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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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는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처럼 굴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그건, 사람을 판단하는 확고한 기준이자 내 청년시절 열정을 쏟아부은 하나의 방향성이기도 했다. 그 근성은 내 세포 속 어딘가에 남아서 여전히 내 정체성의 한 축을 이루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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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욕심, 글의 완성도에 대한 칩착, 글쟁이에 대한 엄밀한 잣대.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좋지 않은 글을 좋다, 맘에 들지 않는 글을 맘에 든다고 말해본 적이 없다. 거절하기 어려운 서평 요청을 거절하기도 했고 긍정적인 평을 기대했던 가까운 사람들의 글에 무반응으로 일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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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어떤 기준을 가지고 단호한 자세를 유지한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럴 처지에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냥 그랬다. 초대받은 식탁에서 친구의 엄마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맛이 어때 라고 웃으며 물을 때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얼굴이 붉어지고 입술이 떨리는, 그러나 절대 엄지 손가락을 세우며 최고라고, 하얀 거짓말을 결코 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진 아이의 그 무엇이 나에게 있었다고... 이해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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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람들과 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솔직히 나는 예전보다 더 글을 칭찬할만한 사람을 손 꼽기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예전보다 더 뛰어난 '촉'과 '썰'을 가진 사람들이 팟캐스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글'판'에서는 엄지를 추켜세울만한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너무나도 당위적인 이야기, 정보를 조합하여 정리한 지식봇, 과거의 영광에 기댄 허세썰, 니가 틀려서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진영이 분명한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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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내가 변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이런 글을 며칠째 끄적이고 있는 걸 보면 내 코가 석자이면서도 누군가의 글에 쉽게 덕담을 해대지 못하는 내 피노키오의 코와 같은 난감함을 혼자 삭히지 못하는 이유에서일 수도 있겠다. 엄밀히 말하자면 글은 그 사람과 공동운명체인 것 같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삶이 아름답지 않을 때 그 글도 빛이 바래는 것을 경험한다. 물론 그렇기에 글에 목숨을 걸고 주둥이를 놀렸던 나는 참 많은 아름다운 사람들을 지나쳤고,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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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냥 글에 대해, 사람에 대해. 냄새가 섞인 글을 끄적이고 싶었을 뿐.

2015. 6. 7.
2015/06/13 23:11 2015/06/13 2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