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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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올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왔다.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 서 있는데 비둘기 몇 마리가 내 발 밑을 지나갔다.

눈 속에서 뭔가를 열심히 파먹고 있는 그들은
머리엔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페인트인지 뭔지 모를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부리는 까맣게 젖어 있었다.

그들이 쪼아먹고 있는 것은 과자 부스러기, 밤새 누군가가
쏟아 놓은 구토한 흔적들...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그들에게
더 이상 symbol의 의미는 없어졌고 누구도 그들을
순결과 평화의 이미지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런 자기들의 위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시 주변을 떼지어 배회하며 사람들이 먹다 버린
입에 단, 하지만 내장을 해치는 음식 쓰레기들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비둘기들의 모습을 본다.

문득 나와 그들이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도시를 못 떠나면서 폐로는 공해를 마시며
입에는 미각을 한껏 자극하는 인스턴트 음식에 익숙해져가는
그렇게 점점 도시의 회색빛에 그 지워지지 않는 페인트에 남루해져가는 내 속살을 본다.

'구구구구' 비둘기 흉내를 내며 던져주는 모이들을
...사실 내가 주워 먹고 있다.

2010/01/16 20:16 2010/01/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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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가정 예배를 드리고 한 해의 계획을 세우는 중.
예전에는 한 해를 정리하면서 체크 리스트 형식의 문항까지 만들어서
적어가며 정리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나쁘게 본다면 마음 속 치열함이 예전같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세세하게 정리해서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들을
분류하고, 새해에는 그것들을 다시 리스트로 정리하는 것이
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은 시들해졌다.

하지만 한 해를 돌아보고 그것을 평가하고 새해의 계획을 세우며
나의 내면과 삶의 방향성들을 점검하는 일들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망망대해에서 나침반도 없이 여기 저기 닥치는대로 노를 젓는 것처럼
인생에도 일희일비하며 매일처럼 입에 달콤한 음식과
몸에 자극이 되는 것에 집착해 살기에 너무나 적절한 요즘같은 세상에서.

무언가 나를 묶어두고 훈련하고 변화시켜가려는 원칙과 삶의 목적들을
되내어 보는 시간이 적어도 내게는 너무나 절실하다.

지난 한해 나는 어떻게 살았던가. 아니 지난 한해동안 나는 어떤 존재였던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나는 지인들에게 어떤 친구로 살았던가.
가족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냈을까.

한해를 돌아보고 새해 계획을 세우는 것은,
굳이 과거를 떠올리며 나의 많은 부족함들을 재차 확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원래 나는 여전히 부족한 존재이고 어떤 순간에는 악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것을 되내이며 스스로 자학을 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돌아보려는 것은 단지 내 삶의 방향이 내가 하는 말과 얼마나 어울리는지,
그리고 내가 걸어가는 내 삶의 걸음걸이가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지
설령 그 걸음이 한없이 더디더라도 제대로 걷고 있는지,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건지. 그것을 정기적으로나마 확인하려는 것이다.

돌아보면 솔직히 지난 한해동안 못 이룬 것들이 많다.
또한 더욱 삶에 자신이 없어진 나를 발견한다.
나이 서른에 나는 거칠 것이 없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점점 움츠려든다.
불혹의 나이까지 불과 5년.
한해 한해 더욱 많은 부분에서 흔들리고 자신 없어하는 나를 보며
5년뒤 내가 무슨 글을 쓰게 될지 벌써부터 식은 땀이 난다.

이렇듯 쩔쩔매는 마음으로 한 해를 연다...

2010년 1월 4일.
2010/01/04 22:57 2010/01/0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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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설계를 하면서 부차적이지만 내가 견디기 힘든 일들 가운데 하나는 협력업체 실무자들에게 과도한 업무와 일정의 압박을 주는 것이다. 가령 bracket 샘플 제작하는데 10일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면 3-4일만에 제작해서 가져오라고 요구한다든지 샘플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일들이 생긴다. 물론 이러한 긴급한 일정은 위에서부터 하달된 차량 제작 단축일정에 기인한 것이지만 결국 야근에 철야까지 하게되는 업체 입장에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관계로 나는 설계업무를 하면서 나름의 원칙을 세웠는데 첫째로는 일정을 업체가 제시하게 하고 그 일정을 최대한 지켜주자는 것이다. 일정이 모자란 부분은 OEM에 속한 타부서, 이를 테면 차량 제작하는 부서나 차량시험팀에 협의하여 일정을 최대한 벌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당장 가져오라고 호통치고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강압적으로 일하는 극단적인 직원들에 비해서는 다소 뒤쳐지지만(이런 압박으로 날밤 새며 하루 이틀만에 샘플 제작이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실무자는 고된 노동으로 인해 퇴사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 나의 선의를 헤아려 부품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업체 분들도 노력해주었다.

두번째 원칙은 비용은 반드시 챙겨주자는 것. 물론 협력 업체가 양산시에 투자비를 환급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관행적으로 초기 개발에 사용되는 샘플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설계자가 조금만 신경쓴다면 전혀 불가능한 거은 아니다. 초기 투자비 예산 확보하여 집행함에 있어서 담당자가 절차상의 복잡함만 잘 견뎌낸다면 비용 지불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업무에 있어 업체 샘플비 지급을 우선적으로 처리하여 내가 개발한 부품 대부분의 샘플비는 모두 지급되었다. 하지만 내가 청구한 비용이 모두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업체와 구매팀과의 내고를 거치기 때문에 실지급액은 그에 못 미친다. 그래도 최소한 청구를 누락시키는 일은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

입사 이후로 조금씩 OEM과 협력업체의 관계도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협력업체를 하청업체로 생각하고 상명하복을 요구하는 분들이 사내에는 여전히 존재한다. 물론 그들의 강요는 더욱 짧아진 차량개발 일정과 급박하게 돌아가는 조직의 생리에 적응하기 위해 불가피한 관행이기도 하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실상 개선이 잘 되지 않기에 나도 내 협력업체 파트너가 야근, 특근을 일삼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매번 불편하기만 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통에 지인들에게는 새해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해를 돌아보면서 내가 회사에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협력업체 직원들, 특별히 사원, 대리급 실무자들에게는 감사의 메일을 썼다. 그들의 도움으로 한 해를 잘 마감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동안은 작은 것이지만 그런 표현조차 잘 하지 못했다. 새해에는 더욱 주변에 도움을 주는 분들에게 자주 표현하려고 한다. 흘러간 시간에 후회하는 일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어간다. 바로 잡자.

2010/01/02 20:16 2010/01/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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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도 분리수거를 한다.
그 전에는 아파트 안에 쓰레기를 버리는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은 아파트 지하1층과 연결되어 모든 쓰레기들이
그 곳으로 굴러 떨어졌다.
아파트 지하 1층에는 쥐들이 살고 있었고 간혹 천장 너머로
쥐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언제부터인가 나도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지금도 분리수거를 정기적으로 하지만 할 때마다
나는 그 분리의 수위를 정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다.
가령, 종이에 끼워져 있는 스태플러나 종이 박스에 붙어 있는 비닐은
그런 나의 갈등을 가중시킨다.

물론 모든 폐품은 잘 분리해야만 한다.
하지만 가끔 나는 그 수위 조절을 스스로 하고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늦은 밤에 분리수거를 하는 날에는 병을 모으는 자루에 플라스틱을
넣었다가 너무 깊이 들어가서 꺼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페이퍼 백에 붙어있는 쇠조각이나 나일론 줄을 제거하지 않는 날도 있다.

사실 나는 일회용 물건들의 사용에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왔다. 종이컵, 일회용 도시락통, 나무 젓가락, 비닐 봉지 등.
아내는 자주 나의 무절제한 일회용품 사용을 지적한다.
녹색평론을 보고 후원하면서 너무한다는 것이다.

가끔 발끈하긴 하지만 그 사실에 나는 동의한다. 나는 일회용품 사용에
개념이 없다. 분리수거를 하면서 죄의식의 상당부분을 털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분리수거마저도 완벽함이라는 수위 조절에 자주 실패한다.

나는 분리수거를 하면서 나란 사람이 소모하는 재화들을 곱씹게 된다.
나란 사람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사용되는 물건들이 실로 방대하다는 걸
나는 분리수거를 하면서 실감한다.
이러한 찌꺼기들을 매주 내뱉으면서도 경각심을 느끼지 못하는
나에 대해 조금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나는 어떤 면에서 상당히 이기적이다.
2009/11/08 20:14 2009/11/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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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동네 만두집 총각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웃으면서 멈춰서자 그는 반가이 나를 맞았다.
"뭘 드릴까요?" "김치 하나 고기 하나 주세요." "넵!"

사실 만두를 살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퇴근길에 간혹 늦게까지 장사를 하고 있는
그와 마주치면 난 거의 매번 만두를 샀다.
그를 위해 만두를 사준다는 표현이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그가 늦게까지 남은 만두를 팔고 있을 때는
나는 흔쾌히 계획에 없던 구매를 한다.

허나 그것은 어떤 자선의 행위는 아니다.
이 집 만두는 맛이 있다. 담백해서 저녁에 아내와 먹고 자도
아침에 속이 쓰리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 집은 동네에서 소문난 집이고 만두를 잘 하는 집이다.

얼마 전 집 앞에 대기업의 체인점 수퍼마켓이 들어왔다.
그 맞은 편에는 할머니 한 분이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다.
수퍼마켓이 개점하는 날, 그 앞에는 빨간 글씨로
'지역 장사를 죽이는 대기업은 물러가라'는 플래카드가 걸렸고
동네 사람 몇 명이 팔짱을 낀 채 그 곳을 지켜보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다수의 동네 사람들이
대기업의 수퍼마켓을 찾았다.
처음에는 동네 할머니의 구멍가게를 지나서 수퍼마켓을 가야하는
그 길을 지날 때 사람들은 머리를 숙이거나 걸음을 빨리 걷곤 했지만
곧 그런 사람들도 없어졌다.

일주일이 지나서 구멍가게는 문을 닫았다.
그 가게에는 먼지낀 과자들과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식품들이 많았고 불량식품 과자들이 항상 가게 앞에 진열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앉아 있던 평상에는 색소가 짙게 보이는 슬러쉬가 돌아가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입 주변이 보라색으로 변해서 돌아가니곤 했다.

할머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그 불량식품 가득한 구멍가게를
살리지는 못한 것이다.
그리고 매일 매일 새로 물건이 들어오고 늦은 저녁에는 할인까지
해주는 수퍼마켓을 동네 주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용하는 것이다.

나는 이웃들이 물건을 팔고 내가 그 물건을 사는 일이 드문 시대에 살고 있다.
기껏해야 만두집이나 야채, 과일 가게 정도가 그렇고
나머지 수퍼마켓이나 빵집, 커피전문점, 미용실까지 체인점이다.

이런 체인점들은 쿠폰과 할인, 적립과 동일한 서비스로
주민들을 유혹하지만 동네 가게 주인들은 먼지쌓인 낡은 가게에서
더욱 불친절한 모습으로 이웃을 대할 때가 많다. 처음부터 게임이 안 된다.

집에 와서 아내와 만두를 먹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2009/11/07 20:13 2009/11/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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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그에 대해서는 지금도 공중파를 통해서 연일 그의 삶을 조명하는 내용의 방송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나는 예전부터 그를 좋아했고 대통령 선거 때도 그를 뽑았다. 그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선의로 받아들였으나 집권 후에는 다소 실망한 감이 없지 않았다. 특히 민주당과 갈라섰던 대목에서 나는 민주당에 잔류했던 추미애를 더 높이 평가했고, 이후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은 채 진행된 한미FTA 협정에서는 그의 정치 철학을 뒤집는 듯한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다.

그런 때문인지 이번 검찰 조사에서도 노무현에 대한 실망이 그리 크게 생기지는 않았다. 항시 권력 주변에는 자신이 원치 않아도 비자금이 어떤 식으로든 생길 수 있으며 그 금액조차도 미미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굳이 사법처리하겠다는 데에 나는 반대였지만, 진보적인 이들이 MB를 겨냥하고 법대로 집행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반드시 사법처리하라는 이들의 말을 굳이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돌연 목숨을 끊었다. 조사를 받고 나온 날 기자들을 향한 어색한 웃음을 뒤로 한채 고향 봉하마을에서 생을 마감했다.

대다수는 그렇지 않으나 간혹 주변에서 노무현과 그의 죽음에 대한 비판적인 말을 듣는다. 그 중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비판은 그 주변이들에게 한(恨)을 남겼다는 점이다. 그의 죽음이 권양숙 여사와 그 자녀들에게는 한국 정치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가져다 주었을 것이고, 그들이 어느정도 연루되었었기 때문에 그 마음의 상처를 씻어내기 힘들 것이다. 유시민을 비롯한 그의 측근들도 아마 남은 삶을 살면서는 현 정권에 대한 분노의 정치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러한 분노와 비극의 화살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던지는 것은 그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일 것이다. 마치 벼랑 끝에 내몰고 나서도 떨어지지 말고 버티길 명령하는 것처럼. 그것은 목숨을 뒤흔들어 놓고도 혼들리지 말라는 요청에 다름 아니다. 노무현은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대통령직을 잘 보존했다지만 그는 어떤 의미로든 자신의 진의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힘들어하는 여린 존재였다. 냉정한 정치판에서 눈물을 보이기 일쑤였고 자주 흥분했으며 말을 삼킬 줄 몰랐다. 그런 그를 국민들은 지지했고 때론 크게 실망했고 이제는 결국 그런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생의 마지막 며칠은 병원에 입원을 권유받을 정도로 우울증이 심해 보였고 기력이 없어 보였으며 심하게 자주 스스로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를 둘러싼 많은 조력자들을 하나둘씩 단지 노무현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구속에 들어갔고, 점차 가족들에게도 그 수사망을 좁혀 압박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비난의 잔을 그는 피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그의 마지막 죽음을 놓고도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지만 나는 그의 죽음이 여린 그가 견뎌내기에는 너무 가혹한 방법으로 그를 몰아세워갔고 이 비극이 그가 벼랑끝에서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정이었다고 느낀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를 만들고는 잘못을 했으니 그것을 달게 받고 끝까지 견디라고 하는 것이 과연 그에게 우리가 요구해야 했던 도덕성의 본질이었던가.

나는 마음이 아프다. 그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전직 대통령이 아닌, 인간 노무현이 너무 안타까워서 매순간 현기증이 난다. 봉하마을에서 그의 원대로 농사를 지으며 말년을 보낼 수는 없었을까. 정부가, 검찰이,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그를 심판하고 싶었던가. 그를 지지했건 그렇지 않았건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를 애도할 것이다. 그의 생전에 그의 비판적 지지자였던 나도 그를 가슴에 묻어야겠다. 권양숙 여사의 말처럼 이제는 더이상의 고통없이 편히 쉬시길 기도한다.

2009/07/01 22:51 2009/07/01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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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세계의 오지나 전쟁, 대지진, 전염병 등 재난의 현장에서 자발적인 무상 진료 활동을 펼치는 쿠바 의사들의 인도적인 의료 지원은 유명합니다. ‘아픈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는 모토 하에 지난 45년 간 101개국에 무려 10만 명이 넘는 쿠바 의사가 파견되었답니다.

대지진의 현장에서 반년 넘게 천막 진료를 하고 있는 의사나 한 번의 진료를 위해 몇 시간 동안 밀림을 헤치고 걸어가는 의사나 그들이 바라는 보상은 간단합니다. ‘의사가 친절하고 좋다’는 말만 들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거지요.

그렇지요. 의사에게 ‘친절하고 좋은 의사’라는 말보다 더한 보상이 어디 있을라구요. 선생님에게 ‘졸업하고도 계속 보고 싶은 스승’이라는 말만큼 짜릿한 보상이 또 있을라구요. 부모에게 ‘나는 엄마 아빠가 참 좋아’라는 말 이상의 보상이 다시 있을라구요.

모든 혁명의 처음이 그런 것처럼 본래 인간의 모든 행위와 관계는 본질적이었을 겁니다.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영양 공급으로 비만을 초래하는 식탁처럼 자꾸 넘치는 욕망 쪽으로 몸을 기울이다가 종래에 알맹이는 없고 덧대기만 남아 있는 형국인지도요. 특별히, 인간의 모든 관계에서는 본질을 꿰뚫는 쿠바 의사같은
‘혁명가 정신’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출처]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본질|작성자 혜신이



오늘 정혜신의 그림 에세이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본질을 꿰뚫는 혁명가 정신의 '본질'이라는 것이 친절한 의사가 되는 것, 졸업하고도 제자가 찾아오는 스승이 되는 것, 그리고 자녀가 좋아하는 부모가 되는 것이라는 점에 이제는 크게 동의가 되었다.

사실 청년기에 나는 거대담론에 빠져 있었고, 세상을 변화시키자는-그것이 '종교'적인 의도에서건 '진보'라는 잣대에서건 간에-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포부가 크면 클수록 사실은 본질적인 부분보다는 인정받고 싶은 허영과 공명심에 취해 있었던,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욕구가 존재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인격적인 관계에서 오는 원초적인, 그리고 본질적인 동기가 사람을 진정한 혁명가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가 장애를 가진 이들에 더 관심을 갖게 되듯이 사람을 대하면서 갖게 되는 단순한 기대와 소망들이 사실 우리 안의 본질적인 혁명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글은 <작은 도서관 운동>을 처음 시작한 최해숙 관장님의 인터뷰 글이었다. 이 운동을 하게된 계기를 묻자 그 분은 이렇게 말했었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유치원 교사로 일을 해서 아이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손자를 돌보면서였다. 내 아이들이 자랄 때에는 생계를 위해 은행에서 일하느라 아이들을 내 손으로 직접 키우지 못했다. 손자들이 생기자 ‘도대체 무엇을 위해 남에게 아이들을 맡기면서까지 일을 했나.’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손자만큼은 온 정성을 다해 키우고 싶었다.

책을 좋아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육아일기를 꾸준히 썼다. 아들을 키우면서 썼던 육아일기는 며느리에게 선물로 주었다. 손자를 3년 반 키우면서도 자연히 일기를 쓰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다. 손자에게 책도 많이 읽어주었다. 그러던 중 꾸준히 구독하고 있던 <새가정> 잡지에서 어린이를 위한 좋은 책을 소개하는 글을 읽게 되었다. 잡지를 통해 어린이도서연구회라는 부모들의 모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아이를 위해 좋은 책과 나쁜 책을 선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책을 내 아이들에게만 읽힐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읽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를 잘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다른 아이들도 같이 잘 자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민간 어린이 도서관은 아마 내가 처음으로 시도했을 것이다. 큰 비전을 보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좋은 책을 골라서 읽혀야겠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했다.


(출처: 주간기독교 인터뷰 내용 중에서)


'내 아이를 잘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다른 아이들도 같이 잘 자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은 도서관 운동>을 시작한 최해숙 관장, 그리고 ‘아픈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는 모토 하나로 세계를 누비는 쿠바 의사들. 나도 이러한 작은 혁명을 꿈꾸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2009/07/01 20:11 2009/07/0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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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사를 했다.
4개월된 아이를 데리고 이사하는 건... 정말 죽음이었다!
아이를 보기 위해 어머니가 올라오셨고 포장 이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월차를 낸 금요일과 주말 내내 죽도록 일하고 월요일에 출근했다.ㅜㅜ
아.. 전세이사... 힘들고나.
그래도 자주 이사를 하니 묵은 짐들 정리는 잘 되는 것 같다.
2년만 지나도 집안 곳곳에는 쓰지 않으나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로
가득차기 마련인데 자주 이사를 하다보니 그런 짐들은 미련 없이 버리게 되었다.
때때로 벌거벗은 몸으로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엔 가지고 갈 수도 없는
많은 물질들에 대해 집착하는 건 아니지만, '방치'한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다.
그렇게 그렇게 허용하는 것이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이건 있으면 유용하고 저건 언젠가 쓸 날이 올 것이고... 그런 이유로 점점 소유가 늘어난다.
이사를 할 때면 이 세상의 삶을 나그네에 비유한 베드로가 떠오른다.
실제로 가정을 이루고 나서는 나그네로서의 삶에 대한 긴장이 많이 떨어졌다.

2. 요즘 책소개 포스팅을 전혀 못하고 있다.
물론  읽고 싶은 책은 여전히 많아서 책은 정기적으로 사고는 있다.
문제는 최근에 기독교 세계관 연재글을 쓰면서 예전 책들을 읽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어서 산 책들은 먼지가 쌓인 채로 늘어가고 있을 따름이다.
연재가 대충 정리가 되면 그간 쌓아둔 책들을 봐야지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뭐 책 읽는 게 대수랴!
점점 풀려가고 있는 날씨에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바람도 쐬고 자전거도 타고..
그럴 여유도 좀 부려야겠다. 책은 분명 유익한 도구지만 너무 묻혀살면 샌님되기 십상이다.

3. 자전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에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마트에 다녀왔다. 아내에겐 금방 갔다올게..해놓고
거의 1시간만에 돌아왔다.ㅜㅜ 나는 체중이 상당히 늘어 있었고 운동은 하도 안 해서
패달을 조금만 열심히 밟아도 다리가 아팠다. 젠장... 어느덧 이런 지경에 이르다니.
기김진호 선생님의 포스팅을 보니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 정말 좋아 보였는데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 본 나는 괴롭기만 했다. 운동이 필요하다... 정말. 크흑...
2009/05/13 22:48 2009/05/13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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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목표를 잡을 때 주로 책을 몇 권 읽겠다, 글을 몇 편 쓰겠다는 결심을 주로 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말과 글보다는 실천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해서 올해부터는 작게나마 목표를 잡을 때 다른 것보다 실천에 무게를 더 두기로 했다.


1. 스타벅스 커피 끊기
   : 개인적으로 스타벅스 커피에 중독이 된 지 오래다. 스타벅스 커피는 특유의 향과 맛이 있다. 좋다고는 할 수 없는데 이는 유통망이 길기 때문에 커피의 로스팅을 오래하는 편인데 그로 인한 짙은 맛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다. 작년부터 노력하고 있는데 잘 안되었다가 최근 CEO인 하워드 슐츠가 이스라엘 시오니스트들을 후원하고 있고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독한 마음으로 禁별다방 하기로 마음 먹었다.

2. 대형할인마트 안 가기
   : 안 가기는 사실 힘들다. 올 해는 되도록 공산품은 동네 가게에서, 육류는 집 앞 2등급 한우 정육점에서 사고 채소류와 기타 생선같은 장보기는 농협을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3. 일대일 어린이 결연
   : 오래전부터 하려고 했던 일인데 올해 아이가 태어나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일대일 어린이 결연은 후원을 필요로 하는 한 아이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일정 금액을 지원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제 막 방글라데시의 한 아이와 결연을 맺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아이들과 결연을 맺고 싶다.

4. 녹색평론 후원
   : 이것도 계속 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일이었는데. 올해에는 정기구독하던 잡지들을 정리하고 녹색평론을 후원하기로 결심했다.(주로 기독잡지가 많다. ㅡㅡ;;;) 원래는 정기구독을 할 계획이었으나 녹색평론 사이트를 방문하고 보니 후원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비록 적은 금액으로 시작하지만 녹색평론 같은 좋은 잡지가 200호, 300호, 1000호가 나올 수 있다면 더 많은 지원을 할 계획이다.

5. 공정 무역 거래 상품 구입 및 후원
   : 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이익을 볼 가능성이 희박한 사람들은 덤핑(헐값 판매)의 압박을 받고 있는 제3세계 생산자들이다. 그들의 노동시간과 근로조건, 아동 학대, 성차별, 생산지 황폐화 등등의 현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 나라도 대형 마트 및 유통업체의 횡포로 생산자에게 합당한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커피와 초콜릿 등을 시작으로 더 많은 상품들을 찾아서 구입하고 후원할 계획이다.


후기.
개인적으로 구제와 봉사의 가장 저급한 행동이 후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저급한 후원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시간을 할애하고 몸으로 나누는 훈련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려면 점점더 내 시간의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할 것 같다. 지금처럼 회사에 모든 시간을 던져주는 삶에서 조금씩 벗어나야 한다. 한 10년 후에는 더 많은 실천의 목표들이 실현되길 기대하며.
2009/02/13 22:45 2009/02/13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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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사람의 감정이란게 내 맘 같지 않은 경우도 있다.
뭐. 연애를 하다보면 그런 일을 자주 겪기도 하겠지만,

누군가에게 관심을 보이고 애정을 쏟고 싶어도
그런 것들을 튕겨내는 사람이 있다.
특별히 상대가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다.

내겐 이런 일이 새해 인사를 하다보면 간혹 겪게 되는데
그래도 내게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가 원치 않게 봉변을 당하게 되기도 한다.

오늘, 나는 그 사람의 번호를 모두 지웠다.
번호 뿐만 아니라 기억 속에서도 모조리 지워야 할 것 같다.
2009/01/05 20:09 2009/01/05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