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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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언니의 아빠일기' 열두 번의 연재 기사를 쓰고 나니 아쉽게도 더 이상 풀어낼 만한 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들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매일 쓸 이야기가 넘쳐난다는데, 반복되는 일상에서 어떤 혜안을 얻고 그것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일은 내게 쉽지 않았다(우리 가족과 내 아이가 즐길 만한 이야기들은 더러 있지만 공유하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다).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연재기사의 시작은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여기게 된 굵직한 몇몇 사건들에 기인했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남자와 여자는 여러 가지로 사소한 불평등이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 남자 아이들의 번호는 1, 2, 3번으로 시작했지만 여자애들의 번호는 41, 42, 43번이었다. TV에서 보던 재미있는 드라마 속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계급은 분명했다. 하다못해 우리말 더빙이 된 외국 드라마에서도 남편은 반말을 했지만 아내는 존댓말을 썼다. 나는 이런 상황이 글로벌 표준인 줄 알았다.

되돌아 보면 어릴 적 우리 부모님도 그렇지만 집집마다 부부싸움이 심했고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도 많았는데,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을 도리어 남편이 좋은 말로 돌려보내는 경우도 잦았다고 한다. 부부문제는 가정사이니 가장인 남자가 잘 해결하겠다고 몇 마디만 건네면 경찰은 잘 알았다는 듯, 혹은 귀찮게 이런 일로 오게 하지 말라는 듯 무심한 발걸음을 돌렸다.

여자는 짐짝처럼 남편의 강한 손에 붙잡힌 채로 집안으로 끌려들어 갔고, 나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호기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실례라는 생각이 어슴푸레 들었다. 따지고 보면 대놓고 '남편(남자)은 하늘'이라는 가부장제도 교육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체화할 수 있는 많은 암시들이 그 시절에는 참 많았던 것 같다.

친누나와 나 사이의 차별도 꽤 심각했다. 나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내가 아들이란 사실에 대해, 자라면서 내가 누나보다 많은 혜택을 입은 것에 대한 미안함을 갖고 있다. 내가 누나를 해코지한 건 없으므로 사적으로 미안한 건 없지만, 자라면서 아들로서 받은 혜택을 누나는 덜 받았거나 거의 받지 못했다. 이런 것에 대한 찜찜함은 참 오래갔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수가 남녀차별을 경험했음을 깨닫는 데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청년기 시절, 남녀문제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읽어낼 만한 그릇이 못 됐다. 여성은 '연애'의 대상 혹은 어떤 '공략'의 대상이었지 여성문제 자체가 내 관심사는 아니었다. 여자친구를 만들기 위한 어떤 에티켓이나 여성 심리가 궁금했지 성평등 이슈나 가부장제 속 여성의 인권 등의 개념은 없었다. 그보다는 더 진지하고 중요한(혹은 중요하다고 알려진) 정치 이슈나 내 개인적인 학업, 취업 이슈가 더 중요했던 시기였다. 또, 군대도 가야 했으므로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2년 넘게 병역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 자체도 은근히 불만스러웠다.

시간은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이라는 걸 생각하게 되면서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자주 보던 백마 탄 기사 '코스프레'를 하게 됐다. 책에서 읽었거나 어디선가 주워들은 로맨스의 정석대로 여자친구에게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게 해주겠다' 따위의 참으로 아름다운 동화 같은 약속을 했다.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100일, 200일을 지나 프러포즈도 하고 양가 부모님도 잘 설득하고, 그렇게 내 연애는 아름답게 결혼으로 골인하는 듯했다.


여성에 보수적이었던 내가 변한 결정적 계기는 '결혼'

하지만 결혼이 답 없는 대서사극의 시작이었음을 점점 깨닫게 됐다(여기서부터가 개략적으로나마, 내가 연재글에서 풀어내던 이야기의 시작인 셈이다). 글에서 자주 언급했듯 결혼 이후 나는 완전히 '카오스 상태'를 경험했다. 물론 그 카오스, 혼돈 상태라는 게 환경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30년간 쌓아온 어떤 나만의 체계가 무너지는 느낌, 내가 경험해온 체계로는 이 상황들을 합리적으로 헤쳐나갈 수 없을 것 같은 혼돈,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이 빨간약을 먹고 깨어난 새로운 세상과의 대면 같다고나 할까. 어쨌든 적어도 나 잘난 맛에 '시크'하게 살았던 과거는 그렇게 갔다.

아내는 자주 질문했다. 왜 명절에 자기 집에는 갈 수가 없는지, 처가에 가면 김 서방은 쉬고 시댁에 가면 며느리는 왜 일을 해야 하는지, 아이가 태어나면 왜 엄마의 성은 쓸 수 없는지, 돌림자는 꼭 넣어야 하는지, 호주는 왜 남자여야 하는지, 왜 남자는 육아휴직을 하지 않는지, 일상적으로도 왜 주말에도 남자는 아이를 전담할 수 없는지, 여성은 왜 임신 기간 동안 소화제나 두통약 하나도 제대로 못 먹고 맥주도 한잔 할 수 없는 상황을 감내해야 하는지….

처음에는 그냥 대답하기 싫었다. 내 삶도 충분히 피곤했으므로. 스물아홉의 나이에 취업을 해서 이제 막 직장생활에 익숙해질 즈음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그저 가정과 회사 양쪽에서 샌드위치로 압박 받는 불쌍한 남자가 된 느낌을 받았다. 부모와는 분리되는 게 마땅하나, 누군가에게는 의지하고 싶은 미성숙한 남자아이로 세상에 던져진 것 같은 억울한 정서도 있었다.

게다가 성평등 이슈는 처음부터 남성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었다. 대부분의 남성에게 있어 여성은 내가 책임질 대상, 돌봐줘야 할 화분 같은 존재로서 아끼고 사랑해주는 것이지 나와 어깨를 맞대고 경쟁하고 팀워크를 맞춰가야 할 위치로 올라올 때는 더 이상 배려의 대상일 수 없다.

많은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이중적 태도가 이런 측면에서 기인한다. 어리바리한 신입 여사원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동네 오빠 혹은 삼촌 같은 모습이지만, 자신과 진급이나 고과를 두고 경쟁하게 되는 '커리어우먼'(이 단어 참 묘하다)들에게는 뒷담화가 장난이 아니다.

역차별을 운운하거나 '상사에게 꼬리를 친다' 등의 듣기조차 불쾌한 말까지 내뱉으며 내면의 부정적 정서들을 가감 없이 쏟아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성은 수동적이면서도 저자세이고, 얌전하고, 가부장제에 잘 적응하며 출산·육아의 천명을 군말 없이 잘 수행하는 '현명함', '현숙함'이 전제돼야 나이가 들어도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는다. 그에 더해서 일도 잘하면 사회가 준남성으로 받아줄 용의가 있다.

아마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아내와 일상을 살면서 이 모든 담론들을 체험적으로 고민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성 문제에 관해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했을 것이다. 더 섬뜩한 건,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진보적이고 개화된 남성이라고 굳게 믿으며 살았을 것이라는 점.

왜냐하면 나는 담론으로서의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생각들에 대해서는 항상 열려있고, 새로운 지식들을 열정적으로 습득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삶과 별개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함에 있어 나는 관대했다. 하지만 내 일상에 들어온 부조리를 해결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을 때 나는 회피하고 싶었고, 불편했고, 때로는 힘들었다. 하지만 자주 '내가 아내라면', '내가 여자라면'이라는 생각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내는 남편을 더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모든 갈등의 해결점은 '이해'가 시작이라 생각한다. 물론 대다수의 가정학교·아빠학교에서는 '이해'를 종착역으로 가르친다. 아내를 이해만 해줘도 아내는 정서적으로 만족해서, 그 결과 가부장제가 유지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혹은 강요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아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남편을 '족칠' 필요는 없다. 이해가 되면 남자들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때문이다.

그 해결책을 찾는 지점에서 아내는 많은 이야기들로 남편을 불편하게 만들고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 어차피 부부관계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부부가 다양한 방향으로 해결책을 내 자신들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전제가 남편과 아내가 동등한 주체, 평등한 위치라면 그 개별 삶의 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건강하게 발전하리라고 예측하는 것이다.

나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그 작은 소망, 그 사소한 시발점으로부터 주변 관계의 다발이 줄줄 엮여 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관계의 다발들이 풀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로 한 사회를 이루고 있는 느낌이 들었고, 그 사회가 대한민국이라는 한 국가의 담론 곳곳에서 고질적인 문제들을 일으킨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됐다.

'제이언니의 아빠일기'를 통해 언니(여성)의 시각으로 아빠(부모)의 삶을 솔직하게 풀어내고 싶었다. 작게는 출산·육아를 둘러싼 소소한 일상에서 시작해 남녀 성평등, 가부장제도, 나아가 자녀에게 '올인'하는 가족구조의 미래 등을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다. 거창한 욕심과는 달리 경험한 이상의 것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아 여기서 연재를 덮는다. 읽어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2013/12/09 23:15 2013/12/09 2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