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슬람. 이 석자를 읽으면 은연 중에 나는 '터번을 뒤집어쓰고 총구를 겨눈 테러리스트'가 떠오른다. 미디어 비평서들을 읽기 전까지는 사실 이런 부분에 대해 특별히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람보나 다이하드, 007 시리즈 등 대부분의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 무기밀매를 하고 미국의 주요도시에서 테러를 자행하는 모든 세력들은 하나같이 다 이슬람 출신이었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이슬람 사람들은 파티에서 점잖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막 한가운데에서 나타나 총질을 해대는 이중인격자로 스크린에 나타나기 일쑤였고 이런 영화들에 길들여진 나는 자연스레 그런 인상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와는 반대로 한때 우리나라에는 거리를 지나가는 미국인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았다. 박노자 교수의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한국인들은 지나가는 미국인들을 보면 자신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면 미국인에게는 자기가 한국 문화나 생활을 위한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이른 바 '친구 거래'를 제안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한국인들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도 유색인이 아니라 주인공인 백인들과 자신들을 동일시한다고 한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백인들 옆에서 함께 웃으며 대화하는 자신을 매순간 상상하다가도 스크린에서 남미, 혹은 중앙아시아, 이슬람 국가의 사람들이 나타나는 장면에서는 왠지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 쉽게 타자화시킨다는 말이다. 이런걸 두고 '옥시덴탈리즘'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이 그렇다. 지구의 정반대편에 있는 미국이나 유럽의 역사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술술 꿰고 있어도 동남아시아나 중동 지역의 역사나 문화, 국가들의 수도나 대통령 이름은 모르기 일쑤다. 어찌보면 유색인종으로서 그들이 우리와 더 가까울 텐데 정작 아프리카나 중동, 특히 이슬람 세력에 대한 무지, 나아가 반감이 국민 정서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그 이면에는 무슬림에 대한 종교적인 적대감 또한 자리잡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허나 이러한 적대감도 따지고 보면 어느 정도의 '편견'을 내포하고 있음이 자명하다. 이쯤되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감이 올 것이다. 그래,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무지하고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영화나 문화 컨텐츠로 인해 어느 정도의 편견마저 가지고 있으니 이슬람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헌데 그 편견 정화작업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러던 차에 이슬람에 대한 교과서격인 책이 나왔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기독교와 이슬람을 친절하게 비교하며 설명하는 책이.
2.
본서 <기독교와 이슬람 그 만남이 빚어낸 공존과 갈등>(세창출판사)의 저자 김동문은 중동 전문 기자로 불린다. 그는 요르단에 머물면서 <한겨레21>의 전문위원이면서 <미디어 오늘>과 <오마이뉴스>, < 뉴스앤조이> 등 온오프라인에서 중동전문기자로서 중동과 이슬람 바로 알리기 작업에 매달려왔고 최근에 귀국하여 본서를 출판했다. 그의 기사들을 간간이 접했던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건은 2004년 김선일씨의 피랍사건 시기에 있었던 일이었다. 미디어오늘의 이수강 기자는 그 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동문제 전문 자유기고가이자 기독교 선교사인 김동문씨는 당시 요르단에 있었다. 21일 미디어오늘과 칼럼 기고 건으로 통화를 했을 때, 김씨는 당시 한국 언론이 무차별로 쏟아내던 보도와 달리, 김선일씨는 5월31일에 피랍됐다는 등 자신의 취재 결과를 '오프 더 레코드'로 일러주었다...(중략) 그러나 김씨는 자신이 취재한 '5월 31일 피랍'을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거듭 간곡하게 요청했다...(중략) "지금은 사람을 살리는 게 최우선이다. 피랍 시점 논란이 자칫 송환 협상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루가 지난 6월 22일 KBS <뉴스9>에 "5월 31일 피랍 주장"이 보도됐다. 국내에 있는 기자가 현지 교민 두 사람의 증언을 딴 리포트였다. 이 기사는 지난해 6월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은 이 보도에 대해 "김선일씨 피랍 의혹에 대한 최초의 문제제기"라면서 "이 사건에 관한 '유일한 특종'이라는 평가도 있었다"고 말했다(기자협회보).
판단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말대로 본다면 김동문씨는 '유일한 특종'을 스스로 걷어찬 기자다. 기사를 발표할 지면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또한 김씨는 개인적으로 김선일씨와 대학 선후배 관계(한국외대 아랍어과)이자 지난해 2월 바그다드에서 만난 적도 있다고 했다. 보통 언론계에서 말하는 "얘기가 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굳이 나서지 않았다. 이 에피소드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중동전문 자유기고가로 살아가는, 중동에서 기독교 선교사로 생활해온 그의 어떤 '자세'를 잘 보여주는 듯하다."
(2005년 6월 미디어 오늘, '있는 그대로 아랍과 이슬람을 보자')
그는 중동에서 기자로 활약했지만 한편으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나왔고 이른바 기독교계에서는 선교사로도 불린다. 하지만 무슬림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아서인지 그간에는 도리어 기독교계에서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본서에서도 그는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서 '중립'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 일례로 그는 기독교와 달리 이슬람이 성직자가 없이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성직이 엄연히 존재하며 사례비(월급)도 받는다는 점을 언급하는가 하면 지하드(성전)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이슬람과 견주어 볼때 기독교도 십자군 전쟁과 같이 불의한 전쟁을 여러 차례 수행했으며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으로 수만 명의 여성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죽인 기독교의 역사또한 공정하게 다룬다.
3.
물론 저자는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 '균형' 혹은 공정성을 유지함에 있어 나름의 원칙들을 제시하고 그 원칙에 준하여 두 종교를 평가하는 방법을 취했다. 이를테면 "자신의 언어로 된 경전을 갖고 그것을 읽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기회는 개인이나 집단의 종교생활에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는 특정 권력 집단의 전유물이 되곤했다. 기독교나 이슬람 세계 모두에 경전을 장악하려는 이들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이슬람이든 기독교든 종교 권력자들이 독백처럼 교리를 설파하는 것은 어떤 종교든 옳지 않다는 점을 부각시켰고, 정교 분리 논쟁을 다루면서는 "정치와 종교는 구별되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권력욕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 권력욕을 감추기 위하여 수많은 이데올로기를 생산한다"고 지적하며 두 종교를 비교한다(물론 역사적으로 이슬람과 기독교 모두 이러한 잣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이러한 원칙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기독교 정당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도 혜안을 주는 듯 하다).
또한 저자는 이슬람에 대한 오랜 편견들을 걷어내는 데에 비교적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사실 이슬람 국가들은 하나의 목소리를 내며 그들의 종교전통을 강요한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허나 저자는 이슬람 세계가 우리의 생각처럼 단일 창구의 구심점이 없고 오히려 국가마다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이슬람법과 정신에 의해 국가를 통치한다고 선포한 나라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모리타니, 이란, 아프가니스탄, 예멘, 파키스탄 6개국에 불과하고 그 외에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타종교로 개종할 수 있는 나라도 있으며 대다수의 중동 국가들은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많은 부분에서 세속적 국가로 이해해야 함을 강조한다.
또한 이슬람 하면 일부다처제의 나라라고 치부하나 실제 일부다처제는 10% 내외로 일반적이지 않은 현상이라는 사실과, 흔히 여성의 가리개로 일컬어지는 '히잡'을 통해 여성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편견에 대해서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 - 더 많이 가리려는 추세와 현대적으로 개방하려는 형태 - 이 공존함도 설명해 준다(저자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히잡'(가리개) 사용을 강제 규정하며 튀니지 정부는 비슷한 전통 복장인 '니깝'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본서의 가장 큰 묘미는 저자가 추구하는 현장 중심의 관점들이다. 허나 그는 거시적인 역사로서의 이슬람의 모습도 깊게 연구하면서 이와 더불어 실제 그들의 삶 깊숙이 들어가서 함께 호흡하며 경험한 디테일을 적절하게 조화시킨다(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가히 '올 어바웃 이슬람' 혹은 현대 이슬람에 대한 교과서격의 책이라고 칭할 만 하다). 사실 이슬람에 대해 어느 정도 깊게 공부한 이들은 자신들이 공부한 거시적 역사 내용을 인용하고 재구성하여 얼마든지 대중의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글이나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 이슬람 국가들의 캠퍼스 풍경이 어떤지, 어떤 음식을 즐겨 먹는지, 연애는 어떻게 하는지, 물담배를 피는 이유는 무엇인지, 현재 이슬람은 현대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등을 서술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실제로 발품을 팔아 찾아다니고 이슬람 사람들과 대화하며 얻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들이 책의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일상을 서술하는 대목에서 저자의 기지가 돋보이는 대목 또한 많다. 때로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만드는 몇 가지의 사례만을 인용하자면 아래와 같다.
"새로 생겨난 신종 서비스가 이른바 (사원의) 자리 잡아주기 서비스. "명당자리 팔아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사원은 늘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런 상황을 이용하고 자리를 맡아주고 자릿세를 챙기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전화벨소리에 꾸란이 낭송되고 있다. 최근 제공되고 있는 이슬람 지역의 벨소리 서비스 때문이다."
"4-5년 전부터 몸의 선이 노출되는 꽉 조이는 옷을 입거나 아니면 아예 옆구리 터진 옷들을 입는 여학생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질밥(겉옷)과 히잡 등으로 온 몸을 잘 감싼 여학생들의 수도 동일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캠퍼스) 커플족은 당연이 부러움의 대상이다. 짝없는 남학생들은 지나가는 여학생들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다. 하릴없이 애꿎은 담배만 불에 태우고 있다. 짝 없는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오가는 여학생들 감상에 정신을 잃고 있는 경우도 많다."
"(라마단 기간에) 해질녘을 30~40분 남겨둔 오후 5시경부터는 KFC나 맥도날드, 버거킹 등 패스트푸드 전문점은 음식을 주문하는 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먹는 장사는 평소보다 30~40% 이상의 매상을 올리는 분위기다. 해가 지면 금식을 풀고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이다."
4.
최근 국내방송 <스타킹>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18세 소녀 "루비의 꿈"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기관총을 든 아랍 복장의 남성이 MC 강호동을 위협하는 장면 등을 내보내 이슬람 문화 비하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 사건에 관심을 가졌는데, 한류 열풍에 힘입어 이 방송이 중동 지역에서도 소비가 되었다는 점도 흥미롭고 이를 의식한 SBS에서 즉각적으로 이슬람어로 사과문을 발표했다는 점 또한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물론 여전히 다수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처럼 이슬람을 떠올릴 때 터번을 쓰고 기관총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린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어 씁쓸하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낯선 부분이 없지 않지만 사실 이슬람은 커피와 설탕, 맥주와 포도주를 유럽으로 소개한 원조이기도 하다. 또한 유대교, 기독교와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갈등과 공존을 모색해 온,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에게 참 얼굴색 만큼이나 친숙한 종교이자 삶의 체계이다. 이러한 이슬람을 특정한 프레임에 국한하여 해석하거나 여전히 '테러리스트의 소굴', '악의 축'으로만 바라본다면 그건 총체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정당한 처사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들이 상당하리라 여겨진다. 또한 그게 오랜 시간 이슬람에 거주하며 이슬람을 경험한 저자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저자가 책을 맺으면서 한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한국인들이 우리 사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슬람 세계 출신 이주자들을 선입견을 넘어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는다. '무슬림이니까...'라거나 '이슬람은...' 이런 식의 기계적이고 선험적인 잣대를 조심하기 바란다. 다수의 무슬림들이 무슬림을 대표하여 이곳에 있지 않다. 이슬람 전사로 우리 곁에 자리한 것도 아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또다른 인격체로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