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진료를 마치고 약국에서 약을 기다리던 중 어린 아기를 둔 엄마와 여성 약사 사이에 큰 소리가 오갔다.
"손님. 여기 있어요. 약을 복용하시는 중에는 모유 수유를 하시면 안 되세요."
"네? 뭐라고요?"
"모유 수유하시면 안 되신다고요."
"참내."
"네?"
"이것 봐요. 어떻게 수유를 안 해요? 아이 낳아봤어요?"
"아니요. 아직…."
"그러니까 저런 소리를 해대지. 애가 없으니까 팔자 좋은 소리하구 있어."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솔직히 그 약사는, 결혼은 안 했다지만 그녀보다 나이가 적어보이진 않았다. 무엇보다 약사의 처방에 대해 인신공격적인 말을 해대는 아이 엄마의 반응에 내 심장마저 쿵덕거렸다. 그것도 같은 여성으로서 자기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상대에게, 저런 언행은 좀 아닌 것 같았다. 약사는 상기된 얼굴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우리나라는 대다수가 일상적으로 분노의 대상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인터넷에도 빈번하게 OO녀, OO남 이야기가 퍼지면 순식간에 그들의 신상이 털리고 만 하루가 되지 않은 시간에 포털사이트에 검색어가 뜬다.
사실 나는 이 약국 손님을 두고, 그런 상황을 얘기하고 재현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어린 아이를 둔 엄마 손님도 그녀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이에 대해서는 첫 기사, '마트서 아이 등짝 때린 엄마, 쉽게 손가락질 마시라'에 충분히 생각을 풀어냈으므로 긴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임신과 육아에 많이 찌들어 있는 기혼 여성들이 종종 싱글 여성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우려를 조금 언급하고 싶을 뿐이다.
아줌마에 관한 '뒷담화'
SNS를 하다 보면 '아줌마'로 통칭되는 기혼 여성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중년 여성의 엽기적인 행동에 관한 '뒷담화'를 종종 읽게 된다.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 수단에서 서둘러 자리를 잡거나 식당에서 큰 소리로 대화하거나 백화점, 대리점에서까지 물건은 깎는 일 등은 이미 고전이 되었고 직장 내 여자 선배 직원의 과한 처세술부터, 육아 경험이 없는 싱글 여성들을 대놓고 무시하는 언행에 대한 분노의 글들도 자주 접한다.
'애 안 키워봤으면 말을 하지 마라'는 어법이 주는 호전성은, 때로 원치 않게 결혼·육아 경험을 할 수 없는 싱글 여성들에게는 상처를 넘어선 분노를 자극하기도 한다. 물론 내 경험상으로도 육아는 힘들고 내 아내는 나보다 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육아를 경험하지 않는 부류를 향한 어떤 호전성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도 같은 여성에게.
육아 경험의 유무뿐만 아니라 그 확장도 자주 경험한다. 우리 집은 아이가 하나인데 놀이터에서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는 '아이 하나는 육아도 아니다'라는 말이다. 이는 마치 남자들이 군대생활을 최전방에서 했느냐 후방 부대에서 했느냐에 대한 반응과 유사하다.
놀이터에 모인 엄마들 사이에서 아이 하나인 엄마는 힘들다고 말할 수 없는 묘한 스탠스를 갖게 되는데 이는 마치 공익근무를 한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군대 얘기를 할 수 없는 처지와 같다. 같은 부모에게서 나온 아이들도 다들 제 각각이고 첫째를 키울 때 쓰던 육아 방식이 전혀 먹히지 않음에서 오는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자주 아내도 나도 어떤 부모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는 듯한 압박감에 나름의 어려움을 토로하지도 못한 채 '맞아요, 우린 아이 하나고 그마저도 순해서 어릴 때부터 거저먹기였어요'라며 아이 많은 집 부부들 사이에서 '영혼 없는' 대화를 나누곤 한다.
아이가 셋인 엄마는 아이를 하나 둔 엄마의 고충에 '팔자 좋다'는 반응을 보인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보며 세월 참 좋아졌다고 비판한다. 이렇듯 서로 간에 분노, 증오로 뒤섞인 관계의 긴장감은 슬프게도 비기득권 진영 내에서 더욱 심하다.
비기득권 진영 내에서의 갈등, 좋지 않아요
'싱글 여성'과 '육아 중인 기혼 여성',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 '시어머니'와 '며느리',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갈등 등 이른바 비기득권 진영 내의 갈등은 앞서 말한 대로 가부장제나 보수적 사회구조를 유지시켜주고 나아가 '남성', '기업'과 같은 기득권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준다.
우리는 자주 사회구조적인 모순과 어려움에 직면할 때 가장 가까운 이들과 함께 그 문제를 풀어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들을 - 더 연약하면 연약하다는 이유로 덜 어려움에 처했다면 그것에 어떤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대서 - 비난하고 상처를 주고 결국은 분리의 수순을 밟게 된다.
유사 페미니스트의 삶을 추구하는 나는, 솔직히 말해 여성이 남성을 적으로 여기는 상황들도 불편하지만 그보다 더 (기혼) 여성과 (싱글) 여성이 서로를 구분 짓고 서로에게 가해하는 상황이 더 불편하기만 하다. 또한 이는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시키는데 일조한다는 측면에서 전략적으로 지혜롭지도 않다고 본다.
싱글 여성이 임신, 육아의 지식을 공유하고 먼저 선배들의 고충을 배려해주고, 기혼 여성은 싱글 여성에게 상처가 될 만한 언행을 조심해주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개인적으로 나는 여성의 성평등에 남성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이지만 이보다 선행될 부분은 이런 것이 아닐까. 자주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