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슈퍼, SSM으로 바뀌다!
작년부터 시작된 SSM, 즉 기업형 슈퍼마켓(Super Supermarket)이 동네의 영세 상인들 사이에 지속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우리 동네에도 말로만 듣던 기습 개점이 몇 개월 전에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기습 개점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대기업 로고가 들어간 매장의 모습을 드러낸 지 불과 며칠 사이에 공사는 완료되었다. 그 맞은편에는 할머니 한 분이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다.
슈퍼 마켓이 개점하는 날, 그 앞에는 대학교에서나 보던 빨간 글씨로 쓴 '지역 장사를 죽이는 대기업은 물러가라'는 플래카드가 걸렸고 동네 사람 몇 명이 팔짱을 낀 채 그곳을 지켜보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다수의 동네 사람들이 대기업의 슈퍼마켓을 찾았다. 처음에는 동네 할머니의 구멍가게를 지나서 슈퍼마켓을 가야 하는 그 길을 지날 때 사람들은 머리를 숙이거나 걸음을 빨리 걷곤 했지만 곧 그런 사람들도 없어졌다. 일주일이 지나서 구멍가게는 문을 닫았다.
사실 동네 사람들이 할머니의 구멍가게를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그 가게에는 먼지 낀 과자들과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식품들이 많았고 불량 식품 과자들이 항상 진열되어 있었으며 할머니가 앉아 있던 평상에는 색소가 짙은 '슬러시'가 돌아가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색소로 가득한 음료를 먹고는 입 주변이 보라색으로 변해서 돌아다니곤 했다. 결국 할머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그 불량 식품 가득한 구멍가게를 살리지는 못했다. 그리고 매일 거대한 유통망으로 새 물건이 들어오고 늦은 저녁에는 할인까지 해 주는 슈퍼마켓을 동네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용하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이렇게 SSM 업계 1위인 대기업은 동네의 후줄근한 가게들을 공략하고 있다. 그들은 기습 출점이라는 공격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여 작년 3분기 매출 3,000억, 영업이익 70억을 보이는 등 작년 대비 36.6%의 영업이익을 냈고 아마도 새해엔 이익률이 더 높아질 것 같다.
'이마트 피자' 논쟁
다 행히 최근 기업형슈퍼마켓(SSM) 규제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SSM 기습 개점엔 제동이 걸리겠지만 그간에도 영세 상인들은 많은 피해를 보았다. 또한 이러한 피해 이면에는 그간 영세 상인들의 취약한 부분들, 이를테면 친절한 서비스, 원활한 유통망, 반품의 용이성, 늦은 시각까지 매장 운영 등에 변별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하반기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마트 피자 문제로 불거진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 나우콤 문용식 대표 사이에 트위터 논쟁도 사실상 이러한 대기업 마케팅의 문제를 좀 더 고민하게 만들었다. 특히 정 부회장의 "본인은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시나요?"라는 질문은 트위터 안에서도 수많은 네티즌들이 RT(리트윗)를 하면서 그에 대한 의견들을 쏟아 내게 만들기도 했다.
게다가 '시골의사'로 널리 알려진 박경철이 제기한 이마트 피자의 문제점은 대기업의 영세 상권 침범 문제를 보다 깊숙이 짚어 주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이면에 있습니다. 신세계 이마트에 피자를 독점 공급하고 내부 입점해서 빵을 판매하는 조선호텔베이커리는 원래 신세계 관계사인 조선호텔의 소속이었으나 조선호텔에서 분사를 해서 별개의 회사로 독립을 했고 그 과정에서 정용진 부회장의 동생인 정유경씨가 45%의 지분을 가진 개인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 개인 회사가 이마트에 독점적으로 베이커리 사업을 하면서 베이커리 매출액이 조선호텔의 매출액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첫째는 조선호텔이 수익을 크게 낼 수 있는 사업을 사주 가족에게 분할해 준 사적 이익 편취의 사례일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마트 역시 사주의 특수 관계인이 운영하는 회사에게 독점적으로 사업권을 줌으로써 경쟁 납품의 기회를 포기했기 때문에 조선호텔과 신세계 양사의 이익이 주식회사 주주의 이익을 대주주 가족에게 양도한 것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 삼성이나 현대 등 재벌 기업들이 자녀들의 불법적 자산 증여와 자산 증식을 위해서 사용해 온 전형적 수단들이기도 합니다. 재벌가의 윤리의식을 보여 주는 모습이기도 한데 앞으로는 상생을 외치고 뒤로는 이런 모습을 보이면서 이념적 소비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 한국 부자들의 모습에서 상생과 공정이 공허한 화두로 들린다면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
솔 직히 나는 SSM과 이마트 피자 문제를 바라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진보적인 이들은 대기업의 기습 출점이나 재벌가들의 독점적 사업권 문제 등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을 거시적 형태로 비판했다. 하지만 퇴근길에 SSM을 가 보면 그 늦은 시간에 그곳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이들로 붐비기 일쑤였고, 주말에 마트를 가면 이미 '그 유명한 피자'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사실 나도 이 글을 쓰기 위해 피자를 한 판 사 먹어 봤다. 동네 피자를 주문하면 가격은 비교적 저렴했지만 재료들이 부실하거나 신선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결국엔 돈을 더 주고서라도 다시 브랜드 피자를 시켜 먹곤 했는데 마트에서 산 피자는 더 저렴한 가격에 훨씬 재료도 좋았고 맛도 있었다.
나는 마트에서 피자를 사는 이들과 SSM에서 장을 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대기업을 선호하고 신세계 정 부회장의 생각에 동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느끼기에 대다수의 30~40대 직장인들은 은연중에도 대기업이나 재벌에 비판적이고 그 누구보다 그들의 윤리의식이나 부정행위에 냉정하다. 하지만 나는 그 다수의 사람들이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고 이마트 피자를 사 먹고 동네 SSM을 이용한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의 일상이 너무 피곤한 반면, 대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너무나도 편하기 때문이다. 결국 머릿속의 문제의식과 손과 발이 머무는 공간 사이의 괴리감이 발생한다.
일 례로 나는 한때 마트가 24시간 운영된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고 편하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늦은 시간까지 회사에 묶여 있는 입장에서 밤 12시가 넘어서도 장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모른다. 선진국은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간지에서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문제를 다룬 기사를 읽었다. 그들의 부당한 근로 조건과 불규칙한 근무 시간들이 얼마나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조명했고 나는 그 기사를 읽은 후에야 마트에서 내 편의를 위해 새벽까지 근무해야 하는 직원들의 피곤한 얼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대형 마트 이용을 끊기로 결심했다. 동네에서 장을 보고 영세 상인들의 가게들의 물건을 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처음 몇 달은 비교적 괜찮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몇 달을 가지 않고 결국 다시 소비 습관이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동네 상인들의 시간에 내가 맞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네에 장이 서기도 하는데 그런 날은 주중이고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많은 물건을 사는 일을 자주 힘들어했다.
반면에 SSM은 물건 하나를 사도 집까지 배달해 주었고 대형 마트의 물건은 매일매일 신선한 채소와 과일이 들어오는 반면 동네 가게는 묵은 물건들을 며칠씩 되팔았다. 게다가 내가 자주 가는 동네 가게는 아줌마가 물건을 팔 때와 아저씨가 물건을 팔 때 가격이 달랐다. 주인아저씨는 자주 적은 양의 채소를 살 때 나에게 바가지요금을 받곤 했고 나는 매번 가격 흥정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물론 지금은 전적으로 대형 마트에 의존하지는 않지만 그 소비 행태 자체를 끊지 못했다. 사실 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소비자, 과연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을까
영세 상인을 보호하는 문제는 사실 구조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부분이다. 대기업으로부터 그들의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사회 구조적, 법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허나 미시적으로 볼 때 우리는 어떤가. 정말로 우리는 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일상의 변화를 꿈꾸고 있는가. 혹, 비판 의식을 가지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고 디테일한 일상의 불합리함은 눈감고자 하는 건 아닐까. 나만 의지력이 약한 사이비 진보주의자인 걸까. 나는 이런 일련의 일들을 계기로 SSM을 비판하고 이마트의 독점 행위를 문제 삼는다면, 일상적 소비생활에 있어서 상당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깨달았다.
지인에게 이런 얘길 했더니 그분도 결연한 마음으로 대기업 가전제품 대신 중소기업의 물건을 샀다가 몇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대기업 물건을 사게 되더라는 비슷한 얘길 했다. A/S가 너무 다르더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중소기업 물건은 수리 절차도 복잡하고 기간도 오래 걸린 데다가 고치고 나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대기업은 문제의 물건을 아예 새 제품으로 바꿔 줬다고 했다. 이런 서비스 앞에서 중소기업이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 동네 구멍가게에서 개봉한 물건, 며칠 써 보고 문제가 있다고 우기는 물건을 바꿔 줄 수 있을까. 대기업은 해 줬다. 그것도 지나치게 친절하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런 환상적인 대기업 서비스의 이면에는 누군가 손해 보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반품된 제품은 OEM에 납품했던 하청업체의 손실이 되고 더 낮은 가격에 더 양질의 물건을 납품하기 위해 많은 생산자와 도매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불합리한 거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이런 불합리, 부조리는 고스란히 그 하청업체의 직원들의 낮은 복지와 수당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그런 이면의 부조리는 잘 감추어 둔 채 대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완벽한 고객 감동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문제는 대기업을 대놓고 비판하는 많은 진보적 소비자들이 이런 서비스에 길들여져 정작 소비 자체는 자신들의 '이념적'으로 하지 않는 묘한 기현상이 발생한다. 과연 우리 소비자들은 이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을까. 다수가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많은 대기업 슈퍼마켓과 피자와 치킨들이 주변을 채워 갈 것이다. 나는 요즘 점점 더 사람들이 이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그 진의를 의심하게 된다. 여전히 인터넷에는 많은 이들이 멋지고 탁월한 언변으로 글을 쓰고 트위터에서 지저귀지만 SSM은 늦은 밤까지 성황을 이루고 이마트 피자, 통큰 피자는 더 잘 팔린다. 대기업이 이런 '이념적 소비자'를 과연 두려워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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