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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대한 소고(5)
: 복음주의권의 보수와 진보, 그 소통과 연합을 기대하며 


기독교 세계관 운동: 1990년대
이 제까지는 기독교 세계관의 이론 자체에 대한 논의를 주로 했다면 이번 연재에서는 세계관 운동, 특히 국내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대한 변화와 그 원인들을 짚어보고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국내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과 관련된 논의에 있어서는 청어람 아카데미의 양희송 실장의 기여가 실로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미 2002년에 GSF에서 기독교세계관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시작한 바 있으며 2003년에는 편집위원인 박총과 함께 본격적으로 기독교 세계관의 비판적인 시각을 정리하였고, 같은 해에 기학연과 복상 공동주최로 이루어진 기세포럼에서는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 비판적 성찰"이라는 발제문을 통해 국내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이론과 실천 영역 모두를 진단하였다. 그는 여기에서 국내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을 손꼽았는데 내용을 잠시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당 시 국내의 ‘기세’에 실천적 모델을 결합시킨 상징적 인물로 손봉호 교수를 꼽을 수 있겠다. 목사가 아니지만 교회에서 설교자로 사역했고, 서울대 교수로 가르치는 분야뿐 아니라 기독교수 모임을 통해 1987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창립을 주도하면서, 복음주의권에 시민운동의 한 사례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고, ‘공정선거감시운동’을 주창해 그 해 대통령선거와 이후의 선거에 복음주의권 교회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길을 트기도 했다. 한국사회에 본격적인 시민사회의 도래를 알린 시민운동 단체 <경제정의실천연합>의 창립에도 깊게 관여함으로써 종교운동의 범주를 넘어서 시민사회와 결합하는 모델을 보여주기도 했다.” (양희송, 2003년 기독교세계관 포럼,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 비판적 성찰")

1987년 창립된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복음주의권은 기윤실의 약진과 그 궤적을 같이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기윤실’을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주요 실천적 활동으로 삼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많겠으나 지면 관계상 주로 기윤실만을 다루기로 한다.) 또한 <복음과상황>의 창간과 더불어 국내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시민운동과 문서운동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공정선거감시운동’과 ‘낙천낙선운동’을 통해 일반 시민들에게도 그 활동이 각인될 만큼 어느 정도 사회에 기여하였다고 평가되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 기윤실은 입지가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종국에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양희송은 발제문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이유로 기윤실이 입지가 줄어들었음을 논증했다.

“<기윤실>이 ‘문화소비자 운동’을 통해 초창기부터 꾸준히 펼쳐온 ‘스포츠신문 음란성 고발 캠페인’은 상당히 호응을 받고 있었으나, 이와 더불어 진행해온 대중문화 공연이나 음반, 영화 등에 대한 캠페인은 적잖은 반발을 수반했다.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 반대(1995), 싸이, 박지윤, 박진영 등의 음반 방송금지 혹은 불매운동, 영화 ‘거짓말’, ‘죽어도 좋아’ 등의 장면 삭제 혹은 상영제한 캠페인 등은 다른 문화운동 단체들과 상당한 논란을 빚었고, <기윤실> 문화정책을 한국 사회 보수집단의 전형적 문화취향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교회개혁 문제에 있어서 <기윤실>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나, <교회개혁 실천연대>가 <기윤실>에서 분리해 나간 것에서도 드러나듯 ‘목회 세습 문제’ 등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거나, 미온적 자세를 보임으로써 현실인식의 긴박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들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윤실>은 그 활동 전반이 갖고 있는 건강성에도 불구하고, 매우 협소한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관적 관점에서 볼 때는 이제 기독교권 내에서도 기독교적 실천 모델의 다양화가 자연스럽게 제기된 것이다... 이런 시민운동 자체가 곧 ‘기세’적 실천과 등치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렇게 대표 모델들이 선도성을 잃어가는 현상은 ‘기독교적 실천’의 부름에 단일대오로 나서는 일이 점차 더 어려워짐을 보여준다.” (양희송, 같은 글)

양희송은 기윤실로 대변되는 1990년대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문화운동에서의 보수적 취향, 교회 개혁 문제에 있어서의 미온적 입장으로 인해 입지가 줄어들었고, 기독교 세계관 자체가 개혁주의로 경도되는 현상과 정치판에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 원칙론 이상의 발언을 하지 않은 것들을 위축의 주요 이유로 설명했다. 그의 지적대로 “원론에 값하는 각론이 나올 때가 되었으나, 이 지점에서 ‘기세’ 논의는 계속 지체”되었고, 90년대 후반에는 정권교체로 인해 정치적 긴박감의 해소되어 “‘기세’ 논의도 상당부분 문화분석이나 문화관 논의의 형태를 띄고 진행”되었다. 결국 문화변혁운동으로 변화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영적 비평’이라는 미명 아래 한국 사회에서 문화적 보수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전까지는 정치적으로 동질감을 가졌던 국내 진보적인 비기독인들의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렇듯 90년대 기윤실로 대변되었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초반에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크게 위축되었고 기독교 세계관 내부적으로는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 2000년대

90 년대의 정체 현상과 내부 비판에 기인하여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2000년에 들어서면서 운동의 주체 세력이 두 갈래로 분열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는데, 주로 그간 통용된 기독교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보려는 젊은 진보적인 복음주의자들과 이를 고수하려는 기성 개혁주의 전통의 교계 분위기 사이의 대립 양상이 그것이었다. (이러한 대립의 이론적인 내용은 그간 연재를 통해 정리하였다.) 이러한 대립 양상은 어떤 의미에서는 신구 세력의 갈등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특히 2003년에 있었던 기독교세계관 포럼에서 김기현과 양희송은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의 비판적 성찰을 발제의 주 내용으로 담았고 이승구와 최태연은 다소 열린 태도를 보이기는 했으나 주된 입장은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옹호와 비판적인 입장에 대한 반론들을 내세웠다. 최태연은 정정훈, 양희송, 이원석, 김기현의 글들을 꼼꼼히 읽고 그에 대한 긍정과 비판을 다루면서 마지막에는 열린 경주를 제안했지만 이승구는 발제문에서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였다.

“나는 이 글에서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세상 전체를 바라보고, 그에 근거하여 살아 나가는 일”을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규정하고, 이런 의미의 기독교 세계관은 없어지거나 치워져서도 안 되고, 수정되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오히려 나는 가장 성경이 철저한 방식으로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세상 전체를 바라보고 그런 관점에서 사는 일이 더 철저하고 폭 넓게 나타나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승구,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요구들과 기독교 세계관의 요구”)

포럼에도 참석하고 당시의 글들을 읽으면서 느끼기에 당시 분위기는, 개혁주의적 입장에 서 있는 목회자, 신학자들에게 있어 ‘젊은 복음주의자들의 비판적인 논의’가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비판 자체가 대단히 위험하고 건방지며 다소 성급하다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어떤 교수는 이러한 논의가 학회나 전문 집단에서 얼굴이 상기될 정도로 가혹하게 당사자의 글에 대해 평가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저 젊은 세대의 ‘반란’ 정도 치부하기도 했다. 내 생각에 신구 갈등 혹은 진보-보수 갈등처럼 번진 기독교 세계관 논쟁은 기성 개혁주의자들의 신학적 보수성에도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전 연재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기독교 세계관의 문제가 결국 신학적인 문제로 환원되는데 대다수의 기성 개혁주의 신학자, 목회자들은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개혁주의 전통의 구획 안으로 규정지었으며 이는 기독교 세계관이란 용어 자체가 개혁주의자들의 산물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다분히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들은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 요소들을 명제적으로 제시한 것 자체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간주했으며 이렇게 제시된 기독교 세계관은 사실상 개혁주의 신학의 ‘행동 지침’에 가까웠다. 조금 과장하여 말한다면 개혁주의자들은 기독교 세계관을 “왜”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에 국한된 영역 문제만 축소하여 고민했고, 주로 그 핵심적인 명제들을 쉽게 설명하거나 세상적 세계관을 비판하는 잣대로 제시하거나 세상을 변혁시키는 방법론으로서의 기독교 세계관에 집중해왔다.

 

문제는 그 신학 근본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는 이들이 생겨난 것인데 대부분 젊은 기독인들로 구성된 이들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좌파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성경의 무오성 내지는 무류성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으며 에큐메니컬 진영의 신학자들의 저서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등 빈번하게 기독교 세계관의 상부에 자리잡고 있는 개혁주의의 보수적인 신학 입지를 흔드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보수 교단에 속한 다수의 개혁주의 신학자, 목회자들은 이를 불편하게 느꼈음이 분명하다. 초창기에 기독교 세계관을 국내에 소개한 대표적인 이들이 이 젊은 기독인들의 주장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다는 점에서 그러한 심증을 더 굳히게 만든다. 이러한 분위기는 내가 알기로는 몇 년간 지속되었으며 기독교 세계관의 두 진영은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듯 했다. 그러다가 양희송이 코스타 대회와 청어람 아카데미를 통해 개혁주의자로 대변되는 교수 그룹과 여러 차례 세미나를 통해 교류와 화해(?)를 시도했고 기독교 세계관 논의는 내러티브의 강조 및 기독교 세계관의 다양성에 대한 인정 등과 같은 문제에 있어 조금씩 어느 정도의 합의점을 찾게 되었다. 허나 내 생각에는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합의점이 여전히 미진해 보이는데 그 부분에 대한 몇몇 원인들을 좀더 짚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진보적 복음주의, 혹은 좌파 복음주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분열되었다고 지적을 했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분열되었다기보다는 복음주의권 자체가 분열된 듯한 느낌이다. 90년대 학번인 나는 학생 시절에 기독 운동 자체에는 어떤 연합 전선 같은 것이 있다고 느꼈다. 기윤실이 됐든, 복음과상황이 됐든, 혹은 학복협이 됐든 간에 복음주의권에서의 정치, 문화, 신앙에 있어서의 어떤 광범위한 합의점 같은 것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광범위한 합의점들은 신구 갈등, 신앙적 진보-보수 갈등으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나는 듯 했는데 내가 처음으로 복음주의권에서 내가 구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목창균 서울신학대학교 총장의 책인 <현대 복음주의>를 통해서였다.

“진보적 복음주의는 복음주의 신앙의 전통적 경계선을 넘어 자유주의 신학 쪽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진보적 복음주의의 특성은 개방성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비복음주의 신학자들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신학의 자원을 성경뿐만 아니라 기독교, 문화, 경험에까지 확대하는 것, 목석처럼 융통성 없는 성경 접근을 거부하는 것, 하나님의 내재성과 관계성을 강조하는 개방적 신론, 자신의 영역 수용과 보편적 구원에 대한 열망, 예수의 인간성 강조 등이다. 신학적 다원주의에 대한 더욱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게 하는 성경 내 다양성에 대한 인식, 하나님의 개방성에 대한 공개적 토의, 진화 개념을 수용하는 우주 기원에 대한 설명, 불신자의 구원의 가능성, 영원한 지옥 형벌 교리를 대체하는 절멸 개념에 대한 개방, 복음주의 교리를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과 협력하는 복음주의적 에큐메니즘 등이다. 진보적 복음주의자의 수는 복음주의 공동체 전체로 보면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1990년대 이후 그 영향력이 점증하고 있으며 복음주의 신학계의 중심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왜냐하면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복음주의 학자들이 이 그룹에 속하기 때문이다. 한편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저술을 주로 출판하는 곳으로는 Inter-Varsity Press를 들 수 있다... 진보적 복음주의는 활발한 지적 활동은 통해 현대 복음주의의 최대 취약점인 반지성적 경향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그러나 복음주의의 경계선을 훨씬 넘우 자유주의 신학 쪽으로 이동함으로써 복음주의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하는 또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그것은 이제 같은 뿌리였던 보수적 복음주의보다 오히려 자유주의 신학에 더 가까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목창균, “현대 복음주의”)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주변에서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 중 다수는 진보적 혹은 좌파 복음주의자에 속한다. 그들의 특징은-목창균 총장이 지적한 대로-이전에는 보수적 개혁주의 내부에서 볼 수 없었던 신학적 ‘개방성’이다. 사실 이 책에서 언급한 사안들에 대해 하나의 그룹으로 묶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보편적 구원에 대한 열망, 에큐메니컬에 대한 입장, 진화론의 수용 등의 문제에 있어서 진보적인 복음주의자라 하더라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류될 것이 분명하다. (나또한 이 책의 분류대로라면 진보적, 혹은 좌파 복음주의자이겠지만 진보 계열 안에서는 다소 보수적인 위치로 비춰질 것이다.) 문제는 이전과는 다르게 기존 전통적 신학 입장과는 차별화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기독인들이 복음주의의 진보 진영에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이머징 교회 운동과 기독교 세계관

최 근에는 교계에서 ‘이머징 교회’라는 용어도 많이 사용하는데 이머징 교회와 진보적 복음주의자들 간에 다소 겹치는 영역이 존재한다. 아마도 이머징 교회의 개방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복음주의권의 기독인이 진보 진영이기 때문일 것이다. D. A. 카슨은 <이머징 교회 바로 알기>에서 이머징 교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운동에 속한 많은 사람은 ‘새로 떠오르는’이라는 말이나 ‘신흥의’라는 말을 그들의 운동을 규정하는 형용사로 사용한다. 수십 권의 책들이 이 ‘새로 떠오르는 교회’와 ‘새로운 교회의 출현에 대한 이야기’ 등과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어느 웹사이트는 방문자들에게 ‘새로운 친교’를 나눌 것을 권하는데 이 말은 결국 이 운동 내에서의 친교의 중요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운동의 핵심에는 문화의 변화는 새로운 교회의 출현을 예고한다는 확신이 깔려 있다. 따라서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 새로 떠오르는 교회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D. A. 카슨, “이머징 교회 바로 알기”)

기독교 세계관 논의에 있어 이머징 교회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들의 특징이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들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내에서 ‘이머징 교회’라는 특정 집단을 구분해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카슨의 다소 광범위한 구분에 따른다면 이교회 운동의 특징을 기성 교회에 대한 저항, 모더니즘과 모더니즘적인 신조주의, 명제주의에 대한 비판, 초교파적인 교회 운동, 포스트모더니즘적 인식론 수용, 교회 예식과 교리보다는 공동체를 더욱 강조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교회 운동은 기성 교회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일삼고 있는데 카슨은 이 책에서 이머징 교회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이 이머징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그들은 겸손한 태도로 모더니즘적인 신조주의의 참모습에 대한 비판을 제시하고 우리의 조상들이 은혜에 힘입어 복음에 충실했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점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정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대신 그들은 가장 나쁜 본보기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고 그런 사례를 조롱하는 듯 하다... 이머징 운동을 옹호하는 저자들이 보기에는 모더니즘은 나쁘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좋거나 영광스런 기회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사려깊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더니즘이건 포스트모더니즘이건 어느 쪽에도 완전히 동조하지 말아야 하며 그 두 실체를 전적으로 부정해서도 안 된다. 이머징 교회 운동은 조금 더 공평해져서 모더니즘의 내적인 장점을 명확히 밝히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할 때 비로소 성숙한 경지로 만개할 것이다.” (D. A. 카슨, “이머징 교회 바로 알기”)

카 슨은 이외에도 여러 문제들을 다루었지만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을 수용하는 부분에 있어서 이머징 교회가 균형성을 유지할 것을 경고했는데, 그는 “우리의 유한성이 지닌 함의 우리가 배우고 아는 과정을 둘러싼 복잡한 상황, 모더니즘에 대한 유용한 비판 등을 포함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장점을 간직”하면서도 참된 진리를 알 수 있는 가능성의 보존, 즉 “객관적 진리가 들어갈 자리”를 남겨 놓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 연재에서도 다루었듯이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용 문제와 신학적인 개방성의 문제는 결국 현대 기독인들에게 큰 숙제로 다가오고 있으며 복음주의권 내의 기독인들 사이에서도 진보-보수를 나누게 만드는 분수령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이들의 개방성이 모더니즘적인 토대의 신조주의나 신학적 보수성을 고수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과할 정도로 비판적, 적대적이며 때론 냉소적이기까지 하다는 데에 있다.


복음주의권의 보수와 진보, 그 소통과 연합을 기대하며
내 가 요즘 느끼는 주된 우려감은 복음주의권 내의 진보-보수 간의 미묘한 갈등과 분열이다. 물론 교계에서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기준도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내가 제시하는 진보, 보수의 구분에 동의하기 어려운 이들도 있을 것이며 실제로도 복음주의권 내부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세력이 다양해졌다. 정치적으로 본다면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대한 입장에 따라 진보진영도 세분화되거나 중도우파와 좌파로 분류될 수 있으며 복음주의권에서 <복음과상황>의 이사로 있던 김진홍 목사가 뉴라이트 운동의 핵심인사로 분류되면서 그를 따르는 이들이 정치적으로는 보수의 길을 걷는 등의 변화들이 있었다. 북미의 경우에는 찰스 콜슨이나 오스 기니스가 같은 복음주의권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이라크 파병 문제로 정치적 보수성을 드러내었고, 그에 따라 좌파 계열로 분류되는 짐 월리스나 아나뱁티스트 신학자인 하워드 존 요더의 사상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되기도 했다.

 

신학적으로 구분해 본다면, 개혁주의 내부에 모든 기독인들을 보수로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 복음주의권은 다수를 개혁주의자로 등치시켜도 무방할 정도로 신학적으로는 개혁주의를 표방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도 사실 다양한 부류로 기독인들이 나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진화론에 대한 성경적 입장으로 복음주의권이 나뉘는데 특히 프란시스 쉐퍼의 제자임을 자처하는 낸시 피어시가 자신의 책 ‘완전한 진리’를 통해 진화론을 전면 비판하고 지적 설계운동을 긍정하면서 이를 유일한 기독교 세계관으로 제시하여 이에 대한 찬반 양론이 뜨거운 상태다.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경우에는 진화론에 대한 열린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우종학이 최근 자신의 책에서 진화론에 대한 열린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진화론을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거의 최초로 유신론적 진화론을 소개한 바 있는 장대익 교수가 얼마전 출간한 <종교전쟁>을 통해 종교에 적대적인 리차드 도킨스를 잠정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면서 더욱더 진화론을 긍정하는 기독인에 대한 우려감을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이러한 진화론에 대한 입장 차이는 서로에 대한 대화보다는 평행선으로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으며 이는 비단 진화론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최근 들어 나는 자주 진보 진영 기독인들이 보수적인 기성 교단의 목회자, 신학자를 ‘꼴통 보수’ 취급하는 경우를 본다. 반대 입장에서는 진보적인 기독인들의 개방적 입장에 대해 전혀 수용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채 그들을 마치 자유주의로 경도된 부류로 치부하고 그들의 신앙 자체를 의심하기도 한다. 나는 요사이 기독인들이 자신의 비판적 시각을 자유롭게 표현한다는 명목으로, 무례하고 독한 말과 글들을 일삼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나의 우려는 이런 것이다. 갈수록 기독교 세계관의 수혜를 입은 공동 전선의 기독인들이 나뉘어서 서로 특정 사안을 놓고 비판하고 스스로를 구분시키는 일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비판의 중심에는 기독교 세계관 논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결국 기독교 세계관은 지금 이들을 아우르고 있는 테마고 또한 서로를 비판하고 구분 짓고 분열을 일으키는 뜨거운 감자이며 지금까지 복음주의권에서 거의 유일하게 회자되고 있는 이슈인 셈이다. 그런 연유로 나는 이 지루한 그리고 갈수록 점점 논의가 어려워져서 이제는 신앙인들에게 멀어져 가는 이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게 된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대한 글을 쓰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결국 우리의 분열의 사안들을 짚어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더욱더 적극적으로 소통하여 종국에는 연합의 방향성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또한 서로 다름을 이야기할 때에도 사랑과 온유함으로 그리스도의 인격과 희생의 정신을 되새기자는 것이다. 연재를 함에 있어서 글의 방향성을 그간의 논의를 정리하는 것으로 잡았으나 중간중간 내 의견들이 많이 드러난 것 같다. 전적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설명만을 고수할 수는 없었음을 인정하며 혹자의 지적대로 비전문가 입장에서 다소 무리를 두는 논지도 있었을 것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바란다. (끝)




**이 글은 <복음과상황> 9월호 원고입니다.

2009/09/01 23:46 2009/09/01 2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