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사실 좀 과장된 감이 없지 않다.(후반에도 언급하겠지만 이 책이 나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책 소개에 나오듯 '하버드대 공부벌레들의 인생보고서'라고 하지만 실제로 이 책에 언급되는 종단연구의 대상은 하버드대생 뿐만 아니라 이너시티 집단(서민 남성) 및 터너 여성집단(여성 엘리트)를 포함한다. 하버드만을 강조하는 책 홍보 문구와 달리, 사실 저자는 이 세 부류 집단의 종단연구를 통해 행복한 노년에 대한 일반론 혹은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고 싶었던 셈이다.
둘째로 이 책의 소개글에 언급된 행복한 노년을 보장하는 조건들 가운데 으뜸은 ‘고난에 대처하는 자세(성숙한 방어기제)’였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47세 무렵까지 형성돼 있는 인간관계라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인간관계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인맥'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저자는 '하버드 졸업생들이 대학생활을 통해 일찍부터 정신사회적 경험을 쌓았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건강한 노년을 맞은 것은 아니었다'라고 일축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인간관계라기보다는 '사회활동의 폭'(290쪽)이라고 구체화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나는 한달 가까이 이 책을 읽으며 내 삶과 노년에 대해 깊이 묵상하는 기회를 가졌다. 단지 이 책이 2004년에도 <10년 일찍 늙는 법 10년 늦게 늙는 법>이란 제목으로 출판된 당시에는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 의아할 따름이다. 이 책은 '국민 정신과의사' 이시형 박사의 감수와 홍보에 의해 재탄생한 듯 하다. 그러면서 소개문구들도 하버드나 어떤 구체적인 숫자와 지침들('47세 이전 인간관계'와 같이)을 골라 넣음으로써 독자의 호감도를 높인 것 같다.
책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은 이 정도였고... 대체로 나는 이 책을 의미있게 읽었다. 특히 72년에 걸쳐 성인의 발달과 성장에 관한 최장기 전향적 종단연구라는 부분에서 이 책은 이미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나이가 40세에 가까워 가면서 이런 책들이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사실 나는 내 나이 40세를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다. 대학입학, 서른, 아들을 낳는 일... 이런 것들은 자주 상상했지만, 혹은 차라리 죽음에 대해서는 묵상해 보았지만 50세, 60세, 70세... 노년에 대해서는 고민해본 적도 없고 그리 달갑지도 않았다. 어쩌면 재미없는 말년의 삶을 상상하는 게 끔찍하여 생각을 회피해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노년의 행복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약간은 '긍정의 힘'의 노인버전 같기도 했지만(자신의 삶을 비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시각으로 다루었다), 실제로 연구 결과 '성숙한 방어기제'가 노년의 행복 조건 중 비중이 높다. 오히려 상당히 비중이 높을 것 같던 부모의 학대, 기질, 사회적 유대관계와 같은 부분은 50대 이후가 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술담배, 안정적 결혼생활, 운동, 교육의 정도가 성공적인 노화를 예측하는 지표가 되었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한편으로 치워둔 나의 노년에 대한 닫아두었던 마음을 조금은 열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보다 적극적으로 나의 노년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준비라는 게... 노후 준비 적금, 연금, 그런 류가 아니다. 그런 금전적인 부분의 준비가 불필요하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지금 내가 생각하는 소신과 성품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한걸음 한걸음씩 노년을 위해 내딛어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이 책을 통해 얻어졌다. 사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나도 늙는 것이 두렵다. 주변에 본이 될만한 노년을 맞이한 분들이 적다는 것도 그 이유일 수 있겠다. 좋은 노인이 되기 위해 두려움을 걷어내고 좀더 솔직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봐야겠다. 그리고 지금부터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