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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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몇년간 20대 청춘들에게 '멘토'와 '힐링'이란 말이 유행했다. (힐링이란 말에는 몇몇 비판적인 이야기도 접했지만 대세를 뒤집는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책도, (읽지는 못했지만) 결국 청춘들이 세상에서 부딫히고 흔들리는 것이 당연하며 그런 행위 자체를 긍정하고 지지하겠다는 의도였으리라.

#2.
직장생활 가운데 상당히 얍쌉한 전략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거다. 어떤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내 업계를 예로 들면) 차량을 개발하면서 설계 단계에서 문제점이 발견된다. 실차 평가 시에 무리없이 넘어갈 수도 있지만 문제가 터질 수도 있는 아리까리한 케이스가 발생한다. 허나 설계 초기단계에는 놓치고 뒤늦게 문제...를 발견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하면 결정권자의 '까임'을 당하기쉽다.

그래서 잔머리를 굴린다. 프로토타입의 차가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험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 보고서를 가지고 원인을 규명하고 개선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전자는 게으르다 혹은 무능하다고 치부되지만 후자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윗사람이 살짝 걱정이 되려는 찰나에, 척척 치밀한 분석에 개선안까지 1주일 안에 진행하면 그 사람은 무능력자에서 단번에 능력자로 탈바꿈된다! (당신이 웃거나 황당해한다면 이(직장) 바닥을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이 치열한 경쟁이 판치는 중원 고수들의 tip이다!

#3.
'힐링'이란 말을 하다가 갑자기 직장생활의 얍쌉 꼼수를 예로 든 건 둘 사이의 어떤 연관 관계가 보이기 때문이다. 내 독학의 통찰로 보기에 힐링은 기성세대의 꼼수다. 여기에 나를 포함시켜도 상관 없다. 기성세대는 청춘들이 다치고 부서지고 깨질 것을 명약관화하게 예측하면서도 그냥 지켜본다. 왜 예측가능하냐고? 자신들도 그렇게 세상을 배웠고 그 안에서 아프고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힐링'의 지점을 잘 알고 있다.

과거의 멘토들은 군대 상관 내지는 직장 상사 같은 이들이었다. 김성근 감독처럼 자기를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자기의 멘티들을 동일한 방식으로 채찍질하여 키워내던 이들이다. 그 고통을 견뎌내면 철인이 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다수는 그런 '스파르타 주민들'이 아니다. 더욱이 무한경쟁에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더 가혹한 구조가 스파르타 주민들이 되어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과거에 반해, 우리 시대의 멘토들은 공감과 소통으로 무장했다. 세련되게 '우쭈쭈..'할 줄 안다. 그가 쓰러질 그 자리에 서서 손을 잡아준다. 그리고 그가 쓰러진 이유를 너무나도 드라마틱하게 설명해준다. 때론 구조의 문제를 읊조리며 굿윌헌팅의 상담 선생님처럼 'it's not your fault'라고 다독여준다. 이 지점이 나는 못내 불편하다. 청춘들이 죽음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숨어서 실눈 뜨고 지켜보다가 넘어지는 청년들에게 나타나서 감언이설로 위로하는 게 솔직히 껄끄럽다. 
 
#4.
 차라리, 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멘토'는 청춘들에게 정직하게 무릎을 꿇고 사과할 줄 아는 기성세대의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너에게까지 고통을 안겨줘서 미안하다고.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선배로, 선생(먼저 태어난 이)으로 너희들이 아파하고 흔들림을 반복하는 문제들을 알면서도 대항하거나 고치려고 애쓰지 못하고 너희 세대에 동일한 문제를 떠넘겨서 정말 미안하다고 무릎꿇고, 혹은 머리라도 긁적이며 사과하는 이가 진짜 '멘토'라고 나는 생각한다. 
 
'스파르타식 멘티 훈련법'에서 벗어난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얍쌉한 스탠스를 '힐링'이라는 포장으로 위로하고 다니는 '멘토'들을 보면 직장 강호에서 인정받는 분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에 기분이 좀 씁쓸하다. 이 시대의 멘토들 모두가 꼼수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기성세대의 잘못을 사죄하는 겸손한 인격들도 거의 본적이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5.
 그런 이유로.. 내가 하고픈 결론은 이것이다. 기성세대가 청춘들에게 '멘토'로 인기를 얻으려 하기 전에 선배로서 겸손히 사과의 마음을 전하자. 얍쌉한 현실분석과 과장된 감정표현은 기성세대의 상사나 윗사람에게나 계속하고, 청춘들에게는 솔직하게 말하자. 나도 딴에는 열심히 살았지만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건 쉽지 않더라고, 그렇게 정직히 말하자.

정말 '멘토'가 되고 싶다면 말이나 책, 강연뿐만 아니라 그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소박하더라도 보다 직접적인 수고를 하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2013/03/09 22:57 2013/03/09 2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