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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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보지 않을 때 아이는 말썽을 일으킨다. 야단이라도 맞아가며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처지, 특히 제일 사랑받고 싶은 엄마의 마음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느낌은 아이에게는 아주 견디기 힘든 일이다. 자기가 죽어도 엄마는 슬퍼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아이의 속내를 언제까지 외면하고 있을 것인가. 아이는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33쪽)

아이만 치료하는 일이 얼마나 소용없는 일인지 치료자들은 잘 알고 있다. 아이보다 엄머가 마음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엄마들은 자신은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클리닉에 데려오는 일만 할 뿐이다. (40쪽)

부부가 맞벌이를 하지만 집안일을 전혀 분담하지 않고 남편이 총각 시절과 다름없이 생활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를 만났다. 그 부인은 "남편이 취미로 하는 골프 연습이나 자기 계발을 위한 영어 학원 수강을 말리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남편을 배려하는 좋은 아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에게 아빠 역할을 즐길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남편의 의사를 묻지 않고 그렇게 미리 알아서 다 해주는 것이 좋은 아내의 자세라 여긴 것이다. 회식이나 업무상 미팅으로 늦게까지 술마시는 것도 남편의 일 중 하나니, 주말에는 쉴 수 있게 배려한다. 그러고는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자녀 교육 문제까지 혼자 도맡아 처리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엄마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71쪽)

우리는 그들보다 더욱 복잡하다. 여성은 학교교육을 받는 동안에는 남성과 대등하게 경쟁하며 성취하는 개인으로 지낸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면 가족을 포함하고 살 것을 기대하고 요구한다. 결혼 후 제일 힘든 점이 개인으로 자유롭게 살다가 갑자기 남편과 시집 식구를 포함하여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당하다고 몸부림치고 부부 싸움도 많이 한다. 하지만 차츰 모르는 사이에 자기 행동 단위를 넓혀 머릿속에 자녀와 남편, 그리고 시집 식구들의 자리를 마련한다. 그리고 정작 자신은 뒷전으로 밀어놓는다. 그러면 부부싸움은 줄어들지 몰라도 마음속에 갈등이 자라게 될 것이다. (74쪽)

그 부인은 아이를 겨우 재우고 노곤하게 잠든 사람을 깨워 ㅈ사랑 나누기를 청하는 남편이 귀찮다고 했다. '내가 피곤한 걸 몰라서 저러나'하는 원망까지 든단다. 직장에서 돌아와 얼마 안 되는 시간에 집안일은 물론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공부시킨 후 재우고, 겨우 쉬는 그 귀한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부인이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하는 동안 남편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골프연습장에 다녀오고 TV를 보고 인터넷을 한단다. 집에 일을 들고 들어오는 때도 있다고 한다. 그 부인은 남편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다 하게 놔둔다. 아이에게 남편은 아빠가 아니라는 듯 책임을 면제해준다. 잠깐 놀아주는 것으로 아이에게 아빠는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엄마는 혼자 부모 노릇 다 하느라 피곤하다. 그렇게 모든 할 일을 다 하면서 일에 지쳐 잔소리하고 짜증내는 엄마가 된다. (83쪽)

엄마들은 "아이가 원해서 학원에 보내요"라고 한다. 언제부터 아이들이 원했을까. 동맹이라도 한 듯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니 친구 사귀려면 학원에 갈 수밖에 없다. 엄마 마음대로 원하지 않은 짧은 머리를 만들어놓고, 화내는 아이를 달래며 장난감을 사주는 엄마는 "네가 원하는 삶(머리 길이)을 살지 않고 엄마 말대로 살면(짦은 머리) 유산(장난감)을 물려줄게"라고 하는 셈이다. 아이들은 그 장난감(유산)의 유혹으로 자기 의지를 꺾는다. (88쪽)

아이가 성도착 문제로 치유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은 엄마가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며 치료를 주저했다. 신경정신과 치료 기록이 남는 것도 꺼림칙하고, 번듯한 집안이라는 평판을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덮어두면 아이는 어른이 되어 건강한 성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본인뿐만 아니라 배우자가 될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들 수 있고 심하면 성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일이라 문제가 심각한데도 외면한다. 가정 안에서 아버지나 오빠, 삼촌에게 성추행을 당한 아이가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도 적합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엄마가 많다. 누가 알까 두려워 덮어두려고만 한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의 처지를 충분히 느끼고, 분노하고, 슬퍼하지 못하게 된다. 미해결 사건이 평생을 좀먹고 과거가 자신을 좀먹게 두니 비참한 어둠 속에서 살게 된다. (135쪽)

어린 시절에 받은 피해를 오해려 자신의 수치로 여기며 살게 되면 어린이 되어서도 억울한 처사에 순발력있게 대응할 수 없다. 고통을 당해도 무감각하든지 혼란스러워한다. 그래도 체면이 그렇게 중요한지 묻고 싶다. 아이의 인생보다 체면이 중요한가? 아이의 삶보다 귀한 체면이란 없다. (136쪽)

자녀의 반에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가 있으면 엄마는 "그 애와 놀지말라"는 말만 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바로 그 문제 아이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139쪽)

엄마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자녀는 잘 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이 엄마의 마음을 얼마나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지 깜짝 놀라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부모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눈치 보고 귀를 쫑긋 세우고 살았으니 당연하다. 자녀가 엄마의 마음을 간파해서 "결국 돈 얘기하는 거 아니야"라 한다. "친구들과 좋게 지내라"는 말을 듣고도 "걔와 경쟁해야 하잖아"라고 말한다. 선생님을 존경하라"는 엄마의 당부에 "알았어. 선생님한테 잘 보일게" 대답한다. 아이들의 눈이 너무 정확해서 부끄럽고 마음이 아플 지경이다. (153쪽)

엄마들이 많이 하는 말 가운데 '이 정도는 기본'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 기본이라는 말이 무섭다. 공부나 생활 태도 등 각 엄마마다 나름의 기준을 정해놓기 마련인데, 이 기준에 이르지 못했을 때 아이는 가차없이 정죄 받고, 기본도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히게 된다. 그리고 당장 생사회복에 지장을 경험하게 된다. 엄마의 실망하는 표정을 보는 것이 아이에게 매질이나 언어폭력보다 덜 두려울 것 같은가. 아니다. 경직된 엄마의 기준에 어긋났을 때 엄마가 보이는 작은 반응도 아이에게는 굉장한 위력으로 다가온다. (161쪽)

이제 자신의 느낌을 찾기 위해 기억 저편의 어린 시절 접어두었던 역사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잘못했을 때는 "넌 원치 않는 딸이었다"는 뼈아픈 말도 들어봤을 것이다. 반면 잘하면 잘하는 대로 "네가 아들이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기막힌 말도 들었다. 이렇게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없게 만들었으니,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무시하고 내 삶이 귀한 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지 못하고 뒷전에 밀려나 있어도 불만이라 느낄 줄 모른다. 자신의 느낌도 무시해서 내세우질 않는다. 이런 것을 우리사회에서는 겸양의 미덕으로 쳐주기 때문에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었다. (183쪽)

막상 아이들은 엄마 앞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니 우리가 생각하는 어머니 상이 진실인지 허구인지 물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이들이 받은 상처는 언제나, 자신을 더 없이 사랑하고 자신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엄마와 연결되어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어머니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란 걸 우리는 안다. 현실이 각박하고 먹고 살기에 너무 바쁘고 어머니 자신이 참고 살아내야 할 삶이 힘들었기 때문이란 것 역시 안다. 하지만 머리로 알고 있다고 해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191쪽)

가족은 서로 속일 수가 없다. 특히 자녀는 부모를 속속들이 보아왔기 때문에 속일 수 없다. 나는 아들이 작문 시간에 쓴 한 구절의 글에서 그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엄마는 나를 어른이 되어 알기 시작했지만, 나는 엄마를 태어나서부터 평생 알고 있다!" 자녀는 이렇게 엄마를 알고 있는데 정작 엄마는 아이를 모르고 있다. 간혹 엄마들이 "우리 애를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라고 푸념하는 모습을 본다. 특히 하나 이상 자녀를 키우는 집 엄마들은 둘째를 향해 "언니는 안 그랬는데", "형은 다른데"라는 말을 곧잘 한다. 하지만 아이가 처한 상황을 알았다면, 왜 그 렇게 다른지 알 수 있을 텐데 알려 들지 않는다. (204쪽)

사람들은 "다 지나간 옛일을 지금 끄집어내면 뭐하느냐?"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덮어두고 묻어두고 있으면 영영 아무 느낌 없이 살게 된다. 내가 무엇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 왜 슬픈지, 어떤 이유로 괴로운지 모른 채 불만스럽고 슬프고 괴롭게 사는 것이다. (222쪽)

그니처럼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니에게서 문제가 비롯되었다는 걸 알게 되면 처음에는 어머니를 원망한다. 어머니에게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경우 "이제와서 어쩌라는 거냐" 하는 분도 있고 "몰라서 그런 것이니 미안하다" 하는 분도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머리로 알기만 한다고 해서 상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느꼈던 그 시절의 마음을 알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자기 아픔을 될 수 있는 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우선이다. 물론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기억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모든 아이들은 어머니의 보호와 사랑 없이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를 우호적으로 기억하려 한다. 어머니 역시 모든 것이 아이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 사랑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다. (237쪽)
2013/01/18 23:26 2013/01/18 2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