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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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저스'를 봤다. 흥미로운 영화임에 분명하다. 이 영화는 각 만화의 주인공들을 불러서 종합선물세트를 만들었다는 사실과 별개로 보더라도 이 영화는 가장 '포스트모던한' 헐리웃 블록버스터가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어벤저스가 최첨단 시대에 외계인이나 신화를 스토리의 메인 모티브로 삼은 부분이 인상적이다. 기술문명과 신화가 통합(synthesis)되는 영화 속 내러티브는 갈등을 넘어 이제는 공존을 이야기한다. (첨단을 달리는 '아이언맨'과 구시대 히어로 '캡틴아메리카', 그리고 신화속에나 나올법한 천둥의 신 '토르'가 서로 소통하며 갈등을 풀어간다.)


하지만 그 소통과 공존 사이에서 구영웅주의와 신영웅주의의 충돌을 야기한다. 이른바 수정-자경주의로 일컫는 흐름을 말하는데 구영웅주의가 사명감이 투철하고 대의를 위하여 헌신하는 캐릭터였다면, 신영웅주의는 자신의 한계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그러면서도 매순간 복합적 권력구도 속에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고 때로는 대의를 저버리거나 위기에 빠진 시민을 구하지 않는-'왓치맨'의 코미디언처럼 도리어 공격하기도 하는-불완전한 존재로 그려진다. 어벤저스에서도 구영웅으로 대변되는 '캡틴 아메리카'와 신영웅으로 대변되는 '스타크'(아이언맨)의 관점 차이도 흥미롭게 지켜볼만한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할만한 캐릭터는 퓨리 국장이다. 그는 내 생각에 니체가 말한 '초인'의 이미지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는 지도자로서 강인한 모습, 흔들리지 않는 판단력의 소유자다. 시민들이나 심지어 히어로들에게도 국방부의 비밀 계획에 대해서는 함구하며 친구의 죽음도 전쟁의 동력으로 쓸만큼 전략가와 행동가로 모자람이 없다. 심지어 권력자들이 반대하는 상황 가운데에서도 그들의 강압에도 흔들임없이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행동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해나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그의 얼굴에서 히틀러를 본 건 아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그가 불편했던 건 열등한 인간들을 다스릴 '초인'을 기다려온 역사의 실패 때문일까. 혹은 만화속에서조차 마키아밸리즘의 단면을 보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일까. 만약 현실세계에서 무법의 자경단을 만들어내고 시민들을 불법사찰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감금시키고 권력에 무릎꿇게 만드는 초인이 있다면 그들이 멋있어 보일까. ('배트맨'에서 존 웨인은 악당을 잡기 위해 시민들의 휴대폰 통화를 감시하며 그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는 그 일로 그를 떠난다) 그들에게 엄청난 부와 엄청난 군사력, 그리고 정보력을 허락한다면 그들은 만화속 어벤저스처럼 스스로 자정능력을 가진 집단으로 진보할까. 사실상 그저 시민들을 탄압하고 괴롭히다가 결국은 비토 세력으로 전락하지는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벤저스나 왓치맨 같은 무법의 자경단들이 현실에서는 반드시 은퇴해야 한다에 한표를 던지고 싶다.


*'왓치맨'에서는 히어로들은 시민들의 시위로 공권력을 경찰들에게 이양하고 은퇴를 선언한다.

2012/04/20 22:40 2012/04/20 2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