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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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되새기는 복음주의자의 현실 참여 선언문

칼 헨리의 본서, [복음주의자의 불편한 양심]은 개신교의 고전적인 저서에 속한다. 이 책의 원제는 'The Uneasy Conscience of Modern Fundamentalism'로 여기서 복음주의자라는 표현은 역사적으로 근본주의자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대에 와서 종교적 근본주의는 지양해야하는 극단적인 그 무엇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근본주의의 기본 개념은 그 종교의 원칙을 고수하려는 세속과 타협하지 않는 근본 원리들을 지켜나가겠다는 의미이며 그 자체로는 크게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물론 그 종교를 지향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칼 헨리가 지적하는 개신교 근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천국(오실 하나님 나라)에 집중하면서 개인의 영혼 구원과 도덕적인 삶으로 복음을 제한한 나머지 사회 정의와 구제, 개혁에 무관심한 점이었다. 인종 차별, 냉전 구도 속에서 정당한 전쟁이라는 문제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 정책 등 북미의 개신교 부흥에서 사회 문제는 제외되고 있었다.

우리는 1943년에 출판된 작은 책자를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의 현실 참여 선언문]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칼 헨리의 이 저서를 계기로 개신교는 근본주의자들에게서 구별된 신복음주의의 탄생을 촉발 시킨 계기로 평가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동일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개신교 후손인 우리의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원제와는 다르게 근본주의자=복음주의자로 등치시켜 놓아도 별반 이 책의 독해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70년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가 근본주의자의 한계에 여전히 놓여 있음을 반성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재출간은 한국 교회에도 의미가 있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나를 포함한 복음주의 진영의 한국 교회는 칼 헨리가 행한 근본주의자를 향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겸손히 다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2010/04/01 21:00 2010/04/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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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 먼로 컬버그는 우리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버드 대학교에서 베리타스 포럼을 통해 기독 지성운동을 시작하고 미국 전역으로 확장시킨 장본인이다. 이 책은 이런 그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켈리 먼로 컬버그는 이미 1998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가 선정한 미국을 이끌어 갈 유망한 기독교 지도자로 손꼽히기도 했고 그가 이끌었던 베리타스 포럼에는 복음주의권의 주요 학자들인 톰 라이트, 오스 기니스, 알빈 플란팅가와 같은 학문적 대가들이 참여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 기대와는 달리 그녀가 지성적인 부분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사랑과 배려가 충만한 여성이라는 사실에 더욱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지성적인 포럼'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분명 불꽃튀는 토론과 한쪽이 굴복하게 되는 쾌감.. 그러한 논쟁에 참여했던 전설적인 지식인 논객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끈 베리타스 포럼은 지성적인 면에서도 귀감이 되겠지만  켈리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진 대상이 '학문'이라기보다는 동시대의 회의주의에 빠진 캠퍼스의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고 사랑으로 감싸는 크고 작은 실천적 행동들에 개인적으로는 더 큰 감동을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창조주는 내게 필요한 것이 추상적 진리가 아닌, 나와 더불어 내 안에 사는 인간적 진리임을 아셨다." (205쪽)

"복음의 진리가 본질적으로 자기희생임을 숙고하라... 베리타스는 사랑 안에서 진리와 은혜가 한데 어우러진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닮아 자란다는 것은 은혜 안에서 자란다는 뜻이다. 말하기에 앞서 먼저 귀를 연다는 뜻이다." (263쪽)

한국의 교회를 생각하면 이 두마리의 토끼 모두 놓치는 모습을 본다. 지성적으로도 B급, 아니 그 이하에 속할 뿐만 아니라 교회가 한국 사회 전반에서 사랑의 실천을 하고 있지도 않은 형국이다. 기독지성의 스캔들이라고 할 때 우리나라도 분명 예외는 아닐 것이다. 교회를 탓하기에 앞서 그러한 교회의 일원으로 나의 모습도 성찰해본다. 정작 나는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는 존재인가. 지식이 충만함과 동시에 가슴이 뜨거운 사람인가. 무엇보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만큼 실천하는 사람인가. 켈리의 베리타스 포럼 이야기는 분명 나와 한국 교회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저, 예수의 정신을 따르자고.(끝)


*베리타스 포럼 사이트: http://www.veritas.org/

2010/03/25 20:58 2010/03/2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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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관리의 대안적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책!

솔직히 복상 황병구 편집위원이 프랭클린 플래너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 했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아주 효율적으로 잘 쓰고 있는 프랭클린 플래너에 대한 약간은 비판적인 시각 자체가 그리 탐탁치 않기도 했다. 스티븐 코비의 책들과 그 툴인 프랭클린 플래너가 나에게 끼친 긍정적 영향력이 얼마나 컸던가를 생각하면 내 입장도 이해가 되리라. 무엇보다 이미 검증되고 널리 알려진 플래너에 어정쩡한 기독교 플래너 하나를 더하는 느낌이 그리 좋아보이질 않았다.


몇 년이 지나 황병구 본부장(지금은 한빛누리 본부장으로 있다)이 시간 관리에 대한 책을 냈다. 사실 이 책도 반신반의했다. 이 책을 사게 된 건 그가 제작한 소명 라이프빌더라는 플래너의 사용법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 개인적으로 플래너의 사용법을 보면 그것이 정말 효과적일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가능한 법이라 조금 망설이다가 덥석 주문했다.

책은 훌륭했다. 첫장을 넘기자마자 책의 끝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때때로 머리에 망치로 얻어 맞은 것처럼 경종을 울리는 대목도 있었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대목도 많았다. 황병구 본부장 특유의 글빨이 살아있는, 그래서 더욱 흠잡을 데가 없는 책이었다. 하긴, 그가 누구던가. 90년대에 TNT 세대론과 미답지론으로 진보적인 기독교계에 널리 알려진 탁월한 글쟁이가 아니던가.

그가 주장하는 주요한 시간 관리의 핵심은 시계 시간 프레임에서 사건 시간 프레임으로의 변화, 성취 중심에서 (인간) 관계 중심의 시간 관리, 그리고 자신의 성공이나 성취 지향적인 계획에서 하나님 중심, 이웃 중심의 나눔과 도움을 지향하는 삶의 자세의 훈련이다. 소명 라이프빌더는 이러한 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툴이다. 단적으로 말해 정통 기독교적인 정신이 잘 녹아 있는 툴인 셈이다.

스티븐 코비의 책 제목에 있는 'effective'(영향력있는)이란 단어를 '성공'으로 맞교환한 한국판 번역도 문제이지만 정작 스티븐 코비가 자신이 말한 '영향력', '성취'의 목적 혹은 그 본질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는 황병구 본부장의 지적에는 동의가 된다. 결국 프랭클린 플래너는 내가 큰 도움을 받았지만 그 도움은 나의 시간을 나의 능력의 배가를 위해 잘 다듬는 수준의 것이었다. 그것이 이타적인 목적이 됐든, 이기적인 목적이 됐든 내 몸값 올리기를 위해 적절한 툴임은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적 가치들을 돌아보려는 황병구 본부장의 문제 제기과 그 해결책으로 내 놓은 이 툴(라이프빌더)은 내게도 좋은 인생 방향 전환의 계기가 될 듯 하다. 모든 기독교인이 소명 라이프빌더를 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한 번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끝)

2010/02/15 20:54 2010/02/1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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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읽어주는 책이야기이자 묵상집

공지영. 내게는 익숙하고도 낯선 이름이었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 서사적인 이야기를 지나치게 영상물에 의존하다보니
나이가 들어서도 소설을 읽는 게 익숙치가 않아서다.
어쨌거나 인문학, 철학, 종교관련 책이 아니면 에세이집 외에 특별히 이런 소설 작가들의
글을 읽을 기회가 없었다. 물론 이 책 제목은 전부터 질릴만큼 많이 들었었다.
내게 소설가들의 책은 익숙한 만큼 낯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훈의 소설도 그렇다.)

작년에 지승호씨가 공지영 작가를 상대로 인터뷰집을 냈다.
나는 그 책이 계기가 되어 작가 공지영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결국 이 책을 처음으로 그녀와 '만나게' 되었다.
(물론 더 일찍은 그녀의 책을 영화화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통해서였지만.)

위녕. 이 책에서 공지영이 편지의 대상으로 삼는 이 이름은 그녀의 소설집인
<행복한 나의 집>에 나오는 딸의 이름이라고 한다. 그녀는 딸인 '위녕'에게 여러 편의 글을 쓴다.
인생의 경험이랄수도 있겠고 딸에 대한 충고랄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은 무엇보다 공지영의 독후감에 가깝다. 매글마다 그녀가 설명해주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읽고 있는 나조차도 마음 속 깊숙히까지 풍성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녀는 독후감을 딸에게 쓰면서 딸이 겪고 있는 성장기의 문제들에 대해 솔직하고도 애정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깊고도 맑았다.

맑다는 표현이 순수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정화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 듯 하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그 내면의 소리들을 외면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그녀의 정서는 더욱 풍성해졌고 더 정화된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딸에게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 이야기를 통해
딸에게 인생의 경험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녕의 인생의 큰 지지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자녀를 항상 응원해주는 엄마를 둔 위녕은 얼마나 축복인지.)

시간이 부족한 삶을 사는 나는 보통 책을 속독한다.
정보를 급하게 구겨 넣었다가 필요할 때 다시 꺼내보는 습관이 나쁘게 굳어지고 있다.
나도 그게 나쁜 책읽기 습관이란 걸 알지만 고칠 엄두를 못낸다.
고친다면 난 책읽기를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르므로.
하지만 공지영의 책은 아껴서 읽고 있다. 아니 한 편의 글을 읽고 나서는 조용히 곱씹어보기 위해
일부로 책을 덮는 일이 잦다. 그 정서를 머리 끝부터 발가락 끝까지 음미하고 싶어서다.
묵상집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산문집에 감사를 표하며.
2009/10/13 20:51 2009/10/13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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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찬이 책을 냈다.
난 항상 그의 가사들을 보면서 그의 글재주를 부러워하곤 했다.

그는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에서 짧은 글을 써서 낭독하곤 했는데 어느날 그 글들을 그냥 잊어버리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 담당 PD에게 부탁하여 받은 원고를 다듬어서 출판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지난번 소극장 공연 때 들은 얘기다. 책을 낸다는 말도 그때 들었다.)

그림도 함께 그렸고 나레이션 음반도 덧붙였다. 그의 감성적이면서도 때론 날카로운.. 그리고 대부분이 몽환적이기도한 글들을 책으로 접할 수 있게 되어 반가운 마음이다. 책과 함께 소극장 공연도 다시 한다고 하니 언제 한 번 가볼까 싶다.

아래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10문 10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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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서 온 편지』에 대한 조규찬의 10문 10답

1. 음악만 하다가 갑자기 덜컥 책을 냈다. 생뚱맞고 낯설다. 무슨 일인가?
책을 받아보는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짧은 글을 써서 낭독하는 <달에서 온 편지> 라는 코너가 있었다. 한 주에 한 편을 썼고, 그러다 보니 적지 않은 글이 모였다. 노래, 그림, 글은 모두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단지 모양만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음악을 통해 그런 일을 해온 나에게는 전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급조된 기획은 이 책 어디에도 없다.

2. 책을 보면 가족애 같은 느낌과 낯선 풍경 같은 것이 느껴진다.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랄까, 의도가 있다면?
그리움이다. 사라져버린, 사라져가는 것들을 향한 사랑이다.

3. 음악과 책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가?
레드 제플린의 <노 쿼터>를 들으면 『해변의 카프카』의 스산한 바람과 낮게 드리워진 짙푸른 구름이 느껴진다.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면 레드 제플린의 <노 쿼터>가 흐른다.

4. 당신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음악 외적인 일들을 부단히 요구하는, 하고 싶어 해온 일.

5. 당신에게 글을 쓴다는 행위란?
나 자신도 잊게 될 나를 기록하는 일.

6. ‘조규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감미롭고 때로는 완벽한···, 하지만 좀 가깝게 다가갈 수는 없는 사람 같다. 실제로 그런가?
세상을 사랑하고 조심스럽게 대하는 마음이 사람들에게는 거리감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7. 미술을 하다 음악으로 전향했다. 책에도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란 당신에게 무엇인가?
나는 못생겼다. 그리고 음악을 처음 시작할 무렵까지 나는 가난했다. 가난하고 못생긴 나에게 미술과 음악은 그 현실의 칼날을 막아주고 잊게 해줬다. 적어도 붓을 놀리고 기타를 퉁기는 동안만큼은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8. ‘나, 조규찬’이라는 챕터가 있다. 한 마디로 조규찬을 스스로 요약한다면?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다.

9. 전체적으로 음악만 빼고 당신의 전부를 압축한 것 같다.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나의 아들이 나를 이해하고 기억하게 하는 ‘아빠 설명서’ 가 되어 줄 거라는 희망.

10. 앞으로의 계획과 하고 싶은 음악은? 또 쓰고 싶은 글은?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다. 이 단순해 보이는 일이 현실에서는 결코 쉽지 않다. 그리운 것들, 그리워하게 될 것들을 기록하고 싶다.
2009/07/18 20:48 2009/07/1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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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사를 이끌었던 빌 게이츠에 대해서는 굳이 많은 설명이 필요가 없다. 다만, 몇몇 파편적인 기사들로만 접했던 빌 게이츠에 대한 생각들을 이 책을 통해 좀더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간 나는 오픈 소스(open source) 운동을 비롯한 카피레프트 운동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운영 체제 및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려온 빌 게이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빌 게이츠가 소프트웨어 시장에 처음 진입하면서 하드웨어와는 달리 소프트웨어는 개발자의 엄청난 노력과 수고가 들어간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드웨어에 끼워 파는 공짜(free)라는 인식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카피레프트 운동의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도 이 개발자에 대한 합당한 보수 및 권리의 인정 부분임을 감안하면 빌 게이츠의 이러한 노력들은 소프트웨어 시장이 하나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두 번째로 본서에서도 비교적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 넷스케이프와의 독점 소송 문제를 통해 빌 게이츠는 결국 일선에서 물러나서 제2의 인생을 재단을 통한 자선사업가로 시작하고 있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빌 게이츠에게 좋은 평가를 해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자선 사업이 아내 멜린다 게이츠의 노력에 의해서였음을 밝히고 있지만 결국 빌 게이츠는 자신의 재산 중 상당 부분을 이 재단에 쏟아내고 있으며(2005년 135억 6천만달러, 2006년 156억 250만달러), 이 재단을 통해 전 세계에서 목숨을 구한 사람만 70만명에 이른다.

한 때 공격적인 회사 운영으로 독점 기업의 중심에 떠올랐던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 그의 인생 후반에서 변화가 느껴지는 것은 확실하다. 이제 시작하는 그의 이른바 '창조적 자본주의'가 그저 자본주의적 입장에서의 하나의 후원 체제를 넘어 보다 창의적인 방향으로 더 진일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편으로 한국의 기업들도 빌 게이츠와 같은 리더들이 많이 생겨나길 기대해본다.
2009/05/17 20:44 2009/05/17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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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살림지식총서에서 스티브 잡스와 조지 소로스, 빌 게이츠, 워렌 버핏 등 인물 시리즈를 출간하였다. 그 중 가장 먼저 읽은 <스티브 잡스>는 그의 삶의 여정이 그러하듯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다.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는 애플의 CEO라는 사실만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가 2년 전 즈음에 아이팟 나노 출시 동영상을 보면서, CEO가 직접 자사의 신제품 발표를 한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느껴졌다.(물론 빌 게이츠도 자신이 발표를 하지만 느낌이 너무 달랐다) 사실 흥미 정도가 아니라 흠뻑 빠졌다고 볼 수 있다. 주어진 시간 내에 적절한 언어와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활용하는 모습은, 프리젠테이션의 교과서라고 볼 수 있을 만큼 탁월했다. 이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저 유명한 스탠포드 졸업식 축사 또한 단 7분 동안이었지만 최고의 연설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압축적이면서도 메시지가 강렬했다.

본서는 나 기타 잡스에 대한 다소 두꺼운 책들을 보지 않더라도 그의 인생 여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쓴 최고의 평전(?)이라 불릴만 하다. 특히 2009년 건강 악화 문제나 작년에 개봉한 픽사의 <월-E>의 성공까지도 다루고 있으니 스티브 잡스에 대한 가장 업데이트된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본서에서는 에서처럼 스티브 잡스의 영웅적 면모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갈등이 있었던 동료들에게 행한 권모술수와 냉혹한 비난들도 가감없이 서술하고 있어서 비교적 스티브 잡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할 듯 하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컴퓨터로부터 시작해서 메킨토시와 픽사 애니메이션, 그리고 아이팟과 아이튠으로 대변되는 MP3 음반 시장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기술과 대중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그의 흥미진진한 삶의 여정으로 인해 이 책은 잡자마자 단 숨에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09/05/15 20:43 2009/05/15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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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복음주의가 변질된 결정적 계기 - 이안 머레이 (이주일)

아직 책을 조금씩 읽고 있는 중인데, 이안 머레이가 추적해 낸 복음주의 변질의 역사적 계기는 1967년 키엘 대회 - 영국 성공회 복음주의가 변질되는 원인을 제공한 시기
: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의 오판 - "복음주의가 포용주의적 태도를 취하더라도 신학적 중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제임스 패커는 이에 대해 뒤늦게 오판을 인정한 것으로 이안 머레이는 밝히고 있다.
- 머레이에 따르면,
   패커는 자신의 오판을 인정하면서도 키엘 대회가 아닌 그 이후 2차, 3차 성공회 복음주의 대회에서
  젊은 복음주의자들이 지나친 포용적 태도로 복음주의 신학을 타협한 것이 문제였다고 말한다.

키엘 대회에서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가 유지하고 싶었던, 또 그렇게 될 줄 알았던 복음주의 신학의 중심성,
"스토트-패커 노선"이라고 불리는, 이런 노선이 이후에도 유지될 것이라고 (스토트와 패커는) 믿었으나,
실제로 신학적 포용성을 기본 입장으로 내세우자 후세대들은 엄격한 복음주의적 교리를 답답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결국 신학적 중심을 주장했던 제임스 패커를 늙은 원로로 무시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패커는 1970년대 이후 영국 성공회 복음주의 그룹에서 소외되었고, 캐나다로 (쫓겨나듯) 옮겨가게 되었다.

:: 존 스토트는 이 과정에서 어떤 태도와 입장을 취했는지, 상술되어 있지 않아 아쉽다.
아마도 키엘 대회와 복음주의 그룹의 포용주의적 태도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사람이 제임스 패커기 때문에
스토트는 이와 같은 설명에서 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키엘 대회 이전에 영국 성공회 복음주의가 포용주의적 태도를 갖게 된 원인들을 추적해 보자면,
영국 성공회에 미친 "빌리 그래함"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머레이는 지적하고 있다.
철저히 "실용주의적 복음전도"를 추구했던 빌리 그래함의 태도 때문에
영국 성공회 및 복음주의자 또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외로운 광야의 목소리"의 입장을 취했다.
빌리 그래함식의 복음 전도를 거의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반대했고(지도급 인사 중에서),
이후 키엘 대회의 포용정책 노선을 처음부터 일관되게 반대했던 사람이었다.

1966년의 존 스토트와 로이드 존스의 분열은
분리주의자였던 로이드 존스의 '극단적인 순결주의적' 태도에 대해
존 스토트의 '균형있는 대응'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이안 머레이는 철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스토트와 패커가 오판을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이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1966년의 결별 사건과 관련해서 로이드 존스를 새롭게 평가하게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안 머리. <분열된 복음주의>(부흥과개혁사) 를 읽는 중에...
2009. 3. 6. 새벽 2시




이주일:
이안 머레이의 책에서 프란시스 쉐퍼와 로이드 존스는 이와 같은 복음주의의 변질에 대해 처음부터 강력히 경고하고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기독교는 진리에 있어서 타협하면 무너진다는 것이다. 쉐퍼의 <위기에 처한 복음주의> 등의 저작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09.03.06 02:14)
    
제임스 패커는 우회적으로라도 자신의 오판을 인정한 것 같은데, 존 스토트는 이런 해석과 평가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까? 존 스토트는 로이드 존스와의 사건을 언급할 때마다, 로이드 존스를 상당히 존경하고 존중하면서도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금 그런 선택을 했을 거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안 머레이의 해석에 여전히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 (09.03.06 02:16)
    
결국 미국 복음주의의 변질의 핵심은 '빌리 그래함'에게, 미국보단 덜했을지 모르지만 영국 복음주의 변질의 핵심은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에게 있다는 것이 이안 머레이의 해석인 것 같다. 스토트와 패커가 이안 머레이의 말을 들으면 꽤 아파할 지도... 물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는 빌리 그래함 만큼 신학적으로 어리숙하게 타협하진 않았다. 빌리 그래함에게 문제가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 (09.03.06 02:19)



김용주:
개인적으로 이안 머레이의 입장에 다소 비판적임. 존 스토트의 입장은 그의 말년 자서전 격인 <복음주의의 기본진리>를 참조하는 것이 좋을 듯. 개인적으로 신앙의 입장이 존스토트, 알리스터 맥그래스, F.F 브루스, 마크 놀 등등의 입장에
서있는 나로서는 이안 머레이의 입장이 근본주의처럼 느껴짐.결국 오래된 복음주의라는 입장은 유신론적 진화론에 대한 비판,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반대, 성경 비평을 자유주의 진영의 고등 비평과 동일하게 비판하며 신복음주의자들이 성경의 무오성을 훼손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다.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에서 제시한 복음주의자의 범주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 이안 머레이의 입장은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근본주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듯. (09.03.10 01:55)



이주일:
네. 용주형. 안 그래도 형 팀블로그였던 것 같은데, 형의 글을 읽고서 이안 머레이의 입장에 비판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현재까지는 머레이에 동의하는 입장인데, "근본주의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었어요.

1. 유신론적 진화론 : 아시겠지만, 쉐퍼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유신론적 진화론에 대해 복음주의 내에 포괄될 수 있는 창세기 해석 방법임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저도 쉐퍼와 비슷한 입장에 서 있구요. 머레이의 입장은 잘 몰랐는데, 형을 통해 듣게 됐군요.

2. 에큐메니컬 운동 : 이안 머레이의 역사적 분석이 옳다면, 저는 머레이의 입장에 동의가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로이드 존스를 새롭게 보게 되었는데, 로이드 존스를 과연 "근본주의"라는 말로 낙인찍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3. 성경의 무오성 : 예수대학 강사모임 때도 이 이야기를 백목사님과 나눴는데, (저는 맥그래스에 대해 비판적 입장에서 질문했고, 백목사님은 오히려 맥그래스를 방어해 주시긴 했지만) 성경의 전적무오성에 대해 맥그래스가 부정하고 있는 것 만은 사실이지 않나 싶습니다. 존 스토트, 알리스터 캑그래스, F.F. 브루스, 마크 놀은 저도 매우 좋아하는 저자이고 지금도 그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무오성 만큼은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지점들만으로 과거에 낙인된 "근본주의"와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인가. (특히 복음주의 진영에 의해)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과연 그렇게 "보는 것"이 정당한가? 에 대해 의문이 많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들을 갖고 있어서, 용주형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 시간이 되시면 이야기해 주세요. <복음주의의 기본진리>는 ivf 시절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형 이야기를 듣고 지금의 시각으로 다시 펼쳐봐야 겠네요. (09.03.10 15:32)



김용주:
유신론적 진화론을 비롯한 과학 연구에 대한 방어적인 태도와 성경 비평을 고등비평과 동일하게 보는 입장, 그리고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비판이 근본주의적인 입장으로 알고 있음.
결국 이안 머레이의 오래된 복음주의적 입장이 그러하다는 의미임.
성경의 무오성에 대해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파고들 필요가 있을 듯.
무오성 관련해서 나는 버나드램의 <성경해석학>에서 제시된 입장을 따르는 편이나 항상 열려 있음.^^
에큐메니컬 관련해서는 신복음주의자로 구별되는 저자들과 헨리 나우웬, N.T라이트나 레슬리 뉴비긴
같은 저자들의 발굴이 오히려 복음주의를 풍성하게 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
로이드존스를 근본주의자로 낙인찍으려는 게 아니라 대다수의 복음주의자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이안 머레이의 편협한 구획 설정이 그의 색깔을 근본주의적으로 만드는 것 같음.
풀러 신학교나 크리스차니티 투데이, 미국 IVP에서 출판되는 많은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저서들
을 다 '변절'로 치부하면 나도 자유주의자나 급진적 복음주의, 좌파 복음주의로 분류될 듯...ㅜㅜ (09.03.10 17:16)



이주일:
그렇군요. 용주형의 친절한 대답에 감사드립니다. 여기에 대한 저의 입장을 간략히 말해보자면요.

1. 이안 머레이의 주장에 대해서는 <분열된 복음주의>를 통해 사실상 처음 접했기 때문에 이안 머레이의 현대 과학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는 형을 통해 알게 되었구요. 유신론적 진화론이 복음주의 틀로부터 완전히 배제시켜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 머레이의 입장이라면, 저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만, 복음주의 틀 안에 두면서 비판적으로 보는 입장이라면 저의 입장과 같다고 보이네요. (명확한 확인이 필요할듯~)

2. 에큐메니컬에 대해 저는 최종적으로 입장을 정리하진 않은 상태지만, 기본적으로 로이드 존스, 프란시스 쉐퍼, 데이비드 웰스, 이안 머레이의 입장에 따르는 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연합이란 기본적으로 성경적 정신이며 우리가 추구해야할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만, 신복음주의가 에큐메니컬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교리적 공통분모를 '최소화'시킨 것 또는 교리적 중심을 주변화시킨 것이 현대 복음주의를 '구복음주의'와 멀어지게 만들었다는 지적에 공감을 하는데요. 물론 항상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면에서, 신복음주의의 학문적/지적 장점들을 저도 인정하는 편입니다. 문제는 교리적 중심에 대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3. 자유주의자, 급진적 복음주의, 좌파 복음주의 이런 말들에 대해서 저도 일정부분 그런 용어들로 분류를 하지만, 이런 분류들이 과연 명료한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조금은 회의적입니다. 각자 이런 말들을 사용함으로써 나타내고 싶어하는 의미가 서로들 다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교리적 태도에 대해서라면 형의 분류에 따르면, 저 또한 근본주의자로 분류되거나 불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치 프란시스 쉐퍼 또한 "근본주의의 사도"라고 불리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라면 저는 근본주의자라는 '오명'을 기꺼이 뒤집어 써야하지 않을까 싶구요. (09.03.10 17:53)댓글




이주일:
학문적 태도나 대화의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만약 근본주의자를 편협한 반지성주의자, 분열주의자(반연합주의자)로 지칭한다면 저는 근본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복음주의자들이 "근본주의"라는 낙인을 사용하는 것이 잘 정의된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 비평과 관련해서는 머레이의 입장이 모든 성경 비평을 거부하는 입장이라는 것인지, 다시 말해 고등 비평과 하등 비평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머레이는 양자 모두 거부한다는 것인지--확인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개혁주의적 입장에 따르자면 하등 비평은 받아들이는 것으로 아는데요--궁금하네요
예를 들면, 저는 성경을 기본적으로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보지만,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머레이는 하등비평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문자주의자'인가요?

** 다른 것을 떠나 <분열된 복음주의>의 핵심 쟁점은 신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추진된 에큐메니컬 운동의 동참에 있는 것 같은데요. 머레이의 다른 견해들은 제외해 놓고, 에큐메니컬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키엘 대회와 그 이후 성공회 복음주의자 대회에서 명확한 교리적 입장(예를 들면, 패커가 자주 언급했던 것처럼 성공회 39개조 등에 대한 믿음)이 유보되거나 폐기되었다는 것에 대해(p.192~ 참조)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구복음주의와는 교리적 태도에서 상당히 달라진 것이 분명하고, 이는 분명히 비판받을 만한 지점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 (09.03.10 17:53)



김용주:
오호.. 내공이 장난이 아니구나. 멋진데? 정통 개혁주의자의 준비된 답들이 술술 나오는구나.
난 교회의 연합 문제를 교리의 잣대로 척척 잘라내는 행위가 다분히 폭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쉐퍼도 <그리스도인의 표지>에서 자신의 스승이 메이천 교수의 분리에 대해 이해는 하면서도
그것이 바른 결정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던 걸로 기억한다.
개혁주의의 교리 전통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복음주의자로 한평생을
헌신한 제임스 패커 같은 대가에게 '실패'라는 오명을 그렇게 쉽게 던져주는 머레이의 태도에서
나는 실망이 되었던 게 사실이야.
제임스 패커가 스스로에 대해 후회했다는 그의 자료들을 보면서는 나도 좀더 파고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드는구나.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해서는 다분히 문제가 있었던 것을 나도 알고 있고
연합된 교회 중에는 교리적으로 비판이 필요한 이들이 있었음 또한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존 스토트의 고백대로 자신이 교리적 잣대로 비판했던 많은 이단스런 교회들이 실제로는
더 보수적인 교회들도 있었고 구원과 관련된 성경의 핵심 교리에 대해 어느 정도 일치를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에 나는 크게 감동했었지.
따지고 보면 헨리 나우웬은 가톨릭 신부고 라이트나 존 스토트는 성공회 신부이지만
우리는 복음주의라는 이름으로 달면 끌어들였다가 교리라는 칼로 다시 그들을 단죄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드는구나. 존 스토트의 평생 살면서 씨름한 지옥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멸절론적인 사적 신앙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주변에서도 망령이 들었느니 미쳤느니...하며
쉽게 떠들어 대는 IVF 선배들을 보며 그들이 공산당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었다.
이안 머레이의 글에서 나는 그런 류의 냉정함과 비판의 날을 보아서 그런지 좀 심기가
안 좋았지. 어찌보면 스스로는 거장들에 대한 배려를 했다고 생각할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너의 신앙과 나의 신앙이 항상 조율이 가능하고 날과 날이 만나면 더 날카로워지는 것처럼
우리의 지성도 하나님을 향한 열망으로 더 타오를 것을 기대하며... 쩝... (09.03.10 18:21)댓글수정삭제



이주일:
용주형에게 칭찬을 받다니 기쁘네요. 그리고 용주형의 자세한 대답들을 들을 수 있어서 참 감사하고 영광입니다. 어쩌면 제가 현대 복음주의의 느슨한 교리적 태도들을 지금 굉장히 엄격하게 비판하고 있는 이유는, 제 자신이 (아마도 ivf를 통해 길러진 태도라고 보이지만) 신복음주의자의 대열에 오랫동안(거의 20대 말까지) 서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ivfer, 기독학생연합회 대표, 뉴스앤조이.복음과상황 간사 이런 닉네임만으로도 이 점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제임스 패커를 저는 지금도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 분의 저작들을 관심있게 참고하는 편이구요. 머레이의 <분열된 복음주의>에서 패커가 실패했다고 하는 것은 그의 신학적 작업이 실패했다기 보다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통해 구복음주의자들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려는 시도가 실패했다는 점이라고 저는 이해했는데요. 이런 점에서 스토트나 패커가 비판받을 점이 있다는 것. 저도 스토트를 제의 신앙의 영적 아버지로 여길만큼 존경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비판받을 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형이 말씀하신 내용에도 상당히 공감을 하는데, 일반적으로 "개혁주의자" "정통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쉽게 자신의 협소한 잣대로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않은채/읽지도 않은채) 마구 잘라내는 것에 대해 저 또한 조심스럽고 비판적입니다. 정서적으로 불편하기도 하구요. 프란시스 쉐퍼의 태도처럼,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고, 심지어 무신론자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는 겸손한 태도를 갖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태도여야 하며, 특히 정통 개혁주의자의 태도여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09.03.10 18:36)



이주일:
한 가지, 프란시스 쉐퍼의 후회는 진리를 말하면서 '사랑의 태도로' 말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성으로 저는 읽었습니다. 쉐퍼는 진리를 말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랑이 없이 행동하는 것에 대해 그의 후반기에 특히 많이 돌아보며 회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쉐퍼가 진리 없는 사랑, 또는 진리 없는 연합을 추구한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쉐퍼는 끝까지 '진리'의 문제를 타협한 70~80년대 복음주의를 이런 이유로 "위기"라고 규정하고 있으니까요. 근거는 이안 머레이에 따르면, 쉐퍼는 키엘 대회와 그 선상의 연합 논의들에 대해 "경고"하는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고, 또 하나 쉐퍼 자신의 책에서 "로잔 언약"의 성경관 부분에 대해 "애매하게 기술되었다"라고 강경하게 비판하고 있으니까요. (09.03.10 18:46)


쉐퍼와 스토트 (김용주)
회사에서 대충대충 썼더니 내공이 딸려서리... 주일이가 쉐퍼에 대해서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10여년 만에 집에서 쉐퍼 전집을 끄적여본 결과 <그리스도인의 표지>가 아니라 <주목하는 교회 앞에 선 교호>에 언급이 되어 있더구나. 쉐퍼는 메이첸 교수의 성직 박탈과 관련하여 장로교교파연합회의 해체를 유감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교단을 나온 사람들은 그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그 연합회를 해체시켜 버리고 바로 그 순간까지 그들과 함께 이 전장에서 싸워왔던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형제들과의 모든 교제를 대체로 끊어버렸다. 우리는 이러한 결단으로인해 40년 동안이나 고통을 겪어 왔다."

여기서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주일이 말대로 쉐퍼가 자유주의 신학자들과는 분명한 경계선을 긋는다는 점이야. 그가 후회하는 것은 연합회를 탈퇴함으로서 그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게된 많은 교단에 속한 참된 형제들과의 교제를 끊은 점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도 다른 교파에 속한 이들과 특정 사항에서 차이를 보임에 있어서도 그들과 교제와 연합이 가능함을 암시하는 듯 하다. 쉐퍼는 마지막 부분에서 "성경을 믿는 장로교인인 나는 다른 전통들로부터 온 참된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교파적 차이들을 지닌 참된 그리스도인들과 매우 가깝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가서 그들과 악수하며 마치 내가 영원전부터 그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들과 얘기한다. 우리가 교리의 특정한 사항들에 이르면 우리는 서로 다르다."라고 언급하지. 물론 '성경을 믿는'이라는 수식어로 경계선을 그으면서.

쉐퍼가 가시적인 교회를 바라보면서 가졌던 태도가 그랬던 것 같다.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해서는 교리가 희석되는 일들이 생기는 것에 반대했지만 연합에 있어서 분리주의적인 태도가 나머지 서로 다른 교단에 속해있지만 성경을 믿는 참된 성도들에게는 그로 인해 오랜 시간 상처를 주었고 그들이 신학적으로 자유주의화되는 것을 방관했다는 사실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사랑으로 말하는 것 뿐 아니라 진리를 말함에 있어서도 분리주의적인 태도가 야기하는 남은 경건한 자들에 대한 배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지. 또한 다른 교단에 속한 각론적 차이를 보이는 참된 형제들 사이에도 사랑으로 연합과 교제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것 같다.

(추가적으로 나는 개인적으로 쉐퍼의 사상에 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많아서 지금에와서 쉐퍼의 사상을 파는 것에는 회의적이지만, 쉐퍼만큼 당대의 회의론적인 이들, 특히 지적으로 방황했던 청년들을 라브리를 통해 사랑으로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이 고민했던 문제를 두고 함께 씨름했던 사실에 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어. 그에게 현대 사상과 신학은 자기만족이나 지적 유희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려는 복음전도의 다리 놓기였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적 고민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나갔다는 점이 그를, 그가 불리기 바랬던 대로 20세기 최고의 '복음전도자'로 칭하게 만든 것 같다.)

물론 나는 쉐퍼보다 더 나아가서 에큐메니컬 운동을 통해서 우리가 이단시해온 가톨릭이나 진보진영의 교단의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보수 신학을 고수하거나 복음주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온 이들이 발굴되었다는 점에 고무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고. 아마 여기에서 주일이와 내가 갈라지는 부분인 것 같구나. (여기에 대해서는 추후에 더 토론할 계기가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나는 존 스토트의 <복음주의의 기본진리>에서 말년 자신의 사역을 돌아보며 했던 말이 나를 흔들었던 것 같다.

"나는 이제 쓰려고 하는 글에서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구별되는 기독교 사상계(가톨릭, 자유주의, 복음주의)가 항상 상호 배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님을 잊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차이점과 더불어 합일점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을 지지하는 것과 절대 다수의 개신교인들이 종교개혁의 많은 진리들을 여전히 확증하고 있는 것에 대해 참으로 기뻐하고 감사한다. 다시 말해서 복음주의의 모든 핵심 진리가 복음주의만의 독특한 특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략) 나는 분열을 거듭하는 복음주의의 경향에 대해 계속해서 깊이 염려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수많은 복음주의 '분파'에 대해 언급하며 '복음주의' 앞에 어떤 성격을 나타내는 형용사를 붙이기를 좋아한다. 보수적, 자유적, 급진적 점진적, 개방적, 개혁파, 은사주의적, 포스트모던 등 그러한 예들은 많다. 복음주의 신앙에 대한 우리의 특정한 이해를 선한 양심으로 고수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를 복음주의자들로서 연합시키는 것이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보다 헐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는 없다는 말인가? (중략)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비록 세계교회협의회의 자유주의적인 방침과 종종 원칙없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교회 연합 운동에서 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은 확증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거부하는 자유를 주장하면서 분별력을 발휘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주일    
형의 친절하고 세심한 답변에 참 감동이 됩니다^^ 형과 이렇게 깊이 대화를 해 본적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던 것 같아서 늘 아쉬웠는데, 형의 답변을 읽으면서 형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감사. 저도 답글을 달아볼께요^^ (09.03.12 04:23)



용주형의 답변에 대한 저의 답변/ 이주일
먼저 언급할 것은 여러 가지 바쁘신 중에 있을거라 추정되는데, 시간을 내서 꼼꼼하게 저의 질문에 대답해 주시려고 노력해 주셨다는 점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예전 형과 함께 교회를 섬길 때 좋은 교제의 기회들이 있었음에도 아쉽게도 정작 깊은 교제를 나누지 못했었던 것이 제게 남아 있는 하나의 안타까움이었습니다. 도리어 한 교회를 섬기지 않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이렇게 형의 친절한 답변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저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형이 꼼꼼하게 검토하고 인용문까지 직접 글로 옮겨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저도 형이 옮겨주신 부분들을 참고해서 다시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좀 더 형의 답변을 전체적으로 여러 번 읽어보면서 형의 생각을 예전보다 좀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우선 참고로 형이 갖고 있는 쉐퍼 번역서가 ‘크리스챤다이제스트’에서 발간된 책인 것 같은데요. 저는 ‘생명의말씀사’에서 번역된 책을 갖고 있어서 약간 제목이 달라 잠시 혼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언급하신 <주목하는 교회 앞에 선 교호>는 <The Church Before The Watching World>를 가리키는 것 같네요. ‘생명의말씀사’에서는 <오늘날의 교회의 사명>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형이 맨 처음 인용해 주신 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 교단을 나온 사람들은 그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그 연합회를 해체시켜 버리고 바로 그 순간까지 그들과 함께 이 전장에서 싸워왔던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형제들과의 모든 교제를 대체로 끊어버렸다. 우리는 이러한 결단으로인해 40년 동안이나 고통을 겪어 왔다."(저의 책으로는 전집 234쪽에 있는 내용입니다.)

이 부분을 근거로 형은 “쉐퍼는 메이첸 교수의 성직 박탈과 관련하여 장로교교파연합회의 해체를 유감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라며 “쉐퍼가 자유주의 신학자들과는 분명한 경계선을 긋”고 있지만, “그가 후회하는 것은 연합회를 탈퇴함으로서 그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게된 많은 교단에 속한 참된 형제들과의 교제를 끊은 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사실은 “다른 교파에 속한 이들과 특정 사항에서 차이를 보임에 있어서도 그들과 교제와 연합이 가능함을 암시하는 듯 하다”고 해석을 하십니다.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을 형이 더욱 진전시키면서 “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해서는 교리가 희석되는 일들이 생기는 것에 반대했지만 연합에 있어서 분리주의적인 태도가 나머지 서로 다른 교단에 속해있지만 성경을 믿는 참된 성도들에게는 그로 인해 오랜 시간 상처를 주었고 그들이 신학적으로 자유주의화되는 것을 방관했다는 사실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여기까지 형의 해석을 따르자면, 형이 보실 때 프란시스 쉐퍼는 메이첸이 기존 교단을 떠나기로 한 결정에 대해 나중에 후회하였으며, 에큐메니컬 운동이 교리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점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에큐메니컬 운동을 지속했어야한다는 입장이었다는 것으로 제게 이해가 됩니다(적어도 이 책을 쓰던 시점인 1971년에는 말이죠). 물론 형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바른 신학”을 에큐메니컬 내부에 확산시킴으로 갈수록 자유주의화되는 기존 교단들을 조금이라도 지켜내야 한다는 목적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저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조금 더 명확하게 해야만 저의 입장을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첫째, 프란시스 쉐퍼가 부수적인 특정 교리에 대한 차이를 갖고 있는 ‘교단간 연합’에 대해 긍정적이었다는 것에 대해 저는 동의합니다. 형이 글의 중간에 인용하셨던 것처럼, (저의 책에는 236쪽에 있는 내용인데) 형이 인용해 주신 부분 바로 앞에는 (저의 책에 따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실질적인 간격은 장로교인과 기타 사람, 또는 루터교인과 기타 사람, 또는 영국 국교회와 기타 사람, 또는 침례교인과 기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간격이 있다면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자복하고 따라서 언어로 표현된 명제적 의사소통인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인정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간격이다.”(형도 이 부분을 언급하셨었죠.)

즉,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한다면(쉐퍼의 다른 표현에 의하면, 성경의 무오성을 받아들인다면) 형이 인용하신대로 “ 성경을 믿는 장로교인인 나는 다른 전통들로부터 온 참된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교파적 차이들을 지닌 참된 그리스도인들과 매우 가깝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가서 그들과 악수하며 마치 내가 영원전부터 그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들과 얘기한다. 우리가 교리의 특정한 사항들에 이르면 우리는 서로 다르다.”(형의 인용문)라 고 쉐퍼는 말합니다. 이 말에 바로 이어서 쉐퍼는 “비록 장로교인은 아닐지라도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나는 친근감이 가지만, 장로교인이라 하면서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친근감이 없어지는 것이 나의 솔직한 체험이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쉐퍼는 성경의 무오성을 중심으로 핵심적인 교리에 동의한다면, 교단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부수적인 교리들의 차이는 연합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둘째, 프란시스 쉐퍼는 에큐메니컬 운동에는 분명하게 반대한 것으로 제겐 보입니다. 또한, 메이첸 박사가 기존 교단을 떠나기로 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같은 책의 좀 더 앞부분(저의 책은 209쪽)을 보면, 간음과 배교를 다루는 2장에서 프란시스 쉐퍼는 자신이 연합에 있어서 반대하는 ‘자유주의’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진보주의 신학”(the progressive theology)에 관해서도 좋은 말을 사용하여 우리의 태도와 진술을 꾸민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것은 진보주의 신학이 아니라 퇴보주의 신학이며 고전적 로마 카톨릭 용어로 말하면 인본주의이다. 개신교에서는 이것을 자유주의라 부른다.”

2쪽을 넘기면(211쪽) 쉐퍼는 “자유주의 신학만큼 타락해 온 음녀도 없다”고 말하면서, 같은 책 1장(저의 책으로 176쪽)에서 언급했던 “구자유주의는 기독교적 견해에서 볼 때 하나의 이단이다”라는 결론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여기서 볼 때, 우선 당시 로마 가톨릭과의 연합 운동은 분명히 반대할 것이라는 사실을 비교적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쉐퍼는 교단 탈퇴 문제와 관련해서 같은 책 3장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데요. (저의 책 217쪽에서 보면) 그리스도인의 표지의 핵심은 두 가지인데, ①가견적 교회의 순결을 실천하는 원리(즉, 성경관과 명확한 교리적 태도를 지켜야 한다는 것) ②그리스도인 안에 사랑과 하나됨을 다루는 원리입니다. 그러나 우선적으로 이 두 가지를 가견적 교회에서-즉 현실 교회에서-동시에 모두 이룰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219쪽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즉 육체 안에서는 우리가 사랑을 떠나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할 수 있을 뿐, 육체 안에서는 그 양자를 모두 자발적으로 강조할 수는 없더라는 것이 그 결론이었다.”

물론 성령님을 순간순간 의지하면서 최대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여 말합니다. 이렇게 전제해 놓고 쉐퍼는, (저의 책 220쪽에서) 자신이 속했던 미국 장로교가 “확실히 모든 목사가 다 자유주의적으로 된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의 교단으로서 장로교단이 자유주의 신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통제하에 명백하게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의 책 221쪽에서) “1936년 자유주의자들은 너무도 득세하여 그레샴 메이첸 박사를 성직 박탈시키고 그를 종교활동의 일선에서 제거했다.”고 언급합니다. (저의 책 228쪽에서) “그러나 1930년대에 구자유주의는 메이첸 박사를 추방했다. 이유는 그가 성경과 복음에 대해 취하는 명백한 태도 때문이었다.” 즉 그레샴 메이첸 박사가 교단에서 나오게 된 것은 자유주의자들의 성직 박탈 때문이지 메이첸 박사의 분리주의적 성향이나 결정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메이첸 박사가 당시 근본주의 세력과 필요에 따라 연대를 했던 건 사실이지만, 본질적으로 근본주의의 분리주의적이고 전투적이며 지엽적인 특정 교리를 지나치게 고집하는 태도에 대해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근본주의와 선을 그을 수 밖에 없었다고 <분열된 복음주의>에서 이안 머레이는 이야기합니다. 38쪽과 39쪽에서,

“메이첸과 그의 동료들은 근본주의(의) 몇 가지 문제 때문에 자신들을 근본주의자로 불리기 꺼려했다. …… 이들의 정책은 현대 사조와 싸움에 너무 집착했고, 기존 교단과 싸움에만 너무 신경쓰는 경향도 있었다. 대다수의 근본주의자들은 분리주의적인 경향이 너무 강해서, ‘따로 살림을 차리는 주의’(come-out-ism)에 열중했다. …… 이들은 이제 곧 실현될 예언을 강조하면서 현대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사회는 곧 망하게 될 것임으로, 개인 영혼을 구원하는 것만이 기독교인의 유일한 사명처럼 취급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메이첸은 자신이 근본주의자로 불리는 것을 꺼려했지만, …… 1937년에는 또 한 번의 교단 분열을 경험하게 된다. 메이첸이 따르던 구 장로교 신학(Old-School Presbyterianism)과 근본주의 문화 사이에는 너무 큰 간격이 있었다.” (저는 이와 같은 의미의 ‘근본주의’를 반대합니다.)

그래서 쉐퍼는 교회/교단/연합체의 분리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저의 책 222쪽에서)

“지금 여기서 의미하고자 하는 사실은 이런 것이다. 가령 우리가 인간적인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한 후에도 그들이 여전히 계속 자유주의를 주장한다면 교회 내의 자유주의자들은 마땅히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의 책 230쪽에서)

“…… 교리적 순결을 위한 투쟁이 패했을 때 우리는 가시적 교회의 순결성을 실천하기 위해 취해야 할 제2의 방법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들이 관계해 오던 저 가견적 기구들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비록 우리가 우리의 교회를 떠난다 할지라도 눈물을 흘리며 떠나야 한다. 교회를 떠난다고 해서 북치고 깃발 날리며 떠날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떠나야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볼 때, 쉐퍼는 최대한 연합을 지켜야 하지만, 모든 노력을 다했음에도 중요한 교리적 핵심이 침해당하게 될 지경에 이른다면, 최종적으로 분리를 하는 것이 옳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바른 교리 안에서의 연합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쉐퍼가 후회하고 있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저의 책 231쪽과 232쪽에서 쉐퍼는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렀을 때, 모든 사람이 ‘동시에’ 기존 교단에서 떠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먼저 떠나고 누군가는 남아 있게 된다는 거죠. (여기에는 각자의 상황에 대한 판단이 다를 수 있다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위험한 것은 먼저 떠난 사람들은 쉐퍼의 표현에 따르면 “완고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조그마한 교리 문제에 대해서까지 절대주의자들이 되려고” 합니다. “절대적인 것을 믿는 것과 만사에 절대주의적 정신을 가지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쉐퍼는 꼬집어 얘기합니다. 또한, 머물러 있는 사람의 경우 “교회적 포용주의에서 타협적 종합주의”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에 관해 말을 하면서도 점점 진리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는 교리적 종합주의를 받아들이기 쉬울 뿐 아니라 특히 성경에 대한 분명한 견해도 무시하려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고 말합니다.

정리하자면, 프란시스 쉐퍼는 연합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으나, 그것은 중요 교리를 양보해서는 안되며, 성경의 중요 교리에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의 연합만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교단 내부에 자유주의자가 생기면 최대한 노력을 한 뒤에는 ‘징계’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대신 이와 같은 과정에서 ‘사랑’의 태도를 가견적으로 보이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 후회하고 있습니다. 즉, ‘진리를 말하되 사랑으로 말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앞 문단에서 언급했던 먼저 뛰쳐나온 사람들과 남아있던 사람들 사이에 교제를 끊어버렸던 먼저 뛰쳐나온 사람들의 “완고한 태도”에 대해 중대한 ‘실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저의 책 233쪽). 메이첸의 기존 교단에의 분리는 메이첸의 뜻이 아닌 당시 교단을 지배하던 자유주의자들의 추방 때문이었구요(적어도 쉐퍼의 글에 따르면).

따라서 형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의 책 234쪽에 따르면) 쉐퍼는 먼저 뛰쳐나온 사람들이 기존 교단(연합체)에 아직 남아있던 참된 그리스도인과의 교제를 단절했던 실수로 인해 미국 교회는 “더 한층 자유주의적으로 되고 말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에 남아 있던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떠난 사람들의 태도에 실망했다.”고 말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쉐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연합과 그리스도인의 순결(교리적 태도)에 대해 입장을 함께 합니다.

조심스럽지만 제 생각에는 바로 이와 거의 같은 입장에서 이안 머레이는 로이드 존스와 스토트-패커의 대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분열된 복음주의>에서 머레이가 제기하는 문제는 이와 같습니다. 34쪽에서

“1950년대까지 복음 사역을 이끌던 복음주의자들은 자유주의에 대하여 아주 명확한 입장을 취했다. 각자 속한 교단에서는 소수자로서 이 문제와 전면적으로 싸울 입장이 아니었다. 대신 자신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는 다양한 모임과 조직을 통해 모여서 협력했고, 적어도 그곳에서는 다른 신앙 사조가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그런데 1967년 제1회 전국 성공회 복음주의 대회였던 키엘 대회에서 영국 복음주의자들은 같은 교단 내부의 자유주의자들과 “연합”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69쪽에서,

“결국 1967년 4월 키엘에서 열린 전국성공회 복음주의 대회(National Evangelical Anglican Congress NEAC 1)에서는 이전 태도를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따라서 키엘 대회의 개회사는 영국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이자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심판, 대속적 죽음 같은 교리도 믿지 않았”(67-68쪽)던 마이클 램지 대주교가 맡아서 “슐라이어마허의 신학 정신에 입각해서 청중에게 ‘경험’이 ‘신학’보다 우선하다는 점을 주지시켰고, 복음주의자들도 성공회 안에서 정말 제 몫을 누리기 원한다면, 과거의 배타성은 버려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하게 됩니다.

로이드 존스가 반대했던 것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키엘 대회가 열리기 6개월 전에 앞서 열렸던 1966년 10월의 ‘전국 복음주의 대회(National Assembly of Evangelicals)’에서 로이드 존스는 “복음주의자들이 에큐메니컬 운동과 기성 교단 내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복음주의의 독특한 신앙을 훼손하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생각”(73쪽)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존 스토트는 “(1954년 이래로 복음주의자들이 전국적으로 더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상황을 보면서) 복음주의의 발전에 새로운 기회가 왔을 뿐 아니라, ‘동시에’ 기존 교단에서도 복음주의자들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73쪽)습니다.

이안 머레이에 따르면, “로이드 존스도 교단의 차이는 진리의 근본적인 문제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논점은 복음주의가 원래 자리를 지키려면, 무엇보다도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는 연합부터 추구해야 정상이라”(75쪽)는 것입니다. 또한, “자주 잘못 인용되는 ‘순수한 개혁주의 교단을 만들자.’라는 식도 아니었”(75쪽)습니다. 76쪽에서 보면, 로이드 존스는 언론들이 기사화했던 것과 달리 교단을 떠나서 순수한 복음주의 교단을 만들자는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없었”(76쪽)습니다.

결국 이안 머레이의 분석의 결론은 172쪽에서 “이제 성공회 가톨릭파 신학은 아주 자연스럽게 성경적 복음의 또다른 표현으로서 받아들여졌”으며, 173쪽에서 자유주의자들을 “원칙적으로는 이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이들을 동료로 대하고, 이들과 거리를 두려는 노력을 (60년대 이전처럼) 따로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안 머레이가 볼 때, 에큐메니컬 운동은 반대해야할 연합 운동이었는데, 그 이유는 가톨릭파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을 가진 사람들과 ‘연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이 에큐메니컬 운동을 수용한 결과 패커가 인정하는 것처럼, 영국 성공회 (구)복음주의자들의 핵심 교리였던 성공회 39개조 신조가 포기되었습니다.

많이 길어졌습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저의 입장이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하여 프란시스 쉐퍼, 로이드 존스, 이안 머레이와 입장을 함께하는 이유는 에큐메니컬 운동이 ‘성경관과 중심 교리를 믿는 교단간 연합’이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관과 중심 교리를 부인하는 가톨릭과 자유주의자들과의 연합’이기 때문입니다. 성경관과 중심 교리가 분명히 다름에도 ‘연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저는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지엽적인 교리가 다른 ‘교단간 연합’에 대해서 저는 매우 긍정적입니다. 스토트와 패커가 중심 교리를 부인한 것은 아니지만, 키엘 대회에서 가톨릭과 자유주의자들과 연합하면 복음주의자의 교단 내부의 영향력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순진한 상황 판단’이었다는 쉐퍼-로이드 존스-머레이의 지적에 저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다른 점에서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를 저는 무척 좋아하고 깊이 존경하며 그들로부터 저는 배웁니다.

형이 마지막에 언급하신 존 스토트의 말,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비록 세계교회협의회의 자유주의적인 방침과 종종 원칙없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교회 연합 운동에서 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은 확증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거부하는 자유를 주장하면서 분별력을 발휘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 내용에 따르면, 자유주의자-가톨릭과 연합하되 복음주의적 진리를 개별적으로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스토트는 여전히 생각이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런 생각에 앞서 스토트는 형의 인용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보수적, 자유적, 급진적 점진적, 개방적, 개혁파, 은사주의적, 포스트모던 등 그러한 예들은 많다. 복음주의 신앙에 대한 우리의 특정한 이해를 선한 양심으로 고수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를 복음주의자들로서 연합시키는 것이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보다 헐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는 없다는 말인가?”

저는 ‘참된 의미’(성경관과 중심 교리를 공통분모로 하는)에서 복음주의자들 간의 연합을 진심으로 지지하고 찬성합니다. 교단 간 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자유주의-가톨릭 세력과의 연합(에큐메니컬 운동)에는 반대합니다. 이것이 쉐퍼-로이드 존스-머레이의 입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용주:
나는 쉐퍼가 에큐메니컬 운동을 반대한다고 말했던 것 같은뎅.
분리된 것도 메이첸이 교단을 나온게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그러면서 장로교연합회마저 해체하여 남아있던 교단의 형제들과의 관계를 끊은게 문제였던 것 같다. 쉐퍼도 그렇게 말했고 나도 그렇게 인용했고.
그래서 나는 쉐퍼보다 더 나아가기를 원했다고 말한거고. (09.03.12 07:59)



이주일:
네 그렇다면 제가 형의 글을 일부분 오독했던 것 같네요 ^^ 쉐퍼의 주장에 대한 이해에는 차이점이 없군요^^ 에큐메니컬 운동이나 연합 운동의 원칙에 대한 차이가 있다고 보면 되겠네요~ ^^ (09.03.12 08:04)


**이글은 주일이가 운영하는 <개혁주의 싸이클럽>에서 퍼왔습니다.
2009/03/14 20:42 2009/03/14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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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마을 시리즈는 항상 읽을만한 가치가 있지만 이번 장대익 교수의 <쿤&포퍼>는 특히나 더 그러하다. 이 책은 쿤과 포퍼라는 두 과학철학의 거장을 내세웠지만 과학철학 최고의 입문서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만큼 잘 정리되어 있으며 이해하기도 쉽게 쓰여졌다. 각 챕터의 내용들은 모두 강의를 듣는 것처럼 자세하며 참고문헌과 더 생각할 거리들이 추가로 정리되어 있어 심도있는 공부를 위한 이들도 충분히 깊이 파고들 수 있도록 배려했다.

철학을 과학처럼 해보자는 시도로 시작된 빈 학파의 논리 경험주의와 그 토대가 된 비트겐슈타인으로부터 칼 포퍼의 반증주의, 쿤의 패러다임 이론, 임레 라카토슈의 연구 프로그램과 파이어아벤트의 아나키즘까지 과학철학의 굵직한 흐름들을 짧은 분량의 책에서도 비교적 자세히 파고 든다. 책의 뒤편에 정리된 과학철학 관련 문헌은-특히 최근까지 번역된 책들을 포함한-이 책의 훌륭한 보너스가 될 것이다.

저자의 천부적인 장점은 과학분야의 어려운 개념들을 일상적인 언어와 친숙한 예로 치환하여 설명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으로 20세기를 흔들었던 과학사, 과학철학의 흐름을 한 눈에 조명할 수 있도록 이끈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많은 지식을 쉽게 풀어쓰는 능력은 분명 구별된다는 점에서 장대익 교수는 메이저급 출판사가 눈독들이는 주요 저자임에 분명하다. 앞으로도 진화론과 같은 과학 분야에서 저자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2009/01/18 19:33 2009/01/1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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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읽은 책이 많지 않아 다분히 주관적인 선택이지만, 한 번 모아 보았다.
연말 휴가 때 한 두권을 손에 들고 정리하는 것도 좋을 듯.^^


<myjay의 2008년 추천도서 10선>

1.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1,2 -박경철 (리더스북) / 2008년 10월  
   : 주식투자에 대한 근본적 성찰,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주식'의 관점으로
     파헤친 교과서적인 책.

2. 회심 -짐 월리스(IVP) / 2008년 10월  
   : 이것이 진정한 복음주의권의 바이블이다!

3. 나쁜 그리스도인-데이비드 키네먼.게이브 라이언 (살림) / 2008년 7월
   : 그리스도인에 대한 설문조사의 모든 것. 기독인이라면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

4.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하워드 진(추수밭)
   : 미국의 지성 하워드 진의 미국역사서.

5. 사람 - 김용택 (푸르메)
   :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사람들.

6. 르몽드 세계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휴머니스트) / 2008년 11월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선별한 세계의 문제들.

7. 우리는 모두 소중해요 -국제앰네스티 지음 (사파리) / 2008년 9월
   : 유명 동화작가들의 그림으로 엮은 세계인권선언.

8.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김용택 (창작과비평사) / 2008년 8월
   :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동시들. 그의 혜안이 부러울 정도.
 
9.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이택광 (아트북스) / 2008년 8월
   : 중세의 그림에 빠져들고 싶다면 이 책을 기억하라.

10. 기우뚱한 균형  -김진석 지음 (개마고원) / 2008년 7월
   : 김진석 교수의 긴 호흡의 기고글들. 균형 속에서 줄타기하는 그의 생각들.
2008/12/26 19:21 2008/12/26 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