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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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할 때도 그랬지만 결혼 후에도 아내는 자주 나에게 고마워했다. 결혼 후 아내의 내면을 좀 더 깊이 알게 되면서 신혼 초에는 관계 자체가 힘들 때도 많았다. 아내는 마치 개학을 앞두고 방학숙제를 해치우는 아이처럼, 나와 만난 이후부터 밀도 있게 내면의 많은 문제와 씨름을 했다. 때로는 며칠을 두문불출하며 집안에 틀어박혀 있기도 했고 한동안은 심리상담 치료를 받기도 했다. 내가 나름 의지가 되었던지, 아내는 가끔 농담조로 나에게 '아빠, 아빠'라고 말하기도 하고 분위기가 좋을 때는 정말 업어달라며 내 등에 올라타기도 했다. 하지만 침체되거나 분노에 휩싸이면 소소한 대화중에도 싸움이 커져 밤새 다투기도 했다.

일상적으로 부부 중 한쪽이 심하게 침체되면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솔직히 때로는 그런 아내가 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여자의 어두운 내면에 잠식당하는 느낌, 나로 기인하지 않은 어떤 우울한 영향 때문에 함께 힘들어지는 정서가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그것보다는 아내를 통해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구나, 혹은 도움을 주는 어떤 존재구나 라는 생각에 속으로는 어떤 우쭐한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교회의 테두리 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런 정서적 도움을 주는 성숙한 인격이야말로 누구나 되고 싶어 하는 ‘궁극적 존재’가 아니던가. 힘든 일상 중간 중간마다 아내가 고마워하면 나는 때때로 그 기분을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나는 20대 초반부터 내면 정리를 성실히 수행해왔다. 부모 문제라거나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어려움들은 일찌감치 졸업했고 그 다음 단계로서의 어떤 모범적 신앙인, 사회인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런 고민들을 잘 정리해서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급기야는 주변 후배들에게도 ‘멘토’를 자처하며 지식을 쌓는 것과 더불어 상담 관련 책들도 읽고 나름의 정답을 찾아주려고 노력했다. 어떤 면에서는 아내에 대한 나의 태도도 자주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아마도 나는 무의식중에도 우회적으로 아내가 나에게 기대고 지속적으로 고마워하길 강요했는지도 모른다.

내 기준으로 볼 때 아내는 참 답답한 구석이 많았다. 나는 약속 시간에 늦거나 계획한 일들을 미루는 것을 정말 싫어했지만, 아내는 마치 나보란 듯이 그것들을 자주 지키지 않았다. 아내와 여행을 가도 목적지에 가는 중에도 흥미로운 곳이 있으면 목적지는 잊은 채 그곳에 머물러서 풍경이나 주변을 즐겼고, 나는 일정이 틀어질 때마다 긴장하고 불편해했다. 겨울이면 동네 슈퍼에 물건을 사러 나왔다가 길가에서 발견한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가져다주거나 바람막이 집을 지어주겠다며 몇 시간을 길바닥에서 허비하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아내는 아이와 길을 걷다가도 아이가 개미집을 발견하면 그곳에 함께 앉아서 한참을 개미나 다른 곤충들을 지켜보며 그것들과 같이 놀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내와 살면서 짜증이 나던 많은 상황들이 다르게 다가왔다. 왠지 모르게 아이와 함께 놀 때마다 나는 시간에 쫓기듯 불편하고 불안해했다. 함께 여행을 할라 치면 정작 떠난 첫날부터 그다지 즐겁지 않았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따지고 보면 내 삶이 딱 그랬다. 휴가 기간이 다가오면 휴가 계획을 세우고, 아이가 태어날 시기가 다가오면 육아 계획을, 하다못해 밥을 먹으러 가면 식사 계획을 세우고는 그것을 잘 수행하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뒀다. 그리고 아내에 비해 나는 사람들의 눈치를 참으로 많이 보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그것이 관계에서는 행동에 대한 어떤 명분을 찾고자 애쓰는 모습으로, 글을 쓸 때조차 과도하게 방어적인 글쓰기 방식으로 드러나곤 했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어서 빨리 밀린 숙제를 마치고 자아를, 나아가 자신의 욕망과 행복을 찾아가는 아내의 몸부림으로 인해 원치 않게 나 또한 깊은 성찰 없이 내면의 문제들을 대충 덮고 앞으로만 나아가려던 내 안의 어떤 관성과 대면하도록 만든 측면이 있다. 나는 물리적으로는 부모에게서 독립을 했으면서도 인생의 매 단계, 삶의 구석구석에서조차 “잘했어 우리 아들”이라는 환청을 주변 사람들에게 들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니 삶은 긴장의 연속이며, 꼭 지켜야 할 그 무엇이었던 셈이다. 물론 그것을 건조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건 그 구조 속에서 나름대로 ‘멘토링 게임’을 즐겼기 때문이다. 성취감과 함께 관계망도 조성되는 이 구조로 인해 나는 후배들에게도 자주 ‘나를 따르라’고 말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어떤 끈끈함과 뿌듯함을 누려왔다.

문득 집을 둘러봤다. 마트에서 독감으로 죽어가는 걸 아내가 발견하고 치료해서 키우는 모란앵무와 인터넷 카페에서 버려진 앵무새들, 그리고 다리를 다쳐서 몰골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길고양이 ‘마오’와 또 다른 길고양이 ‘나비’는 모두 아내가 데려와서 함께 살고 있는 동물이자 가족이다. 아내는 우리 아이와 더불어 자신의 주변에서 생명을 유심히 바라보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니 내 입장에서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싱글 시절, 나는 집에 오면 밀린 일들을 하거나 죽은 시체처럼 잠을 잤다. 나에게 집은 일종의 배터리 충전소 같은 곳이었다. 지금은 집에 오면 많은 생물이 나를 반긴다. 어쩌다보니 나도 가끔 멍하니 그들과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이런 변화가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여전히 나는 일상적으로는 느슨한 아내의 삶이 불편하고 집안의 많은 생명체들이 낯설 때가 더 많다. 아내는 내가 아니듯 나 또한 아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매순간을 집중하며 충분히 누리고 있고 나는 어서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매순간 쫓겨 다니는 것도 같다. 때때로 결혼이란 도대체 뭘까 싶은 마음이 든다. ‘사랑’이라는 달콤한 기표가 벗겨지고, 원하든 원치 않든 결혼은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공존의 방식을 체득하도록 이끈다.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타자와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내 속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사실 아직은 이 모든 여정이 낯설다. 하지만 이제는 왠지 그 여정이 싫지 않다.

2014/06/03 21:29 2014/06/03 21:29