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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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독인들의 소비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지금까지 생각한 걸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일반적으로 한국사회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상대적 박탈감이 큰 편인데 기독인들 사이에서는 잘 드러나질 않는다. 가끔 나는 수백만원짜리 명품 가방에 명품 옷을 입은 사람과 9900원짜리 티셔츠 입은 사람이 같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었다. 혹은 물욕이 많은 이들을 암암리에 비난하는 교인들도 종종 봤다.

더 큰 문제의식은 교회를 가보면 실제로 중산층 이상이 다수고 극빈층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게 사실 은근히 돈없는 사람들이 위화감 때문에 교회 오는 게 꺼려지는 요인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따라서 내 생각은 자연히 그럼 소유, 소비 자체를 적절하게 절제하고 검소하게 사는 게 올바른 방향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관심사는 그렇다면 맘몬(물질의 우상화)을 섬기지 않는다는 증거로 내세울 수 있는 적정한 소유는 과연 어느정도일까 하는 문제였다. 이건 절대 수치인가 아니면 연봉에 기인하는 건가, 혹은 공동체의 수입 평균에 맞춰야 하는 건가. 넌 교인인데 너무 물질적이야 라고 말할 때의 그 물질적..이라고 말하는 정도는 어느 정도일까.

사실 이러한 소유의 문제는 이미 청부론, 청빈론이라는 주제로 교계에서도 한참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고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나도 해답이라고 부를 만한 답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생각하는 정답, 즉 청빈론이 옳다한들 교회가 실질적으로 그렇지 않은데, 실제로 주일마다 만나는 이들의 개인 소비 문제로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나도 청빈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해서 일단 나는 남 비판하기 전에 내 소유부터 따져보기 시작했다. 내 소비성향과 소유성향을 따져보고 나는 어떤 물건을 구입할 때 그 물건 금액의 상한치를 정했다. 이를 테면 냉장고를 살 때 내가 생각하는 상한 금액은 얼마이고 그 이상은 과하다는 식으로. 혈액형이 A형이자 다분히 계획적인 내 성격이 적나라하게 반영된 이 프로젝트는 척척 진행됐다. 바지는 3만원 전후, 신발은 5만원 전후, 코트와 구두는 15만원 이하, 노트북은 100만원이하, 책은 부부가 합쳐서 매달 10만원, 외식비는 한번에 5만원이하, 매달 20만원 이하...

이런 걸 계산하고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물건에 대한 물가 차이도 생기고 모든 물건을 다 이렇게 정한다는 게 우습기도 하여 어느 정도까지 하다가 포기했지만.. 사실 지금도 내 심중에는 어떤 물건을 살 때 그 물건에 대한 상한치의 금액을 정한다. 물론 그 룰에 맞게 매번 물건을 산 것도 아니고 또한 그 물건 자체가 필수품이냐 사치품이냐도 중요하니 사치품에 상한선을 정해서 많이 사재낀다면 그것도 문제 아닌가.

이런 고민을 오랜시간 하다보면 물건을 사는 금액보다 물건을 살 수 있는 금전적 여유의 문제가 점점 부각되고 그 여유는 결국 근본적인 연봉, 수입, 소유의 문제가 된다. 근본적인 교인들의 경제문제인 셈이다. 나는 소그룹 나눔에서 입고 오는 옷이나 주말에 식당에서 먹은 음식, 아이들에게 사준 고가의 장난감, 그 아이들이 입은 옷, 이런 작은 부분에서 교인들이 상당한 스트레스와 상처를 받는 것을 알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 교인들의 다수는 듣기만 할 뿐 그다지 공동체로서 도와주거나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더욱이 그 도움이라는 게 치명적인 상황이 아닌 경우, 생활 자체가 안될 정도는 아니지만 매번 소비에 심적 부담을 느낄 정도, 혹은 중산층이 다수인 교회에 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초라함을 느낄 정도인 경우에 말이다.

난 버젓하게 직장이 있지만 전세 이사를 네번했다. 이제는 미친듯이 오른 전세값으로 아예 전세를 빼고 사택으로 이사했다. 교회를 가면 우리 아이보다 좋은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그 장난감에 눈독을 들이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조금 심난하다. 내 동기는 아내와 맞벌이를 하고 부모가 사준 아파트가 있어 같이 시작한 직장 생활에 벌써 모은 돈만 몇억이랜다.

사실 교인 중 누군가는 내가 내 동기를 부러워하듯 내 아이가 입은 옷이나 내 직장, 사택을 갈수 있는 내 형편을 부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같이 예배를 드리나 우리는 다른 상상을 한다. 난 교계에 쏟아지는 담론들 중 이런 얘기를 콕 찍어서 하는 경우를 거의 못 봤다.

역사니 내러티브니 하는 신학 논쟁이나 정치이야기들, 물론 중요한 담론이지만 나는 매주 나가는 교회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그런 건 것보다는 이런 일련의 생각들을 하게되는 나눔과 사건들이 더 잦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모두가 '아멘'이고 '샬롬'이다. 집에가서 어떤 가정은 호텔 뷔페를 먹지만 누군가의 아내는 울고 누군가의 아빠는 한숨쉰다.
2011/09/25 21:24 2011/09/25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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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절대악'이라 생각되는 존재가 있다. 전두환, 정형근.. 뭐 이런 분덜도 그렇고 살면서 나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대우를 한 이들. '20세기 기사단' 내지는 '요술공주 쉐리'들이라 부를 법한 '또라이'들에 대한 맹목적인 비판을 퍼부을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

성경에 삭개오라는 자가 나온다. 민족의 배신자이자 왕따, 또라이 쉐리 삭개오를 예수는 주목하고 있다가 그의 집으로 가서 함께 식사한다. 온갖 나쁜 짓은 다하던 삭개오. 예수의 방문에 알랑방귀를 끼며 회개까지하고 착하게 산댄다.

걔보다 내가 백만배는 더 착하고 의로운데, 예수와 식사를 한다면 딴놈들은 아니더라도 삭개오가 아니고 내가 되어야 하는데. 이제 예수에 대한 의로운 분노마저 든다. 그래 공의는 개뿔, 정말 억울하고 불합리하다.

난 어떤 인간에 대해 절대악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자주 삭개오를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내 본성을 거스르고 힘들게 힘들게 그들을 인격체로 대하려는 내 심리 때문에... 나는 진보진영에서 과격하게 극우파나 혹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집단을 아주 쉽게 그리고 극단적으로 꼴통취급하는 사람들이 한편으론 공감도 되면서도 한편으론 참 싫다.

그들도 언제든지 예수가 찾아갈 수 있는 잠재적 삭개오란 인식이 없어 보여 그렇다. 나도 너도 우리도 모두 사랑어린 권면이 필요하다.

((딴소리))

1. 난 '분노'를 반대하지 않는다. 특히 인권을 위협받는 여성문제, 노동자, 사회적 약자들이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투쟁에 참여하는 경우, 이들의 바판을 용인, 혹은 적극 동참해야 하고 그에 더하여 그 욕섞인 메시지를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불편하게 여기는 건 기독교 맨탈리티를 가진 이들 가운데 극단적 표현과 비판을 일삼는 부류다. 또한 그 비판은 최소한 '인간'보다는 행동, 논지, 입장에 한정하며 인신공격성이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3. 보수적 신학관을 가진 몇몇은 삭개오는 회개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지 않냐, 예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얐냐, 전두환, 정형근과는 다르다 라고 말할 지 모르겠다. 내 내면도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내 안에 바리새인의 피가 흐르지는 않나 돌아볼 필요도 있다.

2011/09/25 21:24 2011/09/25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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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독인들의 소비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지금까지 생각한 걸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일반적으로 한국사회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상대적 박탈감이 큰 편인데 기독인들 사이에서는 잘 드러나질 않는다. 가끔 나는 수백만원짜리 명품 가방에 명품 옷을 입은 사람과 9900원짜리 티셔츠 입은 사람이 같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었다. 혹은 물욕이 많은 이들을 암암리에 비난하는 교인들도 종종 봤다.

더 큰 문제의식은 교회를 가보면 실제로 중산층 이상이 다수고 극빈층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게 사실 은근히 돈없는 사람들이 위화감 때문에 교회 오는 게 꺼려지는 요인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따라서 내 생각은 자연히 그럼 소유, 소비 자체를 적절하게 절제하고 검소하게 사는 게 올바른 방향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관심사는 그렇다면 맘몬(물질의 우상화)을 섬기지 않는다는 증거로 내세울 수 있는 적정한 소유는 과연 어느정도일까 하는 문제였다. 이건 절대 수치인가 아니면 연봉에 기인하는 건가, 혹은 공동체의 수입 평균에 맞춰야 하는 건가. 넌 교인인데 너무 물질적이야 라고 말할 때의 그 물질적..이라고 말하는 정도는 어느 정도일까.

사실 이러한 소유의 문제는 이미 청부론, 청빈론이라는 주제로 교계에서도 한참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고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나도 해답이라고 부를 만한 답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생각하는 정답, 즉 청빈론이 옳다한들 교회가 실질적으로 그렇지 않은데, 실제로 주일마다 만나는 이들의 개인 소비 문제로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나도 청빈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해서 일단 나는 남 비판하기 전에 내 소유부터 따져보기 시작했다. 내 소비성향과 소유성향을 따져보고 나는 어떤 물건을 구입할 때 그 물건 금액의 상한치를 정했다. 이를 테면 냉장고를 살 때 내가 생각하는 상한 금액은 얼마이고 그 이상은 과하다는 식으로. 혈액형이 A형이자 다분히 계획적인 내 성격이 적나라하게 반영된 이 프로젝트는 척척 진행됐다. 바지는 3만원 전후, 신발은 5만원 전후, 코트와 구두는 15만원 이하, 노트북은 100만원이하, 책은 부부가 합쳐서 매달 10만원, 외식비는 한번에 5만원이하, 매달 20만원 이하...

이런 걸 계산하고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물건에 대한 물가 차이도 생기고 모든 물건을 다 이렇게 정한다는 게 우습기도 하여 어느 정도까지 하다가 포기했지만.. 사실 지금도 내 심중에는 어떤 물건을 살 때 그 물건에 대한 상한치의 금액을 정한다. 물론 그 룰에 맞게 매번 물건을 산 것도 아니고 또한 그 물건 자체가 필수품이냐 사치품이냐도 중요하니 사치품에 상한선을 정해서 많이 사재낀다면 그것도 문제 아닌가.

이런 고민을 오랜시간 하다보면 물건을 사는 금액보다 물건을 살 수 있는 금전적 여유의 문제가 점점 부각되고 그 여유는 결국 근본적인 연봉, 수입, 소유의 문제가 된다. 근본적인 교인들의 경제문제인 셈이다. 나는 소그룹 나눔에서 입고 오는 옷이나 주말에 식당에서 먹은 음식, 아이들에게 사준 고가의 장난감, 그 아이들이 입은 옷, 이런 작은 부분에서 교인들이 상당한 스트레스와 상처를 받는 것을 알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 교인들의 다수는 듣기만 할 뿐 그다지 공동체로서 도와주거나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더욱이 그 도움이라는 게 치명적인 상황이 아닌 경우, 생활 자체가 안될 정도는 아니지만 매번 소비에 심적 부담을 느낄 정도, 혹은 중산층이 다수인 교회에 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초라함을 느낄 정도인 경우에 말이다.

난 버젓하게 직장이 있지만 전세 이사를 네번했다. 이제는 미친듯이 오른 전세값으로 아예 전세를 빼고 사택으로 이사했다. 교회를 가면 우리 아이보다 좋은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그 장난감에 눈독을 들이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조금 심난하다. 내 동기는 아내와 맞벌이를 하고 부모가 사준 아파트가 있어 같이 시작한 직장 생활에 벌써 모은 돈만 몇억이랜다.

사실 교인 중 누군가는 내가 내 동기를 부러워하듯 내 아이가 입은 옷이나 내 직장, 사택을 갈수 있는 내 형편을 부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같이 예배를 드리나 우리는 다른 상상을 한다. 난 교계에 쏟아지는 담론들 중 이런 얘기를 콕 찍어서 하는 경우를 거의 못 봤다.

역사니 내러티브니 하는 신학 논쟁이나 정치이야기들, 물론 중요한 담론이지만 나는 매주 나가는 교회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그런 건 것보다는 이런 일련의 생각들을 하게되는 나눔과 사건들이 더 잦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모두가 '아멘'이고 '샬롬'이다. 집에가서 어떤 가정은 호텔 뷔페를 먹지만 누군가의 아내는 울고 누군가의 아빠는 한숨쉰다.
2011/09/25 18:34 2011/09/2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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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언제나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올해 유난히 많은 눈을 허락하셨던 겨울을 뒤로한 채 어느덧 봄기운이 만연합니다.
많은 꽃들이 피었고 이제는 새싹이 돋아나는 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계절의 변화를 설계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필수불가결한 것들만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다양한 꽃들의 색깔과 향기들,
이 자연의 많은 아름다움을 허락하시고 또한 그것들을 누리고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가 속해있는 가정, 가족이 하나님이 맨 처음 우리에게 주신 베이스캠프이자
가장 당신의 사랑을 누려야 할 기초적인 공동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정 가운데 상처들을 많이 경험하고 삽니다.
부부간에 다툴 때도 많습니다. 자식을 학대하고 아버지를 미워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우리가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가정의 어려움들을 주님께 내려놓고
다시 가정 가운데 회복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변화를 위해 행동의 첫 걸음을 내딛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살면서 대하는 많은 사람들과 일들 가운데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매순간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백하고 교회를 다닌다고 말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는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저희들의 얇은 지혜로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가 많습니다.
또한 그러한 잘못된 결정을 유지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고
일을 할 때에도 점점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서
종국에는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이 어그러지는 경험들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겸손하게 주님께 우리의 삶을 내려 놓고 종용히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것을 깊이 연구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바로잡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아 그것을 향하여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배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예배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10/05/09 20:19 2010/05/0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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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어떠셨을까.

때때로 마음에 분노가 일지 않았을까.
사람에 실망하고 외로움에 사무치는 시간들이
일절 없었을까.

인생의 모든 것을 경험하고
죽음의 위협도 받으면서 내분과 외환 가운데에서
자신이 품었던 사람들의 비난 속에 십자가형을
받아야 했던 그에게서도 남다른 눈물과 마음의 상처로
뜬 눈으로 새운 밤들이 있지는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아버지의 알려주신 뜻대로 자신의 삶을
방향지었던 그의 길을, 과연 나는 걸어갈 수 있을까.
2007/12/12 19:17 2007/12/1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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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Love) 


흔히 사랑을 말할 때, 헌신이니 낮아짐이니..
영원이니 하는 말들을 쏟아낸다.
 
난 사랑이 무엇인지 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겠지만, 눈 수술을 앞두고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내 눈 상태에대해 말씀을 드렸다.
지금 더 이상 글자가 보이지 않으며 간단한 수술이지만 최악의 경우
수술 후에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그 때의 어머니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조금의 지체도 없이..
그렇게 신음소리를 내셨다

"니 눈만 멀쩡할 수 있다면, 내 눈이라도 지금 당장 뽑아줄 것을
왜 너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니..
죄는 내가 더 많이 지었는데.."
 
사실 난 겁내고 있었다.
실명을 할 경우에 머리를 빗을 일이며 식사는 어떻게 제대로 하며..
얼굴에 뭐가 묻었을 때 제대로 알지 못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지는 않을 지..
읽고 싶던 수많은 책들은 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머니는 그냥 본능적으로 자신을 눈을 파서라도 아들을 보게 하고 싶어 하셨다.
난,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난 내 눈을 파서
어머니의 눈을 고쳐드릴 자신이 없는데 말이다.
도저히 내 입에서는 두려워서, 입술이 떨려,
그런 말을 할 자신이 없는데 말이다.

구차함.. 헐벗음.. 자신을 내어줌..
영원히 변하지 않고 헌신적인 그 무엇..

30년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보살핌을 받았다고 하면서
눈알조차 내어드리지 못하는 나에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성경이 말하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난 가슴이 미어진다.

내가 그런 감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그래, 어머니 앞에 난 쓰레기에 가깝다.

2007/03/16 18:48 2007/03/16 1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