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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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을 하고 몇 년이 지나서였던 것 같다. 댓글로 의견을 주고 받다가 논쟁이 벌어졌다. 좀 심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서로 이쯤에서 그만두자고 한발씩 물러서고 대화를 마쳤다. 앙금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는 바로 직후에 자기 담벼락에 나를 공격했던 논조의 글을 올렸다. 그 이후 나는 그분과는 소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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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는 텍스트비판을 즐겼다. 진보 기독교권에서 처음 쓴 글도 반론글이고 게시판에서 논쟁도 자주했다. 타인의 글을 인용하여 재배치(해체)한 후, 그 글의 모순을 되돌려주는 작업은 흥미진진했다. 복학후부터 대학원 졸업시기까지. 나는 많은 책들, 타인의 필력 높은 글들을 읽고 지식과 논리를 쌓고, 타인과 논쟁하는 과정 자체를 즐겼다. 잃은 사람도 많았지만 관계가 깊어지는 경험도 했고 무엇보다 소소하게나마 내 글의 인지도가 높아지는 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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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빈틈이 없는 글, 타인의 엉성한 텍스트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글을 쓰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과정이 불필요했다거나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내 글과 내가 부유하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대기업에 취업을 하고는 내가 비판하는 칼날이 어디를 향한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결혼을 하고나서는 여성문제에 있어서 더 탄탄하게 말할 수 있는 논지를 내뱉는데 주저함이 생겼다. 발화자와 발화내용의 부조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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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글과 말, 논리, 논지, 객관성, 탁월함. 이런 것들에 대한 회의감도 생겼다. 논리가 엉성한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그가 나보다 훨씬 나은 삶의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자주 겪었다. 내 글의 높은 경지를 추구하기보다는 내 글과 내 삶의 적절한 조화가 더 중요해졌다. 거품빼기랄까. 나는 더 어리버리하게 말하고 글을 허술하게 쓰는 것을 의도하는 경우가 생겼다. 의도적으로 방어적으로 논지를 숨기기보다는 내 인간적인 편견을 드러내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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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모든 과정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아내가 옆에서 자주 내 모습을 지적질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내 글과 내 삶의 간격을 줄이려고 애쓰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누구나 자기를 변호하고 포장하고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을 보여준다. 나도 여전히 그렇다. 굳이 내 입으로 빈틈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건, 솔직히 마음이 내키는 일이거나 즐거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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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페북을 활용하는 의도는 다르겠지만. 나는 페북을 일종의 놀이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좋아요'를 대놓고 누르기를 유도하고, '싫어요'는 없는 플랫폼 자체가 긍정적인 피드백을 의도한 반면 부정의 피드백은 더 큰 반감을 유발한다고 느꼈다. 이런 구조에서는 자신의 글을 좋아해서 공유하기를 바라지, 누군가의 담벼락에 칼질의 대상으로 언급되기를 원하지는 않게 된다. 물론 그렇게 페북을 사용하는 이들도 많지만 '나는'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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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을 하면서 글을 잘 쓰는 이들을 자주 목격했고 나는 컨텐츠가 좋은 이들과 페친을 맺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타인의 글을 비판하기 위해 공유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고 나는 결국 그런 사람들과는 온라인 관계를 지속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왜냐하면 언젠가 내 글도 그들의 논리에 맞게 칼질이 되어 그들의 담벼락에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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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나는 누군가 내 글을 공유하더라도 그와 나 사이에 공유된 페친에게만 그 글이 보이도록 설정해두었다. 페북은 내 페친이 내 글을 공유하면 그 친구의 친구들에게도 내 글을 읽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몇몇 글들은 설정 자체를 그렇게 묶어뒀다. 그와 별개로, 의도한 건 아니지만 감사하게도 내 페친들도 내 글을 자신의 비판 논지를 펴기 위해 인용하지는 않았고 공유할 때에도 내게 의사를 물었다. 페북의 시스템은 그럴 필요없이 페북을 사용하도록 기능이 구성되어 있으므로 굳이 내게 그럴 필요는 없지만 난 그런 페친들에게 안정감 이상의 어떤 연대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건 마치 비행기나 버스에서 좌석을 뒤로 충분히 젖힐 수 있지만 뒷사람을 고려해서 자제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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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페친들에게만 공유하는 글들의 다수는 페북이라는 '내 놀이터' 공간에서 친구들과 공유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내가 글의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 내가 체화하고 행동할 수 있는 수준의 글만을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한다. 물론 여전히 논리적으로 완벽한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그건 매체 기고글이나 논문, 보고서에서 보여주고 싶을 뿐.(기고글로 욕먹는 것에 불만은 없다.ㅜㅜ) 페북을 공적 언로로 생각하거나 때때로 선교의 도구로 활용하는 목사님들도 계시지만 이곳에서 나는, 그저 편견도 있고 빈틈도 많은 김용주라는 한 인간을 이해받고 싶은 정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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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페친 중 한분이 나의 편견을 지적하며 내 글을 자기 담벼락에 공유했다. 사실 그분의 페북 스타일을 볼 때 언젠가 내 글도 저 담벼락에 비난의 대상으로 걸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오늘이 됐다. 결국 나는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 분은 미리 글을 쓸 때 제한하고 싶은 부분을 말을 하는 게 좋지 않냐고 말하고 불편하다면 글을 지우겠다고 했다. 반나절 정도 오늘 일을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페북에 쓰는 내 글은 반복적인 것 같지만, 다시 남겨본다. 페북에서의 김용주 사용설명서 정도라고 받아들이시면 된다.


2016. 6. 5. 페이스북에서.
2016/06/06 20:11 2016/06/06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