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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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Sam"을 보면서 마음 한 편이 껄끄러웠다. 사실 당시에는 샘의 모습, 변호사의 변화, 딸의 말과 부녀간의 애절한 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감정이입에 충실 하느라 그냥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껄끄러웠던 감정들은 가벼운 분노의 마음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었다.

처음에 비치는 장면은 스타벅스 커피샵이다. 샘은 지능이 낮은 아버지로 등장하며 스타벅스에서 주문을 받거나 청소를 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 후반에는 피자헛으로 그 직장을 옮기게 되지만 이런 자연스러운 모습은 실제 프랜차이즈 안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나는 미국에서건 한국에서건 바쁘게 주문이 오고 가며 빠르게 움직이는 점원들을 유심히 보면서 매니저를 제외한 사람들 중에 샘과 같은 사람은 고사하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직원들을 거의 찾아보지 못했다. 게다가 샘은 복잡한 주문이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파들이 무서워서 근처 단골 식당이 아니면 식사를 하지 않으며 딸의 고집에 못 이겨 따라갔던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에서는 급기야 당혹스러움을 표현한다. 그런데 왜 그 곳보다 더 분주하고 주문도 복잡하게 받는 스타벅스와 피자헛은 편안한 직장으로, 따뜻한 분위기로 비춰질 수 있었을까.

한편,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가장 중요한 대사들 속에는 미국 팝음악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비틀즈 맴버들과 노래들 제목으로 가득 차 있다. 배경음악으로도 쓰이고 있는 비틀즈의 음악은 가장 핵심적인 대사 가운데에서도 맴버들의 사생활이라거나 비틀즈의 음악 세계를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코드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마지막의 감동적인 샘의 대사는 미국에서 영화의 고전으로 받아들이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의 대사를 외운 것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기위해 미국인이 선호하는 영화들까지 봐줘야 한다.

영화는 은근히 미국적인 것이 참으로 따뜻하고 안락하며 뭔가 의미 있는 코드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그 위에다 모자란 아버지와 영리한 딸이라는 안타까운 플롯을 얹은 셈이다. 제3세계에 속한 우리를 포함한 여러 나라의 황색 인종들은 스타벅스나 피자헛에서 안락함과 인간적인 면들을 발견해야 하고 비틀즈의 음악 세계에 빠져들어야 하고 그 맴버들의 이름은 물론 히트친 노래들과 가사들을 암기하고 맴버들의 관계들도 추가로 이해한 후에 뿌듯함을 느껴야만 한다. 결국 가장 미국적인 무엇을 알아야만 이 영화는 우리에게 휴머니즘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혹시, 이 영화의 주제는 "휴머니즘"이 아니라 "팍스 아메리카나"가 아니었을까..

2008/12/27 19:27 2008/12/27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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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70-80년대를 살면서 시대의 사건들을 크게 느끼지 못했을런지도 모른다. 여염집 며느리 마냥 장님 3년,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을 보내고 나니, 국민투표로 대통령도 뽑고 경제도 어느 정도 발전하여 거리에는 헐리우드 영화에서만 보던 프랜차이즈들이 즐비한데다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 분야와 영화, 미디어들, IT와 같은 첨단 기술들이 발전하면서 그것을 따라잡고 향유하는 데에도 정신과 시간, 물질을 투자하기 바빴을테니 말이다.

인문학 내지 사회학을 하는 사람들의 어설픈 흉내를 내지 않더라도 우리는 흔히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민감하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가까운 집에서 이혼을 했다거나 아이가 죽었다거나, 부모님의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이사를 갔던 일들에 대한 유년기의 기억들을 되내어 보면 소문만 무성했지 정작 그 사람들의 손을 맞잡거나 이사를 도와주거나 어려웠던 부분들을 함께 짊어지기 보단 쉽게 이야기하고 가볍게 넘기던 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시작은 어떤 의미에서 나를 심하게 짜증나게 만들었다. 3.15 부정선거에 주인공 성한모(송강호역)는 그 동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야산에 투표함을 묻거나 투표용지를 먹어버리는 일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믿는 이발사였다. 가까이 일하는 이발사 보조(문소리역)를 강간하여 동거를 시작하는 구도도 그러했다. 코믹한 설정이지만 내심 그게 그렇게 우습게 치부할 성질의 일들이냐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1960년 4월 19일에 있었던 부정선거 철회 집회의 스케치였다. 사사오입을 억지로 갖다 붙여 임신한 아이를 낳게 되는 당일에 군인들은 무고한 시민들에게 총질을 해댔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쳤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성낙안이라는 아이의 코믹한 출산의 배경으로만 지나치는 개그씬에 다름아닌 장면이었다. 머리가 어지러운 반면 영화를 보는 내내 조금씩 집중할 수 있었던 대목이 있었다면 그런 코믹한 장면들 뒤로 무덤덤하게 보도되는 왜곡된 라디오 뉴스 때문이었다. '사실은 이러했는데 사람들은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살고 있었다'는 느낌을 주는.. 너무나 담담한 보도였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영화가 <개그 콘서트> 분위기에서 <송환>의 분위기로 전환하는 대목은 성한모의 아들 성낙안이 전기고문을 받고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면서부터다. 사실 암울한 시대의 여러 사건들이 효자동에 사는 이발사에게는 별 생각없이 웃을 수 있는 일상이었지만, 옆집 사람들이 잡혀가게 되고 그들이 병신이 되어 돌아오거나 감옥으로 가게 될 때에는 그러한 거리감이 조금씩 좁혀지게 된다. 결국 자신의 아들이 돌아오지 않게 되자 영화는 코미디의 색을 잃는다. 잿빛 하늘처럼 어두워진 플롯은 결국 아들이 영원히 주저앉은 채로 일어서지 못하는 대목에서 객관성도.. 무덤덤함도 잃어버린채 울분의 정서가 폭발하고 만다. 일개 이발사에 불과한 성한모가 가위로 자신의 머리를 마구 자르며 길바닥에 주저앉아 나라를 욕하는 장면에서 이제 더이상 이 영화는 세상을 타자화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인간은 참으로 간사하다. 특정 지역의 사람들이 주검이 되고 병신이 되어 돌아온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은폐하기도 하고 흥미로워하기도 하고 대부분이 그렇듯이 무관심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 병신이 되거나 주검이 되어 돌아왔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이미 자신의 역사이며 자신의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탓이다. 영화는 무엇을 말해주려고 했을까. 이러한 인간들의 간사함과 그로인해 겪은 사회의 비참함을 피부로 느끼게 해 주려고 일부러 처음에는 바보처럼 웃어 재끼도록 설정을 한 건 아닐까. 아무 생각없이 웃고있던 많은 사람들이 종국에는 간사하고 이기적인 자신을 쳐다보며 느끼게 될 당혹감을 위해.. 미리 준비해 둔 괴롭고 아프지만, 귀하디 귀한 선물은 아니었을까..

2008/12/27 19:24 2008/12/27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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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반까지>

로이는 약간의 정신질환을 보이는 사기꾼이다. 사람들에게 사기를 쳐서 생계를 유지하는 그는 그런 자신이 불편하다.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의 정신적 문제가 자신과 헤어진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던 것에 대한 불편한 마음에 기인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아이의 행방을 찾는다. 정신과 의사의 도움으로 다시 만나게 된 딸 안젤라. 안젤라는 아버지 로이를 만나자 반가워하며 그의 공간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자신의 딸 안젤라를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로이의 정신 질환들은 호전을 보이며 딸과 있는 시간을 통해 큰 기쁨과 평안을 얻게 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자신을 닮아가는 딸을 보면서 다른 사람을 속이는 자신의 일을 정리하려 마음을 먹는다. 결국 그가 사기치는 일을 정리하려고 하지만, 정작 함께 일하던 가장 친한 친구가 그를 배신한다. 그 친구는 로이에게 가짜 정신과 의사를 붙여 주었으며 그가 자신의 딸이라고 믿던 안젤라도 사실은 그 친구가 로이를 속이기 위해 고용한 여자였다. 로이는 이미 전 재산이 있는 곳을 안젤라에게 알려주었고 모든 것을 알고 난 로이는 크게 놀란다.


<개입>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의 흐트러진 삶을, 혹은 잘못 선택된 삶을 그렇게 순순히 받아들이곤 한다. 기왕 망가진 인생, 어쩔 수 있겠냐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갑자기 그런 자신의 삶에 소중한 누군가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 인해, 자신은 쓰레기 더미에서 살더라도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내가 좀더 좋은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소중한 사람은 허상에 불과했다. 사실 자신과는 아무 상광이 없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더군다나 그가 쓰레기 더미에서 모아온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은 채로..


<영화의 후반>

로이는 크게 흥분했고, 무슨 일을 치를 것 같아 보였다. 거기에서 그의 모습을 사라진다. 1년 후... 그는 카페트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 곳에서 우연히 안젤라를 만난다. 그는 안젤라에게 별 다른 말 없이 그녀를 용서한다. 그 돈은 원래 너에게 주기로 한 것이었다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로이는 장을 본다. 간혹 거기에서 인사하던 여직원이 있었으나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로이는 열쇠로 문을 여는 대신 초인종을 누른다. 전에 매장에서 본 그 여직원이 그의 아내가 되어 있다. 그의 아이를 임신한 채.


<개입 II>

때때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 사람들은 변한다. 그 변하는 내용은 사람마다 각양각색이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으로 해결하는 일에 미숙하다. 사람의 본성이 원래 그렇다. 하지만 로이는 달랐다. 그는 안젤라와 있었던 시간을 통해서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를 깨달았다. 자신의 딸을 임신했던 여자를 떠날만큼 미숙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안젤라를 통해 자신의 과오를 깨달았다. 가정의 소중함, 삶의 평안함 같은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필요한 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잃은 돈과 자신을 속인 사람들에게 그대로 되갚아 주는 일 대신, 거짓이긴 했지만 자신이 경험한 소중한 기억들을 진실되게 누릴 수 있는 일을 선택했다. 행복을 누리는 일에 너무 늦은 시간이란 없다!

2008/12/27 19:23 2008/12/27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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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읽은 책이 많지 않아 다분히 주관적인 선택이지만, 한 번 모아 보았다.
연말 휴가 때 한 두권을 손에 들고 정리하는 것도 좋을 듯.^^


<myjay의 2008년 추천도서 10선>

1.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1,2 -박경철 (리더스북) / 2008년 10월  
   : 주식투자에 대한 근본적 성찰,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주식'의 관점으로
     파헤친 교과서적인 책.

2. 회심 -짐 월리스(IVP) / 2008년 10월  
   : 이것이 진정한 복음주의권의 바이블이다!

3. 나쁜 그리스도인-데이비드 키네먼.게이브 라이언 (살림) / 2008년 7월
   : 그리스도인에 대한 설문조사의 모든 것. 기독인이라면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

4.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하워드 진(추수밭)
   : 미국의 지성 하워드 진의 미국역사서.

5. 사람 - 김용택 (푸르메)
   :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사람들.

6. 르몽드 세계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휴머니스트) / 2008년 11월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선별한 세계의 문제들.

7. 우리는 모두 소중해요 -국제앰네스티 지음 (사파리) / 2008년 9월
   : 유명 동화작가들의 그림으로 엮은 세계인권선언.

8.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김용택 (창작과비평사) / 2008년 8월
   :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동시들. 그의 혜안이 부러울 정도.
 
9.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이택광 (아트북스) / 2008년 8월
   : 중세의 그림에 빠져들고 싶다면 이 책을 기억하라.

10. 기우뚱한 균형  -김진석 지음 (개마고원) / 2008년 7월
   : 김진석 교수의 긴 호흡의 기고글들. 균형 속에서 줄타기하는 그의 생각들.
2008/12/26 19:21 2008/12/2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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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복음주의자라면 이 책은 바이블이다!

소저너스라는 공동체와 잡지로 유명한 짐 월리스의 본서는 IVP 클래식 시리즈에 포함될만큼 깊이와 넓이를 두루 갖춘 책이다. 초판인 1981년을 개정하여 9/11테러와 관련된 내용이 추가되었고 냉전 체계가 해체됨에 따라 컨텍스트를 수정했다. 이 책은 서문에서 밝히듯이 신앙인의 두 부류를 자극하고 있다.

"복음주의자나 자유주의자 그 누구도 시대를 향한 회심의 의미를 바로 파악하지 못했다. 두 운동 모두 역사적으로 적실한 제자도에 대한 이해 없이 허둥댄다. 복음주의자들은 전도에는 강하지만 사회참여에는 약하고 또 자유주의자들은 그 반대라는 말을 주변에서 들을 수 있다. 만일 두 그룹이 각각 빵을 반쪽씩 가지고 있다면 해결책은 반쪽짜리 두 빵을 한데 합하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를 둘 다 실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풀로 붙여 하나를 만드는 식의 해결은 복음의 본질적 통일성을 타협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원래 메시지에 든든히 서 있는 그런 신앙이 더욱더 필요하다."

본서에서 짐 월리스는 그러한 신앙의 본질을 회심 사건에서 찾는다. 운동가로서는 구별되게 그의 행동의 근원에는 말씀에 탄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본서는 복음주의자들이 그렇게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양날개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신앙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함을 환기시킨다.

그는 회심을 역사적으로 구체적이며 성경 내러티브 가운데에서 찾을 것을 강조한다. 또한 그는 개인의 영적인 전환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라는 관점에서 회심을 정의할 것을 지적하며 개인의 소유욕과 행복에 영합한 현대 미국적인 기독교에 일침을 가한다. 또한 가난한 자들의 친구가 되지 못한 현대 복음주의자들을 비판하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정 수단이었던 희년 제도를 상기시키고, 성경은 많은 부분에서 가난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고 회심의 외적 척도로 그들을 향한 행동의 표출이 일어남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회심'을 통해 이뤄진 세상과는 구별된 사랑과 용서의 공동체로서의 기독교 공동체의 유일성에 대해 그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분량면에서는 많지 않은 그의 글은 충격적이리만큼 직설적이고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이미 많은 이들이 사회참여, 구제, 신앙의 열매, 행동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해왔다. 하지만 그는 평생 그 길을 걸어왔고 또한 지금도 그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그 걸음의 이면에는 '회심'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근본적인 신앙적 기초가 탄탄함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자주 말하는 '회심'의 진정한 의미를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복구시킨 귀중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이 복음주의자라면 이 책은 당신에게 바이블이 될 것이다. (끝)
2008/12/15 19:17 2008/12/1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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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람 포>는 빌리 엘리어트의 제이미 빌과 2007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독일예술영화조합상 수상, 2007 BAFTA 스코틀랜드 여우주연상 수상의 화려함 때문에 큰 기대감으로 본 영화다. 단적으로 말해서 빌리 엘리어트의 제이미 빌과 여주인공 소피아 마일즈의 연기가 돋보인 이 영화는 감독 데이빗 맥킨지의 명성을 한 단계 올려놓은 영화로 평가될 것 같다.

주인공 할람은 사랑하는 친 엄마의 죽음으로 사람들을 잘 대하지 못하고 멀리서 훔쳐보는 버릇을 가진 소년이다. 그는 엄마에 대한 아련한 기억과 상처, 그리고 엄마가 죽기 전부터 아빠는 새엄마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런 증오심은 새엄마에게 향하며 그녀가 자신의 친엄마를 죽였다는 심증을 키워간다. 한편으로 그는 아빠와 새엄마의 정사장면을 보면서 성에 대한 호기심도 키워가던 중 이를 감지한 새엄마와 관계를 갖고 자괴감에 빠져 집을 떠나 에든버러로 도망친다.

도시 한 가운데에서 엄마와 닮은 여성(케이티)을 쫓아가 그녀의 도움으로 호텔 식당에 취업한 그는 또다시 끊임없이 그녀를 숨어서 관찰하고 다가간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행각이 탄로난 할람에게 호기심과 모성애을 느끼는 케이티는 잠시 그에게 애정을 갖다가 이내 관계를 정리하려고 마음 먹는다. 할람은 다시 찾아온 새엄마의 독설에 화를 품고 그녀를 익사시키려 하지만 다시 그녀를 구해내고 달려온 아버지의 호소에 마음이 동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케이티와 헤어짐을 받아들이며 덤덤한 웃음으로 거리를 걸어가는 할람의 모습으로 장식된다. 그는 상처입은 소년의 위치에서 어느덧 성장을 경험한 것이다.

이 영화의 묘미는 지탄 받을만한 상황들에서조차 내면을 깊게 파고들어가서, 따뜻한 시선으로 인물들을 조명한다는 사실이다. 주인공과 정사를 나누는 새엄마조차도 악인으로 보이지 않는 캐릭터들의 설정은 과장되지 않지만 진실하다. 엄마를 닮았다는 이유로 매일 케이티를 미행하고 훔쳐보는 할람이나 유부남과 애인 관계를 갖다가 할람의 모든 행동을 알고도 그를 받아들이는 케이티도, 아내의 죽음을 방관했다는 이유로 그를 미워하고 반항하는 아들에게 끝까지 용서를 구하는 아버지까지. 다 악한 면과 나약한 면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공감이 가는 인물들이다. 또한 이 모든 인물들은 결국에는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들의 문제가 드라마틱하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들은 그대로 남지만 인물들 각각이 그러한 미결의 문제 또한 받아들이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주인공은 새엄마를 받아들이고 아버지를 용서하지만 자신이 일하던 호텔을 나오고 케이티와도 헤어진다. 케이티는 전 애인이었던 유부남과 헤어지고 할람을 선택하지만 할람이 아직 어리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와도 헤어진다. 상처들은 조금씩 치유되지만 모든 관계는 미결로 남아 있다.

하지만 주인공의 표정은 한결 밝아보인다. 아니 극도로 흥분하며 증오심에 휩싸이거나(이 경우 영화에서 주인공은 짐승의 가죽을 쓰고 얼굴에 색을 칠하는 행동으로 대변된다), 반대로 극도로 기뻐하며 방안을 휘젓고 다니던 모습으로부터 이제는 다소 안정되고 여유있는 웃음이 뭍어난다. 큰 산을 넘긴 했지만 문제가 해결되거나 해피엔딩의 결말이 아니기 때문에 더 영화에 마음이 가는 부분이 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이러한 열린 결말이 더 현실의 일상에서 진정한 의미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아닐까 싶다. (끝)

2008/11/19 19:16 2008/11/1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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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시를 쓰라고 하면 나는 대체로 반공적인 내용의 소재로 글을 쓰거나 흔히 말하는 '바른 소리'나 '착한 척'하는 시를 쓰거나 그것도 아니면 의성어, 의태어로 뒤범벅이 된 시를 쓰곤 했다. 사실 선생님들도 그런 시들을 좋아해서 주로 모범생 스타일의 동시들에 상을 주곤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시들은 대부분 아이들이 어른스럽게 흉내를 낸 모조적 시일 뿐,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의 정서를 전혀 대변하고 있지 못했다. 어린시절 일기장이나 시집들을 펼쳐보면 동심으로 대변되는 그 시절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지 못한 글들이 많아 못내 아쉽다.

서론이 길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쓴 동시들을, 마주이야기 교육연구소의 소장인 박문희 선생이 엮었고 어린이 문학, 글쓰기로 평생을 헌신한 이오덕 선생이 정리를 한 책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지은 시들에 그림도 더했다.

단적으로 말해 이 책은 훌륭하다. 내 어린 시절에 펼쳐보이지 못한 동심의 세계가 어른들의 잣대나 필터같은 것들에 걸러지지 않은 채로 잘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마음 속에 정리가 된다. 그렇지, 아이들은 아이들 답게 생각하고 표현하고 글쓰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동심을 회상하고 웃으며 자유롭게 과거를 돌아볼 수 있다.

아이들의 성글은 생각과 그림들을 어른의 잣대로 '순화'시키고 틀에 규정짓는 것은 동심에 대한 폭력이고 상상력에 대한 거세일 수 있다. 자신의 눈으로 아이들을 규정하고 과도하게 공부를 시키고 논술을 가르쳐서 훌륭한 어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오히려 꼭 읽어야 할 책이다.
2008/09/02 19:15 2008/09/0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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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피로연에서 들러리를 섰던 여자는 담배를 피울 곳을 찾고 있고 여자를 주의깊게 보던 남자는 '작업'성 말들을 건네기 시작한다. 약간은 냉소적으로 대꾸를 하는 여자는 대화 자체를 즐기는 듯 하다. 대화를 한창 하다가 결혼하는 신부가 남자의 여동생임이 밝혀지고 이어서 두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임이 드러난다. 남자와 여자는 오래 전에 이혼한 커플이었고 여자는 남자를 떠나 런던에서 심장전문의와 새 삶을 시작한 것이었다.

남자는 결혼식에 여자가 오리라는 기대감과 만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비춘다. 여자는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무심함으로 대화와 하루 밤을 보내고 유유히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사라진다. 런던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영화는 훌륭하다. 내내 두 개의 화면을 겹쳐보이게 하는 촬영 기법은 때로는 과거를 회상하는 데에, 때로는 남녀의 속내를 드러내는 데에 유효적절하게 사용되며 두 배우의 불안해보이는 대화와 표정 연기도 거의 절정 수준이다. (사실 이 영화는 팀 버튼의 아내인 헬레나 본햄 카터 때문에 본 것이다.)

하지만, 결말이 정작 아쉬운 부분이다. 여자는 흔들리던 마음과는 달리 정신 없이 택시에 몸을 싣고 공항으로 간다. 처음부터 여자는 하루 밤을 전 남편과 보낼 생각 외에 다른 '기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헤어짐과 혼자 런던에서 씩씩하게 살았을 그녀의 배경에 대한 어떠한 조명도 없이 남자-전남편의 작업에 흔쾌히 동행했다가 몇 시간 만에 마음을 정리하고 어떤 여운도 없이 돌아가는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 볼 여유조차 영화는 허락하질 않는 것이 아쉽다.

감정의 변화를 행동으로 예측하기 어려워서, 보는 관객들조차 안타깝고 답답하게 만드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아오이'나, 9년 만의 만남에서의 심리적인 묘사를 대화로 훌륭하게 풀어낸 [비 포 선셋]의 '셀린느'처럼, 영화 속 여자 주인공도 보여주고 싶은 내면의 갈등이 있지 않았을까. 갑자기 올라오는 엔딩 크레딧에 당혹스럽다.

2008/05/15 19:06 2008/05/15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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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가십을 싫어한다. 가십보다는 냉소적이고 비꼬는 식의 말들을 더 싫어하며,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화를 내고 쌍욕을 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글의 시작부터가 좀 추상적이었다. 영화 <비스티 보이즈>는 보고난 후 내도록 기분이 안 좋았다. 승우가 끝내 지원을 칼로 찌르고 재현이 일본으로 떴기 때문이었을까. 이미 좋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기대'는 있었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회식을 잘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빨 사이에 낀 음식 때문에 계속 혀를 감아가며 신경쓰는 것처럼 이 영화가 내겐 좀 불편했다. 왜였을까, 왜였을까..

난 영화평을 전문적으로 하진 않지만,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 중 하나로서 영화관이 하나 있다. 그것은 감독이 배역들을 향한 시선이다. 그 배역 하나하나를 깊이 이해하고 파고들어서 그 배역의 내면, 심리, 그리고 행동의 이유들을 파헤쳐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탈 사이트에 아버지를 죽인 아들 기사가 뜨면 한 줄만 읽고도 세상 말세라고 혀를 차는 대부분의 사람들 속에서 그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고 그 아들은 왜 자신의 아버지의 숨통을 끊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주의깊게 살펴보는 사람은 드물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대가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비스티 보이즈>는 호스트들의 이야기다. 문제는 감독이 호스트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고 싶었다면, '호스트의 생활은 이렇더라'는 호기심 이상의 '개입'이 전제되어야 한다. 영화에서 승우는 집안이 망해서 호스트를 시작한 것으로 설정되었고 재현은 자신과 동거하는 승우의 누나 한별을 떠나려는 야비한 남자로 비춰진다. 그가 진 5000만원의 빚은 노름으로 날린 듯이 보인다. 지원은 폭력을 쓰는 남자를 싫어하며 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미워하는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연유로 자신에게 폭력을 쓴 재현을 떠난다. 재현은 지원이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을 의심하다가 지원에게 집착하게되고 결국 그녀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만다. 영화에서 간혹 등장하는 호스티스는 호스트바에서 스트레스를 풀며 호스트들은 자기가 만나는 여자들의 등처먹을 생각만 하는 듯이 보인다.

이런 파편적인 장면들이 툭툭 던져지는 <비스티 보이즈>는 결국 내게 일종의 불쾌한 감정을 가져다 주었다. 이 영화는 마치 내게 회식 자리에서 "호스트바에 일하는 애들이 이렇게 산대. 골 때리지 않냐?'라고 가십을 한껏 쏟아내는 친하지 않은 회사 동료를 보는 느낌이었다. 영화는 그 어느 배역도 그 어느 상황도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끊임없이 거짓말을 둘러대는 재현에게 혀를 끌끌 차게 되며, 승우와 지원의 다툼은 길거리에서 큰소리로 싸우는 커플을 팔짱끼고 구경하는 행인들처럼 관객들 눈쌀을 지푸리게 만든다. 지원은 거짓말을 했다는 듯이 2차를 나가는 업소에서 일하면서도 별 감정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난 영화가 끝난 지금도 한 없이 궁금하다. 왜 재현은 자신의 빚을 갚아주려는 한별을 결국 떠나 일본으로 갔을까. 승우는 왜 결국에는 지원을 칼로 찌르게 되었을까.
지원은 승우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한별은 왜 재현에게 집착했을까. 호스트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여운을 두기 위해 감독은 CF나 뮤직비디오의 영상들처럼 그냥 한 장면 한 장면씩을 보여준 걸까.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전작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보여준 감독의 날카로움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는 <비스티 보이즈>의 하정우보다는 10년전 <태양은 없다>의 이정재가 더 그립다.(끝)

2008/05/08 19:04 2008/05/08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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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진보지식인 하워드 진이 25년 전에 쓴 <미국 민중사,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의 개정판이자 젊은 세대를 위해 새롭게 수정한 것이다. 하워드 진은 노엄 촘스키와 함께 미국의 살아있는 진보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본서에서는 미국 역사의 어두운 면, 즉 원주민 학살, 노예제도와 노사문제, 여성 인권 등에서부터 최근 이라크 전쟁까지의 '불편한 진실'들을 가감없이 서술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콜럼버스와 링컨 등과 같은 영웅들의 실제 상황들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를 허락한다.

나는 미국인 대다수가 하워드 진을 불편해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국민들은 대체로 성실하고 선하며 정치에 둔감하다. 근면하고 보수적인 시민일수록 공화당을 옹호하며 악행을 저질렀다 해도 대통령을 비꼬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을 싫어한다. 이 책을 내면서도 하워드 진은 많은 부정적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도 책의 서문에 언급했다. 그 내용을 소개함으로 책 소개를 대신할까 한다.

"지난 수십 년간 나는 이런 질문을 받아왔다. "당신은 다른 보편적인 미국 역사와는 극단적으로 다른, 당신의 역사 서술이 젊은 세대에게 적합하다고 보십니까? 그들이 현 사회에 대해서 환멸감을 품게 되진 않을까요? (중략) 노예제도와 인종차별, 인디언 학살, 노동자에 대한 착취, 인디언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미국의 무자비한 팽창정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비애국적이지 않습니까?" 나는 어째서 사람들이 어른들은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견해를 들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반면 젊은이와 아이들은 그런 걸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젊은 독자들이 조국의 정책에 대해 정직하게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않다고 여기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본다. 그렇다 문제는 정직함이다. 우리는 한 개인으로서 우리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 정직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 조국의 정책에 대해 평가하는 것도 그와 같아야 한다." (본서, 11-12쪽)
2008/05/08 19:03 2008/05/08 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