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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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를 키우면서 아내와 육아, 가사분담을 고민하다가 어느덧 이 모든 문제가 이 나라의 가부장제로 거슬러올라간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페미니즘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이가 크면서는 내 안에서 비롯된 문제들을 아이에게 한없이 투사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심리학을 더 깊이 공부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부모의 교육열기가 중고등학교를 지나 대학 입시를 넘어 석박사에 취업까지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면서 한국사회 전반에 경쟁구도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 모든 문제가 엮여있고 한쪽만 봐서는 그 실타래가 풀리지 않거나 일개 부모 한두명, 문제아이 한두명의 미시 사건으로 전락한다. 게다가 심하게 잘난 남성들은 육아와 자녀교육 같은 하위 담론은 시시하다 여기거나 관심 자체가 없다.


#2.
이른바 페미니즘이 여성해방에 국한된다는 생각, 혹은 남성성과 정면으로 대립한다는 생각은...여전히 지지부진한 여성인권 측면에서는 일말 옳은 면이 없지 않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 운동을 오히려 좁은 구석으로 내모는 느낌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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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선생에 따르면 여성주의가 진정으로 해방시키는 것은 가부장제에 갇힌 여성과 남성 모두이다. 페미니즘은 사실상 힘, 폭력, 권위의식, 규율, 경제성, 효율성으로 대변되는 전통적 원시적 남성성으로부터 남성을 해방시키는 역할도 수행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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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아이와 소꼽장난을 하며 뒹구는 남성, 아빠, 아들, 권위의식으로 까라면 까야했던 분위기에서 다과나 차를 마시면서 맞담배를 피우며 느슨하고 창의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남자들의 회사 회의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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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의 결단이라며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을 감수하던 전통적 공동체주의에서 벗어나 아이를 위해, 소외된 자를 위해 버려진 동물들을 위해, 어딘가에서 파괴되고 있는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보존하기 위해, '작은 것'을 잃으면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항변할 수 있는 '남성성'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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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진정으로 페미니즘은 엠마 왓슨이 말하는 ‪#‎HeForShe‬ 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성의 인권을 넘어 남성이 온전한 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도 반드시 공유해야 할 이론이자 운동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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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 글을 읽다가 당시에는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을 끄적여봄.

15. 6. 13.
2015/06/13 23:17 2015/06/13 2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