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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기 대표님께서 발표하신 "IVP ‘제자도’ 관련 토론에 대한 IVP의 입장"을 읽었습니다. 제가 발표한 글과 관련하여 그 이후에 벌어진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정리하는 일은 차후에 있을 것 같기도 해서 오늘은 신 대표님이 쓰신 입장문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

제가 뉴스앤조이에 올린 "한국 IVP, 존 스토트만큼만 되어라"는 글은 IVP 북뉴스로부터 청탁을 받고 쓴 글이지만 본래는 뉴스앤조이에 쓰려고 했던 글입니다. IVP에 근무하는 사랑하는 후배가 그 보다는 IVP 매체에 먼저 글을 올리면 좋겠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해 주었습니다. 저는 IVF 출신도, 간사를 역임한 내부인도 아니어서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IVP의 원고 청탁에 응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신현기 대표님이었습니다. 기사로 나가는 것은 불발이 되었으나 꼭 10년 전 저는 신현기 대표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고, 그 뒤로 몇 차례 사석에서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대표님이 합리적이고 신중한 분이란 확신이 점차 굳어졌습니다. "신현기 간사님이 대표로 있다면" 저의 글이 IVP 잡지에 게재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긍정적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라는 믿음이 제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고 청탁에 응했던 것입니다.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신 대표님과 저는 같은 취미를 가졌고, 무엇보다 저는 신 대표님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시는 교회 공동체에도 관심이 없지 않아서 꼭 가고 싶다는 말씀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신 대표님께 가졌던 저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신 이번 입장문 발표는 그래서 제게도 매우 소중합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빨리 입장문을 읽을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거의 전례가 없는 입장이란 형식의 글을 발표해 주신 신 대표님의 결단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2.

하지만 발표하신 입장문에서 조금 아쉬운 대목이 없지 않아서 주저하다가 저도 사실과 다르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말씀 드릴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글의 성격이 반박이나 반론이란 전투적 용어를 피하고 해명 내지 보충설명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3.

우선 제목과 관련된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저는 신 대표님께서 이번 입장문에서 밝힐 IVP 출판사의 입장을 이해합니다. 일리가 있고, 제가 편집자의 자리에 있었더라도 같은 입장을 취했을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하며 옷깃을 여밉니다. 하지만 저의 입장은 조금 다릅니다. 이 부분은 이미 어제 평화의마을공동체를 담임하고 있는 박삼종 전도사님과 페이스북에서 나눈 이야기로 대신하겠습니다. 인용이 지금 이 글의 톤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서 주저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저의 한 단면이라 다소 날이 서 있는 글을 인용합니다.

 

"존 스토트의 책의 내용이 급진적이냐 아니냐는 한 마디로 해석의 문제이고 평가의 문제입니다. 거기에 대해선 입장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존 스토트가 급진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목의 문제는 팩트의 문제입니다. 저자가, 그것도 똥 오줌 못 가리는 젊은 저자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 내용에 검증받았고, 이미 수십권의 저서를 낸 저자가, 더군다나 자신이 더는 글을 쓸 수 없음을 직감한 저자가 유고작이 됨을 직감하면서 ........책의 제목을 정했고, 그 제목을 정하는 이유와 급진적이란 단어가 오해되지 않도록 의미까지 한정을 하며 제목을 정했습니다. 이건 팩트입니다. 그렇다면 출판사는 이 부분을 바꿀 권리가 없습니다. 그걸 어떤 이유로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만이겠지요. 자신들이 존 스토트보다 낫다는.

 

이 지점에서 멈춰 서서 생각해봅시다. 존 스토트같은 양반이 죽음을 앞두고 쓴 마지막 저서에서 (IVP는)자신들의 잣대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고 제목을 바꿨습니다. 존 스토트를 이렇게 바꿀 수 있는 편집자들이 존 스토트보다 연배가 낮고, 글의 내용이나 지명도와 영향력에서 떨어지는 저자와 번역자의 글에 대해 행사할 권력을 생각하면 저는 현기증이 날 지경입니다. 저는 그런 오만을 느꼈습니다.

다시 해석과 팩트의 문제로 가 봅시다. 급진적 제자도는 팩트의 문제입니다. 때문에 그건 편집자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제목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더 열을 받는 것은 영국 IVP는 막말로 박삼종 전도사님이나 한국 IVP보다 생각이 부족해서 급진적 제자도란 제목을 달았겠느냐는 겁니다.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 책의 내용이 급진적이지 않은데 왜 급진적이라고 했느냐는 비판과 질타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시건방진 편집자들이 할 이야기가 아니라 비평가와 독자들의 몫입니다. 그러니까 한국 IVP 편집자들은 존 스토트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그리고 신학자들과 독자들의 권리를 빼앗아 오버를 한 것입니다. 그건 당신들이 할 이야기가 아니라 저와 같이 애정을 가진 독자들이 존 스토트에게 해야 할 비판입니다. 당신들의 역할은 저자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는 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편집으로 밥을 먹고 사는 양반들이 팩트와 의견,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게 정말 어처구니 없습니다."

 

 

4.

이제 신현기 대표님께서 쓰신 입장문에서 조금 사실과 다르게 읽으셨거나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없지 않은 듯 하여 그 부분에 대한 해명으로 저의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신 대표님은, "이번 지강유철 선생님의 IVP 비판은 사실과 다른 면을 단정하여 논거로 삼았다는데 문제가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강유철 선생님은 IVP가 좌파 혐오증, 보수지향성, 상술, 심지어 윗선이나 데스크의 입김 때문에 제목을 세탁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하셨습니다. “IVP 구성원들은 어찌 감히 OOO와 IVP를 비교할 수 있겠느냐는 것 같습니다.”

 

이 대목은 신 대표님께서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글이나 페이스북의 제 낙서를 오독하신 것 같습니다. 만약 신 대표님께서 한국 기독교의 대표적 출판사 가운데 하나인 IVP 대표이자 평생 책을 만들어 오신 분이 아니라 길거리에서나 아무 교회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분이었다면 이런 말씀을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 눈에 보기에도 일상의 대화에서 '나는 그렇게 단정한 것이 아니라 가정법으로 썼는데 당신은 왜 그걸 단정했다고 말하느냐" 따위의 문제 제기가 쪼잔해보이거든요. 하지만 신 대표님이나 IVP에는 쪼잔하게 보일 걱정하지 않고 제 문장의 오독 내지 오버한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글의 전문성에 있어서 신 대표님이나 IVP의 전문성과 얼치기 글쟁이인 저의 수준과는 비교조차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저 같이 우리말 문법이나 띄어쓰기 조차도 종종 틀리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매일 책을 만드는 분들이, 제가 "IVP가 좌파 혐오증, 보수지향성, 상술, 심지어 윗선이나 데스크의 입김 때문에 제목을 세탁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단정하신 것은 아쉽습니다. 아니 좀 안타깝습니다. 날선 비판을 받는 입장에서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해서 문장을 꼼꼼하게 읽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은 저도 인정합니다만 그래도 입장문 발표라면 텍스트를 가지고 말씀하셔야지 그 텍스트에 대한 주관적 해석으로 말씀하신 것은 곤란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신 대표님께서 저의 글에서 문제를 삼으신 부분에 대한 뉴스앤조이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수적 기독교는 '급진적'이란 단어를 좌파 용어라 생각해서 싫어하고, IVP는 독자들의 이런 경향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급진적 제자'를 포기하고 '제자도'란 제목을 선택했다면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그것이 정치적 판단이든 상업적 고려이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이런 제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면 IVP는 다른 저자도 아닌 존 스토트의 책 제목을 세탁한 것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이 사태를 책 제목에서 '급진적'이란 단어 하나 뺀 것을 놓고 웬 호들갑이냐고 그럴 수 없는 이유입니다. '급진적'이란 단어가 빠진 존 스토트의 마지막 책에서 한국 IVP의 현주소를 읽습니다."

 

신 대표님의 입장문이 제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뉴스앤조이 글만이 아니라 페이스북에 쓴 내용까지 문제를 삼으셨기에 그 부분도 인용해 봅니다.

 

"우리 사회에 "급진적"이란 단어는 좌파의 용어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그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출판사가 조심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판매와 직결되는 문제일테니 말입니다. 또 한편에선 출판사의 데스크 이상에서 그 단어에 대해 거부감을 느껴서 판매보다는 윗선의 의지 때문에 "급진적"이란 단어가 배제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쩌면 그 두 가지 요인이 함께 작동했을 수도 있겠지요."

 

제가 쓴 "~다면 이렇다"는 가정문이 "지강유철 선생님은 IVP가 좌파 혐오증, 보수지향성, 상술, 심지어 윗선이나 데스크의 입김 때문에 제목을 세탁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단정하시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저는 IVP에 있는 좌파 혐오증과 보수 지향성, 상술, 데스크 입김 때문에 제목이 세탁되었다고 단정한 것이라 아니라 만약 그런 요인이 작용하여 제목이 세탁되었다면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썼습니다. 해명글이 길어져서 민망하지만 저의 이 글은 욱 하는 마음에서 며칠간 밤새워 쓴 글이 아닙니다. 저는 '제자도'가 출간되고 난 직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부분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을 이야기했습니다. 홧김에 쓴 글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실 관계 확인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제가 기자가 아니라 보통의 독자인데, 그런 독자마저도 출판사에 일일이 물어보고나서야 글을 써야 한다면 거기엔 선뜻 고개를 조아릴 수가 없습니다. 물론 IVP는 정부기관이나 기업이나 기무사 등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열려있는 곳이지만 독자가 불만을 토로하려 할 때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고서야 글을 쓰라는 것이라면 독자로서는 너무 권위적으로 느껴지거나 글을 쓰지 말라는 말로 들리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제 말의 요지는 사실관계 파악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기자와 독자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보다는 독자들에겐 좀 실수가 있더라도 포용해주고 겸손하게 잘못에 대해 "건 이렇습니다"라고 해명해 주시면 더 좋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5.

신 대표님께서 또 하나 문제삼으신 대목은 모 출판사와 관련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 역시 대표님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민망하실지를 상상하면 제 이마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입니다. 물론 저는 신 대표님께서 다른 출판사에게 그런 의식을 드러내셨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대표로서 그런 편견을 정책에 반영하셨을 것이라곤 꿈에서도 상상치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IVP 전, 현직 간사님들에게 그런 의식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한 분에게서만 확인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정도만 언급해 두겠습니다.

 

6.

이제 글을 끝 맺으려 합니다. 저 역시 글을 쓸 때 뿐 아니라 글을 발표하고 나서 하루에 두 세 시간 뿐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습니다. 글을 쓰면서 지금까지 나왔던 댓글보다 훨씬 혹독한 비판을 각오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었기 때문에 머리로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머리와 가슴이 불화하면서 몸에 이상증세가 없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끊임없이 댓글 쓴 이들을 이해한다, 내가 그 입장이라면 더 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여유를 부렸지만 몸은 그런 생각을 배반하더군요. 하지만 그보다 저를 잠못 이루게 만든 것은 신현기 때표님 걱정이었고, 저와 원고를 주고 받는 일을 하였던 천서진 간사님, 노종문 편집장님, 무엇보다 한 번도 만나거나 말을 섞은 적은 없지만 '제자도'를 책임편집한 임혜진 간사님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였습니다. 그런데 이미 글을 발표하였고, 댓글이 뜨거워지는 상황에서 천 간사님이나 노종문 편집장님, 그리고 임혜진 간사님께 이런 마음을 표현할 수도 없었습니다. "병 주고 약 주냐?"고 하시지 않을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신 대표님과는 몇 차례 쪽지를 주고 받아서 부담이 덜했지만 그렇다고 인간적으로 송구스런 마음이 희석되지는 않더군요. 관계된 분들에게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지 모르겠지만 저의 기본적인 입장은 간사 한 분 한 분에게는 별로 불만이 없습니다. 저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서의 IVP에 대한 문제제기였음을 말씀드려 둡니다. 저는 '도적덕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니버의 입장에 공감하거든요. 다시 한 번 보여주신 마음과 써 주신 입장문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2011년 10월 8일

지강유철

 

추신:

1.노트에 글을 쓰니 잡지나 책을 의미하는 기호를 자꾸 거부해서 불가피하게 본문에서는 책 제목을 작은 따옴표로 처리하였음을 밝혀 둡니다.

 

2.신현기 대표님께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혹시 가능하시다면 영국 IVP와 연락을 취하셔서 책 제목과 관련하여 영국 IVP에서는 편집자와 저자 사이에 어떤 토론과 협의 과정이 있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다면 고맙겠습니다. 물론 영국은 한국처럼 래디컬이란 단어에 대한 과민 반응이 없고, 존 스토트가 급진적이지 않기 때문에, 또는 단순히 제자도가 급진적 제자보다 더 의미를 잘 전달한다는 우리 방식의 문제가 없어서 아무 이견 없이 책 제목을 정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3.

본문에 기록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은 이야기 중 하나는 이승장 목사님입니다. 선교단체의 원로 가운데 한 분이신 목사님께서 이 논쟁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신형기 대표님의 글을 '공유'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아니 너무 황송했습니다. 그러나 책에 대한 비평으로서 제자도란 제목이 더 낫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야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제목으로 '제자도'가 더 좋다는 말씀은 조금 아쉽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논쟁은 어떤 개인의 해석이나 취향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니라 책 제목에 담긴 저자의 의도를 출판사가 왜곡했느냐 아니냐를 둔 논란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을 위하여 황송하게도 후배의 글을 '공유'해 주시는 모습은 감동입니다. 더 강건하셔서 오래 오래 저희들에게 가르침을 주실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1/10/12 00:29 2011/10/12 0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