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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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아내가 마트에서 앵무새를 한 마리 더 사왔다. 퇴근하고 보니 아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를 보고 있지만 나를 보는 게 아닌...유령같은 존재.ㅎㄷㄷ)

상황은 이랬다. 앵무새를 키우고 나서부터 청계천이나 마트에서 파는 앵무새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새끼들 수만 불려서는 파는 시스템의 희생물이란 걸 알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마트에 가도 애완동물(금붕어, 앵무새, 토끼 등) 코너는 피해다녔다. 그런데 지난 주에는 성하가 하도 보러가자고 해서 갔더니 앵무새가 코가 막힌 채로 그렁그렁 소리가 나는게, 겉보기에도 감기로 죽어가는 기색이 역력했던 것.

아내는 넋이 나가서 그 녀석을 단숨에 사왔고 집에서 자세히 상태를 보니 도저히 안 되겠다 판단하여 동물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병원에서는 X레이 등 여러 검...사를 한 후에 감기에 의한 폐렴이라고 했고, 진단서를 만들어 줄테니 병원비를 요구해보라고도 했다. 마침 그 병원에 온 사람 중 하나도 비슷한 경우를 겪었는데 마트를 상대로 이런 소동(?)을 피워도 이기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도 전해들었다.

그 사람이 경험한 케이스를 설명하기를. 병원 치료기록을 가지고 마트에 가서 이런 애들을 가둬놓고 팔아도 되냐고 항의했더니 직원이 다른 앵무새로 바꿔주겠다고 했단다. 흠 없는 다른 '상품'으로... '다른 상품'... 그리고 마트 안에는 그런 망가진 애들(동물들)을 보관하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고 했단다. 아내는 당일 하루종일 울었고 그 앵무새를 집에 데리고 와서 지금까지 약과 끼니를 정성껏 먹여서 살리려고 애쓰는 중이다.

마트에서 파는 앵무새는 농장 같은 곳에서 직거래를 하는 것보다 40% 정도 비싸다. 게다가 그 병든 앵무새를 데리고 두번 병원을 방문했는데 그 앵무새의 비용의 몇 배가 병원비로 들었다. 지금도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상황으로 인해 아내는 나에게 계속 미안해하고 있다. (오늘도 아내는 '이혼해줄까?' 라는 문자로 사과+협박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전하고 있음;;;)

아내가 '아픈 애들을 다른 걸로 바꿔주겠다고 했대'라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대목에서 나도 감정이 동했다. 아내는 장기적으로 청계천이나 기타 열악한 조건에서 죽을 확률이 높은 상품들을 대량 생산해내는 곳에서는 동물 거래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만들고 싶어한다. 이상적으로는 동물을 '거래'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자 한다.

개가 아프면 병원에 간다. 하지만 병원비가 만만치 않다. 보험이 되지 않는 관계로 간단한 다리 수술만 해도 대략 백만원 정도가 든다. (이런 사실을 알고 길거리에 반려견들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 금붕어는 어떤가. 금붕어가 아프면 우리는 그저 지켜본다. 금붕어가 죽으면 건져내서 버린다. 토끼는 어떨까. 앵무새는?

물론 어떤 종은 살리고 어떤 종은 내버려두는 데에는 상대적인 입장 내지 가치관이 있을 것이다. 대체로 큰 동물일수록 지능이 높은 녀석일수록 살리고 싶어한다. 또한, 개인의 정서 혹은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에 따라 어떤 동물은 큰 비용을 치루면서도 살리거나 고치고 싶고 어떤 동물은 그렇지않은지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반려동물이라는 상품을 내놓으면서 '반려'의 의미, 가치와는 무관하게 마치 장난감이나 종이컵처럼, '아 기스가 났네요. 저기 가시면 새걸로 바꿔드립니다' 라고 말하고 행동하는 시스템 속에 고통받는 '생명체'의 아픔이 크게 다가온다. 아내에게 그랬고 이제는 나에게도 그러하다. 우리 바바는 포메라니언이라는 상품이 아니다. 프로나 이트(우리집 앵무새들)도 모란앵무라는 품종의 상품이 아니다.

지난 주에 우리집으로 온 이 앵무새도 그렇다. 부디, 이 녀석이 아내의 도움으로 건강이 잘 회복되길 기도해본다.
2013/02/06 22:33 2013/02/06 2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