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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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의 다름을 확인하는 일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매번 겪어도 좀처럼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우울감이 찾아오는데 감정의 깊은 늪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글을 쓸까 말까 고민했다. 글이란 게 덧없다는 생각...
요즘 더더욱 많이 하기에. 조금 망설였다.
.
며칠전 뉴스앤조이에
이재철 목사 "세월호 유족들 우상시하면 안 돼"라는 기사가 떴다. 
읽었다.
내용은 목회자 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에서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의 강의 및 질의응답 내용을 정리한 것이었다.
질의 응답 중에 세월호 관련 내용이 있었고 그 워딩은 '적절하지' 않았다.
.
얼마 후 김종희 전대표가 해당 강의의 동영상을 올렸다.
60분 질의응답 중 3분이 할애되었고 그 영상에서 이목사는
슬픔에 대해서는 덧붙일 말이 없다고 전제한 뒤 문제의 워딩을 말했다.
물론 그 외에도 회자된 20대 이야기도 기사로 읽었다.
이에 대한 내 지인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고 모두 내가 느끼기엔
분노가 담겨 있었다. 나는 반응들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
이재철 목사와는 사적인 관계는 없다.
그저 20년 가까이 글과 책으로, 그의 주변에서 들은 풍문으로 
정리한 내 입장은, 소위 말해 존경하는 목사 중의 한 사람이다.
그리고, 
양화진을 둘러싼 갈등 관계의 이야기를 듣고 2주간 자료를 모아
이 목사를 옹호하는 기사를 뉴스앤조이에 쓴 적은 있다. 
.
그 외에 100주년기념교회의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
이 목사의 평소의 생활습관, 타인을 대하는 모습, 
얼마전 암에 걸렸을 때의 행동, 자녀가 결혼했을 때의 이야기
그런 변변찮은 이야기들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보다 더 뜨거운 이 '3분의 워딩'을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페북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
또다른 지인인 뉴조의 편집장은 페북에
언론의 역할이 깔놈은 까고 칭찬할 놈은 칭찬하는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 글에도 당연히 호불호가 갈렸고, 
나는 특유의 어정쩡한 태도로 그 스탠스가 나와는 맞지 않으나 
언제나 '그'는 지지할 거라고 댓글을 남겼다.
입장이 다르더라도 친분이 흔들리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
'입장이 다르다'...
나는 매사에 깔놈을 까고 칭찬할 놈을 칭찬하는 언론이... '싫다'.
한때 나는 진중권을 싫어했는데,
그가 한겨레를 깔 때와 조선일보를 깔 때의 수준이 같아서였다.
알파고가 연일 핫이슈다. 인공지능, 지능형OO라고 말하는
기계, 프로그램도 이제 산수나 논리만으로 다음 단계의 출력을 내지 않는다.
'기계적으로'라는 말이 냉정함, 정없음, 어쿠스틱의 배제를 의미했다면
나는 최근 점점더 '기계적'인 인간들을 대면하는 기회가 잦다.
.
이 논란으로 올라온 댓글 중 반복적으로 접한 글 중,
'이 목사도 이제 맛이 갔다', '은퇴나 하시라'는 류의 글을 읽었다.
물론 페북이나 인터넷 기사의 댓글은 비슷한 성향을 갖는다.
실언을 하면 그 사람은 금새 쓰레기가 되고 퇴출 대상이 된다. 
물론 간간이 좋은 기사엔 멋지다, 짱짱맨 등, 과한 찬사도 보인다
이것이 대체로 항상 분노가 쌓여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터넷 정서다.
솔직히, 백보 양보해서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
하지만 페북에서 교회 테두리 안의 지인들이, 
얼굴을 맞대기도 했고 함께 깔깔거리며 농담을 주고받고, 
맛집 음식을 함께 먹거나 사진을 나누며 병맛돋는 글과 말들을 하던 
지인들, 그리고 눈팅으로 알던 그들의 친구들이.
마치 모두 레알 친구인 것 같던 이들이 이재철 목사에 대해
해대는 말과 글들의 수위가... 솔직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
몇 년 전부터 모든 매체의 후원을 끊었다.
생각의 차이겠지만 나는 학생들, 아이들 후원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기독교 관련 후원은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하지만 두 매체, 뉴스타파와 뉴스앤조이는 여전히 후원한다. 
물론 금액은 적다. 그냥 상징적인 의미다. 
'뉴스앤조이는 후원할만한 매체다'라는 상징적인 의미...
.
여전히 나는 뉴스앤조이를 후원할 매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내 판단의 9할 이상은 그동안,
깔놈을 사정없이 까지 않고, 빨아줄 놈을 무턱대고 빨아주지 않은
김종희 대표의 데스크 판단력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선택은 공평하거나 합리적이지 않았지만,
매번 자신의 진정성있는 해명이 있었고, 분노가운데에도 정이 느껴졌다.
정통 기독 비판 매체지만 뉴스앤조이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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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나는 안철수가 정치에 입문한 후
4년을 지켜보기로 했고, 꽤많은 실망 속에 그를 욕하지는 않았다.
그가 정치판에 첫 발을 들여놓게 만든 게 국민들이므로 국민이 책임져야 한다...
나라도 그렇게 살자, 뭐 이런 나이브한 생각. (솔직히 아직도 한다.)
뉴스앤조이의 새 술과 새 부대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기독 매체를 나는 언젠가 버릴 것이다.
매체를 만드는 사람은 사랑하더라도 그럴 것이다.
.
서두에도 밝혔듯 이 글은 고민 끝에 쓴 글이다. 
그리고 이 글은 김종희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쓴 글이다.
2016/03/12 20:35 2016/03/1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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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올린 글에 대한 댓글을 읽고
그 글을 타임라인에서 내렸다.
.
내 글과 말이 나에게 호의를 보여준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그걸 직접 설명할 정도로, 우려를 표한다면..
.
그런 마음을 뒤로하고도 내가 고집할만큼
글이나 말이 그리 중요한가, 관계성보다
그게 더 큰 의미가 있나 하는 회의감이랄까.
.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있다.
꽤 오래 잡글을 쓰다보니 특정대상이
원하는 글이 무엇인지 어느정도 알게된다.
.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입장의 동일함' 때문에 그 입장의 재확인을
위해 내 글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
하지만 때때로 달라진 내 입장에 대해서는,
그 다름으로 인해 조만간 '나'라는
인터넷 공간 안의 하나의 '계정'에 대해
쉽게 규정짓거나 폐기 삭제할 준비가 된 
많은 사람들이 있다.
.
기고글을 향한 불특정 다수의 댓글 경험에서,
혹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어떤 온라인 지인들과
어느날 더이상 친구관계가 아님을 알게 된 순간.
마음 속 씁쓸함을 털어내기 쉽지 않다.
.
반대로 내가 별 생각없이 누군가에게 
쉽게 내뱉은 말들이 (나쁜 면에서) 큰 의미로
전달될 때 자책을 넘어선 깊은 좌절감 같은 걸 느낀다.
.
결국 내가 쏟아낸 글과 말에 대한 심한 회의감.
내가 생각하는 이상과는 동떨어진 어딘가로 나를
계속 이끌어가는 듯한 어두운 어떤 본질.
.
안식일 오후.
회사 사무실에서 밀린 업무를 털어내는 동안.
내 머리 속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고 있다.

2016. 2. 14.  페북글.
2016/02/16 21:23 2016/02/1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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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들은 주말내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다가 출근을 하고 일상이 시작되니 하루 업무에 적응하면서 마음이 가라앉았다. 선생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수없이 많지만. 그냥 미뤄뒀던 <담론>을 읽으면서 뼈속 깊이 자리잡은 그분의 자리를 돌아보려고 한다. 너무 무겁거나 너무 슬퍼하지 않으면서, 천천히 선생의 글들을 돌아보고 싶다.

2016. 1. 19.
2016/01/24 10:25 2016/01/2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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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위터와 아이폰의 조합은 온라인 생태계를 바꿔놓았다. 트위터에 연결되어 있으면 거의 실시간으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국회에서, 시위 현장에서,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행동들에서부터 셀렙들이 출몰하는 장소까지... 회사에 앉아 있는 내게 트위터는 고급 정보를 전달했고 나는 현장에 없어도 그 정보를 공유하고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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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타임 '아고라'로서의 존재감도 드러냈다. 아침에 터진 이슈에 대해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수많은 유명한 논객들과 파워 블로거, 기자, 트위터리안들이 자신의 생각들을 표현하고 트위터 안에서 수십번 수백번 리트윗을 거쳐 그 논지를 쉽게 공유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이로 인해 생긴 부정적인 영향도 컸다. 오보에 대한 의견들이 한동안 잦아들지 않아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기기도 했고 원치 않게 사생활이 공개되어 고통받는 이도 생겼다. 그럼에도 당시 트위터는 순기능이 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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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가 인터넷에서 논쟁을 즐기던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처음으로 논쟁의 묘미를 느꼈던 <인물과사상>은 3개월에 한번 발간되는 강준만의 일인저널룩. 당연히 논쟁의 속도는 더뎠다. 당시 진중권과 홍세화, 유시민 등 걸출한 논객들이 논쟁에 참여했지만 우린 다음 반론을 읽기 위해 3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이후엔 월간 인물과사상을 통해 월간 논쟁으로 속도가 빨라지긴 했지만 한달 간을 기다려 읽었던 반론글을, 무슨 논술 공부하듯 읽고 또 읽고 원글을 찾아 읽고 다시 반론글을 읽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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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게시판 논쟁은 그 속도가 훨씬 빨랐다. 게시판에는 붙박이 대표 논객들이 존재했고, 그들이 게시판의 공기를 주도했다. 갑자기 치고 올라온 뉴페이스는 자신의 지식을 어느 정도 입증해야 했기에, 약간의 허세삘 글들 몇 편을 쏟아내는 수고를 해야 했다.(일종의 레벨 테스트? ㅋ) 어쨌거나 게시판에서 일어나는 논쟁에는 일정한 룰이 있었다. 이슈가 발생하고 그곳의 주류 논객이 글을 쓰면 그것의 조회수가 급증한다. 하루이틀이 지나면 드디어 누군가의 반론이 올라온다.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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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에는 비슷한 형식이 있었는데, 일단 반론자는 처음 쓴 글의 텍스트를 분석해야 했다. 상대의 텍스트를 해석하여 짚어주고 그 오류를 풀어가는 형식. 이때 뒤집히는 상대의 텍스트가, 딱지 뒤집히듯 휘청거리면 독해의 쾌감이 상당했다. 그렇다고 당시에도 논쟁이 신사적이었던 건 아니다. 마지막에 사족처럼 덧붙이는 말에 상대를 비꼬거나 인신공격성 멘트를 우아하게 덧붙여서 한껏 반론을 도발하며 끝맺었다. 스웩. 상대가 고수라 재반론에 들어가면 게시판 유저들은 하루이틀 뒤에 그 즐거운 독해를 다시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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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언제부턴가 난 논쟁을 멈추었다. 모르겠다. 표면적으로는 페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가 논쟁에 적합한 플랫폼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굳이 SNS에서가 아니라 블로그에서 할 수도 있고 게시판이나 다른 매체를 활용할 수도 있을텐데 표면적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무엇보다 내가 논쟁의 '속도'를 못 따라가겠다는 나름의 판단 때문인 것 같다. 텍스트를 음미할 시간이 없다. 아침에 불거진 이슈는 당일에 일면식없는 수많은 논객들의 물량 공세에 이미 과식 상태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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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논쟁은 '분노의 표출'인 경우도 많았지만 대체로 텍스트 독해의 즐거움, 소화한 텍스트에 대한 해체의 더 큰 즐거움, 뒤집기의 쾌감이거나 때론 정-반-합에 이르는 묘미. 이 모든 것이 타인의 사고와 글쓰기에 대한 기대, 어떤 의미에서의 리스펙? 뭐 그런 게 있었던 것 같다. 왜냐면 인터넷은 공각기동대의 대사처럼 방대한 공간이라기 보단 또다른 (말 통하는) 한 무리의 게시판 공동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안에서의 인신공격은 라임을 맞추거나 힙합의 훅 같은 느낌적인 느낌도 있었다.

논쟁의 속도. 속도를 논하는 사람은 이미 지나간 사람이다. LP판을 회상하는 사람들은, 정서적인 공감은 받지만 음악계의 대세와는 무관한 흔적같은 존재일 뿐이다. 난 속도감있는 지금의 논쟁이 싫다. 물론 이미 5-6년전부터 몇몇 공간에서 상대를 대놓고 하수나 쓰레기처럼 대하는 정서가 싫었다. 그리고 다시 강산의 절반이 변하고는 혼잣말이나 하고 싶은 소.박.한. 중년사람이 되었다. 요즘은 어떤 이슈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이 더 깊어져서 어느덧 과잉 담론은 흘러가게 두고 싶을 정도로. 내 마음이 그렇다.
2015/11/09 21:32 2015/11/09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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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래 글을 쓴지 일년 만에 다시 고백할 게 하나 있다.
솔직히 몇년 전까지 나는 '여성 글쟁이'의 글을 즐기지 않았다.
그리고 대체로 그다지 잘 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뭐랄까 약간의 배려차원? 여성이 저평가되고 있다는 인식, 
여성을 도와야 한다는 또다른 차원의 , 여성폄하 혹은 맨스플레인이랄까.
의무감에 의한 봉사나 후원, 뭐 그런 마음이 전혀 없진 않았다.
.
2.
페미니즘 담론에 깊이 빠져들게된 최근 2-3년간
나는 독해의 방식, 담화자의 스탠스, 담론의 가치, 
뭐 이런 거창하게 말할 수 있는 '읽기 습속'이 급속도로 변했다.
예전에 즐겨읽던 책들이 지루해졌고 
책제목을 외우고 본문마저 인용하던 많은 책들이 시시해졌다.
반면, '희생과 봉사'의 심정으로 읽던 여성 저자들의 책들은
남성 저자 특유의 지식 도매상이 유통하는 
'상품들'보다 더 본질적이었고 
가벼운 주제에서조차 인간을 깊이 파고드는, 
하지만 분석적이거나 파괴적이지 않은 스타일의 그 무엇을 전달했다.
.
3.
'여성 글쟁이'에 대한 내 입장 변화도 컸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게 만든 계기가 있었는데,
연초에 있었던 강헌 선생의 "음악사 속의 여성" 강의 덕분이었다.
사실 나는 강헌 선생의 스타일에서 약간의 마초성을 읽곤 했는데,
그의 강의에서 잠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마저 들었다.
역사 속에서 남성(성)이 해온 많은 것들의 허망함, 초라함, 어이없음.
뭐 그런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을 스쳐갔다.
.
4. 
이 이야기의 끝이 기승전-여성, 여성짱, 
뭐 이런 글을 쓰려는 건 아니다.
그저 여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편견을 경험하지 않은 
남성의 입장에서 통용되는 지식, 
통용되는 글쓰기 스타일, 통용되는 사회적 가치,
이런 것들에 대한 편견을 털어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그런 편견을 걷어냈을 때 얼마나 많은 다양성을 보게되는지
뭐, 그런 류의 이야기를 '새삼' 하고 싶었다.
.
5.
오늘 <여배우들, 2009>을 봤다.
그 영화가 무언가를 계몽하진 않았지만,
그리고 그 영화의 내러티브에 어떤 암시도 없었지만.
그 영화를 보다가 문득 이런 글을 풀어내고 싶어졌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http://myjay.byus.net/tc/614
2015/10/10 21:25 2015/10/1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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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하는 말인데.
진보매체에서 난민 아이 사진을
반복적으로 노출하고 합성하고
삽화로 재현하는 부분들이 싫었다.
.
물론 그 사진 자체의 임팩트를 
부정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무언가를 비판하기 위해
써먹어야 할 컨텐츠에 대한 도리
혹은 윤리, 최소한의 예의 같은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
.
우리나라가 난민국가가 되었고
내 아이가 죽었다면,
일본이나 미국의 진보적인 매체
에서 내 아이의 사진을 삽화로
합성으로 혹은 그대로 반복해서
보여준다면 난 그들과의 연대보단
고립을 택할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인터넷 기사도 
보고싶지 않을 것 같다.
.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어떤 이슈를 위해서 소비해야할
혹은 소비해서는 안될
컨텐츠의 선택도 우리의 맨얼굴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2015/09/13 23:34 2015/09/13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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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쇼미더머니의 승리다. 내 관전평은 그랬다.
그 중심에는 물론 '블랙넛'이 있었다.
내 촉으로는 만약 1번의 경선이 더 있었다면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라는 룰을
깰 수도 있었다고 생각할 정도.
내 식으로 말한다면 '착한편'(우리 진영) 논객들은
초반부터 블랙넛의 인성을 문제삼았다.
'일베'스러운 블랙넛을 쇼미더머니가 잘 활용하고 있다고
그의 과거 쓰레기같은 랩을 거론하고 공연에서 보여주는 저질 퍼포먼스에
냄비처럼 타올랐다.
.
2.
다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쇼미더머니의 승리다.
아마도 시스템은 블랙넛이 악동으로 부각될 때부터 그의 스토리를 털었으리라.
(난 마이크로닷이 실제로 만난 블랙넛에 대한 호감을 표할 때 복선을 읽었다.)
처음부터 기획되진 않았겠지만 쇼미더머니는 블랙넛을 악동 캐릭터로 
몰고가는 것을 방기, 혹은 유도하다가 그의 고단했던 과거를 통해 
인간 김대웅을 이해하도록 내러티브를 구성했고, 그것은 진정 판을 뒤집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YG등딱지 뗀다던 송민호는 태양의 후광아래 이겼지만 작아보였고 
블랙넛은 인간 드라마를 완성하고, 그간의 비호감 캐릭터를 털고 하차했다.
.
3. 
블랙넛의 후회와 찌질한 랩에는 진정성이 있다.
과거의 고단한 삶과 방황했던 시간들에 대해, 쓰레기 가사들에 대한
비난에 대해 아이돌 스타처럼 즉각 사과하는 치밀함과 신속함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렇다고 이해해 달라고 징징대지 않고
찌질했던 자신을, 그저 있는 그대로 봐주기를, 음악으로 전달한다.
.
난 여전히 그가 탐탁치 않다. 
가사를 절어서 탈락한 피타입, MC 메타, 하다못해 힙합의 가오를 말하다
아쉽게 하차한 릴보이에 비해 그의 철학?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못마땅하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랩은 참 훌륭하다. 플로우를 타는 감각, 딜리버리,
무엇보다 에너지넘치는 다른 래퍼들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자극하는 어떤 능력, 집중력이 남다르다. 
욕하면서도 음악에 고개를 흔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
4.
하지만 나처럼 그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많은 비판자들은
앞으로도 생각해볼 지점들이 있다.
블랙넛을 비판하던 담론, 이른바 여성혐오, 막장을 즐기는 시스템,
가족주의를 통해 쥐어짜는 감동으로 얼버무리려하는 
저 자본주의에 찌든, 힙합정신을 무색하게 만드는 쇼미더머니 어쩌고.
.
그 돈에 찌든 시스템이 나같은 정의로운 논객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대중의 마음을 흔드는 호소력 있는 내러티브를 주고 있다.
왜냐면 시스템이 김대웅이라는 개인을 우리보다 더 깊이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
'쓰레기 랩이나 내뱉는 인성에 문제 있는 놈'이라고, 그렇게
우린 한 개인을 우리의 담론, 진영, 바른 삶과 행동이라고 규정짓는 사고로
어떤 한 인간의 결과물을 판단하고 비평하고 결론짓는다. 
SNS가 생겨난 이후로는 섬광과 같은 속도로 한 사람의 인생을 저주한다.
.
5.
텍스트 비평이 유효하던 시기가 있었다.
텍스트만 가지고 떠들던, 그래야 했던,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담론에 의해, 그리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텍스트 너머의 발화자, 담론의 주체,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을 보게 만들었다,.
사이버수사대와 SNS, CCTV가 발화자, 컨텐츠 생산자의 
신상, 과거와 현재, 일상의 모습 그 모두를 털 수 있게 됐다.
.
정의와 사회참여를 외치는 진보교수의 자녀는 해외유학을 나가 있고
사교육을 비판하는 집단은 모두 사교육으로 인서울 대학을 나온 인재들이고
자비와 사랑을 노래하는 종교인들은 비싼차를 몰고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그 부를 세습하고 성추행을 일삼는데도 건제하고,
김대웅은 지옥같은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끄적인 쓰레기 같은 가사를
20대에 읊었다는 이유로 그의 '인성'이 회복불가 수준의 사이코 취급을 받는다.
.
6.
물론 블랙넛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난 적어도 이것은 구분하고 싶다.
무릎팍도사나 힐링캠프에 나와서 자신의 이미지를 세탁하려던 연예인들은
이미 정점에 놓였던 '가진자'였다. 인생이 고단했던 20대의 젊은 래퍼를 까려면 
최소한의 형평성은 맞춰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
최소한 나는 블랙넛이라는 인간 자체의 판단은 조금 더 유보하고 싶다.
인성을 거론하려면 40까지는 기다리고 싶다.
솔직히 블랙넛 한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뱉어낸 말과 행동에
대해 너무 명확한 구획과 판단이 가혹하리만큼 빠르게 이뤄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게 내가 자본주의의 쓰레기 방송 쇼미더머니의 승리라고 단언하는 지점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2015/08/24 22:53 2015/08/24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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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육아일기
요즘 대세인 혁오의 와리가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던 중.
...
성하: 아빠 이거 기타소리야?
나: 응.
성하: 기타 치면서 노래부르는거야?
나: 그렇지... 왜?
성하: 멋있다... (허공을 쳐다보다가 눈감는다)
...
그렇게 우리 둘은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음악이야기를 나누었다.
2015/08/03 00:05 2015/08/0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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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이건 좀 불편한 얘기일 수 있겠지만.
나는 연인과 부부, 가족의 문제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한다고 어느 정도는 확신하고 있다. 살면서 그런 경우를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순수한 피해자가 아닌 경우도 있고 반대로 가해자도 마찬가지였다.

일례로(물론 이건 가정이다) 아내와 내가 갈라설 경우 대략 10년간의 관계에서 아내가 서운했던 큰 몇 장면들을 추려서 공론화시킨다면 나는 금새 개쓰레기로 전락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될 것이다.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대략 명확한 선악구도가 그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 명확한 선이 어떤 각도에서는 반전 지점으로 돌변하는 영역 또한 존재한다. 일례로 나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안 좋은 기억들이 대체로 지배적이지만, 따지고 보면 아버지가 내게 특별히 악행을 저지른 구석은 없다. 오히려 긴 세월동안 아버지는 나에게 안락한 환경을 조성해 준 좋은 부모다. (좋은 남편이 아니었을 뿐.)

사실 우리가 자신의 사적 영역을 허물면서 받아들이는 일련의 관계에서는 이런 일들이 잦다. 사적 영역이 허물어지면 서로 간에 자신의 깊은 내면까지 무례하게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허용한다. 그게 '스킨십'이 됐건 '과한 농담'이 됐건 '무리한 책임을 지우는 상황'이 됐건 간에 말이다. (물론 폭행, 사기, 강간 등 극단적 범죄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관계에서 자주 권력구도가 발생하고 그럴 경우 '을'이 피해를 입는 일이 생긴다. 게다가 이런 관계가 지속될 경우 피해자가 자신이 피해를 입었음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약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분명 누군가의 도움이 요구되고 공론화가 필요하고 사회 구성원의 윤리적 판단이 개입되어야 한다.

하지만 너무 쉽게 타자들의 연인, 부부, 가족처럼 깊은 관계에 자신의 경험을 투사하여 단정짓고 누군가에게 객관적인 사실 이상의 혐의를 씌우고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자신처럼 비판하지 않는다고 주변 사람들마저 한통속으로 몰아가는 반응들은, 적어도 내게는 꽤나 무례하고도 위험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대체로 약자의 편에 서는 용기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공론의 장에 가해자로 추정되는 이가 서 있더라도 갑을 관계 외에 우리가 고려해야 할 당사자 간의 깊은 영역에 존재하는 진위 문제를 따져볼 생각의 여유가 필요하다. 언제나, 역사 속에서 매번 단정적인 사람들이 많은 실수를 범했다. 그리고 그것은 진영이나 권력구도를 초월한 영역이기도 했다.
...최근의 몇몇 사건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15/07/21 21:02 2015/07/21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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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기독교
이번 edm 찬양 관련 ivf 사과문은 적절했다고 본다.
해당 논란에 대해서는 열린 토론을 유도하되 절차상의
미흡함과 편견 섞인 기성 교회의 우려에 대한 사과,
무엇보다 행사를 준비한 이를 위로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
어느덧 시간이 훌러 비판의 날을 세우던 대학생 신분에서 
중년 어디 즈음으로 정체성이 변해가는 나를 본다.
솔직히 내게는 그닥 본이 될 만한 교회의 어른을 찾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방황했다. 내가 본이 되겠다고 설쳐보기도 했다.
.
대부분의 꼰대들은 그저 보수적이거나 침묵을 지켰다.
그 와중에 몇몇은 공감대 없이 설치다가 조용히 사라져갔다.
.
내 세대의 신앙의 선배들이 할 일은 
(한때 우리가 그랬듯이)
비판의식 충만한 신앙을 가진 청년들에게
계속 그 길을 탐구하고 달려갈 수 있는 공적인 장을
지켜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대의 기성세대가 '다름'을 '옳지않음'이라고 쉽게 정죄할 때
미안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자고 
이해를 구하고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
설령 앙쪽이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중재라 하더라도
논쟁이 부정적으로 과열될 때 적극적으로 
모두가 고려된 해명을 통해 담론의 장을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우리의 역할은 그런 지점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신속한 개입을 통한 중재는 하되 학생 자발성에는
간섭하지 않고 기독문화의 지향점을 지켜보는 태도가 적절하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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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건 나의 결핍에서 오는 긍정적 평가임에 분명하다.
내가 겪은 신앙의 어른들은 청년들의 도발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급이 맞지 않는다며 우회적인 훈계를 일삼고 
논란이 증폭되면 설명없이 활동과 조직을 아예 없애는 방식으로
대처해왔다. 그런 생태계에서는 냉소와 몰이해만을 키워갈 뿐이었다.
.
난 edm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밥 만세-_-)
하지만 다른 장르와 동일하게 edm으로 찬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ccm도 별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궁서체로 쓰긴 싫었는데...어쩌다 여기까지 왔다.
그대들의 시대가 곧 올 것이다. 그때까지 이쁘게 봐 주시라.
뿌.잉.뿌.잉.
2015/07/19 20:45 2015/07/19 2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