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의 생각.
"플래너를 쓰면서 느끼는 건 시간관리를 하기엔 좋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깊어지는 관계, 고민의 흔적, 그 시기의 중요한 메모들은 정리하여 다시 펼쳐보기가 쉽지 않더라는 점이다. 일기말고 한 개인의 이력, 내러티브를 담을 수 있는 기록 방법은 없을까."
#2. 7habits.
그간 나는 누구보다 7habits 방식으로 시간관리를 잘 훈련해왔다고 자부한다.(아.. 깔대기를 참을 수가 없구나) 그리고, 작년 한 해 동안은 GTD방식으로 직장에서 뇌에 무리가 갈 정도로 과열된 메모리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사실 이 두 가지 시간관리 방식은 나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줬고 지금도 실무적으로 혹은 특정 영역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 방식들의 한계를 본다.
*주: 데이빗 알렌은 우리의 뇌를 컴퓨터의 메모리에 비유한다.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각 프로그램마다 일정량의 메모리를 확보하게 되고 따라서 실행한 프로그램 수가 늘어날 수록 메모리 부족으로 컴퓨터는 느려지게 된다. 데이빗 알렌은우선순위에서 밀린다고 판단하여 우리가 빨리 해치우지 않고 미루는 사소한 많은 일들이 우리 뇌의 메모리를 잡아먹고 그것을 언젠가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더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메모리 폭주에 비유했다.
#3. 크로노스 vs. 카이로스
'관계중심 시간경영'이란 책에서 저자는 시간관리에 있어 카이로스와 크로노스를 구분한다. 우리는 머리로는 시계시간(크로노스) 대비 사건시간(카이로스)을 더 의미있게 받아들이지만 실제 삶에서 시계 시간의 관리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통찰이 그것이다. 결국 시계 시간에 집중된 시간관리는 일정을 관리하고 목표를 성취하는 데에는 유용할 지 모르지만 한 개인을 총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의미있는 정보들을 캐치하기가 쉽지 않다.
#4. 스토리텔링, 내러티브
몇 년 전부터 우리 교회는 '아브라함 학교'라는 독특한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과정은 성경 속 아브라함 이야기를 명제가 아닌 서사(narrative)적 흐름으로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중요한 건 삶의 어떤 원리나 법칙(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방법, 구원의 원리와 같은)을 연역적으로 추출하는 것이 아닌 내 삶의 서사, 즉 유년시절부터 청년, 중년에 이르는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 속에서 어떤 선굵은 방향성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는 현대의 트렌드이기도 한 스토리텔링, 내러티브 중심의 관점과도 일치한다.
#5. 카이로스 플래너? 내러티브 플래너?
나는 요즘 나만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카이로스 지향적인' 시간 관리 방법을 익혀나가는 중이다. 이러한 트렌드는 앞서 말한대로 내러티브, 스토리텔링과 같은 현재 우리 세대의 지적 관심과도 일맥상통하지만 이러한 서사적 방식으로 우리의 시간을 돌아보고 관리(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인생의 방향성을 따져보는)하는 프레임으로 플래너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아마 소수의 사람들은 아직도 일기를 쓸 것이다. 하지만 일기는 너무 자기고백적이고 비밀스럽다. 내러티브는 보다 사건 기록에 치우치고 조금은 건조한 기록이다.
#6. 노트 중독자의 변명.
아무튼, 나는 또 노트를 샀고 이러한 나만의 시간관리 방식(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많은 주변의 지적 자극으로인해 시작된)으로 스스로를 잘 훈련한다면 좀더 건강한 노년을 맞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오늘도 나는 노트에 하루의 이야기를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