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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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페북에 유철형님 글을 공유했더니 일본에 있는 전태호라는 페친님이 제게 댓글을 쓰셨더군요. 저도 고민하던 문제라 좀더 다루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글을 좀 써봤습니다. (편집자 주)


'전태호' 님을 인용 - 저는 링크하신 글도 그렇고 말씀하신 것도 그렇고 군이나 양을 붙이는게 왜 촌스러운 것이며 왜 권위적인 것인지 이해가 안가는데요? 촌스러운 거야 개인이 그리 느낄 수 있다 치더라도 이게 일제군국주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던가요? 정작 일본에서는 친한친구끼리도 쓰는 말인걸요. 동급생학생은 물론이고 자기보다 나이많은 사람에게도 친근감의 표시로 씁니다. 일본에서 왔다는 것만으로 문제가 된다면 ~씨도 쓰면 안되겠군요. 이것도 일본 신문기사등에서 쓰고 있는 말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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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그런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구요.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아 위의 글에 대해 제 생각을 조금 풀어서 쓰겠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누군가가 저에게 용주군. 이라고 할 때 그는 저보다 연하일리는 없 습니다. 왜냐면 군, 양은 자신보다 연배가 어린 경우에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용주야. 라고 하지 않고 용주군. 이라고 했을 때에는 필시 저와 친분이 깊지 않은 관계임을 암시합니다. 결국 용주야.라고 이름을 부를 때는 하대를 의미하나 친분이 있을 경우에 사용되는 호칭이고 용주군.이라고 부를 때는 하대하나 친분이 적절하지 않을 때 사용한다고 봅니다. 결국 OO군은 거리감이 있는 연하의 대상에게 나름 '정중한 하대'의 의미로 사용되는 듯 합니다. 삼촌뻘되는 어른이나 결혼식 주례처럼 선생으로 모시는 분들이 용주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이런 용례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한동안 저는 학교 후배들에게 OO군, OO양이라는 표현을 익살스럽게 쓰기도 했는데 불쾌해하는 친구들이 꽤 되더군요. (그 때 제가 받은 인상은 그들도 이제 나이를 어느정도 먹었는데 선후배 관계를 연상시키는 '하대', 그것도 친밀하게 느껴지지 않고 거리감을 주는 표현을 굳이 고수하는 것에 대한 불만 같았습니다.)

 

직장에서 용주군, 혹은 용주양. 이라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정중한 하대의 의미입니다. 결국 직장 내에서 위계질서가 존재하고 피고용인 간에도 서열이 있다는 의미겠지요. 보기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저는 피고용인 간에는 일의 경중이 있고 그에 따른 급여차이와 직책이 다르지만 모두가 평등하다는 전제를 두는 편입니다. 그런 이유로 사원에게는 OO사원님, 대리에게는 OO대리님이라고 부르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저와 함께 일하는 조수는 이름을 부르는 편이지만 공적인 자리나 공문서, 메일 등에서는 OO연구원이라고 호칭합니다. 물론 OO씨라고도 칭합니다만 그것은 적어도 저에겐 사내에서 친밀함의 표현이지 회의석상이나 문서상에서 표하지는 않는 호칭입니다.

 

그런 연유로 변호사님들이 직장 내에서 김양, 혹은 OO양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중한 하대의 의미일 것이고 특히 전자는 우리나라에서 커피 심부름이나 하는 시다급 '여'직원을 지칭할 때가 많아 왔으므로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후자의 경우에도 굳이 공적인 관계에서 정중한 '하대'를 이미 기득권자인 변호사가 티내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상대가 변호사님이라고 호칭한다면 그는 김비서 내지는 김사무관, 김보좌관, 김대리 등과 같은 직책을 부르는 게 적절해보이고 개인적으로는 공적 자리에서는 '님'을 붙여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현실과 괴리감이 크고 그런 방식 자체가 더 어색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해합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이 학생을 OO군이라고 부를 경우 그것은 정중한 하대란 의미로 봤을 때 일면 공감할 부분도 있겠습니다. '야이 새꺄'가 호명방식인 토종 교수님들도 많이 봤으므로 어느정도 예의를 갖추었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그럴 경우 지도교수-학생 간은 도제 제도를 상기하게 만드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학교, 연구실 내에서 지도교수-학생 간의 관계가 고객-서비스(지식)제공자 혹은 협업을 하는 준직장의 구도로도 생각할 수 있지 않나 하는 마음이 생길 때가 더러 있습니다. 이건 뭐 저의 오만불손한 생각일 수 있겠습니다만 교수가 자신의 책에서 OO군이라고 표현한다는 부분은 좀 걸립니다. 이러한 '정중한 하대'는 그 학생이 교수의 라인 아래 있는 제자임을 공적으로 거명하는 행위이므로 그렇게까지해야 하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듭니다. 이를테면 우스개소리로 하는 유라인, 규라인처럼 '김교수의 아이들'이라는 올가미를 학계에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행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용주학생이라고 말하는 것 보다 용주군이라는 말이 좀더 정치적으로 들립니다. 교수-학생은 상태를 설명하는 것 같지만 교수님-OO군은 다분히 '상태가 변할 것 같지 않은 위계질서'를 전제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가 느끼는 호칭의 어감에 따른 이야기이므로 군이나 양이 뭐 그리 대수냐, 난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라고 하신다면 그것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지강유철님의 글에 공감하고 그 글을 인용한 대목에서 저는 위와 같은 생각을 자연스레 떠올렸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할 말은 다 했으니 지강유철님의 원글을 함께 남기면서 마치렵니다.


교수님들, 아직도 홍길동 군입니까?

/지강유철

 

몇 년 전까지 판사 변호사(검사는 모르겠고)님들께서 사무실 여직원을 김 양, 서 양 이렇게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처음 그 소릴 듣고 웃었습니다. 21세기에 일제시대 잔재인 미혼의 여자를 양으로, 미혼의 남자를 군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앞에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은 웃는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결혼식장에 가면 신랑을 군으로, 신부를 양이란 쓴 입간판을 세워놓고, 순서지에도 그렇게 써 있습니다. 그것도 촌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신랑 신부와 주례사이에, 또는 신랑 신부와 하객 사이에 권력관계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결혼식장에서 그런 입간판이나 순서지, 또는 주례님의 말씀에 피식 웃습니다. 물론 이 웃음은 앞의 웃음과 다른 의미의 웃음입니다. 굳이 표현을 달자면 애교스런 웃음?

 

결혼하지 않은 남성을 군,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양으로 부르는 사례 중에 제일 고약한 경우는 교수님들이 책의 서문에서 자기 제자들을 그렇게 부를 때입니다. 오늘 제가 책을 읽을 때 가장 큰 즐거움을 선사하는 대목 중 하나인 서문(번역의 경우 역자후기)을 보다가 짜증이 확 몰려왔습니다. 나이도 저보다 세살 뿐이 안 많은, 그런니까 아직 연령으로 볼 때 쉰내가 나지않고, 보수꼴통 노털로 불리기엔 너무 이른 50대 교수님께서 자신의 책에 도움을 준 조교뻘 쯤 돼 보이는 박사과정 학생을 XX군이라 호칭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들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제자를 향해 XX군이라 불러야 자신의 권위가 선다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머리 큰 제자를 xx군으로 부르는 습성엔 보수 중도 좌파에 구분이 없더군요. 70-80대 명예교수님들이 그러는 거야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만 40-50대 교수님들이 그렇게 부르면 확 깹니다. 21세기에 XX군이라...이거 너무 칙칙하고 촌스럽지 않습니까? 제자를 군으로 부르는 모든 교수님들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일제군국주의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이런 호칭은 인권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2012/06/01 18:38 2012/06/01 1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