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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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IVP BOOKNEWS 11년 11/12월호에 실린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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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때, IVF에서 나름 열심히 ‘훈련’을 받고 있었던 나는 프란시스 쉐퍼의 대표적 기독교 변증서인 「거기 계시는 하나님」, 「이성에서의 도피」를 읽으며 기독교가 이성적으로 설명될 수 있고 복음에 대해 합리적인 방식으로 비그리스도인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그렇게 지적으로 충만한 시간을 보내던 중 내가 속한 지부에서 ‘추구팀 수련회’를 계획했고, 나는 부조장으로 그 수련회에 참석했다. 이 흥미로운 소그룹에서 조장 누나와 나는 각각 한 명의 1학년생을 맡아 1박 2일간 전도를 하게 되었다. 나는 알고 있는 지식을 모조리 쏟아 부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하나님이 이 일을 위해 나를 준비시키셨구나 싶기까지 했다. 일대일 나눔의 시간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자신을 아무개 대학교의 물리학과 새내기라고 소개한 그 학생과 세 시간 정도 쉬지 않고 논쟁했다. 그는 신앙 추구자라기보다 기독교 혐오론자에 가까웠다. 허나 그는 입시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신념에 비해 실제로는 아는 게 별로 없었던 반면, 나는 그간 특수훈련을 마친 특공대원처럼 현란하게 대화를 주도하며 그 학생의 논리적 허점들을 짚어 나갔다. 결국 그가 입을 열었다. “형 얘기가 다 맞네요. 근데 저 이제 집에 가도 되죠?” 나는 귀를 의심했다. 집에 가겠다고?

그 학생을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준 간사님 말에 따르면, 그는 다시는 이런 모임에 오지 않겠다며 갔다. 나는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났다. ‘내가 이겼는데 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거지. 도대체 왜 내빼는 거야.’ 당시에는 화를 달래기 위해, 그가 당장은 받아들이지 못해도 언젠가 내 주장이 옳았음을 인정하고 돌아오리라고, 내가 그 씨앗을 심었다고 자위하려 애썼다. 하지만 내 영험(靈驗)한 기대와 달리 그는 영영 나를 찾아오지 않았고, 나는 한동안 전도의 기회를 날렸다는 자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여전히 기독교 변증 자체에 대해 대놓고 부정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그날의 트라우마로 인해 실제로 비그리스도인에게 기독교 변증을 시도한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변증이나 설교가 아닌 삶 자체를 통해 예수를 알려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뿌리 깊게 내재되었다.

최근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기독교를 믿을 수 없는 17가지 이유」라는 책을 발견했다. 책이 눈에 띈 건 순전히 표지 때문이었는데, 나와 아내가 좋아하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반들과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이라는 책의 독특한 타이포 디자인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흥미롭게도 모두 김기조 씨의 디자인이었다.) 아마 이 책이 변증서라는 걸 알았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익숙한 책표지가 눈길을 끌었고(기독교 변증서와 인디 문화 디자인의 조화라니!), 그에 더해 뒤표지에 실린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대단히 재미있다. ‘새로운 무신론’에 응답하는 지금까지의 책들 중 단연 최고다”라는 추천사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렇게 이 책을 펼쳐들고 단숨에 완독했다.

이 책의 묘미는 분량이 짧고 책장이 빨리 넘어간다는 데 있다. 사실 그런 책들은 대개 내용이 부실하다. 물론 이 책도 그렇다. 좀더 궁금한 독자는 ‘주’에 표기된 자료들을 찾아봐야 할 성싶다. 하지만 비슷한 분량의 변증 입문서들과는 다르다. 대개 변증 입문서들은 아주 일반적인 내용들을 간략히 다루기 때문에 책의 전반적인 논조에는 동의가 되더라도 특별히 ‘써먹을 알맹이’가 없는 데 반해, 이 책은 17가지 이유를 변호하는 각 장마다 조사된 통계 수치와 자료들을 제시함으로써 기독교에 대해 막연한 반감을 토로하는 비그리스도인에게도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다가갈 것 같다. 또 이 책은 모든 종교는 거짓이고 해롭다는 21세기 초 ‘신(新)무신론자’들의 주장에 충실히 응답한다. 그중에서도 진화론자이자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책들은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의 논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도킨스를 중심으로 한 ‘신무신론자’들의 입장과 그에 대한 기독교적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특별히 기독교에 대한 논쟁의 두 축을 이루는 진화론과 동성애 문제에 대한 논증은 이 책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먼저 진화론 문제로, 미국인의 43퍼센트(2007년, 갤럽 조사), 복음주의 개신교도의 73퍼센트(같은 해, 뉴스위크 조사)가 진화론을 반대하며, 하나님이 약 1만 년 전에 인간을 단번에 창조하셨다는 ‘젊은 지구 창조론’과 생물이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가진 존재이므로 설계자인 신적 존재가 필요하다는 ‘지적설계’ 이론을 대안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과 달리 진화론에 근거한 현대 과학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화석의 연대가 그보다 더 오래되었음을 밝혀냈고, 중간 화석의 존재를 예견한 바로 그 장소와 시점에서 화석을 발견했다. 프랜시스 콜린스는 「신의 언어」에서 ‘불용 DNA’(하는 일이 없는 DNA 흔적)조차도 인간과 생쥐가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적설계운동은 어떤가? 저자는 이 책에서 지적설계 옹호론자의 주장, 즉 ‘빈틈을 메우는 신’이란 개념에서는 과학이 그러한 생물의 복잡성을 하나하나 설명해 가면서 신의 개입 여지가 점점 줄어든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이런 이유로 국제과학종교학회는 2008년에 과학으로서의 ‘지적설계’를 배격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성소수자(동성애자) 문제에 있어 마이어스는 기독교가 원래 동성애자에게 반감을 가지지 않는다고 전제한 후, 성적 성향은 생물학적 영향에 근거한 자연적 성향이자 ‘지속적’ 성향이기에 개인의 의지나 목사의 설득으로도 바꿀 수 없음을 설명한다. 또한 성경은 이처럼 지속적인 동성애적 성향에 대해 언급한 바 없으며, 동성애에 관해 언급된 일곱 구절도 우상숭배, 사원매춘, 아동학대, 폭력과 연관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록 가수 보노의 말을 인용하며 성경이 가난에 대해서는 2,100번 이상이나 언급하는데도 극소수의 논쟁적 구절에 매달리는 것은 예수가 중요하게 여긴 문제와 거리가 멀다고 논증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대학교 2학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지금 그 학생을 만난다면 그때만큼 ‘미친 짓’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저 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이 책을 전해 줄 것 같다. 비그리스도인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일정 부분 편견을 버리고 기독교에 대한 혐오적인 반응을 누그러뜨릴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전제하는 동성애나 진화론에 대한 열린 자세로 인해 보수적 그리스도인의 상당수는 강하게 반발할지도 모른다. 지금도 우리나라에는 빨갱이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동성애자들은 지옥불로 떨어져야 한다고, 진화론을 옹호하는 사람은 진정한 창조주인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교회들이 많지 않은가. 김두식 교수도 자신의 책 「불편해도 괜찮아」에서 성소수자(동성애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내용을 썼다가 그리스도인들의 호된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거룩한 소망의 측면에서 매사에 조심하고 선을 먼저 긋는 보수적인 교회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런 이유로 인해 교회로 어렵게 발걸음을 옮기려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맘 편히 소개해 주고 싶은 교회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과연 한국 교회가 이 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말하는 논지들은 먼저 기독교 내부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12/10/21 01:48 2012/10/21 0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