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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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사이에 전자책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책장을 넘길 때의 질감, 펜으로 그은 밑줄이나 끄적인 메모 등 아날로그적 감수성이 깊게 배인 종이책은, 스마트폰이나 이북(e-book) 단말기로 책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점점 들고 다니기도 무겁고 좁은 방 양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가는 이사할 때마다 옮기기 힘든, 그렇다고 쉽게 버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가 되는 느낌이다. 10년이 넘은 책들은 어느덧 제본이 벌어지고 색도 바래고 책벌레도 꼬이는 데다가 잦은 이사로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 결국 나조차도 자연스럽게 전자책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실제 구입도 많이 늘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전자책 시장의 규모가 외국 같지는 않아도, 최근 몇 년간 나름 양적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이제는 상당량의 신간들을 전자책 형태로도 읽을 수 있다. 만 2년 정도를 써본 내 입장에서도 전자책은 매력적인 면이 많다. 나는 그날그날 읽고 싶은 이슈가 달라서 보통 가방 속 책이 두세 권은 족히 넘는다. 따라서 조금만 두꺼워도 그 책은 가방에 못들어가고 그 결과 영영 안 읽게 될 확률이 높다. 이에 반해 전자책은 분량에 상관없이 상시 50권이 넘는 책이 단말기에 들어 있으면서도 서류 가방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다. 또한 신간이 나온 사실을 출근 후에 알더라도 온라인으로 주문하거나 서점을 찾을 일없이 바로 다운로드를 받아 그 즉시 읽는 게 가능하다. 읽다가 필요한 부분들은 줄을 긋거나 표시해둔 후 집에 와서 일일이 타이핑하는 일이 잦았는데, 지금은 읽다가 필요한 부분은 SNS나 스마트폰으로 보내고 필요할 때 카피해서 쓰면 그걸로 끝이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소유한 기독교 관련 전자책은 전무하다. 규장, 나침반 등 몇몇 기독 출판사들이 전자책을 출시하고 있긴 하나 대다수는 전자책 시장 자체에 발을 들여놓을 계획이 없어 보인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이 기독출판계로 하여금 전자책 시장에 소극적인 자세를 갖게 만드는 건가. 사실 디지털 콘텐츠들은 순식간에 시장의 판세를 뒤집어 놓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레코드점에서 CD를 구입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음원 파일을 다운받는 일이 잦다. DVD를 컬렉션처럼 모으던 사람들도 이제 대부분 영화는 블루레이급 파일로 다운받는다. 이미 출판 시장도 디지털 시대를 열었다.

 

 

출판계의 고민, 핵심은 DRM
전자책 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다. “전 세계 언어로 된 모든 책을 60초 안에 제공한다”라는 모토 아래 아마존은 2007년 11월에 킨들(Kindle)이라는 전자책 단말기를 내놓으며 전자책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이 단말기가 2008년 50만 대 이상 팔리면서 아마존은 전자책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굳혔다. 킨들이 성공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전자 잉크(e-ink) 기술을 이용한 뛰어난 가독성, 3G 통신망을 이용한 잡지․도서의 즉각적인 다운로드, 그리고 ‘7인치 200그램’의 뛰어난 휴대성이 그것이다.


킨들의 성공에 이어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넷북과 전자책 단말기를 커버할 만한 태블릿PC ‘아이패드’를 2010년 세상에 내놓았다. 출시 초기에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으나, 잡스의 예견대로 이 ‘10인치의 아이폰’은 전자책 단말기를 넘어서는 혁신적인 기기로 급성장했다. 아마존도 태블릿의 가치를 알아보고 곧 킨들 어플리케이션과 ‘킨들 파이어’라는 태블릿 형태의 단말기를 개발했다. 검색 사이트의 표준으로 불리는 구글도 몇몇 대학과 협력하여 ‘구글 북스’라는 프로젝트를 시작, 구간 도서를 중심으로 700만 종의 종이책을 디지털 텍스트로 변환하는 등 본격적인 전자책 사업에 뛰어들었다. 또한 아수스(ASUS)사와 함께 ‘넥서스’라는 자체 태블릿PC을 제작하고 작년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이로써 태블릿 시장은 아마존의 킨들파이어, 애플의 아이패드, 그리고 구글의 넥서스, 이렇게 3사의 경쟁구도를 이루게 되었다.
 

사실 메이저 출판사들이 아닌 애플, 구글, 아마존이 전자책 시장에 적극적인 것은 기이한 일이기도 하고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출판시장은 빠르게 디지털로 진화하고 있는데 정작 출판업계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근본적인 원인은 DRM, 즉 디지털 저작권 관리(Digital Rights Management)에 있다. 아마존은 전자책 사업 시작부터 자체 포맷의 DRM을 사용하고 있지만 아마존을 제외한 대다수의 업계에서는 전자책의 표준인 ePub 포맷을 사용한다. 사실 출판계는 DRM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기술적인 전문지식이 없으므로 자신이 보유한 콘텐츠의 불법 복제 및 무단 배포의 가능성 자체를 두려워한다. 자칫 DRM이 풀린 상태로 수많은 고가의 전자책이 시장에 퍼질 경우 출판업계 자체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날로그 콘텐츠들이 디지털화되는 과정에서 음반회사들은 이미 엄청난 재앙을 경험한 바 있다. 디지털 음원은 곧 MP3 파일로 음성적으로 대규모로 유통되었고 곧 음반사들의 수익 악화로 이어졌다. 음반은 돈을 내지 않고도 들을 수 있는 대표적인 콘텐츠로 변질되어 갔다. 이런 불안 속에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음반업계에 불법 복제를 차단하는 음원 유통망으로서의 아이튠즈 사업을 제안했고, 결국 메이저 음반사들은 모두 아이튠즈에 음원을 한곡당 1달러에 ‘헌납’했다. 음반사가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아성을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과 메이저급 출판업체 사이에서 이미 비슷한 갈등이 불거진 바 있으며 구글은 자사가 스캔한 수천만 권의 책에 대한 저작권 문제로 미국출판사협회와 7년간 긴 소송을 치렀고 다시 작가협회와의 소송이 예상된다.
 


전자책 시장의 변화, 기독출판의 대응은?
영화와 음악 같은 디지털 콘텐츠들은 점점 배급, 유통과 같은 업체로 그 권력이 이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책은 어떤가. 아마존은 자기 고유의 포맷과 킨들이라는 기기를 이용하여 이미 전자책 시장의 중심에 섰고 이제는 출판사를 배제한 채, 저자와 직접 전자출판 계약을 체결하려 한다. 여기에 아이패드로 전자책 시장을 넘보는 애플과 넥서스를 개발한 구글까지 출판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형국이다. 전자책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출판시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개별 출판사들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 콘텐츠들처럼 종이책도 유통업체가 권력을 갖기 시작했고 전자책 시장의 확대에 따라 더욱더 이 흐름은 가속화될 것이다.


<복음과상황> 1월호 “그르니에의 ‘섬’이 되는 기독 출판을 희망함”에서 김진형 전 IVP 간사는 최근 9년간 결산회의 때마다 영업 담당자들이 “올해처럼 경기가 안 좋았던 적이 없었다”며 푸념을 했다던데, 나는 기독출판계가 한국 출판 시장에서 그간 꽤 선전했다고 평가한다. 이는 양적인 측면에 국한된 평가가 아니다. 물론 말랑말랑한 간증서나 자기계발서, 성공지향적인 가치관들을 기독교 신앙인양 포장한 책들이 호황인 트렌드는 여전하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많은 양서를 출간함으로써 평신도에서 목회자까지 책을 통해 스스로 고민하며 신앙을 성장시키는 동력 내지는 자정 능력을 제공해 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다. 출판시장은 최근 몇 년간 과거보다 더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고 향후 몇 년 안에 극도의 위협과 난관에 처할 수도 있다. 기독출판계 또한 동일하리라고 본다. 혹시, 관성적으로 ‘묻어가기’ 내지는 세속 출판사들을 따라 하겠다는 전략이라면, 최소한 공이 날아가는 방향을 알고 떨어지는 곳에 서 있어야 제대로 슛을 날릴 수 있다. 내 생각에 ‘포도주’는 여전히 새 술인데 ‘부대’는 낡아 가고 있다.(끝)

2013/03/12 21:11 2013/03/12 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