하고 특정 제공자는 강하게 제한한다. 이에 따라 네티즌은 어떤 때에는 무임승차도 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제3자에 의해 협박을 당하거나 당사자에 의해 고소 당하기도 한다.

 

지적재산권을 그냥 쉽게 인정하기에 걸리는 부분도 없지 않다. 흔히 특허권은 지적재산권 보호라는 명목으로 발명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선진국의 기술을 개발도상국이 사용하거나 기술력 향상을 위해 이용하려는 시도 자체를 막는 결과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결국 이러한 권리는 가진 자, 가진 나라들의 기득권을 강화시키고 서민과 후진국은 접근 자체를 차단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소프트웨어의 경우, 확장성이나 공용 가능성을 배제시키고 자사의 프로그램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개발 컨셉트를 잡아 나갈 수도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나는 이런 논의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수의 네티즌들이 MP3나 영상 파일을 공유할 때 뒷거래를 하거나, 매체의 기사들을 대충 찜찜한 마음으로 퍼가기보다는 좀더 적극적으로 방향도 설정해가고 요구도 하고 책임도 질 수 있는 열린 장을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포스팅에 대한 비용을 보다 저렴하게 부과하여 네티즌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방식의 온라인 컨텐츠 비용이 산정될 수 있다면,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사용하듯 컨텐츠에 대해 좀더 양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갈수록 IT업계의 라이센스 관리 방식도 ‘소유’ 개념에서 ‘일시적 사용’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으므로, 이를 저작권에 적용해 보는 것도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한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기사를 전재할 때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므로, CCL방식을 따르는 곳에서는 컨텐츠의 저작권 비용에 차등을 두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 다수의 유명 소프트웨어들도 아카데미 버전의 저렴한 라이센스를 학생들 대상으로 보급하기도 하며, 특히 Adobe사에서는 자사 프로그램인 Acrobat에 대해 라이센스를 차등화시켜 공급하기도 하지 않던가. 온라인 컨텐츠도 이렇게 라이센스를 용도별로 등급화시켜 제공하면 어떨까. 이럴 경우 그간 네티즌의 걱정도 덜고, 이제껏 그저 지켜만 보던 매체들도 또 다른 수익 모델을 창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이는 간간이 떠오르는 개인적인 생각일 뿐, 저작권과 카피레프트 운동 사이의 문제를 인터넷의 양지로 끌어들여야 이 문제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법 하다. (끝)

2008/10/01 00:10 2008/10/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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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6)
- ‘나쁜 그리스도인’

/김용주


 
<나쁜 그리스도인>을 읽고
제 목부터가 눈에 확 띄는 책이었다. 그간 기독교 비판서적들은 참으로 많았다. 예수 출생의 비밀을 캐낸다거나, 역사 속의 기독교 죄악들을 담은 책들로부터 최근에는 안티 기독교 카페에서 출판한 책까지, 기독교를 비판하는 책들은 호기심에 사서 읽기는 했어도 큰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해왔다. 물론 이 말이, 내가 몸담고 있는 복음주의권을 향한 세상의 비판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였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읽게 된 <나쁜 그리스도인 Unchristian>은 내가 그간 헛다리를 짚은 듯이 느꼈던 복음주의권 비판이 제대로 이뤄진 책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곧 교계에서 계속해서 들을 듯 하니 장황하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몇 부분만 인용할까 한다.

“외부인들은 복음주의자들에 대해 가장 큰 반감을 보였다. ‘복음주의자’라는 표현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복음주의자’에 대해 유별날 정도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40쪽) “외부인들이 그리스도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에게 반감을 느끼는 가장 주요한 이유는 어떤 신학적 입장 때문이 아니다. 그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잘난 척’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를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외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41쪽) “이번 조사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봉사와 온정과 겸손과 용서와 인내와 친절과 화평과 기쁨과 선함과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61쪽)

아직 절반도 채 읽지 않은 이 책이 내겐, 송곳이 심장을 향해 깊이 박힌 듯 아프고 아프고 또 아프다. 이번에는 내가 할 변명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아내를 심하게 학대를 하면서도 성경공부를 인도하며 아내 사랑을 말하는 남편, 미혼모에게 남편 없음을 지적하며 매사에 충고를 하지만 그 충고대로 살지 못하는 교인들, 침례를 고집하다가 좋은 조건의 장로교회로 이직한 후 머리에 물을 뿌리는 것으로도 세례가 가능하다고 말을 바꾼 목사를 경험한 비기독교인들의 인터뷰 내용도 등장한다. 이는 비단 미국의 복음주의권이 이야기만이 아니다. 한국의 기독교라고 다른가.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의 복음주의권이라고 다른가. 그 안에 속해 있는 나의 신앙은 또 얼마나 구별되는가.


보수 기독교를 넘어
나 는 보수적인 교회에서 자랐다. 교회의 목사님은 항상 ‘국어대사전’만한 성경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셨고, 그냥 자기 곁을 지나가는 학생들에게는 “넌 담임목사님에게 인사하는 법도 모르냐? 너 누구네집 아들이니?”라고 호통을 치곤 했다. 당시에도 흔하지 않던 외제차를 몰고 다녔고 자녀들은 모두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신학생이 되어 돌아왔다. 교회 안에서는 소그룹 성경공부를 하는 교구가 있으면 말씀을 함부로 해석할 위험이 있다고 그룹의 리더를 교회에서 쫓아냈고, 매년 열리는 부흥회에서는 강사들이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사랑하셔서 건축의 마음을 주셨다”며 헌금을 강요하기도 했다. 지교회뿐만이 아니었다. 이 나라의 기독는 조찬기도회에서 축복기도를 드릴만큼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을 옹호했고 그 울타리 안에서 많은 유익을 누리며 급성장해왔다.

그런 배경 때문에 나는 내가 ‘복음주의자’로 거듭난 것을 너무나 다행스럽게 여겼다. 복음을 개인구원의 차원에서 하나님 나라와 그 분의 통치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기독교 세계관과, 로잔 언약으로 대변되는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이른바 ‘양날개론’은 그간 나의 신앙의 갈증들을 말끔히 해소해 줄만큼 시원했었다. 프란시스 쉐퍼로 시작된 기독교 사상가들의 지성은 나의 지적 갈급함과 신앙적 회의, 의심을 긍정하고 진리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만큼 복음주의는 내게, 과거 부정적 환경 속에 편견으로 다가왔던 기독교를 구원시켰다. 그 때부터 나는 신학과 정치, 그리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고, 특히 마음이 맞는 이들과 신학공부도 하고 발제도 하면서 사회와 교계에 쓴소리와 비판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한국의 복음주의자는 다른가
하 지만 나는 내 비판 의식에 조금씩 회의감이 들고 있다. 그 본질적인 원인을 솔직히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바로 보게 되었다. 그것은 앞서 책에서도 말한 복음주의자들의 ‘잘난 척’이다. 내가 자랑하는 복음주의는 어린 시절 내가 경험한 보수적인 기독교에서 벗어나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만들기는 했지만, 그 비판의식 자체에 안주하고 그것만을 즐기며 타인에게, 특히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신학과 사상의 난해함을 자랑이라도 하듯, 잘난 척을 일삼는 집단으로 전락했다. 내가 경험하는 복음주의권의 모습은 그렇다. 이전에는 구하기가 쉽지 않아 간신히 제본하여 읽던 책들도 이제는 번역의 질을 따질 정도로 완성도 있게 출판되는 축복을 누리지만, 또한 책이 출판되자마자 여기 저기서 회자되어 예리하고 창의적인 분석의 글들이 실시간으로 온라인 사이트 여기저기에 올라오지만, 사실상 그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아예 그 이야기 자체를 알아들을 수 있을만한 비그리스도인은 별로 없다. 나의 신앙에 관심을 가졌던 한 지인은 내가 이야기하는 복음주의나 기독교 세계관의 난해함에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나는 이제 스터디 모임을 하지 않는다. 기독교 서적도 잘 읽지 않는다. 난 요즘 어떤 기독교 사상가나 매체보다, 김용택 시인 같은 이의 책이 좋고 김장훈 같은 연예인의 기사가 좋다. ‘말’에 지나치게 경도된 복음주의자인 내가 부끄럽다. 기독 지성은 중요하지만 나부터가 비판의식과 사고에 함몰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향기’, ‘사랑’, ‘은혜’보다는 ‘날카로움’, ‘탁월함’, ‘잘남’, ‘해박함’에 경도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본다. 비그리스도인들이 보수 기독인들을 냉소적으로 대할 때, 같은 목소리로 그들을 비판하는 나를 그들은 어떻게 볼까. 보수 기독인과는 구별된 복음주의자로 칭찬할까. 의문이다. 그냥 행함보단 말이 많고 까칠하고 잘난 척하는 비슷한 류로 보지는 않을까. (끝)


*월간 <복음과상황> 10월호 기고글
2008/10/01 00:07 2008/10/0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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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5)
- 직장인과 기독인 사이에서

 


어느 날 상사가 내게 주말엔 뭘 하고 지내냐고 묻길래 별 생각 없이 일요일엔 교회를 간다고 했다. 그러자 대뜸 실눈을 뜨며 "너 그런 것도 하냐?"라며 묘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반응으로 인해 하루 종일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단순히 생각하자면 교회에는 뭐하러 귀찮게 다니냐고 물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나 같은 부류가 교회를 다닐 거라는 건 좀 의외라는 반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상사는 나 같은 부류는 어떤 부류라고 생각한 걸까. 교회를 다닌다고 하고는 술자리를 마다 않는 부류로 생각했을까? 아님, 식사 시간에 밥을 앞에 두고 잠시 묵념조차 하지 않는 부류로? 솔직히 그런 것보다는 교회를 다닌다고 하지만 삶에서는 별로 티가 나지 않는 부류로 보였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덜컥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분은 기독인에 대한 안 좋은 면을 많이 경험한 사람이었다. 해서 그는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곤 했는데 내가 교회를 다닌다고 했으니 내가 유별나 보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눈에 비친 기독인은 어떤 모습일까.

 

때로 주변을 보면 교회를 다니는 많은 부류의 직장인들을 만난다. 같은 선교단체 출신의 학사들을 만나면 주일성수나 경건생활을 규칙적으로 못한 지 오래되었다며 학생 때보다 망가져서 산다는 푸념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주일에 교회에도 잘 가고 회사에서 신우회 활동도 열심히 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들은 식사 시간을 쪼개어 말씀을 나누고 퇴근 버스 안에서도 성경을 읽는다. 하지만 나만의 느낌일까. 난 교회를 다닌다고 자처하는 많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혹은 교회의 지체들에게서 뭐라고 딱히 꼬집을 수 없는 부족한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이기적이라고 할까, 혹은 냉정하다고 할까. 아무튼 그들은 쉽게 무리에 속하지 못하고 동료들의 문제에 깊이 관여하는 법이 없다. 주변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기도하겠다는 말로 슬쩍 발을 빼기는 해도, 즉시 달려가 살펴봐주거나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데 인색한 경우가 많다. 또한 사내의 불합리한 구조적인 문제나 집단 행동에 있어 자주 방관하는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업무를 하는 데에 있어 책임감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종종 듣는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을 것이다. 내가 안 좋은 면만을 보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분명 있겠지만 나는 내 눈보다 더 부정적으로 기독인들을 대하는 직장의 동료들, 상사들과 함께 사회 생활을 하고 있다. 

 

교회를 다닌다고 말한 그 날 이후로 나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정작 그 분에게 교회 다니는 후배 사원인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 날 이후로 나는 회사생활 5년 만에 처음으로 먼 발치에서 나란 사람을 돌아 보게 되었다. 나는 내가 눈살을 찌푸리는 많은 기독 직장인들과 구별되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가. 사실 자신이 없다. 물론 나는 튀는 사원임에는 분명하다. 회사에서 있었던 진급자 회식날, 여성 도우미들이 나오는 유흥주점에서 한 턱을 크게 내라는 회식 분위기에서 가족과 자녀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식사 모임으로 하지 않으면 회식비를 안 내겠다고 우겨서 결국 진급자 축하 회식날 상사들의 가족들과 함께 주말 식사를 했던 적도 있었고, 회의 때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의사 결정에는 굳이 나서서 따져대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사내에서 경조사가 생기면 항상 어디든지 가서 경사면 축하해주고 조사면 위로해주는 동료들도 많은데 나는 자주 그러지 못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늦게까지 일을 마치지 못해도 나는 내 업무가 끝나면 언제고 별 고민 없이 퇴근했다. 솔직히 그간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 어필은 많이 했어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나를 희생해본 적은 없었다. 게다가 비교적 진보적인 신앙인들은 역으로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세속적인’ 직원들을 오히려 직장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은 부류로 취급하기도 하니, 사실 그간에는 회사 생활에서 한 발을 적당히 빼고 지내는 게 올바른 행동 같았다. 이 세상 집은 내 집 아니듯 이 직장도 내 진정한 삶의 터전이 아니리라! 하지만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서 이는 회사에 대한 희생의 문제가 아니라 내 일터에 속한 공동체 일원들에 대한 희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동체 속에서 기독인인 나의 자리 매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초 대 교회의 모습을 보면, 많은 이들이 세상 사람들과 같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생활을 보며 때론 놀라고 때론 칭송하며 그 무리를 따르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들은 자신의 소유를 공유했고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예수의 도를 따라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치유하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초대 교회의 교인들은 자신들이 기독교인임을 드러낼 필요 없이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높은 도덕성과 헌신, 그리고 사랑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내 일터, 내가 속한 지역 사회는 어떤가. 그들은 내가 전도를 하고 다니지 않아도 신앙인으로서의 나를 발견하고 있을까. 그들은 나의 헌신과 사랑, 그리고 나의 높은 도덕성으로 인해 매 순간마다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겠는가. 불합리한 업무에 또박또박 불만을 토로하기는 잘 하지만, 여러 일들로 힘들어 하는 주변 동료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삶에 개입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는 노력 없이 이름만 몇 번 불러대는 형식적인 기도로 불편한 마음을 털어버리곤 하는 나와 같은 기독인에게서 진정 복음을 발견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나이가 들수록 신앙은 삶이자 일상,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예배당에서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매일 묵상하고 여기 저기에서 큰 소리로 복음의 진리를 선포한다 해도, 직장이나 지역 사회, 가정과 같은 일상의 구석 구석에서 섬기며 희생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로 서지 않으면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한 행위임을 실감한다. 굳이 식사 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예수에 대해 마치 보험을 팔 듯 입으로 상대방을 설득하지 않아도 기독인의 주변을 통해 그들을 따를 수 있는 신앙의 현장성이 우리 기독 직장인에게는 부족하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교회 다닌다는 나의 고백에 누가 됐든 또다시 내게 “너 그런 것도 하냐?”는 물음을 던질 것이다. (끝)

 

 


*월간 <복음과상황> 08년 8월호 기고글

2008/08/01 00:06 2008/08/0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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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4)
- 직업과 소명 사이에서


예 전에는 더 많이 들었지만 지금도 간간이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질문이 있다. 자동차회사가 적성에 맞느냐는 거다. 이런 류의 질문은 대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과 친구들도 자주 묻곤 했다. "넌 공대생 같지 않아" 사실이 그랬다. 나는 철학과 신학, 그리고 세계관과 기독교 문서운동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 교회 목사님은 내가 신학을 할 거라고 생각했고, 선교단체 사람들은 내가 문서사역 내지는 기독 출판계로 갈 것이라 생각했다. 나 또한 전공필수 과목 외의 선택 과목은 과학철학이나 논리학, 미학 같은 공대생들이 거의 듣지 않는 과목에 시간을 쏟고 있었고, 때때로 기독교 단체들 주변을 기웃거리곤 했다. 내겐 그런 일들이 더 신앙적인 것으로 느껴졌고 다른 무엇보다 더 가치가 있어 보이곤 했다. 물론 전공이 싫었던 건 아니다. 장학생은 아니었지만 매주 해야 하는 과제들은 나름 재미가 있었다. 단지 믿는 사람들이 소위 이야기하듯 이 일이 내 소명은 아니라는 생각, 하나님이 주신 부르심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전공에 몰입할 수 없었고 졸업을 앞두고는 최선을 다하는 일에 자주 머뭇거리곤 했다. 졸업할 시기가 되어 진로를 고민하다가 문득 4년 동안 공부한 전공을 살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옳은 일인지 갈등이 되었다. 나의 신앙적 기준으로 볼 때 나 같은 사람은 대학을 다니면 안 되었다. 부모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학교를 다니지도 못했으면서 4년간 써먹지도 않을 공부를 한 것이니 말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국 나는 대학원을 가기로 했다. 대학원 진학의 목적은 오직 하나였다. 내겐 4년간의 학문적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했고 졸업 후, 6년간의 투자에 맞는 전문직을 얻어 사회 생활을 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그 시간이 내겐 중요했다.

그렇게 시작된 대학원 생활은 유익했다. 유익했다는 말이 좋았다거나 즐거웠다는 말과는 다른 의미다. 나는 형이상학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론에 충실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 것에 익숙했다. 글을 쓸 때에도 스토리에 관심이 있지 통계치나 디테일한 부분을 그리 잘 챙기는 성격은 아니었다. 내가 들어간 연구실은 주로 전산설계를 하는 곳이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프로그래밍에 할애하곤 했다. 프로그래밍은 흥미로웠다. 사실 내게 모든 학문은 흥미로웠다. 특히 개론 과목들은 언제나 나의 구미를 당기게 했다. 석사 1년차에 나는 첫 세미나를 하게 되었고 논문과 책에 나온 자료 구조(data structure)와 컴퓨터 그래픽 알고리즘(algorithm) 몇 가지를 발표했다. 새로운 개념들이 즐비한 논문들에 나는 매혹되었고 발표하는 내내 내가 요약한 발표 자료들과 힘있는 내 목소리가 한 곡의 클래식처럼 흘러갔다. 그러다 갑자기 박사과정 선배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매우 디테일한 질문들이었다. 프로그래밍 환경은 어떤 것인지, 코딩 시에 인터페이스는 어떻게 구현되는지, 데이터가 초과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등등 지금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그런 질문들이었다. 당시에 나는 좀 귀찮다는 표정으로 그게 뭐 대수냐는 류의 대답을 우회적으로 했던 것 같다. 선배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해봤어?" 난 논문에 나온 결과들을 다시 읊었고 선배는 다시 되물었다. "네가 직접 코딩해봤냐고." 결국 한 주 뒤에 프로그램을 짜서 다시 발표를 하기로 했다. 나로서는 더 많은 것들을 공부할 수 있을텐데 사소한 코딩에 시간을 쏟는 것이 아까웠지만, 못 믿겠다는 선배의 표정을 바꿔놓고 싶어졌다. 한 주가 지나고 두 주가 지났지만 코딩은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방법도 아니고 10여년 전에 이미 완성된 논문 속 알고리즘을 짜는데 한 달이 걸렸다. 알고리즘은 간단해 보였지만 컴퓨터 환경 안에서 구현해야 하는 알고리즘들은 많은 제약을 받았다. 윈도우즈 환경에서 입출력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UI(유저 인터페이스)를 구성해야 했고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메모리 관리를 해야 했다. 내 프로그램이 메모리 부족으로 다운되지 않으려면 다른 프로그램의 동작들을 자주 방해했기 때문에 다른 프로그램과 컴퓨터 메모리를 효과적으로 나눠 쓸 수 있도록 자료 구조를 설계해야 했다. 물론 지금은 컴퓨터 환경이 더 좋아졌고 반복적인 코딩 작업들은 자동화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컴퓨터 안에서 직선 몇 개를 보여주는 데에도 알아야 하는 그래픽 관련 함수들이 많았다. 더욱 당혹스러운 건 한 달 후 시연을 보인 프로그램은 돌발 상황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갑자기 마우스를 더블 클릭을 한다거나 보이는 창의 사이즈를 키우거나, 데이터를 극단적인 방식으로 입력하는 경우 프로그램은 오작동했다. 그러한 돌발 상황에 대한 에러 처리 코딩을 매번 해 줘야만 완벽한 프로그램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난 한 달 동안 이 허접한 프로그램과 씨름하고 나서야 박사과정 선배의 "해봤어?"가 마음으로 와 닿았다. 안 해보면 모르는 거다. 난 모르고 있었다.

실행 의 중요성에 대한 맛보기를 경험했지만 여전히 이론과 개론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내게 대학원 2년이란 기간은 충분치 않아 보였다.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 나는 손에 잡히는 물건을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기를 원했다. 결국 나는 2만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에 입사했고, 그 2만개의 부품 중 몇 개의 아이템을 설계하는 일을 맡았다. 처음 개발회의에 들어간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회의실에 온 연구원들은 부품들의 배치를 놓고 의견 조율을 하고 있었다. 말이 의견조율이지, 까놓고 말하자면 자기가 설계하고 있는 부품들 간의 간격을 확보하기 위해 대놓고 싸우고 있었다. 자동차 안의 공간은 정해져 있는데 개발 컨셉트에 따라 그 공간 안에서 부품들은 서로의 간격을 정해진 규칙대로 확보해야 한다. 신입 연구원인 나에게 그 회의 광경은 어처구니가 없어 보였다. 5~6밀리미터 정도의 간격 때문에 머리가 하얀 아저씨들이 세상이 끝나기라도 하는 듯 언성을 높여가며 다투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 키보다도 훨씬 큰 자동차에서 손가락 한 마디조차 안 되는 길이를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하찮게 느껴졌다. 그 날 나는 사수에게 흔히 하는 말로 엄청 깨졌다. 자기 부품이 못 들어갈 수도 있는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내 모습에 화가 난 것이다. 그 날 나는 과거 대학원 시절 선배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사실 부품의 치수들은 내 어림짐작보다 더 중요했다. 5밀리미터 간격을 더 두느냐 안 두느냐에 따라 차량 주행 중에 소음이 발생하곤 한다.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도 내가 그렇게 쉽게 생각했던 손가락 한 마디보다 짧은 간격으로 인해서다. 그 뿐이랴. 3D모델로 정교하게 설계하더라도 실제 부품을 만들 때는 고려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금형(金型)에 쇳물을 부어서 식힌 후에 빼내어 완성되는 대부분의 자동차 부품들은 금형의 뽑기 방향에 따라 크기가 미세하게 차이가 난다. 이도 반드시 설계자가 고려할 부분이다. 공차 관리도 해야 한다. 0.2밀리미터까지 도면으로 관리하는 공차에 따라 볼트나 너트가 들어가기도 하고 안 들어 가기도 한다. 이런 설계자의 작은 실수들로 인해 부품지원이 늦어져서 결국 차량 제작이 몇 주씩 늦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성능은 배제한 순수 부품의 조립만을 고려한 것이다!

MBTI 성격유형에 따르면 나는 ENTJ(지도자형) 혹은 ENFJ(언변능숙형)에 속한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나는 가능성 있어 보이는 일들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말로 논리를 세우는 일들을 곧잘 했던 것 같다. 창피한 일이지만 때때로 나는 실행해보거나 경험해보지 않은 일들도 대략 감만 잡히면 마치 모든 것을 겪어본 것처럼 과장하기도 했다. 난 가끔 내가 고등학교 때 문과를 선택하여 공과대학으로 진학하지 않았다면, 더욱 허풍이 세져서 말을 과장하는 데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내 본성이 그랬다는 말이다. 난 경험하지 않은 일에 있어서조차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주는 말을 곧잘 하지만, 사소한 것들을 꼼꼼히 챙기고 작은 일에도 책임감 있게 끝까지 그 일을 마무리 짓는 데에는 서툰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상당 부분에서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직업은 최소한 나의 모난 성격을 다듬어 주고 있다. 특히 말단 연구원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마치 내가 CEO라도 된 것처럼 큰 방향이나 설정하고는 사소한 일들에는 의미를 좀처럼 부여하지 않는 내 부족한 모습을 직시하고 교정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지금의 내 직업이 천직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내 직업은 공학에 호감을 가지고 전공으로 선택한 데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시작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선택한 직업은 이렇듯 나를 바꿔놓고 있다.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자리는 내 인격의 성장을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리이며 작은 일에서조차 최선을 다해야 하는 곳임을 조금씩 깨닫는다. 앞으로 펼쳐질 삶의 많은 여정 가운데 나의 선택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이 어떠하든지 말이다. (끝)


*월간 <복음과상황> 7월호 기고글.
2008/07/01 00:05 2008/07/01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