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체로 나는 동성애 논쟁이 일면 언급 자체를 잘 안하는 편이다. 물론 그건 다분히 의도적인 면이 있다. 이 논쟁은 한국사회에서, 특히 교회 내부에서는 마치 '레드바이러스'처럼 해봐야 당사자에게 그닥 득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꺼내고는 진흙탕 싸움에서 뒹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는 우리나라 교계가 논쟁에 취약하다고 굳게 믿고있다. 별 얘길 안 하고 싶었는데 오늘 동성애 결혼이 미국에서 합법화되었기에 이 날을 기억하기 위해 담아둔 속내를 한번 꺼내본다.
#2.
#2.
동성애 관련 논쟁이 교회 안에서 펼쳐질 경우, 우리는 동성애에 관해 신학자와 목사의설교와 책을 주석삼아, 혹은 그 권위에 기대어 논지를 풀어가는데 한 몇 년간 '성경이 뭐라고 말하더냐'에 대한 이슈를 깊이 파다보니 내가 내린 결론은 '불가지', 즉 명확히 알 수 없겠다는 것이었다.
성경 해석도 나름 '정치적'이어서 동성애를 지지하는 이들은 동성의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 문란한 성적 부패가 문제였다거나 성행위와 종교행위가 결합된 이방의 문화의 범주로 해석하는데, 동성애가 죄라고 단언하는 주류도 오버하는 느낌이지만 반대 입장 또한 그 해석이 명백하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내가 동성애에 대해 가진 신앙적 입장은 '불가지론'이다.
#3.
#3.
교회에서만 곱게 자랐으면 사실 동성애에 대한 고민없이 보수적 성경해석이나 주류 목사와 신학자들이 말하는 반복교육을 받아들였겠지만, 동성애 친구까지는 아니더라도 몇가지의 경험이 이 문제를 실존적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오래전 학교 친구 중에 한 명의 별명이 '호모'였는데 그 친구 외에도 그런 아이들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 주변에 종종 있었다. 아주 어린시절이라 그걸 짓궂은 장난삼아 불러대곤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친구는 아마 여성성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여성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4.
#4.
솔직히 주변에서 그런 경험을 하다보면 커밍아웃을 하는 소수의 이들이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내적 상처에 의해 혹은 성적 방종에 의해 몹쓸 동성애적 '질병'에 걸린다는 말에 선뜻 공감이 가지 않게 된다. 그리고 머리 속에서 생각으로만 혐오하거나 길을 가다가 혹은 공공장소에서 몇몇 동성의 추파를 받고 어이없어 한 짧은 기억이 아닌 가까운 주변에서 꽤 오랜 시간 어릴 때부터 지켜본 지인이 있는 경우, 퍼즐이나 논리학 문제를 풀 듯 이슈를 대하기는 쉽지 않다.
#5.
#5.
호모포비아의 단적인 예는 항문성교, 구강성교에 의한 에이즈 등 각종 성병으로 대변되는 신체 질병이다. 그런 충격적인 내용의 만화가 한동안 SNS상에 돌아다녔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사실 동성 간의 이른바 '정상적이지 않은' 성교에 대한, '정상성교'를 하는 이성애자들의 혐오에 가깝다고 나는 본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흔히 이성애자들 중의 일부도 구강성교와 항문성교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이성애자들 중 '정상적이지 않은 성교'를 즐기는 이들의 수가 동성애 커플 중 '정상적이지 않은 성교'를 즐기는 숫자보다 많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더 나아가 성적 방종이 우리가 혐오하는 것의 어떤 본질이라면, 이성애자들 중에서 외도를 하거나 원나잇스탠드를 즐기거나 직장생활의 연장이라며, 접대의 관례라며 2차, 3차를 통해 가지는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흔히 이성애자들 중의 일부도 구강성교와 항문성교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이성애자들 중 '정상적이지 않은 성교'를 즐기는 이들의 수가 동성애 커플 중 '정상적이지 않은 성교'를 즐기는 숫자보다 많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더 나아가 성적 방종이 우리가 혐오하는 것의 어떤 본질이라면, 이성애자들 중에서 외도를 하거나 원나잇스탠드를 즐기거나 직장생활의 연장이라며, 접대의 관례라며 2차, 3차를 통해 가지는
밤문화, 성매매 향유, 혹은 여전히 교회 내부에서 벌어지는 목사들의 성도 성추행 문제에 대한 교회의 혐오는 더더욱 극에 달해야 한다고 본다.
#5-1.
#5-1.
그리고 솔직히 나는 동성애자를 동성간 성교만을 즐기는 성적존재로만 치부하려는 것에 반대한다. 평생 동반자와의 섹스 없이 살아가는 이른바 '보스턴 결혼'에 관한 이야기도 이미 많이 알려져 있고
페미니즘 운동 이후 유럽의 많은 여성들은 결혼 후 남편에게 받은 일상적이고도 반복적인 성폭행에 지쳐 동성 여성 동반자를 찾아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동성간의 결혼을 '성기를 항문에 넣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이성애자들의 변태적 상상과는 달리 이성에 대한 상처, 혹은 혼자 사는 외로움과 불편함 때문에 함께 삶을 공유하려는 '가정의 형태'도 있다는 점도 언급하고 싶다.
#6.
#6.
사실 교회가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내 생각에는... 물리적 관계망과 구별된 SNS 폐쇄망 안에서 사람들이 연예인이나 진상남녀, 국가 등등을 마음껏 욕해도 상관없듯이 교회가 동성애 문제로는 자기의를 맘껏 펼쳐도 '될만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형교회의 지도자를 까면 관련된 작은 교회 목사들이 돈줄이 막히고 줄줄이 높은 인맥의 전화를 받아야 하겠지만, 교회에서 매주 성매매나 불륜, 성희롱을 회개하라고 설교하거나 그런 이들을 강하게 교회 내에서 퇴출시키려 들면 공동체가 휘청거리겠지만, 이성애자들만 존재하는 폐쇄적 교회공동체 안에서 성경 해석을 들먹이며 나와는 무관한 성적 방종을 심판의 이유로 내세울 때 교회는 구원의 화신이 되고 한줌 LGBT는 심판의 원인이 된다.
.
#7.
그래. 동성애가 심판의 원인이고 그 자체가 죄라고 하자.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다. 교회의 일원으로 동성애에 대해 불가지적 입장이고 신의 생각이 내 좁은 생각보다 크시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그 사실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모든 죄가 그렇듯 동성애 또한 기독교의 용서의 범주안에 들어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대표적인 인물 다윗왕의 경우, 자기 부하를 살해하고 그의 아내와 외도를 했다. 성적방종과 살인의 중죄를 저질렀기에 사실상 우리는 그를 쓰레기 취급해야 합당하다. (페북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끝이었다.) 하지만 그는 회개했고 외도한 여인과 가정을 갖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왕위를 계승했다. 이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다윗왕이 용서를 받고 여전히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로 남은 것 또한 확실하다.
일례로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대표적인 인물 다윗왕의 경우, 자기 부하를 살해하고 그의 아내와 외도를 했다. 성적방종과 살인의 중죄를 저질렀기에 사실상 우리는 그를 쓰레기 취급해야 합당하다. (페북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끝이었다.) 하지만 그는 회개했고 외도한 여인과 가정을 갖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왕위를 계승했다. 이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다윗왕이 용서를 받고 여전히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로 남은 것 또한 확실하다.
비슷한 이유로 나는 '동성애 결혼'이 '죄'라면 교회는 동성애 커플은 받아들이고 그 죄는 용서를 해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성적문란함과 성교의 방법을 훈계하고 싶다면 이성애 성도와 동일하게
성적 문란함을 질책하고 한 반려자에게만 충성하기를 설교하고 이성이든 동성이든 질병의 위험이 있는 성교에 대해서는 반대할 수 있다. 적어도 진정한 교회라면 나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8.
#8.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소수자의 인권 측면에서 동성애자들은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학교에서 왕따당하는 아이에게도, 장애인에게도, 성매매 여성에게도, 형을 받은 죄인에게조차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잠잠히 숨어서 죽어지내지 않고 퍼레이드를 펼치고 사회에서 섬세한 재능을 발휘하니까 세상이 그들의 세상이라도 된 듯 공포심을 조성하는데. 솔직히 나는 내가 속한 한국교회가 더 두렵고 무섭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그 새들 옆에는 어디든 십자가가 솟아 있다. 사회면 신문을 읽어보라. 그곳엔 언제나 비리의 중심에 한국 교인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시민들이 개신교포비아를 펼치지 않음에 솔직히 나는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길을 걷는데 돌을 던지거나 린치를 가하지 않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건 진심이다.
그런 연유로 나는, 국가와 별개로 우리나라 시민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시민 중 한줌 소수의 즐거운 이슈가 터진 날, 나는 함께 웃고 싶었다. (그리고 더 이상 이 이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