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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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선다. 줄이 길어지면서 일직선이 되지 않은 틈에 비뚤어진 중간 즈음에 누군가가 슬쩍 줄을 선다. 그 뒤로 사람들이 다시 줄을 선다. 이때 나는 심기가 불편하지만 사람들은 그냥 서 있다. 줄이 어느덧 두 줄이 되고 그 줄 사이로 간간이 사람이 들어와서 2.5줄 비슷하게 된다.

솔직히 나는 끼어든 줄보다 끼어든 줄에 아랑곳하지 않는 원래 줄의 사람들이 더 밉다. 잠시 후 버스가 온다. 버스는 줄 앞이 아니라 줄과 4~5미터 뒤에 정차하고 그 지점에서 걸어오던 사람들이 줄과 상관없이 버스에 타기 시작한다. 출입구에 3~4명이 한꺼번에 달려들고... 이쯤되면 처음부터 줄이란 건 없었던 것처럼 혼잡하다.

이게 뭔 미친 짓이란 말인가... 사실 이런 일은 일상적으로 수도 없이 겪는다. 커피주
문을 위해 줄을 서 있는데 어떤 아줌마가 눈치를 잠간 보다가 점원에게 뭔가 물어본다. 그러고는 슬쩍 메뉴를 주문한다. 내 차례가 되어서 메뉴를 고르고 있는데 뒤에서 먼저 라떼 두잔이요..라고 소리친다. 점원은 그 주문을 접수한다. 점원은 나와 눈이 마주치면 '니가 빨리 말을 안 해서 그렇지.'라는 듯 나를 쳐다본다.

만원 지하철에서 내릴 즈음 문앞에 있는 나를 굳이 밀쳐내고 먼저 내리는 승객들이 있다. 나를 밀쳐내고 앞서 가면 도대체 얼마나 빨리 나가냐. 씨바... 뭐, 나를 포함해서 다들 스스로가 소중하고 뛰어난 사람이라 생각하고 살겠지만 공중도덕을 떠나서라도 일상적으로 부딫히는 사람들을 장애물처럼 생각하고 무시하고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자신의 편의를 취하는 생활이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모든 윤리에는 역사적인 문제와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선행한다. 허나 우리 개개인도 엘리베이터에서도 출구만을 바라보며 침묵하고 지나가는 아이가 넘어져서 울고 있는 데도 이어폰을 꽂고 지나칠 만큼, 어느새 아주 기본적인 공동체 윤리의식조차 나약해진 건 아닌지.


#2.
유독 우리나라가 공중 도덕이나 이른바 공동체 윤리가 낮은 이유는 여러 방면에서 보는 입장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입시에 '몰빵'된 교육 체제가 문제가 아닌가 싶다.

솔직히 나는 중학교 시절, 성적이 오른 후로 어머니의 지대한 관심을 받으며 오로지 공부만 잘하면 모든 다른 일들은 면제혜택을 누리며 자랐다. 설거지, 청소, 빨래 같은 집안 일은 물론 아르바이트 용돈벌이도 안 했고 하물며 학원 때문에 친척 결혼 같은 집안 경조사에도 간간이 빠져도 문제가 안 됐다. 학교에서는 반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예체능 점수를 담임 선생님이 알아서 관리(?)해줬다.

지금도 내 주변을 보면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대학 입시 전까지 모든 부모는 자녀가 학교 성적이 오르는 일에 집중하고 다른 많은 일들에는 면제의 혜택을 주는 '관행'이 지속되는 느낌이다. 사실 여기에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과도한 사교육으로 인해 지친 자녀들에 대한 불합리함을 공감하고 있어서, 되도록 공부에 찌들어 불쌍한 자녀의 다른 영역은 통제나 훈육하지 않으려는 '배려'로부터 비롯된다.

아이들은 무섭도록 빨리 어른들의 욕망을 알아채고 그 욕망의 선을 따라 자신의 가치관을 모방하고 체화시킨다. 부모의 욕망에 기인한 이런 가치관, 세계관은 당연히 '공동체 안에서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것을 지향하기 보다는 경쟁에 강건한 정신력을 갖추고, 명문대에 진학해서 지금까지 공부한 고생을 통해 남은 여생을 지속적으로 혜택을 누리는 상류층이 되고 싶은 욕구를 반영한다.

그런 욕구로 아이들은 성장기에 체득해야 할 공동체 윤리적 습속을 익히지도 못한 채 공동체성이 전무하고 암기력만 탁월한 미숙한 성인이 된다. 당연히 이들은 스트레스에 취약할 수 밖에 그것이 자연히 공중도덕이 작용해야할 일상적 자리, 버스에서 줄을 서거나 음식을 주문하거나, 익명성이 보장되는 사이버 공간에서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한 욕망, 습관이 분출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요즘 세대는 오죽하겠는가. 어른들의 욕망대로 공부를 했지만 예전보다 경쟁은 치열해졌고 일자리는 줄었다. 공부를 잘해도 계급상승의 욕망을 실현하기가 쉽지 않은 대다가 공부를 하기 위해 떠안은 빚도 만만찮다. 그런 연유로 그들이 비정규직 직종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그 일을 공동체의 일원의 역할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잠시 떼우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긴다.
 
결국 이러한 전반적인 구조가 가진 자도 지랄하고 못 가진 자도 지랄하는(죄송) 우리나라의 공동체 윤리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마, 이런 생각이 든다.

2012/08/10 21:48 2012/08/10 2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