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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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감독을 처음 알게 된 건 엄정화와 감우성이 주연한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통해서였다. 물론 10년전에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란 영화가 있긴 하지만 제목만큼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가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등의 흥행세를 몰아 최근에 <쌍화점>을 내놓았다. 단적으로 말해서 나는 <쌍화점>이 그저 그랬다. 많은 이들이 공감했겠지만 주진모의 연기력을 확인한 것 외에 쌍화점은 조인성과 송지효의 베드신을 보여주기 위한 2류 영화에 다름 아니었다. 그 외에는 사극으로서의 스케일만 커졌을 뿐 감독의 시야는 오히려 후퇴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나는 유하 감독이 남자들 세계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이 싫다. <비열한 거리>에서도 병두(조인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황회장(천호진)과 민호(남궁민), 그리고 그의 조직원이었던 종수(진구) 중, 감독의 페르소나를 대변하는 듯한 영화감독 민호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병두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이 남자들의 우정을 피도 눈물도 없는 '조폭'의 세계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평면적인 접근이다.

유하 감독의 또다른 작품인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도 남자들 사이의 배신이 판친다. 우식(이정진)을 따르는 현수(권상우)는 우식을 아끼지만 1인자의 자리를 다투는데 있어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경쟁하는 데에 있어서는 서로 무심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냉정하다. 또한 우식의 꼬봉격인 햄버거(박효준)는 순간의 욱한 심정에 우식에게 상처를 입혀 싸움 끝에 결국 학교를 떠나게 만드는 장본인 역할을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조차 우식이 떠나고 소식이 없어도 현수와 햄버거는 재수학원 앞에서 취권을 휘두르며 즐거워한다.

<쌍화점>에서도 이런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왕(주진모)과 연인 관계에 가까운 홍림(조인성)은 왕을 목숨처럼 지키는 친위부대 수장이었다가 왕후(송지효)와의 대리합궁으로 왕후를 사랑하게 되고, 그로 인해 왕을 배신하기에 이른다. 왕의 고뇌와 질투, 그리고 분노는 효과적으로 전달되지만 홍림의 정사와 배신은 왕후와 육체적인 사랑 그 이상의 무엇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왕과의 관계가 파경으로 치닫는데 대한 설명력을 잃는 듯 하다. 또한 만일 왕후와 홍림의 관계가 육체적 사랑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색계>에서 펼친 양조위와 탕웨이의 베드신처럼 왕후와의 정사가 캐릭터의 심리까지 전달될 정도로 농염하지도 않다.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는 반복적 베드신은 반복되는 파격적인 행위에도 불구하고 자주 등장하는 베드신이 의아하게 느껴진다.(베드신을 위한 영화?) 결국 거세당한 분노로 배신의 칼을 뽑아든 홍림의 비장함은 플롯을 잃어버린 채 때때로 코믹하게 보이기까지한다.

대작이라 불릴만한 영화 속 캐릭터들은 그저 선하거나 그저 비열하기만 하지는 않다. 잔인하기 그지 없는 마피아 영화에서조차 배신자의 심리는 복잡하기만 하다. 일례로 <원스 어폰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누들스(로버트 드 니로)를 제외한 나머지 동료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고 다른 이름의 삶을 살아가는 맥스(제임스 우즈)는 말년에 누들스를 초대해서 자신의 비리를 폭로하고 자살을 한다. <대부>의 마이클 콜리오네는 아버지인 비토 콜리오네(말론 브랜도)의 사후 권력 다툼에서 자기 형을 죽인 죄값으로 평생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배신자의 복합적 심리를 파고드는 것은 단지 얼마나 파격적이냐의 문제라기 보다는 오히려 얼마나 감독이 캐릭터들을 마음으로 감싸고 이해하려 드느냐 하는 것에 있으며 감독은 이 부분을 자주 간과한다.

오히려 여성 캐릭터들은 정반대로 너무 지고지순하고, 일편단심으로 남자 주인공들을 따른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엄정화)는 준영(감우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캐릭터이다. 결국 준영은 연희를 자신을 섹스 상대 정도로만 여기는 속물로만 보다가 영화의 후반으로 갈수록 그녀가 의사인 남편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과 결혼하여 변변찮은 삶을 살 마음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은주(한가인)도 친구들이 모두 등을 돌린 우식이 찾아오자 현수를 버리고 우식을 따라서 사라진다. <비열한 거리>에서 병두를 사랑하는 현주도 마찬가지고, <쌍화점>에서도 대리합궁으로 육체적인 정을 나눈 홍림에게 왕후는 마음까지 허락하여 함께 도망가자고 권하기도 하며 결국 홍림의 신변을 위협하는 왕마저 해칠 계획을 세운다. 강자에게 순종적인 여성 캐릭터는 남성의 환타지를 충족시킬 수는 있겠지만 시대에 맞지 않게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내비치는 대목으로 읽히기도 한다.

감독은 이렇듯 주인공을 둘러싼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이중 잣대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남자들의 세계는 단순히 비열하고 냉정하고 차갑기만 하다. 마치 남자들의 세계가 그렇다는 듯. 때로 주인공을 도와주기도 하지만 배신할 때는 가차 없다. 2인자는 자주 배신하며 그 배역 자체에 대한 애정이 깃들어있지 않아 보인다. 반대로 강자를 사랑하는 여인들은 너무나도 순종적이고 헌신적이다. 강자가 되기 위해 경쟁하는 남자들의 세계는 지나치게 단순한 캐릭터로 달려가고 그를 따르는 여성은 가부장적 권위에 순종하는 감독의 전반적인 영화 흐름이 나는 불편하다. 설령 가부장적 가치관의 팩트들을 끌어감에 있어서도 사건들을 풀어가면서 그 사건에 개입된 이들의 동기와 심리, 그리고 행동의 원인들을 찾아가지 않는 한, 캐릭터의 극단적 평면성은 스케일이나 촬영기술, 시각효과의 뛰어남으로도 커버되지는 않을 것이다. (끝)

2009/01/15 19:31 2009/01/15 1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