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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강유철님과 신현기대표님에게.
- IVFer로서 [한국 IVP, 존 스토트만큼만 되어라]를 대하는 입장.

/김용주

지난 한주는 지강유철님이 뉴스앤조이게 기고한 [한국 IVP, 존 스토트만큼만 되어라]의 논의가 정말 무성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IVP 신현기 대표님이 공식 입장을 표명해주셨고 바로 다음날 지강유철님이 그에 보충적인 해명을 다시 올림으로써 한주의 후반에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는 논쟁을 지켜보았습니다. 두 분 모두 서로에 대한 격을 갖춘 글들을 보여줌으로써 회의감에 빠진 저의 교계 논쟁에 있어 어떤 글쓰기 스타일의 방향성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두 분 모두 제가 직간접적으로 친분이 있는 분이며 제가 교계에서 존경하는 사역자이기에 더 그런 마음이 들었던 듯 합니다.

저는 지강유철님의 기사가 뉴스앤조이에 실린 후부터 기사를 링크하고 그에 대한 찬성의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찬성'이라는 게 어떤 시비를 극명하게 가리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의 글에서 취할 좋은 교훈이 많다는 의미에서 그러했습니다. 그러한 제 입장을 표명한 후 저는 많은 IVP/IVF와 관련된 이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의도한 바도 있지만 때때로 의도하지 않게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지난 주 내내 참 많았고 그 자체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배움이 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IVP에서 '급진적'을 생략하여 생긴 일이니 정말 IVP에 개인적으로 감사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지강유철님의 글은 IVP가 존 스토트 신부님이 유작이라고 생각하며 굳이 형용사로 넣은 'radical 급진적'이란 단어를 과감하게 뺀 것이, 좌파용어인 radical이란 단어를 넣을 때 잃게될 독자들 때문이라고 ‘가정’합니다. 그것이 '정치적 판단이든 상업적 고려이든 상관없이'말이지요. 그러고는 시선을 IVP 내부로 향해 번역 위주의 출판 사대주의에 함몰된 IVP를 비판합니다. '번역이 아닌 자국어로 된 기독교 서적의 저술과 출판 육성'의 중요성을 지적하며 랭햄 문서 사역에 인세를 기부한 존 스토트의 정신과 달리 IVP는 여전히 번역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런 번역서들은 데이트, 사랑, 결혼 등등 한국적 상황에 맞지도 않는 문제들까지도 번역서를 의존해야 하는 답답한 현실로 이어지고 IVF의 아픈 기억인 '6개대 사태'도 이런 번역위주의 출판과 무관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존 스토트의 유작에서 '급진적'이란 단어를 뺀 것이 좌파적 사회참여의 고배를 마신 그 사건에 자유롭지 않은 게 아니냐는 것이지요.

먼저는, 제가 생각하는 지강유철님의 글에 대한 문제점을 중언부언하지 않고 말하려고 합니다. 지엽적인 부분에서 지강유철님의 글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이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처음 부분에서 '실천에 둔감한 지식인들이 점차 싫어지다보니'로 시작된 그의 글은 추천사 비판 부분에서 '당사자에게 송구한 이야기입니다만 '급진적 제자'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국내 추천자들의 추천사를 읽어야 하는 일은 좀 괴로웠습니다'로 교계의 '특정 부류'를 불편하게 했고 출판 비평을 하던 그의 논지에 갑자기 IVF라는 선교단체의 아픈 상처인 '6개대 사태'를 건드립니다.

재해명 글에서 그는 제목에 대한 편집자의 권한에 대해 '시건방진 편집자들이 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표현을 쓰면서 원제와 다른 타이틀을 만드는 편집자들을 단번에 불편하게 만드십니다. 또한 홍성사와 비교를 통해 두 출판사를 모두 불편하게 만들었고, 글의 말미에 편집에 관련된 이들의 이름을 노출하면서 그의 배려의 손길이 더더욱 그들을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솔직히 저는 그렇게 진행된 그다지 길지 않은 그의 글에서 이미 심기가 불편해질 교계의 그룹들이 눈에 선합니다. 저는 몇몇 대목에서 부지중에 손으로 이마를 부여잡기를 여러번 반복했습니다.

더 중요한 텍스트의 정합성 문제입니다. 존 스토트 유작의 핵심 가치를 표현한 제목을 수정했다는 지강유철님의 제목 세탁 비판이 갑자기 번역 위주의 사대주의 출판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논리적 전개가 떨어집니다. 논리적으로 본다면 바른 전개는 '사대주의 하려면 시건방지게 말고 제대로 해라'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랭햄 문서 사례가 빛을 발하여 스토트가 자국 고유 출판에 힘썼는데 IVP는 왜 스토트 책 제목도 막 바꾸고 그의 정신도 계승하지 못하냐라고 이어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강유철님도 그렇게 전개하셨으리라 추정되나 번역서적의 제목에서 비롯된 논지 전개에 아무래도 무리한 흔적이 보입니다.

특별히 그는 가정법을 사용하여 '정치적 판단이든 상업적 고려이든' 그런 요소가 있었다면 문제다, 라고 제목 세탁의 근거를 추정했기에 만일 IVP에서 정치적 판단도 아니고 상업적 고려도 아닙니다 라고 한다면 그 이후의 논리는 허물어집니다. 특히 갑자기 등장한 IVF의 '6개대 사태'는 정치적 이유라는 가정법이 작동하지 않을 때 논리 비약의 요소가 됩니다. 실제로 신현기 대표는 그 두가지 이유가 아니라고 해명했고 많은 IVF 멤버들은 IVP와 IVF간의 차별성, 그리고 IVF의 중앙조직의 미미함으로 인한 지부별 자발성을 들어 페이스북 등등 여러 채널로 이 글의 불합리성, 부당함, 억울함 등을 토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간단히 설명드리면 이렇습니다. 먼저는 내부자로서의 자성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IVP로 본다면 지강유철님은 순수 독자입니다. 본인이 표현하셨듯 독자로서 자신이 애정하는 출판사에 고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러한 고언을 함에 있어 출판사 내부의 여러 문제들, 그 팩트들을 모두 검증하고 허락을 받고 인가된 범위 내에서만 비판해야 한다면 그것 또한 어불성설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현기 대표님의 자성적 해명은 본이 되는 모습이었고 IVP가 그간 어떤 입장 표명도 해오지 않은 것을 볼 때 이례적이라고 할만큼 유연한 반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이 대목에서도 한가지 짚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제목세탁에 대한 해명 부분에서 신현기 대표님은 부드러운 논조이지만 지강유철님의 논지 자체를 완전히 허무는 언급을 하십니다. 신대표님은 '무조건 많이만 팔아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급진적 제자도'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독자일수록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통해 이것이 상업적 이유가 아니며, 또한 책을 읽으면 radical이란 다분히 정치적인 단어가 실제 그 의미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라는 말을 통해서 그것이 정치적 이유가 아님을 주장하였습니다. 정치적, 상업적 이유가 아니라 IVP의 간판 저자의 유언격인 이 책을 더 많은 이가 읽었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동기만 남는다면, 사실 '제목세탁'도 '6개대 사태'도 비판거리가 못 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니 날것 그대로 ‘급진적’이란 단어를 뺍시다” 라고 했을 때의 무의식적 동기를 배제할 수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독자 층을 넓게 본다는 것과 매출액을 가늠하는 것 사이에 구분이 가능한지 저는 의문입니다. 스테디 셀러 저자의 책에서 정치적으로 오해할 수 있는 단어를 삭제함으로서 얻는 기대치를 출판사의 순수한 동기 해명으로 환원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마케팅 전략이 배제된 출판이 스테디 셀러의 유작에 작동하리라는 생각이 쉽게 들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IVP를 속물출판사로 보려는 의도가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차라리 '제 양심을 걸고 독자층이 많아지는 것을 의도했지만 그로 인해 radical이란 단어 자체를 불편해 하는 보수적 기독인과 스테디 셀러의 출판 수입이 늘어날 결과를 초래할 것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게 더 좋은 해명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6개대 사태' 끼워넣기는 더더욱 심각합니다. 제 주변 IVFer들은 이 대목에서 상당한 불쾌감과 상처를 받은 줄로 압니다. 그만큼 내부적으로 상처가 깊고 미완의 사건이며 해결도 쉽지 않고, 또한 그 사건을 제대로 기억하는 후배들도 드물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쌩뚱맞게 제목세탁이 '6개대 사태'를 제대로 해결 못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논지에 대해,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분들조차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변죽을 울린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저는 IVF 내부인으로서 이 사건이 언급된 것에 대해 동일한 유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 단일 사건, 그것도 IVF의 여러 약점, 혹은 상처 가운데 가장 아픈 부분을 툭 찔렀다는 점에서 동일한 통증을 느낍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이것을 불편함, 불쾌함, 억울함으로 보려는 입장과는 다릅니다.

'6개대 사태' 이후로 제가 알기로 다수의 지부에서 정치색을 띤 사회참여운동에 대해 급격히 냉각되었고 존 스토트 최고의 행적인 로잔언약과 마닐라 선언에서 이루어진 복음의 양날개 이론, 즉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동등성에 대한 입장이 체화되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경험한 IVF 캠퍼스 운동은 '체화'라기 보다는 '배제'가 더 정확한 진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IVF를 사대주의 선교단체로 치부하더라도 문제라 할만 하며 앞서 말한대로 '사대주의 하려면 시건방지게 말고 제대로 해라'라는 논지로 한국 IVF의 내부를 비판해도 충분할 것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지강유철님이 가슴아픈 사건의 변죽만 울렸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핵심 메시지를 받고 그것을 고민하고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그렇다고 '6개대 사태' 이후로 IVF가 지강유철님에게 당당히 해명할 정도의 '급진적', '온전한' 행동을 실천해온 선교단체는 아니었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논리의 시시비비, 사건과 팩트의 명확한 해명에 앞서, 회개와 각성, 그리고 새로운 전략을 짜려는 분위기가 내부적으로 활성화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래는 지난 주에 제가 쓴 글입니다.

"난 지강유철님의 기사에 대해 IVP나 IVF 사람들이 흥분조로 부정하거나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도 아쉽지만, 그보다 더욱더 우리가 한국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주목을 받는 단체니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알자는 류의 자아도취적 정서도 불편하다. 차라리 우리 조직이 간판대비 거품이 많았다거나 내부성찰 없이 참 많은 칭찬을 받고 있었다는 겸손함이 내부로부터 우러나왔다면 어땠을까. 지금이라도 우리가 한국 기독교의 중심이라거나 핵심단체라는 기득권 마인드를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자성이 보다 확산되면 좋겠다. 나도 한 명의 내부인으로서 그런 마음을 품고 싶고 나누고 싶다."

마지막으로 저는 신현기 대표님과 지강유철님의 재해명 글을 읽으며 두 분의 격식있는 논쟁의 스타일에는 고무되었지만 정작 핵심적인 논의, 이를 테면 출판에 있어 번역 위주의 사대주의와 한국적 상황에서의 저자발굴, 신학하기, 한국복음주의적 사회참여의 방향성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가정법'으로 오해했냐 아니냐의 다소 주변적 이슈로 논쟁이 변질된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차라리 기왕 해명할 것이었다면 IVP가 보다 적극적으로 최근에 발굴한 국내 저자들, 이를테면 박영돈, 김영봉, 강영안, 김형국, 우종학 등의 약진과 앞으로 점점 늘려나갈 한국적 상황화, 토착화의 큰 그림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해명하였다면 더 애정어린 눈으로 IVP를 바라보게 되었으리라 상상해봅니다.

글을 쓰다보니 극명했던 제 치우친 옹호가 좋게 얘기하면 조금 누그러진 감이 있고 나쁘게 말하면 날이 좀 무뎌진 감이 없지 않습니다. 한 주간 참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그 가운데 제 생각도 어느 정도 수정되고 분명해진 부분이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 논의의 중심에 서 있는 두 분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이 크기에 이 글을 쓰면서도 심정이 조금 복잡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부디 허접한 제 글에 부족한 부분은 버리시고 건질 수 있는 작은 부분만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샬롬으로 인사 드립니다. (끝)

2011/10/12 00:31 2011/10/12 0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