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Posted
Filed under 기고글 모음/제이언니의 IT이야기
지금은 전자책 수요가 많아지긴 했지만 불과 5~6년 전만 하더라도 전자책 시장은 불모지에 가까웠다. 몇 년 전부터 인터파크와 교보가 단말기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시장의 규모를 키우려고 애썼지만 국내는 미국처럼 전자책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인터넷 서점 아마존은 이미 전자책 판매량이 종이책을 넘어선 지 오래지만 국내의 경우는 갈길이 멀기만 하다.

소비자 입장에서 전자책이 가장 불편한 부분은 DRM, 즉 디지털 저작권 문제다. 콘텐츠의 보호를 위해 전자책은 복사와 출력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대체로 교보, 인터파크, 예스24와 같은 개별 인터넷 서점에서 독자적인 DRM이 설치, 배포되는데 이로 인해 소비자는 특정 온라인 서점에서 제공하는 단말기에서만 도서를 읽을 수 밖에 없는 제약이 따른다.

아마존이라는 단일 기업이 전자책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미국과 달리, 국내는 여러 인터넷 서점이 난립하는 가운데 특점 서점의 단말기에서 저작권 제약을 받으니 당장 소비자가 사용하기에 전자책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이해관계 난립하는 '디지털 저작권'

기사 관련 사진
 종이책, 전자책, 그리고 북스캔 파일까지
ⓒ 김용주

관련사진보기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저 불편하기만한 문제일지 모르지만, DRM 문제는 꽤나 많은 이해관계가 난립하는, 다분히 정치적인 함의가 있는 IT 기술이다. 이 '디지털 저작권'이라는 기술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권력 관계가 뒤바뀔 수도 있기 때문인데, 이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는 음반시장과 애플사와의 음원 협약 사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음반시장은 MP3 포맷의 확장과 더불어 냅스터(Napster)와 같은 사이트를 통해 네티즌끼리 불법으로 복제한 음원 공유로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 때 아이튠즈를 통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려던 스티브 잡스는 거대 음반사로부터 한 곡 단위로 저렴한 가격에 음원을 유통하는 방식을 제안했고 'P2P'공유 사이트의 범람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음반사의 승락을 얻게 된다. 이때부터 권력 구도는 음반사에서 애플의 아이튠즈로 옮겨가게 되었고 이내 음반사는 너무 쉽게, 낮은 가격에 음원을 넘긴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이와 비슷한 일이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도 일어났다. 아마존은 전자책 시장의 저작권 관리를 위해 독립 포멧의 DRM을 적용했고 전자책에 한해서는 저자와 직접 라이센스를 체결하기도 했다. 결국 저자와 편집자 간의 오랜 기획과 편집을 거쳐 나온 출판물들이 정작 출판사가 아닌 인터넷 서점에게 더 큰 권력을 가져다 주었다.

국내에서 자주 일어나는 인터넷 서점과 출판사와의 갈등은 이런 권력구도의 변화에 기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권력구도를 차치하고서도 음반 시장에서의 MP3 포맷의 범람은 시장 전체를 휩쓸었고 현재까지도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종이'책의 '전자파일'화 또한 그 자체가 공포스럽기까지 한 그 무엇이었다. 

고로 일인출판을 지향하는 전자책 시장에서 저자와 서점 사이를 매개했던 출판사의 배제의 기미가 자주 읽히고 그 중심에는 전자책의 'MP3'화를 막아주는 DRM이 우뚝 서 있는 셈이다. 나름대로 자기 주관이 뚜렷한 출판사는 책의 질이 떨어질까봐 우려감을 보이기도 하고 기술에 무지한 영세 출판사들은 DRM 자체에 대한 의구심, 즉 자신들의 디지털 콘텐츠의 불법 공유의 위험성에 집중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전자책 시장은 국내에서는 여전히 소비자가 이용하기에는 불편한 구석이 없지 않다. 전자책은 300그램 밖에 안 되는 전용 단말기에 무려 2000권이 넘는 책을 담아서 다닐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지만 말이다.

북스캔 저작권 보호, 현실적으로 어려워

이런 불편함을 직시한 이들이 끼어든 틈새 시장이 있다. 바로 북스캔 업체다. 북스캔은 자동화된 스캔 기기를 통해 고객이 송부한 도서를 대신 스캔해서 PDF 포맷의 파일로 전송해주는 서비스다.

북스캔은 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권당 대략 50~100MB의 용량이면 가능하므로 전자책 포멧(e-Pub)보다는 용량이 큰 편이지만 태블릿이나 SD메모리로 확장 가능한 단말기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 수준이다. 게다가 북스캔은 내 컴퓨터에 저장, 복사, 출력 모두 가능하며 OCR인식을 할 경우에는 책의 일부 혹은 전체의 검색 혹은 인용도 가능하다.

허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스캔업체가 출판물을 복사하여 배포하므로 출판물의 저작권법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들은 스캔업체가 저작권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스캔업체는 이 저작권 문제를 '적절하게' 우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객의 책을 받아서 스캔을 한 후 출력 기능을 없애고 전자파일 앞페이지에 고객의 개인정보를 명시하여 배포하는 것이다. 해당 페이지에서는 개인정보를 명시함과 동시에 이 파일의 무단 배포나 복사의 책임이 고객에게 있음을 재확인한다. 물론 출력 기능을 활성화하거나 개인 정보가 담긴 페이지의 삭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므로 기술적으로만 본다면 북스캔의 저작권 보호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솔직히 여기에는 좀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는데 '클라우드 서비스'로 표현되는 북스캔 업체의 백업 서버에 나는 더 주목하는 편이다. 아이폰의 아이클라우드 서비스나 에버노트의 동기화 서버도 비슷한 이슈거리이기도 한데, 이 경우에는 이용자의 콘텐츠들을 서버에 저장하므로 엄청난 개인정보의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서버는 DB화되어 있으므로 특정 정보의 검색 또한 가능하다. 따라서 북스캔 업체들의 서버에는 고객이 송부한 수천권, 나아가 수십만권의 책들이 고스란히 도서명과 함께 저장되어 있다. 이 서버의 자료들이 유출될 경우 개인, 나아가 출판사들의 손실은 치명적일 수 있다(물론 그럴 확률은 지극히 적지만 현실은 원전이 붕괴되고 통신사와 카드사의 서버가 해킹 당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던가).

유출을 걱정하지 않더라도 북스캔 업체는 웬만한 도서관이 수용할 수 없는 책들을 서버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규모의 전자도서관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상상의 나래를 펴서 소설을 써본다면, 구글의 방대한 도서 스캔 활동을 통해 구글 플레이북 서비스를 시작한 것처럼 어느 순간 스캔업체가 저작권 협상을 거쳐 전자책 시장의 실세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단순히 고객의 책을 스캔하여 파일로 만드는 수고를 대신해주는 이 업체들에 대한 출판시장의 경계가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

영화 <매트릭스2>보다 더 유명해진 광고문구인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 될 것이다'는 현대의 IT 기술의 발전 그 자체에도 딱 어울리는 말이지만, 나아가 그 기술을 둘러싼 기존 기업들의 급변하는 현실에 꽤나 잘 어울리는 문구 같기도 하다. 진보적인 대중들도 때때로 개념소비를 지향하는 듯 하다가도 대부분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제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더욱이 불편한 요소가 있는 기술들은 점차 수요가 줄어들고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업계들은 무시 못할 속도로 진화해간다. 출판 시장에서는 북스캔 업체가 그런 느낌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여전히 종이책의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글을 쓰면서도 책상 위에 놓인 책들과 태블릿에 있는 전자책과 북스캔이 엇갈리듯 내 시야에 들어온다. 이렇듯 내 책상 위에 펼쳐진 모습만큼이나 복잡하고도 다양한 출판 시장을 지켜보는 심경은 꽤나 복잡하기만 하다.
2014/03/30 23:45 2014/03/30 23:45
Posted
Filed under 기고글 모음/제이언니의 IT이야기
한때 음반시장은 LP와 CD가 공존했던 시기가 있었다. 음원의 수명이나 음질로 볼 때 LP가 결코 유리한 조건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CD라는 새로운 방식 자체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만만치 않았다. 아날로그 사운드를 0과 1의 조합으로 이뤄진 디지털 신호로 변환한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기도 했고 청음을 했을 때 잡음이 완전히 제거된 CD의 소리는 뭐랄까 비현실적인 묘한 어색함에 알 수 없는 불쾌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물론 그 어색함은 몇 년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경쟁하는 2개의 기술이 시장에 나왔을 때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은 뭘까. 아마도 그것은 그 기술이 '표준'이 되어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도태되어 사라질 운명에 처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본다. 그런 연유로 중학교 시절, 나는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모아서 LP를 살 것인가, CD를 살 것인가를 놓고 레코드 가게 앞에서 한 시간 넘게 고민에 빠지곤 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이전인 70, 80년대에는 비디오 테입의 두가지 방식, 즉 소니의 베타맥스와 JVC사의 VHS(Video Home System) 방식의 경쟁이 있었다. 두 회사의 긴 과거사를 되내일 필요는 없겠지만 그 시절 가지고 있던 베타맥스 방식의 테입 상당수가 쓰레기로 둔갑했던 기억이 역력한 나로서는 이후 CD나 기타 새 기술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토마스 쿤은 자신의 유명한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정상과학이 다른 이론과 충돌하면서 새로운 이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용어로 설명한 바 있다. 이 때 두 이론 간에는 절대 비교를 할 수 있는 척도가 존재하지 않는데 이를 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라고 부른다.

흥미롭게도 쿤의 이러한 패러다임 이론이라거나 통약불가능성은 과학 이론보다는 현대 IT 기술에 대입해볼 때 더욱 적절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쉽게 말해 특정 기술 간의 장단점이 명확하더라도 그 장단점이 정량적으로 비교되지 않을 뿐더러 나름의 방식을 유지하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한동안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기술의 대립이 극명한 부분 중 하나는 '손글씨'의 디지털화 방식이다. 물론 컴퓨터 환경에서 정교한 펜작업의 디지털화를 향한 열망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전통적으로는 스캐너를 사용하거나 펜마우스나 태블릿(지금은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PC를 의미하는 용어가 되었지만)을 사용했지만 대중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다시금 터치스크린에 직접 필기를 하려는 이들이 많아졌고 이에 따른 시장의 대응도 활발하다.

액정 스크린에 직접 필기하는 터치펜 방식

기사 관련 사진
 아날로그 노트를 디지털로 변환시키려는 제품들. 사진은 Livescribe의 에코펜.
ⓒ 김용주

관련사진보기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흐름이 있는데, 먼저는 액정 스크린에 직접 필기하는 터치펜 방식이 그것이다. 가장 대중적인 3M의 정전식 터치펜에서부터 미세한 터치와 압력조절이 가능한 Adonit사의 JOT 시리즈까지 액정에서 정밀한 터치를 향한 기술의 진보가 활발하다. 물론 삼성은 전용 S펜을 통해 디지타이저 분야(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의 화면 위에 스타일러스 펜으로 필기하듯이 터치를 인식하는 기술)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편이다.

다른 흐름은 - 솔직히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 아날로그 노트에 쓴 글씨를 디지털화 하는 방식이다. 이 분야에 원천기술은 아무래도 스웨덴 기업인 ANOTO(http://www.anoto.com)가 가지고 있다. ANOTO는 마이크로 카메라가 달린 펜과 특수 패턴 노트를 이용하여 자신의 노트를 pdf나 이미지 파일로 저장해주는 방식을 개발했다. 이것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술로 보인다. 즉, 아날로그 방식의 필기감을 유지하면서도 디지털 기기로의 변환도 용이하게 만들어 주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여전히 과도기적 기술로 보이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휴대용 스캐너의 기능 대비 더 진보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노트의 글씨를 인식하는 방식은 스마트폰의 카메라나 휴대용 스캐너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ANOTO의 제품들은 그렇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도리어 ANOTO의 기술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 자사 제품이 아닌 LIVESCRIBE의 스마트펜 시리즈였는데 이 회사의 스마트펜은 2008년부터 2년동안 40만개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ANOTO의 기존 제품과 이 스마트펜의 가장 큰 차이는 녹음 기능이었는데 필기를 하는 동안 실시간으로 녹음이 가능했다.

이 간단한 아이디어는 이 필기도구를 엄청난 학습도구, 전문가들(법조인, 기자들)의 노트 도구로 변신시켰고 그 결과 단순한 기능의 추가를 넘어 하나의 혁신이 되었다. 제품 사용자의 30%는 대학생이었고 강의 녹취와 노트 내용 중 더불어 필요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재생할 수 있는 기능은 학습효과에 큰 도움을 주었다.

아날로그 노트와 디지털 노트 기업 사이의 합작 기술들도 눈에 띈다. 아날로그 노트업체로 유명한 몰스킨은 에버노트와 합작하여 '몰스킨 에버노트' 제품을 내놓았다. 이 노트는 아날로그로 필기한 후 태블릿PC에 설치된 에버노트 어플에 탑재된 카메라를 통해 노트 분류가 가능하도록 돕는다.

에버노트는 3M과 합작하여 포스트잇을 디지털 노트로

기사 관련 사진
 포스트잇을 색깔별로 태블릿에 옮겨주는 에버노트 기능.
ⓒ 김용주

관련사진보기


엄밀히 말해 기능적인 유용함 보다는 브랜드 가치를 통해 두 독립된 기업의 제품들을 선호하는 소비자를 위한 목적이 강한 느낌이다. 최근 에버노트는 3M과 합작하여 포스트잇을 디지털 노트로 만들어주는 기능을 추가했다. 4가지 색깔에 따라 자동으로 노트들을 특정 노트북으로 분류해주는 이 기능은 포스트잇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충분히 발휘하면서도 디지털 노트(에버노트)에서 이를 충분히 구현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 모든 IT기술들은 과도기적으로 보인다. 태블릿에 직접 쓰는 터치펜 방식은 정밀한 필기감의 한계가 명확하다. 특히 필기감을 위해 특정 브랜드의 종이노트나 만년필을 선호하는 소비자에게 터치펜 방식이 극복해야 할 기술적 문제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 반대로 아날로그 노트를 디지털화 하는 방식 또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ANOTO의 스마트펜은 기본적으로 두껍고 자사의 특수패턴 노트만 사용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에버노트의 아날로그 타입 임베디드 방식 제품들, 이를테면 몰스킨 노트나 포스트잇은 카메라를 통한 후처리 방식으로 딱히 실용적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나는 아날로그 임베디드 방식의 제품들을, 향수(鄕愁)에 의존한 과도기 제품으로 보는 입장이다. 그 말은 시장의 선도 기술이 되기는 여전히 어려울 것 같다는 의미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점은 나를 포함한 많은 소비자들이 실용성을 넘어선 향수에 자극을 받고 그것에 반응을 한다는 사실이다. 마치 '옛날도시락'이 지금 식당의 메뉴로 오르내리듯 우리의 정서를 자극하는 아날로그적인 방식들이 녹아든 제품들은 나름의 매력이 있다.

쿤의 지적대로 두 방식의 장단점을 아무리 전문가들이 비교한들 그것이 정량화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현대 IT기술은 과거처럼 특정 방식이 시장에서 쉽게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최근 다시 히트를 친 포토 프린터가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살리는 상상력들이 IT기기 안에 더 많이 녹아 들기를 기대해본다. 설령 그 방식이 최적이 아니더라도, 조금 불편하더라도 소비자는 충분히 그것을 감내할 정서적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2014/02/25 23:07 2014/02/25 23:07
Posted
Filed under 기고글 모음/제이언니의 IT이야기
나는 태블릿이 처음 나온 시점부터 이 기기의 잠재적인 활용도에 열광하게 되었고 그동안 그로 인한 금전 지출이 만만치 않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태블릿을 샀는데 조금 지나니 더 나은 제품이 등장한다거나, 주변기기를 샀는데 기대보다 활용도가 떨어져서 집구석에 처박아뒀다가 아내에게 타박을 받는 경우.

오늘은 그런 고민들을 잘 다듬어서 나름의 가이드가 된 내용을 나누어 볼까 한다. 누구나가 그랬겠지만 태블릿을 고를 때 가장 고민은 제품의 가격과 성능이다. 줄여서 흔히들 '가성비'가 우수하다는 제품에 구매수요가 집중되기 마련이다.

사실 가격은 저렴하면 그만이지만(게다가 점점 가격대는 낮아지는 추세다) 성능은 특정 제품이 좋다고 말할 때 개개인의 비교 인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내 주변 공대 출신의 직장인들은 하드웨어 사양을 주로 비교하는 편이지만 다수의 일반인들은 CPU나 해상도 정도를 확인하고는 디자인이나 사이즈를 주로 보는 듯하다.

태블릿 사이즈가 중요해?

기사 관련 사진
 아이패드 에어(왼쪽)와 2010년 첫 선을 보인 1세대 아이패드
ⓒ 김시연

관련사진보기


개인적으로 나는 무엇보다 사이즈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도 한 번 사이즈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지만(관련 기사 : 7인치 vs. 10인치) 태블릿 사이즈는 좀 더 크게 보냐 작게 보냐의 차이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7인치는 아마존 킨들로 대변되는 '전자책 단말기'의 경쟁품으로 그 포지셔닝을 맞춘 것이다. 따라서 7인치 태블릿은 주로 전자책을 보거나 간단한 웹검색 등을 위해 개발되었고 무게도 전자책 단말기와 동일대인 200g 수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반면 10인치로 대변되는 아이패드, 갤럭시탭10.1 등은 넷북, 컴팩트 노트북과 경쟁을 위한 제품으로 단순히 검색이나 전자책 사용을 위한 읽기 도구(Reading Tool)가 아니라 문서작성, 프리젠테이션 등 오피스 프로그램이나 그래픽 작업도 고려한 쓰기 도구(Writing Tool)에 해당한다.

따라서 무게가 조금 나가더라도 백팩에 들어갈 정도의 사이즈에 노트북보다 가벼우면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10인치 태블릿은 600g 수준에서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사이즈가 중요한 이유는 패션코드 즉, 여성의 핸드백에 들어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따로 파우치나 백팩을 준비해야 하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백팩을 어깨에 매는 순간 여성은 옷을 맞춰입기가 쉽지 않다), 또 한편으로는 무게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마존에서 개발한 킨들이 전자책 단말기의 대명사가 된 건, 여성이나 노약자들도 부담없이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200g의 '감성적' 무게를 만족했기 때문이다(대체로 300g이 넘으면 무게감이 피부로 느껴진다). 따라서 태블릿 업체들은 7인치와 10인치 제품을 각각 선호하는 구매자를 비교적 명확히 구분짓곤 했다.

급변하는 태블릿 시장

사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이런 기준으로 제품을 구입하고 주변에도 권할 수 있었는데 그 사이 제품군이 더욱 다양해지고 기기 자체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삼성의 경우 갤럭시탭이 이미 7/7.7/8.9/10.1인치의 라인업을 가지게 되었고 갤럭시노트는 8인치와 12.1인치가 추가됐다. 넥서스는 7인치와 10인치를 운영했지만 8인치를 출시한다고 밝히면서 7.9인치의 아이패드 미니와 사이즈가 겹치게 됐다. 킨들 파이어도 7인치와 8.9인치 2개의 사양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모토로라를 인수한 레노버도 아이디어패드 7/10인치 및 8인치인 MIIX2와 태블릿 요가를 추가했다.

따지고 보면, 그간 7인치를 순수하게 읽기 도구로만 쓰기에는 뭔가 아쉬운 구석이 있었기에 8인치 사양이 생겨나게 됐고 또 10인치를 노트북처럼 쓰려는 수요가 12인치로의 확장을 욕망하는 셈이다.

그것뿐인가. 태블릿과는 무관해 보였던 스마트폰도 점점 커지는 추세라 스티브 잡스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 4인치 화면은 이제는 답답하게 느껴진다(결국 아이폰5는 세로 길이를 추가로 늘렸다).

이렇게 되면 5.7인치 스마트폰 사용자가 굳이 7인치 태블릿을 구입할 이유가 없게 되므로 태블릿의 적정 사이즈도 8인치 이상이 되는 게 합리적이다. 게다가 아이패드는 신제품 '에어'를 출시하면서 무게를 470g대로 줄였고, 킨들도 '공기(Air)보다 가볍다'는 광고를 통해 374g의 무게를 부각시키는 등 과거엔 작은 사이즈 제품이 가졌던 무게의 매력이 점점 무색해지고 있다.

전자책 단말기, 태블릿, 그리고 노트북 사이에서

기사 관련 사진
 태블릿에 무선키보드는 분리형을 권한다. 키보드 자체의 무게도 중요하다.
ⓒ 김용주

관련사진보기


어쨌거나 태블릿 시장이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건,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이 기기가 전자책 단말기와 노트북을 대체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스티브 잡스가 처음 아이패드를 세상에 소개했을 때 그는 정확히 전자책 단말기와 넷북을 경쟁 상대로 꼽았다).

여전히 전자책 단말기가 시장에 유통되고 있지만 나는 곧 그것들이 사라지거나,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점차 시장 점유율은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태블릿의 기능이 더 다양하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전자책 단말기를 선호하는 주요 이유로 책만 볼 수 있는 단순한 기능을 꼽는 사용자들이 많다.

나는 태블릿의 해상도가 높아지고 무게가 같아진 지금, 무엇보다 물리적인 책의 상당수가 컬러책이라는 사실 때문에 전자책 단말기를 비관적으로 본다. 점점 더 컬러책을 흑백 기기로 보고 싶어하지 않는 유저들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북미의 전자책 선도업체인 아마존이 이윤을 크게 보지 않으면서도 킨들 파이어라는 태블릿을 개발해서 전자책 사용자에게 안겨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그럼 노트북은? 아마도 OS의 편리함 때문에 노트북 시장은 지속될 것 같다. 단지 10인치 태블릿 시장과 겹치는 영역, 즉 넷북으로 대변되는 저가 10인치 사양들은 점점 규모가 줄어들지 않을까.

그리고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태블릿과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동해서 쓰는 사용자들이 점점 늘어가는 추세에 걸맞게 고가의 태블릿 케이스 일체형 무선키보드를 장만하는 이들을 종종 본다. 대체로 문서작업이 잦은 직업을 가진 분들이 필요를 가장한 '지름신'에 낚이곤 하는데 나는 케이스 일체형 키보드에 부정적이다.

굳이 사고 싶다면 태블릿과 케이스 일체형 키보드를 합한 무게를 한번 따져보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요즘 40~50만원대 노트북의 무게가 1kg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충분히 가볍지 않다면 태블릿에 다시 비싼 돈을 보태어 '노트북을 만들' 이유가 없다.

솔직히 스마트폰과 노트북이 있는 이들에게 태블릿은 필요 이상의 기기임에 분명하다. 소위 '어른들의 장난감'이란 의미이다. 물론, 나는 이 태블릿이 노트와 다이어리, 책, 넷북 대용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까놓고 말해서 이 기기가 없을 때도 불편함 없이 잘 살아왔다.

고로 이 기기의 정체성을 '유희'나 '자기만족적' 측면이 있음을 쿨하게 인정한다면 다음 스텝은 이 '잉여기기'를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리라. 전자제품들이 늘 그렇듯 꼭 필요해 보여서 장만했다가 시간이 지나도 손에 익지 않아 책상 서랍이나 창고에 처박아두게 되는 일이 자주 있지 않던가.

고백하건대 앞서 말한대로 나도 자주 기기를 중복해서 구입하고는 처분하기를 반복했다. 부화뇌동하지 않고 조금만 기기의 특성과 용도를 생각했다면 적절한 기기를 사고 주변기기들도 잘 맞춰서 샀을 텐데. 매번 사탕가게에 처음 들어간 아이처럼 모든 것이 필요해 보였고 다 잘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뭐, 자본주의 시장의 모토가 '필요없는 제품도 사게 만들라' 아니던가. '지름신의 강림'으로 필요가 절절하지 않은 제품을 사는 걸 참기 어렵다면 만족스럽게 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꼼꼼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괜히 비싸게 사놓고는 자녀들의 장난감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자주 '대상 자체'를 오래 따지기 보단 최저가 사이트에서 몇 천원 싸게 사는 데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지 않던가.
2014/02/25 23:06 2014/02/25 23:06
Posted
Filed under 기고글 모음/제이언니의 IT이야기
대학시절 그러니까, 대략 15년, 20년 전 즈음 '전자기학'을 가르치던 우리과(기계과) 교수님은 수업 진도와 무관하게 자주 흥분한 목소리로 '앞으로는 전자통신 분야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다', '전기전자 분야의 기업들이 길바닥에 뿌려진 돈을 갈고리로 긁어댈 날이 머지 않았다'며 이야기하곤 했다.

난 수업 집중도가 꽤 높은 학생이었음에도 그 과목의 수업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그분이 '황금알'이라고 말할 때, 뭐랄까 부러움, 애잔함, 기대감, 분노가 한데 뒤엉킨 듯한 교수님의 표정만 떠오를 뿐.

당시에 휴대용 전자기기는 CD플레이어가 전부였고 통신기기도 '삐삐'라고 불리던 무선호출기(비퍼)가 유행이었지만 휴학을 하고 다시 복학을 하는 그 몇 년 사이에 세상은 급변했다. 휴대폰이 대중화된 것이다. 나는 이동통신사들이 정부지원금을 받아가며 헐값에 뿌려댄 휴대폰 단말기들이 금세 꼬박꼬박 받아낸 할부금과 통신요금 명세서를 보면서 자주 '황금알' 비유를 떠올렸다.

건별로 부과되는 문자 메시지나 발신자 표시 서비스 등의 부가 서비스들이 특히 그랬다. 특별히 물건을 만들어 팔지 않아도 일단 통신망만 깔고 나면 사용자의 수만큼 고스란히 수입이 보장되는 정말 신기에 가까운 사업이 아닌가. 교수님이 말했던 예언이 성취되는 듯한 경험에 나는 자주 전율했다!

이제는 '카카오톡' 같은 무료 문자 어플이나 인터넷 전화 같은 데이터를 이용한 통신 방식들이 널리 퍼지면서 이른바 통신망의 '민주화'가 이루어졌지만 다시 통신사들은 이 환란을 극복하려고 애쓰고 있다. '데이터 무제한'의 유혹으로 고객 다수를 스마트폰 유저로 만들고 다시 데이터 망의 속도를 올려 고객들의 주머니를 털려는 전략인 셈이다.

물론 고객들도 변했다. 과거에는 흑백의 액정으로 의사소통만 되면 '장땡'이었지만 지금은 HD급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끊김없이 보고 싶어하는 '신인류'가 등장했다. 빠르게 급변하는 고객의 취향을 충족 시켜주기 위해서, 혹은 변덕스런 고객들의 주머니를 확실히 털기 위해서라도 기업들도 머리를 굴려서 황금알을 계속 만들어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여섯살 아들의 애니메이션 중독... 콘텐츠 사용로가 '헉'

기사 관련 사진
 실내놀이터에서도 TV를 틀면 아이들은 놀이를 멈춘다.
ⓒ 김용주

관련사진보기


최근 여섯 살된 아들이 애니메이션 중독 초기 증상을 보였다. 시작은 이랬다. 우리집은 원래 TV 자체를 보지 않았는데 통신사에서 몇 개월을 무료로 보게 해주는 조건으로 (무료로)셋톱박스(디지털 방송 수신기기)를 설치해 줬고 무료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몇 달을 더 연장해 주고 그 이후에는 요금의 상당 부분을 할인해 줬다.

그렇게 트로이 목마처럼 우리집에 침투한 이 기기는 요술 상자처럼 끊임없이 아이가 원하는 만화영화를 보여줬다. 이 요술상자에 빠진 우리 아이는 무료 콘텐츠를 중심으로 시청하다가 조금씩 최신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유료 프로그램들도 보게 됐다. 처음엔 내가 매번 결제를 해줬는데 어느 날 우리 아이가(날 때부터 IT 신동이었던지) 혼자서 패스워드를 '뚫었다'(사실, 비밀번호가 같은 숫자 4개였으니 그리 어렵진 않았으리라).

그때 나는 무얼 하고 있었냐고? 아이에게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시간은 부모가 지쳐서 쉬고 싶을 때다. 만화를 보는 그 시간만큼은 아이가 아빠를 찾지 않는다. 그렇게 애니메이션을 보는 시간은 조금씩 늘어갔고 아빠인 나도 은근히 그 여유가 싫지 않았다(젠장… 쓰다보니 무슨 중독자의 고백록 같다).

그렇게 우리 아이는 아침에도 꼭 한두 편의 만화를 보고 어린이집을 가야 하고, 집에 와서도 꼭 몇 편을 봐야 잠자리에 드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당연히 통신비도 점점 올랐다. 급기야 최근에는 명세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는데 콘텐츠 이용료가 무려 10만 원이 넘었다.

망연자실. 애니메이션을 보는 아이와 통신비 명세서를 번갈아 가며 보다가, 문득 그 교수님의 수업시간이 떠올랐다. 아아, 길거리에 뿌려진 돈을 쓸어 담듯 통신사가 우리집 주머니를 이렇게 털어가는구나 싶었다. 더욱 화가 나는 건, 이런 콘텐츠들은 한시적으로 볼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짧게는 하루 이틀, 길게는 한 달이 지나면 다시 같은 금액을 결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같은 애니메이션을 반복적으로 보기도 하고 한 편을 보다가 쉽게 질려 다른 것을 보기도 하지 않나. 결국 아이를 둔 집에서는 동일한 콘텐츠를 구입하기 위해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린 파일'이나 굿다운로더 콘텐츠도 한 번 구입해서 다운받으면 컴퓨터에 영구적으로 소장할 수 있는 요즘 같은 세상에, 아이의 욕망과 부모의 나태함을 조장한, 정말 악한 상술이 아닌가 싶다.

아내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결국 셋톱박스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박스를 제거하던 날 아이는 진심으로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 요술박스를 쳐다봤다.

"아빠, 이제 OO는 못 봐? OO도?"

아, 왠지 측은하다. 갑자기 애니메이션 천국에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아이의 일상을 생각하니 너무 갑자기 환경을 바꾸려고 한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감도 들었다. '대인배' 엄마와 달리 잔 걱정이 많은 나는 아이가 걱정이다.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창고에 있던 하드디스크, 셋톱박스로 딱이네

기사 관련 사진
 하드 외장 케이스는 셋톱 박스처럼 활용이 가능하다.
ⓒ 김용주

관련사진보기


아무래도 갑자기 없애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아, 즐겨보던 애니메이션 몇 개라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문득 집에서 굴러다니던 오래된 하드디스크를 보고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구입한 지 10년이 넘은 이 하드디스크는 예전에 쓰던 조립PC에서 떼어낸 것인데 IDE방식(인터페이스 타입의 일종)의 구형이라 SATA방식만을 사용하는 최근의 컴퓨터 메인보드에는 연결하기도 쉽지 않아 창고에 처박아둔 것이었다. 이 하드디스크를 USB에만 연결할 수 있으면 TV에서도 동영상 파일을 재생할 수 있겠다 싶어서 인터넷에서 구형 하드디스크 인터페이스를 지원하는 케이스를 만 원에 구입했다.

기사 관련 사진
 구형 하드디스크를 지원하는 외장케이스
ⓒ 김용주

관련사진보기


이 케이스는 외부전원을 지원해서 하드디스크를 USB처럼 쓸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굴러다니던 애물단지 구형 하드디스크를 마치 셋톱박스처럼 TV에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다운받은 파일 몇 개를 보여주자 아이도 조금은 안심하는 눈치(하지만 이제 애니메이션 천국의 시대는 갔단다).

사실 일상적으로 가계 비용을 털어가는 통신항목들이 적지 않다. 기기도 통신상품도 점점 새로워지고 더 좋아지고 있지만 그와 더불어 기업들은 소비자의 무지, 불성실, 나아가 욕망의 구멍을 찾아 주머니를 털어간다. 적절한 상품에 대해 합리적인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때로 IT기술들은 소비자로 하여금 카지노 룰렛을 돌리는 형태와 유사한 행위를 조장하는 것 같다. 어쨌거나 우리 아이의 애니메이션 중독이 아빠를 자극했고, 폐기될 운명의 하드디스크도 구했다. 이제 아이와 물리적으로 좀 더 많이 놀아주는 일만 남은 건가.(휴…)
2014/02/25 23:05 2014/02/25 23:05
Posted
Filed under 기고글 모음/제이언니의 IT이야기
2010년 스티브 잡스가 소파에 앉아서 아이패드를 시연한 이후 우리에게도 태블릿PC(아래 태블릿)는 스마트폰과 더불어 친숙한 IT 기기가 되었다.

나는 '메모광'에 '노트중독자'라고 불릴 만큼 평소에 종이에 끄적이는 것을 즐겼는데 이 노트들을 보관하는 것은 정말 골칫거리였다. 게다가 플래너도 매일 꼬박꼬박 기록하는 편이었고 가방엔 항시 몇 권의 책을 넣어 다녀야 안심이 됐다. 언제나 내 가방에는 종이들 뭉치로 가득했고 아내는 자주 백팩을 멘 나에게 '거북이 등껍데기' 같다고 놀리곤 했다. (사실 아내도 나 못지 않게 가방이 무거운 편이어서 나는 '달팽이'라고 맞받아쳤다. 부부란 원래 좀 유치해야 제맛이다.)

그런데 이런 내게 태블릿의 출현은 종이더미 삼종 세트로부터 내 등짝을 해방시켜 주리라는 희망을 안겨다 주었다. 플래너와 노트, 그리고 종이책이 그것이었다. 지금은 더 많아졌지만 노트와 플래너 어플(Application)들이 물리적인 노트들의 대용품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심어줬고 그 시기부터 전자책 시장의 전망도 밝다는 류의 기사들이 매체에 종종 등장했다.

이제 거북이에서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게 된 셈이다. 그 해 연말 육아의 책임(이라 쓰고 즐거움이라 읽는다)을 충실히 수행했다며 갖고 싶은 선물이 있으면 사주겠다는 아내의 말에, 망설임 없이 태블릿을 선택했고 그렇게 태블릿 유저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태블릿PC 덕분에 '거북이 가방' 벗고 가벼워졌는데...

기사 관련 사진
 국내에서 출시된 전자책단말기 페이지원
ⓒ 김용주

관련사진보기


나는 태블릿 출현 이전부터 전자책이나 전자출판 자체에 관심도 많았고 이미 당시 시중에 유통된 '페이지원'(페이지원 골수 사용자였던 우리들은 그녀를 '지원이'라고 불렀다)을 사용하면서 전자책 시장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당시에도 하드웨어 측면에서 단말기의 완성도가 높아 보였고 전자책 시장의 남은 과제는 그저 라이센스를 둘러싼 출판업계와 온라인서점, 그리고 소비자 간의 문제로 여겨졌다. (쉽게 말해, MP3 파일처럼 종이책도 광범위하게 불법유통, 다운로드되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 같은 두려움이 그 실체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원이'를 사용하면서, 그리고 본격적으로 태블릿 헤비 유저가 되어가면서 문득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태블릿이 종이책을 구원하지 않을까.

종이책을 구원한다고? 물론이지. 나만 하더라도 가방에 항시 넣어 다니던 대여섯 권의 책과 노트들이 사라졌다. 이렇게 종이로 둘러싸인 내 생활방식이 전자매체로 변하게 되면 수많은 나무들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내가 잠시 '지름신'이 강림하여 내 한 욕심 차리자고 구입한 태블릿은 사실 전 지구적 환경 보존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기도 한 것 같았다.

고가의 태블릿을 사기 위해, 은근히 아내 눈치도 보고 마음 한 구석도 찜찜했는데 잘됐다 싶어 관련 책들을 찾아봤다. (나는 일상적 논리를 만들 때조차 일단 책을 찾아보는 편이다. 떨쳐내지 못하는 모범생 기질이여.) 몇 시간의 검색 끝에 적절한 책을 찾았다. 애니 레너드라는 환경학자의 유명한 책 <물건이야기>. 이 책은 내가 고민하던 문제를 쉽고 자세하게 다룬 듯했다.

그 책에서 애니 레너드는 북아메리카 나무의 절반이 신문, 포장재, 문구류에 이르는 종이를 만드는 데 쓰이며 매년 미국에서 판매되는 책에 나무 3000만 그루가 들어간다고 말한다. 우리가 독서를 열심히 하면 엄청난 양의 나무가 끊임없이 죽어가는 셈이다. 게다가 종이를 만드는 데에는 나무만 희생되는 게 아니다.

종이 제조업은 온실가스 배출 5위 안에 들며 많은 양의 물과 독성 화학물질이 사용되는데 이것은 생태계로 가감없이 방출된다. 종이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화학물질은 염소와 수은이 있으며 이는 내분비계, 생식계, 신경계, 면역체계 손상 및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무염소 표백이나 대안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등 이러한 화학 물질들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종이의 질을 악화 시키는 방향이므로 개선이 쉽지 않다.

결국 종이책을 소비하는 것에는 나무를 좀 더 심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공정상의 수많은 유해한 작업들이 내재해 있다. 책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쉽게 구입하면서도 쉽게 버리는 노트들과 박스들도 동일한 공정을 거친다.

이렇게 본다면 생태적 마인드를 고취하는 의미에서라도 태블릿은 대안적인 삶의 지표가 되리라는 내 가설은 옳았다. 나의 '지름신 강림'의 사적 욕구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구원을 이뤄주는 건 아닐까 하는 흥분감마저 드는 순간이다. 내가 1년에 소비하는 책만 전자파일로 태블릿에 들어온다면 많은 나무들의 잔혹사 없이도, 화학물질 처리나 폐수들의 오남용 없이도 클린 소비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 나는 아내에게 더 당당하게 태블릿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헤헷.

전자기기가 만들어내는 환경오염의 실체 알고 나니

기사 관련 사진
 태블릿이 종이책을 구원할까
ⓒ 김용주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책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종이 제조는 이 책에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고 그 다음부터는 전자기기들의 환경 문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게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책장을 계속 넘겼다. 역시나 애니 레너드는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노트북과 태블릿의 제조 과정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상상대로 전자기기는 종이책의 제조공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제조공정이 복잡했다.

한때 실리콘밸리도 하이테크 개발에 의한 독성물질 오염지역이 너무 많아 청정화 프로그램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판정받았다. 현재는 공장의 상당수가 인건비가 더 낮고 노동자안전 및 환경규제가 덜 엄격한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로 이전되었다.

태블릿에 들어가는 마이크로칩만 보더라도 그 작은 칩 안에 2000개 이상의 물질이 들어가며 그 물질들에는 금, 탄탈, 구리, 알루미늄, 납, 아연, 니켈, 주석, 은, 철, 수은, 코발트, 비소, 카드뮴, 크롬 등의 중금속이 포함된다. 태블릿에 들어가는 기판 하나의 무게는 대략 0.16그램인데 기판 하나를 생산하는 데 물 20리터와 화학물질 45그램이 들어가며 100와트짜리 전구를 18시간 동안 켤 수 있는 에너지가 들어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태블릿 한대가 환경을 오염 시키는 수준은 종이책 몇 권에 상당한 것일까. 처음의 희망은 접고 어차피 태블릿 유저가 된 이상, 최소한 그 정도로는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 같은 게 막 생기려고 한다.(일단 후퇴다…) 정확한 셈을 할 수는 없었지만 태블릿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생태계에 도움이 되리라는 셈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으리라.

허나 문제는 태블릿의 신제품 주기가 1년밖에 되지 않으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2~3년 주기로 태블릿을 신형으로 바꾸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는 점이다. 해상도가 좋아졌다는 이유로, 무게가 줄었다는 이유로, 과거에 지원되던 OS를 지원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유로 우리는 되도록 빨리 새 기기로 갈아탈 것을 '뽐뿌질' 당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신제품 출시 없이 같은 기기를 장기적으로 시장에 방치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우사인 볼트에게 더 천천히 달리라고 요구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주문이다.

솔직히 올해 초 나는 사용하던 태블릿을 중고로 처분하고 새 제품을 구입했다. 기기는 올림픽 구호처럼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 작동했다. 가격은 2년 전과 동일하거나 때론 더 저렴해졌다. 조금만 공부해 보면 당신이 태블릿으로 종이책을 구원하려는 원대한 포부를 가졌다면 최소한 5년에서 10년은, 아니 제품이 고장 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전자기기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줘야 할 판이다.

다시 말해 아이패드 사용자는 지금도 2010년에 출시된 초기 모델을 꿋꿋이 써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나는 그럴 자신은 없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생태적 마인드를 가지고 일상을 살아간다는 건 거대담론의 논지에 동의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항상 수반하는 듯하다.

문득 홀쭉해진 가방쪽을 쳐다봤다. 가방 속 태블릿에는 70권이 넘는 전자책이 들어있다. 매일 가방에 넣을 책을 고르느라 고민하던 시간이 줄긴 했다. 더 이상 거북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더 '인간'다워졌다고 할 수도 없는 내 출근길. 이렇게 또 반복된다.
2014/02/25 23:04 2014/02/25 23:04
Posted
Filed under 기고글 모음/제이언니의 결혼일기
지금은 주변에 얘기해도 잘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소문난 모범생이었다. 특목고 진학을 꿈꾸던 중학생 시절, 나는 그저 ‘공부기계’였다. 같은 문제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풀었으므로 시험을 보면 답이 툭툭 튀어나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코흘리개 시절에 소심하다거나 착하단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시험을 몇 번 잘 치고 나니 ‘모범생’이란 딱지가 붙었다.

그 이후로 나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범생의 모습을 유지하고자 부단히 애를 썼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당시에 부모님은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다. 두 분이 잠시 별거를 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를 때면,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를 우울한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아마도 그때 나는, 내가 모범생이 되면 부모에게 기쁨을 줄 수 있게 되고 그러면 내가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다시는 이전처럼 슬프게 헤어지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까지도 어떤 조직에 들어가거나 어떤 일을 할 때 다분히 성취 지향적인 행동에 집착하여 매사에 지나치게 긴장하는 습관을 갖게 된 건 아마 그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되고 싶었고,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고, 그것도 좋은 학과에 가고 싶었다. 물론 그 근저에는 항상 ‘부모가 원하는’ OO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솔직히 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부모가 뭐가 되라고 괴롭힌 적도 없지만,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공부를 잘하면 의례히 그렇게 되리라는 ‘어떤’ 학과와 직업을 제시하곤 했고 나는 그것을 목표로 공부만 해댔다.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공부기계가 되고 ‘모범생 코스프레’를 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그 몹쓸 모범생 코스프레는 30대 초반까지 줄곧, 그리고 불혹을 앞둔 지금까지도 나를 짓누르는 어떤 내적 지향성이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 또래의 많은 이들이 참 착한 자녀의 삶을 살아왔고 그 모범생의 삶을 이제는 자기 자녀에게 강요하는 걸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주변의 많은 이들도 부모의 기대, 바람의 대물림을 반복하고 있는 듯하다. ‘타자의 욕망’, 특히 부모의 욕망에 따른 삶에 익숙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삶의 주체성이 결여된 채 분주하게 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분주함의 대부분은 파편화된 사건들, 그 개별적인 것들을 잘 마치는 것, 그 성과로 누군가에게(부모에게, 직장상사에게, 혹은 남친이나 여친에게, 배우자나 자녀에게) 칭찬받는 것에 목적을 둔다. 얼핏 보면 책임감이 강하고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그 내면 깊은 곳에서는 영혼이 소멸되는 느낌, 나 자신의 삶을 살지 않는 것 같은 느낌, 칭찬해주는 주체가 없으면 존재 이유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자신을 지배하는 셈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회사를 왜 다녀야 하는지, 왜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같은 당연한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순간 숨이 멎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조금은 다른 얘기지만, 요즘 ‘픽업 아티스트’라는 직업이 성행한다고 한다. 이게 무슨 예술가인가 했더니 쉽게 말해서 여자 꾀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이란다. 이런 곳에다 몇 백만 원씩이나 돈을 내며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넘쳐난다고 하니, 이성을 사귀고 싶지만 잘 안 되는 싱글들이 많기는 많은 모양이다. 연애를 하는 이들은 ‘연애 상담’도 많이들 받는다. 연애 중인 커플들은 ‘결혼예비학교’라는 곳도 간다. 그뿐이랴. 요즘 결혼 후 아이를 출산한 부모들을 위한 ‘부모학교’도 성행하고 있다. 이렇듯 모두가 모범적인 연애, 결혼, 육아, 자녀교육을 실수나 시행착오 없이 수행하고 싶어 한다. 물론 배우는 건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배움 행위들이 어떤 내러티브나 연관성을 갖지 않고 파편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해서 개인이나 관계의 근본적인 성장을 담보로 한다기보다는, 중고교 시절의 반복처럼 연애, 결혼, 출산, 육아도 그 개별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이른바 그 분야의 모범생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느낌이 강하다는 말이다.

연애, 결혼, 출산, 육아 매 단계에 모범생이 되는 게 인생의 목표가 아님을, 나는 결혼한 지 10년째인 지금에서야 아내를 통해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일례로 나는 칭찬받는 연애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정작 연애를 하는 중에는 즐겁지 않을 때가 많았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나는 생애에 한번뿐인 귀한 예식에 집중하기보다는 주변의 눈치를 참 많이 봤다. 그 과정에서 정작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한 것도 있었고 원하지 않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다. 신혼 초에 심하게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이 결혼이 좌초되고 실패한 무엇으로 전락하게 될까봐 두려움에 떨었다.(매번 아내보다 내가 더 지질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본다. 난 무엇을 두려워했던 걸까. 진실한 삶 그 자체였나, 아니면 인생에서 중요한 매 단계마다 누군가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으려 한 건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모범생의 티를 벗으려고 애쓰는 내 모습을 본다. 내 잣대대로 남을 평가하지 않는 것, 나아가 그 잣대대로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는 것, 타인의 눈치를 보기보단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음성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 문득 그런 상상을 해봤다. 나의 부모가 서로 깊이 사랑해서 그 충분한 사랑을 통해 자주 “우리 걱정은 말고 네가 원하는 걸 하렴.”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면, 그러면 나는 어떤 아이가 되었을까. 생각만으로도 표현 못할 감정이 요동치는 느낌이다. 지금 우리 가정에, 내 아이에게, 그리고 나와 내 아내에게도 필요한 음성은 아닐까.
2014/01/15 23:44 2014/01/15 23:44
Posted
Filed under 기고글 모음/제이언니의 아빠일기
'제이언니의 아빠일기' 열두 번의 연재 기사를 쓰고 나니 아쉽게도 더 이상 풀어낼 만한 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들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매일 쓸 이야기가 넘쳐난다는데, 반복되는 일상에서 어떤 혜안을 얻고 그것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일은 내게 쉽지 않았다(우리 가족과 내 아이가 즐길 만한 이야기들은 더러 있지만 공유하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다).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연재기사의 시작은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여기게 된 굵직한 몇몇 사건들에 기인했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남자와 여자는 여러 가지로 사소한 불평등이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 남자 아이들의 번호는 1, 2, 3번으로 시작했지만 여자애들의 번호는 41, 42, 43번이었다. TV에서 보던 재미있는 드라마 속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계급은 분명했다. 하다못해 우리말 더빙이 된 외국 드라마에서도 남편은 반말을 했지만 아내는 존댓말을 썼다. 나는 이런 상황이 글로벌 표준인 줄 알았다.

되돌아 보면 어릴 적 우리 부모님도 그렇지만 집집마다 부부싸움이 심했고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도 많았는데,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을 도리어 남편이 좋은 말로 돌려보내는 경우도 잦았다고 한다. 부부문제는 가정사이니 가장인 남자가 잘 해결하겠다고 몇 마디만 건네면 경찰은 잘 알았다는 듯, 혹은 귀찮게 이런 일로 오게 하지 말라는 듯 무심한 발걸음을 돌렸다.

여자는 짐짝처럼 남편의 강한 손에 붙잡힌 채로 집안으로 끌려들어 갔고, 나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호기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실례라는 생각이 어슴푸레 들었다. 따지고 보면 대놓고 '남편(남자)은 하늘'이라는 가부장제도 교육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체화할 수 있는 많은 암시들이 그 시절에는 참 많았던 것 같다.

친누나와 나 사이의 차별도 꽤 심각했다. 나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내가 아들이란 사실에 대해, 자라면서 내가 누나보다 많은 혜택을 입은 것에 대한 미안함을 갖고 있다. 내가 누나를 해코지한 건 없으므로 사적으로 미안한 건 없지만, 자라면서 아들로서 받은 혜택을 누나는 덜 받았거나 거의 받지 못했다. 이런 것에 대한 찜찜함은 참 오래갔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수가 남녀차별을 경험했음을 깨닫는 데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청년기 시절, 남녀문제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읽어낼 만한 그릇이 못 됐다. 여성은 '연애'의 대상 혹은 어떤 '공략'의 대상이었지 여성문제 자체가 내 관심사는 아니었다. 여자친구를 만들기 위한 어떤 에티켓이나 여성 심리가 궁금했지 성평등 이슈나 가부장제 속 여성의 인권 등의 개념은 없었다. 그보다는 더 진지하고 중요한(혹은 중요하다고 알려진) 정치 이슈나 내 개인적인 학업, 취업 이슈가 더 중요했던 시기였다. 또, 군대도 가야 했으므로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2년 넘게 병역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 자체도 은근히 불만스러웠다.

시간은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이라는 걸 생각하게 되면서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자주 보던 백마 탄 기사 '코스프레'를 하게 됐다. 책에서 읽었거나 어디선가 주워들은 로맨스의 정석대로 여자친구에게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게 해주겠다' 따위의 참으로 아름다운 동화 같은 약속을 했다.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100일, 200일을 지나 프러포즈도 하고 양가 부모님도 잘 설득하고, 그렇게 내 연애는 아름답게 결혼으로 골인하는 듯했다.


여성에 보수적이었던 내가 변한 결정적 계기는 '결혼'

하지만 결혼이 답 없는 대서사극의 시작이었음을 점점 깨닫게 됐다(여기서부터가 개략적으로나마, 내가 연재글에서 풀어내던 이야기의 시작인 셈이다). 글에서 자주 언급했듯 결혼 이후 나는 완전히 '카오스 상태'를 경험했다. 물론 그 카오스, 혼돈 상태라는 게 환경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30년간 쌓아온 어떤 나만의 체계가 무너지는 느낌, 내가 경험해온 체계로는 이 상황들을 합리적으로 헤쳐나갈 수 없을 것 같은 혼돈,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이 빨간약을 먹고 깨어난 새로운 세상과의 대면 같다고나 할까. 어쨌든 적어도 나 잘난 맛에 '시크'하게 살았던 과거는 그렇게 갔다.

아내는 자주 질문했다. 왜 명절에 자기 집에는 갈 수가 없는지, 처가에 가면 김 서방은 쉬고 시댁에 가면 며느리는 왜 일을 해야 하는지, 아이가 태어나면 왜 엄마의 성은 쓸 수 없는지, 돌림자는 꼭 넣어야 하는지, 호주는 왜 남자여야 하는지, 왜 남자는 육아휴직을 하지 않는지, 일상적으로도 왜 주말에도 남자는 아이를 전담할 수 없는지, 여성은 왜 임신 기간 동안 소화제나 두통약 하나도 제대로 못 먹고 맥주도 한잔 할 수 없는 상황을 감내해야 하는지….

처음에는 그냥 대답하기 싫었다. 내 삶도 충분히 피곤했으므로. 스물아홉의 나이에 취업을 해서 이제 막 직장생활에 익숙해질 즈음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그저 가정과 회사 양쪽에서 샌드위치로 압박 받는 불쌍한 남자가 된 느낌을 받았다. 부모와는 분리되는 게 마땅하나, 누군가에게는 의지하고 싶은 미성숙한 남자아이로 세상에 던져진 것 같은 억울한 정서도 있었다.

게다가 성평등 이슈는 처음부터 남성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었다. 대부분의 남성에게 있어 여성은 내가 책임질 대상, 돌봐줘야 할 화분 같은 존재로서 아끼고 사랑해주는 것이지 나와 어깨를 맞대고 경쟁하고 팀워크를 맞춰가야 할 위치로 올라올 때는 더 이상 배려의 대상일 수 없다.

많은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이중적 태도가 이런 측면에서 기인한다. 어리바리한 신입 여사원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동네 오빠 혹은 삼촌 같은 모습이지만, 자신과 진급이나 고과를 두고 경쟁하게 되는 '커리어우먼'(이 단어 참 묘하다)들에게는 뒷담화가 장난이 아니다.

역차별을 운운하거나 '상사에게 꼬리를 친다' 등의 듣기조차 불쾌한 말까지 내뱉으며 내면의 부정적 정서들을 가감 없이 쏟아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성은 수동적이면서도 저자세이고, 얌전하고, 가부장제에 잘 적응하며 출산·육아의 천명을 군말 없이 잘 수행하는 '현명함', '현숙함'이 전제돼야 나이가 들어도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는다. 그에 더해서 일도 잘하면 사회가 준남성으로 받아줄 용의가 있다.

아마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아내와 일상을 살면서 이 모든 담론들을 체험적으로 고민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성 문제에 관해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했을 것이다. 더 섬뜩한 건,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진보적이고 개화된 남성이라고 굳게 믿으며 살았을 것이라는 점.

왜냐하면 나는 담론으로서의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생각들에 대해서는 항상 열려있고, 새로운 지식들을 열정적으로 습득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삶과 별개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함에 있어 나는 관대했다. 하지만 내 일상에 들어온 부조리를 해결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을 때 나는 회피하고 싶었고, 불편했고, 때로는 힘들었다. 하지만 자주 '내가 아내라면', '내가 여자라면'이라는 생각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내는 남편을 더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모든 갈등의 해결점은 '이해'가 시작이라 생각한다. 물론 대다수의 가정학교·아빠학교에서는 '이해'를 종착역으로 가르친다. 아내를 이해만 해줘도 아내는 정서적으로 만족해서, 그 결과 가부장제가 유지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혹은 강요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아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남편을 '족칠' 필요는 없다. 이해가 되면 남자들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때문이다.

그 해결책을 찾는 지점에서 아내는 많은 이야기들로 남편을 불편하게 만들고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 어차피 부부관계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부부가 다양한 방향으로 해결책을 내 자신들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전제가 남편과 아내가 동등한 주체, 평등한 위치라면 그 개별 삶의 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건강하게 발전하리라고 예측하는 것이다.

나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그 작은 소망, 그 사소한 시발점으로부터 주변 관계의 다발이 줄줄 엮여 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관계의 다발들이 풀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로 한 사회를 이루고 있는 느낌이 들었고, 그 사회가 대한민국이라는 한 국가의 담론 곳곳에서 고질적인 문제들을 일으킨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됐다.

'제이언니의 아빠일기'를 통해 언니(여성)의 시각으로 아빠(부모)의 삶을 솔직하게 풀어내고 싶었다. 작게는 출산·육아를 둘러싼 소소한 일상에서 시작해 남녀 성평등, 가부장제도, 나아가 자녀에게 '올인'하는 가족구조의 미래 등을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다. 거창한 욕심과는 달리 경험한 이상의 것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아 여기서 연재를 덮는다. 읽어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2013/12/09 23:15 2013/12/09 23:15
Posted
Filed under 기고글 모음/제이언니의 아빠일기
놀이터에서 아이가 놀고 있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두 살 많은 다른 아이가 감옥놀이를 한다며 아이의 멱살을 잡고 끌고 다니다가 좁은 공간에 가둬두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나는 대체로 놀이터에서 또래 애들끼리 놀 때는 개입을 안 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심하다 싶어서 그 아이에게 동생들을 가둬두는 놀이는 하지 말라고 훈계 아닌 훈계를 했다.

정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아이를 괴롭히는 상황을 목격하니 눈이 뒤집히는 경험을 했다. 잠시나마 '이 자식이 어디서…'라는 생각과 함께 그 아이에게 똑같이 멱살을 잡고 끌어내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 자기가 괴롭힌 아이의 아빠가 나타나 훈계를 해댄 탓에 당황했던지 그 아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을 하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갔다.

동네 장난꾸러기를 '악의 축'으로 만들진 않았나요?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가는 일이 일상인지라 그 다음부터는 그 아이가 눈에 자주 들어왔다. 그 아이는 또래 동생들보다 몸집도 커서 매번 같이 놀다보면 어린 아이들을 괴롭히는 형국이 되곤 했다.

가만히 보니 이 아이는 동생들 때문에 불가피하게 그곳에서 놀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으나, 동생들을 돌보기에는 아직 어렸다. 게다가 동생들 또래 애들과 놀기에는 너무 차이가 나서 종종 문제를 일으켰고, 이미 동네에서는 다른 부모들의 경계 대상이 되곤 했다. 사정을 알고 나서는 그 아이에게 먼저 말도 걸고 인사도 하고 종종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자연히 그 아이도 나와 내 아들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누그러졌다. 때론 친동생들과 더불어 내 아이를 챙겨주기까지 했다(역시 아이들이란!).

이것도 투사라면 투사라고 해야 하나. 그 아이를 보면서 내 유년기·청소년기의 어두운 기억들을 떠올려 봤다. 그리고 사회에서, 작게는 한 마을에서 쉽게 유년기의 아이를 향해 규정짓는 선입관들이 그 아이를 고립시키고 더 문제아로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보다 더 어른들의 눈치를 보면서 크는 요즘 아이들의 성숙한 표정들을 대할 때마다 무슨 이유인지 마음 한편이 못내 불편하기만 하다.

우리는 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누군가의 아이를 벌써부터 '악의 축'으로 규정짓는 건 아닌지. 내 아이에게 해대는 못된 행동에 대해 그대로 갚아주고 싶은 마음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고 보니, 이것이 부시 정권의 반테러 정책과 다를 게 없다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허허.


내 아이의 행복? 다른 아이에게서도 나온다

흥미롭게도 내 아이도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에게 때때로 과격한 행동을 한다. 불합리한 놀이의 룰을 강요해서 동네의 다른 동생들을 힘들게 만들면서 은근히 쾌감을 느끼기도 하고 서로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동생들을 때리기도 한다. 그럴 때는 가서 말리기도 하지만 놀이터의 권력구도에서 내 아이가 '갑'일 때는, 솔직히 고백하긴 창피하지만 '애들이 같이 놀다보면 때리기도 하고 맞기도 하는 거지'라는 다소 여유로운 마음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지 놀이터에서 아이들끼리 싸울 때 피해를 입은 쪽의 부모가 서운함이 커져서 생기는 갈등을 종종 본다. 제3자의 입장에서 양쪽 부모의 스탠스가 모두 나에게도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런 걸 보면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서 부모는 다 자기 새끼를 감싸고 도는 원초적 본능이 있는 것도 같다.

요즘 자주 회자되는 말 중에 '지속가능한'(sustainable)이란 용어가 유행이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성장을 담보하는 어떤 방향을 지칭하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 'OO 생태계'라는 말도 비슷한 의미로 자주 쓰이고 있는데 어떤 사안·전략·개별 주체 하나만 잘 돼서는 큰 효과를 내기 힘들고, 근본적으로는 그 주변 인프라가 잘 갖춰져야만 시너지 내지는 지속적인 발전이 이뤄진다는 반성에서부터 기인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조한혜정 교수가 매체에서 자주 언급하는 '창조적 공동체'라는 말은 내가 이해하기로는 기본적으로 동네의 아이들을 내 자식같이 생각하고 남의 집 아이가 밥을 굶고 다니면 데려와서 내 아이와 함께 먹이는 이웃 공동체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잠정적 '문제아'의 소지가 있는 아이들을 동네의 어른들이 품어주고 관심을 쏟아서 우리 아이들의 좋은 친구가 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이는 봉사나 나눔의 룰이라기 보다는 실용적·실리적 측면에서 '내 아이의 행복'을 담보로 하는 마을 생태계를 만들기 위함이기도 하다.

반대로 말하자면 내 아이에게 위협이 되는 환경을 없애려는 실리적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또한 내가 악하고 무책임한 부모라고 전제할 때조차 내 아이가 사회에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을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내 아이가 잘 나가기를, 성공하기를, 부자되기를 욕망하고 그것에 엄청난 투자를 하면서도 아이를 둘러싼 위험 요소들은 끊임없이 피해가고 배제시키고 내 아이만 보호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더 건강한 '욕망'의 발현

흥미롭게도 아이를 키우면서, 이 사회의 고질적인 프랙탈(fractal)을 경험하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마치 한참 유행하던 "바보야, 문제는 OO야" 식으로 말한다면 이 모든 문제는 내 아이를 둘러싼 '인프라', '생태계'로 환원된다. 그렇게 따지자면 우리는 스스로가 진보성향이든 보수성향이든 간에, 우리의 육아교육 전략은 환경(생태계) 파괴를 담보로 한 1970~1980년대 성장주의 전략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이를 출산할 즈음 아내와 상의해 국내와 해외 각각 한 명의 아이를 후원하기로 결정했다. 내 가정, 내 아이만을 위해 살지 않도록 경계하려는 의도였다. 솔직히 나는 구제와 봉사를 하고 있다는 심정적 안도감, 도덕적 우월감을 얻고 싶은 욕망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욕망을 한다는 것 자체를 탓하기보다는 그런 욕망을 가지고 보다 적극적으로 후원을 하는 게 더 건강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내 아이를 키우면서는 내 아이와 동시대를 살아갈 많은 아이들이 유아, 청소년 시절부터 배제되고 위협적 존재로 치부되지 않는 생태계를 조금이나마 만들어 갈 책임이 아이의 부모들에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이 조금씩 커진다.
2013/11/15 23:13 2013/11/15 23:13
Posted
Filed under 기고글 모음/제이언니의 아빠일기
나: "퇴근 안 해요?"
남자직원: "그냥 집에 일찍 가기가 싫으네요. 딱히 갈 데도 없고."
나: "왜 싫어요?"
남자직원: "집에 가면 아내가 가만 놔두지를 않아요. 첫째 아이도 제 몫이고 밀린 집안일도 도와야 하는데 오늘은 회사일로도 좀 지치네요."
나: "네…."

일이 다 끝났는데도 귀가를 미루는 유부남 동료들을 종종 본다. 귀가 후에 쉴 수 없어서 회사에 머무는 이들. 한때 간 큰 남자 이야기가 자주 회자되곤 했는데 그와 비슷하게 유부남 직원들끼리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옛날에는 마초와 마초 아닌 남자, 즉 육아·가사를 전혀 분담하지 않는 남자와 분담하는 남자로 구별이 되었다면, 지금은 영혼을 담아 육아·가사를 분담하는 남자와 '영혼 없이' 분담하는 남자로 나뉜다고들 한다. 즉, 가사·육아를 분담하지 않는 남자는 없다는 말이다.


새로운 가족의 출발점, 엄마는 고통받고 아빠는 억울하다

삼십대의 대다수 남자들은 직장에서 자기 에너지가 거의 소진될 정도로 노동력을 공급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귀가한 집은 이들이 꿈 속에서 그리는 '스위트 홈'은 아니다. 아이와 한판 전쟁을 치르고 난 카오스 그 자체의 상황. 집에 도둑이 들었나 싶을 정도의 어수선함 속에서 아내는 지쳐서 애타게 남편의 귀가 시간을 기다린다. 집 문을 여는 순간, 아내의 가사·육아 관련 지시가 떨어진다.

하지만 아내를 돕고 싶어도 띄엄띄엄 알고 있는 집안 일과 육아는 서투르기만 하다. 열심히 해보지만 그릇을 깨거나 아이를 울리거나 걸레와 행주를 헷갈려서 식탁과 주방을 더럽히거나 비싼 겉옷 빨래를 망쳐놓기도 한다. 아내는 남편의 반복되는 서투름에 짜증을 내다가 이내 '곧 죽어도 내가 하는 게 낫지, 저리가'라며 소리를 지른다. '나도 너만큼이나 힘들었어'라고 말하고 싶지만 입밖에 내면 싸움이 더 커질까봐 삼킨다.

결혼을 결심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때는 둘이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던 부부였건만, 이들은 아이가 태어나는 시점에 거대한 전환기를 맞는다. 군대를 갔다 와서 정상적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해도 20대 후반, 휴학을 했거나 대학원이라도 간 사람은 30대에 들어서고 나서야 사회 생활이 시작되므로 자리를 잡으려다 보면 결혼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요즘은 중년이 되어서야 육아가 시작되는 커플들이 늘고 있다.

변화도 많고 사색도 깊어지는 중년의 나이. 그 와중에 아이가 태어나고 직장 생활과 가사·육아의 분담 문제만 해도 이미 부부는 넋이 나간다. 사회가 육아를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가부장제도가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그 역할을 강요하다 보니 여성 입장에서는 아무리 주위를 살펴봐도 하소연을 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거나 분노를 표현할 대상이 남편뿐이다.

죽고 못 살던 연인 사이가 불과 몇 년 사이에 타자화되고 분노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결국 사회에서 새로운 가족의 출발점인 출산, 육아, 자녀 교육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부부 관계는 소원해진다. 엄마는 고통 받고 아빠는 억울하다. 엄마의 고통은 말할 나위가 없으며, 아빠들 또한 '왜 나만 가지고 그래? 나도 힘들어'라고 말하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의 반복이다. 반복은 만성이 되고 그 안에서 부부의 생명력은 죽어 간다.

'영혼 없는' 가사육아 분담, 중년 남성은 어디로 가나

기사 관련 사진
 <대한민국 부모> 표지.
ⓒ 문학동네

관련사진보기

충격적으로 읽은 <대한민국 부모>란 책에서 저자들은 자녀 교육 문제로 일그러진 한국 사회의 가정 문제를 깊이 있게 풀어냈다.

대한민국은 자녀 교육의 늪에 빠져서 가정과 사회, 특히 부부를 찢어 놓고 있다. 따지고 보면 엄마가 매니저가 될 정도로, 아빠가 다른 가족을 이민 보내고 기러기 생활을 할 정도로 자녀 교육에 '올인'하게 된 건 상당히 최근의 일이다.

과거 아이들은 특별한 조치 없이도 그냥 자랐다. 그 세대를 동경하거나 옳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한민국의 모든 부부들이 온 정성을 쏟는 육아와 자연스레 이어지는 자녀 교육, 고가의 사교육 그리고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흔들리는 중년 남녀의 삶의 방향성을 생각해볼 때, 그 효능조차 검증되지 않은 '아이 성공시키기 프로젝트'에 너무 깊이 매몰된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덜컥 들곤 한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내 삶도 변했다. 나는 일상에서 더욱 보수적으로 변해간다. 진보적인 생각을 하던 청년 때와 달리 직장 생활도 '가늘고 길게' 가기를 진심으로 바랄 때도 있다. 적어도 아이가 자라는 동안은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아내와 나누던 대화의 질도 비교할 수 없이 낮아졌다.

그저 아내가 지치지 않기를, 그녀의 여가 시간을 확보해주기 위해 육아와 가사를 효과적으로 분담해주는 행위, 그 자체에 몰입할 뿐 우리 부부 관계의 깊이, 영혼의 대화, 이 사람과 진정 마음이 관통한 것 같은 느낌은… 감을 잃은 것도 같다. 잠시만 고생하면 될 것 같던 이 부모 노릇은 생각하면 할수록 단기 프로젝트가 아님을 새삼 절감한다. 우리는 그저 이 아이를 잘 기르기 위해 결혼을 했던 걸까.

다행히도 아내는 자주 나를 돌아보기를 권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내와 나의 관계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환기시켜줄 때가 많다. 요즘 특히 더 그렇다. 바꿔 말하면 나는 그만큼 육아과정에서 산만하고, 갈피를 못 잡고, 나를 잃어버리고 있고 아내와의 관계를 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대한민국 부모>에 등장하는 부부들이 그렇듯 나도 육아 과정에서 표류할 조짐이 보인다.

사회에서 내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집에서는 아내를 돕기 위해 '영혼 없는' 가사·육아의 분담을 선택하는 많은 남편들은 가정 안에서 정작 중요한 정서적인 유대감을 잃고 있다. 회사에서 멍 때리면서 집에 가기를 미루거나, 유흥가에서 돈을 주고 연인에게 받았던 위로와 사랑을 구걸하거나, 다른 명예나 성공을 통해 정서적 결핍을 보상받으려 노력하기도 한다. '즐거운 나의 집'을 위해 시작된 중년 남성들의 희생의 종국은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요즘 나의 고민은 이런 류이다.
2013/11/15 23:12 2013/11/15 23:12
Posted
Filed under 기고글 모음/제이언니의 아빠일기
"이 분 여자 아닐까요? 기사를 보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이제 16개월짜리 아들을 키우며 직장맘 체험(?)을 톡톡히 하고 있는 후배 편집기자가 연재 '제이언니의 아빠일기' 기사를 보며 던진 말입니다. 이런 생각, 남자라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면서요. '주 1회도 힘든데, 아내는 오죽했으랴', '마트서 아이 등짝 때린 엄마, 쉽게 손가락질 마시라', '"애 안 키워봤으면..." 그런 말 하지 마세요'까지 연재 10회 동안 쓴 기사 제목만 봐도 스스로 '제이언니'라고 칭하는 이 남자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집니다.

'위로는 상대에게 내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라는 글을 최근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요. 일주일 내내 직장에 다니면서 주말육아까지 책임져야 하는 힘든 와중에도 연재기사를 통해, '남편도 아이들도 몰라주는 당신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는 제이언니와 이메일로 나눈 인터뷰 내용을 싣습니다.

☞ 김용주 시민기자가 쓴 기사 보러가기

"일과 육아로 힘든 직장맘, 남편의 지지도 많이 못받아"

기사 관련 사진
 <제이언니의 아빠일기> 연재하는 김용주 시민기자, 아이와 함께
ⓒ 김용주

관련사진보기


- '제이언니'라는 호칭이 꽤 자연스럽다. 집에서는 아내가 뭐라고 부르는 지 궁금해졌다. 설마 아이가 언니라고 부르는 건 아니죠?
"아내는 저를 평소에는 '여보야'로 부르고요. 제 이름 때문에 '용파리'라고 할 때도 있고 감정 상태에 따라 여러가지 표현으로 달라지기도 합니다. 아이가 엄마, 아빠를 부를 때 재미있는 증상이 하나 있는데요, 엄마를 부를 땐 "아빠…음…아니 엄마!", 아빠를 부를 땐 "엄마…아니, 아빠!" 이래요. 아이도 좀 혼란스러운 거죠. (ㅎㅎ) 사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밖에서 듣고 보고 배우는 엄마, 아빠의 전형적인 이미지와 역할과는 많이 다르니까요. 아내와 저는 취향에서부터 성격까지 일반적인 부부들의 모습과 다르다는 말을 종종 듣는 편이거든요."

- 편집부 내 직장맘도 넷이다. 그 사이에서 김용주 기자님이 자주 거론된다. 뭐 이런 '언니'가 다 있냐는 반응이랄까. 주변 여자들 사이에서 어떤 남자라는 소리를 듣나.
"페이스북 친구들 중 여성들도 많은 편이고요. 대체로는 저를 지지해주는 편인데 종종 그런 경우가 있어요. 부부동반 모임에서도 경험하는 일이기도 한데요, 기혼 여성분들 중에 제가 육아 얘기를 하면 아내가 직장을 나가는지 제가 주말이나 퇴근 후에 육아를 전담하면 그동안 아내는 뭘 하는지 물어봐요. 조금 퉁명스럽게. 처음엔 그 부정적인 감정이 이해가 안 되니까 그냥 성격이 그런 분들이겠거니 하고 넘겼죠. 저는 제가 나서서 부부간 육아 분담에 대한 남편 설득을 하려는 의도도 있는데 도리어 여성분까지 그러니까 생각이 참 많아지더라고요. 근데 사실 대체로 기혼 여성들이 일과 육아 사이에서 힘든 상황인데 남편의 지지나 도움을 못 받는 경우가 많잖아요.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 부정적 감정의 표출은 사실 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제 아내를 향한 것이었던 거죠. 제 아내도 그런 소리를 종종 듣는다고 하더라고요. 주중에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데 남편이 가사와 육아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아니냐구요. 사실 가사와 육아 문제는 단순히 물리적인 분배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육아 중인 부모도 각자의 욕망, 꿈을 가진 독립적인 인격이니 그 부분에서의 배려가 필요한 거고 그걸 잘 이해해주는 관계가 아내와 남편 사이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런 깊은 '동지애'를 전제로 했을 때 자연스럽게 공동체 생활의 패턴이 정해지는 것이라고 보고요. 그런데 대체로 그 관계 설정이 잘 이뤄지지 않으니 니가 힘드냐 내가 힘드냐, 니네 아내는 뭐하냐 같은 부차적인 문제들에 매몰되는 것 같아요. 그런 이유로 이런 황당한 '아빠가 언니되는 연재물'을 시작하게 된 것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런 이야길 사석에서 좀 꺼내놓고 싶어도 상대가 불편해하면 더 얘기를 안 하는 경우가 많죠."

- 반면 이런 김용주 기자님의 생각을 잘 이해하지 못할, 혹은 이상하다고 여길 남자들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여성들의 반응은 멜랑꼴리(우울증)의 측면이 강하고요, 반면 남자들은 좀 이율배반적인 면이 있죠. 면전에서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속으로 '남자 망신 시키지 말고, 불알 떼고 살아라'라고 욕하는 게 다 느껴집니다. (ㅎㅎ) 일단 분노하는 거죠. 왜 잘 유지되고 있는 가부장적인 질서를 흩트려 놓느냐는 거죠. 거기엔 아버지 세대와 비교해서 내가 얼마나 아내와 아이에게 잘하는데 호강에 겨웠다는 나름의 비교의식도 한몫하는 것 같고요.

한국 사회에서 남자들끼리 서로 의리를 다지는데 애를 많이 쓰잖아요. 근데 '의리'를 제대로 배우고 싶으면 가정에서 아내와 먼저 의리를 다지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제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특별히 진보적인 사고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남성들의 그러한 비합리적인 일상에 실망감, 회의감이 강하게 들기 시작한 거거든요."

주변 눈치 많이 보는 소심남, 애 낳고 달라졌다

- 사실 이런 커밍아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보수적인 시각에서 보면 어쩌면 더욱? 어떤 계기로 대놓고 기사를 쓰게 된 건가.
"제가 사실 굉장히 소심하고 주변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로 자라왔거든요. 생각은 진보적이긴 한데 사람 자체는 소심하고 보수적이고 좀 그래요. 글에서도 썼지만,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서 생각과 삶의 패턴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한 여성과 삶을 공유하면서 제가 이전에는 안 보이던 시야가 넓어졌다고 할까요. 아이를 낳게 된 건 더 유의미한 사건이었죠.

솔직히 당시에 저는 육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요, 반면 아내는 아이가 생기면 닥칠 문제들을 미리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임신도 하기 전부터 육아서적을 쌓아놓고 보기 시작하더군요. 지금도 '내가 그때 성경 읽을 때보다 더 경건한 자세로 육아 책을 읽었다'고 농담반 진담반 얘기하곤 해요. 저도 그 덕을 톡톡히 본 거구요. 육아에 익숙지 않아 혼란스러운 일상이 시작되었고 책을 통해 간접체험을 하게 된 거죠. 사실 책을 읽을 때도 지적 유희를 위해 읽을 때와 절실한 상황 가운데 읽을 때의 그 흡입력이 다르잖아요.

이런 상황에서의 무게감이 결국 육아와 여성문제에 눈을 뜨게 만들었고 결국 소심한 저를 넘어선 커밍아웃을 하게 만든 건 아닌가 싶어요. 일단 '그래, 나는 팔불출이야!' 대놓고 말하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한 부분도 있고요. 생각과 일상의 변화는 그렇고요, 좀 더 구체적으로 기사를 쓰게 된 계기에는 그런 기대감도 좀 있었어요. 남성이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어떤 범퍼, 중재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무래도 남녀 성평등 이슈는 여성이 남성과 대결구도로 가는 것과는 별개로 남성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행동도 포함된다고 보는 편이라 남성은 남성이 설득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있었죠."

- 기사를 쓰게 되면서 달라진 생활습관 같은 것도 있을 것 같다.
"읽고 쓰는 걸로 에너지를 풀어내는 스타일이긴 한데, 매주 연재 글을 쓰려니 좀 힘들더라고요. 특히 요즘은 <오마이뉴스>가 월간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어떻게 안 될까요?)"

- 제이언니가 보는 시월드의 세계는 어떤지 궁금하다. 시댁 문제 있어 아내와의 인식 차는 어떻게 좁히려고 애쓰나.
"제게 '시월드'는 과거 30년간의 베이스캠프였죠. 문제는 그게 '과거'라는 점이고 이후에는 이 베이스캠프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아내의 시각으로 내 베이스캠프를 '낯설게 보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사실 아내는 나라는 한 개인을 선택한 건데, 갑자기 고구마 넝쿨처럼 남편을 잡았더니 '시월드의 멤버들'이 줄줄이 딸려 올라오잖아요.

그 넝쿨이 딸려 올라와서는 도리어 권력구도로 볼 때 아내 위에서 군림하게 되잖아요. 아내는 결혼과 동시에 죽었다 깨어나도 진급이라는 게 없는 서열상 맨 하위 계급이 되는 거고. 쉬운 예로, 보통 장모님에게 사위는 귀한 손님 대접을 받잖아요. 처가에 가도 '김서방 일하느라 힘들 텐데 방에 들어가서 편하게 쉬라'고 권하고 씨암탉도 잡아서 먹여주고. 근데 며느리는 같은 직장생활을 해도 시댁에 가면 '짤없이' 노동을 해야 하잖아요. 그 불합리함부터 먼저 부부간에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 거 같아요.

여느 젊은 부부처럼 저희도 세상 물정 모르고 갓 결혼하고는 신혼기간 동안 이틀에 한 번꼴로 밤이 새도록 끝장토론을 벌이곤 했어요. 서로의 밑바닥까지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우리 부부가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격하게 싸우는 와중에도 서로의 생각을 가감없이 드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거예요. 반복적으로 다투다 보면 부부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어떤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돼요.

그 대표적인 이슈 중의 하나가 '시월드'죠. 그 이후부터 아내와 저는 손발이 척척 맞는 한 팀이 됐죠. 때에 따라선 부부사기단 수준으로 부모님들을 상대로 '선의의 뻥'도 잘 칩니다. 시댁문제를 풀어가는 키워드는 팀워크죠. 그런 의미에서 이 부분은 저보다 아내가 더 전문가죠. 아내는 억압받는 위치에서 자유로운 위치로 비약한 흔치 않은 대한민국 아줌마의 모델라고 봐요, 저는.

- 모든 '엄마들의 언니'를 자처하는 남자로서 '시댁공략 노하우' 뭐 이런 게 있을까? 제이언니네서 하는 특별한 모습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결국 시댁 문제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 문제'잖아요. 근데 좀 관습적으로 억압적인 측면이 있는 게 문제인 거고요. 사실 남편이야 내 사람이지만 남편의 가족들은, 시작은 남이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의 지인 그룹일 뿐이거든요. 처음엔 서로를 잘 모르니까 낯설고 경계심이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근데 그것을 부정하고, 급하게 시부모들이 무르익지 않은 관계에서 '딸 같다, 아들 같다'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곪아터져서 결국 서로 미워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우리 사회는 결혼하자마자 서로 가족처럼 친해져야 한다는 부담을 조장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는 가족처럼 대해 주지도 않으면서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남편이 처음에는 아내를 자신의 뒤에 두고 아내가 내 가족들에게 익숙해지길 기다려줘야 한다고 봐요. 며느리의 포지션이 아닌 손님의 포지션으로. 아내들이 분위기에 휩쓸려서 오버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행동을 하는데, 대개 한국 여성들이 그런 식으로 사랑 받고 칭찬받는 삶을 강요 받으며 자라서 그런 것 같은데 좀 지나면 다들 힘들어 하잖아요.

이번 추석 때도 기사를 보니 명절 전후에 이혼율이 더 높대요. 앞서 말했듯 남편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한팀을 이루는 게 그래서 참 중요한 것 같구요, 그러고 나면 부부간의 룰이 생기고 그 룰 안에서 자연스럽게 남편의 가족들에게도 익숙해지고 감정적인 친밀함도 쌓이게 되는 거죠. 각자의 부모에 대한 효도와 사랑을 상대 배우자가 지지하고 '도와주는' 시스템이 건강하다는 거죠. 상당히 상식적인 선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우리나라는 특히 가부장적 사회구조의 지배를 그만큼 강하게 받는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는 생각 많이 해요."

- 기사만 보면 이런 남자와 사는 '여인'이 참 궁금하다는 반응이 많다. 공개적으로 아내 자랑할 기회를 드리겠다.
"아내에게 질문지를 보여주니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소리치네요.(ㅎㅎ) 소설가가 꿈이구요, 동물을 아주 좋아해서 집에 키우는 동물이 무척 많습니다. 몸으로 배우고 바로바로 실천하는 타입이고, 관습이나 통념에 얽매이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어찌 보면 저와 참 상극에 있는 사람이죠. 연애할 때 눈꺼풀에 뭐가 씌어지지 않았으면, 거북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근처엔 얼씬도 안 했을 것 같아요(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잘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자유로운 생각에 유연한 편이지만 일상적으로는 보수적이고 소심하고 안정적인 반면 아내는 자유로운 영혼인데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무모함도 좀 있고. 아내는 자기의 자유로운 내면을 점점 삶에서 확장시켜가고 있고 저는 또 그것을 보면서 제 안에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는 벽을 허물어가고 있고요. 우린 나름 좋은 팀인 것 같아요. 운이 좋았죠. (ㅎㅎㅎ)"

- 기사를 쓴 적 얼마 안 되었을 때, 딸아이가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들이더라. 굉장히 스킨십을 많이 하고, 친화적이던데. 설사 그것이 기자 말마따나 '결핍의 흔적'이라 하더라도 아들 둔 아빠들 입장에서 그러기가 어렵다던데, 언니 감성이라도 공부해야 하는 건가.
"저는 아빠와 아이와의 스킨십은 가부장적인 정서, 특히 집안에서 남자와 여자, 아빠와 엄마의 고정된 성역할에서 자유로워져야 가능하지 않나 싶어요. 어떤 의미에선 가부장제가 아빠와 아이의 스킨십의 즐거움을 빼앗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결핍의 흔적이라는 측면에서는 제 내면과 가정 배경에 대해 더 고민할 요소가 있는 것 같고요.

아버지, 어머니와 저의 심리적인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거죠. 아이러니한 건 이런 관계의 결핍이 결국 제 아이와의 친밀한 관계를 맺게 도와주었잖아요. 그런 것도 있어요. 스킨십을 많이 하고 자녀 친화적인 제이언니에게서 아이가 떠날 때 나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과연 심리적으로 건강한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아마 그게 저에게 남은 내면의 숙제겠죠."

- 주말 육아도 스트레스가 있을 것 같다. 그걸 어떻게 푸는지? 혹시 기사쓰기?
"우리 부부는 교대로 자기 시간을 가져요. 처음엔 아이와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이것저것도 해보고 여기저기 가기도 했는데 요즘은 함께 외출을 하는 일은 별로 없고요. 저나 아내가 아이를 전담하고 한 사람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는 거죠. 아내는 친구를 만나거나 정줄 놓고 맥주 한 잔하거나 집에서 동물들을 돌보거나 하고요, 저는 영화를 보거나 카페에 나가서 책을 읽거나 몇몇 모임에 나가거나 합니다. 물론 글을 쓰는 걸 좋아해서 글쓰기로도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해요."

아내도 만족하는 육아기사, 직장맘 힘내세요

- <오마이뉴스>에서 육아일기 연재가 있는데, 본적 있나? 혹은 <오마이뉴스>에서 이런 기사는 꼭 본다 하는 것들이 있다면?
"다른 기자님들의 육아 일기도 많이 읽었어요. 아무래도 아이 키울 때는, 다른 집 아이 키우는 이야기도 관심이 가고 다른 집 아이도 덮어놓고 막 귀엽고 그렇잖아요. 그 외에는 신정임 시민기자의 <아줌마 구직자의 취업실패기> 챙겨서 읽었어요. 아, 정말 글쓰신 기자님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으로."

- 기사를 읽다보면 참 센스가 돋보인다. 글쓰기 공부, 따로 한 적 있나.
"감사합니다. 그런 글들은 어떤 공부를 해서 얻어진다기 보다는, 제가 가진 소심한 성격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다 보면 도리어 어느 순간 유머 코드로 읽히게 되는 것 같아요. 만약 소심한 성격을 숨기고 '있어 보이는 척' 하면 어떨까요. 20대에는 글을 쓸 때, 신영복 교수 특유의 서간문을 흉내내어 보기도 하고 진중권의 스타일을 따라해 보기도 했는데 결국 글은 사람의 '결'을 따라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 기사쓰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면, 혹은 부족함을 느끼는 게 있다면?
"저는 글은 빨리 쓰는데 생각 자체는 좀 오래해야 하는 성격이거든요. 머리 속에 대략적인 구조가 정리가 되어야 쓸 수가 있는데. 아무래도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죠."

- 만족하는 기사, 혹은 반응 좋았던 기사…. 혹은 아내가 가장 좋아했던 기사가 있었다면 소개해달라.
"최근 직장맘 관련 글에 대한 댓글을 읽다가 맘이 짠했던 기억이 나네요. 저도 누군가 제 입장에서 말해주면 위로가 되거든요. 그런데 직장맘들은 그런 식의 위로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기사 한 토막에 절절한 마음을 담은 댓글들을 읽으면서 순간 같은 직장인으로, 같은 애를 키우는 입장에서 속상하더라구요.

아내도 이번 육아 연재물을 대체로 좋아해요. 간혹 서평이나 시사 이슈 관련 글을 쓸 때는 아내에게 미리 보여주면 "니가 회사에 매여 오랫동안 착취를 당하다 보니 직접 경험하지 않은 걸 대충 쓴 게 글에 다 보인다. 진정성이 없어!"라고 독한 평을 종종 하거든요. (흑흑) 그런 의미에서 최근 가장 깊숙이 경험하고 관여한 육아에 대한 글이 아내가 보기에 가장 저다운 글일 수밖에 없죠. 혹평도 덜받고. (ㅎㅎ)"

- 본인의 육아 철학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글쎄요, 정리가 잘 안 되네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면 연재글을 쓰지 않았겠죠. 전 촌철살인, 뭐 이런 거 잘 못해요. 글도 좀 장황하게 쓰는 편이고."

- 육아일기는 끝이 없을 것 같다, 본인의 글이 어떤 육아일기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면? 비슷한 내용일 수 있는데, 어떤 남편, 어떤 아빠이고 싶은가.
"언젠가 아이가 커서 제 연재글을 보게 되었을 때, 휙 읽다가 '아빠가 이걸 썼어? 쫌 의외인데'라고 말하게 되는 상상을 하기도 하거든요. 주변에 자식이 커서도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더 오랜 시간이 지나서 혹여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서 내 글을 읽어도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냉소하지 않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줄 정도의 좋은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이와의 관계와 별개로 '김용주'라는 한 인간으로 인식되고 싶어요. 부모들은 다들 직장에 헌신하고 육아, 자녀교육에 헌신하다가 어느새 중년이 되고 나면 '나'란 존재는 없는 경우가 많잖아요. 남편이기 이전에, 아빠이기 이전에 '김용주'라는 한 인간으로서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생 깊고 즐거운 관계를 맺어가고 싶어요."

- 그간 편집부에 느낀 것 혹은 바라는 점이 있다면.
"글쎄요. 지난 번에 기자님이 책을 보내주셨어요.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라는 책이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제가 육아 관련 기사를 쓰는 데에도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구요. 약간 사이버 편집부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런 경험들을 통해 편집부에 대한 느낌이 좀 훈훈해지더군요. 수많은 기사들이 올라오고 시민 기자들을 대하면서 어려움도 많으실 것 같은데 바라는 것보다는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특히 직장맘 기자님들 화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작성: 오마이뉴스, 최은경 기자님.
2013/10/07 23:18 2013/10/07 2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