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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소고(3): 변화와 반론(2)


이원론 vs. 혼합주의
지난 글에서는 기독교 세계관의 모더니즘적인 요소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반론들을 살펴 보았다. 이번 연재에서는 기독교 세계관이 기독교적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유일한 세계관이 아니며, 그간에 통용되어온 기독교 세계관이 개혁주의적인 입장에서 쓰여진 하나의 견해에 불과하므로 구체적으로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이라 불러야 한다는 비판에 대해 다루려고 한다. 이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우선은 ‘이원론’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송인규는 자신의 책 <죄많은 이세상으로 충분한가>에서 ‘이원론적 행습의 탈피’를 세계관의 핵심 문제로 내세웠고 이후 <복음과상황>에 연재한 글들을 모은 저서 <평신도 신학>에서 보다 심도 있게 다루었다. 이원론 문제는 첫 연재에서 다룬 바 있으나 주의 환기를 위해 다시 조금만 인용한다. (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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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인규는 <평신도 신학>에서 ‘세상1’(구조)을 ‘세상2’(방향, 즉 세속화)처럼 여겨서 ‘세상1’과 접촉하며 살아가는 그 자체를 혼합주의로 치부하고 정죄하고 멀리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러한 잘못된 이원론적 구도는 영혼과 육체, 교회와 세상, 예배와 활동, 성경과 학문, 복음전도와 사회참여 등 세상 속의 많은 영역에서 본질적으로 동등한 층위의 개념들을 성속 개념으로 대체하게 만들었고 이른바 이런 ‘이원론적 행습’의 탈피는 80-90년대 로잔언약과 더불어 기독교 세계관의 지배적인 주제가 되어 왔다.” (김용주,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소고”)

이에 대해 김기현은 자신의 연재 글을 통해 이원론 자체를 현실과 동떨어진 개념으로 치부하여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송인규의 세상과 세속화 구분에 대해 “한국교회의 문제는 ‘세상1’과 ‘세상2’를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2’가 교회 안에 침투해서 사실상 장악 당한 것이 문제”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세상과 교회의 이원론적 구분보다는 교회의 세속화에 더 주목하기를 바라고 있다. 아니, 사실상 그는 교회와 세상 사이의 이원론 존재 자체를 부인한다.

“그는 <평신도 신학>에서 수미일관되게 성속 이원론이 세상과의 격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한다.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분리도 세상과의 관계 맺는 하나의 존립 양식이고, 초대교회가 보여주었듯이 분리도 변혁적 형식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세상과 절대 고립된 공동체는 추상으로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절연되는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기현, “다시 쓰는 기독교 세계관”)

따라서 그는 이원론이 아니라 실제 교회의 문제인 세속화 즉, ‘혼합주의’를 기독교 세계관의 전면에 세울 것을 제안한다. 나중에 살펴 보겠지만 이원론에서 혼합주의로의 전환은 결국 개혁 모델에서 대립 모델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최근에 있었던 <아볼로 포럼>에서 송인규의 발제에 대해 김기현은 아래와 같이 논평했다.

"저는 기독교 세계관의 패착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성서와 우리 현실은 이원론을 별반 문제로 여기지 않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란 것 자체가 허구입니다.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기는 것이 늘 문제였지요. 언제 한국교회와 신자들이 세상과 동떨어진 채 살았나요. 지나치게 세상적으로 살았지요. 예배와 생활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예배도 황금송아지를 숭배했지요. 성경적으로 예배했는데, 삶에서 그대로 못 살아낸 것이 아니라 예배 자체가, 신앙 자체가 세속적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점을 ‘혼합주의’라 명명했습니다. 교회사에서 ‘콘스탄틴주의’라는 말을, 현대신학에서 ‘세속주의’라는 말을 문화 인류학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바꾼 것이지요.” (김기현, “다시 써야 할 기독교, 세계, 관”)


하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송인규가 자신의 책 <평신도 신학>에서 이미 이원론과 세속화 문제를 통합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는 세상-세속-교회 모델(이렇게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을 아래와 같이 세분한 후에 각각의 경우를 아래와 같이 나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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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교회의 영역에 속한 사항이나 활동. 비세속적, 영적인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
② 교회의 영역에 속한 사항이나 활동. 세속적인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
③ 세상의 영역에 속한 사항이나 활동. 세속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
④ 세상의 영역에 속한 사항이나 활동. 비세속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그는 ②영역, ‘교회영역의 세속화’를 소주제로 다루면서 “특히 신앙에 열심 있는 이들과 지도자들 편에서 깊이 생각하고 또 일종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고 “보통 교회나 영적인 것에 연관된 활동이나 항목은 그 자체로서 바람직하다고 그릇되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우려했으며 나아가 “영적인 일도 얼마든지 정욕과 자랑 같은 세속적인 가치관에 찌들 수 있다는 경각심이 둔화”될 수 있음을 경계하였다. 결국 송인규의 세상-세속-교회 모델은 김기현의 비판에 대한 자체 방어가 가능한 셈이다. 실제로 그는 <아볼로 포럼>에서 김기현이 지적한 논평에 대해서 “한국 교회에 있어 이원론은 없고 혼합주의만 존재한다라는 식의 진단은 사실을 부인하는 일”이며 “이원론과 혼합주의의 문제는 양자택일이 아니고 양자병존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부연설명 한 바 있다.


개혁모델이냐 대립모델이냐
그렇다면 왜 김기현은 교회와 세상 사이의 이원론적 사고를 부정하는 것일까. 그는 이원론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판단하기에는 그 진단이 이원론이냐 혼합주의냐에 따라 세계관의 방향성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만일 교회의 주된 문제가 잘못된 이원론적 행습의 탈피라면 세상에 침투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이른바 개혁주의적인 ‘변혁 모델’이 그 대안이 될 것이지만, 혼합주의가 교회의 고질적이며 현실적인 문제라면 결국 그 해결책은 변혁 모델이 아니라 교회의 세속화에 강하게 저항하는 ‘대립 모델’(리차드 니버의 구분을 따른다면)이 그 대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니버가 비교적 우월하게 평가한 변혁(개혁) 모델에 대한 비판은 김기현의 지적대로 존 하워드 요더나 스탠리 하우어워스와 같은 신학자에 의해 제기되어 왔다. 하우어워스는 변혁 모델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요더의 유형론을 토대로 고백 교회의 우월성을 주장해왔다.

“니버가 특정 유형의 교회론을 선호하며 그것은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눈치채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 행위의 통일성을 내세워 그리스도인들에게 ‘문화’와 정치를 인정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콘스탄틴주의의 사회전략을 승인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니버가 제시한 유형론보다 더 도움이 되는 것이 존 하워드 요더의 유형론이다. 요더는 행동주의 교회, 회심주의 교회, 고백 교회로 구분한다. 고백교회는 위에서 언급한 두 견해를 종합한 것이 아니며 그 중간쯤에 있는 유용한 이론도 아니다. 차라리 별개의 급진적인 대안이다. 고백교회는 회심주의자들의 개인주의와 행동주의자들의 세속주의를 거부하며 또 양쪽이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동일시했던 태도도 거부한다. 고백교회는 자신의 주된 정치적 사명이 개인의 정신을 바꾸거나 사회를 변혁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회중으로 하여금 만물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예배하도록 결단케 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스탠리 하우어워스, <세상에 나그네 된 백성>)

니버의 대립 모델을 ‘고백 교회’라고 부르건 ‘대조 모델’이라고 부르건 간에 이러한 세계관 모델의 차이를 가져다 주는 근본 원인은, 내가 판단하기에는 무엇보다 신학적인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며 이러한 차이가 결국 김기현이 이원론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로도 환원되는 것 같다. <아볼로 포럼>을 다녀온 정정훈은 이와 관련하여 비교적 설득력 있는 글을 복음주의 싸이클럽에서 쓴 바 있다.

“기독교 세계관의 다양성은 결국 모든 기독교 세계관의 상대성(상대주의가 아니다)을 인지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다양성이 어떤 층위의 다양성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가설적이지만 나는 그 다양성의 층위는 결국은 신학적 층위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차이는 신학적 입장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들의 세계관을 규정하는 것은 사실상 신학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전이론적 차원이 절대 아니다. 신학이라는 이론적 층위가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전이론적' 차원을 오히려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관이 신학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이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으며, 결국 문제는 세계관이 아니라 신학이다. 이는 조금더 과감하게 말한다면, 사실상 세계관이란 신학의 외피에 불과한 것이며, 세계관을 배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신학을 배우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복음주의 싸이클럽 “아볼로 포럼을 다녀와서”, 정정훈)

과거 한국의 복음주의는 대체로 칼빈주의(개혁주의) 계열에 속해왔으나 최근에는 이러한 전통적 개혁주의자가 아닌 다른 교파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는데, 그 중 최근 복음주의권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존 하워드 요더는-변혁 모델에 비판적인 김기현과 하우어워스가 자주 인용하는- 메노나이트 계열(재세례파 중 최대 교파)의 대표적인 신학자이다. 따라서 존 요더가 가진 ‘고백 교회’라는 유형에 대해 이해하려면 메노나이트와 칼빈주의에 대한 약간의 추가적인 비교가 필요할 듯 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교파간의 차이를 비교적 간략하게 설명한 남병두의 저서 <기독교의 교파>를 주로 인용할까 한다. 먼저 칼빈주의에 대한 남병두의 설명을 인용해보자. 

 “칼빈은 제네바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면서 개혁 작업을 성공적으로 실현시켰으며 제네바는 개혁의 한 모델을 보여주었다. 제네바의 종교개혁은 신정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처음부터 교회와 시의회가 밀접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루어져갔다.
교 인의 삶에 정부의 적극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본 칼빈은… 정부가 교회의 외형적 치리에 있어서는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제네바 모델은 각 나라의 개혁자들에 의하여 모방되었고 곧 유럽의 곳곳에서 개혁교회들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 프랑스의 위그노파, 네덜란드의 개혁교회, 영국의 청교도, 그리고 이후 신대륙에 세워진 회중교회 등이다.” (남병두, <기독교의 교파>)

따라서 칼빈의 영향 아래에 있는 개혁주의는 처음부터 세상을 협력 내지는 적극적 참여와 개혁의 대상으로 여겨왔고 그에 대한 일련의 성과를 이루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권력과 조화 자체가 문제임을 인식했던 또 다른 종교개혁자들도 존재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남병두는 이러한 또 다른 종교개혁자들의 연장선 상에서 재침례파(재세례파, 아나뱁티스트)가 생겨났음을 설명한다.

“또 하나의 종교개혁은 주류 종교개혁자들의 교리적-신학적 문제제기에 동의하면서도 교회 타락의 근본적인 원인이 교회와 국가의 합일, 즉 교회와 사회의 구별이 없는 국가교회에 있다고 주장한 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들은 기존 교회는 기초부터 잘못 세워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각 개개인의 신앙고백을 근거로 교회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했으며 의도적 분리를 시도하였다. 복음적 재침례교가 여기에 속한다… 당시 기독교 유럽에서 세속 군주들과 함께 그들의 영역 안에서 정치적 진행상황과 직간접으로 연관을 가지며 진행되었던 종교개혁의 상황에서 세속군주들의 도움을 거부하고 제도 교회의 틀을 깨고 나온 '재침례운동'이 주류에 들어가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들은 당대에는 적들에 의하여 조롱의 의미로 '아나뱁티스트'라고 불리곤 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신자의 침례를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회가 신약성서에 나타난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개혁'이라는 말보다는 '회복' 혹은 '복귀'라는 말을 더 선호하였다… 그들은 교회 타락의 근본적인 원인을 윤리적 타락이나 신학적 타락에서 찾기보다는 교회의 정체성 상실에서 찾았다. 교회의 정체성 상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집권하였던 4세기 초부터 시작된 국가와 교회의 합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남병두, 같은 책)

따라서 평신도들의 입장에서는 재침례파와 개혁파의 역사적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로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논쟁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다. 변혁이냐 대립이냐를 두고 경쟁하는 기독교 세계관은 사실상 신학의 문제이자 종교개혁 이후 교회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큰 ‘습속’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변혁 모델을 부정하고 대립 모델을 내세우는 김기현이나 요더의 기독교 세계관은 재침례파의 전제 즉, 기독교의 문제가 교회와 국가의 ‘혼합주의’라고 여기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한 요더의 사상 근간에 흐르는 기독교 평화주의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재세례파의 신학적 입장이다.

“재침례교 운동의 신학적 특징은 무엇보다도 교회론에 있다. 국가교회를 배격하고 신자의 교회를 추구하면서 신약성서의 원시기독교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염원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그들은 정교분리와 완전한 종교자유를 주장하였다. 국가는 오직 시민들의 질서와 공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며 교회의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되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그들의 사상은 평화주의였다. 그들은 산상수훈에 근거하여 기독교인은 어떤 경우에도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재침례교의 평화주의 사상은 현재 정당전쟁 이론의 뚜렷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남병두, 같은 책)


아나뱁티스트(재세례파), 문제 있나?
리차드 니버는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분명 변혁 모델을 우위에 두었음이 분명하지만 그는 변혁 모델만을 지지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게 읽었다면 양희송의 지적대로 니버의 책을 오독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반대로 (김기현의 지적처럼) 마치 세계관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전제하고는 개혁 모델 자체를 현실성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도 나는 문제라고 본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으나 이 둘은 충분히 양립 가능한 모델들이다. (그러한 이유로 두 교파도 양립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개혁파 입장에서 보는 재세례파는 어떠한가. 대학 시절 나는 재세례파(아나뱁티스트)하면 왠지 모르게 이단 같은 느낌을 자주 받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알게 모르게 재세례파에 대한 개혁주의 내의 비판이 간간이 있었던 것 같다. 이후에는 이러한 편견이 많이 해소되었지만 몇 년 전 신국원의 책을 읽다가 비슷한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잘못된 천국관의 대표적인 예는 제세례파에게서 찾을 수 있다. 제세례파의 천국관은 처음에는 혁명적이었다. 이미 임한 나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매우 극단적인 사거은 1534년 독일 서북부에서 일어났다. 일단의 재세례파가 뮌스터를 함락한 후 그 곳을 새 예루살렘으로 명명하고 신정을 펼쳤다. 그러나 천국을 이루려는 과격한 개혁으로 도시는 곧 혼란에 빠져들었다. 예를 들면, 미혼여성을 모두 결혼시키다보니 남성이 모자라 일부다처제를 도입한 것이다. 이런 소식에 분노한 신구교 연합군의 공격에 1년여 만에 도시가 함락되고 지도자들은 생포되었다… 어쨌든 이런 사건 이후 제새례파는 급진주의를 버리고 정반대로 은둔과 내세적 신앙으로 돌아섰다… 어느 쪽이든 극단적인 것은 통하는 데가 있게 마련이다.” (신국원, <니고데모의 안경>)

물론 신국원은 세계관 논의를 하면서 그릇된 천국관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를 설명하려는 의도였겠지만 그는 은연 중에 재세례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져다 주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재세례파는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교파이며 특히 천국관에 있어서 문제를 일으키고 이제는 반대 극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복음과상황>에 아나뱁티스트 관련 글을 기고했던 김창규는 이러한 아나뱁티스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오해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재세례파에 대한 이런 평가는 몇 가지 이유에서 부당하다… 뮌스터사건이 재세례파를 대표하거나 정의하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뮌스터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단지 여러 분파의 재세례파들 중에 일부였고, 실제적으로 재세례파의 큰 줄기인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스위스 형제단(Swiss Brethren), 모라비아의 재산공동체인 후터파(Hutterite), 북부 독일과 화란의 메노나이트(Mennonite) 등의 그룹과는 극히 대조되는 신학과 삶을 보여준다. 뮌스터 사건을 재세례파의 전형적인 또는 대표적인 사례로 보게 되면 하나의 잘못된 부분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김창규, 복음과상황 170호<종교개혁의 잊혀진 전통, 아나뱁티스트>)

실천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마지막 연재를 통해 좀더 이야기할 생각이지만, 아나뱁티스트에 대해서는 한국 교회에서 있었던 굵직한 사건 하나를 다시 언급하고 싶다. 내 기억으로는 2003년 이라크 전쟁 중에 우리 나라에서도 ‘인간 방패’로 반전평화팀을 파송했을 때 복음주의권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아나뱁티스트’라는 이름이 거론되었다. 아나뱁티스트가 복음주의권에 회자된 이유는 복음주의권에서 파송하지 않은 반전평화팀을 아나뱁티스트는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상황을 주재일 기자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유은하 씨는 편지 한 장만 들고 알지도 못했던 아나뱁티스트 센터를 찾아갔다. 그리고 이라크로 보내달라고 애원했다. "여기 아니면 아무도 나를 이라크로 보내주지 않을 거예요. 나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없나요."... 이재영 간사는 아나뱁티스트 관계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평화운동가로서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 찾아왔다. 그러나 평화운동에 대한 신념은 분명하다. 우리가 파송하지 않아도 그는 이라크에 갈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모든 이들이 '파송하자'고 회신을 보냈다. 캐나다 아나뱁티스트 교회들도 유은하 씨를 위해 기도하며 모금활동을 펼쳤다. 유은하 씨는 든든한 기도의 동역자들을 만나 이라크로 향했다... 전쟁이 끝나 생사의 문제가 부담이 안 되는 지금에야 비로소 다들 유은하 씨와의 관계를 들춰내고 있다. 유은하 씨는 분명 몸은 '복음주의 진영'에 있었지만 파송은 평화주의 교회로부터 받았다.” (주재일, 뉴스앤조이 “유은하가 전쟁터로 떠난 이유는?”)

당시 나는 처음 이 기사를 접했을 때 마음이 착잡했었다. 사회 참여를 그렇게도 부르짖었던 친정과도 같은 복음주의 교회들에게 내쳐진 반전평화팀을, 아나뱁티스트는 흔쾌히 받아주고 그들을 파송하고 진심으로 기도해주었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나는 김두식 교수의 <평화의 얼굴>이나 존 요더의 책들을 읽으면서 양심적 병역 거부, 반전 평화운동과 같은 이들의 실천에 크게 감동했었다. 나는 신학이나 세계관에 있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은 못되지만 이원론이나 변혁 모델을 끌어안지 못하는 김기현보다는, 개혁주의적 복음주의자들이 자신들도 하지 못하는 일들을 몸소 실천한 아나뱁티스트를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교파 정도로 평가절하하고 고고하게 자신의 신학적 입장만을 고수하는 것이 더 큰 문제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단지 나만의 생각인가. (계속)


**이 글은 월간<복음과상황> 09년 7월호 기고글입니다.

2009/07/01 23:38 2009/07/01 2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