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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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쇼미더머니의 승리다. 내 관전평은 그랬다.
그 중심에는 물론 '블랙넛'이 있었다.
내 촉으로는 만약 1번의 경선이 더 있었다면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라는 룰을
깰 수도 있었다고 생각할 정도.
내 식으로 말한다면 '착한편'(우리 진영) 논객들은
초반부터 블랙넛의 인성을 문제삼았다.
'일베'스러운 블랙넛을 쇼미더머니가 잘 활용하고 있다고
그의 과거 쓰레기같은 랩을 거론하고 공연에서 보여주는 저질 퍼포먼스에
냄비처럼 타올랐다.
.
2.
다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쇼미더머니의 승리다.
아마도 시스템은 블랙넛이 악동으로 부각될 때부터 그의 스토리를 털었으리라.
(난 마이크로닷이 실제로 만난 블랙넛에 대한 호감을 표할 때 복선을 읽었다.)
처음부터 기획되진 않았겠지만 쇼미더머니는 블랙넛을 악동 캐릭터로 
몰고가는 것을 방기, 혹은 유도하다가 그의 고단했던 과거를 통해 
인간 김대웅을 이해하도록 내러티브를 구성했고, 그것은 진정 판을 뒤집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YG등딱지 뗀다던 송민호는 태양의 후광아래 이겼지만 작아보였고 
블랙넛은 인간 드라마를 완성하고, 그간의 비호감 캐릭터를 털고 하차했다.
.
3. 
블랙넛의 후회와 찌질한 랩에는 진정성이 있다.
과거의 고단한 삶과 방황했던 시간들에 대해, 쓰레기 가사들에 대한
비난에 대해 아이돌 스타처럼 즉각 사과하는 치밀함과 신속함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렇다고 이해해 달라고 징징대지 않고
찌질했던 자신을, 그저 있는 그대로 봐주기를, 음악으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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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전히 그가 탐탁치 않다. 
가사를 절어서 탈락한 피타입, MC 메타, 하다못해 힙합의 가오를 말하다
아쉽게 하차한 릴보이에 비해 그의 철학?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못마땅하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랩은 참 훌륭하다. 플로우를 타는 감각, 딜리버리,
무엇보다 에너지넘치는 다른 래퍼들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자극하는 어떤 능력, 집중력이 남다르다. 
욕하면서도 음악에 고개를 흔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
4.
하지만 나처럼 그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많은 비판자들은
앞으로도 생각해볼 지점들이 있다.
블랙넛을 비판하던 담론, 이른바 여성혐오, 막장을 즐기는 시스템,
가족주의를 통해 쥐어짜는 감동으로 얼버무리려하는 
저 자본주의에 찌든, 힙합정신을 무색하게 만드는 쇼미더머니 어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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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돈에 찌든 시스템이 나같은 정의로운 논객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대중의 마음을 흔드는 호소력 있는 내러티브를 주고 있다.
왜냐면 시스템이 김대웅이라는 개인을 우리보다 더 깊이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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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랩이나 내뱉는 인성에 문제 있는 놈'이라고, 그렇게
우린 한 개인을 우리의 담론, 진영, 바른 삶과 행동이라고 규정짓는 사고로
어떤 한 인간의 결과물을 판단하고 비평하고 결론짓는다. 
SNS가 생겨난 이후로는 섬광과 같은 속도로 한 사람의 인생을 저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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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텍스트 비평이 유효하던 시기가 있었다.
텍스트만 가지고 떠들던, 그래야 했던,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담론에 의해, 그리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텍스트 너머의 발화자, 담론의 주체,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을 보게 만들었다,.
사이버수사대와 SNS, CCTV가 발화자, 컨텐츠 생산자의 
신상, 과거와 현재, 일상의 모습 그 모두를 털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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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사회참여를 외치는 진보교수의 자녀는 해외유학을 나가 있고
사교육을 비판하는 집단은 모두 사교육으로 인서울 대학을 나온 인재들이고
자비와 사랑을 노래하는 종교인들은 비싼차를 몰고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그 부를 세습하고 성추행을 일삼는데도 건제하고,
김대웅은 지옥같은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끄적인 쓰레기 같은 가사를
20대에 읊었다는 이유로 그의 '인성'이 회복불가 수준의 사이코 취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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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물론 블랙넛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난 적어도 이것은 구분하고 싶다.
무릎팍도사나 힐링캠프에 나와서 자신의 이미지를 세탁하려던 연예인들은
이미 정점에 놓였던 '가진자'였다. 인생이 고단했던 20대의 젊은 래퍼를 까려면 
최소한의 형평성은 맞춰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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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나는 블랙넛이라는 인간 자체의 판단은 조금 더 유보하고 싶다.
인성을 거론하려면 40까지는 기다리고 싶다.
솔직히 블랙넛 한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뱉어낸 말과 행동에
대해 너무 명확한 구획과 판단이 가혹하리만큼 빠르게 이뤄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게 내가 자본주의의 쓰레기 방송 쇼미더머니의 승리라고 단언하는 지점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2015/08/24 22:53 2015/08/24 2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