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 나는 갈구는 농담이 싫다. 오늘도 그렇고 최근에도 페북의 귀한 친구들, 그것도 대체로 나보다 연배가 높은 분들과 대화하다가 꼭 비슷한 패턴에서 나는 참지 못하고 굳이 지적(질)을 하게 되는 잘못을 범한다. 유감스럽게도, 나름 재밌으라고 갈구며 던지는 농담에 나는 대체로 즉시 입꼬리가 내려가는 편이다.ㅠㅠ
2. 예를 들면, 내가 지적하고 싶은 문맥은 '우리 진짜 바보같지'라는 대화에 3자가 '니네 진짜 바보같아'라고 답할 때의 '바보'란 단어는 화자의 포지션에 따라 언어게임 상에서 용례가 다르다는거다. 혹은 '우린 참 대가리가 크다'라고 할 때 3자가 '대가리 큰 애들끼리 잘들논다'라고 하는 거다.
3. 기사로도 나왔지만 페북에서 갑작스럽게 친구관계를 정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제가 없는 경우가 아니라 '댓글에 맘이 상해서'가 많았다고 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쿨하려고 애쓰고 쿨하게 굴 것을 자주 강요받지만 나는 사람들의 정서가 쿨 할 수 없다는 데 한표를 던지는 편이다.
4. 한때 몸담았던 교회는 당시에는 작은 규모의 꽤 괜찮은 교회였다. 서로 진솔한 나눔들이 있었고 어느 시기를 지나자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나누는 관계가 되었다. 한데 언제부턴가 모임 때마다 웃으며 상대를 갈구는 농담을 즐겼는데, '너네집 가난하잖아. 남은 음식 싸가야 하지 않겠어?'라거나 '어이 지방대 출신!'이라거나 '너 머리에 총맞았냐' 같은 말들이 난무하는 분위기에서, 솔직히 견딜 수가 없었다.
5. 아마도 그 시절 너무 오랫동안 불편한 마음으로 공동체를 지켜본 탓인지 나는 상대를 비하하면서 즐기는 개그나 대화에 동참하기가 싫다. 때때로 나도 누군가를 그런 식으로 갈구면서 웃었을 수도 있다. 나도 살면서 어떤 시기에는 그렇게 웃어넘겼고 나름 예리하게 잘 찔러댔던 것 같다.
6. 정혜신 선생은 자학하면서 웃기는 연예인들, 이를테면 뚱뚱하거나 못생겼다고 자학하며 웃기는 개그맨들의 상당수가 다이어트를 하고 성형수술을 하는 사례들을 들면서 그것이 쿨하게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지속적인 상처를 줘서 결국 고통 속에 그 상황을 해소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감을 지적한다. 깊이 공감했다.
7. 어쨌거나 나도 그런 거 같다. 구창모의 희나리 가사처럼 '내게 무슨 마음의 병 있는 것처럼' 나는 까는 농담이 싫다. 그리고 한편으로 나는 갑자기 마음 문을 닫고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를 마치 없었다는 듯 '언팔'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나의 이런 지적질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생존본능에 가깝다고 하겠다.
2012. 4. 4
#2.
페미니즘 문제에 있어 남성이 여성적 주체가 될 수 없으며 여성 스스로가 그들의 목소리로 풀어가도록 하는 것이 옳다는 말은 일면 정당하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어떤 논제에 있어 중요한 요소는 그 논제를 말하는 발화자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성차별문제에 있어 남성은 가해자이자 권력자이고 가부장제에서 지속적으로 여성을 괴롭혀온 당사자이다. 남성 발화자가 여성의 주체성을 논제로 들며 여성 스스로의 변화를 추구하는 대목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노예 스스로 힘을 키우기 전까지 노예를 부리는 주인은 이 불합리한 상황을 고수하겠다는 의미에 다름 아닐 수 있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한 권력을 가진 나(남성)는 성추행을 할 수 있고 커피 심부름을 시킬 수 있고 육아를 전담시키고 세끼 밥상을 차리라는 등 가사 노동을 전적으로 위임할 수 있고 힘이 약한 부분을 이용하여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 문제를 주체의 자격, 주체의 역량, 주체의 권력을 소유하지 못하는 한 나(남성)는 고수할 것이다... 불행히도 남성은 여성의 주체성을 논할 발화자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이어져 온 가해와 폭력, 그리고 가부장제를 강화해온 전범으로써 여성에게 사과하고 권력을 위임하고 여성을 젠더적 동반자로 받아들여야 하는 채무자이다. 따라서 가부장적 질서를 해체하는데 남성의 회개와 성정체성 변화도 '일상적으로' 주체적 행동이 요구된다.
2012. 4. 7
#3.
진보진영이 다양성을 존중하면 분열될까 아니면 연합할까. 아마도 이건 정답이 보이는 질문일 수도 있겠다... 이상적으로는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연합하는 것이 아름답겠지만, 대체로 사람은 타인과 나의 견해 차이나 행동지침, 지지기반이 달라질 때 자주 분열하고 나아가 상대 전체에 대한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보수는 언제든 '우리가 남이가?', '그 사람도 OO대, OO도 출신이야'하며 눈쌀을 찌푸려질 정도의 강한 연대정신을 보이는 게 문제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진보는 너무 자주, 자신이 품었던 사람에 대한 지지를 실망을 안겨준 단일 사건만으로도 철회하는 냉혹함을 보인다. 어쨌거나 현제까지는 진보진영은 다양성, 차별성을 표현하는 순간 그 즉시 분열해왔다. 그것도 정서적 반감을 표하면서.(그래서 이번 야권 단일화에 대한 생각이 다분히 긍정적이다)
살면서 인간관계에 서툴렀던 나는 인간 관계에서 오는 상처로 인한 스트레스에 취약한 것 같다. 예전엔 이 문제를 내가 정서적으로 극복해야 할 부분으로 보았다. 이성적인, 객관적인,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초월적 존재가 되기를 꿈꿨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나를 인정하고 끌어안고 싶다.
나는 이중적이게도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성적 측면에서 비판을 하고 생각의 전환을 요구하지만, 스스로는 실제로 나와 견해차가 있는 사람에 대해 전혀 감정의 흔들림 없이 그 견해를 인정한다고 당당히 말하지도 못하겠다. 이 딜레마 사이에서 현실적 관계의 멘붕이 온다.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 어느순간, 이꼴 저꼴 다 보기 싫고 결국 관계 자체가 피곤한 일로 여겨진다. 그저 익숙했던 마음의 동굴로 돌아가고픈 욕망이 다시 똬리를 튼다.
진보진영이 다양성을 존중하면 분열될까 아니면 연합할까. 이 문제에 어떤 건조하고 원론적 판단을 말하기에 앞서 나는 내 한계를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샤프한 판단에 정서가 뒤따라주면 정말 땡큐겠지만 나란 사람이 그런 샤프한 판단력도, 더불어 땡큐한 인격이 아닌 관계로 매사에 많이 좌절한다. 그런데 이 불일치를 부정하려니 이중인격자가 되어가는 것 같다. 이상적인 얘기만 겉으로 하고 속이 썩어간다. 정신 건강을 위해, 그리고 서투르더라도 관계의 '거북이 걸음식' 진보를 위해... 나는 일단 내 미숙한 관계의 수준을 긍정할 필요가 있다.
2012. 4.9
#4.
대한민국 1% 남편에 도전 중인 나. (풉)
요즘 아내가 월요일마다 강의가 듣고 싶다고 해서 월요일만 퇴근길에 성하를 데리러 가고 있다. 아내가 잘 부탁하여 다행히 어린이집에서 늦게까지 기다려주기는 하는데 그 늦게라는 게 내 입장에서는 평소보다는 조금 일찍 회사에서 나와야 가능한 시간이다.
결국 월요일부터 다른 직원들보다 일찍 엉덩이를 쳐들어야 하는 상황인데... 눈치가 보인다. 아이 데리러 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그렇다. 아마 다수는 아내는 뭐하고 네가 가냐 라고 물을 것이고 선임은 나를 배려하기 보다 나를 주시할 것이다.
월요일의 이른 퇴근(10분? 15분?)은 일시적이고 나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지속적으로 데려오지 않아도 되는 남성이니 이것은 그냥 하나의 체험이겠지만 매일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데리러 가야 하는 직장 여성들은 출퇴근만으로도 스트레스 만땅일 것 같다. 듣기로 서울은 어린이집이 유아를 3~4시 이후로는 안 봐준다고 하여 아이만 픽업해서 집에 데리고 오는 직업도 있다고 한다.ㅠㅠ
여성들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눈치를 보며 회사를 다녀야 하나. 사업장마다 어린이집을 설치하는 건 참 머나먼 숙원사업인 듯 하고, 지금으로서는 아이 데리러 가는 여성들 뒷통수에 대고 헛소리나 지껄이지 말고 맘편히 가게 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좋겠다.
그나저나 오늘은 또 어떻게 퇴근한다냐... 흠흠.
2012.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