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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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나는 내 주변 페친들과 정치성향이 일치한다. 하지만 분명 다른 지점이 있었지만 선거가 끝나기 전까지는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었다. 긴 호흡으로 풀어내야 하는 논지일텐데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는 다분히 오해와 감정의 낭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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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흥미롭게 읽은 책은 김욱 교수의 <아주 낯선 상식>과 강준만 교수의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이다. 국민의당에 대한 다수의 생각이 부정적이므로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이야기를 풀어내기 쉽지 않으리라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책을 인용하기 위해 장문의 내용을 타이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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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국민의당에 대해 비판을 하려면 최소한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의 분열을 꽤하면서도 개혁적인 스탠스를 유지했던 유시민 전장관의 레토릭에 대해서도 동일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에 대한 내 개인적인 호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호남'에 대해, '호남의 세속화'에 대해 비판할 수 없는, 나아가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음을 털어놓을 수 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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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야기해도 누군가에겐 어차피 공감받지 못할 내용이라 판단하기에 서민 교수의 서평으로 내 생각을 대신한다. 아울러 김욱 교수의 책의 몇몇 부분을 길게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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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낯선 상식>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챙겨간 건 경향신문에서 이 책에 대한 고종석 선생의 글을 봤기 때문이었다. 거의 ‘올해의 책’이라며 추천을 하셨던데, 정말 그럴 만했다. 유익한 책에 대한 내 기준 중 하나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바꿔주는 책인데, 이 책은 호남정치에 대한 내 알량한 생각을 바꿔 놓았다! 
“(친노로 대변되는) 영남의 개혁세력이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적극적 청산의지도 없이 자신들이 앞장서야만 대권을 잡을 수 있”(187쪽)다며 호남에게 계속 표를 달라고 우기는 것이 현 상황이고, 그게 노무현 대통령의 분당 이후 벌써 십수년째 계속되고 있다면, 호남이 더 이상 ‘개혁성’을 기치로 한 투표를 하는 대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소위 ‘세속적 투표’를 하는 것도 괜찮지 않느냐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이 주장이 이해가 안된다면 그건 내가 설명을 잘 못한 탓이다).
호남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난 호남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었고,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그들의 몰표에 대해서도 탐탁지 않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호남을 빼고는 한국정치를 논할 수 없다는 저자 김욱의 논리에 난 완전히 설득당했다. 이 책 덕분에 난 호남에서 문재인의 지지율이 왜 떨어졌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으며, 지난 재보선 때 새누리 이정현을 뽑은 그들의 선택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 고종석 선생이 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는지도 수긍이 갔고 말이다. 
- 서민 교수(마태우스 서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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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문제는 호남 정치인을 호남과 분리시키는 ‘분리 이데올로기’가 노무현 이데올로기로 변주되어 새정치민주연합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이데올로기란, ‘허구적 지역주의’ 현실 속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대통령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남에서 득표력이 있는 영남후보를 내세워 호남몰표로 뒷받침해야 하고, 그렇게 당선된 영남 대통령은 ‘민주성지 ’ 호남의 정신적 양해 속에서 세속적인 영남을 물질적으로 유혹해 지역주의를 구조적으로 타파해야 한다는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에 입각한 위선적 정치공학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에 지배받는 사람이 바로 친노다. 예컨대 이런 노무현 이데올로기를 지고지선으로 알고 있는 이화여대 교수 조기숙은 “DJ시대로 돌아가자는 건 호남이 영원히 소수가 되는 지역주의 정당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라고 공공연히 호남을 겁박한다. 이런식의 겁박에 주녹든 호남은 기약없이 파괴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동일화’를 전략으로 삼는 새누리당의 영남패권주의 이데올로기와 ‘지역타파’를 내세운 노무현 이데올로기는 쌍생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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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역시 일당독재 상황이지만 박근혜는 대구 달성에서만 4선을 한 뒤 비례대표를 지내고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김영삼은 거제에서 첫 당선된 뒤 부산에서만 7선, 비례대표 1선을 하고 대통령 에 당선됐다. 현재 다음 대선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김무성 또한 부산에서만 무려 5 선을 했다. 반면 김대중의 경우눈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 에서 첫 당선되고 목포에서 2선된 이후에는 비례대표만으로 3선을 하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정동영의 경우는 전주에서 2선을 했는데 대통령 낙선 후 다시 고향출마를 한다는 이유로 이데올로기적 총공세를 당하기도 했다. 다선의원 고향 제거는 새누리당에서도 종종 있는일 이지만 호남의 그것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새누리당의 그것은 수뇌부의 영남패권주의를 위한 지역관리의 차원이지만 호남에서의 그것은 오히려 ‘분리 제거'라는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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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는 대한민국의 욕망이었다. 물론 광주의 욕망도 그 안에 있었다. 하지만 광주학살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전두환과 그 일당에 무감각해진 채. 그들이 만든 정당을 지지하며 이제 대 한민국이 민주화됐다고 믿는 사람들과 광주는 화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원 없이 실현해가고 있을 때, 광주는 한마음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거두고 그들과 수십 년간을 정치적으로 척지며 살 수밖에 없었다. 광주는 그것이 아직 오지 않은 진짜 민주주의를 실현히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광주는 고립되었고, 욕망은 거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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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에게 몰표를 던져 대통령까지 만들었을 때도 자신들은 단순한 지역적 욕망이 아닌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한다는 명분을 찾았다. 그래서 그 유명한 노무현의 발언 "호남 사람들이 니를 위해서 찍었나요. 이회창이 보기 싫어 이회창 안 찍으려고 니를 찍은 거지"라는 말은 그만큼 큰 상처가 됐다. 호남은 가장 현실적이어야 할 투표행위에서까지 거리낌 없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대신 어떤 의무감 속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히는 것이다... "‘전략적 선택’이라는 용어를 해체시키지 않고서는 광주는 순정한 ‘몰빵’을 하고도 두려움과 슬픔에 온몸이 우는 서러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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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흔들리고 있다. 욕망을 거세당한 채 ‘신성 광주’를 믿고 살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잃어버린 욕망을 찾아 ‘세속 광주’를 회복해야 하는는가? 예수나 부처가 아닌 인간들이 살아가는 도시인 광주는, 호남은 유사 이래 존재했던 다른 모든 세속 도시들처럼 욕망을 표출하며 살아갈 권리가 없는 것인가? 그렇게 똑같이 살면 다른 지역민들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니지만 호남만은 죄를 짓는 것인가?
기억 속의 ‘신성 광주’에 대한 그런 찬양이야말로 ‘세속 광주’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의 호남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란 점도 자명하다. 물론 그 압박감을 이용하려는 정치세력에겐 ‘신성 광주’야말로 더 없이 훌륭한 세속적 욕망의 온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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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건 타의건 5 '18은 굉주가 욕망을 거세당한 근원이다. 나는 욕망을 거세당한 광주가 그 욕망을 다시 찾기를 바란다 “허기를 느끼며 음직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에 더 이상 치욕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광주가 욕망만으로 살기를 원하는 건 아니지만 욕망 없이 살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호남은 할만큼 했다. 죽은 사람들만큼은 아니라도 산사람들로서는 할 만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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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과정 속에서 발현된 것만을 따져도 그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김대중과 김영삼의 연대-분열은 가장 유명하다. 3당합당 이후에도 계속된 김대중과 (3당합당을 거부한 1990년, 새정치국민회의를 거부한 1995년) 꼬마민주당의 연대 ·분열, 노무현의 집권 이후 벌어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연대 분열, 그리고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노와 친노의 연대·분열, 이 현상은 결코 우연한 내분이 아니다. 이는 수십 년간의 뿌리 깊은 족보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사의 숙명적 연대·분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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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영남 친노세력은 영남권 지지를 토대로 극우 이데올로기에 편승하는 새누리당을 거부한 정치인들이다. 반면 호남세력은 극우까지는 아니어도 성향상 상당히 보수적인 정치인들부터 개혁적인 정치인들까지를 모두 망라한다. 따라서 그 이미지가 영남 친노세력보다는 다소 보수적인 느낌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단지 이런 느낌을 가지고 친노/비노의 분열을 무슨 진보/보수의 분열처럼 포장하는건 의도를 가진 대중적 이미지 조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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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하면 진다’는 겁박이 통하려면 최소한 ‘분열히지 않으면 이긴다’는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승리를 통해 분열하지 않은 세속적 대가를 얻을 수 있아야만 한다. 위선 떨지 않고 밀한다면 호남이라는 지역단위로 투표했으므로 호남도(영남이 수십 년을 악착같이 그랬던 것처럼) 지역(출신) 단위의 대가를 얻을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분열하면 진다’는 주장은 문자 그대로 한낱 부질없고 비겁하고 위선적인 겁박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면, 즉 ’분열하면 진다’는 주장이 ‘호남은 세속적 이익과 무관하게 지역단위 전체가 새누리당이라는 절대악에 맞서야 할 의무로만 새정치민주연합에 투표해야 한다'는 뜻이라면 그 주장은 호남의 욕망을 거세하는 부도덕한 정치적 선전구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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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기간 때, 영남사람 노무현이 보기에 “호남-충청-강원지역 이 연대해서 영남지역을 포위하면 이길 수 있다는 지역 분열구도"(충청의 이인제 후보에 대한 호남의 권노갑 지원)는 “민주당의 자기정체성을 부정하는” 악이었다. 그리고 2007년엔 호남 정치인이 출마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기지 못”한다고 강변한다. 그의 정동영에 대한 태도를 보면 심지어는 호남정치인이 출마해 동서대결 자체가 되는 것조차 싫어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대한민국 정치는 딩연히 (친)영남후보가 나설 수밖에 없는 한나라당과 역시 영남후보가 나서야만 하는 열린우리당의 양대산맥이 되어야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노무현식 선진적 지역주의 해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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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은 김대중에게 어느 한때 잠시 몰표를 던진 것이 아니다. 호남은 그가 출마한 1987년 대선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는 1997년 대선까지 3번의 대선과 3번의 총선에서 상상을 초월히는 몰표를 던졌다. 이 몰표에 대한민국은 기가 질렸다. 1980년 광주학살 이후 1997년 대선 승리 때까지 영남패권주의 대한민국에서 호남을 대변하는 김대중이 받은 정계은퇴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호남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히는가. 영남의 비새누리당세력, 개혁·진보세력, 여타 잡다한 모든 정치세력들이 호남을 대변하려는 정치적 욕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통합추진회의 노무현이 ‘양비론(3김청산론)'을 앞세워 김대중을 제거하는 전략을 포기하고 ‘김대중당’에 참여하는 굴복을 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한마디로 김대중을 제거하려는 세력에 대해 호님은 ‘우리는 김대중이 죽을 때까지 김대중을 몰표로 지지할 테니까 당신들이 우리와 함께 하든지 말든지 선택하라’고 요구한 셈이었다. 유사 이래 최초의 반영남 패권주의 정권교체는 그렇게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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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때마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행사지만, 정동영의 사례는 자못 상징적이다. 정동영은 1996년(15대)과 2000년(16대)에 전주 덕진구에서 재선된다. 그는 2004년(17대) 총선 때는 전주 지역구에 출마하지 못하고 비례대표 후보가 되지만 이른바 ‘노인펌훼’ 발언으로 사퇴한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은 민주당 출범 뒤인 2008년에 전주가 아닌 서울 동작을에 출마할 수밖에 없었고, 낙선한다. 2009년 4월 재보궐선거 때는 전주에 출마하려 하지만 불출마 압박을 받는다. 그는 탈당해 전주 덕진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지만 2010년 2월에서야 겨우 복당을 허락받는다. 그는 2012년(19대)에 역시 호남지역구에서 축출돼 강남을에 출마했지만 낙선한다. 한마디로 그는 세계 정치사에 유래를 찾기 힘든 ‘호남출신 중진의원은 호남지역에 출마하면 안 된다’는 반민주적 이데올로기의 흔하디 흔한 희생양 중 한명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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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민주당과의 법통을 끊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함으로써 영남에 분명한 매시지를 보냈다. 열린우리당은 호남당이 아니니 지지해달라는 것이었다. 신기남은 "호남 소외론이 더 확산되고, 구주류가 신주류를 더 공격해야 한다. 호남쪽이 흔들흔들해야 영남 유권자들로부터 표를 달라고 할 수 있다'"고까지 노골적으로 발언했다. 그는 나중에 이 벌언에 대해 호남표 줄어들까봐 전전긍긍히는 분들도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런 분들에게 한 말이었다"고 명확히 설명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선대본부장을 맡은 그는 심지어 “민주당이 호남에서 지분을 가지길 개인적으로 바란다”면서 “그것이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에 맞다”고 주장하는 등 선거역사상 남의 당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는 초유의 선거본부장 역할까지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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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열린우리당 이데올로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열린우리당을 통한 지역문제 해결은 난관에 부딫힌 셈이었다. 열린우리당의 실패가 감지되자 열린우리당 정치인들은 현실적 대안을 내놓기 시작한다. 민주당과의 합당이었다. 부질없는 시도를 끝내고 합당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분열 을 막고 득표력을 키울 것이라는 극히 이해타산적 인 생각이었다. 그런데 2006년 5월 지방선거 당시 문재인은 민주당과의 합당을 절대 반대하는 노무현의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한 바 있다... 노무현의 그 의지는 완전히 방향을 잃고 표류하다 흔적도 없이 좌초했다. 한데 아이러니한 것은 현재 문재인 등 친노세력은 어쨌든 그런 노무현의 신념을 이어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이어받기는커녕 호남에서 정당간 경쟁을 시도하려는 말만 나와도 그들은 기를 쓰고 분열이라고 외치거나 호남당을 만들 생각이냐며 매도한다... 난 이제 호남이 반드시 복수정당제를 쟁취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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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단언컨대 김대중(지지자)과 노무현(지지자)의 이념은 근원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즉 명 백히 ‘김대중 정신'과 '노무현 정신’은 같지 않다고 본다. 우선 김대중은 ‘ 영남패권주의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반영남패권주의 지역연대인 DJP 연대를 통해 집권했다. 반면 노무현은 ‘영남패권주의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실제론 실망스러웠지만) 영남의 표를 확장시켜 당선되기를 원했다. 당선 후 김대중은 자신의 약한 지역적 지지기반을 보완하기 위해 민주당을 기반으로 영남에 많은 정치적 지분을 할애했다. 반면 노무현은 자신을 공천해 준 민주당의 법통을 끊고 열린우리당을 창딩해 영남의 지지를 받으려 했다. 김대중은 야당인 한나라당과 타협적이었을 망정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주는 차원의 대연정 같은 제안을 하지 않았다. 반면 노무현은 한나라당의 역사적 정당성을 공인하고 정권을 내주는 차원의 대연정을 제안하며 한나라당과의 ‘양대산맥’을 지향했다. ‘햇볕정책’ 때문에 김대중은 노무현에 반대하는 집회를 갖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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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욱 <아주 낯선 상식> 중에서
2016/04/16 14:43 2016/04/16 1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