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문서와 전자문서
기업과 관공서에 전자문서가 도입되면서 종이문서가 혁신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더 많은 종이가 소비되었다. 이전에는 종이에 글을 쓰다보니 수정이 어려웠지만 전자문서는 수정은 물론 아무리 긴 글도 복사하고 편집하는 게 용이하다보니 보고시점별, 보고대상별로 기하급수적인 보고문서의 수정이 이루어졌고 여전히 서면보고를 받는 기업문화 속에서 보고 건수 대비 종이출력물의 양은 예전보다 몇 배로 증가했다.
결국 이러한 관행 속에서 종이절약을 위해 이면지 사용을 권장했고 관공서에서는 강제적으로 보고서는 이면지를 사용하도록 규제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보고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면지를 '만들어내는' 웃지 못할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면지의... 사용은 자원절약에 도움이 되는 걸까. 이면지를 사용하다보면 성능이 나쁜 프린터 특히 구사양의 프린터들은 용지걸림으로 인한 고장이 잦아서 공용 프린터에는 하나둘 '이면지 사용금지'라고 붙여놓게 되었다. 이 이율배반적인 - 이면지로 보고하되 프린터에 이면지를 넣으면 안 되는 - 상황은 실무를 뛰는 직딩들로 하여금 돌아버리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프린터에도 제어장치와 모터등의 전자 장치가 들어가고 그러한 칩들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펄프를 생산하는 공장과 비슷한 규모의 환경오염을 야기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서면 보고 없는 전자결재라고 생각되지만 여전히 상사에게 '내 자리로 와서 내가 쓴 보고서 함 바바'...라고 하기엔 ㅎㄷㄷ한 문화가 강하다. 물론,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문서를 상사에게 보내는 일도 가능하지만 그건 '나 여기까지 했으니 니가 고쳐서 보고해바바'...라는 무언의 손털기로 받아들여져서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 된다. 마지막 방법으로(내가 권장하고 싶은 방법인데) 상사에게 전자 결재를 상신하면 상사가 불러서 모니터를 함께 보며 수정지시를 하고 그 방법에 따라 재상신하는 방법이 있겠다. 이럴려면 상사가 오픈 마인드로 팀원을 불러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보고서 수정 방향을 나누어야겠지만 잘못하면 상사에게 수시로 불려가서 모니터 앞에서 깨져야 하는 번거로움, 스트레스성 보고가 되기 쉽다. (전자보고의 용이함 때문에 동일하게 서면보고 대비 전자보고로 인해 팀원이 상사에게 깨질 빈도수가 훨씬 높다는 가정하에.)
그것도 아니라면 최후의 방법이 있다. 태블릿PC로 보고서를 보고 하고 터치펜으로 수정 지시한 내용을 표기 후 재보고-수정-재보고-수정 후에 최종 전자결재를 올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블릿 PC는 진정한 종이문서의 대안이 될 것인가.
태블릿PC가 종이문서를 구원할까.
태블릿 PC는 종이매체를 대체할 기기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이 태블릿PC는 전자책 시장을 타겟으로 삼아서 많은 양의 컨텐츠를 내고 있으며 카페의 메뉴판, 출장가는 회사원의 발표자료, 중고교 교과서 대용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환경적 측면에서도 이를 통해 분명 종이매체를 통해 소비되는 펄프, 즉 아마존 삼림들을 비롯 종이를 만드는 펄프 공장의 오염물질 등을 줄이는 등 자원 보존에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전자책 단말기나 태블릿PC 안에 들어가는 CPU와 램 등의 전자칩들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중금속과 제조공장 설비, 제조 공정에서 만들어지는 폐기물들도 환경오염을 가속화시킨다. 결국 이는 누가 더 자원을 많이 소모하고 환경을 더 오염...시키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쉽게 생각하면 아이패드 1개를 구입한 사람이 구입기간동안 소비하는 종이를 모두 전자매체로 전환한다고 가정하면 사실 그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지금은 태블릿PC를 소유하는 이들이 많지 않지만 제3세계의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전자기기 가격이 떨어지면 언젠가 중국과 인도 시장에서 1인 1태블릿을 소유하게 될 수도 있다. 1인 1태블릿이 종이매체 소비보다 더 지구적으로 바른 소비인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1인 1차량과 같은 문제 아니겠나)
두번째. 새 모델의 주기(model year/period)다. 한 개인이 자동차를 구입하듯 태블릿 PC 구입 후 10년간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1~2년마다 새모델이 출시되면 소비자의 상당수는 새 제품을 구입한다. 결국 1인 1태블릿이란 개념은 그 자체도 무시못할 숫자지만 1-2년주기로 태블릿을 소비한다면 그 규모로 볼 때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광물 소비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그러면 환경단체들이나 녹색당이 운동을 펼치면 소비자들은 태블릿PC를 버리고 종이매체로 돌아갈까. 운동가들은 기술의 발전을 막는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며 소비자들은 환경운동가들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자원을 고갈시키는 소비를 멈추게 될까.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이다. 특히 소비자의 양심을 자극하여(라고 말하지만 결국 훈계하거나 혼을 내서) 소비를 막는 운동성에 대해 비관적인 편이다.
물론 착한소비, 개념소비, 공정무역이라는 방향으로 진보주의자들은 나름 고민하며 소비를 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대안으로는 무엇보다 제조업체 즉 기업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도 필요하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PC를 제조하고 모델변경 시점에 구모델을 반납하게 만드는 것이다. 혹은 반납 조건으로 신제품을 할인해준다.(보상기변같은..) 그리고 법으로 신모델 출시시 구모델의 부품 호환성을 '40%이상'처럼 규제하는 것이다.
결국 하고 싶은 얘기는 기업의 설계차원의 리싸이클링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소비자가 재활용에 동참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제조사에서 구모델을 동물들이 여기저기에 똥을 싸고 돌아다니듯 뿌려대고는 '폐기'과정에 관심을 두지 않는 한 플라스틱류, 중금속, 전자칩들과 같은 노동집약적이며 주요 자원을 소비하는 전자제품 쓰레기들을 줄일 방법이 마땅치 않다. 1년마다 새모델이 쏟아져 나오는데 시민 개개인에게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며 10년을 쓰라고 하면 과연 버틸 인간이 얼마나 될까.
고민을 하면 할수록 결국 대안은 기업의 리싸이클이란 생각이 강해진다. 사실 현재까지의 '재활용'이라는 프레임은 지나치게 시민 개개인의 윤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는 기업에게는 공장의 폐수정화나 설비 차원에 국한된 이른바 '제조 공정의 개선'에 제한한다. 이미 환경운동가들은 전지구적 자원의 고갈에 대해 경고한다. 따라서 아마도 다가오는 세대에서는 '재활용' 프레임의 확장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그 '프레임'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관점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