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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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박영선 목사가 설교했던 내용을 주제별로 묶어서 그의 30년간의 사역을 정리하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된 책이다. '믿음', '성화', '교회'라는 주제에 따라 총 3부작으로 기획된 본 시리즈 중 첫번째 책으로 구약과 신약을 넘나드는 총 29편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믿음의 두 축을 구조화하고 있는데 전반 12개의 설교는 믿음의 본질에 대한 것이고 후반 17개의 설교는 믿음의 책임에 대한 것으로, 믿음의 '본질'과 '책임'의 두 축에 균형감을 유지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

 

대체로 성도들은 기독교 교리 자체를 어렵다고 느낀다. 실제로도 교리는 어렵다. 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독교는 아볼로 교회 성도들처럼 심도있는 공부가 어느 정도 필요한 종교임을 인정한다. 그런 이유로 많은 목회자들이, 이러한 다소 어려운 교리를 효과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와 노력을 많이 해왔다. 그럴듯한 예화를 들거나 설교 중에 멜로디를 덧붙인 찬양곡을 사용하기도 하며, 때로 만화처럼 쉽게 대중이 호감을 가질 법한 도구들을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은 잠시동안 성도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기는 하지만 정작 교리의 '깊이' 자체는 반감시키는 역효과를 감수해야 한다.

 

박영선 목사의 설교는 요즘 흔히들 쓰는 말로 교리에 대한 '돌직구'다. 그는 굳이 어렵게 설명해야 하는 길을 우회하지 않는다. 쉽게 설명할 다른 도구들을 찾는 대신 설교 본문 자체의 논리, 구조화에 많은 공을 들인다. 그의 설교는 놀라우리만치 구조적이다. 설교를 듣는 중에 머리 속에 형이상학적 그림들이 그려진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전달되는 설교를 경청하다보면 어느덧 견고한 집이 하나 머리 속에 지어져있다. 그것이 다른 설교자들과 구별되는 박영선 목사의 탁월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설교 중에 직설화법이나 욕을 하기로 유명하다. 유머나 재치로 받아들여지는 대목도 분명 있지만, 대체로 그의 직설화법은 설교를 듣는 이들에게 묘한 경각심을 준다. 교리라는 모호한 삶의 체계가, 그것이 일상에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예화는 그에 관한 이야기거나 주변에서 겪을 법한 이야기가 많다. 아마도 설교시간에 스스로에게 그리고 성도들에게 거리낌없이 대놓고 욕을 하는 설교자로도 박영선 목사는 독보적일 것이다. 나는 이런 그의 설교 '스타일'이 많은 성도들에게 교리의 깊이를 제공할 뿐 아니라 박영선 목사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 역할을 톡톡히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한다.

 

3권의 단행본과 7권의 강해시리즈에서 선별한 내용이니 박영선 목사의 강해서들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새롭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교리나 주제를 놓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의 설교를 비춰본다면 이런 인위적인 구분 자체가 더 기독교 교리를 도드라지게 만드는 장점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남포교회 홈페이지에 가면 매주 그의 설교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다. 혹은 그의 설교 중 상당 부분이 출판되어 있다. 그 중 핵심만을 취하고 싶다면 본서를 권한다. 아울러 진정한 지도자, 설교자가 갈급한 한국교회에 박영선 목사가 좋은 본으로 남기를 소망한다. (끝)

2013/02/09 23:32 2013/02/09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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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산업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갑을 관계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감독이 갑이었다가 감독이 스스로 기업(프로덕션)을 만들고 기업구조('XXX 사단' 류의)로 가다가, 대기업이 거대 배급사가 되면서 이제는 배급사가 배우도 선정하고 감독도 갈아치우는 형국이 되었다. 게다가 배급사가 멀티플렉스까지 소유하니 나아가서는 배급사에서 감독을 채용하는 일도 생기지 않을까 싶다.

음반산업은 우리가 잘 알듯 LP, 테입 시대를 지나 디지털 매체인 CD가 호황이던 시절까지는 가수가 왕이었다. 신승훈이 음반을 팔아치우면 신승훈이 부자가 되는 구조. 물론 음반사(스튜디오)도 건재했고 우리가 아는 동아기획 같은 곳에서 벌이는 잘 안 되도 음반을 내는 것 자체가 가능했다. (하다 못해 과거엔 들국화의 드러머였더 주찬권도 음반을 낼 수 있었다. 주찬권이 지금 음반을 내고 싶다고 할 때 박진영은 뭐라고 했을까...)

디지털 음원은 곧 MP3라는 포멧으로 대중에게 음성적으로 유통되었고 곧 음반사들의 수익 악화로 이어졌다. 음반은 돈내고 듣지 않는 대표적인 컨텐츠로 변질되어갔다. 이 틈새를 뚫고 들어온 사람이 스티브 잡스다. 아마도 이러한 불안감이 없던 시대였다면 스티브잡스의 아이팟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메이저 음반사들이 모두 아이튠즈에 음원을 한곡당 1달러에 '헌납했다'. 음반사가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아성을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디지털 컨텐츠들은 점점 배급, 유통과 같은 업체로 그 권력이 흘러가고 있다. 그렇다면 도서는 어떤가. 아마존은 자기 고유의 포멧을 이용하여 이미 전자책 시장을 석권했고 '킨들'이라는 자체 브랜드의 기기까지 만들었다. 나아가 이제는 전자출판 자체를 자신들이 진행하려고 한다. 물론 여기에는 아이패드로 전자책 시장에 달려든 애플에 구글까지 전자출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종이책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출판시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개별 출판사들이 점점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른 문화 컨텐츠들처럼 종이책도 유통업체가 권력을 갖기 시작했고 이 흐름은 점점 커질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흐름은 온라인 서점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프라인 서점도 정가대비 파격할인과 행사를 해왔고 자체 브랜드로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게다가 종이책이 전자책으로 변화 조짐을 보이면서 몇가지의 괄목할만한 변화가 있다. 물론 (지금 추세는 그렇지는 않지만) 종이책과 차별되게 전자책은 저자와 계약을 체결할 수도 있다.(구글이 그런 시도들을 해왔다) 그 말은 전자책은 포멧과 기기를 제공할 수 있는 온라인 업체가 판권 자체를 소유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지금도 아마존은 개인출판물을 전자책으로 출판할 수 있으며 이 흐름을 국내업체도 따라가려고 한다. 가뜩이나 종이책을 대규모의 물량으로 가져가고 이익을 챙기는 온라인 서점이 마치 트로이목마처럼 출판사가 발굴한 저자들의 판권까지 넘보니 사실 심기가 불편할 것이다.

솔직히 나는 정가제 논란에서, 입지가 좁아지는 출판사들이 어떤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논지를 풀어가는 방식이 불편하다. 종이책을 정가로 팔면 악의 축, 알라딘 같은 온라인 서점들의 횡포를 막고 동네 서점들이 우후죽순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다? 나는 그냥 교보문고같은 온오프 거대서점이 그 파이를 독식할 것이라고 본다. 출판계는 잠시 수익이 개선되었다가(온라인 서점에 나눠준 파이가 돌아오니) 다시 점점 추락할 것으로 본다.

교보는 내달부터 전자책 정가회원제를 제안했다. 월회비를 내는 회원들은 기본적으로 매달 3권의 책을 공급받는다. 이 부분은 출판사가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영화 컨텐츠는 그린 파일 기준 최신본은 3,500원 지난 영화는 1,500~500원 단위로 거래된다. 파일이라서 그런가. DVD는 구간은 2,000원 행사도 한다. DVD도 정가로 오프매장에서만 팔아야 하지 않을까. 영화는 상품인가, 아닌가.

도서정가제로 높아진 가격은 오래된 도서에 대한 수요 탄력성을 악화시키게 되고 이는 재고 증가와 중고도서 전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도 교보는 온라인으로 책을 주문하고 1시간을 기다리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할인된 가격으로 책을 주는 우회적 방법을 쓰는데, 나중에는 중고도서 부스를 만들지 않을까.

사실 도서정가제의 기본 정신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이 없지 않았는데 점점 논쟁이 심화되어가면서 나는 더더욱 이런 흐름에서 도서정가제라는 하나의 대안(alternative)이 마치 진리이자 절대선인 양 달려가는 그 순수한 열정이 두려워졌다. 그렇잖아도 책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줄어들고 있는 출판 시장에서, 자기 몫의 파이가 줄어들고 있다면 이 부분을 명확히 하여 불합리하게 온라인 서점이 착취하고 있는 포션을 드러내달라.

이건 어떨까. 정말 현재는 엄청난 이익을 온라인 서점이 착취하고 있어서 출판시장이 고투하고 있는 거라면, 차라리 유통사 마진에 대한 규제를 법제화하는 건 어떨까. 책값 자체가 이미 10%할인율이 감안된 상태에서 정가를 매기는 게 관례인데 차라리 파이를 나누는 비율에 대한 규제를 하는 게 더 정당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내가 전문가가 아니므로 여기에 대해서 강한 주장을 할 수는 없겠지만.

혹은, 유통업체가 대규모로 책을 구입하면서 금액을 다량 할인받고 재고를 다시 출판사에 떠넘기는 것을 규제하는 것은 어떤가. 출판사 재입고 시에는 감가상각에 대한 과금을 매기는 건 어떠한가. 왜 정가제만이 답이고 소비자는 10년된 누런 책들도, 혹은 이슈가 다 지난 구간들도 신간들과 동일한 가격으로 할인없이 구입해야 하는가. 그것을 왜 출판계는 출판 생태계를 동네 서점을 살리고 종이책을 살리고 제대로 된 책이 나오는 유일한 대안처럼 말하는지.

물론 정가제가 규제가능한 가장 현실적이고도 적절한 방식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래서 나도 도서정가제, 동의한다. 그래서 알라딘에서 도서정가제 반대서명도 안 했다. 그런데 내 동의 지점을 넘어 너무 달리는 게 보인다. 그게 내심 좀 안타깝다.
2013/01/30 22:25 2013/01/30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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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7 장발장, 혹은 레미제라블이라고도 하는 서바나 영상을 본 페친들이 무리에게 이르되 너희가 대선 이후에 이것을 보면 다 울리라 이는 기록된 바 너희 마음이 다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라

28 그러나 영상을 다본 후에도 멘붕이 쇠하지는 않으리라

29 제이언니가 대답하되 나는 마음이 돌같은 자라 절대 울지 아니하리이다

30 페친 중 하나가 이르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영화관이 밝아지기 전에 네가 세번 울리라

31 제이언니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성전환 수술을 할지언정 절대 울지 않겠나이다 하고 주위의 몇몇 마초 페친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14:66 주위가 어두워지고 제이언니는 썩소를 날리며 서바나 영상을 주시하는데

67 삼십분이 채 되기 전에 흐느낀지라

68 정신을 가다듬고 혼자말로 이르되 내가 왜 우는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69 말을 마치기도 전에 또 울더라

70 스스로를 질책하며 심히 괴로워하며 다시 이르기를 내가 미쳤구나 이제 다시는 울지 않으리라 하였으되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눈물이 목젖을 타고 내려감을 깨닫더라

71 화면이 어두워져 아무 것도 안보이고 때로 길거리를 보여주는 영상에서조차 울되 이미 정줄을 놓은 후였더라

72 정신을 차리니 주변이 밝아지고 페친들이 자기에게 한 말 곧 네가 세번 울리라 함이 기억나서 그 일을 생각하고 또 울었더라

 

(레미제라복음 14장)

 

2013/01/29 22:12 2013/01/29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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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들, 특히 나를 포함한 내 주위 개신교 남성들은 감정표현 없는 글쓰기의 달인들이다.

어찌나 이치에 맞는 말들만 쓰시는지...(나도 스스로는 이치에 맞는 말이라고 쓰는 편이지만.-_-;;;)

솔직히 진리, 교리로 대변되는 몇 개의 키워드들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문장을 생성해서

한편의 단문으로 만들어주는 교계용 어플이 있나 싶을 정도다.

혹은 빅브라더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데 특히 남성은 글로 감정표현을 하는지 여부를

매순간 감시하고 행여 감탄사라도 보이기만 해도 잡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나라 남성의 SNS 글쓰기 스타일도 어떤 면에서는 참. 연구대상이다.^^

2013/01/29 22:11 2013/01/29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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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랑의교회 건축 문제로 옥성호 집사님이 쓴 글을 보면서 대선 이후로도 잘 버텨냈던 멘붕이 왔습니다. 한국에서 기독교인이라는 게... 참 부끄러울 때가 많습디다. 매번 나라도 사과하고 교회 일은 내 일처럼 용서를 구하자, 그런 생각을 하며 글을 쓰고 블로그를 하고 SNS를 했습니다.

그런 저이지만, 다른 분들은 어찌 생각하실지 몰라도 저는 고 옥한흠 목사님에 대해서는 한번도 부끄러워한 적이 없습니다. 한국땅에서 태어나 기독교인이 된 후로, 이 개신교 바닥 깊숙이 들어와서 실망하게된 분들도 많았지만 (이만열 교수님과 더불어) 옥한흠 목사님은 제가 여전히 존경하는 분입니다. 사실 그분의 지병은 목회를 통해 얻었다고 추정할 만큼 옥 목사님은 사랑의교회 교인들을 생각하며 자신을 괴롭혔고 급기야 암이라는 병을 얻어 돌아가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노무현 대통령보다 옥한흠 목사님이 더 그립습니다.

그 후임으로 오신 목사님이 지금의 사랑의교회를 멋지게 리모델링하시는 분입니다. 그 분이 건축을 추진하면서 행했던 일들에 대해 저는 2년전부터 대략 알고 있었습니다. 사적인 자리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분노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헌데 그 분은 워낙 대단하신 분이라 제가 몸담고 있는 복음주의라는 범주의 많은 분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자입니다.

그분이 발행하는 한 기독교 잡지는 정말 탁월합니다. 그 분의 추천사가 들어간 출판사는 제가 신앙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참 많은 도움을 받은 곳입니다. 그 분의 이름은 제 종교생활 영역 안에서 무소부재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외면하고 지냈습니다. 워낙 꼭대기에 계신 분이라 실제로 마주칠 일도 없고 이름만 무소부재할 뿐 제가 속한 복음주의 단체나 교회 안에서는 사실 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2년을 버티다가 오늘 옥 목사님의 아들인 옥성호 집사님이 쓴 공개글을 읽고 말았습니다. 2년전에 들은 내용과 일치하였지요. 처음 그 얘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 뒤척이다가 끝내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났습니다. 지금은 눈물은 안 나지만 손가락은 심하게 떨리는군요. 참, 사람으로 태어나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데... 그런 생각만 계속 드네요.

어쩌면 제가 그 일을 잊은 건, 혹은 없던 일처럼 보내려고 했던 건 그 분의 이름이 들어간 매체, 기독교 단체들이 많고 그 안에 있는 분들과의 친분을 유지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간간이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농담처럼 던지곤 했지요. 그래야 했고, 그러고 싶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옥성호 집사님이 아버지에 대한 책을 냈을 때, 저도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고 그 책의 상당 부분을 타이핑해두었습니다. 그걸 다듬어서 글을 쓸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사랑의교회 건축 문제가 불거지면서 글 쓰려던 마음을 접었습니다. 앞서 설명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제가 타이핑한 옥한흠 목사님의 행적들을 읽으며 저는 또한번 마음이 괴롭습니다.

글을 쓰는 와중에 페친분과 댓글을 주고 받다가 "오정현 목사 같은 이가 지도자되는 복음주의가 기독교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에게 던진 말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로. 오늘부로 저는 오정현 목사의 영향력 아래있는 어떤 기독교 집단과도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그것이 한국 복음주의를 아우른다면 저는 한국 복음주의를 버릴 것입니다.

한국 복음주의권은 저같은 사람이 버린다고 사라질 교파가 아닙니다. 게다가 훌륭한 신앙인들이 참 많이 속해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하게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지도자를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저는 더는 못 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http://cafe.daum.net/howsarang/8Xq5/1833

2013/01/23 22:08 2013/01/23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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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페친 김진형 간사님의 글 덕분에 머뭇거리다가 조금 써본다. 도서정가제에 대해 원론적으로 찬성한다. 단지 알라딘의 입지를 고려해볼 때 한기호님처럼 주범이자 응징의 대상으로 알라딘을 지목한 부분에 대해 좀 과하다고 판단한다.

 

알라딘을 제외하면 교보나 반디앤루니스는 오프서점을 보유하고 있는 온-오프 2종서점이다. 예스24는 현재 온라인 점유율이 1위이고. 이와 달리, 알라딘은 여러가지 재밌는 시도들을 많이 하지만 (그리고 그것이 '대중에게 책읽는 법을 알려주려는' 의도가 있음에 호감을 표하지만) 정작 대중이 알라딘을 선택하는 이유는 여러 조합으로 낮아지는 도서의 가격 때문이다.
 
이벤트와 구간에 대한 할인, 쿠폰, 증정품, 등등으로 물리적으로 고객이 이익을 얻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알라딘에서 책을 산다. 그러고나서 고객은 마치 가격과 상관없이 '알라딘이 개념있는 온라인 서점'이라서 좋아한다고 종종 말한다.(나도 그중 하나다) 만일 알라딘에서 오프라인 서점과 동일한 가격으로 책을 판다면 당연히 오프매장을 보유한 곳, 물량이 많은 곳, 규모가 큰 곳(혹은 많은 분들이 기대하듯 동네 서점)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도서정가제의 흐름은 사실 출판사-온라인서점 간의 권력의 변화에 기인하기도 한다. 애플은 아이튠즈로 음반사보다 더 큰 힘을 얻게 되었고 아마존은 개별 출판사보다 더 큰 힘을 행사함과 더불어 이제는 직접 전자책을 출판하는 출판-유통업체로 거듭나려하고 있다. 아마존의 방향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는 알라딘의 경우도 이런 흐름을 탈 것이고 이는 결국 출판사들의 파이를 가져가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출판사들은 그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할인과 광고를 위한 비용을 부담하며 불편한 상생을 해왔는데 지켜보다 보니까 이제 좀있으면 자신들의 밥그릇까지 가져갈 참이다. 게다가 고도로 단련된 '심미안'들인 우리를 배제한 채 어디서 '장사치' 같은 것들이 책을 시장경제의 상품처럼 취급하고 있냐는 대외적인 명분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출판사들도 10%할인에 맞춰서 가격들을 책정하고 있는 편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허접 쓰레기 같은 책들을 10% 이상의 할인율로 별도 부스를 만들어 팔아왔다. 출판사 이벤트로 반값 할인 부스들이 쏠쏠히 보였다. 알라딘이 악마라서가 아니라 그간 그런 관행들이 있어왔던 셈이다. (하지만 관행을 깨면 가장 불리한 곳은 알라딘이 될 것이다.)
 
내가 하고픈 말은 알라딘은 자신의 스탠스에서 할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 순수하고 알흠다운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악마 수준은 아니라는 거다. 시장에서 위태로워지는 자리에서 경쟁사에 비해 불리한 방향에 대해, 아무 문제제기 없이 순수하고 깨끗하게 주저 앉기를 기대하는건가. 게다가 난 그정도로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업계의 방향이 순수하지만은 않다고 본다.
 
물론 정말 도서정가제 반대가 고객도 좋고 출판사도 좋다면 모르겠지만 출판사들이 쌍수들고 환영하는 분위기는, 그간의 곪아왔던 출판시장의 문제가 터진 것이다. 알라딘 같은 서적 유통업계는 반대를 주장하고 무턱대고 고객 서명을 받기보다 출판사들의 고충과 어려움에 귀기울이는 모습을 먼저 보였어야 옳다.

 

나야 순수 고객 입장에서는 양질의 책을 보다 저렴하게 공급받는 게 좋다. 개인적으로는 뽀대나는 하드커버가 아니더라도 문고판의 저렴한 편집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가격 경쟁으로 인해 허접한 책들이 저렴하게 유통되는 미래를 맞고 싶지도 않다. 도서정가제 논란은 이 두 지점의 양 극단 중 한쪽으로만 가야함을 전제한다.

 

 

[알라딘] 도서정가제법 강화에 반대합니다
http://www.aladin.co.kr/campaign.aspx?pn=130116_book

 

 [SisaIN] 절박한 질문 '책은 상품인가?'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953

 

 [한기호] 출판유통질서 파괴의 주범 알라딘을 즉각 응징하자
 http://blog.naver.com/khhan21/110157031726

2013/01/21 22:06 2013/01/2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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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주의적 시각이 갖는 부정의(injsutice), 몰역사성, 탈정치성은 차치하더라도 '성 역할'이라는 말은 있지만 '계급역할', '인종 역할'이라는 말은 없다는 점에서 '역할'이 얼마나 정치적인 담론인지 알 수 있다. 최소한 공식적인 사회 담론에서 "사람은 자신의 계급적, 인종적, 장애, 연령 등의 위치에 따라 평생 그에 맞는 역할(직업)을 해야한다. 흑인은 청소부 역할만을 해야 하고, 시각 장애인은 안마사라는 직업만을 가져야 하며, 가난한 사람은 그 위치에 맞는 심리, 행동,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라는 말은 발화될 수 없다.

 

 이에 비해 성별에 따른 역할론은 자연스럽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사회는 성 역할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는 집단에 대해서 심리적, 문화적, 정치경제적 차원에서 혐오와 적의, 처벌을 행사한다.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계급, 장애, 연령, 인종, 종교, 지역, 국적 등으로 인한 분엽(차별)은 부정하며 극복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반면, 젠더는 그렇지 않다. 계급이나 인종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사회적 제도이고 피해지만, 젠더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산, 재생산 노동을 모두 감당하는 여성의 노동력은 한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삶을 가능케 하는 근간을 이룬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향상될수록 이 노동은 남성과 분담되기보다는, 여성들 사이의 계급, 인종, 나이 등의 위계에 따라 여성들 내부에서 '전가'된다.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 여성들 역시 공장 노동과 같은 전통적인 제조업부터, 음식 서비스 산업, 가사 노동자, 아내, 농업 노동자,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 문제의 해결자, 성 산업에 이르기까지 기존 국내 여성들이 담당해왔던 저임금, 비공식, 비가시화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전통적인 성별 구분보다 자본과 학력, 기술 등 개인이 가진 자원에 따라 젠더 범주가 '유연'해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신자유주의 상황에서 가부장제의 쇠퇴는 여셩의 지위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2013/01/14 01:16 2013/01/14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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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성매매특별법상 자발적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조항에 위헌 소지가 있어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즉각적으로 양분된 반응이 쏟아졌다. 성매매 관련해서 하고싶은 얘기가 없지 않았는데 이참에 관련된 생각들을 조금 해볼까 싶다.


성을 매매할 수 있는가
원론적인 쟁점은 성이 매매 가능한지 여부다. 집창촌에서 일하는 성매매 여성들은 “우리가 원해서 성을 팔겠다는데 국가가 왜 개입하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이 자발적으로 성을 매매하겠다는 것에 대해 법적 규제가 정당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반대도 만만치 않다. 성매매는 간통과 달리 돈이 개입한다는 점에서 순수한 자기결정권의 범위를 넘은 규제 대상이 될 수 있고 여성들이 성매매에 뛰어들지 않게 하는 교육·복지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고려대 하태훈 교수)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은 거래가 가능한 것 아닌가 어떤 억압적인 이유가 아닌 자발적 매매에 대해 국가가 내 자유를 침해할 권리가 있는가의 문제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것들이 매매가능한가. 일례로 개인의 장기매매는 어떨까. 내 콩팥 하나를 팔아서 수익을 얻는 행위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질 수 있을까. 물론 장기매매와 성매매는 몸의 일부를 물리적으로 떼어주느냐 몸으로 노동을 하느냐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모든 매매의 자유에 대해 재고할 지점이 있다는 점 정도를 고민할 부분이다.


세계적 성매매 현황: 집단, 산업화 VS 개인 대 개인
세계적으로 성매매의 입장은 어떨까.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 주, 스위스, 독일,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터키, 네덜란드, 헝가리, 미국 네바다주, 멕시코, 벨기에는 공창제(성매매를 직업으로 인정)를 시행하고 있고 잉글랜드, 아일랜드, 이스라엘, 캐나다, 폴란드, 핀란드, 스페인은 자치주의(국가가 성매매에 관여하지 않으나 인신매매, 호객행위는 규제함)이다. 한국과 중국, 러시아, 스웨덴,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수단, 예멘, 파키스탄 같은 국가들이 성매매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결국 성매매에 대한 국가의 입장은 어떤 지배적인 입장이 있지 않고 그 지역, 문화,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의 입장도 있다 . 한국처럼 성매매가 대규모 산업화한 나라에서 아무 전제 없이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지 않으면 성매매가 더 창궐할 가능성이 크고, 이를 사생활의 자유로 보는 것도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서울대 양현아 교수) 또한 한국의 성매매는 서구처럼 개인 간 일대일 거래 행위가 많지 않고 집단화·산업화한 양상이 지배적인 만큼 이런 식의 법적 판단(성매매의 합법화)가 성 산업만 키우는 꼴이 될 것으로 우려하기도 한다.(중앙대 이나영 교수) 충분히 공감할 만한 생각이다.


성노동자들의 인권 VS 여성 인권
또하나의 쟁점은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여성인권과 성노동자들의 인권의 대립이다. 본질적으로 성매매는 남성중심 사회구조에 기인한 비정상적 노동수단이다. 남자들의 퇴폐 밤문화 속에서 보다 하드코어적인 자극을 충족시켜줄 대상으로 자신의 반대성을 가진 인격을 상품으로 대접받겠다는 욕망이 내재해 있는 셈이다. 당연히 이러한 매매구조에 여성이 동의할리 만무하다. 한 진보 여성단체 관계자는 "자칫 성 판매를 노동으로 인정하고 용인하자는 식이 될까 조심스럽다"며 "성매매를 여성 인권이나 건강권 보호가 아닌 노동권 보호 측면에서 보는 것은 여성계에서 아직 논란이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반대의 입장은 성노동자들 스스로의 입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순간 한국사회에서 성노동에 연루된 상당수의 여성들은 법의 사각지대 안에 놓이게 된다. 성매매를 하고도 화대를 받지 못하거나 모텔에서 몸이 강제로 묶인 채 폭행당하고 성관계 장면을 카메라로 촬영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업주에게 성폭행을 당하고도 도리어 성매매 사실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해서 무마되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집창촌의 경우도 경찰이 실적이 필요할 때마다 닭장의 닭 잡아가듯 한마리씩 잡혀가는 신세가 되었다고 집창촌 여성들이 하소연한다고 한다. 일반 여성들은 원론적으로 옳지 않은 성매매구조 자체를 문제 삼지만 실제 사회 안에 성노동자들은 투명인간 취급을 하게 되고 성노동을 그만둬야만 정상여성으로 인정된다. 그전까지는 성노동자 여성들은 여성들 세계에서는 타자가 된다.

이에 대해서는 김두식 교수의 인터뷰에 응했던 김연희씨의 증언들을 곱씹어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밀사와 함께 성노동자 권리모임 ‘지지’(GG) 활동도 하고 계시죠? 지지는 어떤 단체죠?"/ “2004년 성노동자들의 시위를 보고 충격을 받은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여성주의자들이 성노동자 운동과 연대하고자 성노동 세미나를 시작했어요. 그 연속선상에서 만들어진 게 성노동자 권리모임 지지예요. 운동이 침체되는 상황에서 밀사가 성노동 실험이라는 사고를 쳤고, 그 소식을 들은 지지 쪽에서 바로 밀사를 접촉했죠. 밀사가 지지 활동을 함께 하자고 저에게 제안했고요. 지지는 제가 집창촌에서 보던 여성운동 하는 사람들과 느낌이 많이 달랐어요.”

"어떻게 달랐죠?/ “그 전에 집창촌을 찾아오던 여성운동 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우리가 남성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다면서 ‘너희는 여기서 벗어나야 해’라고만 했어요. 먹고살기 위해서 하루하루 일하는 우리에게 ‘너희는 강간을 사고파는 거야’ 뭐 그런 이야기나 하니까, 듣는 입장에서 굉장히 불쾌했죠. 쌈리(평택의 성매매 집결지)에 있을 때는 업주들이랑 아가씨들이 아예 ‘여성단체 출입금지’라고 써 붙였을 정도예요. 그런데 지지 사람들은 ‘성매매가 현재 불법이기 때문에 폭력을 당해도 피해를 호소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설명해 줬어요. 일상에서는 듣지 못하지만 현실적으로 맞는 얘기들이었어요. 우리가 일하는 상황에 대해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기도 했고요.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활동을 함께 하게 됐죠.”


덧붙여서: 성의식. 성해방, 성매매
이렇듯 성매매는 다중 가치관이 개입된 사회문제이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한 가지만 더 짚고 싶은 부분은 '성의식'에 대한 부분이다. 여성인권은 과거대비 최근들어 급격히 신장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여성의 성평등 문제는 미니스커트와 같은 페션에서부터 최근 '잡년행진'(SLUT WALK)까지 페미니즘적인 시각이 확산되는 추세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성해방운동은 여성의 피임기구가 발전하면서 임신을 전제하지 않은 자유로운 성생활에 대한 욕구와 그 실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여성문제는 성해방, 프리섹스주의와 시기적으로도 오버랩될 뿐더러, 여성문제를 다룰 때 성적인 요소들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성문제에 있어 주장하는 목소리의 결이 일치할 때가 많다. 허나 국내에서 여성 불평등 문제는 여성단체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지만 성해방이나 동성애 문제로 들어가면 대다수가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곤 한다는 점이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한국사회에서 보통의 여성들이 실제 보수적인 성의식을 가지고 있고 특히 그중 기독교인은 혼전순결을 중요시하고 여성의 성적 욕구에 대한 억압, 무분별한 성관계와 같은 성해방 이슈에 부정적인 입장이지 않은가.

여기서 내가 불편한 지점은, 성매매 문제에 있어 이러한 성의식이 성매매의 윤리잣대에 부지불식간에 스며든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수의 여성이 사회구조적으로는 남성중심의 한국사회의 직장문화, 유흥문화, 성불평등 문제 등에 강하게 반발하지만 성노동자로서의 개별 여성에 대해서는 사회일반적인 보수성을 - 남자와 잦은 성관계를 가진 여성은 더럽다, 성매매 여성은 정상적인 여성이 아니다  류의 - 계승한다.

남성의 성매매 여성에 대한 시각이 이중적이라면 - 성매수의 수혜자면서 사회적으로는 성매매의 대상을 더럽다고 혐오하는 - 여성들도 성노동자에 대해서는 이중적이긴 마찬가지다. 쉽게 말해 성노동자들이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성노동을 강요받는 피해자로 인식하지만 실제 노동자들과 대면할 때는 그들의 선택을 비난하고 법적인 처벌에 찬성하는 것이다. 또한 정서적으로 성노동자에 대한 더럽다는 인식을 여성들 스스로도 하는 듯 하다.

따라서 진실로 내가 우려스러운 부분은 이런 것이다. 여성 성노동자들에 대한 일반 여성의 인식이 다분히 보수적인 사회인식에 편승한다는 것, 이는 결국 성을 사고파는 이른바 성을 상품으로 규정짓는 인식 이상의 윤리적 잣대를 성노동자라는 타자(대상)에 투영한다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상대적으로 남성 성노동자에 대해서는 '더럽다'거나 '걸레같은 년(놈)'이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지 않는다.) 종교적 신념에 의해 혹은 보수적 가치에 의해 성노동자들을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유별나게 불결하고 더럽고 해서는 안되는 극단적 행위로 매도하는 데에는 그 잣대가 '매매행위' 자체에 있지 않고 '일대다의 섹스행위'에 대한 윤리의식이 함께 녹아들어 있다. 하다못해 장기 매매를 하는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구조에 분노함과 동시에 동정의 대상이 되지만 성매매를 하다가 죽거나 폭행당하는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보다 가벼히 여기거나 성노동을 하는 여성의 몸 자체를 '인간말종' 내지는 '걸레'로 인식하는 한계가 보인다. 사실 이것이 '여성' '성노동자'에게 쏟아지는 이중비난의 알맹이인 셈이다.

나는 거시적으로나 장기적으로 성매매가 근절되어야 한다는 큰 그림에 동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성노동자를 대하는 그런 시각, 그리고 그들이 받는 고통에 대해 관심있게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서 원론적인 이야기(성매매반대)만 되풀이하는 것들이, 자주 불편하다. 그리고 그런 불편함은 내가 보수적인 개신교인이고 프리섹스를 옹호하지는 않지만, 성노동자의 인권을 얘기할 때 성해방 담론을 반대하는 윤리적 잣대가 그 개개인에게 얹혀지는 현실에 기인한다. (끝)
2013/01/11 01:14 2013/01/11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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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미터 밖에서 보면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 있을 수가 없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인 거죠. 밖에서 페미니스트로서 발언을 하는 건과 현실에서 여성으로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의 사회적인 괴리가 큰 것 같아요. 반대로 생각은 정말 가부장적인데 인격적으로 여성을 대하는 사람도 있고요. 어떤 사람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됐으면 그걸 실제로 표현해야 자기 것이 되잖아요. 생각과 태도의 괴리가 없는 것, 가능한 그것을 통합할 수 있는 것이 인간적으로 건강한 변화가 아닐까 싶어요."

“남자들도 쉽지 않은 건 알아요. 아내를 배려해야 한다는 게 이중적인 부담으로 느껴지죠.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것과 아내가 자기 이름으로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차이가 있어요. 물론 남자들도 ‘나는 뭐 내 걸 챙기면 살았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남자는 그래도 사회활동을 하면서 갖게 되는 네트워크와 직함이 있잖아요. 여성들은 계속 가정에서 지내다 사회에 나갔을 때, 그 갭이 상당하거든요. 남성과 다른 코스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동일한 사회적 위치에 서기까지는 정말 힘들죠. 여건의 차이를 인정해주고 여성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 양혜원 님. 인터뷰 내용 중

2013/01/10 01:13 2013/01/10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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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잘 의식하지 않았는데 '매를 맞는다'는 표현 자체가 대단한 '가부장적 창의력'이란 생각이 든다. 매를 때리는 경우에는 대체로 훈계를 하는 자와 받는 자를 규정하고 그 둘 사이의 관계에서 훈계 행위로 말로 하느냐 물리적인 힘을 가하느냐로 구분된다. 따라서 방법을 떠나서 '훈계 행위에 대한 긍정'이 전제된다. 결국 '매맞는다'는 의미는 아내가 남편의 훈계를 받는 존재임을 처음부터 암시한다.
 
'구타당한 아내', '아내 폭력', '폭행' 같은 대상과 행위를 명시한 표현이 아닌 가정폭력이라는 보다 큰 범주화로 포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매맞는 아내라는 말은 참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좀더 구조적으로 접근한다면 여자가 출가하여 남편의 집안으로 들어가면 서열 최하위의 노동자가 되고 그 노동자는 그 개별 가정(부부)의 가사, 출산을 도맡아야 함은 물론 그 집안의 가부장적 질서에 잘 몸을 녹여야 한다.
 
명절 제사나 기일, 혹은 남편 집안의 대소사에 불참 내지는 무신경하거나 개별 가정에서 남편을 보필(아침 접대, 남아 출산,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가사노동 전담)에 부실하거나 귀가시간이 늦도록 회식에 참여하거나 여성이 사회적으로 안해야 할 일들(흡연, 음주과다, 종교생활 집중)을 행할 시에 남편과 남편의 집, 본가에서는 개별 여성을 제대로(가부장적 원리대로) 훈육할 의무와 책임을 갖는다.

 

핵심은 이것이다. 하나의 '거대한 조직'에 들어온 신입 노동자인 여성은 국가가 법치를 내세우듯 유교주의라는 법도에 따라 여성을 '매'로 다스릴 수 있다. 우리는 교양인이니, 대부분의 경우에는 대화로 여성을 훈육해야 하겠지만 버르장머리 없는 요즘 여성(아내, 며느리)들이 분위기 파악을 못할 때는 좀 강하게 우리 집안의 법도를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따라서 말단 가족원(여성)을 책임지고 있는 남편이 매를 들어라. 그리고는 사랑(성관계)으로 달래줘라. 이게 '매맞는 아내'란 말이 담고 있는 함의다.
 
내 생각이 과한가. 요즘 얘기같지 않은가. 불행히도 대답은 NO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2013/01/10 01:12 2013/01/10 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