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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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님께서 저와 신현기 대표님께 쓰신 글을 행복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아직 주일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아침이라 개운치 않았는데 이 글을 읽으며 활기를 되찾은 느낌입니다. 업무 때문에 간단히 먼저 적도록 하겠습니다.

 

1.

- 신현기-지강유철이 핵심적인 논의를 제쳐놓고 입장과 해명을 했다는 용주님의 주장에 대해

 

저 는 신현기 대표님께 드리는 해명에서 분명 저의 글과 관계된 논란에 대해서는 차후에 정리할 기회가 있기 때문에 이번 글은 신현기 대표님께서 입장문에서 밝힌 부분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 이야긴 아직 유효합니다. 제가 오독하지 않았다면 신현기 대표님의 입장문은 이제부터 제대로 논의를 해보자는 출발의 의미라기보다는 이 입장문으로 일단락 짓자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저의 입장은 공격이었고, 신현기 대표님은 수비였습니다. 수비하신 분의 뜻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면서 해명이라 한답시고 제가, 또는 용주님이나 이 문제에 관계된 분들이 핵심이라 생각하는 문제들을 가지고 다시 공격의 입장을 취하는 것은 상대 장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저는 판단을 했습니다. 관전하는 사람들이야 그것이 통쾌하거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만 그것은 신현기-지강유철에 대한 좀 더 세심한 배려는 빠져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신현기 대표님의 입장문이 마무리 차원이란 제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물론 저는 어떤 모양으로든 이 논란에 대해 정리를 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이 아니라 제대로 된 매체를 통하여 이 문제로 토론을 하자면 가급적 어느 분이든 이에 응하려고 합니다.

 

 

2.

- IVP에서 상업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않은 이유로 제목을 바꿨다면 저의 논리가 허물어진다는 주장에 대해

 

저 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저자의 입장에 충실한 제목과 그 대척점의 정치적, 상업적 고려 빼고 제목에 결정적 영향을 줄만한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학적으로 '급진적 제자'가 안 예뻐서? 설마 미학적인 취향을 위해 IVP가 존 스토트의 책 제목을 바꿨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선교적인 관점에서?(하지만 이 책은 안 믿는 사람들을 전도할 목적으로 만든 책이 아니니 아예 해당도 안 됩니다)

 

그렇다면 제목 결정에 무슨 다른 변수가 있을까요? 솔직히 저는 출판사가 책 제목을 정하면서 고려해야 할 세 가지가 저자의 의도와 정치적(또는 신학적) 상업적 판단 말고 더는 없다고 판단합니다. 억지로 가지키기를 할 순 있겟지만 책 제목을 정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변수는 될 수 업다고 보는 것이지요.

 

아직까지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도 우리 출판계의 소위 관행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책 제목을 저자가 힘이 셀 때는 저자가 결정을 하고, 출판사가 힘이 셀 땐 저자가 '을'이 되고, 엇비슷할 땐 협의를 한다는 관행말입니다. 제 생각엔 출판을 담당하는 현직에 계신 분들은 이 관행이 틀렸거나 원칙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하긴, 매일 같이 책 판매 보고서가 올라오는 현장에서 그건 너무 한가한 고민일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관행 이상의 절대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저는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음악 작품이나 미술 작품에서 그 그림의 제목을 미술관에서 정한다면 승복할 작가가 있을까요? 제목도 작품의 일부라고 믿는 저는, 그리고 아무리 작품이 맘에 들지 않고 제목이 못 마땅해도 어떤 미술관이든 그 작품이 완성되기 전에라면 협의를 하든 압력을 넣든 할 수 있겠지만 이미 발표한 작품을 어떤 미술관이 맘대로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미술작품이나 음악 작품과 책을 동일한 잣대로 재단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좀 더 따져 봐야 할 것이고,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귀기울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이야기의 핵심은 이제까지 번역서는 제목을 출판사에서 맘대로 바꿔도 된다는 그 관행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모든 번역서의 제목을 절대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적이 없습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제가 뉴스앤조이 기고문에서 주장했던 내용은, 보통의 경우, 출판사의 상업적 정치적 고려에 의해 제목을 정하는 것이 틀렸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스토트의 '제자도'와 같은 특별한 경우는 제발 경제적 논리를 벗어나서 작품과 저자의 의도를 살려 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것인데 이를 놓고 이 난리를 치는 것에 대해 저는 솔직히 어리둥절합니다.

 

지강유철이 이제부터 모든 출판사는 책의 제목을 정할 때 저자의 의도를 벗어나지 않겠다는 윤리적 선언이라도 하라고 다그친 것입니까? 저는, 제가 기독교 출판사들은 제목에 관한 출판 윤리강령이라도 만들되, 그 내용은 어떤 경우든 저자의 제목을 따르라고 다그쳤을 때나 보일 법한 비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

- 6개대 사태를 느닷없이 끼워넣었다는 주장에 대해

 

누 구든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또한 논리가 부족하고, 제 글쓰기가 함량미달이라는 점도 부끄럽지만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도 드릴 말씀은 있습니다. 이 이야기도 다수를 매우 불편하게 할 수 있어서 걱정이 앞서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선명한 예를 찾을 수가 없어서 문제가 없는 비교는 아니자만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씀드려 봅니다.

 

저는 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친일청산에 실패한 것으로부터 상당수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이 지금 어떤 사안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내지 학문적으로 입증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 점을 모두 인정합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 부분에 대해 객관적인 진술을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부분에 대해 대체로 인정을 합니다. 저는 6개대 사태로부터 상당수 많은 문제들이 현재까지 IVF와 IVP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것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글에서 이런 내용을 주장하지 못한 것을 두고 비판하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그래도 조금 변명을 드리자면 금기를 깨는 행동은 그 행동의 의미로 먼저 이해해야지 거기에서 정교한 논리까지 요구한다면 과연 누가 성역에 도전하겠습니까. 원고지 36매의 글에서 이 정도 이상의 주장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문제가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은 화두를 던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다음 논의에서, 또는 이어지는 토론에서 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저의 논리에 비약이 너무 컸는지, 아니면 그런 비판이 적절했는지 여부는 백일하에 드러나겠지만 말입니다. 제가 더 진지한 논의를 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4 .

우선은 시간상의 제약 때문에 이 정도로 거칠게 써 놓고 빠져나가겠습니다. 다시 한 번 월요일 아침에 행복감과 활기를 준 용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011/10/12 00:33 2011/10/12 0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